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은 밤새 잠을 설쳤다. 몇 번을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심지어 약을 먹었지만 위장은 여전히 불편했다. 몸이 이미 윤슬이 해준 음식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별것도 아닌데, 괜히... 속이 더 쓰리네.’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강현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잠깐 거실로 나가려던 순간, 맞은편 문이 딸깍 열리며 윤슬이 나왔다.두 사람은 딱 마주쳤다.“뭐 하게?”강현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윤슬은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아침 준비.”말을 마치자마자 살짝 절뚝이며 주방 쪽으로
윤슬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강현을 똑바로 바라봤다. 손끝엔 보이지 않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하... 부강현, 네가 이렇게까지 비정한 줄은 몰랐다. 내가 널 너무 과대평가했나 봐.’그는 자기 연인이 편하게 밥 먹도록 하기 위해 온몸이 다친 아내를 당연한 듯 주방으로 내몰았다.‘사람이 맞나 싶다. 아니지, 사람인 척하는 거겠지.’“배달도 되고, 레스토랑도 넘쳐나. 돈 없어서 직접 해 먹는 건 아니잖아?”윤슬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강현의 시선이 그녀의 발에 머물다가 조용히 핸드폰 쪽으로 내려갔다.바로 그때, 신아가 나섰
신아는 눈물을 살짝 떨구며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그 모습에 강현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너 때문 아니야. 울지 마, 알겠지?”말하면서 부드러운 손길로 신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그리고 그녀를 거실 소파로 이끌고 조심스레 앉힌 뒤,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목소리는 유난히 낮고 다정했다. 마치 상처 입은 아이를 달래듯이.‘저런 목소리... 저 사람은 나한테 단 한 번도 쓴 적 없었지.’주방에 있던 윤슬은 밖에 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잠시 조리하던 손을 멈췄다.‘하지만 괜찮아. 이제 그 다정함, 부럽지도
발등은 이미 타들어 갈 듯한 통증이었고, 등은 벽에 세게 부딪혔다.그리고 바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허리를 또... 이번엔 더 아프다...’“윽...”윤슬도 끝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음처럼 울음을 터뜨렸다.‘내가 진짜 뭘 잘못했지? 진짜... 내가 뭘 그렇게...’거실로 돌아간 강현은 신아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많이 아파? 어디를 얼마나 베인 거야?”손을 덜덜 떨던 신아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피... 너무 많이 나... 나 피 보면 무서운 거 알잖아...”강현은 떨리는 손으로 의약 상자를 들춰
욕실 문 앞. 물기 묻은 강현의 셔츠는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얼굴엔 물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신아는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 윤슬이는...?”강현은 턱을 굳게 다물고 씹어 삼키듯 대답했다.“괜찮아, 옷부터 갈아입고 올게.”남자의 목소리엔 거칠게 눌러 담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신아는 조심스레 욕실 문손잡이에 손을 얹었다.“내가 가서...”그러자 강현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아당기며 문을 노려봤다.“가지 마. 저 미친X, 또 물 쏠 수도 있어.”“아까도, 날 보자마자 욕하고 물을
‘그래, 이 방엔 소운슬의 냄새가 없네. 역시 이 남자... 나만 생각한 거야.’그녀는 조용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술이 닿았고, 손끝은 그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강현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신아를 안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이럴 땐... 예전 같았으면, 날 품 안으로 끌어당겼을 텐데...’신아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약간의 불안이 가슴 어딘가에 맺혔다.강현의 눈앞엔 지금 신아가 있었지만, 머릿속엔 다른 누군가가 떠올라 있었다. ‘왜 하필, 소윤슬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지.’강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윤슬의 발을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물집은 이미 다 터져 있었고, 피부는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이렇게 되도록 놔두면 안 되죠. 감염되면 진짜 위험해요. 몸 좀 아끼세요, 환자분.”윤슬은 고개를 숙였다. 말없이, 그저 피투성이가 된 자기 발등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낄 마음이 없는 게 아니야.’‘누군가, 날 그렇게 두지 않기로 작정했을 뿐이니까.’의사는 다시 진료를 이어갔다. 윤슬의 허리 아래쪽, 꼬리뼈 주변까지 퍼진 멍 자국에 눈길이 머물렀지만, 팔에도 자잘한 상처들이 있었다.
‘사실 내가 빼앗는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이었지만 말이야.’ 그 말에 강현의 눈빛이 더 매서워졌다.“처음부터 소윤슬이 다 빼앗은 거였잖아! 네가... 네가 내 옆에 있어야 했어.” “신아야, 내 아내 자리도, 집도, 모든 게 다... 네 것이었어야 했어!”남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속에 쌓인 감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신아는 고개를 숙인 채 손끝을 움켜쥐었다.입술은 떨리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주 작게, 확실하게 웃고 있었다.‘그래... 이제 거의 다 왔어. 소윤슬은 그 집에서 곧 사라질 거야.’ ‘소윤슬이 더
‘대표님... 분명 사모님을 신경 쓰시잖아. 그런데 왜 또 한신아 씨랑 같이 있고, 집에까지 들이신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이지?’ 창호는 강현의 이중적인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영양식을 주문해 뒀지만, 한 가지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그것은 바로 부씨 가문에서 보낸 거라고만 할 뿐, 강현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 것.‘괜히 부 대표님 이름 꺼냈다가는 사모님이 통째로 버릴 수도 있으니까.’ 창호는 그런 불안함에 말끝을 흐렸다. 병원.윤슬은 조용히 병실 식탁에 놓인 영양식을 한 숟갈 떠먹었다. ‘
신아는 슬그머니 웃으며 자기 매니저 향해 말했다. “짐은 저쪽 방으로 옮겨주세요. 옷장은 그 안쪽에 있을 거예요.” 비록 안방은 아니지만, 윤슬을 그 방에서 내쫓은 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소윤슬은 이제 이 집 사람이 아니니까.’ 그때, 강현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윤슬의 방에서 뭔가를 정리하는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강현이 조용히 물었고, 신아는 웃으며 말했다. “매니저가 내 짐 정리 좀 도와주는 거야. 방이 좀 좁아서.” 그
“국 어때? 맛있지?” 신아가 다시 한번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사실, 이건 신아가 직접 끓인 게 아니고, 단골 레스토랑에 부탁해 포장해 온 국이었다. ‘이 정도면 강현이 입맛쯤은 잡을 수 있겠지.’ “맛있어. 신아 음식 솜씨 좋은데?” 강현은 숟가락을 들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기름기 많고, 국물도 진해서 금방 물릴 맛이네... 딱 공장에서 뽑아낸 듯한 맛.’ 이런 국과 반대로, 윤슬이 끓여준 국은 언제나 깔끔했다. 입에 부담 없고, 먹고 나면 속도 편했다.
비록 실시간 검색어는 빠르게 내려갔지만, 부씨 가문의 본가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부태기 회장의 전화가 걸려 왔다. 강현은 출근길 운전 중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귀가 얼얼해질 정도의 고성이 쏟아졌다. [윤슬이 그 아이, 그렇게 좋은 애를 두고 네가 사람 새X냐?! 2년 동안 그 애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진심으로 살핀 적은 있냐?]‘2년의 진심?’ 강현은 핸들을 꼭 쥐며 입술을 다물었다. ‘매일 집밥 차려줬다는 거? 빨래는 세탁기, 청소는 로봇이 했고... 내가 소윤슬을 먹여 살
강현은 신아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신아의 어깨끈이 흘러내렸다. 강현의 눈에 들어온 건, 옅게 드러난 쇄골 아래로 이어진 아찔한 여자의 곡선이며, 거기엔 분명 어젯밤 자신이 남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신아가 입고 있는 그 옷도... 너무나 익숙했다. 바로 윤슬의 옷이었다. ‘마치 소윤슬 앞에서 바람피우는 기분이야.’ 강현은 손끝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고, 급히 시선을 돌려버렸다. “강현아... 내 왼손 좀 잡아줄래? 세수 좀 하고 싶어서...” 신아가 고개를 살짝
그 생각에 닿자, 윤슬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그냥 찢어서 태워버릴걸... 왜 그걸 고이 모셔놨냐고, 내가.’ 하지만 곧, 그 일기장이 서랍 안에 자물쇠로 잠겨 있다는 게 떠올랐다. ‘다행히... 신아가 열 순 없겠지.’ 마음을 다시 다잡고 핸드폰을 끄려던 순간, 새로운 푸시 알림 하나가 화면 위로 튀어 올랐다. 제목은 눈에 띄게 굵은 글씨로 떠 있었다. [최고의 명문가인 부씨 가문의 황태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런웨이에 깜짝 등장!!] 윤슬의 시선이 제목에서 멈췄다. ‘부씨 가문의 황태자라면
“그럼 어떡해... 내 신분증도 다 가방에 있는데, 다른 호텔도 못 가...” 신아가 망연하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강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신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좀... 나 때문에 또 윤슬이랑 싸우는 건 싫어...” “소윤슬이 뭔 상관이야. 그 집은 내 집이야. 누굴 들이든 내 마음이지.” 강현의 말투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신아는 그 말을 듣고,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결국 강현이 이끄는 대로 따라나섰다. 엘
“오늘 밤 쇼와 관련해서 손실 생긴다면, 직접 제 비서 이창호 씨에게 연락해 주십시오.”강현이 단호하게 말했다.박승무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이래서 난 부강현 대표 스타일이 좋아. 칼같이, 시원시원하게.’그는 바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손해는 전혀 없습니다. 원래 저희는 돌발상황을 감안해야 하기도 하고요.신아 씨만 회복된다면, 쇼 무대는 언제든 그대로 열려 있을 겁니다.”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신아를 부축하려 다가갔다.하지만 신아는 또다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고, 강현은
질투심이 미친 듯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신아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결심했다.병실 안.윤슬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강현이 마지막에 했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은행 앱을 열었다.새로 도착한 알림 하나. 강현이 보낸 송금 메시지였다.3천만 원. 메모엔 ‘수술비’라고 적혀 있었다.윤슬은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다시 돌려줬다. ‘지금 안 돌려주면, 나중에 이혼할 때 다시 토해내라고 하겠지. 부강현은 그런 놈이니까.’...패션쇼장 1열.강현은 윤슬이 송금을 거절한 걸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