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김옥화는 임윤이 준 돈을 가지고 한동안 누렸다.부잣집 부인을 몇 년 하더니, 검소라는 단어를 벌써 잊은 지 오래었다.돈을 헤프게 쓰다가 몇 달도 안 되어 그만 바닥이 나버렸다.결국 김옥화는 좁은 셋방에 틀어박혀 그럭저럭 살아갔다고 한다....에필로그난 강이를 데리고 김옥화가 사는 낡은 셋방에 찾아갔다.주택단지의 외벽은 얼룩덜룩하고, 쓰레기도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건물 안의 복도는 비좁고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어서 발 디딜 곳도 찾기 어려웠다.쿵쿵쿵-몇 번의 노크 소리 후에, 김옥화가 욕설을 퍼부으며 문을 열었다.날 본 순간, 그녀는 마치 불붙은 폭탄처럼, 미친 듯이 나에게 달려들었다.난 재빠르게 그녀를 제압했다. 그러자 김옥화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엄마?”망설임과 기쁨이 담긴 강이의 목소리가 이때 들려왔다.김옥화는 그제야 내 옆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김옥화, 본 적은 없어도 기억하고 있을 거 아니야.”나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이 새끼를 왜 데려온 거야? 네 이년이 내 모든 걸 망쳤어! 넌 죽어야 해!”김옥화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날 향해 소리쳤다.난 그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를 잡고 있는 손에 더 힘을 줬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강이는 이 장면에 놀라서 뒤로 숨으며 내 옷자락을 꽉 잡았다.내가 힘을 풀고 뒤로 살짝 밀자, 김옥화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난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쳐다보았다.“강이가 엄마 보겠다고 해서 데려온 거야. 안 그럼 정말 여기에 데려오고 싶지 않다.”난 그녀를 경시하며 말했다.“너 같은 엄마는 아이의 트라우마밖에 안 될 테니까.”내가 강이더러 아래층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자, 강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버렸다.김옥화는 바닥에 앉은 채, 피식 웃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광기와 원망으로 가득했다.“심수진, 너 그거 알아? 임준의 교
“사모님... 사모님, 다시는 안 그럴게요!”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이 여자는 나이가 좀 들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그녀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필사적으로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애원했다.“제발... 제가 이렇게 빌게요! 우리 집, 저 한 사람만 믿고 살아요! 제발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평온한 내 반응과 달리, 옆에 있는 형수님은 아주 조급해했다.“수진아! 주연 이모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닐 거야! 우리 집에서 일할 땐, 이런 실수한 적 없었어. 그냥 잠깐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을 거야!”조급해하는 형수님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그 뜻은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는 건가?전에 일이 바쁜 데다, 아들도 마침 고등학교의 제일 중요한 시기라서, 형수의 말을 듣고 그녀가 소개해 준 도우미를 채용했다.시용기간에는 한 달에 600만 원이고, 시용기간이 끝나면 한 달에 천만 원을 주기로 했다.그리고 명절 때는 각종 선물에 보너스까지 줬었다.아들은 점심을 학교 식당에서 먹어서, 평소에 아침이랑 저녁만 준비하면 되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간단하게 집 안 청소하는 것밖에 없었다.처음엔 나도 주연 이모가 엄청 마음에 들었다.음식 솜씨도 좋고 할 줄 아는 반찬도 많은 데다, 자기가 지켜야 할 선을 알고 눈치도 빠르니까.그래서 월급을 올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오늘 점심, 서류를 가지러 갑작스럽게 집에 돌아왔는데, 웬 낯선 사람들이 내 집에 있는 것이다.그들은 내 식탁에 앉아서, 내 식기로 내가 비싸게 주고 산 해산물이랑 랍스터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날 보자 그 사람들은 순간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옆에 이미 굳어 버린 주연 이모를 쳐다보았다.주연 이모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 사람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애원하면서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솔직히 난 그냥 해고할 생각이었다.근데 주연 이모가 몰래 형수님에게, 즉 그녀의 전 사장님에게 전화했다.그래서 상황이 이렇게 변한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주연 이모를 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형수님도 이렇게 말했으니까, 형수님의 체면을 봐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게요.”주연 이모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띠더니, 냉큼 절까지 하며 고마워했다.“하지만...”내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처벌로 월급을 100만 원으로 내릴 거예요.”주연 이모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얘질 줄 알았다. 아무래도 가족 모두가 자기 한 사람만 믿고 산다고 했으니까.방금 여기서 밥 먹었던 사람, 적지 않았다.솔직히 100만 원으로 수도인 경운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그런데 주연 이모는 제일 너그러운 용서를 받은 것처럼, 쿵쿵 절을 하면서 엄청 기뻐해 했다.내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에 있는 형수, 김옥화가 얼굴에 화색을 띠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수진아, 넌 정말 마음씨가 너무 좋아! 별일 없으면, 나 먼저 갈게. 오후에 약속 잡았거든!”말을 마친 형수는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주연 이모 곁을 지나갈 때, 경고하는 듯 말했다.“주연 이모, 제가 오래 쓰던 사람이라 한마디 하는 거예요.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일이나 열심히 하시라고요! 수진이는 착하니까, 월급도 자연스럽게 다시 올려줄 거예요! 만약 또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면, 다신 사정 안 해줄 거예요!”잘못을 한 번 저지른 주연 이모는 그때 이후로 많이 조용해졌다.매일 밥하고 청소 끝나면 밖에 돌아다니지도 않고 자기 방에 콕 박혀 있곤 했다.평소에 내가 집에 있을 땐, 더더욱 얌전해졌다.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연 이모가 장 보러 갈 때, 사람을 불러서 집에 CCTV를 달았다.안에서부터 밖에까지, 거실이든 화장실이든 침실이든,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물론 주연 이모를 그냥 해고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왠지 자꾸 이상하게 느껴졌다.형수 김옥화의 행동이 이상한 것 같았다.사업장에서 여러 가지 여우들과 상대해서 그런지, 내 의심은 심각할 정도로 많았다.
출장 가기 전에, 아들에게 너무 늦게 놀지 말라고, 친구들도 일찍 보내라고 신신당부했다.“엄마, 걱정 마!”나랑 약속한 아들은 웃으며 내가 공항 대기실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다.비행기 안에서 착지한 다음 안배해야 할 일들을 또 한 번 체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이튿날 아침, 하늘이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을 때, 비행기가 외국 타지에 착륙했다.난 짐을 기다리면서 핸드폰의 비행모드를 꺼버렸다.그러자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갑자기 들어왔다.전부 아들한테서 온 것들이었다.순간 내 심장이 철렁하면서 안 좋은 예감이 덮쳐들었다.짐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조용한 구석으로 가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울리자마자, 바로 통했다.하지만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만약 아들의 가쁜 호흡소리가 없었었다면, 수화기 맞은편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을 것이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어떻게?]조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꽉 쥐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그래?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한 건데?!”설마 나랑 같이 안 온 게 후회돼서 이러는 건가?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돌아가서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자식을 혼내줄 것이다.[엄마, 나, 나...]아들은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너무 급하고 화가 난 마음에 당장이라도 수화기 안으로 들어가 그의 목을 잡고 빨리 대답하라고 하고 싶었다.“뭘 꾸물거려! 얼른 말해! 나 이따가 회의 있어!”정말 폐 끼칠 줄밖에 모르는 녀석이었다.핸드폰을 한번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수화기 맞은편의 아들은 여전히 낑낑거리고 있었다.너무 화가 나서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전해져 왔다.[도련님! 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도련님! 아이고, 세상에! 이 나이에 이런 일을 당했다니! 나 이제 어떻게 살아!]주연 이모의 끊임없는 곡소리와 함께 아들의 미약하고 후회가 담긴 목소리가
먼저 눈에 들오는 건 아주 사나워 보이는 남자였다.그는 이마를 찌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그리고 시커먼 손가락을 내밀고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아들을 가리키며 연신 욕설을 퍼부었다.옆에는 울어서 두 눈이 퉁퉁 부은 주연 이모가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내 아들을 때리려는 남자의 행동을 말리고 있었다.그리고 김옥화는 소파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내가 들어오자마자, 모든 사람이 순간 조용해졌다.아들이 울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엄마!”“엄마?”주연 이모의 아들 진무성이 고개를 돌리고 날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았다.“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왔네! 그럼 상의해 보자고요. 이 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당신 아들이 내 엄마랑 잤는데, 돈으로 배상할 건지, 어떡할 건지, 말해보세요!”진무성은 혹시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안 들릴까 봐, 일부로 언성을 높였다.그리고 자기의 팔을 꼭 잡고 있는 주연 이모의 손을 뿌리쳤다.“그래, 수진아! 지현이가 이런 짓을 했다니!”김옥화가 한숨을 쉬면서 맞장구를 쳤다.“아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만이지만, 어제 지현이 친구도 여기서 자서, 다들 알게 됐어! 앞으로 가업을 물려받을 아이인데, 이제 어떡하면 좋니?”주연 이모의 눈빛이 순간 반짝했다. 그리고 입꼬리가 무의식적으로 살짝 올라갔다.분위기는 순간 조용해졌다.세 사람 모두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아들도 절망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하...”나는 피식 웃었다.“배상? 얼마 원하는데?”진무성은 순간 화색을 띠며 손가락 다섯 개를 세웠다. 그러자 내 태도가 순간 바뀌었다.“꿈도 꾸지 마.”난 캐리어를 바닥에 쾅 쓰러뜨렸다.그러자 김옥화가 깜짝 놀랐다.“수...”“다 꺼져.”내가 손을 들고 문을 열자,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귀부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깜짝 놀란 귀부인들은 아주 눈치 있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사모님!”무릎 꿇고 바닥
나랑 내 남편이 결혼하고 지금까지, 난 형수의 체면을 깎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그런지, 김옥화는 내가 자기한테 고분고분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전에 아무 말 하지 않은 건 우리가 한 가족인 걸 봐서 그랬을 뿐이다.그런데 감히 내 머리 위까지 손을 내밀다니.공포에 질린 김옥화의 눈빛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찰싹-미처 피하지 못한 김옥화 얼굴에 선명한 뺨 자국이 생겼다.내가 너무 힘껏 쳐서 그녀의 얼굴은 순간 부어올랐다.“엄마...”아들도 내 행동에 놀라,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너!”난 김옥화의 멱살을 잡고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김옥화, 평소에 내가 참고 잘해준 건, 네가 내 남편 형님의 아내라서 그런 거야. 내가 정말 널 무서워하는 줄 알아?”말을 마친 나는 또 한 대 때리려고 했다.그러자 김옥화는 얼른 내 손에서 벗어나더니, 옆으로 피했다.그녀는 자기의 얼굴을 만지며 음침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심수진! 너 같은 과부 엄마가 있으니까, 지현이가 주연 이모까지 넘보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정말 너랑 똑 닮았네! 비천하고... 아!”난 김옥화의 머리채를 잡고 문밖으로 끌고 나가 내팽개쳤다.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악독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심수진! 너 두고 보자! 이대로 안 끝나! LM그룹 회장님 자리에서 곧 물러나게 될 거야!”드디어 솔직하게 말하네.나는 냉소를 지었다.그리고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 교양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김옥화가 얼마 산지 안 된 샤넬 신발에 가래를 뱉은 것이다.“가래가 너랑 딱이네. 배웅은 하지 않을게.”쓰레기들을 다 처리한 나는 불안해하면서 주춤거리는 아들을 쳐다보았다.그는 마친 놀란 메추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감히 날 쳐다보지 못했다.이런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나서, 입 밖으로 나오려던 위로의 말을 다시 삼켰다.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이렇게 겁을 먹다니! 앞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LM그
제일 먼저 불만을 표시한 사람은 아주버님이었다.아주버님이 젊었을 때, 노는 데 정신이 빠져서 상속자 자격을 잃지 않았다면, 이 LM그룹은 사실 그가 물려받았을 것이다.그런데 결국 예술만 아는 내 남편에게 떨어지고 말았다.내 남편은 회사를 관리할 줄 몰라서, 금융을 배운 아내인 내가 그를 도와 책임졌다.그러다 남편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어르신은 임윤을 건너뛰고 날 상속자로 임명하셨다.시집 들어온 남이 자기 집 회사를 물려받은 게 불만스러워, 아주버님 계속 내 트집을 잡았다.“심수진, 얼마 전에 옥화한테 들었어. 지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네가 지현이 감싸려고 그 사람들을 그냥 내쫓았다며? 배상금도 안 주고, 해명도 안 하고, 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임윤은 노발대발하며 이사회에서 나에게 따졌다.하지만 난 그냥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천천히 넘기며 그를 무시했다.“네가 말 안 한다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야!”임윤은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졌다.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세상에 이런 일이! 그래서 회사를 남인 여자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했는데!”이 말을 들은 회사 이사들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배당금을 받는 사람들이라, 그들도 엄청 초조할 것이다. 거기에 임윤이 앞에서 불을 붙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날 비난하기 시작했다.“심 회장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냥 돈으로 해결하는 게...”“맞습니다. 회사 주가가 내려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잖습니까.”“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나는 회의실에 있는 중년 밥통들을 평온하게 둘러보며,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나보고 돈으로 해결하라는 건, 이 일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라는 거나 다름이 없다.그때 가서 여론의 힘을 빌려 부채질만 한다면, 내 아들은 철저하게 끝난 셈이다.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얼굴이 빨개진 임윤을 쳐다보았다.“돈은 주지 않을 겁니다. LM그룹을 그렇게 중시하신다면, 차라리 제 자리를 아주버님한테 양보하는 건 어때요?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김옥화의 번호를 블랙리스트에서 끌어냈다.지난번에 나한테 한번 맞더니, 그 후로 날 모욕하는 문자를 자주 보내곤 했다. 그래서 번호를 그냥 차단해 버렸다.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한동안 조용해졌다.김옥화가 전에 자기 주민등록증 사진을 나한테 보내 준 적 있는데, 채팅 기록을 뒤져서 주소를 대비해 본 결과,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김옥화와 주연 이모의 고향이 같았다.그렇게 나는 홀몸으로 차를 몰고 청수 마을로 내려갔다.몇 년 전만 해도 꼬불꼬불한 흙길이었는데, 이젠 시멘트를 싹 깔아 놓았다.정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김옥화는 임윤의 두 번째 부인이다.내가 형수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 김옥화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임씨 가문은 임윤이 시골 여자와 결혼한 게 싫어서, 임윤과 김옥화가 결혼할 때, 나랑 내 남편만 두 사람 결혼식에 참석했다.임윤은 김옥화의 환심을 사려고, 주동적으로 돈을 내고 마을의 길을 닦아주었다.예쁘고 깔끔한 시멘트 길은 햇빛 아래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다만 마을 사람들이 트랙터를 자주 몰고 다닌 탓에, 길이 많이 울퉁불퉁해졌다.백미러를 통해 호미를 들고 있는 한 노인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 차를 둘러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그래서 차창을 내리고 노인에게 물었다.“아저씨, 주연 집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청수 마을은 별로 크지 않아서 마을 사람이 거의 친척이거나, 아는 사이였다.내가 창문을 내리자, 노인은 잠깐 당황하더니, 내 말을 듣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주연이 찾는 거야? 시내 친척 집에 간다면서 몇 년째 안 돌아왔어!”‘친척?’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인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집에도 안 돌아오고. 애가 혼자 집에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돌보고 있어!”“아이요? 무슨 아이요?”설마 주연한테 작은아들이라도 있다는 건가?내가 오해했다는 걸 눈치챈 노인이 얼른 손을 저었다.“주연이 손자. 자기 딸을 남한테 입
이혼한 김옥화는 임윤이 준 돈을 가지고 한동안 누렸다.부잣집 부인을 몇 년 하더니, 검소라는 단어를 벌써 잊은 지 오래었다.돈을 헤프게 쓰다가 몇 달도 안 되어 그만 바닥이 나버렸다.결국 김옥화는 좁은 셋방에 틀어박혀 그럭저럭 살아갔다고 한다....에필로그난 강이를 데리고 김옥화가 사는 낡은 셋방에 찾아갔다.주택단지의 외벽은 얼룩덜룩하고, 쓰레기도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건물 안의 복도는 비좁고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어서 발 디딜 곳도 찾기 어려웠다.쿵쿵쿵-몇 번의 노크 소리 후에, 김옥화가 욕설을 퍼부으며 문을 열었다.날 본 순간, 그녀는 마치 불붙은 폭탄처럼, 미친 듯이 나에게 달려들었다.난 재빠르게 그녀를 제압했다. 그러자 김옥화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엄마?”망설임과 기쁨이 담긴 강이의 목소리가 이때 들려왔다.김옥화는 그제야 내 옆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김옥화, 본 적은 없어도 기억하고 있을 거 아니야.”나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이 새끼를 왜 데려온 거야? 네 이년이 내 모든 걸 망쳤어! 넌 죽어야 해!”김옥화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날 향해 소리쳤다.난 그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를 잡고 있는 손에 더 힘을 줬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졌다.강이는 이 장면에 놀라서 뒤로 숨으며 내 옷자락을 꽉 잡았다.내가 힘을 풀고 뒤로 살짝 밀자, 김옥화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난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쳐다보았다.“강이가 엄마 보겠다고 해서 데려온 거야. 안 그럼 정말 여기에 데려오고 싶지 않다.”난 그녀를 경시하며 말했다.“너 같은 엄마는 아이의 트라우마밖에 안 될 테니까.”내가 강이더러 아래층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자, 강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가버렸다.김옥화는 바닥에 앉은 채, 피식 웃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광기와 원망으로 가득했다.“심수진, 너 그거 알아? 임준의 교
두 사람이 회사까지 가서 싸웠다고 한다.기진맥진한 임윤은 실수로 회사의 오래된 프로젝트를 말아먹었는데, 회사에 몇십억이나 되는 손해를 보게 되었다.이에 임윤에 대한 이사회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임윤의 문제도 점점 더 많아졌다.회사에서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벌써 숨 막혀 죽겠는데, 밖에서도 그에게 불리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임씨 가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경쟁자들은 내가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자, 임윤의 능력 따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아니나 다를까, 라이벌의 지시하에 기자들은 임윤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그리고 남모를 비밀들도 마치 시한폭탄처럼 하나씩 터졌다.임윤이 젊었을 때 논 여자들과 각종 스캔들, 그리고 자기가 임윤의 사생아라며 울부짖는 사람들도 나타났다.그 덕분에 LM그룹은 또다시 위험한 경지에 빠져들었다.내가 흥미진진하게 임윤의 뉴스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 한 통이 들어왔다. 하지만 난 받지 않았다.그러자 두 번째, 세 번째 전화가 연속으로 들어왔다.마지막엔 내 전비서까지 나에게 연달아 문자를 보냈다.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사회의 그 늙은 녀석들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내 도움을 바란다는 뜻이었다.난 웃으며 한마디 답장했다.아들은 여전히 풀이 죽은 채, 조용히 구석에서 틀어박고 있었다.주연의 수작을 당한 것 때문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젊은이들은 교훈을 많이 먹어야 정신을 차린다.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바보처럼 욕먹길 기다리면 안 되니까.아들도 이제 혼자 처리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나는 손을 들고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속으로 구시렁거리지 말고, 내일 엄마랑 집에 가자. 그때 가서 내가 모든 걸 알려줄게.”회사는 결국 다시 내 손에 돌아왔다.인터넷에 해명하는 글을 올리고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큰 힘을 들여 위험한 국면을 만회했다. 겉보기엔 내가 임윤 대신 뒷수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풀었던 그물을 차차 거두고 있었다.아들은 그날 CCTV 영상을 보고 얼굴
“담배 때문에 이런 얘기하는 거 아니여! 주연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 친척 찾으러 시내에 갔다고 하지만, 옥화 그 계집애를 찾으러 간 게 분명해.”“주연을 만나면 한 마디 전해줘.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래도 7, 8년 키운 아이인데, 사람 그렇게 사는 거 아니라고!”결국에 난 내가 김옥화의 제수씨라는 신분을 고백했다.그러자 노인은 흥분하면서 기어코 날 잡고 주연 집으로 갔다.가서 그 아이를 한번 보라고.아이의 이름은 강이인데, 8살임에도 불구하고 네다섯 살짜리 아이 같았다.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채, 노인을 보고 정인 할아버지라 불렀다.난 김옥화랑 닮은 그 아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엄마 보고 싶지 않니?”엄마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날 보고 약간 겁에 질린 강이의 두 눈이 순간 밝아졌다.그리고 흥분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머리카락을 몇 가닥 가져왔다.“그럼 사진 몇 장 찍자. 나중에 엄마한테 보여주게.”내 말이 떨어지자, 강이는 곧바로 똑바로 섰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벌써 사진 찍을 자세를 취했다.핸드폰을 들고 있던 내 손이 순간 멈칫했고,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사진을 찍고 난 후, 또 노인이랑 연락처를 교환했다.주연 이모가 없는 동안, 강이를 돌봐준 사람이 바로 이 노인이었다.“아가야,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노인의 눈시울이 살짝 촉촉해졌고, 손끝도 떨고 있었다.나는 웃으며 그와 약속했다.“괜찮아요. 반드시 강이가 엄마 곁으로 돌아가게 할게요.”김옥화, 그동안 네가 진 죄, 이제 갚을 때도 됐지.집에 돌아간 나는 강이의 머리카락과 사진을 포장해서 임윤에게 보냈다.요 며칠 회장이 돼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임윤의 눈알이 거의 머리 꼭대기에 달려 있었다.집에도 자주 돌아가지 않아, 내가 보낸 물건을 받았을 땐, 이미 이틀 후였다.물건을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김옥화의 번호를 블랙리스트에서 끌어냈다.지난번에 나한테 한번 맞더니, 그 후로 날 모욕하는 문자를 자주 보내곤 했다. 그래서 번호를 그냥 차단해 버렸다.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한동안 조용해졌다.김옥화가 전에 자기 주민등록증 사진을 나한테 보내 준 적 있는데, 채팅 기록을 뒤져서 주소를 대비해 본 결과,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김옥화와 주연 이모의 고향이 같았다.그렇게 나는 홀몸으로 차를 몰고 청수 마을로 내려갔다.몇 년 전만 해도 꼬불꼬불한 흙길이었는데, 이젠 시멘트를 싹 깔아 놓았다.정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김옥화는 임윤의 두 번째 부인이다.내가 형수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 김옥화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임씨 가문은 임윤이 시골 여자와 결혼한 게 싫어서, 임윤과 김옥화가 결혼할 때, 나랑 내 남편만 두 사람 결혼식에 참석했다.임윤은 김옥화의 환심을 사려고, 주동적으로 돈을 내고 마을의 길을 닦아주었다.예쁘고 깔끔한 시멘트 길은 햇빛 아래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다만 마을 사람들이 트랙터를 자주 몰고 다닌 탓에, 길이 많이 울퉁불퉁해졌다.백미러를 통해 호미를 들고 있는 한 노인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 차를 둘러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그래서 차창을 내리고 노인에게 물었다.“아저씨, 주연 집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청수 마을은 별로 크지 않아서 마을 사람이 거의 친척이거나, 아는 사이였다.내가 창문을 내리자, 노인은 잠깐 당황하더니, 내 말을 듣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주연이 찾는 거야? 시내 친척 집에 간다면서 몇 년째 안 돌아왔어!”‘친척?’순간 심장이 철렁했다.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인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집에도 안 돌아오고. 애가 혼자 집에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돌보고 있어!”“아이요? 무슨 아이요?”설마 주연한테 작은아들이라도 있다는 건가?내가 오해했다는 걸 눈치챈 노인이 얼른 손을 저었다.“주연이 손자. 자기 딸을 남한테 입
제일 먼저 불만을 표시한 사람은 아주버님이었다.아주버님이 젊었을 때, 노는 데 정신이 빠져서 상속자 자격을 잃지 않았다면, 이 LM그룹은 사실 그가 물려받았을 것이다.그런데 결국 예술만 아는 내 남편에게 떨어지고 말았다.내 남편은 회사를 관리할 줄 몰라서, 금융을 배운 아내인 내가 그를 도와 책임졌다.그러다 남편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어르신은 임윤을 건너뛰고 날 상속자로 임명하셨다.시집 들어온 남이 자기 집 회사를 물려받은 게 불만스러워, 아주버님 계속 내 트집을 잡았다.“심수진, 얼마 전에 옥화한테 들었어. 지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네가 지현이 감싸려고 그 사람들을 그냥 내쫓았다며? 배상금도 안 주고, 해명도 안 하고, 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임윤은 노발대발하며 이사회에서 나에게 따졌다.하지만 난 그냥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천천히 넘기며 그를 무시했다.“네가 말 안 한다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야!”임윤은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졌다.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세상에 이런 일이! 그래서 회사를 남인 여자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했는데!”이 말을 들은 회사 이사들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배당금을 받는 사람들이라, 그들도 엄청 초조할 것이다. 거기에 임윤이 앞에서 불을 붙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날 비난하기 시작했다.“심 회장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냥 돈으로 해결하는 게...”“맞습니다. 회사 주가가 내려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잖습니까.”“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나는 회의실에 있는 중년 밥통들을 평온하게 둘러보며,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나보고 돈으로 해결하라는 건, 이 일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라는 거나 다름이 없다.그때 가서 여론의 힘을 빌려 부채질만 한다면, 내 아들은 철저하게 끝난 셈이다.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얼굴이 빨개진 임윤을 쳐다보았다.“돈은 주지 않을 겁니다. LM그룹을 그렇게 중시하신다면, 차라리 제 자리를 아주버님한테 양보하는 건 어때요?
나랑 내 남편이 결혼하고 지금까지, 난 형수의 체면을 깎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그런지, 김옥화는 내가 자기한테 고분고분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전에 아무 말 하지 않은 건 우리가 한 가족인 걸 봐서 그랬을 뿐이다.그런데 감히 내 머리 위까지 손을 내밀다니.공포에 질린 김옥화의 눈빛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찰싹-미처 피하지 못한 김옥화 얼굴에 선명한 뺨 자국이 생겼다.내가 너무 힘껏 쳐서 그녀의 얼굴은 순간 부어올랐다.“엄마...”아들도 내 행동에 놀라,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너!”난 김옥화의 멱살을 잡고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김옥화, 평소에 내가 참고 잘해준 건, 네가 내 남편 형님의 아내라서 그런 거야. 내가 정말 널 무서워하는 줄 알아?”말을 마친 나는 또 한 대 때리려고 했다.그러자 김옥화는 얼른 내 손에서 벗어나더니, 옆으로 피했다.그녀는 자기의 얼굴을 만지며 음침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심수진! 너 같은 과부 엄마가 있으니까, 지현이가 주연 이모까지 넘보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정말 너랑 똑 닮았네! 비천하고... 아!”난 김옥화의 머리채를 잡고 문밖으로 끌고 나가 내팽개쳤다.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악독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심수진! 너 두고 보자! 이대로 안 끝나! LM그룹 회장님 자리에서 곧 물러나게 될 거야!”드디어 솔직하게 말하네.나는 냉소를 지었다.그리고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 교양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김옥화가 얼마 산지 안 된 샤넬 신발에 가래를 뱉은 것이다.“가래가 너랑 딱이네. 배웅은 하지 않을게.”쓰레기들을 다 처리한 나는 불안해하면서 주춤거리는 아들을 쳐다보았다.그는 마친 놀란 메추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감히 날 쳐다보지 못했다.이런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나서, 입 밖으로 나오려던 위로의 말을 다시 삼켰다.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이렇게 겁을 먹다니! 앞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러는지!LM그
먼저 눈에 들오는 건 아주 사나워 보이는 남자였다.그는 이마를 찌푸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그리고 시커먼 손가락을 내밀고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아들을 가리키며 연신 욕설을 퍼부었다.옆에는 울어서 두 눈이 퉁퉁 부은 주연 이모가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내 아들을 때리려는 남자의 행동을 말리고 있었다.그리고 김옥화는 소파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내가 들어오자마자, 모든 사람이 순간 조용해졌다.아들이 울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엄마!”“엄마?”주연 이모의 아들 진무성이 고개를 돌리고 날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았다.“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왔네! 그럼 상의해 보자고요. 이 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당신 아들이 내 엄마랑 잤는데, 돈으로 배상할 건지, 어떡할 건지, 말해보세요!”진무성은 혹시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안 들릴까 봐, 일부로 언성을 높였다.그리고 자기의 팔을 꼭 잡고 있는 주연 이모의 손을 뿌리쳤다.“그래, 수진아! 지현이가 이런 짓을 했다니!”김옥화가 한숨을 쉬면서 맞장구를 쳤다.“아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만이지만, 어제 지현이 친구도 여기서 자서, 다들 알게 됐어! 앞으로 가업을 물려받을 아이인데, 이제 어떡하면 좋니?”주연 이모의 눈빛이 순간 반짝했다. 그리고 입꼬리가 무의식적으로 살짝 올라갔다.분위기는 순간 조용해졌다.세 사람 모두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아들도 절망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하...”나는 피식 웃었다.“배상? 얼마 원하는데?”진무성은 순간 화색을 띠며 손가락 다섯 개를 세웠다. 그러자 내 태도가 순간 바뀌었다.“꿈도 꾸지 마.”난 캐리어를 바닥에 쾅 쓰러뜨렸다.그러자 김옥화가 깜짝 놀랐다.“수...”“다 꺼져.”내가 손을 들고 문을 열자,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귀부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깜짝 놀란 귀부인들은 아주 눈치 있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사모님!”무릎 꿇고 바닥
출장 가기 전에, 아들에게 너무 늦게 놀지 말라고, 친구들도 일찍 보내라고 신신당부했다.“엄마, 걱정 마!”나랑 약속한 아들은 웃으며 내가 공항 대기실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다.비행기 안에서 착지한 다음 안배해야 할 일들을 또 한 번 체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이튿날 아침, 하늘이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을 때, 비행기가 외국 타지에 착륙했다.난 짐을 기다리면서 핸드폰의 비행모드를 꺼버렸다.그러자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갑자기 들어왔다.전부 아들한테서 온 것들이었다.순간 내 심장이 철렁하면서 안 좋은 예감이 덮쳐들었다.짐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조용한 구석으로 가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울리자마자, 바로 통했다.하지만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만약 아들의 가쁜 호흡소리가 없었었다면, 수화기 맞은편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을 것이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어떻게?]조급한 마음에 핸드폰을 꽉 쥐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그래?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한 건데?!”설마 나랑 같이 안 온 게 후회돼서 이러는 건가?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돌아가서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자식을 혼내줄 것이다.[엄마, 나, 나...]아들은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너무 급하고 화가 난 마음에 당장이라도 수화기 안으로 들어가 그의 목을 잡고 빨리 대답하라고 하고 싶었다.“뭘 꾸물거려! 얼른 말해! 나 이따가 회의 있어!”정말 폐 끼칠 줄밖에 모르는 녀석이었다.핸드폰을 한번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수화기 맞은편의 아들은 여전히 낑낑거리고 있었다.너무 화가 나서 욕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전해져 왔다.[도련님! 왜 이런 짓을 한 거예요, 도련님! 아이고, 세상에! 이 나이에 이런 일을 당했다니! 나 이제 어떻게 살아!]주연 이모의 끊임없는 곡소리와 함께 아들의 미약하고 후회가 담긴 목소리가
그래서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주연 이모를 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형수님도 이렇게 말했으니까, 형수님의 체면을 봐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게요.”주연 이모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띠더니, 냉큼 절까지 하며 고마워했다.“하지만...”내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처벌로 월급을 100만 원으로 내릴 거예요.”주연 이모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얘질 줄 알았다. 아무래도 가족 모두가 자기 한 사람만 믿고 산다고 했으니까.방금 여기서 밥 먹었던 사람, 적지 않았다.솔직히 100만 원으로 수도인 경운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그런데 주연 이모는 제일 너그러운 용서를 받은 것처럼, 쿵쿵 절을 하면서 엄청 기뻐해 했다.내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에 있는 형수, 김옥화가 얼굴에 화색을 띠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수진아, 넌 정말 마음씨가 너무 좋아! 별일 없으면, 나 먼저 갈게. 오후에 약속 잡았거든!”말을 마친 형수는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주연 이모 곁을 지나갈 때, 경고하는 듯 말했다.“주연 이모, 제가 오래 쓰던 사람이라 한마디 하는 거예요.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일이나 열심히 하시라고요! 수진이는 착하니까, 월급도 자연스럽게 다시 올려줄 거예요! 만약 또 이런 잘못을 저지른다면, 다신 사정 안 해줄 거예요!”잘못을 한 번 저지른 주연 이모는 그때 이후로 많이 조용해졌다.매일 밥하고 청소 끝나면 밖에 돌아다니지도 않고 자기 방에 콕 박혀 있곤 했다.평소에 내가 집에 있을 땐, 더더욱 얌전해졌다.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연 이모가 장 보러 갈 때, 사람을 불러서 집에 CCTV를 달았다.안에서부터 밖에까지, 거실이든 화장실이든 침실이든,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물론 주연 이모를 그냥 해고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왠지 자꾸 이상하게 느껴졌다.형수 김옥화의 행동이 이상한 것 같았다.사업장에서 여러 가지 여우들과 상대해서 그런지, 내 의심은 심각할 정도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