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밀어내고 싶었지만 나은별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듯 계속 비틀거렸다.밀어내려고 할수록 나은별은 그의 옷을 한사코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온다연의 눈에 비친 이 장면은 마치 서로에게 감정이 남아있는 연인 같았다.순간 어려서부터 각별한 사이로 자라온 소꿉친구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은별의 말대로 유강후는 어쩌면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내가 때렸어요. 왜요? 가슴 아파요?”그 말에 화가 난 유강후는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온다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온다연은 싸늘하게 웃었다.“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알겠죠.”이때 반지를 수정하려고 자리를 잠깐 비운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수정된 반지와 함께 걸어왔다.“다연 씨, 요청하신 대로 수정이 완료되었습니다.”온다연은 번쩍 돌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이제 필요 없으니까 환불해 줘요.”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다.“그러기만 해봐.”온다연은 시선은 여전히 그의 팔에 기대어있는 나은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 결혼해요. 아주 천생연분이네.”그 말을 한 뒤 직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환불해 줘요. 이제 필요 없어졌거든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직원은 정석대로 안내했다.“죄송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특별 제작한 반지라 환불이 불가합니다.”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온다연은 앞으로 걸어가더니 반지를 집고 땅바닥에 내던졌다.“그럼 버릴게요.”단단한 반지가 바닥에 닿자 몇 미터 높이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유강후는 자신이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온다연, 당장 주워.”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보고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분노로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유강후는 단번에 나은별을 밀어내고 앞으로 걸어갔다
나은별은 손톱이 살을 피고들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강후 씨, 이제 내 말은 믿지도 않는 거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연 씨가 먼저 손쓴 걸 봤는데도 여전히 내 문제라는 거야?”유강후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싸늘한 시선으로 조아영을 바라봤다.“조세진이 그쪽 아버지?”조아영은 극심한 고통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차마 유강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맞아요.”유강후의 말투는 단호했다.“아버지한테 전해. 파산할 거니까 미리 마음 준비하라고.”조아영은 너무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울부짖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유강후는 무자비했다.“들리는 그대로야. 오늘부터 조씨 가문은 너 때문에 파산하게 될 거야. 기대해.”조아영은 고개를 번쩍 들고 마지막으로 발악했다.“분명히 저 여자가 먼저 때렸는데 왜 우리가 이런 불이익을 받아야 하죠?”유강후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먼저 때렸다고? 그래서 뭐? 내가 있는 한 다연이가 사람을 때려죽여도 잘했다고 칭찬할 거야. 너 같은 인간을 수없이 많이 봤어. 내가 너보다 지위가 낮았다면 그런 표정이랑 행동으로 말했을까?”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유강후는 곧바로 경호원에게 말했다.“은별이는 병원으로 데려가고, 다른 사람 전부 다 내보내. 당장.”나은별은 씩씩거리며 말했다.“강후 씨,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유강후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선 뒤를 돌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며 경호원에게 말했다.“내가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남아있으면 너희들도 끝장인 줄 알아.”경호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답했다.“네, 도련님.”나은별은 멀어지는 유강후의 훤칠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눈에서는 악의가 번쩍였다.‘유강후, 날 이렇게 대한다는 거지? 두고 봐, 나도 더는 안 참아.’경호원들은 나은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그녀를 부축했다.“얼른 가시죠. 도련님이 분부했으니 저희는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안긴 방금 전의 상황이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마치 유강후가 키우는 고양이나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별반 다를게 없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온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싫어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유강후는 고집불통인 온다연의 모습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앞에 있는 반지는 그가 이 생에 받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이다. 이런 마음도 모른 채 온다연은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닥에 내팽개쳤다.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여러 번 짓밟는 격이다.유강후는 머리가 피가 쏠릴 정도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주우라고.”온다연은 유강후가 화난 걸 알았지만 그녀도 같은 상황이기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분명히 나은별을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유강후는 기댈 수 있게 팔을 내어주었다.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면 차라리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온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다.“싫어요. 그리고 제가 나은별 씨를 먼저 때렸어요. 아저씨가 아끼는 사람을 때려서 가슴이 아파요? 그럼 다시 날 때리면 되겠네.”유강후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네가 언제 가슴 아프다고 했어?”욕하고 때리는 건 얼마든지 해도 되지만, 유독 이 반지를 떨어뜨린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건 그의 마음과 진심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는 해동이다.“주워서 깨끗하게 닦아.”유강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온다연 마음속의 작은 화산이 완전히 폭발하였고 곧바로 눈앞의 반지를 발로 차버렸다.“주울 생각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싼 반지는 아저씨한테 어울리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나은별 씨한테 더 비싼 거로 사달라고 하세요.”온다연의 발차기에 반지는 더 멀리 날아갔다.유강후는 너무 화가 나서 목의 핏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으르릉거렸다.“온다연, 넌 오늘 혼 좀 나야겠다.”그
유강후는 그저 말없이 가만히 온다연을 쳐다봤고 온다연은 그의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서야 힘을 풀었다.유강후는 곧바로 다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내리쳤다.심지어 전보다 더 무자비해졌다.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은 목 놓아 울부짖었다.“미워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날 때릴 자격이 없잖아요.”유강후는 얼굴빛 변한 온다연을 보고선 가슴이 아픈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또 함부로 버릴 거야?”온다연은 유강후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울분이 치밀어 올라 더욱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버릴 거예요. 평생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질 거라고요. 때려죽이든 마음대로 해요.”일말의 작은 연민은 온다연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유강후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손까지 떨었다.결혼반지라는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렸으면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온다연이 이해되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들어 세게 두 번 정도 내리쳤다.전보다 훨씬 힘을 주어서 그런지 온다연은 괴로움에 손발을 마구 휘저으며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울었다.울면서도 잊지 않고 유강후를 비난했다.“분명히 은별 씨 편을 들었으면서...”“차라리 때려죽여요. 그러면 은별 씨랑 결혼해도 되잖아요.”“우리 이제 그만해요.”...온다연이 말할수록 유강후의 분노는 더욱 커져갔고 끝내 또 세게 때렸다.분노와 두려움, 공포와 고통의 감정이 뒤섞이자 저도 모르게 주한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너무 아파... 주한아, 나 좀 도와줘.”“그만 때려요.... 아픈단 말이에요.”...유강후의 손은 허공에 굳어버렸다.주한... 온다연은 주한에게 도움을 청했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숨이 멎을듯한 고통이 찾아왔다.“방금 뭐라고 했어?”온다연은 심하게 울부짖은 탓에 목소리가 잔뜩 쉬었다.“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요. 아저씨는 나 괴롭히고 때릴 줄밖에 모르잖아요.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요.”유강후는 이마에 핏줄이 솟을
유강후는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10일.”“온다연, 너 계속 이러면 아기 퇴원하는 날에도 못 볼 줄 알아.”그 말을 듣고 얼어붙은 온다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유강후가 어떤 사람인지 온다연은 알고 있다. 정말 그를 화가게 한다면 아마 한 달 동안 아기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온다연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꾹 참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심하게 때려서 그런지 유강후는 온다연의 걷는 자세가 살짝 잘못된 걸 발견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던지고 걷어찼던 행동을 생각하면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온다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열었는데 밖에는 수많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이권도 그곳에 있었지만 감히 나서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엉덩이를 맞은 걸 모든 사람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분하면서도 수치스러웠다그러나 반지를 주워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유강후가 아기로 협박을 하니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온다연은 유강후에 대한 호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에는 70점이었다면 이제는 50점밖에 되지 않았다.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눈물을 닦고선 마지못해 바닥에 있는 반지를 주웠다.온다연이 휴게실로 돌아오자 유강후는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끼워줘.”그 모습은 어찌나 무자비하고 싸늘한지 마치 인정머리 없는 제왕 같았다.온다연은 화가 나서 반지를 다시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아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분을 참으며 유강후에게 반지를 끼웠다.유강후는 반지를 한번 꼼꼼히 확인하더니 스크래치가 없는 걸 보고선 마음속의 분노가 절반 가라앉았다.그는 자리에 앉아 온다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뭘 잘못했는지 알겠어?”온다연은 대답하기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닦았다.온다연의 빨갛게 부은 눈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보니 유강후도 마음이 반쯤 풀렸다. 그는 손을 뻗어 온다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네가 말해봐.
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반지를 버리거나 결혼 문제를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알았어?”온다연은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가 허리를 꽉 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제가 아니라 아저씨가 장난쳤잖아요. 아직도 나은별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그녀는 너무 서러웠다.“아직도 그 여자가 좋으면, 아기를 데리고 떠날 테니 그 여자랑 사세요!”유강후는 화가 나면서도 웃겼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생각했다고 그래? 뭘 보고 이러는 거야? 내가 나은별을 잡아당긴 것 때문에?”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은별이 유강후의 품에 기대어 있던 것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여자를 안고 있었잖아요. 가슴에 기대고 있던데요.”유강후는 웃음이 나왔다. 알고 보니, 질투하는 것이었다.어린 것이 질투심은 왜 이렇게 강한지?“질투 났어?”온다연은 몹시 화가 났다.“누가 질투해요? 놔요. 저는 갈래요.”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언제 나은별을 안았고, 언제 내 몸에 기대게 했는데? 똑똑히 말해봐.”그는 나은별을 바닥에서 잡아당겨 일으킨 후 온다연이 바로 폭발했던 기억밖에 없다.이 말을 들은 온다연은 더욱 화가 나서 얼굴까지 빨개졌다.“아저씨가 그 여자를 안았고, 그 여자가 아저씨 품에 기대어 있는 것을 똑똑히 봤는데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는 이제 불합격이에요. 미워요. 이거 놔요.”발버둥 치다가 방금 맞은 곳을 건드렸다. 얼얼한 통증에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고, 엉겁결에 손으로 맞은 곳을 가렸다.유강후는 그녀의 동작을 보고 방금 너무 세게 때려서 부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뒤집은 후, 치마를 올리고 살펴보려 했다.온다연은 그가 또 엉덩이를 때리려는 줄 알고 놀라서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그만 때려요. 아파요.”“반지를 주워 왔잖아요. 또 때리면 다시는 당신을 안 볼 거예요.”유강후는 손을 빼며 말했다.“붓지 않았는지 보려고
그는 손을 내밀고 반지를 보며 느릿느릿 말했다.“네가 자발적으로 나한테 반지를 끼워줬잖아. 반지를 끼워준 건 프러포즈한 것과 같으니, 앞으로 네가 나를 책임져야 해.”온다연은 그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의 강요에 못 이겨 끼워준 것인데, 어떻게 그녀가 프러포즈한 것이 되는지?그녀는 눈을 비비며 울먹거렸다.“아저씨가 끼워달라고 했잖아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그거지. 별 차이 없어. 내가 끼워달라고 말했더니 네가 바로 끼워줬잖아. 이게 자발적인 것이 아니고 뭐니?”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를 못 보게 할까 봐 걱정인 온다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반지도 꼈으니 결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온다연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해야 결혼했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결혼반지를 나눠 껴도 결혼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부부가 된 거니까.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유강후는 눈빛이 흔들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프러포즈했고 내가 받아줬으면 결혼한 것이나 다름없어. 결혼했으면 영원히 서로의 곁에 있어야 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온다연은 뭔가 잘못된 것 같으면서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결혼했으면 둘이 같이 잘 지내야 한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약간 서러웠다.“다시는 나은별을 만지면 안 돼요. 저는 그 여자가 싫어요.”그녀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살짝 닿는 것도 안 돼요.”“만나도 3m 거리를 유지해야 해요.”유강후는 그녀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아까 나은별이 너한테 어쨌길래 머리가 터질 정도로 쳤어? 온통 유리 조각이던데, 손은 다치지 않았어?”유강후는 말하면서 온다연의 손을 당겨다 자세히 검사했다.그는 그녀의 희고 보드라운 손에 상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좀 세게 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번 때린 것이 이렇게 빨갛게 부어오를 줄은 몰랐다.“많이 아파? 집에 가서 약을 바르자.”‘당연히 아프죠.’온다연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몹시 서러웠다.“화를 내도 된다면서요... 아저씨는 말한 대로 하지 않고 전혀 신용을 지키지 않아요.”유강후는 어이없었다.“화를 내도 된다고 했지, 반지를 던져도 된다고는 하지 않았어. 오늘은 세게 때린 것도 아니야. 또 한 번 반지를 던지고 나랑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아예 의자에 앉지 못하게 엉덩이를 부숴버릴 거야.”온다연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아저씨도 저를 때렸으니 맞비긴 셈이에요. 만약 아이를 보지 못하게 하면, 저도 아저씨의 점수를 깎아버리고 영원히 보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걸어가면서 말했다.“이렇게 말을 잘 듣는데 왜 아기를 못 보게 하겠어? 오늘 나한테 순순히 반지를 끼워준 것을 봐서 벌을 취소할게.”“하지만 그 점수라는 게 뭔지 나한테 알려줘.”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엎드려 통증을 참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아저씨만 저를 벌할 수 있는 줄 알아요? 저도 아저씨를 벌할 수 있어요.”유강후는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무슨 벌인데?”온다연이 코웃음을 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저한테 점수를 적는 공책이 있어요. 모두 100점인데, 아저씨가 잘하면 가산점이 붙고 잘못하면 감점이 돼요.”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원래 70점이었는데, 20점 깎여서 지금 50점이에요. 0점 혹은 마이너스 점수가 되면 저는 아저씨를 버릴 거예요.”유강후는 웃음을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하면 가산점이 붙고, 어떻게 하면 감점이 되는지 말해봐.”온다연이 정색하며 말했다.“예를 들면, 그웬을 데려다 아기를 살린 것은 589점, 주희를 구한 것은 50점, 저에게 불고기를 만들어준 것은
단순히 반지를 끼우는 것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도대체 왜?’갑자기 그녀는 유강후의 손목을 잡아들고 있는 힘껏 그 손을 깨물었다.이번에는 정말로 사납고 거칠었다. 마치 그의 살점을 떼어내고 싶은 것처럼 강하게 문 것이다.이내 피가 손목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지만 온다연은 멈추지 않았다.이마저도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녀는 더 깊게 물었다.유강후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위에서 회계 조사가 들어와서 못 나갔어. 그래서 아이를 보러 오지 못한 거야.”온다연은 속으로 비웃었다.‘거짓말! 당신 말 중에 진심이란 게 한 번이라도 있었어?’그녀의 분노는 더욱 타올랐고 이로 인해 유강후의 손목을 더 세게 물었다.유강후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날 피를 보게 해서 화가 풀릴 거면 차라리 날 두 번 찔러. 이렇게 어설프게 굴지 말고.”그러더니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칼을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자, 한 번 해봐.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이야.”순간, 온다연은 칼을 잡아 들더니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그러나 시야가 흐릿했던 탓에 칼은 유강후의 가슴이 아니라 어깨 아래쪽을 꿰뚫고 말았다.비록 작았지만 칼은 날카로웠고 깊숙이 파고들었다.곧바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둘 다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온다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칼을 놓아버렸다.그리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 때문에 두 발짝도 못 가 책상에 부딪혔다.책상 위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사진 두 장도 함께 떨어졌다.유강후는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찌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여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보고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천천히 사진을 주워들었다.사진 속에는 주한이 있었다.한 장은 주한의 단독 사진으로 소년의 맑고 깨끗한 모습이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와 함께
그는 경원시에서 손 하나 까딱하면 모든 걸 좌우할 수 있는 사람이다.‘아이 하나 처리하는 일쯤은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겠지. 그 여자 때문에 내 아이까지 데려간 사람인데. 만약 내가 거짓말을 폭로해버린다면 아저씨는 체면을 내려놓고 그 아이를 없애버릴지도 몰라.’유강후가 했던 끔찍한 일들은 이미 소문으로 들었고 그의 냉혹함은 이미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근데 왜 저렇게 반지에 집착하는 거지? 웃기지도 않아.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야!’온다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깊게 파고들었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아저씨처럼 잔인한 사람은 본 적 없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잠긴 듯했으며 마치 울음을 참는 듯했다.이런 온다연의 모습을 보자 유강후는 심장이 아릿하게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하여 그는 천천히 그녀 앞까지 걸어와 낮게 말했다.“말 들어. 반지 주워.”온다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야 아래로는 맞춤 제작된 고급 남성 구두와 한 치의 구김도 없는 바지의 다리만 보였다.조금 고개를 들자 그 긴 다리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순간, 온다연은 그 다리에 얽힌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물론 그 다리는 다른 사람들과도 얽혔을 것이다.고통과 구역질 나는 감정이 뒤섞이며 그녀의 마음을 한껏 옥죄었다.‘믿지 말았어야 했고 흔들리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내 것이 아닌 것에 손을 댔으니 결국 이렇게 된 거겠지.’진심과 사랑은 너무 값비싸다.온다연은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없었고 집안 배경도 부족했기에 유강후가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짓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유강후는 몸을 숙여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착하게 굴어. 반지 주워.”그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강압적인 느낌과 엄격함이 담겨 있었다.온다연이 여전히 미동조차 없자 그의 눈빛에 살기가 스쳤다.갑자기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잡아 반지 위에 얹으며 말했다.“주워.”그리고 덧붙였다.“반지 주울 생각 없으면 앞으로 며칠 동
방 안에는 작은 조명 하나만 켜져 있어 조금 어두웠다.온다연은 침대에서 막 일어나려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휘청이며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겨우 실루엣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정말 불행은 늘 약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걸까?‘왜 하필 지금 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야?’그때, 나무문이 열리며 낮고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아!”온다연이 고개를 들어 바라봤지만 어두운 조명 아래 남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다만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키 큰 남자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만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남자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은은한 삼나무 향이 느껴졌고 그 향이 점점 그녀를 휘감으며 다가왔다.이 불쾌한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어 온다연이 뒤로 물러났지만 삼나무 향은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붙었다.속이 메스꺼워져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유강후의 시선은 온다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조명이 어두운 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긴 머리카락이 앞으로 내려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며칠 못 본 사이 그녀는 더 야위어 있었다. 머리에는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고 뒤쪽에는 피가 조금 스며든 흔적까지 보였다.유강후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손에 쥔 반지를 꽉 움켜쥐었다.오는 길 내내 그녀를 벌줄 방법을 수없이 생각했지만 이렇게 초췌해진 모습을 보니 그 모든 생각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남은 건 오직 걱정뿐이었다.곧 그가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지만 온다연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공기 중에 스며든 삼나무 향은 유강후 특유의 냄새였다.그러나 그 삼나무 향 사이로 희미한 꽃향기가 섞여 있었다.무슨 꽃향기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달콤한 여자의 향기가 느껴졌다.가슴 깊이 불쾌함이 치밀어 오르다 못해 온다연의 머리는 더 심하게 아파왔다.“건드리지 마요!”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차갑고 날카로워 거리가 느껴졌다.유강후는 손을
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주희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주희,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넌 그저 주한의 동생일 뿐이야.”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씩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넌 영원히 네 형을 따라잡을 수 없어. 그리고 나도 너를 절대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알겠어?”주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손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그러나 온다연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주희는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그녀를 따라나섰다.그렇게 둘은 한 사람은 앞서고 다른 한 사람은 뒤따르며 걷고 있었다.익숙한 오래된 거리, 공기 중에는 은은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퍼져 있었다.하지만 모든 것이 이미 변해버렸고 지나간 일들은 되돌릴 수 없었다.익숙한 구멍가게 앞을 지나던 주희는 그 안을 바라보며 문득 말했다.“누나, 예전에...”온다연은 차갑게 대답했다.“너도 알다시피 그건 예전일 뿐이야. 이제 그만 가자. 아이가 오래 나와 있을 순 없거든.”바람이 불어 낙엽들을 날려 보냈고 그와 함께 기억 속의 사람들과 그림자도 사라져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옛날 거리에 도착했다.예상대로 거리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길 양쪽에는 붉은 등이 걸려 있었다.예전 명절 때처럼 아름답고도 낡아 보였다.주희는 문을 열며 말했다.“전에 전부 철거한다고 했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철거를 안 하기로 했대요. 나로선 잘된 일이지만요.”“원래 계약대로라면 이렇게까지 바뀌지 않았겠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개발업체가 꽤 배경이 있는 곳이래요. 아주 손쉽게 뭐든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나무문을 열자 익숙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온다연은 문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주희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온다연은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곧 주희가 생필품을 사러 나간 틈을 타 그녀는 주한의 사진 두 장을 챙겨 나가려 했다.그러나 문을 나서기도 전에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들어온 사람
“누나!”“진짜 누나예요? 누나!”“누나, 여기서 누나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뒤에서 들려오는 소년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온다연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떼어냈다.“주희야, 놔.”그러나 주희는 온다연을 꽉 끌어안으며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탐하듯 들이마셨다.“유강후, 그 인간 완전히 미쳤어요. 나더러 못 만나게 하고 누나가 전화도 받지 않게 했어요.”온다연은 그를 힘껏 밀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가까이 오지 마.”주희는 모자를 벗어 던지며 눈에 서린 억울함을 드러냈다.“누나, 왜 말투가 그 사람 같아졌어요? 너무 딱딱해요.”온다연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아이의 이불을 단단히 여미고 나직하게 말했다.“딱히 할 말 없으면 나가. 너랑 이야기할 거 없어.”어두운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주희는 금세 맑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누나, 이 아이가 누나 아이예요?”그는 아이의 뽀얀 볼을 쿡 찌르며 말했다.“정말 귀엽네요. 근데 누나도 안 닮았고 유강후도 안 닮았네요!”그러자 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화를 내듯 외쳤다.“네가 알 바 아니야. 당장 나가!”갑작스러운 고함에 주희는 당황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눈빛에는 짙은 우울함이 어린 채 말이다.그가 기억하는 온다연은 언제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말투도 늘 상냥했는데 유강후가 나타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이 모든 게 유강후 때문이야!’“나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 왜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주희는 눈물을 삼켰고 온다연은 문 쪽을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나가. 너 보고 싶지 않으니까.”이 말에 마주희는 서글프게 울먹였다.“누나는 왜 날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형만큼 되지 못해서?”마음이 어지럽고 속이 타들어 가 온다연은 더는 말을 잇고 싶지 않았다.하여 그저 문 쪽을 가리킨 채 차갑게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주희는 작게 중얼거렸다.“누나, 우리 살던 집 철거 안 됐어요. 며칠 전 공사팀이
“닥쳐!”온다연은 보안 요원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줄 알아? 경고하는데 만약 날 따라오거나 유강후에게 전화라도 건다면 내가 언젠가는 다 알아낼 거야. 1년, 2년, 3년이 지나도 기회만 생기면 당신들 평생 편히 살 생각은 접어.”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경호원의 옷깃을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경호원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온다연이 병원 밖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떠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빨리 대표님한테 연락해!”“따라가자! 놓치면 우리 목숨도 끝이야!”택시 안에서 온다연은 아이를 품에 안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병원에서 계속 울던 아이는 지금은 조용히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고 작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이 순간, 온다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신경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내 아이는 그 여자 곁에 있는 걸까? 그럼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지? 그리고 아이를 잃은 그 어머니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온다연은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으며 낮게 흐느꼈다.“정말 너무 잔인해. 어머니와 아이를 갈라놓다니. 너는 구월이가 아니야. 구월이처럼 혼자 살아남아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아. 그 사람이 너를 버리면 너는 굶어 죽을 거야. 네가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난 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그때, 차창 밖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려 광장을 바라보았다.거대한 스크린에서는 주희의 독점 인터뷰가 재생되고 있었다.소년은 은빛 머리카락을 물들인 채,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마치 이차원 세계에서 튀어나온 요정 왕자 같았다.그는 품에 하얀 고양이를 안고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진행자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온다연은 그의 눈가에 희미하게 자리 잡은 눈물점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어쩌면 저렇게 주한이랑 닮아갈 수 있을까? 혹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자 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아기.그녀가 그토록 사랑해온 아기였다.‘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쉽게 놓을 수 없는 거지?’거의 무의식적으로 온다연은 돌아서서 아이를 안았다.그리고 아이를 품에 안고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가려는 순간, 장화연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밖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아직 아픈 상태라 병원에 있는 게 최선입니다.”온다연은 아이를 꼭 안은 채로 감정 없는 얼굴로 장화연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내 아이예요. 어디로 데려가든 내 마음이라고요. 집사님이 관여할 권리는 없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장화연을 비켜지나 온다연은 병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더 이상 이 병원, 그리고 유강후가 드나들던 이곳에서 단 한 순간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장화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직감적으로 온다연이 뭔가를 알아챘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지금 유강후는 이곳에 올 수 없는 상황이니 그녀는 온다연을 진정시키고 이곳에 머물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아이의 상태가 매우 안 좋은데 이 상태로 밖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발걸음을 잠시 멈추더니 온다연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를 묶어두겠다는 겁니까? 내 발걸음까지 막으려고요?”장화연은 부드럽게 말했다.“그런 뜻이 아닙니다. 나가고 싶으시다면 제가 동행하겠습니다.”온다연은 병실 안을 둘러보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꽃병을 발견했다.“좋아요. 그럼 아기용품 챙겨서 같이 갑시다.”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려던 순간, 장화연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강하게 내리쳐졌다.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 그녀는 쓰러지기 전에 온다연의 차가운 눈빛을 마지막으로 보았다.그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없었다.오히려 깊은 혐오만이 가득 담겨 있을 뿐이었다.“사모님, 어떻게...”이 말을 끝으로 장화연은 바닥에 쓰러졌다.온다연은 손에 든 꽃병을 내려놓고 쓰러진 장화연을
“사모님, 결혼반지는 절대 빼지 않는 게 좋습니다. 셋째 도련님께서 아시면 화내실 거예요.”장화연의 말에 온다연은 차갑게 대답했다.“손이 불편해서 그래요. 아이를 돌보는데 반지가 걸리적거리니 며칠 동안 빼둘게요. 나중에 집사님이 가져가서 보관해 주세요.”이 정도로 말하니 장화연도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음식 상자에서 음식을 꺼내 식탁에 차렸고 온다연은 겨우 몇 숟가락을 뜨다 결국 더는 먹지 않고 장화연에게 다시 치우라고 했다.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 즈음, 드디어 임정아에게서 소식이 왔다.온다연은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확인했다.임정아는 아무 말도 없이 DNA 검사 결과지를 사진으로 보냈다.그리고 결과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감정 양측은 친자 관계가 아님.]딱!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져 나가는 듯하더니 온다연은 갑작스레 기침을 하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아이를 재우고 있던 장화연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하지만 온다연은 그녀를 힘껏 밀쳐냈다.“꺼져요!”평소 순한 성격의 그녀가 이렇게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은 처음이었다.장화연은 그녀가 무언가를 알았음을 눈치챘지만 여전히 아이와 관련된 문제일 거라 생각하며 달래려 했다.“셋째 도련님께서 그렇게 하신 데는 이유가 있으십니다...”“닥쳐요!”온다연은 입가의 피를 거칠게 닦아내고 돌아서서 장화연을 똑바로 노려보았다.“집사님이랑 아저씨가 한통속이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내가 이제 집사님 말을 믿을 것 같아요?”이 말에 장화연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사모님, 셋째 도련님께서 이렇게 하신 건 사모님을 보호하기 위해서예요.”‘보호? 날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내 곁에서 빼앗아 다른 여자에게 넘겼다는 거야?’그녀는 속으로 비웃음을 삼키며 떠올렸다.조금 전, 낯선 번호로 온 또 다른 메시지에는 어떤 여자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얼마 전에 아이가 생겼다는 내용을 암
장화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도련님은 요즘 정말로 일이 많습니다.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모님...”그때, 온다연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집사님, 집사님이 만들어주시는 해산물 죽이 먹고 싶어요. 지금 가서 만들어서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그러자 장화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도련님은 며칠 후에 돌아오실 겁니다.”이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병실을 나섰다.장화연이 떠난 후, 온다연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정아 씨, 부탁할 게 있어요.]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무슨 일인데요?]온다연은 잠든 아이를 돌아보았다.작고 귀여운 얼굴로 평온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눈을 감고 낮게 속삭였다.“아가, 너 정말 엄마의 아이가 맞니?”물론 아기는 대답할 수 없었다.잠시 침묵한 후, 온다연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고 자신의 머리카락도 뽑아 휴지에 싸서 보관했다.그리고 다시 임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DNA 샘플 비교 좀 해줘요. 믿을 만한 기관으로 부탁해요.]그러자 임정아는 의아한 듯 답을 보냈다.[갑자기 무슨 DNA 비교예요? 설마 다연 씨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거예요?]온다연은 간결하게 답했다.[부탁할게요.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알겠어요. 지금 어디예요? 내가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면 다연 씨가 직접 가져올래요?][밖으로 나가기 좀 어려워요. 사람이 오면 좋겠어요. 지금 인평 병원에 있어요.][마침 내 비서가 그 근처에 있어요. 병원 밖으로 전달할 수 있겠어요?][고마워요.]온다연은 전화를 끊고 머리카락을 휴지로 싼 뒤 작은 약통에 넣었다.그리고 병실을 나가 어린 간호사를 찾아냈다.그녀는 몇만 원의 현금을 건네며 약통을 주고 말했다.“여기에는 특효 화상약이 들어 있어요. 병원 밖에 있는 제 친구에게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간호사는 온다연의 신분을 알아채고 돈을 받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