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자고 있던 온다연은 목이 따끔거리는 느낌에 비몽사몽 눈을 떴다.그러자 바로 앞에 있는 유강후가 보였고 또 시작됐구나 싶어 체념했다.웬만하면 거절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피곤한 탓에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유강후를 밀어냈다.“하지 마요. 오늘은 너무 힘들어요...”질투의 화신이 된 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감히 다른 남자한테 연락처를 알려줘? 이승기? 구지성? 누군지 똑바로 말해.”정신을 차리지 못한 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남자?’‘이승기는 또 뭐야.’낮에 실험을 하거나 동아리에 가입하며 연락처를 알려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전부 같은 반 친구일 뿐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전혀 없었다.턱이 조금 아파온 온다연은 손을 뻗어 유강후를 제지했다. “아프니까 하지 마요. 자고 싶어요...”유강후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온다연. 이제는 내 말이 말 같지 않아?”그러자 온다연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더니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피곤하니까 딱 한 번만 해요. 부족한 건 내일 해줄게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고개를 살짝 들더니 부드러운 입술로 유강후에게 입을 맞췄다.유강후는 어안이 벙벙한 동시에 마음이 반쯤 누그러졌다.‘이제는 먼저 달려드네.’마음이 누그러든 건 사실이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다른 남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준 건 참을 수가 없었다.생각할수록 화가 난 유강후는 강렬하고 무자비한 움직임으로 온다연을 대했다.그러자 온다연은 고통에 몸을 떨며 나지막하게 울부짖었다.“너무 아파요...”유강후는 그녀의 귀를 깨물며 거칠게 행동했다.“잘못했으면 혼나야지.”온다연은 아파서 애원하기 시작했다.“살살해줘요.”성욕이 강한 유강후는 사랑을 나눌 때 결코 양보란 없었다. 다만 온다연이 저항 없이 꼬리를 낮추고 애원할 때면 아주 조금이나마 행동이 부드러워진다.온다연은 고통을 참으며 두 다리로 그를 감쌌다.“여보, 살살...”‘여보’라는 호칭에
유강후는 태연하게 답했다.“오늘 결석한다고 내가 오전에 학교에 연락했어.”전시회든 남자 동기든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처음에 온다연을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관심사를 갖게 될 기회를 주고 싶었다. 물론 체계적인 금융 지식을 배우게 하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절대 남자 동기와 연락처를 주고받거나 소개팅하라고 지원해 주는 게 아니었다.온다연이 똑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학교를 그만두게 할 수 있었다.그 어떤 동의도 없이 멋대로 결석 신청한 유강후의 모습에 온다연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왜 마음대로 결정해요? 전 무조건 학교 갈 거예요. 오늘 중요한 수업이 있다고요. 다른 학교 교수님이 강의하러 온다고 해서 일주일 동안 기다렸단 말이에요.”오늘 수업은 전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오전 내내 결석을 했기에 뒤처진 만큼 따라잡으려면 며칠간 고생을 해야 한다. 말을 마친 온다연은 그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결코 이대로 순순히 놓아줄 유강후가 아니다.“동아리 가입했어?”유강후에게 잡혀 꼼짝달싹 못 한 온다연은 조바심이 밀려왔다.“아저씨, 얼른 놔요. 이러다가 정말 지각이에요.”유강후의 표정은 순식간에 돌변했다.“결석 신청했다고 말했잖아. 못 가.”지난 며칠간 온다연은 공부 때문에 유강후를 푸대접했고 그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꾹 참았다.그러나 배려해 주는 마음도 모른 채 다른 남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줬으니 유강후는 눈이 완전히 뒤집혔다.온다연은 점점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의 마지노선을 넘어버렸다.아무리 생각해도 찝찝했던 유강후는 아침 일찍 화양대 공식 블로그를 확인했다.그 결과 분노가 더욱 심해졌다.블로그에는 ‘고백의 창’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온다연에 관한 많은 게시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그중 대부분은 온다연이 수업 들을 때 몰래 찍은 것처럼 보였고 퀸카라는 타이틀과 함께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심지어 댓글에
아주 잠깐 잡았을 뿐인데 온다연은 턱이 너무 아팠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유강후를 원망했다.“아저씨,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도 된다면서요? 동기 연락처를 추가했을 뿐인데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도대체 난 아저씨한테 어떤 존재예요?”유강후의 말투는 한없이 차가웠다.“뭐든지 하라고 한 건 맞아. 하지만 남자 동기한테 연락처를 주거나 그 인간들이랑 얘기하는 건 포함되지 않았어.”따로 화양대 총장과 연락까지 하면서 반을 개설했던 이유가 남자 동기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쓸모가 별로 없었다. 온다연의 카톡에는 낯선 사람이 너무 많았고 지금도 그녀를 추가하기 위해서 어디선가 기회를 엿보는 사람도 여럿 있을 것이다.수많은 남자가 온다연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유강후는 표정이 굳어졌고 눈빛마저 싸늘하게 돌변했다.“동기고 뭐고 지금 당장 모든 연락처 삭제해. 핸드폰에는 나랑 교수님의 연락처만 있으면 돼.”온다연은 화가 나서 손이 떨릴 정도였다.“싫어요. 아저씨,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유강후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삭제하기 전에는 학교 갈 생각 꿈도 꾸지 마.”온다연은 극도로 화를 냈다.“싫다고요. 안 지운다고요.”말을 마친 온다연은 있는 힘껏 유강후를 밀치더니 가방을 움켜쥐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유강후는 단호했다.“사모님 못 나가게 막아.”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경고하는데 날 막는 사람은 오늘 당장 해고예요.”온다연을 막으려고 나섰던 도우미 몇 명은 온몸이 경직된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는 유강후의 명령에만 따랐다.하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으니 온다연은 진정한 안주인이 되었다.그 말인즉 유강후의 명령만 들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특히나 지금처럼 부부싸움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느 쪽의 미움도 사서는 안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도우미들은 결국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한편 그들의 입
장화연이 말했다.“도련님, 이건 좀 무리한 부탁이 아닐까요? 반을 개설한 것도 정 총장님께서 많은 힘을 썼습니다. 도련님도 대학을 다녀봐서 알지 않습니까? 동아리를 없애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점점 굳어지는 유강후의 얼굴은 보며 장화연은 그가 많이 화났음을 깨달았다.장화연은 유강후를 어릴 때부터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가 어떤 성격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감정적인 면에서는 거의 백지상태다.수년 동안 그의 곁에는 아무런 여자도 없었다. 가끔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유강후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때로는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가끔은 그의 성적 취향을 의심할 정도였다.하지만 이번에 귀국하고서야 유강후의 마음속에는 아주 예전에 심은 작은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그 씨앗의 이름은 온다연이다. 수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며 싹을 틔웠다.사실 장화연은 이런 감정이 유강후에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방관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온다연을 향한 그의 소유욕과 통제하려는 욕망은 숨 막힐 정도였다.“도련님, 일하실 때의 그 냉정함은 찾아볼 수가 없네요? 죽음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적과 맞서 싸우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요?”“김원도 씨가 지켜보고 있어 사모님과의 혼인을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림 도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도련님과 함께 학교에 얼굴을 비추면서 무심코 사모님의 아이라는 걸 밝히면 어떨까요?”유강후는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 시각 화양대의 금융과 공개수업.강의 시작된 지 몇분이나 지났지만 교수님의 모습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강의실은 순식간에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가득 찼다.“옆 학교에서 유명한 교수님이래. 나이도 어린 데다가 아이비리그 중의 하나인 하버드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들었어. 어린 나이에 여러 학위를 땄다는 게 참 대단하지 않아?”“맞아. 난 20대 교수라는 걸 듣고 전공 수업도 빼먹고 여기 왔다니까?”“심지어 예전에 특수부대에
평소에 비해 은테 안경을 쓰고 더욱 정갈하게 차려입었지만 온다연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염지훈? 여기서 뭐 하는 거지?’염지훈도 온다연을 발견한 듯,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온다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염지훈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들으면 들을수록 충격의 연속이다.‘염지훈이 옆 학교에서 잘나가는 교수 박현욱이라고?’‘이름을 바꾼 건가?’90분간의 강의 내내, 온다연은 절반의 시간을 충격의 늪에서 허덕였다.다행인 건 후반부에 정신을 다잡았고 염지훈의 색다른 견해에 빠져들었다.어느덧 강의가 끝났다.교과서를 챙겨 든 온다연은 인파에 둘러싸인 염지훈을 힐끗 보고는 천천히 뒷문으로 나갔다.염지훈이든 박현욱이든 그 어떤 교집합도 있어서는 안 된다.이제는 결혼도 했고 아이와 가정도 있으니 과거의 모든 사람과 선을 긋는 게 맞다.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반쯤 열린 문으로 누군가 손을 뻗어 온다연을 확 잡아당겼다.온다연이 중심을 잡기도 전에 큰 몸집이 그녀를 벽으로 밀어냈다.온다연은 꼼짝하지 않고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바라봤다.“지훈 씨? 아니다, 박현욱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염지훈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의 섬세한 눈매를 탐욕스럽게 바라봤다.“이름이 뭐가 중요해?”몇 달 못 본 사이에 온다연은 살이 좀 쪘고 전보다 훨씬 예뻐졌다.처음 만났을 때의 소심한 눈빛에서 이제는 나이에 맞는 특유의 밝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갓 떠오른 달처럼 맑고 환한 그녀의 모습에 염지훈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다.심플한 옷차림처럼 보여도 온다연이 입고 있는 옷은 하나같이 고가였다.이 모든 건 유강후가 그녀를 잘 챙겨주고 있음을 뜻했다.염지훈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지난번 병원에서 온다연에게 청혼했다가 형한테 잡혀가 꼬박 4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행동을 바꾸고 마음을 바로잡아서인지 감금 끝에 자유를 되찾았다.자유를 되찾은 첫날에 화양대에 강의하러 왔고 우연
그가 해야 할 일은 온다연을 데리고 여기를 떠나는 것이다.목표가 확고해진 염지훈은 곧바로 우아함과 차분함을 벗어던졌다. 그 후 자신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드는 넥타이를 잡아당기더니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나 보고 싶었지?”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찰싹 때렸다.“지훈 씨, 우리가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잖아요? 함부로 터치하지 마세요.”염지훈은 그녀의 섬세하고 여린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쯧쯧. 생긴 게 이렇게 예쁘니까 주변에 남자들이 끊이질 않지.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어.”염지훈은 온다연의 턱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어차피 넌 내꺼야.”그 말을 들은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미쳤어요? 난 유강후랑 결혼했어요.”염지훈은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었다.“그래서 뭐? 설마 너한테 진심일 거라고 생각해? 미래 그룹의 대표가 결혼했는데 아무도 모른다? 이게 정말 널 사랑하는 게 맞을까?”온다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우리 둘 사이에는 아이가 있어요. 물론 저도 그와 잘 해볼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저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어차피 소용없어요.”염지훈의 얼굴에 상처받은 표정이 잠깐 스쳤으나 곧바로 차분함을 되찾았다.“아이? 그 사람이 아이로 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런 건 나한테 전혀 타격이 안 되니까 다른 핑계 좀 생각해 봐. 막말로 난 너한테 이용당해서 결혼을 망쳤는데 고작 이런 이유로 포기할 것 같아?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어떤 보상을 원하는데요?”염지훈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유강후랑 헤어지고 나한테 와. 솔직히 나 정도면 잘생겼잖아? 돈도 많고 나이도 어린데 싫어?”온다연은 단번에 그를 밀어냈다.“미쳤어요? 머리가 잘못됐으면 병원부터 가봐요. 말했잖아요. 난 이미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고요.”예전에 염지훈을 여러 차례 이용하고 약속을 어긴 건
온다연은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래서 뭘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정 안 되면 지훈 씨에게 어울리는 좋은 여자 소개해 줄게요.”“제가 하령 언니와의 결혼은 망친 건 맞아요. 하지만 어쩌면 잘된 일이에요. 하령 언니는 결코 좋은 여자가 아니거든요. 아니, 유씨 가문에는 애초에 좋은 사람이 없어요.”염지훈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유강후도 유씨 가문이잖아. 좋은 사람이 아니란 얘기네?”온다연은 흠칫했다.스스로 줄곧 회피해온 질문을 언급하니 단숨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할 말 없으면 먼저 갈게요.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이때 염지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거시경제학과 미세경제학은 앞으로 내가 담당하게 될 거야. 네 학점이 나한테 달려있다는 뜻이지. 이런 태도는 얼마든지 학점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걸음을 멈추고 빠르게 돌아선 온다연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염지훈을 쳐다봤다.“미쳤어요? 왜 남의 학교에 와서 행패를 부려요.”염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2점 더 깎아야겠네.”온다연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미친것도 정도가 있어야지.”염지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4점.”온다연은 그가 한 말의 진위를 판단하려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말없이 관찰했다.염지훈이 박현욱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고 경제학을 강의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하지만 그가 박현욱이라는걸 생각하면 화양대에서 강의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화양대와 경원대는 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많은 교수가 두 학교를 오가며 동시에 수업하곤 한다.염지훈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온다연의 모습이 그저 귀여웠고 맑고 투명한 눈망울은 그의 심장을 저격했다.한참을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염지훈은 온다연을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앞으로 교수님이라고 불러. 존칭 사용하고. 지금처럼 소리 지르면서 예의 없는 행동하면 바로 학
염지훈은 가장 위에 뜬 메시지를 클릭했다. 확인해 보니 유강후가 다른 여자와 어느 저택을 드나드는 사진 두 장이 담겨있었다.사진 속 여자도 꽤 볼만했는데 섬세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온다연과 매우 흡사했다.여자는 유강후의 팔짱을 꼈고 두 사람은 한없이 다정해 보였다.바로 어젯밤 유강후가 호텔 바에서 찍힌 사진이고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바로 사진 속 사람이다.염지훈의 눈에는 사악함이 번뜩였다.‘유강후,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결혼했다는 사람이 이렇게 행동해? 밖에서 여러 여자를 만날 거면 온다연이랑 왜 결혼한 거야.’‘너 같은 인간은 다연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아.’유강후는 재빨리 타이핑했다.[계속 따라다니면서 지켜봐. 바람피운 것처럼 보이는 사진 위주로 찍어.]‘유강후, 나한테 온다연을 밀어준 게 너잖아? 나도 더 이상은 가만있지 않을 거야.’그 시각 화양대의 입구.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나무 그늘 아래 주차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싸늘하면서도 위엄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마침 수업 끝난 학생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고 다들 남자의 조각 같은 외모에 시선이 집중되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건 남자의 손에 들린 유모차였는데 안에 있는 아기는 옹알이하며 춤을 췄고 남자는 참을성 있게 돌봐주고 있었다.“잘생긴 것도 모자라 가정적이야. 진짜 완벽하다.”“아기 봤어? 너무 귀여서 깨물고 싶어.”“내가 앞에서 시선을 끌 테니까 기회 봐서 납치해. 아이랑 남자 둘 다.”“뭔가 낯이 익은데... 매일 온다연을 기다리던 그 남자 아니야? 아이가 있네? 설마 결혼했나?”“말도 안 돼. 온다연이랑 낳은 아이라고?”“그건 아니지.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두 사람 아이일 리가 없잖아.”...온다연은 건물을 나오자마자 입구에서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유강후를 발견했다.처음에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마음이 부드러워졌다.동의 없이 결석 신청하고 학교를 못 가게 막는 유강후와 끝까지 싸우고 싶었지만 아이를 본 순간 그런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무려 임산부였다.게다가 그 남자의 품에 안겨 가냘픈 목소리로 아저씨를 찾기도 했다.남자는 그녀가 숨이 딸릴 정도로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손을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그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내린 폭우가 쉼 없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릴 때야 온다연은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키 큰 남자가 창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온다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부르려던 찰나 그 남자가 다급히 제지했다.“부르지 말아요, 저예요!”낮은 목소리는 익숙했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한 끝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꿈속의 그 남자였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찰나 온다연의 인기척을 느낀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온다연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여전히 걱정되어 물었다.“아가씨, 천둥소리에 놀라셨습니까? 같이 있어 줄 사람이라도 필요하십니까?”“필요 없다니까요!”“아가씨,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거셉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창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저희가 검사해드리겠습니다!”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했잖아요. 귀찮으니까 더 말 시키지 말아요!”온다연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경호원들도 잠잠해졌다.유강후의 옷과 바지는 모두 반쯤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강후의 기세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게다가 옷이 젖은 탓에 거의 보일락 말락 한 그의 탄탄한 몸매에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강 대표님이 왜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죠?”유강후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깼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가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여긴 2층이라고요!”유강후는 여
남자는 안윤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평범한 사람이라고?”“안 아가씨, 10년 전 금우역에서 불을 지른 일을 기억하나? 내 얼굴 좀 봐. 이 흉터, 네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생긴 거야!”남자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우리 부모님은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나를 잘 키워 공부를 시켜 성공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부모였어.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너희는 지나가다가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악의 화신이라 규정했지!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날 품에 안으셨고, 덕분에 나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그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지.”“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었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다는 거야? 몇 년 동안 너희를 찾아 헤맸어. 그렇게 한 명씩 제거했지. 너희가 세상을 정화한다고? 난 너희 같은 악마들을 정화할 거다!”남자는 안윤희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안윤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너희들 정말 잘 숨어 있더구나. 한 놈을 찾는 데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렸어. 그런데 오늘은 누가 너를 직접 내게 데려다주고 돈까지 준 거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그는 안윤희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지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형님들, 배 위에서 고기 구경 못한 지 오래됐지? 오늘 마음껏 즐겨보자!”“저기요, 이 아가씨는 신국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입니다.”“걱정하지 마. 방금 뉴스에서 이 아가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왔어. 심지어 시신도 확인됐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이 여자는 그저 안씨 가문의 아가씨를 닮은 여자일 뿐이야.”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안윤희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안 돼! 나는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너희가 날 건드리면 우리 이모부가
유강후는 진시현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얼마나 됐어?”진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섯 달 됐어요.”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움직이기도 해요.”유강후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전에 자신의 아이도 딱 이 정도였을 때...유강후는 곧 미소를 짓고 로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로운, 대단하네. 이제 아빠가 됐구나. 결혼식 때 참석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나중에 네 아들 태어나면 큰 선물로 보답할게.”항상 무표정하던 로운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가 번졌다.“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유강후는 말했다.“전에 준 건 모두 준구 것이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잘 관리해서 자산을 두 배로 늘렸더라. 하지만 이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너 자신을 위해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그걸 나눠서 20% 지분을 네가 가져. 내가 네 아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돌아 진시현의 볼록한 배를 몇 초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며칠 동안 도련님을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조상님께 향도 한 번 올리고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똑한 아이이니 지금처럼 잘 키우면 성년이 되기 전에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다. 데려가는 건 좋지만 아직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유강후는 다시 물었다.“내가 찾으라고 한 자료는 확인했어?”로운은 묶어둔 자료를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것은 성염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단결되어 있습니다. 한 번 목표로 삼으면 끈적한 반창고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크게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상대하기엔 매우 불쾌한 존재입니다.”유강후는 자료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윤희는 여기서
유강후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안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염 조직, 너랑 무슨 관계야?”안윤희는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눈빛에 불안함을 담고 대답했다.“무, 무슨 성염이요?”성염 조직은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극단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악으로 간주한 대상은 무엇이든 태워 세계를 정화하려 했다.그들의 활동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이로 인해 암흑가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성염 조직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유강후는 안윤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말했다.“네가 어떤 조직에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둬. 만약 네가 온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너희 안씨 가문과 성염 조직 모두 비참하게 끝날 테니까.”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꽉 쥐고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유강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안윤희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일어섰다.방금 발에 차여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녀는 무릎이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져가는 유강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난 분명히 널 선택했어. 그런데 날 거부하고 그 재수 없는 여자만 원한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게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좋다면 두 사람 다 함께 끝장내주지.”“이모, 이모부. 저는 다연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애가 먼저 제 선택을 빼앗았어요. 뻔뻔한 사람은 다연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탓하지 마세요.”안윤희의 낮은 혼잣말은 복도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안심의 귀에 닿았다.안심은 다친 채 서 있는 안윤희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왜 이렇게 엉망이야?”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만의 공간은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강후가 온다연 앞에서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를 보일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마치 손바닥 위에서 소중히 감싸 보호하는 것 같았다. 유강후는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처리하며 온다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인내를 아끼지 않았다.그리고 온다연은 그런 그의 행동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다 부모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온다연은 자신이 유강후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그 소매로 입을 닦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방 안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안윤희만 질투 어린 눈빛으로 온다연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유강후는 이 어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듯 즉시 사람을 시켜 과일을 준비하게 했다.게다가 그가 준비한 과일은 전부 온다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과일이 준비되고 나서 진수현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강 대표,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을 준비했으니 다연이가 다 먹는 걸 보고 나가겠습니다.”진수현은 조금의 인내도 없이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다연이 부모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지켜줄 수 있어. 그러니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나가!”유강후는 움직이지 않고 과일 접시를 들어 올려 깎은 과일 하나하나에 이쑤시개를 꽂았다. 심지어 샤인머스캣조차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과일을 다 준비한 뒤 온다연 앞에 과일 접시를 내밀며 낮게 말했다.“먹어.”온다연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과일 접시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딸기까지 반으로 잘랐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안윤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들어오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지만 강렬한 분위기와 또렷한 외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는 방 안에 있는 안윤희를 힐끗 바라봤고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안윤희의 온몸에 서늘한 전율이 퍼졌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으며, 마치 독을 품은 칼날처럼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안윤희는 자신이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는 유강후가 유일했다.안윤희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고 유강후가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죽은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안윤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매만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유강후는 더 이상 안윤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장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곽 의사가 방금 보내준 약이야. 먹어봐.”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온다연만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온다연은 병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특이한 향이 풍겼고 어딘가 피 냄새와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온다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강후는 병을 다시 가져가 약을 꺼내 직접 하나 삼켰다.“봐, 문제없어. 이 약 총 20알이야. 곽 의사가 그러는데, 재료가 워낙 귀해서 자기한테도 40알밖에 없었대. 그중 절반을 나한테 준 거거든. 이거 먹으면 건강 진짜 좋아질 거야. 어쩌면 앞으로 약 안 먹어도 될지도 몰라.”그가 말을 마치자 진수현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약이 20알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나를 먹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유강후는 아무 대꾸 없이 옆에 있던 곶감을 집어 온다연의 입가로
“너도 명색에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가문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명문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좋은 물건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니...”안심은 말을 멈추고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연아, 그저 한 세트의 장신구일 뿐이야. 너무 기분 상하지 말고, 엄마가 더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해 줄게.”온다연은 안윤희 눈에 잠깐 스친 뚜렷한 분노를 보고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딱 적합했다.“엄마, 더 큰 금고를 하나 마련해 주세요. 귀중한 물건들은 거기 보관하고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안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물건은 네가 직접 챙기는 게 맞지.”안윤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이건 분명 안윤희를 경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안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몇 개의 장신구일 뿐이었고 갚지 못할 정도의 거금도 아니었다. 대진 그룹의 부대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온다연은 바보처럼 자신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안윤희의 눈에 스친 냉소는 온다연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지난 3년간 아버지 진수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온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회사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것과 관리 능력이 없는 건 엄연히 다른 거라고.비록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사업을 결코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온다연은 진수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아빠, 이제 제 신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대진 그룹을 정식으로 이어받아 앞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온다연의 말에 안윤희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다연아, 아직 몸이 좋지 않잖아. 건강을 회복한 뒤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회사 일은 우리한테 맡겨도 되잖아.”온다연은 안윤희의 말을 무시한 채 진수현을 향해 말했다.“아빠, 언제까지 아빠 뒤에만 숨을 수는 없어요. 이
안씨 가문도 명문가이긴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미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만약 진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윤희는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게다가 예전에 온다연에게서 가져간 물건 중 상당수는 이미 팔아버려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그때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윤희의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다연아, 이러지 마. 예전에 네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을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말이 돼? 난 우리를 자매처럼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안윤희를 차갑게 바라보았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잠시 후, 진씨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안심은 안윤희가 온다연의 병상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윤희가 먼저 말했다.“이모, 다연이가 제가 예전에 받았던 장신구들을 다 돌려달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뭘 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어젯밤에 제가 다연이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둔 걸로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일이 있었는데 말이에요...”안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심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정말 그런 거야?”온다연은 상체를 일으키며 안윤희를 차갑게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언니, 연기 그만해. 그동안 언니가 내 물건 가져간 건 전부 언니 멋대로였잖아. 빌린다고 말했지만, 내가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어제 언니가 가져간 건 내가 결혼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장신구였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건데, 그냥 가져가더라. 난 허락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면 진씨 가문 물건은 언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야?”온다연의 말투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언제부터 진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한 식구가 됐는데?”
그때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몇 분 후, 안윤희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안윤희는 연한 하늘색 발목 길이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온다연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안윤희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안윤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안윤희는 장미꽃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다연아, 몸은 좀 괜찮아졌어?”하지만 온다연은 원래부터 백장미를 싫어했다.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왜 왔어?”안윤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깨어났다고 해서 와봤어. 그런데 아직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누가 진씨 가문을 노리기라도 했어?”온다연은 이번 일에 안윤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내가 깨어난 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언니가 더 잘 알지 않아?”안윤희는 순간 당황했다.온순했던 온다연이 요즘은 마치 가시가 돋은 듯 상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다연아, 혹시 어제 내가 목걸이를 빌려 간 것 때문에 아직도 화난 거야?”안윤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제 급해서 미처 말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빌린 거라고? 그럼 어제 가져간 장신구 다시 돌려줄래? 내가 다시 쓸 일은 없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내 혼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라 남에게 줄 수는 없어.”안윤희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돌려달라고 요구하다니, 감히!원래 그 장신구는 안윤희,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이 중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