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그동안 한 번도 병원을 떠난 적이 없었다.비록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매일 아이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이 너무나도 빠른 날들이 있었다는 점을 말이다.그녀의 가슴이 세차게 조여들었고 목구멍에서 다시 쓴맛과 피비린내가 올라왔다.이 병원은 유강후의 소유였다.그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꾸밀 수 있는 곳이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온다연은 마음속으로 외쳤다.‘이 아이는 내 아이야. 그리고 그 사람의 아이이기도 해!’유강후가 아무리 차가운 사람일지라도 그녀와 이 아이를 이렇게 잔인하게 대할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능성은 떠올리지 못했다.그 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말이다.한참을 화장실에서 멍하니 있다가 온다연은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다.밖에 서 있던 장화연은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과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사모님, 어디 안 좋으신 거예요? 주성원 선생님 불러올까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 없이 침대로 걸어갔다.그리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이는 우유를 다 마시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작고 고운 얼굴이 평화롭고 사랑스러워 보였다.온다연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졌다.익숙한 온기와 은은한 우유 냄새...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다.‘아니야, 이 아이는 내 아이야!’그녀는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가.”잠결에 아이는 손을 움직이며 온다연의 옷자락을 잡았다.그 순간, 온다연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뒤이어 그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침대 옆에 천천히 앉았다.장화연은 온다연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채고 조심스레 말했다.“그래도 주성원 선생님을 부르는 게 좋
장화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은 요즘 정말로 일이 많습니다.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모님...”그때, 온다연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집사님, 집사님이 만들어주시는 해산물 죽이 먹고 싶어요. 지금 가서 만들어서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그러자 장화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도련님은 며칠 후에 돌아오실 겁니다.”이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병실을 나섰다.장화연이 떠난 후, 온다연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정아 씨, 부탁할 게 있어요.]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무슨 일인데요?]온다연은 잠든 아이를 돌아보았다.작고 귀여운 얼굴로 평온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눈을 감고 낮게 속삭였다.“아가, 너 정말 엄마의 아이가 맞니?”물론 아기는 대답할 수 없었다.잠시 침묵한 후, 온다연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고 자신의 머리카락도 뽑아 휴지에 싸서 보관했다.그리고 다시 임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DNA 샘플 비교 좀 해줘요. 믿을 만한 기관으로 부탁해요.]그러자 임정아는 의아한 듯 답을 보냈다.[갑자기 무슨 DNA 비교예요? 설마 다연 씨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예요?]온다연은 간결하게 답했다.[부탁할게요.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알겠어요. 지금 어디예요? 내가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면 다연 씨가 직접 가져올래요?][밖으로 나가기 좀 어려워요. 사람이 오면 좋겠어요. 지금 인평 병원에 있어요.][마침 내 비서가 그 근처에 있어요. 병원 밖으로 전달할 수 있겠어요?][고마워요.]온다연은 전화를 끊고 머리카락을 휴지로 싼 뒤 작은 약통에 넣었다.그리고 병실을 나가 어린 간호사를 찾아냈다.그녀는 몇만 원의 현금을 건네며 약통을 주고 말했다.“여기에는 특효 화상약이 들어 있어요. 병원 밖에 있는 제 친구에게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간호사는 온다연의 신분을 알아채고 돈을 받으
어두운 골목.가로등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온다연은 골목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아당겨져 어두운 구석으로 끌려 들어갔다.벽 앞에는 술 냄새를 풍기는 취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들은 온다연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와 남자들의 거친 움직임에 온다연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그들 중 한 남자는 즉시 온다연의 뺨을 세게 때렸다.“감히 소리쳐? 뭘 잘했다고 소리치는 거야!”“오늘 네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 가만히 있어. 이 오빠가 기쁘게 해줄 테니까.”...이때 갑자기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골목을 가로질러 왔고 차창이 천천히 내리자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드러나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 행위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옆에 있는 운전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나가서 말릴까요?”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그냥 가!”이때 온다연은 이미 옷이 찢어진 상태였고 갑자기 나타난 차량 때문에 그녀는 더욱 몸부림쳤다.“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술 취한 남자는 온다연에게 아직도 도움을 청할 힘이 남아있는 것을 보자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두 번 더 때렸다. 또한 온다연의 몸을 잡고 있는 손에도 더욱 힘을 주어 치마를 벗기려고 했다.온다연이 절망하려고 할 때 이미 시동을 걸었던 차가 갑자기 멈췄다.그리고 차 문이 열리더니 키 큰 남자 두 명이 내려왔다.앞에 선 남자는 마른 체격에 브랜드 로고가 없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차갑고 위엄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빛나는 것 같았다.그는 구석에서 무자비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온다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빛이 너무 어두워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낮은 울음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남자의 기억 속 목소리와 다소 비슷했다.남자는 차갑고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들어가.”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겨냥당한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온다연은 문에 한껏 기대어 최대한 유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하지만 유강후는 바로 앞에 있고 공간이 좁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유강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꼈다.맑은 솔방울 같은 냄새에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온다연의 피부에 다가왔다. 그러자 온다연은 갑자기 3년 전의 점심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술에 취한 유강후가 방에 쳐들어와 통제를 잃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떠올랐다.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유강후와의 거리를 벌렸다.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에 유강후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 온다연의 팔은 유강후의 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닿은 곳은 살짝 화끈거리며 유강후의 기운이 남았다.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 저택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온다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낮아서 유강후는 그녀를 혼내고 싶었다.게다가 이 3년 동안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니.하지만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내 번호 차단했어?”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번호 바꿨어요.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 나서 모든 번호가 사라졌거든요.”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 사람들 중 이모 심미진의 번호만 저장했다.“휴대폰 줘 봐.”온다연은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살짝 낡은 휴대폰이었는데 스크린은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온다연의 카카오톡 QR코드를 스캔해 추가했다.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까는...”“알아요.”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잘랐다.“그분들 다 삼촌 친구들이잖아요. 농담한 거 알아요. 괜찮아요.”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온다연은 온 힘을 다해 유민준을 밀어냈다.“오빠, 정신 차려요.”유민준은 표정이 변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온다연, 순진한 척하지 마. 너랑 네 그 빌붙으려는 이모가 뭐가 달라?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거절해? 그럼 설마 더 대단한 걸 바라는 거야?”온다연은 표정이 바뀌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유씨 가문이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집안이란 거 알아요. 당신들한테 빌붙을 생각도 없었어요.”온다연의 표정이 바뀌자 유민준은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조금 전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 그런 뜻 아니야. 나랑 만나면 명분 주는 것 외에 다른 건 다 줄 수 있어. 예전에 내가 지나쳤던 거 맞아. 내가 하령이 시켜서 널 괴롭혔던 것도 인정할게. 그런데 다 지난 일이잖아. 앞으로 내가 배로 잘해줄게. 다연아, 너 나 좋아하지...”유민준이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온다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끼어들었다.“오빠 틀렸어요. 나 오빠한테 관심 없어요.”온다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정확히 말하면 난 유씨 가문 사람들에게 관심 없어요. 조금도 없다고요.”유강후는 그 말을 듣고 창문에 올려놨던 손을 멈칫하며 살기를 내뿜었다. 차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유민준은 그 말에 화가 났다.“나한테 관심 없다고? 그놈 때문이야?”유민준은 주머니에서 사진 여러 장을 꺼내 온다연의 얼굴에 던지며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놈 좋아하지?”사진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불빛이 어두웠지만 온다연은 사진 속 남자가 그녀의 동기 진태윤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요즘 인턴십 때문에 온다연은 진태윤과 가까워졌는데 유민준이 그들의 사진을 찍을 줄은 몰랐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을 보고 온다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빠, 유씨 가문이 대단한 건 아는데요. 제 학교 친구들은 건드리지 마요. 태윤이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 태윤이 안 좋아해요.”유민준은 손을 뻗어 온다연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내려다보
그 남자는 바로 유강후였다.유강후는 고급 소재의 흰 셔츠에 긴 다리를 감싸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차갑고 위엄 있는 표정을 지은 채 길에 서서 눈길을 끌었다.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하얀색 명품 정장을 입었는데 몸매의 볼륨감이 잘 드러났다. 맑고 귀여운 외모에 눈웃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두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곧 여자는 유강후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이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본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을 얼굴에서 떼어냈다.하지만 이때 유강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멀리서부터 안도연을 바라보았다.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다연은 유강후의 눈빛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고 순간 머리가 질끈거리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유강후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온다연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상현 씨, 미안해요. 저 볼일 있어서 이만 가야 할 것 같아요.”강상현이 말도 하기 전에 온다연은 이미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듯한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유강후와 그 여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피하기에는 너무 늦은 온다연은 몸을 곧추세우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할 수 없이 외쳤다.“삼촌!”유강후은 시선을 온다연이 입고 있는 무릎까지 오는 하얀색 원피스로 옮겼다가 아픈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친구랑 여기서 켜피 마신 거야?”“강후 씨, 누구야? 왜 강후 씨를 삼촌이라고 불러?”여자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유강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형수님의 조카야.”여자는 놀란 듯 온다연을 훑으며 말했다.“강후 씨가 말했던 그 조카군요.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요?”여자는 손을 내밀어 온다연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반가워요. 저는 강후 씨 친구 나은별이에요.”사실 나은별이 자기 소개하지 않아도 온다연은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전에 유씨 가문에서 나은별을 여러 번 몰
위험한 분위기가 조금씩 다가오자 온다연은 공기가 질식하는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다.가슴이 답답해서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벽에 등이 닿아 더 이상 후퇴할 수 없었다.하지만 유강후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키 큰 유강후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온다연의 몸에 곧 닿을 것 같았다.온다연은 옆에 있는 녹슨 수도관을 꼭 붙잡고 눈을 내리깐 채 감히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불빛이 어두워서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빨개진 것을 가렸고 매혹적인 입술만 보일 뿐이었다.유강후의 시선은 반쯤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그의 어조는 더 차가워졌다.“누구를 피하고 싶어서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거야?”유강후는 아주 가까이 다가왔고 큰 몸으로 온다연을 가리자 마치 커다란 그물에 걸린 듯 도망칠 수 없게 만들었다.온다연은 유강후가 너무 가까이서 압박을 주는 바람에 온몸에 힘이 풀려 다리를 주체할 수 없이 떨기 시작했고 머리도 너무 어지러웠다.“말해!”온다연은 입을 뻐끔거렸다.“삼촌, 저...”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몸이 앞쪽으로 쓰러졌다.기절한 건가?유강후는 쓰러진 온다연을 두 팔로 감쌌고 그제야 그녀의 체온이 무서울 정도로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고 허리를 굽혀 온다연을 안아 들었다.온다연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가 깜깜하고 빛이 전혀 없었다.당연히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고 생각한 온다연은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가죽의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부드럽고 딱딱한 무언가를 만졌다.소파인가? 아니면 의자?갑자기 어두운 불빛이 온다연의 머리 위로 비추면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일어났어?”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았고 그 어둠은 그녀를 휩쓸어버릴 것만 같았다.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온다연은 어리둥절했다.“사, 삼촌...”왜 자신이 어두운 차 안에서 유강후와 단둘이 있는 것일까?그의 부하 이권은 어디 간 걸까?온다연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
장화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은 요즘 정말로 일이 많습니다.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모님...”그때, 온다연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집사님, 집사님이 만들어주시는 해산물 죽이 먹고 싶어요. 지금 가서 만들어서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그러자 장화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도련님은 며칠 후에 돌아오실 겁니다.”이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병실을 나섰다.장화연이 떠난 후, 온다연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정아 씨, 부탁할 게 있어요.]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무슨 일인데요?]온다연은 잠든 아이를 돌아보았다.작고 귀여운 얼굴로 평온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눈을 감고 낮게 속삭였다.“아가, 너 정말 엄마의 아이가 맞니?”물론 아기는 대답할 수 없었다.잠시 침묵한 후, 온다연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고 자신의 머리카락도 뽑아 휴지에 싸서 보관했다.그리고 다시 임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DNA 샘플 비교 좀 해줘요. 믿을 만한 기관으로 부탁해요.]그러자 임정아는 의아한 듯 답을 보냈다.[갑자기 무슨 DNA 비교예요? 설마 다연 씨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예요?]온다연은 간결하게 답했다.[부탁할게요.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알겠어요. 지금 어디예요? 내가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면 다연 씨가 직접 가져올래요?][밖으로 나가기 좀 어려워요. 사람이 오면 좋겠어요. 지금 인평 병원에 있어요.][마침 내 비서가 그 근처에 있어요. 병원 밖으로 전달할 수 있겠어요?][고마워요.]온다연은 전화를 끊고 머리카락을 휴지로 싼 뒤 작은 약통에 넣었다.그리고 병실을 나가 어린 간호사를 찾아냈다.그녀는 몇만 원의 현금을 건네며 약통을 주고 말했다.“여기에는 특효 화상약이 들어 있어요. 병원 밖에 있는 제 친구에게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간호사는 온다연의 신분을 알아채고 돈을 받으
온다연은 그동안 한 번도 병원을 떠난 적이 없었다.비록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매일 아이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어느 순간 아이의 성장이 너무나도 빠른 날들이 있었다는 점을 말이다.그녀의 가슴이 세차게 조여들었고 목구멍에서 다시 쓴맛과 피비린내가 올라왔다.이 병원은 유강후의 소유였다.그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도 꾸밀 수 있는 곳이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온다연은 마음속으로 외쳤다.‘이 아이는 내 아이야. 그리고 그 사람의 아이이기도 해!’유강후가 아무리 차가운 사람일지라도 그녀와 이 아이를 이렇게 잔인하게 대할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능성은 떠올리지 못했다.그 아이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말이다.한참을 화장실에서 멍하니 있다가 온다연은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다.밖에 서 있던 장화연은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과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사모님, 어디 안 좋으신 거예요? 주성원 선생님 불러올까요?”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 없이 침대로 걸어갔다.그리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이는 우유를 다 마시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작고 고운 얼굴이 평화롭고 사랑스러워 보였다.온다연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아이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졌다.익숙한 온기와 은은한 우유 냄새...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다.‘아니야, 이 아이는 내 아이야!’그녀는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가.”잠결에 아이는 손을 움직이며 온다연의 옷자락을 잡았다.그 순간, 온다연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뒤이어 그녀는 아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침대 옆에 천천히 앉았다.장화연은 온다연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채고 조심스레 말했다.“그래도 주성원 선생님을 부르는 게 좋
온다연은 보고서를 내려다보았다.그것은 그녀의 아들 강우림의 혈액 검사 결과였다.한참을 훑어봤지만 겉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일부러 보냈다는 것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였다.그녀는 보고서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의사에게 보여주었다.의사는 데이터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몇몇 수치가 정상 범위를 약간 초과했으며 이는 폐렴 증상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만 설명했다.그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찾지 못했다.온다연은 이 정도로는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민 끝에 아이의 이름과 개인 정보를 모두 가린 뒤, 사진을 찍어 유명한 육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다.그리고 조금 더 많은 답변을 받을 수 있도록 소액의 광고를 걸었다.약 한 시간이 지나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초반에는 별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없었다.그러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물었다.[이 아이 부모님 혈액형은 어떻게 되나요?]그 댓글을 본 온다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만약 온다연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는 B형이고 유강후는 O형이었다.그런데 아이의 혈액형은 AB형이었다!의학적 상식으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머릿속이 어지럽고 귓속이 웅웅거렸다.심장은 마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곧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댓글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어머니가 B형이고 아버지가 O형이라면 아이가 AB형일 수 있나요?]댓글을 남기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아이는 조용히 쪽쪽이를 물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온다연이 아이의 손을 만지자 아이는 그녀의 엄지를 꼭 쥐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작고 맑은 눈망울은 너무나도 예뻐서 웃을 때면 별빛이 떨어진 듯 반짝였다.온다연은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가 아닐 수 있겠어?’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 아이는 내 아이야. 만약 이 아이
나은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며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 사실이에요?”소이섭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 아이는 온다연과 강후의 아들이 아닙니다.”그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차가운 기운을 담아 덧붙였다.“정확히 말하자면 온다연의 아들이 아니에요. 강후 같은 사람이 남의 아이를 키울 리가 없으니... 아마 온다연이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걸 알고 대리모를 찾은 걸 겁니다.”이 충격적인 사실에 정신이 멍해진 나은별은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그 판단이 맞는 것 같네. 당시 온다연은 임신 5개월도 안 됐는데 아이를 낳았다고 했어. 그렇게 작은 달수로 어떻게 아이가 살 수 있겠어? 그웬이 있었어도 불가능했을 거야...”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분명 온다연의 아이가 죽은 후, 대리모로 얻은 아이를 데려와 모두를 속이려 한 거야.”“강후 씨 정말 온다연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는구나...”이 사실을 깨닫자 나은별의 얼굴에 분노가 가득 찼다.“온다연 천한 년, 감히 아이 하나 생겼다고 자리를 굳혔다고 착각해? 그런 신분으로 어떻게 강후 씨의 아이를 낳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하늘은 공평하다니까...”잠시 아이를 떠올리는 소이섭의 눈에 씁쓸함이 스쳤다.“만약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네다섯 살쯤 되었겠죠...”그는 나은별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은별 씨가 원하는 걸 이루도록 도와줄게요. 하지만 은별 씨도 약속해줘요. 모든 일 끝나면 함께 떠나겠다고.”하지만 나은별은 말없이 손을 빼며 눈에 희미한 경멸을 감췄다.“지금 나씨 가문이 이런 상황인데 내가 떠날 수 있겠어?”그녀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소이섭은 소씨 가문의 둘째 아들일 뿐 첫 번째 상속자도 아니잖아. 이런 사람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유강후 같은 남자뿐이었다.소이섭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우리 아이가 아직
온다연은 꿈속에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슴은 누군가에게 심하게 짓눌려 폭발할 것처럼 아팠다.“아니야, 아니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었어.”그녀는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아이는 그저 울기만 했다.“엄마도, 아빠 모두 날 원하지 않았어요.”꿈에서 깨어난 후 온다연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베개마저 축축했다.그녀는 아이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겁고 아팠다.분명 아이가 곁에 있는데 왜 그런 이상한 꿈을 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아이가 눈을 떴다. 검고 깊은 눈동자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가끔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미소에 텅 빈 마음이 서서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온다연은 아이를 꼭 안으며 그것이 단지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오후에 그녀는 한옥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 그러나 어딘가에 부딪혔는지 늘 끼고 있던 팔찌가 끊어져 버렸다.바닥에 흩어진 구슬을 바라보던 온다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그 팔찌는 유강후가 꼭 착용하라고 해서 그녀가 항상 끼고 있던 것이었다. 유강후 본인도 늘 팔찌를 차고 다녔다.가끔 그녀가 잊고 착용하지 않으면 유강후가 직접 손수 채워주곤 했다.“이 팔찌는 내가 대사님한테서 직접 구한 거야. 너를 평생 무사히 지켜줄 거야.”그가 이렇게 말했었다.그러나 지금의 그녀와 유강후 사이에는 더 이상 ‘무사함’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허리를 숙여 구슬 하나를 주웠다.검은 흑요석은 아직 그녀의 체온을 머금고 있었다.매끄럽게 다듬어진 구슬은 사실 흔한 재질로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었다.하지만 그중 하나, 호박 구슬만은 조금 달라 보였다.온다연은 호박 구슬을 들어 세심히 살펴보았다.손끝이 구슬을 스칠 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아픔이 밀려왔다.가슴이 누군가의 손에 짓이겨질 것처럼 아팠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그 순간, 어젯밤 꿈이 떠올랐다.“왜 날 버린 거예요!”“여기 너무 추워요!”...꿈속의 아이가 했던 말들이 생
이 비즈니스 제국은 마치 유강후 본인처럼 강력하면서도 사람을 불길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녔다.이 순간, 그녀는 마치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녀는 그림자 속에 숨어, 화려한 불빛 속에 서 있는 유강후를 바라보았었다.그 소년은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단 한 번의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그 후로 그는 그녀의 꿈속 단골이 되고 말았다.웅장한 건물들 옆을 지나는 차는 유독 작아 보였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서 있을 때와 꼭 같았다. 그토록 연약하고 하찮게.그러나 아무리 미약하고 저렴해 보이는 장난감일지라도, 그 자체의 존엄성은 있는 법.이제 그녀는 지쳤다.과거의 모든 것들은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새로운 시작이었다.온다연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기사님, 조금 더 빨리 가주세요.”병원에 돌아와, 온다연은 급히 옷을 갈아입었다.아이의 침대 옆에 잠시 앉아 있자, 장화연이 돌아왔다.온다연이 병실에 있는 걸 보자 마치 안도한 듯, 그녀는 다시 나갔다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온다연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도련님께서 요즘 바쁘셔서 돌아올 수 없으세요. 한번 통화해 보세요.”온다연은 차분하게 전화를 받아들었다.유강후의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려왔다.“다연아, 요즘 내가...”온다연은 그의 말을 끊어버리며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알아요!”그녀는 휴대전화를 꽉 쥐며 속으로 말았다. “당신이 바쁜 거 알아요. 괜찮아요.”아프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하지만 그 아픔이 뭐가 중요할까?지금 그가 나오지 못한다는 건 차치하고, 설령 나올 수 있다 해도 그가 이 아이 곁으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본처의 아이도 아프니 그는 원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유강후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천천히 말했다.“다연아, 나 보고 싶었어?”온다연은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보고 싶었어요.”유강후는
하지만 문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뒤쫓아온 경찰이 그를 붙잡았다.“대표님,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도 곤란해집니다!”장화연과 로운도 따라왔다.“도련님, 왜 그러세요?”유강후는 차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장 집사, 다연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장화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사모님은 병원에 계세요. 우림 도련님이 아프셔서 병실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요. 잠잘 때도 우림 도련님 곁을 지키고 계세요.”유강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여전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남아 있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온다연이 아이에게 얼마나 깊이 마음을 쏟고 있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을까?그는 아까 온다연이 그 차에 타고 있다고 느꼈었다!“장 집사 휴대폰으로 다연이에게 전화해 봐.”장화연은 곧장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졌다.“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지?”장화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도련님, 사모님께서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가셨을 거예요. 병원은 우리 사람들만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림 도련님께서 아프시니 사모님께서 어디로 갈 리 없으세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경호팀에 연락해.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해.”장화연은 말없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제 핸드폰도 아마 도청당할 수 있어요. 혹시 불안하시다면, 바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의 전화로 사모님과 연락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유강후는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고통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그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났다.“장 집사,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두 사람 잘 부탁해.”장화연은 고개를 숙여 말했다.“제가 해야 할 입니다.”그녀는 말을 마친 후, 차로 돌아갔다.그 차가 멀어져 사라지기까지, 유강후는 잠시 그 자리
온다연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가세요.”장화연이 떠나자, 온다연은 곧바로 일어섰다.장화연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유강후는 회사에 아예 없었다.설령 회사에 있었다 해도, 그런 서류를 장화연이 가져갈 리는 없었다.직감적으로 장화연을 따라가면 그녀가 알고 싶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냥 나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온다연은 병원에서 간단히 간호사복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병원을 빠져나왔다.서교 파출소 앞까지 따라갔을 때, 온다연은 그가 뭔가 큰일에 휘말린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새벽의 사무실은 여전히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문 앞에는 경찰차들이 가득했다.장화연이 파출소에 도착한 순간, 유강후는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그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하얀 셔츠 하나만 입고, 손목에는 은색 수갑이 뚜렷하게 빛났다.그리고 그의 옆에는 경찰 두 명이 서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온다연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녀는 택시 문에 손을 얹고 몸을 일으켰다.그때, 로운과 진시현이 다른 차에서 내렸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하며, 손을 천천히 문에서 떼었다.차가운 봄바람이 그녀의 뼈까지 시리게 만들었다.차창을 반쯤 열었지만 그 바람은 온몸을 휘감았는데 마치 그녀의 마음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외치고 싶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택시 안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택시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어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그때 로운이 멀리서 보이는 검은색 파사트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김원도 그 미친놈은 아직도 포기할 기미가 없네요. 대표님, 좀 더 연기해 주세요. 이제 그들이 시현이 신분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예요.”유강후는 검은 차를 오래도록 응시한 후,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진시현의 머리를 스쳤다.진시현은 낮게 속삭였다.“실례하겠습니다, 대표님.”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를 부드럽게 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아이가 오늘 열이 났어요. 빨리 나와요. 네? 저 혼자 집에 있으면 너무 무섭다고
김원도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여기는 경원시야!”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뭐 어때서? 다시 나를 건드리면, 경원시에서도 너를 죽일 수 있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총을 던지고는 돌아서서 차에 올랐다.차가 장원을 떠날 때까지 김원도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김원도 씨, 내가 당신이라면 당장 경원시를 떠날 겁니다. 여기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떠나는 유강후의 차를 예리하게 응시하던 김원도의 눈빛은 더욱더 악의에 차올랐다.송지원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로운에게 말했다.“이 사람들 다 처치해, 서둘러!”한 시간 전, 고위층은 긴급회의를 열었다.그들은 미래 그룹이 비상 무기를 사용하고, 저격수들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비록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바로 경원시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들은 강경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조사 결과, 상부에서는 엄중히 경고했고 만약 30분 안에 모든 일이 정리되지 않으면 무력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그때에는 누구도, 설령 신선이라 해도 유강후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이 소식을 접해듣고 송지원은 급히 달려왔다.그는 유강후가 경원시에서 무력을 사용할 정도로 미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제시간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지, 만약 10분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헬리콥터들이 점차 멀어져 가자, 송지원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새벽 2시, 서교 파출소 안에서 유강후는 진술서를 마친 뒤,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이번 일은 너무 큰 소란을 일으켜 상위층에까지 긴급 연락이 갔고, 필요한 절차들을 다 밟아야 했다.하지만 이 일을 벌이기 전, 그는 그 후폭풍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그의 개인 변호사, 미래 그룹의 수석 법무팀장인 허윤재는 이미 그에게 이번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