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온다연을 완전히 품에 가둔 자세를 취했다.방 안의 조명은 밝지 않아 분위기에 묘한 긴장감을 더했고 이 자세는 지나치게 상상을 자극했다. 온다연은 순간 빠르게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장난치지 마세요. 재미없어요.”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반쯤 내려간 눈꺼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길고 곱슬진 속눈썹은 마치 날갯짓하는 나비처럼 끊임없이 떨렸고 그 모든 움직임이 유강후의 마음을 흔들었다.유강후는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됐다.너무 오랫동안 그녀의 달콤함을 참아왔기에 더 이상 버티는 것이 힘들었다.“장난치는 거 아니야, 다연아. 난 너한테 항상 진심이었어.”유강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낮고 거칠었으며 손은 그녀의 붉은 입술 위로 미끄러져 갔다.온다연은 드레스와 어울리는 매트한 질감의 클래식 레드 립스틱을 발랐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색감은 그녀의 하얀 피부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그녀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조명 아래 온다연의 모습은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작은 요정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유강후의 목소리는 더 깊어졌다.“이 립스틱 색깔, 너에게 너무 잘 어울린다. 정말 아름다워.”그의 나지막한 속삭임은 연인의 달콤한 대화처럼 분위기를 더욱 아찔하게 했다.온다연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유강후의 품에 완전히 갇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게다가 그의 숨결이 너무 가까이 느껴져서 온다연은 점점 힘이 풀리고 말았다.온다연은 가늘게 숨을 내쉬며 유강후의 손을 치우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하세요.”유강후는 손을 다시 뻗어 온다연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이 립스틱 색상, 내가 전부 사버릴 거야. 앞으로 전 세계에서 너만 이 색을 쓸 수 있게.”유강후 목소리는 더욱 낮고 거칠어졌고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도 점점 더 강렬해졌다. 온다연은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강 대표님, 제발 놔주세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말을 끊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라고 불러 줘,
“찰싹!”유강후는 순간 멍하니 서서 뺨을 만졌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이제 키스 한 번 할 때마다 뺨을 맞아야 하는 걸까?하지만 오늘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 나름대로 값어치가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온다연은 유강후를 힘껏 밀어내고 테이블에서 내려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를 존중할 생각은 하지 않나요?”또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건가?온다연은 마음 깊은 곳에서 서러움과 실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온다연은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재빨리 방을 뛰쳐나갔다.유강후는 쫓아가지 않고 온다연이 사라진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온다연은 언제나 향기롭고 사랑스럽게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너무 순하고 부드러운 모습이라 그를 자꾸만 시험에 들게 했다.유강후는 그녀를 겁주려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방금 온다연은 분명히 놀라고 겁먹은 모습이었다.‘이대로는 안 돼.’온다연은 아직 너무 연약했다. 모든 것을 갑자기 받아들일 만큼 강하지 못했다.유강후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서 있다가 천천히 문밖으로 나갔다.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온다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밖을 보니 어느새 비는 그쳤고 밤하늘은 순수한 벨벳 같은 짙푸른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커다란 보름달이 하늘에 떠 있었고 달빛은 보석처럼 맑고 아름다웠다.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홀에서 나와 갑판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하지만 온다연이 곁에 없으니, 유강후에게 이 모든 풍경은 빛을 잃은 듯 아무 의미가 없었다.유강후는 친구인 연시온과 건성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사람들 속에서 온다연을 찾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온다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날 피하는 건가?’만약 온다연이 계속 자신을 피한다면 며칠 동안 온다연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강후는 점점 초조해졌다.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들고 있던 와인 잔을 흔들었다. 그리
“꺼져!”유강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안윤희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두 손을 꽉 쥐었다.“강 대표님, 제 동생에게 마음이 있더라도 저한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안윤희는 고개를 떨구고 단단히 결심한 듯 말했다.“저는 강 대표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 동생은 이미 약혼한 상태입니다. 두 분은 어울리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강 대표님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입니다...”“닥쳐!”유강후는 갑자기 몸을 돌려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노려보았다.“이게 마지막 경고야. 다시 한번 내 앞에서 잔머리 굴리다간 네 인생 끝날 줄 알아.”유강후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위험한 기운을 내뿜었다.“네가 다연의 사촌 언니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리고 오늘 너, 정말 꼴사나웠어.”안윤희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곧 눈물이 차올랐다.“강 대표님, 제가 뭘 했다고 이렇게 심한 말씀을 하세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유강후는 냉정하게 대답했다.“내 앞에서 불쌍한 연기는 집어치워.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속임수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유강후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말을 마친 유강후는 안윤희에게 눈길 한 번 더 주지 않고 자리에서 떠났다.안윤희는 분노로 얼굴이 새파래지며 들고 있던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온다연, 오늘 밤, 이 배에서 네가 얼어 죽는다면 네 주위를 맴돌던 남자들이 어떻게 할지 궁금하네.”갑판 위에서는 유강후의 사람들이 몇 번이나 온다연을 찾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그동안 배에 이착륙한 비행기도 없었으니 온다연은 여전히 이곳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유강후는 점점 더 시끌벅적해지는 현장을 바라보며 점점 속이 탔다.‘왜 나를 이렇게까지 피하는 걸까? 단지 한 번의 키스 때문에 이렇게까지 나를 멀리하는 걸까?’그때 경호원이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온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얇은 원피스 하나만 입은 온다연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한참 동안 몸부림치며 버티다가 결국 지쳐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처럼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다행히 냉동창고가 워낙 커서 온도는 서서히 떨어졌다. 온다연은 근처에서 비닐을 찾아 몸에 감고 여러 개의 상자를 겹쳐 그 안으로 들어갔다.임시방편으로 약간의 효과는 있었지만 점점 더 내려가는 온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온다연은 추위에 몸을 떨며 서서히 저체온증 상태에 빠져들었다.희미한 의식 속에서 그녀는 부모님의 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었다.온다연은 과거에 일을 기억할 수 없었지만 부모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부모님은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부모님의 얼굴이 점점 흐려지더니 이내 염지훈의 얼굴로 변해갔다.온다연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작별을 고하며 말했다.‘미안해요, 정말 노력했지만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좋은 여자를 만나길 바라요.’마지막으로 모든 기억이 한 남자의 얼굴로 바뀌었다.그는 온다연을 품에 안고 있었고 얼굴에는 온 세상을 잃은 듯한 고통과 혼란이 가득했다.그 모습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평소 강압적이고 완벽해 보이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니 온다연의 가슴이 아파왔다.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지만 손조차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온다연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냉동창고의 문이 열렸을 때, 안에는 흐트러진 냉동 물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물건들을 망가뜨린 흔적이었다.이 모습을 본 유강후와 그의 일행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고 서둘러 창고 안으로 뛰어들었다.냉동창고는 수백 평에 달하는 큰 공간이었고 그들
진수현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는 유강후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분노로 손을 떨었다.“너만 믿고 다연이를 맡겼는데, 이렇게밖에 못 지켜?”그는 한 대로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몇 대를 연달아 유강후에게 날렸다.유강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냈다.진수현이 지쳐 멈춘 뒤에야 유강후는 고개를 들어 피가 맺힌 입술을 닦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 잘못입니다. 어떻게 저를 때리셔도 할 말 없습니다.”진수현은 분노로 가득 차 외쳤다.“꺼져! 너 같은 인간은 내 딸 옆에 있을 자격 없어!”유강후는 천천히 일어나 복잡한 눈빛으로 온다연이 누워 있는 침대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죽음의 문턱을 넘은 듯한 충격과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혼란, 그리고 뼛속까지 서려 있는 강렬한 냉기가 뒤섞여 있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온다연을 바라보며 마치 얼음 속에서 갓 끌어올려진 사람처럼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진수현은 그런 유강후의 모습을 보고 점점 더 화가 치밀어 큰 소리로 말했다.“꺼져!”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진수현을 바라봤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진수현은 본능적으로 섬뜩함에 숨을 들이마셨다.그는 평생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유강후의 눈빛처럼 차갑고 독기 어린 눈은 본 적이 없었다.그 눈빛은 마치 독을 품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냉혹한 사람들이 있지만 유강후처럼 속까지 독을 품은 사람은 대개 큰일을 이루는 자들이었다.진수현은 그런 유강후가 자신을 도발한다고 느끼며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주먹을 들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안심이 그의 손을 잡아 멈췄다.“수현 씨, 그만해요!”안심은 유강후를 한 번 쳐다보고 그의 눈에 담긴 깊은 고통을 읽어냈다.안심은 과거에 진수현과 함께했던 고난의 시간을 떠올리며 잠시 그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었다.“강 대표님이 실수한 건 맞지만 강 대표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다연이를 해치려던 사람이 따로 있었고 지킨다고 지킬 수 있었던
그때, 이권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고 손에는 두 병의 약을 들고 있었다.그 약은 며칠 전, 곽혜진이 준 것이었지만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줄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유강후는 약을 받아 한 병에서 한 알을 꺼내 직접 입에 넣고 삼켰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이 약은 다연이를 위한 겁니다. 다연이의 몸이 회복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일정 기간 복용하면 건강이 많이 좋아질 거고 지금 복용시키면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진수현은 화를 내며 말했다.“네가 준 물건 받지 않아.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진 회장님, 혹시 곽 의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 이 근처 섬에서 비밀 실험을 진행 중인 분입니다.”“이 약은 곽 의사가 직접 준 겁니다. 온다연을 위해 특별히 지은 약이고 매우 귀한 약입니다.”진수현은 잠시 분노를 억누르고 두 병의 약을 노려보며 말했다.“그 약이 진짜라는 걸 누가 증명하지? 다른 사람들은 이 약 한 알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어떻게 두 병이나 구했지?”유강후는 사실대로 말했다.“우리 가문의 어르신께서 곽 의사 가문과 오래된 인연이 있으십니다. 저 역시 곽 의사의 남편과 약간의 교분이 있고 마침 이 근처에 머물고 있다고 하셔서 이렇게 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유강후는 약을 안심에게 건네며 말했다.“진 사모님, 이 약을 한 알씩 다연이에게 복용시켜 주시길 바랍니다.”진수현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했지만 안심이 그를 막았다.“이 약에는 문제가 없어요. 방금 강 대표님께서도 우리 앞에서 직접 복용하셨잖아요. 곽 의사의 약은 정말 구하기 힘든데, 강 대표님이 이런 약으로 우리를 속일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안심은 약병에서 두 알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았다.약에서는 은은하고 깊은 향이 풍겼으며 어딘가 신비롭고 오래된 느낌이 담겨 있었다.안심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 온다연에게 약을 먹였다.유강후는 옆에서 안심이 온다연에게 약을 먹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
유강후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안심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유강후의 대답은 온다연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다.안심은 자신의 직감이 이렇게 정확할 줄은 몰랐다.안심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갑게 굳어졌다.“3년 전, 다연이가 발견됐을 때 온몸에 상처투성이였고 폐 감염이 심각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병원에서 한 달을 누워있다 깨어났죠. 하지만 다연이의 몸과 마음은 심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였어요. 말을 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특히 밤이 되면 상태가 매우 나빠져 여러 차례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죠.”안심은 온다연이 처음 돌아왔던 모습을 떠올리며 울컥했다.“다연이는 우리의 진심에 대해서 여러 번 물으며 의심했어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죠.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 대신 눈물만 흘리며 모든 감정은 거짓이라고 되풀이했어요. 염지훈의 설명에 따르면, 양부모의 학대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요. 그 집안은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서 다연이가 큰 상처를 받았죠. 결국 전문 심리치료사의 도움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최면을 통해 과거를 조금씩 잊게 하면서 다연이가 지금처럼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강 대표님, 우리는 다연이가 H국에서 겪은 일을 조사해 보려고 했지만 동남아가 아닌 그곳은 우리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어요.”“지금 우리는 그저 다연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양부모가 다연이에게 준 상처는 우리가 평생을 바쳐도 다 회복시키지 못할 만큼 크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연이가 과거를 떠올리지 않길 간절히 바라요.”안심은 유강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강 대표님이 정말 다연이의 과거를 알고 있는 연인이나 친구였다면, 다연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왜 바다에 빠진 겁니까?”“왜 과거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렇게 고통스러워서
유강후는 침묵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온다연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시간이 상처를 치유한다고 말하지만, 유강후는 시간이 모든 진실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단 한 가지, 온다연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안심은 유강후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더는 그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다연이가 깨어났어요. 한 번 가서 봐주세요. 강 대표님이 준 약 효과가 대단했나 봐요. 꾸준히 복용하면 건강이 훨씬 좋아질 것 같아요.”잠시 말을 멈췄던 안심이 다시 입을 열었다.“다연이 일에 관해서만큼은 제가 쉽게 넘어갈 수 없어요. 지금 강 대표님이 다연이를 만나는 걸 허락하는 건, 강 대표님이 다연이를 진심으로 아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다연이를 상처 준 적이 있다면, 제 딸이 그런 사람과 함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유강후는 눈에 깊은 어둠을 띤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사모님, 진 씨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두 분께도 젊은 시절이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요. 결국 두 분은 함께하시게 됐잖아요. 저와 다연이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평생을 바쳐 다연이에게 보상할 겁니다. 저는 절대 다연이를 놓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유강후는 병실로 들어갔다.온다연은 침대 머리에 기대고 있다가 문소리가 들리자 엄마인 줄 알고 부드럽게 말했다.“엄마, 밤새 저 돌보시느라 눈이 빨개지셨잖아요. 얼른 가서 쉬세요. 그러다 예뻐지지 못하면 어쩌려고요.”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운이 좋아 보여요. 약 효과가 정말 뛰어난 것 같네요.”유강후는 곽혜진이 준비한 약이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보통 이런 상태에서 6~7일은 회복이 어려울 만도 한데 온다연은 하룻밤 만에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안윤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들어오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지만 강렬한 분위기와 또렷한 외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는 방 안에 있는 안윤희를 힐끗 바라봤고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안윤희의 온몸에 서늘한 전율이 퍼졌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으며, 마치 독을 품은 칼날처럼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안윤희는 자신이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는 유강후가 유일했다.안윤희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고 유강후가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죽은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안윤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매만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유강후는 더 이상 안윤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장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곽 의사가 방금 보내준 약이야. 먹어봐.”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온다연만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온다연은 병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특이한 향이 풍겼고 어딘가 피 냄새와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온다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강후는 병을 다시 가져가 약을 꺼내 직접 하나 삼켰다.“봐, 문제없어. 이 약 총 20알이야. 곽 의사가 그러는데, 재료가 워낙 귀해서 자기한테도 40알밖에 없었대. 그중 절반을 나한테 준 거거든. 이거 먹으면 건강 진짜 좋아질 거야. 어쩌면 앞으로 약 안 먹어도 될지도 몰라.”그가 말을 마치자 진수현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약이 20알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나를 먹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유강후는 아무 대꾸 없이 옆에 있던 곶감을 집어 온다연의 입가로
“너도 명색에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가문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명문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좋은 물건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니...”안심은 말을 멈추고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연아, 그저 한 세트의 장신구일 뿐이야. 너무 기분 상하지 말고, 엄마가 더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해 줄게.”온다연은 안윤희 눈에 잠깐 스친 뚜렷한 분노를 보고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딱 적합했다.“엄마, 더 큰 금고를 하나 마련해 주세요. 귀중한 물건들은 거기 보관하고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안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물건은 네가 직접 챙기는 게 맞지.”안윤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이건 분명 안윤희를 경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안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몇 개의 장신구일 뿐이었고 갚지 못할 정도의 거금도 아니었다. 대진 그룹의 부대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온다연은 바보처럼 자신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안윤희의 눈에 스친 냉소는 온다연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지난 3년간 아버지 진수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온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회사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것과 관리 능력이 없는 건 엄연히 다른 거라고.비록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사업을 결코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온다연은 진수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아빠, 이제 제 신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대진 그룹을 정식으로 이어받아 앞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온다연의 말에 안윤희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다연아, 아직 몸이 좋지 않잖아. 건강을 회복한 뒤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회사 일은 우리한테 맡겨도 되잖아.”온다연은 안윤희의 말을 무시한 채 진수현을 향해 말했다.“아빠, 언제까지 아빠 뒤에만 숨을 수는 없어요. 이
안씨 가문도 명문가이긴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미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만약 진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윤희는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게다가 예전에 온다연에게서 가져간 물건 중 상당수는 이미 팔아버려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그때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윤희의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다연아, 이러지 마. 예전에 네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을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말이 돼? 난 우리를 자매처럼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안윤희를 차갑게 바라보았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잠시 후, 진씨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안심은 안윤희가 온다연의 병상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윤희가 먼저 말했다.“이모, 다연이가 제가 예전에 받았던 장신구들을 다 돌려달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뭘 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어젯밤에 제가 다연이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둔 걸로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일이 있었는데 말이에요...”안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심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정말 그런 거야?”온다연은 상체를 일으키며 안윤희를 차갑게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언니, 연기 그만해. 그동안 언니가 내 물건 가져간 건 전부 언니 멋대로였잖아. 빌린다고 말했지만, 내가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어제 언니가 가져간 건 내가 결혼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장신구였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건데, 그냥 가져가더라. 난 허락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면 진씨 가문 물건은 언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야?”온다연의 말투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언제부터 진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한 식구가 됐는데?”
그때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몇 분 후, 안윤희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안윤희는 연한 하늘색 발목 길이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온다연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안윤희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안윤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안윤희는 장미꽃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다연아, 몸은 좀 괜찮아졌어?”하지만 온다연은 원래부터 백장미를 싫어했다.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왜 왔어?”안윤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깨어났다고 해서 와봤어. 그런데 아직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누가 진씨 가문을 노리기라도 했어?”온다연은 이번 일에 안윤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내가 깨어난 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언니가 더 잘 알지 않아?”안윤희는 순간 당황했다.온순했던 온다연이 요즘은 마치 가시가 돋은 듯 상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다연아, 혹시 어제 내가 목걸이를 빌려 간 것 때문에 아직도 화난 거야?”안윤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제 급해서 미처 말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빌린 거라고? 그럼 어제 가져간 장신구 다시 돌려줄래? 내가 다시 쓸 일은 없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내 혼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라 남에게 줄 수는 없어.”안윤희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돌려달라고 요구하다니, 감히!원래 그 장신구는 안윤희,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이 중간에
온다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제가 자리를 떠난 후, 모퉁이에 있는 빈방에 잠깐 머물렀어요. 그때 웨이터가 와서 음료랑 디저트를 좀 가져다줬길래 조금 먹었어요. 그리고...”그녀는 유강후를 힐끔 쳐다보고는 귀끝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그리고 창가에 앉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어요.”그때 유강후는 연시온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단연 돋보였다. 그 자리에 있던 여자 게스트들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온다연은 속으로 유강후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했다.온다연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창가에 잠깐 기대서 달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잠들어 버렸죠. 깨어보니 냉동창고 안이었고 정말 추웠어요...”온다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지옥에 다녀온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유강후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든 CCTV를 확인했지만, 2층의 녹화는 누군가에 의해 삭제됐어. 그리고 음료를 가져다준 웨이터는 오늘 아침 유람선 아래에서 발견됐는데, 이미 죽어 있더군.”유람선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다 확인했지만 범인은 치밀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심지어 웨이터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의 죽음으로 모든 단서가 끊겨버리고 말았다.온다연을 해치려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지난번의 뱀 사건도 아마 그 사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치밀하고 독한 사람의 짓이 분명했다.그 사람이 하루라도 살아 있는 한, 온다연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네 사촌 안윤희의 관계는 어때?”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언니와 관련된 일인가요?”사실 온다연은 안윤희를 좋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안윤희가 어머니의 조카이자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라는 이유로 지난 3년 동안 그럭저럭 무난하게 지내왔다.그런데 최근 들어 안윤희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여러
“꿈에서 제가 얼어붙을 듯한 방에 갇혀 있었어요. 너무 추워서 거의 죽을 뻔했는데 대표님이 나타나 저를 구해 주셨어요. 그리고 낯선 남자와 할머니가 저를 때리려 했는데 정말 무섭고 무자비했어요.”온다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유강후를 쳐다봤다.“강 대표님은 대체 제게 어떤 사람이었나요? 왜 제 꿈에 자꾸 대표님이 나오는 거죠? 그것도 전부 나쁜 일들에서만요.”유강후는 속이 쓰린 듯 온다연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네 남편이었다고 하면 믿을래?”온다연은 얼굴이 순간 빨개지더니 곧장 베개를 들어 유강후를 향해 던지며 화를 냈다.“정말 너무 싫어요! 그런 농담 하나도 안 웃기거든요!”유강후는 아침에 안심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이 서서히 무거워졌다.그는 온다연을 배신한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입은 상처 대부분이 자신과 얽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유하령은 감옥에 갔고 유자성은 척박한 사막으로 발령이 났으며 강혜숙은 분노 끝에 중풍에 걸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온다연이 받은 상처가 치유될 리 없었다.그리고 자신 또한 유씨 가문의 사람이었으며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어떻게 해야 온다연이 과거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어쩌면 온다연의 기억 상실은 하늘이 준 새로운 기회일지도 몰랐다.유강후는 떨어진 베개를 주워 온다연의 등 뒤에 놓으며 낮게 말했다.“농담이었어. 하지만 우리가 전에 알던 사이였던 건 사실이야. 사실을 난 예전에 당신 팬이었거든.”그는 온다연의 침대 옆에 앉아 과거를 떠올리며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처음 너를 알게 됐을 때, 너는 아직 어린 소녀였어. 나는 너보다 여덟 살이나 많았지. 너에게 다가갈 수 없어서 마음을 억누르며 매일 네가 빨리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어.”온다연은 그의 말을 듣고 멍해졌다.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고 목까지 붉게 물들었다.온다연은 말을 더듬으며 겨우 말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유강후는 온다연의 얼굴에 흐트러진
유강후는 침묵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온다연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시간이 상처를 치유한다고 말하지만, 유강후는 시간이 모든 진실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단 한 가지, 온다연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안심은 유강후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더는 그를 곤란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다연이가 깨어났어요. 한 번 가서 봐주세요. 강 대표님이 준 약 효과가 대단했나 봐요. 꾸준히 복용하면 건강이 훨씬 좋아질 것 같아요.”잠시 말을 멈췄던 안심이 다시 입을 열었다.“다연이 일에 관해서만큼은 제가 쉽게 넘어갈 수 없어요. 지금 강 대표님이 다연이를 만나는 걸 허락하는 건, 강 대표님이 다연이를 진심으로 아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다연이를 상처 준 적이 있다면, 제 딸이 그런 사람과 함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유강후는 눈에 깊은 어둠을 띤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사모님, 진 씨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두 분께도 젊은 시절이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요. 결국 두 분은 함께하시게 됐잖아요. 저와 다연이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평생을 바쳐 다연이에게 보상할 겁니다. 저는 절대 다연이를 놓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유강후는 병실로 들어갔다.온다연은 침대 머리에 기대고 있다가 문소리가 들리자 엄마인 줄 알고 부드럽게 말했다.“엄마, 밤새 저 돌보시느라 눈이 빨개지셨잖아요. 얼른 가서 쉬세요. 그러다 예뻐지지 못하면 어쩌려고요.”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운이 좋아 보여요. 약 효과가 정말 뛰어난 것 같네요.”유강후는 곽혜진이 준비한 약이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보통 이런 상태에서 6~7일은 회복이 어려울 만도 한데 온다연은 하룻밤 만에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유강후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안심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유강후의 대답은 온다연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다.안심은 자신의 직감이 이렇게 정확할 줄은 몰랐다.안심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갑게 굳어졌다.“3년 전, 다연이가 발견됐을 때 온몸에 상처투성이였고 폐 감염이 심각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병원에서 한 달을 누워있다 깨어났죠. 하지만 다연이의 몸과 마음은 심하게 망가져 있는 상태였어요. 말을 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특히 밤이 되면 상태가 매우 나빠져 여러 차례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죠.”안심은 온다연이 처음 돌아왔던 모습을 떠올리며 울컥했다.“다연이는 우리의 진심에 대해서 여러 번 물으며 의심했어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죠.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 대신 눈물만 흘리며 모든 감정은 거짓이라고 되풀이했어요. 염지훈의 설명에 따르면, 양부모의 학대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요. 그 집안은 남아선호 사상이 강해서 다연이가 큰 상처를 받았죠. 결국 전문 심리치료사의 도움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최면을 통해 과거를 조금씩 잊게 하면서 다연이가 지금처럼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강 대표님, 우리는 다연이가 H국에서 겪은 일을 조사해 보려고 했지만 동남아가 아닌 그곳은 우리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어요.”“지금 우리는 그저 다연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양부모가 다연이에게 준 상처는 우리가 평생을 바쳐도 다 회복시키지 못할 만큼 크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연이가 과거를 떠올리지 않길 간절히 바라요.”안심은 유강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강 대표님이 정말 다연이의 과거를 알고 있는 연인이나 친구였다면, 다연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왜 바다에 빠진 겁니까?”“왜 과거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렇게 고통스러워서
그때, 이권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고 손에는 두 병의 약을 들고 있었다.그 약은 며칠 전, 곽혜진이 준 것이었지만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줄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유강후는 약을 받아 한 병에서 한 알을 꺼내 직접 입에 넣고 삼켰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이 약은 다연이를 위한 겁니다. 다연이의 몸이 회복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일정 기간 복용하면 건강이 많이 좋아질 거고 지금 복용시키면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진수현은 화를 내며 말했다.“네가 준 물건 받지 않아.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진 회장님, 혹시 곽 의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 이 근처 섬에서 비밀 실험을 진행 중인 분입니다.”“이 약은 곽 의사가 직접 준 겁니다. 온다연을 위해 특별히 지은 약이고 매우 귀한 약입니다.”진수현은 잠시 분노를 억누르고 두 병의 약을 노려보며 말했다.“그 약이 진짜라는 걸 누가 증명하지? 다른 사람들은 이 약 한 알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어떻게 두 병이나 구했지?”유강후는 사실대로 말했다.“우리 가문의 어르신께서 곽 의사 가문과 오래된 인연이 있으십니다. 저 역시 곽 의사의 남편과 약간의 교분이 있고 마침 이 근처에 머물고 있다고 하셔서 이렇게 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유강후는 약을 안심에게 건네며 말했다.“진 사모님, 이 약을 한 알씩 다연이에게 복용시켜 주시길 바랍니다.”진수현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했지만 안심이 그를 막았다.“이 약에는 문제가 없어요. 방금 강 대표님께서도 우리 앞에서 직접 복용하셨잖아요. 곽 의사의 약은 정말 구하기 힘든데, 강 대표님이 이런 약으로 우리를 속일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안심은 약병에서 두 알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았다.약에서는 은은하고 깊은 향이 풍겼으며 어딘가 신비롭고 오래된 느낌이 담겨 있었다.안심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 온다연에게 약을 먹였다.유강후는 옆에서 안심이 온다연에게 약을 먹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