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아쉬운 듯 말했다.“입술 위의 그 작은 점, 정말 아쉽네요. 사실 굉장히 매력적이었는데 뭔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느낌이었거든요. 이제 없어지니까 좀 어색해요!”“근데 말이에요...”임정아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요즘 우리 사이에서 눈가 밑에 작은 눈물점 찍는 게 유행이거든요. 뭔가 절망에 빠진 것 같은 감성이 있는데 다연 씨처럼 이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한테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온다연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냥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랑 안 어울려요.”임정아는 온다연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정면을 바라보게 하며 말했다.“하려면 확실히 바꿔야죠. 게다가 이건 그냥 화장을 하는 정도예요. 약물 효과가 두세 달 정도밖에 안 가니까 시간이 지나면 점도 자연스럽게 흐려질 거예요.”온다연은 결국 묵묵히 동의했다.미용실에서 나온 뒤 온다연은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어깨에 닿는 짧은 머리는 그녀를 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어 딱 고등학생 같은 느낌을 줬다.그런데 새로 찍은 눈가의 작은 점이 얼굴 전체에 묘한 매력을 더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임정아는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다.“이렇게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배우를 안 한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이 얼굴을 사람들에게 안 보여준다는 건 완전 재능 낭비라니까요?!”“있잖아요, 배우 해볼 생각 없어요? 내가 보장하는데 지금의 주혜성보다 훨씬 더 뜰 거예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다연 씨 팬이 될걸요?”그러나 온다연은 살짝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쉴 수 있는 곳 좀 찾아줄래요? 잠깐만이라도 자고 싶어요.”임정아는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가요.”그날 온다연은 저녁이 될 때까지 푹 잠들었다.눈을 뜨자마자 임정아는 그녀를 드레스룸으로 끌고 갔다.온다연은 처음으로 연예인의 드레스룸을 보게 되었고 그 규모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수백 평에 달하는 공간은 각종 명품 브랜드의 최신 시즌 의상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화려한
“자, 내가 오늘 예쁘게 꾸며줄게요!”임정아는 온다연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몇 번 꼬집고는 감탄했다.“역시 유강후, 뭘 좀 알긴 아네요. 매일 이렇게 탱탱하고 물기 가득한 미모의 여자를 끌어안고 있으니 놓을 리가 없죠!”“흥, 저런 개 같은 남자들은 누리는 것만 좋아해요. 오늘은 우리도 누려보자고요! 그 인간 생각은 그만하고 내가 남자 모델 열 명 불러줄게요. 다들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심지어 복근도 빵빵한 애들로다가.”온다연은 피부가 워낙 좋고 얼굴형도 예뻐서 임정아가 간단히 손만 봐줬을 뿐인데도 이미 돋보였다.모든 준비가 끝나자 임정아는 그녀를 끌고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한 클럽 앞에 멈춰 섰다.이곳의 단골인 듯 임정아가 들어서자마자 매니저는 나와 반겼다.곧 임정아는 장갑을 벗어 매니저에게 던지며 말했다.“내 동생 기분 풀러 왔어요. 새로 들어온 애들 있으면 순수하고 깨끗한 애들로 골라서 데려와요. 술은 필요 없고 음료로 대신해 줘요.”그러면서 온다연을 슬쩍 바라보며 덧붙였다.“내 동생은 술 못 마시거든요.”매니저는 온다연을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새로 계약한 모델분이신가요? 완전히 대세 얼굴인데요. 정아 씨 안목은 역시 최고입니다!”임정아는 온다연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며 경고하듯 말했다.“헛소리 하지 마요. 이 친구는 이런 업계 사람이 아니니까.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요.”그러나 매니저는 여전히 온다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에이, 꼭 업계 사람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제가 보너스 많이 챙겨드릴게요. 7대3, 어때요?”임정아는 그에게 침을 뱉는 시늉을 하며 단호히 말했다.“닥쳐요. 이 애는 술자리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망상은 여기서 끝내요. 계속 이러면 저 그냥 갈 거예요?”매니저는 그제야 아쉬운 듯 시선을 거두었다.그렇게 임정아는 온다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가요. 내가 오늘 제대로 된 세상을 보여줄게요. 어떤 게 진짜 미의 향연인지 알게 될 거예요.”
그 남자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이런 화려한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깨끗한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얼굴 또한 맑고 단정했다.눈빛은 밝으면서도 약간의 풋풋함이 스며 있었으며 눈가에 찍힌 작은 ‘눈물점’은 마치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자리해 묘한 감성을 풍겼다.놀랍게도 그의 모습은 온다연이 알고 있던 주한과 무려 7,8할이나 닮아 있었다.온다연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임정아는 온다연이 그를 바라보며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마음에 들어 한 줄 알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참, 역시 어린 여자애들은 다 이런 스타일 좋아하더라. 저 사람 최근 대세인 주혜성이랑 닮았잖아요. 저 사람 고르는 손님이 정말 많다니까요? 근데 다연 씨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그러더니 손짓하며 그를 불렀다.“야, 너, 이리 와봐!”그 남자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다가왔다.부드러운 조명이 그의 몸을 감싸며 마치 석양빛을 두른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그 모습은 온다연에게 과거 학교 끝난 오후, 교문 앞에서 손을 흔들던 주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그는 항상 따뜻한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다연아, 오늘 저녁은 단팥죽 만들어 줄게.”금세 남자는 온다연 앞에 섰다.“안녕하세요. 저는 허한이라고 합니다.”‘주한? 허한?’온다연은 잠시 멍해지며 중얼거렸다.“한아...”허언도 잠시 멍해지더니 귀 끝이 빨개졌다.“한아라고 불러도 괜찮아요.”온다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예전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텔에서 술을 팔던 일을 했었기에 이런 곳의 규칙은 잘 알고 있었다.“여기엔 무슨 술이 있어요?”허한은 테이블 위의 메뉴판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원하는 거 아무거나 고르세요.”그러자 온다연은 몇 병을 대충 골랐고 임정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술을 마시겠다고요? 미쳤어요? 다연 씨 몸 생각은 안 해요?”하지만 온다연은 대답하지 않고 허한을 바라보며 멍한 눈빛으로 있었다.
남자는 맞춤 제작된 검은 셔츠와 같은 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범한 복장일 뿐인데도 그가 입으니 유난히 고급스럽고 품격 있어 보였다.다만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날카롭고 주변을 압도하는 기세는 누구도 쉽게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만들었다.곧 그는 홀 안으로 들어섰고 강렬한 눈빛으로 주변을 휘둘러보며 차갑게 말했다.“사람은 어디 있나?”이권이 황급히 대답했다.“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방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립니다.”그때 매니저가 나섰다.“이보세요, 손님.경원시의 소씨 가문 들어보셨겠죠? 저희 써니 클럽 그쪽과 조금 연계가 있는데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시는 게...”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서늘한 살기를 내뿜었다.“임정아가 있는 방 번호가 어디지?”클럽의 규칙상, 손님의 신원이나 정보를 누설하는 것은 절대 금지였다.더군다나 임정아는 이곳의 최상위 VIP 손님 중 하나였다.매니저는 눈앞의 남자가 두려웠지만 규칙을 깨고 정보를 누설할 용기는 없었다. 하여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분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아마 잘못 찾아오신 것 같...”“우두둑!”그러나 매니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뼈가 부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그 소리는 명확하고 잔혹했다.매니저는 무릎을 꿇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당신 대체 누구야!”유강후는 이미 모든 인내심을 잃었다.온다연이 임정아와 함께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그는 매니저의 무릎을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마지막으로 묻는다. 임정아 어디에 있어?”매니저는 공포에 휩싸인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봤다. 이 남자는 자신을 죽일 작정이라는 것이 확실했다.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매니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1103호, 1103호 방에 있어요!”1103호 방 안, 온다연은 점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마치 술을 마신 듯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온다연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본 순간 표정이 급변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는 유강후 곁을 지키며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이다.곧이어 유강후의 그림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깜짝 놀란 임정아는 서둘러 온다연을 끌어당겼다.“다연 씨, 얼른 숨어요.”그러나 온다연은 꼼짝도 하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유강후를 쳐다보며 답했다.“안 숨을 거예요.”이 큰 경원에서도 짧은 시간 만에 그녀를 찾아냈는데 작은 룸 안에 숨는다 한들 금방 들키기 마련이다.유강후의 싸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에는 온다연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냉혹함이 잔뜩 배어있었다.그의 발걸음은 온다연을 향해 걸어갔지만 시선은 허한의 얼굴에 머물렀다.허한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목소리에는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온다연, 이 사람 누구야?”온다연은 그저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허한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온다연이 의도한 것임을 알아챘다.주한과 매우 닮아있었기에 온다연은 이 점을 이용하는 게 틀림없다.‘간이 부었네.’도망친 후 염지훈과 함께 있는 것도 모자라 임정아를 따라 이런 곳에서 남자까지 불렀으니 유강후는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 거지?’유강후의 심장은 이리저리 잔인하게 짓밟혔고 숨 막힐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늘 사람들의 관심과 대접을 받으며 살아온 그에게 이런 감정은 매우 낯설었다.그가 버리는 사람은 있어도 그를 버리는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이렇게 그의 마음을 갖고 노는 사람은 온다연이 처음이다.유강후는 그동안 온다연을 너무 내버려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무슨 행동을 하든 전부 감싸준 건 그만큼 유강후가 많이 사랑한다는 뜻인데 온다연은 이런 줄도 모르고 클럽에서 남자를 부르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뭔가 잘못됐음을 눈치챈 임정아는 본능적으로 온다연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죠?”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걷어찼
유강후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러게 누가 남자를 부르래? 원래는 잘 살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너 때문에 앞으로 손도 못 쓰는 병X이 된다고. 알겠어?”“이 모든 건 네가 내 말에 복종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야.”유강후는 싸늘한 눈초리로 한번 훑어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처리해.”유강후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가 허한을 바닥에 눌렀다.곧이어 그의 손은 잔인하게 짓밟혔고 공기 중에는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허한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이를 본 온다연은 필사적으로 반항했다.“미쳤어요? 아무런 죄 없는 사람한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에요. 강후 씨는... 반드시 천벌 받을 거예요.”아무리 발악해도 유강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손은 점점 더 뭉개졌고 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한 허한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하지만 이것은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온다연은 괴롭힘을 당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처럼 말이다.지금 이 순간 온다연은 허한에 빙의되었고 유강후는 끔찍한 가해자나 다름없었다.눈물이 앞을 가려오며 그녀는 목 놓아 울부짖었다.“강후 씨, 당신은 악마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그거 알아요? 나도 이렇게 강후 씨 조카한테 밟혔다는거? 걔도 지금처럼 내 손을 밟았어요. 강후 씨도 그 인간들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위선적인 척 좀 그만해요.”“걔는 변태를 불러와서 날 성희롱까지 했어요. 강후 씨도 똑같이 그럴 거예요?”“심지어 영상까지 찍었어요. 그 영상은 모든 사람이 보게 되었고요. 똑같이 해봐요.”“마침 경호원들이 있네요. 시켜봐요. 유하령이 했던 것처럼 똑같게.”“벼락 끝으로 밀어붙이라고요. 그러면 나중에 뛰어내려서 죽을 거예요. ”“강후 씨, 난 당신을 평생 원망할 거예요.”...흠칫한 유강후는 정신이 번쩍 들어 이성을 되찾았다.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
이때 경호원에게 제지당하던 임정아가 달려와 유강후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내가 잘랐어요. 문제 있어요? 머리를 자르든 말든 다연 씨의 자유가 아닌가요? 대표님이 무슨 자격으로 다연 씨의 자유까지 통제하려는 거죠?”“그리고 아까 그분은 옆에서 술 마신 게 전부예요. 손을 짓밟아 부러뜨리는 건 너무 잔인한 행동이 아닌가요?”“대표님처럼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아무런 시련도 없이 잘만 살고 있는 게 저는 솔직히 너무 억울해요.”“대표님도 봉현수랑 똑같은 미친X이잖아요. 당신들은 다른 사람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눈빛은 극악무도했고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온몸으로 스산함을 뿜어냈다.그 모습에 임정아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더욱 분노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다연 씨도 사람이에요. 대표님 소유의 장난감이 아니라고요. 왜 머리를 자르는 것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거죠? 대표님이 뭔데요? 신이라도 되는 거예요?”임정아는 온다연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기며 말을 이었다.“다연 씨는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아요. 옆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정말 모르겠어요?”“대표님이 능력 좋은 사람인 건 알겠어요. 이 바닥에서 대표님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알지만 그게 뭐 어때서요?”“다연 씨는 언젠가 대표님을 버리고 도망칠 거예요. 이건 시간문제라고요. 아무리 잡고 있어도 소용없어요.”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임정아는 눈앞의 유강후가 눈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은 임정아의 폭언에 끊어진 지 오래였고 순식간에 악마에 빙의되어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졸랐다.온다연을 조를 때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의 유강후는 일말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그는 임정아를 죽이려는 마음뿐이었다.온다연을 데려간 건 둘째라 치고 머리를 자른 것도 모자라 클럽에서 남자까지 불렀으니 행동 하나하나 그의 마지노선을 넘어버렸다.특히나 마지막 한
유강후는 눈시울을 붉히며 단호하게 말했다.“놔. 그냥 마음대로 하게 냅둬.”그는 온다연이 아직 자신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총을 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러나 온다연은 결코 총을 내려놓지 않았고 오히려 총구를 그에게 겨누었다.“정아 씨는 잘못이 없어요. 제가 도와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그 손 좀 풀어요.”임정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금방이라도 질식할 지경이었다.온다연은 다급함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순간 총알이 날아갔고 결정적인 순간에 경호원이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을 옆으로 쳐냈다.날아간 총알은 유강후 뒤에 있는 스크린을 명중했다.쨍그랑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산산조각이 났고 마치 지금 이 순간 유강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그는 손을 풀고 꼼짝하지 않은 채 멍하니 온다연을 바라봤다.사실 온다연도 자신이 총을 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헛걸음 물러섰고 많이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그 시각 숨통이 트인 임정아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연거푸 기침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온다연은 재빨리 달려가 임정아를 부축했다.“괜찮아요?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말 죄송해요...”임정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잘못한 건 다연 씨가 아니라 저 사람이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사람을 제멋대로 통제하고 괴롭히고 해치는 게 잘못된 행동이니까.”임정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강후를 째려봤다.“정말 너무하시네요. 대표님의 이런 행동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어요?”“대표님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단언컨대 나중에 이 모든 걸 똑같이 돌려받을 거예요.”이때 문이 열리며 송지원이 사람을 데리고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임정아가 내 여자를 데리고 이딴 곳에 온 것도 모자라 남자까지 불러서 술 마셨어. 쟤를 어떻게 처리하든 내가 알바는 아니지만 다음부터는 조심
겉보기로만 보면 유민준은 유강후의 저렴한 복사본 같았다.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감추지 못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고 온다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무거웠다.그는 더 이상 다가서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미안해. 내가 예전에 정말 많은 잘못을 했어. 하령이랑 같이 널 괴롭히기도 했고... 근데 난 그냥 장난인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더럽고 비열한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좀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너 그런 고통 안 겪었을 텐데...”온다연은 한치의 감정도 없이 단칼에 잘랐다.“이제 와서 그런 말 해서 뭐해요? 원래는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어요. 근데 오빠가 날 한 번 살려줬으니 그걸로 끝내고 싶어요. 이제부터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 다시는 제 눈앞에 나타나지 마세요.”그 차디찬 말 한마디가 유민준 마음속 마지막 환상마저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꼭 움켜쥐며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처음... 네가 본가에 들어온 그날... 내가 널 지켜줬다면... 지금 이 결말은 달라졌을까? 네 곁에 있는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었을까?”온다연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오빠는 유강후의 발톱 하나만큼도 못 해요. 그러니 오빠 손에 쥔 그 주식 들고 지금 당장 꺼지세요. 그게 오빠가 살길이에요.”유민준은 말없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신이 완전히 끝났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서류를 이권에게 건넸다.“이권 씨, 이 서류를... 작은아버지께 전해주세요. 본가의 재산은 이젠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요. 다만... 아버지 유골만이라도 묘지에 모시게 해주세요. 명절마다 인사드릴 수 있게만 해주시면 돼요.”그러자 이권은 냉정하게 답했다.“서류는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대표님께서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고 부탁을 들어주실지도 장담 못 드립니다.”유민준은 고개를 숙였다.“알아요. 부탁드릴게요.”그와 말하는 동안 온다연은 이미 차에 올라탔다.“이권 씨, 출발해요.”차는 곧 조
“다연이가 전에 겪은 고통... 똑같이... 아니 그보다 수천 배로 돌려줘야 해.”“안 돼요. 그러면 안 돼요!”유하령이 비명을 질렀다.“아빠가 죽었어요! 아빠가 모든 죄를 짊어졌잖아요. 제발... 저를 그렇게 만들지 마요!”하지만 유강후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사람이 죄를 씻고 싶어 했다고 해서 내가 용서해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그때 너희가 법을 피해 가며 사람을 괴롭혔지. 좋아. 지금 잘됐네. 정신병자들은 사람을 때리고 죽여도 법의 심판을 안 받아. 그러니까 네가 그런 벌을 받는 것도... 네 업보지.”유하령은 울부짖으며 욕을 퍼부었지만 유강후는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데리고 가. 하지만 일단 죽이지는 마. 죽어버리면 재미가 없잖아.”“네! 대표님!”그는 더는 뒤 돌아보지 않고 다시 식사하던 곳으로 돌아갔다.온다연은 그가 돌아오자마자 미리 까둔 귤 한 조각을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얼른 먹어요. 입술이 다 터졌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물은 마셔야죠.”그녀는 다시 뜨거운 물을 따라 그의 손에 건넸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귤 한 조각을 조용히 입에 넣었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했다.“유하령... 정신병원으로 보냈어.”온다연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 정도면 오히려 관대한 거네요. 하지만 제가 더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아저씨가 알아서 하세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하루 종일 나랑 같이 있었는데... 피곤하지 않아?”온다연은 그의 손바닥에 볼을 비비며 속삭였다.“아니요. 아저씨가 있으니까 하나도 안 피곤해요. 오히려 제가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유강후는 그녀를 들어 올려 무릎 위에 앉히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이 가슴 가득 퍼지며 왠지 모르게 조금은 덜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다연아... 유민준 걔는...”“전 걔랑은 끝났어요.”온다연이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유민준이
온다연은 처음부터 유하령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유씨 집안이 다 무너지든 모두가 죽든 솔직히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유강후가 저렇게 무너져 있는 걸 보니... 그녀는 가슴이 죄여들 듯 아팠다.그건 말로 다할 수 없는 통증이었다.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은 사람이니 상처도 받고 아프고 지치고 힘들어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알았기에 그래서 그녀는 그를 위해 조금씩 물러서기로 했다.후회가 되고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를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었다.그 순간 유강후가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다연아, 다시는 네가 상처 안 받게 할게. 여기 바람이 좀 세네. 안으로 들어가자.”얼마 지나지 않아 장 비서가 따뜻한 팥죽과 집밥 느낌의 반찬들을 함께 보냈다. 팥죽이 양이 많지 않아서 온다연은 근처 음식점에 연락해 직접 빚은 만두를 더 주문했고 따뜻한 반찬도 한 상 가득 더 보냈다. 그리고 따라온 경호원들과 비서진도 함께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었다.밥을 먹던 도중 누군가 조용히 병실 안으로 들어와 유강후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유강후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는 온다연을 향해 말했다.“잠깐 나갔다 올게. 너희끼리 먼저 먹고 있어.”온다연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눌러 앉히며 말했다.“넌 여기 있어. 잠깐이면 돼. 금방 올게.”그러더니 탁자 위에 있던 귤 하나를 들고는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거 까놔. 돌아와서 같이 먹자.”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버님 괜찮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유강후는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병실 문을 나서자 이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하령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하고... 대표님, 정말 그냥 놔두실 겁니까? 설마... 진짜 용서해 줄 생각은 아니시죠?”유강후의 목
그때 유하령이 옆에서 갑자기 소리쳤다. “피... 피가 너무 많아. 아빠가 죽었어. 우리 아빠가 죽었다고요!”그 소리에 유재성이 갑자기 격하게 기침하더니 급기야 피를 토해냈다.유강후가 급히 그를 부축하며 외쳤다. “유하령 당장 끌어내. 간호사, 의사 불러요. 빨리!”유재성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네 큰형… 가서... 빨리 가서 봐...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서...”그러자 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그리고 그곳엔 이미 숨이 멎은 유자성이 들것에 실려 있었다. 의료진이 마지막 조치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모든 게 늦은 상태였다.유민준은 그 곁에 무릎 꿇고 앉아 피투성이가 된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복도와 방 안 바닥엔 핏물이 고여 있었다.유강후가 다가서자 의료진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유자성 씨는 휴게실에서 스스로 목을 그었습니다. 경동맥을 절단한 상태였고 발견 당시엔 이미 호흡이 없는 상태였습니다.”유강후는 멍하니 굳은 채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유강후라고 왜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랴.어찌 됐든 자기 형이었고 어릴 땐 정말 서로 우애가 좋았다.진짜 틀어지기 시작한 건 유하령을 감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그 뒤로 천천히 멀어졌고 결국엔 남이 되어버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을 해친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하지만 유자성이 이런 방식으로 끝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의료진이 유자성의 시신 위에 흰 천을 덮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그때 유민준이 그의 옷깃을 잡고 울부짖었다.“작은아빠... 이게 진짜예요? 아빠 진짜... 진짜 죽은 거예요? 작은아빠, 아빠 아직 숨 쉬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유자성이 들것에 실려 나간 뒤에야 유강후는 고개를 돌렸고 차갑게 말했다.“민준아, 네가 아직 남자로 살고 싶다면... 아버지 장례 제대로 치러. 네가 맡은 회사 두
유재성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유자성을 보지 않았다.유자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자식의 손을 끌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하지만 병실 문 앞에 이르자 그는 유하령과 유민준을 멈춰 세우고 단호하게 말했다.“문 앞에 무릎 꿇고 있어. 절대 일어서지 마. 그래야 할아버지가 마음을 돌리실 수 있어. 이 집에서 쫓겨나면... 너희는 진짜 끝장이야. 예전에 너희가 적으로 돌린 사람들은 다 너희를 죽도록 밟고도 남을 사람들이야.”유하령이 뭔가 말하려 하자 유자성이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특히 너, 유하령. 또 사고 치면... 바로 해외로 보내버릴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마. 오늘 이 사단... 절반은 네가 만든 거야.”유하령은 울먹이며 애원했다.“아빠... 잘못했어요. 정말이에요. 제발... 할아버지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쫓겨나는 건 싫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유자성은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네 엄마가 너무 일찍 떠났지.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내가 너희한테 너무 오냐오냐했나 봐.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다 감췄고... 결국 오늘 이런 꼴이 났네. 다 내 책임이니 내가 다 짊어지고 갈게. 하령아, 성질 좀 고쳐. 앞으로 사람 대할 땐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 나쁜 생각 갖지 말고 받은 호의엔 반드시 보답해야 해. 부모 말고는 조건 없이 널 사랑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유하령과 유민준은 아버지의 말에 충격과 절망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들의 눈앞에서 유자성은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여기 그대로 있어. 할아버지가 용서 안 하신다고 해도... 일어나지 마라. 난 짐 좀 챙기고 금방 올게.”그는 마지막으로 두 자식을 깊게 바라보고는 병원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30분쯤 지났을까.복도 저편에서 갑작스러운 비명이 터졌다.“사람이 자살했어요!”“피가... 피가 너무 많아!”“빨리 응급실로!”“늦었어요... 이미 숨이...”“유 회장님 장남이라잖아! 큰일 났어!”...유하령과 유
“제발... 제발 우리를 본가에서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재산은 하나도 원하지 않아요. 단 한 푼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그냥 본가에 남게 해 주세요. 아버지의 아들로 남게만 해 주세요...”하지만 유재성은 눈을 감은 채 싸늘하게 말했다.“그만 가. 네 자식들 데리고 이 집을 나가. 네 호적은 이미 본가에서 정리하라고 지시했어. 앞으로 넌 유씨 가문의 자손이 아니야. 너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나 유재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유자성은 긴 침묵 끝에 고개를 깊이 숙여 유재성을 향해 세 번 힘껏 머리를 조아렸다.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 평생 아버지의 아들이라 믿어왔습니다. 그게 제 자랑이었어요... 제가 유씨 가문 사람이 아니었다니... 본가에서 쫓겨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럴 만큼 제가 큰 죄를 지은 거겠죠.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겠죠. 아버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하령이랑 민준이... 애들까지 함께 쫓아내진 말아 주세요. 애들은 아직 젊고 앞길이 먼 아이들이에요. 본가에서 내쳐진다는 건 그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 될 겁니다. 사람들 눈에 짓밟히고 손가락질당하며 살아야 해요.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전부 다 제 책임이에요. 제가 잘못 키웠습니다. 전부 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하지만 유재성은 싸늘하게 대답했다.“너랑 나... 부자지간 인연은 여기까지야.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그만하고 그냥 가.”그제야 유하령의 표정이 무너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거짓말이죠? 우리 속이시는 거죠?”유민준도 조용히 무릎을 꿇었지만 아무 말 없이 유재성을 향해 조심스럽게 머리를 숙이며 절을 올렸다.“할아버지... 전 그동안 많은 잘못을 했습니다. 벌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제발... 본가에서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앞으로는 제대로 살겠습니다.”그는 진심이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고 철도 들었으며 맡은 두 회사 역
유자성은 입술을 달달 떨며 중얼거렸다.“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영원히 아버지의 아들이에요. 저 재산 같은 거 원하지 않아요. 한 푼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저를 본가에서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그러나 유재성은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이젠 됐어. 나는 너한테 줄 것도 빚진 것도 없어. 나도 오래 못 살아. 죽기 전까진... 더 이상 너희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유자성의 얼굴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갔고 그는 입술을 떨며 되뇌었다.“아버지... 제발, 절 쫓아내지 마세요...”그의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그 친자확인서는 진짜였고 유재성의 말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는 어릴 적부터 유재성 곁에서 자라났다.젓가락을 처음 쥐는 법, 글씨를 쓰는 법, 첫 출근 날의 마음가짐까지... 모든 것을 유재성이 직접 가르쳐줬다.그는 누구보다 유재성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그래서 그는 마침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친자확인서는 진짜였어. 아버지가 나를 본가에서 내치려는 것도 진심이네. 그렇다면 나는 진짜... 본가 사람이 아니겠네.’그가 평생 자랑스러워했던 그 성씨와 신처럼 떠받들었던 아버지... 그토록 자부심을 가졌던 본가의 명예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모든 것과 그가 수없이 입 밖으로 칭찬했던 동생 유강후조차... 결국 단 한 번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그 모든 건 그의 친부모가 목숨으로 대신한 빚이었고 남이 던져준 은혜에 불과했다.오만하고 자존심 강했던 유자성... 태어나서 한 번도 고개 숙여본 적 없는 본가의 장남이 알고 보니 그저 남의 집에서 얹혀살던 양자에 불과했다.그 진실은 마치 뾰족한 바늘처럼 그의 모든 꿈과 자존심을 찢어버렸다.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 세상이 전부 거짓처럼 느껴졌고 지금 이 순간조차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그는 손을 들어 자기 뺨을 두 번이나 사정
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호복을 가다듬은 뒤 안으로 들어가 손에 쥔 약을 유강후에게 건넸다.“아버님께 이 약을 드려요.”유강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다연아...”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고 싶은 말은 집에 가서 해요. 난 원래 그렇게 대인배 아닌 사람이에요. 날 해쳤던 사람은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분은 당신 아버지잖아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은 물러서 줄 수 있어요. 아저씨, 제 마음 저버리지 마요.”그 말에 유강후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가까지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감춘 채 약 하나를 꺼내 유재성의 입에 넣어주었다.약을 삼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재성은 숨이 한결 편해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강후야, 이게 무슨 약이냐?”유강후가 답했다.“곽 박사님이 다연이 몸조리하라고 주신 거예요. 다 먹지 않고 열 알 남겨뒀는데 혹시 몰라서요. 솔직히 저도 효과가 있는지는 몰라요. 그래도 해가 되진 않으니까요.”유재성의 눈빛이 반짝였다.“곽혜진? 그 여의사 말이야?”유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그때 유하령은 온다연을 노려보며 독설을 퍼부었다.“너 지금 내 할아버지한테 무슨 약 먹인 거야? 우리 할아버지 몸은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야. 네 따위가 내놓은 천한 약 따위 함부로 먹이면 안 된다고!”온다연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친자확인서를 집어 들었다. 대충 읽어본 그녀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유하령, 너... 너희 아버지가 유 회장님 친아들이 아니야?”유하령이 반박하기도 전에 온다연은 박장대소하며 말했다.“와, 오늘 진짜 운수 대통이네. 어쩜 이렇게 좋은 일만 생기지?”유하령은 절규하듯 외쳤다.“그건 거짓말이야. 전부 조작이야. 우리 아빠가 본가 사람이 아니라니 말도 안 돼! 이건 다 네 계략이야. 온다연, 왜 날 이렇게까지 망치려고 해?”온다연은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유하령, 넌 늘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 무
“네 아들 유민준... 그동안 무슨 사고들을 쳐왔는지 너도 잘 알겠지. 그나마 요 몇 년 좀 나아졌다 싶어서 내가 본가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두 회사를 맡긴 거야. 그 애 실력으로 그 두 회사 꾸려나가는 것도 벅찰 거야.”“그리고 네 딸 유하령은 어떤 인간인지 너 스스로 모르겠어? 예전 그 일들을 진짜 네 능력으로 덮은 줄 알아? 내가 평생 가장 미안한 사람은 현미와 강후야. 그 은혜 때문에 내 결혼을 망쳤고 내 딸을 희생시켰어. 다른 누구든 나를 원망해도 돼. 다 괜찮아.하지만 너, 유자성. 너만은 나한테 그럴 자격 없어.”유자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아버지, 아버지가 결혼생활 망친 걸 제 탓으로 돌리실 순 없죠. 그리고 제 어머니도 죄 없는 분이었어요.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강현미도 그 자리에 있었을 리 없었겠죠.”그 말에 유재성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오랫동안 침묵하던 그는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네 진심이었구나. 내가 평생 키워온 놈이 고작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었다니...”그는 분노 섞인 시선으로 유자성, 유민준, 유하령을 차례로 훑어보며 낮고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그럼 지금 여기서 내가 이유를 설명해 주지.”“강후야, 책상 위에 있는 다른 서류봉투를 저놈한테 줘라.”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그 서류봉투를 유자성에게 던졌다.유자성은 그 안에 또 다른 유언장이 들어 있을 줄 알고 펼쳤지만 그 안엔 뜻밖에도 친자 확인서가 들어 있었다.그는 확인서의 이름과 결과를 보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절규하듯 외쳤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없어!”옆에 있던 유하령도 깜짝 놀라 확인서를 낚아채더니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아니에요. 이건 조작이에요. 전부 다 우리를 본가에서 쫓아내려고 짠 계략이잖아요!”“분명 온다연이야! 그 여자... 분명 삼촌한테 뭔가 시킨 거야. 나를 망하게 하려고 다 내 모든 걸 빼앗으려고 한 거라고!”“닥쳐!”유강후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