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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Penulis: 구월안호
last update Terakhir Diperbarui: 2024-12-16 17:45:45
아윤은 대낮에, 그것도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도운이 이렇게 사적인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윤도 도운이 자신을 걱정해서 이러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운의 행동은 너무나도 뜬금없고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아윤은 걸음을 옮겨야 할지, 약을 받아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오랜 침묵 끝에 아윤의 얼굴은 불타오르듯 붉게 달아올랐다. 그 붉은 기운은 얼굴에서 시작해 귓불 뒤까지 퍼져갔다.

도운은 그녀의 머뭇거림을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평범한 약이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그의 말에 아윤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재빨리 손을 뻗어 약을 그의 손에서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입술을 뗐다.

“저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도운은 손을 거두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다녀와.”

아윤은 손에 들린 약을 마치 뜨거운 감자라도 된 듯 쥔 채 서 있었다. 버릴 수도, 그렇다고 그냥 들고 있자니 어색하기만 했다.

도운이 병실로 돌아갔을 때, 시아는 부모님과 함께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아는 어릴 적부터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병에 걸려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환자복을 입었으면서도 여전히 단정하게 꾸민 상태였다.

그녀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해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시아와 비교하면, 아윤은 늘 조용하고 존재감이 미미했다.

도운은 시아의 이복동생인 아윤의 존재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윤이 시아와는 달리 최씨 집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생아라는 것까지...

도운이 시아와 약혼했던 날, 그는 최씨 저택을 방문했다. 그때 아윤은 아직 어렸고, 멀찌감치 서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그저 먼 발치에서 조용히 있었다.

그 이후 그도 몇 번 더 아윤을 마주쳤지만, 아윤은 항상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시아가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윤은 집안에서 투명 인간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도운의 기억 속 아윤은 언제나 가냘프고 창백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도운의 손이 천천히 옆으로 내려오더니 살짝 주먹을 쥐었다.

‘단지 하얗기만 한 게 아니었지... 너무나 연약해서, 내가 조금만 손을 대도 쉽게 부스러질 것 같았어.’

‘마치 가지 끝에 핀 꽃처럼, 손가락으로 살짝만 눌러도 금세 즙이 흘러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

...

아윤은 밤이 되어 이진주와 아버지 최현식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문자는 태오로부터 온 것이었다.

[나 HP 그룹에 입사했어.]

아윤은 문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곧 미소는 사라지고, 그녀는 핸드폰을 손바닥에 쥔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때 이진주가 문을 두드렸다.

문에 기대어 있던 아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긴장했다. 핸드폰을 꼭 쥔 채 문쪽을 바라보았다.

이진주는 문밖에서 물었다.

“아윤아, 아직 안 자니?”

아윤은 눈물을 닦아내며 얼른 대답했다.

“곧 잘게요.”

그리고 황급히 손을 뻗어 방 안의 불을 껐다.

이진주는 방 안의 불이 꺼진 것을 보고 나서야 문에서 물러났다.

그 후 며칠 동안, 아윤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사이 도운과는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고, 학교에서 태오와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친구인 민지의 말로는, 태오가 요즘 회사 일로 바빠 등교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윤은 속으로 크게 안도했다.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아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아르바이트하는 술집으로 향했다.

유니폼을 갈아입던 아윤에게 팀장이 말했다.

“룸에서 주문 들어왔어. 술 좀 가져다드려.”

아윤은 술을 챙겨 룸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주문하신 술입니다.”

방 안에서 옆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도운이 순간 고개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든 순간, 아윤의 얼굴과 마주쳤다.

“아윤아?!”

도운이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윤은 술집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상의는 가슴을 감싼 디자인의 탱크톱 위에 허리를 강조한 짧은 재킷, 하의는 몸에 딱 붙는 미니스커트였다.

그녀의 곧고 가는 다리는 검은 스타킹에 감싸여 발끝까지 이어졌다. 머리는 단정히 올려 묶였고, 아윤의 얼굴빛은 뽀얗고 생기 있었다.

룸 안에는 도윤이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윤을 훑어보며 마치 맹수가 최상의 먹잇감을 발견하고 노리는 듯 흥미로운 눈빛을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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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주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절박하게 말했다. “도운아, 너는 우리 시아를 그렇게 사랑하면서 정말로 시아가 죽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기만 할 거야?” 시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을 보지 못하게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도운은 시아의 이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속에 쌓인 분노와 울분을 억누르며 한참을 침묵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술 과정도 길고 시아의 일이긴 하지만, 아윤이의 안전 또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반드시 아윤이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할 겁니다.” 시아는 사실 시험관 시술을 더 희망했다. 그러나 도운이 이 제안을 거절하자, 시아는 도운이 자신을 책망하는 것처럼 느꼈다. 시아의 눈빛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도운은 시아의 감정적인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아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윤아, 네가 선택할 수 있어. 물론 거절할 권리도 있어.” 이진주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아윤을 올려다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최현식은 더 나이 든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뒤에서 조용히 아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아윤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정말로 아윤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엄청난 긴장으로 아윤의 몸은 떨려오고 두 주먹은 꼭 쥔 상태였다. 도운은 침착하게 기다리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5분가량 시간이 흘렀다. 아윤은 몸을 움직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말 제가 선택해야 하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단지 아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진주의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하며 딸을 살릴 모든 희망을 아윤에게 걸었다. 아윤의 목소리는 떨렸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꼈다. 시아의 간절한 눈빛과 최현식의 애타는 표정이 아윤을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 뒤집힌 운명   제39화

    병실 안은 죽음 같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의사와 도운, 그리고 이진주와 최현식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시아의 침상을 둘러서 있었다. 침대에 누운 시아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의사가 입을 열었다. “이번 위기는 겨우 넘겼지만, 이는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환자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른 시일 내에 골수 이식을 하거나 제대혈을 채취해야 합니다.” 도운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보세요.” 의사는 더 머물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문밖에서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아윤의 목소리가 병실에 울리자, 도운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아윤은 잠깐 도운의 눈을 마주쳤지만 병실 안 누구도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무의식적으로 발을 옮겼다. 하지만 시아의 침대 옆에 다가선 순간, 이진주가 갑자기 아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진주는 절규하듯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윤아!! 네가 언니를 구해줘야 해!” 이진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도운은 그런 이진주의 행동을 냉정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주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아윤의 옷을 붙잡고 간청했다. “너희 언니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시험관 시술이 고통스럽다는 걸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침대 위의 시아가 소리쳤다. “엄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아윤이는 내 대체품이 아니에요. 이렇게 대하면 안 돼요!” 하지만 이진주는 눈물을 흘리며 아윤의 옷자락을 더 세게 붙잡았다. “의사 말로는, 아기가 생기기만 하면 그 탯줄의 제대혈로도 가능하대. 아윤아, 제발 부탁이야!” 이진주의 손에 흔들리는 아윤의 몸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천 조각 같았다. 아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시아는 계속 외쳤다. “엄마!

  • 뒤집힌 운명   제38화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아윤은 병원에서 조용히 요양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아는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몸 상태가 점차 안정되어 갔다. 시아의 병실은 부모님의 사랑과 도운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따뜻하고 화목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어느 날 시아는 문득 떠올린 듯 물었다. “엄마, 아빠, 아윤이는요?” 이진주와 최현식은 딸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아윤을 떠올렸다. 이진주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윤이는 괜찮아. 너만 그냥 조용히 요양하면 돼.” 하지만 시아는 부모님이 계속 자신 곁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빠, 엄마, 아윤이 좀 더 챙겨주세요. 만약 이번에 아윤이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요.” 도운은 시아의 말을 들었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간병인에게 병실 공기청정기를 켜라고 지시했다. 최현식은 환한 얼굴로 시아에게 말했다. “알겠다. 이따가 네 엄마랑 같이 갈게.” 이진주도 시아를 달래며 말했다.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윤이는 괜찮아.” 시아는 부모님을 보며 다그쳤다. “그러면 지금 가세요.” 이진주와 최현식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그녀의 성화에 병실을 떠났다. 부모님이 떠난 뒤 시아는 도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우리 부모님더러 아윤이에게 가보라고 말하지 않았어? 부모님이 계속 나한테만 신경 쓰니까 아윤이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겠어.” 도운은 간병인에게 마지막으로 지시를 한 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병상 앞에 앉았다.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아윤이는 네 동생이잖아.” 시아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부족한 것이 없었다. 지금처럼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 했다. 도운은 부드럽게 그녀의 눈높이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너부터 네 건강을 잘 챙겨야지. 다른 사람은 그다음이야.” 시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자기까지 왜 이래.” 그녀는

  • 뒤집힌 운명   제37화

    도운은 이마를 찌푸린 채 손으로 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알았지?” 시아는 그의 말을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운은 손을 그녀의 머리 위에 얹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때 도운이 최현식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아윤이는 저 뒤에 있어요.” 최현식은 그제야 뒤쪽에 누워 있는 아윤을 바라보며 반응했다. 최현식도 곧 아윤에게 다가가 딸의 상태를 살폈지만, 시아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도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시아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물었다. “도운아, 이번에 아윤이가 나에게 수혈해 준 거야?” 도운은 아윤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응. 네 혈액형이 특이해서 다른 피를 구할 수 없었어.” 시아는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윤이 고생했네.” 도운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조금 자둬.”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시아는 병실로 옮겨졌고, 아윤은 여전히 이동식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최현식과 이진주는 아윤에게 짧게 관심을 보였지만, 곧 두 사람의 모든 관심은 시아에게로 쏠렸다. 아윤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그녀의 속눈썹 아래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실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도운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아윤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시선을 떼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속눈썹 아래로 드리운 창백함도 눈에 들어왔다. 최현식과 이진주의 마음은 이미 아윤에게서 떠나 시아에게로 가 있었다. 시아가 방금 수술실에서 나온 만큼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도운을 바라보았다. 도운은 그들 쪽으로 걸어가 조용히 말했다. “시아는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위험은 넘겼으니 당분간은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이진주가 안도하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 먼저 시아를 보러 가요.” 도운은 아무 말도

  • 뒤집힌 운명   제36화

    아윤은 도운의 말을 듣고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도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도운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여전히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잠시 침묵 끝에 그는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봐.” 이번에는 아윤도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또다시 간호사에게 이끌려 앞으로 갔다. 이진주는 수술실 문 앞에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최현식은 아내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가득했다. 도운 역시 시아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한 사람, 즉 아윤의 몸을 희생해서 시아를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때문에 도운은 아윤에게 거듭 잘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아의 부모들, 특히 아윤의 아버지이기도 한 최현식은 그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도운은 그 점이 이상하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 아윤은 간호사에게 이끌려 검사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물었다. “평소 빈혈 있으신가요?” 아윤은 자신도 몰랐다. 그녀는 몸 상태를 신경 써 본 적이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일단 검사부터 진행할게요.” 피를 뽑아 검사하는 동안, 아윤은 주삿바늘이 자기 정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고통에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간호사가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아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를 마친 뒤, 아윤은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윤은 침대에 누워 있는 시아를 보았다. 시아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입술에도 혈색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아윤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아윤은 별다른 말 없이 지정된 침대에 드러누워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언니가 무사하길...’ 아윤은 얼마나 많은 양의 피를 시아에게 수혈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점점 머리

  • 뒤집힌 운명   제35화

    “위험하지 않을까요?” “일단 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도운의 표정은 한층 더 차갑고 어두워졌다. 그때, 최현식과 이진주가 허겁지겁 병원에 도착했다. 이진주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이미 의사와 도운의 대화를 들은 듯 그녀는 곧장 의사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선생님, 시아 동생도 곧 도착할 겁니다. 동생이 오면 바로 수혈을 시작해주세요.” 최현식도 말했다. “그래요. 시아 동생이 오는 중이에요.” 도운은 짧게 물었다. “아윤이와 상의는 해보셨습니까?” 이진주는 즉시 답했다. “그럴 필요 없지. 아윤이도 분명 불쌍한 제 언니에게 수혈해줄 거야.” 최현식도 거들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시아를 구하는 게 우선이야. 위험을 감수하는 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낫지.”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다만 이번 수혈은 상당한 양의 혈액이 필요할 겁니다.” 이진주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단 수혈부터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합시다.” 도운은 최현식 부부의 태도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마침내 아윤이 병원에 도착했다. 멀리서 이진주와 최현식, 그리고 도운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급히 달려가면서 물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는 괜찮은 거죠?” 이진주는 아윤을 보자마자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울먹이며 말했다. “아윤아, 네 언니가 지금 수혈이 필요해. 혈액이 부족해서 네 도움이 절실해!” 아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의사가 아윤에게 물었다. “수혈에 동의하시겠습니까? 필요한 혈액량이 많아 몸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아윤은 잠시 멈칫하고,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도운이 나지막이 말했다. “잘 생각해봐.” 아윤은 약간의 망설임 끝에 단호히 대답했다. “제가 할게요.” 도운은 그녀가 이렇게 빠르게 대답할 줄 몰랐다. 그의 얼굴에는 아윤에 대한 약간의 염려가 드러났다.

  • 뒤집힌 운명   제34화

    아윤은 문득 생각에 잠겼다. ‘도운 오빠가 나에게 보이는 이 모든 관심은 결국 시아 언니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거겠지. 그래서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거고...’ ‘아마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주변까지 사랑하게 된다는 걸까...’“알겠어요... 형... 오빠, 감사해요. 이제 이해했어요...” 아윤은 ‘형부’라는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단 두 글자였지만, 끝내 입술을 떼지 못했다. 도운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윤이가 선택한 호칭을 묵인한 셈이었고, 방금 그녀가 보였던 행동에 대해서도 그저 철없는 아이로 생각했다. 결국 아윤은 태오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대신 태오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설령 태오가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더 신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부모님이 쏟아온 수년간의 정성과 노력까지 저버릴 수는 없을 텐데...’그리고 다음 날, 태오의 부모님이 경찰서를 찾아간 뒤 태오는 마침내 풀려났다. 아윤은 그날 경찰서에 가지 않고 학교에 머물렀다. 태오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묻지 않았으며, 태오 역시 그녀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그 후 며칠 동안 아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학교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시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아는 아윤에게 태오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고, 아윤은 이미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리고 전화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언니와 도운 오빠에게 정말 감사해요.” [고맙긴, 그런 말 하지 마.]시아는 전화를 끊었지만, 어딘지 모를 막막한 기운이 가슴 속에 잔잔히 깔렸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마음 한켠을 짓누르는 듯했다. 한편, 간병인은 VIP 병실 내 간이주방에서 대추차를 준비하던 중, 병실 안에서 들려온 낯선 소리에 놀라 급히 뛰쳐나왔다. 그리고 간

  • 뒤집힌 운명   제33화

    도운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아윤이 자기 입술에 닿도록 두었다. 아윤이 갈팡질팡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도운이 낮게 물었다. “지금 나를 유혹하는 거야?” 아윤은 공기 중 산소가 희박해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좁아지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윤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저... 감사...” 도운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그 친구를 돕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야?” 아윤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안감과 긴장감으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도운이 다시 물었다. “만약 지금 그 친구가 너의 이런 모습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 것 같아?” 그 순간, 그의 말은 아윤의 마음속 마지막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녀는 겨우 유지하던 표정을 놓쳐버렸다. 도운은 아윤을 내려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람을 유혹하려고 하다니.” 아윤은 크게 눈을 뜨며 한발 물러섰다. 숨 가쁘게 가슴이 오르내리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가 오빠와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이를 빨리 가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요.” 도운은 얼굴에 미묘한 냉기를 띠며 낮게 말했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자존심과 이성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해. 네 아버지는 너에게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의 말은 아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바닥에 내던지게 했다. 그녀는 여태껏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최현식은 늘 멀찍이서 아윤을 바라보는 존재일 뿐, 남자들 앞에서 딸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늘이 아윤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운은 그녀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 뒤집힌 운명   제32화

    도운은 아윤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을 때, 아윤이 조심스럽게 먼저 말했다. “제가 직접 갈게요.” 도운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대답했다. [주소를 보낼게.] 아윤은 팽팽하게 당겨졌던 마음의 끈이 조금씩 느슨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건넸다.“네, 알겠습니다.” 도운이 전화를 먼저 끊었고, 1분 후 아윤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메시지에는 주소가 하나 적혀 있었다. [청운힐스, 별빛 궁전.]아윤은 핸드폰을 꽉 쥔 채로 화면을 응시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는 택시에 몸을 싣고 ‘청운힐스’라는 이름의 고급 전원주택단지를 향했다.택시가 청운힐스 입구에 다다르자, 아윤은 이 단지가 단순히 크다는 수준을 넘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택시가 안으로 들어가려면 엄격한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안으로 들어가자 단지 한가운데로 호수가 보이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윤은 왜 많은 사람이 언니 시아가 좋은 결혼을 했다고 말했는지 깨달았다. 한씨 가문은 결코 평범한 집안이 아니었다. 최씨 집안도 나쁘지 않았지만, 한씨 가문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택시는 천천히 ‘별빛 궁전’이라 불리는 웅장한 단독주택의 정문 앞에 멈춰 섰다.아윤은 차에서 내려 금색 실로 조각된 나무 대문으로 걸어갔고, ‘별빛 궁전’의 화려한 거실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도운은 비서와 함께 바 테이블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윤은 입구에 서서 들어가야 할지 망설였다. 이곳은 그녀가 처음 와보는 낯선 곳이었다. 도운은 문쪽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비서와의 대화를 멈췄다. 그는 입구 쪽을 바라보고 아윤을 발견하자, 자신이 그녀를 이곳으로 부른 사실을 떠올렸다. 아윤은 도운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르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서로 꼭 맞잡았다. 그녀의 태도는 어딘가 긴장된 모습이었다. 도운은 비서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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