그는 안도하면서 마음에 든다는 듯 강재민을 쳐다보았다.진범준은 문득 도아린과 강재민이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고 만만해 보이는 성격이지만 사실은 여우 같은 면이 있고 늘 생각지도 못한 수를 써서 상대의 화를 돋웠지만, 또 어쩔 수 없게 만들었다.“그들이 믿을 수 있게 아저씨는 요즘 무척 바쁜 척을 해야 할 겁니다.”“알고 있어!”진범준은 차를 다 마시고 일어서서 일부러 고뇌하는 듯 윤명희를 쳐다보았다.“나는 회사로 가봐야겠어. 요즘 일찍 출근하고 늦게 들어올 거야. 당신도 만날 사람이 있으면 가서 만나보는 게 좋아. 손실을 최소한도로 줄이자고.”“지금 바로 친구를 만나러 가려고요.”부부는 모두 외출했고 강재민도 도아린을 데리고 나왔다.집에는 차화영만 남아있었고 저녁 식사 때도 혼자뿐이었다.연달아 3일 동안 그녀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추궁 끝에 가정부는 모두 회사의 손실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바쁘다고 했다.차화영은 입맛이 없어졌고 절대 아들이 피해를 보지 말기를 기도했다....“이 방법이 통한다고?”진옥경은 선글라스를 쓰고 딸과 함께 백화점의 음식점에 앉아있었다.“도아린의 시어머니가 바로 내연녀 문제로 이혼했어요. 삼촌의 돈이 모두 숙모한테 있잖아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자고요. 두 사람이 이혼한다면 할머니는 무조건 삼촌에게 저희를 도와주라고 핍박할 거예요.”안민아는 자신이 미리 준비한 사람이 도착한 것을 보고 분석을 멈추고는 진옥경과 함께 지켜보았다.진범준은 매장에서 윤명희를 위한 마스크팩을 사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뒤돌자마자 누군가가 쏟은 주스에 진범준은 흠뻑 젖었다.“죄송해요! 죄송해요!”여자는 다급하게 사과했고 진범준의 몸에 입은 명품 정장을 보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제가 외투를 드라이해서 돌려드릴게요!”“괜찮아요.”진범준은 매장 직원이 건넨 휴지로 먼저 닦았다.“제가 화장실로 가서 씻어드릴게요. 건조기에 말리면 빨라요.”여자는 말하면서 진범준의 옷을 벗기려 했다.진범준은 빠르게 뒤로 한발 물
여자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다.안민아 모녀는 그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도아린이 무슨 볼거리가 남았냐고 강재민한테 물으려고 하는데 변슬기한테서 전화가 왔다.“도 선생님, 저 변슬기에요. 지금 바쁘세요?”“괜찮아요. 얘기하세요.”“제가 방금 민아와 민아 엄마를 봤는데 두 사람이 지금...”도아린은 변슬기가 그 음식점을 나오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저들이 누구에게 함정을 놓으려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안민아가 그 여자한테 돈을 주는 것을 봤어요. 그 여자한테 가서 유혹하라고 하던데 선생님의 남자친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게 아닌가 걱정돼요.”“하하.”도아린이 웃었다.“고마워요. 경계할게요. 슬기 씨는 거기서 친구랑 식사하고 있어요?”“네?”변슬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변슬기는 도아린이 2층 난간 쪽에서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왔다.강재민과 만난 변슬기는 조금 어색해하는 것 같았고 강재민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두 사람에게 얘기를 나눌 시간을 주었다.“아빠랑 현정 아줌마께서 쇼핑하고 계세요. 저는 병풍처럼 따라다니고 있었죠.”변슬기는 강재민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선생님 남자친구는 혼혈이세요? 정말 멋져요!”도아린은 떠보듯이 물었다.“두 분이 만나는 걸 슬기 씨 어머님께서는 괜찮으시대요?”“괜찮죠. 아줌마와 아빠의 관계는 남녀 사이의 감정을 훨씬 초월한 관계에요. 두 분이 쇼핑하는 건 아마도...”변슬기는 생각하다가 비교적 적절한 단어를 골랐다.“유명한 곳을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니시는 것 같아요. 두 분이 얘기를 나누시는 주제는 투자가 아니면 자식들 얘기세요. 두 분 본인의 얘기는 잘 안 하세요.”도아린이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그녀는 주먹을 쥐었고 저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도 선생님, 주말에 우리 학교에서 디자인 대회를 진행할 텐데 와서
육청아는 자랑스럽게 말했다.“민간조직이죠. 조직에는 많은 대단한 분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세요.”비서는 서류를 갖고 들어왔다. 육청아는 비서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계속했다.“배 대표님께서 LY와 합작하신다면 손해는 절대 없고 이득만 있을 겁니다.”배건후는 차갑게 피식거렸다.“이익이 없이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죠. 원하는 게 뭡니까?”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육청아는 시선을 피했고 책상 위의 피규어를 바라보았다.배건후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피규어는 안돼요.”“...”육청아의 웃음이 굳었다.그녀는 오자마자 비서한테 배건후의 취미를 물었었다. 비서는 그의 책상 위에 컴퓨터와 서류만 있고 사진이 한 장도 없다고 했다. 예전에 그가 비밀리에 결혼했을 때 모두 루머라고 생각했으니 사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손보미와 약혼한다는 소식을 발표한 후로 대표님의 책상에는 수제 피규어 인형이 하나 늘었다.그 피규어는 표백제를 사용했다는 것을 단번에 보아낼 수 있었다. 두 갈래의 땋은 머리가 없었더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보아내기 어려웠다. 대표님이 첫사랑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배 대표님 그렇게 손보미 씨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왜 이미지세탁을 도와주지 않는 건가요?”육청아는 그 피규어를 훑어보았다. 피규어의 얼굴은 손보미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물론 손보미 씨의 명성이 바닥을 치고 있지만, 대표님이 돕고 싶다면 아직 되돌릴 기회는 있잖아요.”배건후는 시선을 내려 서류를 보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육청아에게 건넸다.“청아 씨가 책임지고 진행하세요. 프로젝트를 따내고 나서 다시 합작에 관해 얘기합시다.”육청아는 서류를 받아들고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배 대표님께서 제 상사와 만나는 그 순간을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녀는 얇은 허리를 흔들거리며 사무실을 나갔고 배건후의 눈동자는 따라서 어둡게 가라앉았다.주말, 해남대학교의 디자인
배건후의 심장은 마치 들끓는 기름에 던져진 것 같았다. 분노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그는 다른 것들은 생각할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똑바로 좀 해요...”도아린의 화사한 웃음이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강재민은 한 손으로 도아린의 턱을 잡고 한 손으로 속눈썹을 들고 있었다.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지만, 입가의 미소는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배건후 씨는 예의를 개나 줘버렸어요? 노크도 안 하시네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두 사람의 거리가 무척 가까운 것이 그를 아주 불쾌하게 했다.배건후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강재민은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그는 도아린의 얼굴을 바로 조절하더니 웃으며 말했다.“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 제대로 붙일 수 있어요.”도아린은 살짝 고개를 들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그에게 맡겼다.강재민은 커플 간의 재미라면서 그녀에게 눈썹을 그려주고 싶었는데 도아린은 거절했다. 그녀의 눈썹은 색깔이 자연스러워서 진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굳이 눈썹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강재민은 진행자가 속눈썹을 붙인 것을 보고 굳이 도아린에게 붙여주겠다고 했다. 도아린은 그 속눈썹이 꽤 자연스러운 것 같아 동의했다.접착제가 꽤 세서 삐뚤게 붙였다가 뗄 때 진짜 속눈썹까지 몇 가닥 떼어져서 아팠다.“눈을 떠서 한번 봐봐요.”강재민은 한 손가락으로 도아린의 턱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자신의 작품에 무척 만족한 것 같았다.“예뻐요. 우리 아린 씨가 제일 예쁘네요.”그는 날카로운 시선이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웃음은 더욱 찬란해졌다.“제 영혼까지 다 빼앗긴 건 같네요.”도아린은 이렇게 돌직구 적인 강재민의 사랑표현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가 외국에 있은 지 오래되어 성격이 많이 명랑하고 개방적이기에 말이 직설적이었다.이런 돌직구는 도아린이 예상치도 못하게 와서 꽂혀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시선을 피했고 아무
배건후는 그 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강재민이 말끝마다 ‘우리 아린 씨’라고 해서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는 두통을 참으면서 도아린의 눈에서 뭔가 읽을 수 있기를 바랬다.흑백이 분명한 도아린의 눈동자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잠시 후, 배건후는 뒤돌아 떠났다.강재민은 차갑게 피식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이런 집안에서 어떻게 2년이나 버텼어요?”배건후는 넓은 곳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니코틴이 폐에서 맴돌았지만, 가슴속의 답답함을 해소하지는 못했다.우정윤이 다가와서 담배를 적게 피우라고 일깨웠다. 요즘 담배를 너무 자주 피워 건강이 걱정되었다.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멀리서 육청아와 함께 대회장으로 들어가는 배지유를 보았다. 그녀는 의족을 착용했지만, 아직 적응하지 못해서 걸을 때 살짝 부축을 받아야 했다.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발을 삐었다고 생각할 뿐 의족이라는 것을 보아내지 못할 것이다.“나는 공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도아린을 벼랑 끝으로 떠미는 것인 줄 몰랐어.”“...”우정윤은 상사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배건후도 설명하지 않았고 담배를 뻑뻑 피우기만 했다.도아린이 떠나고 나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어떻게 깨닫게 되었는가? 어쩌면 비서팀에서 자기들끼리 의논하는 얘기 중에서 깨닫게 되었을 수도 있고, 또 일을 처리하는 강재민의 완전히 반대되는 태도를 보고 깨달았을 수도 있고, 혹은 인터넷에서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언론을 보고 그랬을 수도 있다...그는 눈이 뭔가에 가려져 있었던가?도아린을 곁에 두었을 때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고 잃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배건후는 담배를 다 피우고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조직위원회 자리로 걸어갔다.도아린은 게스트석에 앉아있었는데 관중석을 마주하고 있었다. 강재민은 배건후와 나란히 앉아있었다.강재민은 배건후를 자극한 게 모자랐는지 굳이
스태프는 도아린에게 눈짓을 했고 잠시 후 그녀는 영문을 알아보러 갔다. 배지유는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변슬기를 보다가 시선을 옮겨 서서히 도아린과 눈을 맞추었다.“도아린, 내가 여기 설 줄은 몰랐지?”그녀의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그녀가 변슬기의 작품을 망쳤는데도 대회에 참가했고 수상까지 했다는 의미였고 하나는 그녀의 다리가 일반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너는 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싶겠지만 아쉽게도 너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누가 뭐래도 나는 너보다 잘살고 모든 사람보다 다 잘 살 거야! 화나지?”배지유는 이 말을 물으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얼마나 오만한지 모른다.도아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잠시 후에도 계속 이렇게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나는 남은 인생 다 이렇게 기뻐하면서 살 거야! 우리 오빠가 너 때문에 나를 처벌할 거로 생각했어? 전에 나를 다른 도시로 보낸다고 한 것도 다 너 속인 거야! 오빠는 동생이 나 하나뿐인데 나를 아껴줄 시간도 모자라!”배지유는 득의양양하여 방자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2분 정도 기다리다가 도아린이 그녀에게 상장을 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그래, 지금 개인적인 원한을 이렇게 갚겠다는 거야?”육청아가 그녀의 손을 툭툭 쳤다. 배지유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서 보았는데 쟁반을 든 스태프가 무대 곁으로 돌아가서 조직위원회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게 보였다.누군가가 배지유를 쳐다보았는데 표정이 복잡했다.“무슨 일이죠?”배지유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침착해요. 아래에서 사람들이 영상을 찍고 있어요.”육청아는 관객을 향해 미소를 유지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에요.”“흥, 누군가가 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려는 거겠죠.”배지유는 도아린을 째려보고는 고개를 쭉 빼 들고 조직위원회를 쳐다보았다.그런데 그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관객들도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2등을
무대 아래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서 비웃는 사람도 있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배지유는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비아냥이 섞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도아린! 두고 봐!”배지유는 느릿느릿 무대를 내려왔고 변슬기는 계단 쪽에 와있었다.“높은 곳은 춥기 마련이지.”“닥쳐!”“너는 작품도 없으면서 올라가서 수상의 기쁨을 느끼기에 급급했어. 뻔뻔한 사람은 많이 봤지만, 너처럼 뻔뻔한 애는 처음 봐.”변슬기는 말을 마치고 뒤돌아서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변슬기!”배지유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잠시 생각하다가 육청아가 내려온 다음 제대로 물어보려고 했다.곧 2등과 1등이 올라가서 수상했다.육청아는 배지유를 사람이 없는 곳을 부축해 갔다.“어제까지만 해도 명단에 지유 씨 이름이 있는 걸 봤어요. 오늘에 도아린이 게스트로 참석한 것이니 반드시 도아린이 지웠을 겁니다. 도아린이 이렇게나 뻔뻔한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내가 지운 거야.”배건후의 긴 그림자가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남자는 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눈빛이 차가웠다.“오빠? 왜요! 왜 도아린과 이혼을 했으면서 저를 골탕 먹이는 거예요!”배건후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말투는 살짝 누그러들었지만,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너는 제작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수상하러 올라간 거야.”“저는...”그녀는 육청아를 쳐다보고는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육청아 씨도 괜찮다고 하잖아요!”배건후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스쳤다. 그는 손에 들린 담배로 육청아를 가리켰다.“육청아 씨가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명단에 네가 팀을 위해 한 일까지 적었겠지. 수치 조사라도 말이야.”육청아는 이 말을 듣고 찔린 듯 눈빛이 흔들렸다.배건후가 계속해서 말했다.“그런데 그냥 마지막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것은 삭제할 때 쉽게 하기 위해서야. 육청아 씨는 오늘 심사위원 게스트가 도아린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내가 네 이름을 삭제하지 않았더라도 사람을 시
“닥쳐! 너도 닥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마!”배지유는 분노해서 소리쳤고 원래는 그녀를 보고 있던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그 소리에 빠르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했다.“당장 이 사람들한테 입을 다물라고 해요. 당장...”고개를 돌린 배지유는 육청아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나오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고 통로는 더 비좁아졌다. 배지유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걸음이 어설픈 탓에 누군가에게 밀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뒤에 나오는 학생들은 앞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몰랐고 사람이 붐비면서 배지유의 비명도 재촉하는 소리에 묻혔다.그녀가 혼란스러운 인파에서 끌려 나왔을 때는 의족이 진작에 밟혀서 부러졌다.“대호 오빠? 오빠가 왜...”성대호는 굳은 얼굴을 하고 그녀를 안고 빠르게 병원으로 갔다.고액의 의족은 다시 제작해야 했고 그녀는 몸에 상처가 없었고 단지 놀랐을 뿐이었다.“대호 오빠, 어디에 있었던 거야? 보고 싶었어.”배지유는 또 연약한 모습을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사람의 마음이 약해지게 만들었다.성대호는 담배를 끄고 물을 받아서 그녀에게 건넸다.“다른 사람이랑 합작해서 운영하는 회사에서 인재를 모집하려고 너희 학교로 간 거야. 너의 그 상은...”배지유는 물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그가 시상식에서의 일을 얘기하는 것을 듣고 다급하게 설명했다.“다 도아린이 한 짓이야! 나에게 수모를 주려고 일부러 내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내 이름을 지운 거야!”성대호는 턱에 자란 수염을 만지작거렸고 그 모습은 예전보다 많이 성숙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찬장에 기대있었다.“도아린이 아니야.”“응? 뭐라고?”성대호는 시선을 떨궜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네 오빠야.”배지유는 손을 떨면서 물을 이불에 쏟았다. 그녀는 정말 오빠가 한 일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그가 만약 동의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육청아에게 자신의 이름을 넣지 말라고 하면 될 것이다. 왜 그녀가 헛된 희망으로 기뻐하게 만들고 결
진옥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고 그 눈빛 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내가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게 싫고 민아의 모든 것을 내가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으면 나한테 복수를 했었어야죠. 내 가족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에요. 당신들이 진씨 가문에 가져간 모든 걸 다 되찾아 올 생각이에요.”진옥경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고 원망의 눈빛은 점차 애원의 눈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도아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거 알아요? 당신이 사고가 나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당신 남편은 병원비조차 부담할 생각이 없었어요. 당신의 목숨은 우리 진씨 가문에서 구해온 거예요. 그러니까 악착같이 살아요. 가족에게 못된 짓을 한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이때, 기계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도아린은 급히 벨을 누르고 의사들을 찾아갔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 합니다.”중환자실을 나서자 차화영이 눈물을 훔치며 달려왔다. 진옥경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던 그녀는 도아린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병원비 내러 왔어요.”순식간에 말문이 막힌 차화영은 병실에서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옥경이는 어떻게 됐어?”“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의사 선생님께는 돈이 문제가 아니니 최선을 다해 구해달라고 부탁했어요.”그 말에 안색이 조금 밝아진 차화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진작에 돈을 빌려줬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 결국은 이 모든 게...”도아린의 매서운 눈빛을 눈치챈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차화영은 진옥경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린 일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진옥경이 살해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하자 진범준은 그제야 그녀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딸, 옥경아.”“전 일이 있어서 이만...”“
성대호는 그녀의 반응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할 때, 그가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모든 건 다 나한테 맡겨.”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꾹 누르며 애틋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잘해주는 건 오빠밖에 없어.“일단 밥부터 먹자. 이 일은 친구한테 부탁해 볼게.”그는 도시락을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 안의 반찬들을 본 순간 그녀는 눈빛이 달라졌다.대학 다닐 때 학교 식당에서도 먹지 않았던 반찬들이다. 청경채 볶음, 야채 고기볶음, 고기볶음은 거의 기름진 고기뿐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걸 보면 생활이 이렇게 궁핍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빠의 도움이 없는 서씨 집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어울릴 수가 있겠는가?다행히 주제 파악은 되는 건지 키스는 하지 않았네...배지유는 이런 음식을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 끼도 먹지 않아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달라고 말을 하려는 그때, 그가 창가에 서서 전화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난처한 듯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빛이 어두웠다.어려운 일인가?능력이 안 되는 건 아니고?교통사고일 뿐이잖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여자가 먼저 스스로 뛰어든 것인데...잠시 후, 성대호가 전화를 끊자 그녀는 급히 물었다.“어떻게 됐어?”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앉던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일반적인 부상이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사람이 죽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해. 손보미의 차이긴 하지만 건후는 분명 손보미를 도와 이 일에서 빠져나가게 할 것이고 운전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겠지.”배건후가 손보미는 도와주고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말에 배지유는 도시락을 식탁에 던져버렸다. “우리 오빠는 정말 여자밖에 모른다니까. 손보미 그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
해남은 연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배지유의 오빠니까 여동생을 찾는 이유로 체크인 정보를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성대호를 조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같은 시각, 낡은 아파트 안.핸드폰을 꽉 쥐고 초조하게 소파에 앉아 있던 배지유는 성대호가 돌아오자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됐어?”성대호는 포장해 온 음식 봉투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리지 못했대. 이미 죽었어.”“뭐?”그녀는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온몸이 차가워졌다.눈을 감으면 온통 사람을 치던 장면이었다. 청부살인과 달리 직접 사람을 치어 죽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어젯밤 그녀는 밤새도록 악몽을 꿨다. 그 사람이 현장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은 보이지 못하였지만 차에 치이는 순간, 일그러져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내 잘못이 아니야. 정말 내 탓이 아니라고. 그 여자가 스스로 뛰어든 거야.”배지유는 성대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던 그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어떤 상황이든 배지유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았고 늘 상대방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사람이었다. “알아.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죽었고 넌 어젯밤에 도망쳤어. 그러니 뺑소니 사건으로 처리될 거고 넌 최소한 7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될 거야.”“나 감옥에 가기 싫어. 싫다고.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어.”“정말 죽고 싶은 거야?”그 말에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고는 눈물을 닦았다. 성대호는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아끼고 보호했으며 그녀를 위해 배건후의 반대편에 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하지만 다시 돌아온 그에게서 왠지 모르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성대호는 다정하게 그녀를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육청아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라갔다. “도아린 씨. 계단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배 대표님을 보러 온 사실이 가려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요. 재결합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왜 배 대표님을 보러 병원에 온 건가요? 배 대표님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건가?”도아린은 그저 뒤에 껌딱지가 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그녀의 모습에 육청아는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재민의 경고와 배건후의 태도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도아린 같이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가 이렇게 훌륭한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도아린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남자는 엄청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그녀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감히 반박하지 못하는 걸 보니 맞나 보네요.”육청아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진작에 당신의 속셈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경멸이 가득 찬 얼굴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뒤로 두 걸음 물러선 도아린은 그녀의 손에 도시락통이 들려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이 미친 여자가 설마 이걸로 날 때리는 건 아니겠지?두렵지는 않지만 먼저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당신 진심이요. 당신 마음속에 아직 배 대표님이 있는 거죠?”한편, 주삿바늘을 뽑고 외투를 걸친 채 병실을 나선 배건후는 모퉁이를 돌다가 육청아와 도아린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남 얘기를 엿듣는 것이 부도덕하기는 하지만 듣고 싶었다. 도아린의 진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아니요.”도아린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거짓말하지 말아요.”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육청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배 대표님한테 마음이 없다면서 왜 배 대표님이 추천한 배우를 쓴 거예요? 마음이 있으니까 배 대표님이 다쳤다는 소식에 이리 병원에 온 거 아닌가요?”“난 그 사람이 다친 줄도 몰랐어요. 알았다고 하더라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을
윤명희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녀가 두 사람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듯 모양이다. 선의의 거짓말을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감동했다. 도아린은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정말이에요. 진씨 가문을 노리는 사람은 제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믿어주세요.”그러나 윤명희는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넋을 잃은 채 바닥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안준휘를 힐끗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종이를 들여다보았다.딸의 말처럼 남편한테는 아무 일도 없었고 안민아와 도유준은 경찰에 붙잡혔다. 진옥경은 안준휘에게 문자를 보내 그들의 계획이 틀어졌을 뿐만 아니라 딸과 사위까지 연루되었다고 말했다. 안준휘와 손보미의 채팅 기록을 보지 않아도 그가 진씨 가문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뒤에 있는 채팅 기록들을 보니 윤명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안준휘는 손보미에게 정말 교통사고를 지시했고 진범준을 죽이라고 했다. 진범준이 죽으면 차화영은 정당하게 아들의 유산을 나누어가질 수 있을 테니까. 딸을 끔찍이 아끼는 차화영이기 때문에 돈이 차화영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편, 그날 손보미가 그곳에 나타난 것이 정말 우연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뜻대로 교통사고가 일어났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은 진옥경이 되고 말았다. 안준휘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가 경찰서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윤명희는 남편을 밤새 달랬고 진범준은 겨우 슬픈 마음을 추스르게 되었다. 저녁 식사 전, 도아린은 진옥경을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잠깐만요,”엘리베이터가 막 닫히려고 할 때 한 여자가 이쪽으로 달려왔다.친절하게 열림 버튼을 누른 도아린은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내 후회했다. “도아린 씨.”육청아는 경멸의 가득
“일단 이 사건부터 해결하죠.”그를 보는 경찰관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의심이 들었지만 아주 은밀하게 처리하였으니 절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나름 꽤 침착한 모습이었다. 인쇄된 종이를 들고 위의 내용을 확인하던 그의 얼굴에 점점 공포가 가득 드리웠다. “이건 말도 안 돼...”종이를 움켜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공포가 밀려와 온몸이 저렸고 간신히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위조야. 조작된 게 틀림없다고.”“핸드폰은 기술팀에 감정의뢰를 맡길 겁니다. 채팅 내용 및 통화 시간을 포함하여 모두 다 확인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요.”경찰관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가짜가 진짜로 될 수도 없지만 진짜가 가짜로 될 수도 없습니다.”안준휘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분명 채팅 기록을 다 지웠는데. 왜 손보미와의 채팅 내용이 아직도 핸드폰에 남아있단 말인가?“그럴 리가 없어요.”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지만 핸드폰은 이미 기술팀으로 보내졌다. 손보미와의 대화 내용이 궁금했던 윤명희는 책상 위에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보면 볼수록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도아린이 아니었다면 당신 딸이 도유준에게 그런 모욕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 모든 건 도아린의 계획이에요. 안민아가 자신보다 더 잘난 것이 못마땅하여 일부러 안민아를 망친 거라고요. 그런데 아직도 도아린이 좋은 사람으로 보여요?][도아린 그 계집애를 강씨 가문으로 데려오기만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망신을 당하게 할 거예요. 강씨 가문에게 빌붙을 생각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혈연관계가 없는 남동생과 관계를 가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하겠어요.][도아린만 제거하면 우리 안씨 가문에게 다리를 놓아줄 거라고 했지? 약속 꼭 지켜.]“안준휘, 이 망할 인간.”윤명희는 어금니를 깨물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마다 손보미가 도아린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힘이 담기조차 힘
도아린은 피식 웃었다.“만약 있다면요? 그동안 진씨 가문에서 가져간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약속해요. 이제부터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고도 약속해요.”병원비?아내의 병원비를 자신이 부담해야지 남한테 떠맡기는 게 무슨 경우인가?진옥경의 병원비뿐만 아니라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해친 대가도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다.입술을 덜덜 떨던 그가 독기가 가득 찬 눈을 들고 입을 열었다.“약속하지.사적으로 합의가 된다면 경찰들도 굳이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내 안준휘는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털털하게 의자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도아린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당당한 그의 모습에 윤명희는 내심 걱정되어 도아린의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도아린은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잠들기 전, 그녀는 서대은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날이 밝으면 안준휘를 찾아가 결판을 낼 생각이었다.그러나 안준휘가 지금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으니 그녀 또한 봐줄 생각이 없다. 경찰은 통화 기록과 채팅 기록을 확인해 보았지만 손보미와 관련된 기록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동료에게 넘겼고 동료 경찰관이 다시 한번 조사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도아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핸드폰에는 손보미 씨와 관련된 기록이 없습니다.”안준휘는 로또라도 당첨된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 “교통사고는 합의를 한다고 약속했지만 네가 날 모욕한 일은 끝까지 추궁할 거야.”도아린은 침착하고 차분한 얼굴로 독기가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 “삭제한 핸드폰 기록도 복구가 될 수 있다는 거 모르고 있나 봐요?”안준휘 뿐만 아니라 두 경찰관들도 모르고 있었다. 혐의를 피하기 위해 도아린은 핸드폰을 건드리지 않고 경찰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두 경찰은 깜짝 놀란 눈치였다. 이 프로그
도아린은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났다. 아무리 진옥경의 병세가 심각하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한밤중에 병원에 달려갈 일은 없을 것이다. 병원에는 진옥경의 남편인 안준휘가 있으니까...옷을 입고 거실로 내려오니 그들이 병실을 나선 뒤 안준휘도 병원을 떠났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병원 측에서는 환자의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자 병원비를 지불한 진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경찰서는 엄마랑 같이 가.”윤명희는 가방을 챙기고 도아린의 손을 잡았다.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윤명희가 말을 이어갔다.“안준휘가 경찰서에 가서 난리를 피운 모양이야. 사고 난 차가...”말끝을 흐리며 진경수를 쳐다보는데 늘 장난기 가득했던 그의 얼굴도 약간 심각해 보였다. “손보미 차예요?”담담하게 묻는 도아린을 향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준휘는 가해자가 도아린과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가해자의 원래 목적은 도아린이었고 진옥경은 그저 재수 없게 연루되었을 뿐이라고 이 사건은 반드시 끝까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잠시 후, 경찰서로 달려온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준휘가 소란을 피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왜 두 사람 사이의 원한 때문에 내 아내가 이런 화를 입어야 하는 겁니까?”“진정하시죠. 당신이 말한 게 사실인지는 저희도 확인해 봐야 합니다.”“인터넷에 지금 난리인데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배건후가 이혼한 후에 손보미와 약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아린과 다시 재결합을 원하고 있으니 손보미로서는 당연히 달갑지가 않은 거죠. 손보미가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도아린이라고요. 당신들이 어떻게 조사를 하든 간에 내 아내의 병원비는 반드시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겁니다.”“손보미가 치려고 했던 사람이 저인 게 확실해요?”이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재킷에 검은색 긴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훤칠하고 날씬해 보였다. 그녀의 눈빛에 압박감
“동생한테 왜 이렇게 거칠게 굴어?”“대호 오빠, 우리 오빠가 날 자수하러 끌고 갈 거래. 안 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쉿.”성대호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녀를 토닥이고는 그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사람을 친 차는 빨간색 람보르기니야. 그 차는 손보미 씨 차 아니야? 네가 아무리 손보미 씨의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유한테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을 해?”배지유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동아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성대호의 허리를 꼭 감싸안았다.“그러니까요. 손보미를 찾아가요.”배건후의 눈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배지유가 사람을 쳤다고 알린 것도 성대호였고 이제 와서 차 주인이 손보미라고 하는 것도 성대호였다. 만약 미리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성대호에게 말려들었을 것이다.“너도 알다시피 차량을 빌린 사람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운전자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아니. 아니지.”성대호는 고개를 저으며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현장 CCTV 확인해 봤어?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야? 배건후, 난 늘 네가 똑똑하고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혼하고 나서부터는 왜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 같지? 그저 만만한 게 지유니까 지유만 괴롭히는 거야?”배건후는 무뚝뚝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이간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여동생의 갈등을 증폭시켜 도아린과 화해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 싶어 하는 것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든 일단 경찰서는 다녀와야 해.”배건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그런데 이때, 눈빛이 바뀌던 성대호가 갑자기 배지유에게 손을 떼고는 핸드폰을 낚아채려고 하였다. 그 바람에 배지유는 비틀거리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한걸음 뒤로 물러난 배건후는 몸을 돌려 성대호의 손길을 피하고는 그녀의 팔을 잡아 들어 올려 차 문에 기대게 하였다. 그 순간, 성대호가 갑자기 그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팔꿈치로 성대호를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