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인데도 민소매로 된 긴 드레스를 차려입고 빨간 입술을 가진 여배우는 좀 낯이 익어 보였다.그 여배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곧 온다연의 앞에 다가왔다.코앞까지 다가온 경호원들은 온다연이 길을 막았다고 생각하여 손을 뻗어 그대로 밀어내며 말했다.“어디서 감히 앞길을 막아? 저리 비켜!”갑자기 밀린 탓에 온다연은 비틀거리더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넘어지고 말았다.유강후는 넘어진 온다연을 재빨리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옷이 두꺼워서 상할 정도로 넘어진 건 아니에요. 그냥 바닥에 스쳤을 뿐이에요.”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상대방 일행을 노려보며 손짓했다.유강후의 경호원은 이 상황을 보고 바로 앞으로 달려 나가 방금 온다연을 밀었던 경호원의 멱살을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갑자기 발생한 일로 상대방 일행은 모두 어리둥절해 있었고 여배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그러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비서가 재빨리 대답했다.“조금 전에 저 여자가 우리 앞길을 막고 서있었다고 지완이가 밀쳤어요.”여배우는 온몸을 꽁꽁 싸맨 온다연을 한번 훑어보았다. 온다연은 얼굴은 이쁘장하지만 그럴듯한 액세서리 하나 갖고 있지 않아 없어 보였고 반대로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잘생기고 포스가 있어 보였다.여배우는 오늘 미래 그룹이랑 계약할 생각에 모든 일이 순리롭게 되길 바랐는데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하자 재수가 없다는 듯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며 소리 질렀다.“살짝 넘어졌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감히 내 사람을 때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이러는 거야? 경원시는 내 구역이야. 너희들이 뭔데 나를 깔봐?”그러고는 다시 경호원들에게 지시하며 말했다.“너희들 여기 서 있지 말고 당장 가서 저 여자를 때려!”옆에 있던 비서는 재빨리 여배우의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유리 언니, 그만 해요. 지금 밖에 마중 나
유강후의 경호원들은 모두 키가 크고 건장했고 딱 봐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 같아 신유리의 경호원들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게다가 한 번의 손짓에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니 신유리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뭐야!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나를 때리면 너희들 목숨으로 갚게 할 거야.”유강후는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주 시끄러워 죽겠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때려!”경호원들은 명령을 받자마자 바로 상대방 몇몇 일행들을 바닥에 제쳐놓고 때리기 시작했다.신유리는 처음에는 욕설을 퍼붓다가 나중에는 찍소리도 못할 정도로 두들겨 맞아 얼굴이 부어 돼지머리가 되었다.이 정도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온다연은 그만하라고 말했다.신유리는 기겁하며 부어오른 자기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유강후와 온다연을 가리키며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당신들 다 죽었어. 내 얼굴이 얼마나 값진 줄 알아? 당신들이 이 얼굴을 이렇게 계약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으니 수억 원의 손실을 배상해야 할 거야. 내가 오늘 미래 그룹 보석 광고를 계약하려고 했는데 만약 당신들 때문에 이 계약이 파기되면 진짜 죽을 줄 알아!”“우리 양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당신들 이제 끝났어. 당신들이 뭐 하는 사람들이든 난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이권은 바로 신유리의 얼굴을 밟으며 말했다.“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지껄이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여버릴 거야.”이때 누군가 밖에서 걸어 들어오며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저는 신유리 씨를 데리러 온 미래 그룹 대표입니다. 혹시 신유리 씨는 어디에 계실까요?”신유리는 듣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조인혁 대표님, 제가 신유리예요.”조인혁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이 부어 돼지머리가 된 신유리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건넸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내일부터 광고 촬영과 영상 촬영을 시작해야 하고 스태프
온다연의 한마디에 유강후는 바로 그녀를 안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로비를 지날 때 밖에는 마중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방금 안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유강후는 앳된 팬들의 얼굴을 보고 다시 온다연의 배를 한 번 더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권아, 신유리의 비리를 전부 파헤쳐 인터넷에 올려. 이런 사람들은 아이돌이 될 자격이 없고 또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들을 나쁜 길로 인도할지 몰라. 그리고 그녀의 양아버지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갖춘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는지 한번 알아봐봐.”이권은 재빨리 대답했다.“네, 대표님.”“그리고 미래 그룹과 계약한 연예인들을 모두 철저히 조사해 보고 도덕조차 갖추지 않은 연예인이 있다면 이유를 찾아 바로 계약을 중지시켜.”“네.”온다연은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렇게 복잡하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오늘 일은 이미 처리되었고 신유리도 아마 교훈을 얻었을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일은 관여하지 마세요. 세상이 이렇게 크고 부도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당신이 어떻게 일일이 관여할 수 있겠어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관여할 수 있으면 해야 해. 이런 소질이라고 없는 사람들은 연예인이 될 자격이 없어. 아까도 봐봐, 우리 옆에 경호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히 임산부를 밀쳤잖아. 그런 사람들은 뒤에서 또 어떤 험한 일을 할지 눈에 보여. 쓰레기 같은 것들!”유강후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온다연의 배를 쳐다보면서 이어 말했다.“방금 그 팬들을 보니 절반은 미성년자던데 만약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저렇게 미친 듯이 아이돌을 따라다니면 어떡해.”온다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유강후 씨가 걱정한 일이 그거였어요? 이전에는 이런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않더니 오늘은 괜히 연예인의 도덕성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앞으로
온다연은 유강후의 어깨에 기대어 잠시 넋 놓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그의 손을 자신의 배에 갖다 대며 중얼거렸다.“유강후 씨, 저도 이제 집이 생겼어요.”“그때의 저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저와 같은 비참한 사람한테도 오늘이 있고 집도 있고 아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요.”유강후는 어릴 적 힘들었던 온다연을 생각하며 아픈 마음에 그녀를 안아 다리에 앉히고 자신의 품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게 했다.그러고는 온다연을 꼭 껴안고 마치 맹세라도 하는 듯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넌 항상 집이 있었고 난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한 번이라도 뒤돌아보기라도 했으면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겠지만 넌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어.”“다연아, 이제 다시는 날 버리지 말아 줘.”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그의 턱에 뽀뽀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그 순간 온다연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꼭 잡고 있을 것이고 누가 빼앗으려 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리라 생각했다.창밖에 낯익은 거리의 풍경을 보던 온다연은 마음속으로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말했다.“저 배고파요 강후 씨, 저 앞 상남가에 있는 고기만두랑 야채죽에 김치까지 더해서 먹고 싶어요.”상남거리는 바로 그녀가 이전에 살던 곳의 오래된 거리였다.그 시절 온다연은 여유가 좀 생길 때면 아침에 그 집 고기만두 한 접시를 주한이랑 나눠 먹곤 했다.고기만두는 한 접시에 여덟 개로 되어 있었는데 매번 주한이는 싫어한다면서 양보하여 온다연에게 여섯 개를 줬고 그녀는 거절하며 다시 만두를 집어 주한의 입에 억지로 넣어주면서 그의 얼굴을 기름투성이로 만들었었다.온다연은 그 감칠맛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함께 고기만두를 나눠 먹었던 그때의 즐거움도 잊을 수 없었다.마치 그녀가 영원히 주한이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입을 맞추고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알았어, 지금 바로 사람 시켜 사 오라고 할게.”온다연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이고 좋은 것만 소유하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앞에 가져다주고 하는 그런 생활을 하는 줄 알았어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온다연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아니에요? 적어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본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살았어요.”그러더니 갑자기 삐져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자기만 갖고 있으면 그만이지, 유하령에게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주면서 공주처럼 떠받들어까지 주었잖아요. 됐어요, 입맛도 사라졌으니 그냥 집에 가요.”유강후는 온다연의 양 볼을 꼬집더니 웃음기를 띤 얼굴로 말했다.“누가 속이 좁은지 모르겠네.”온다연은 그런 유강후의 손을 깨물고는 말했다.“당신이거든요!”유강후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달래며 말했다.“그래 맞아, 내가 속이 좁아. 그럼 된 거지? 좀 더 자고 깰 때쯤이면 우리 도착할 거야.”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여 체온과 안정감을 느끼며 휴식을 취했다.상남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침 9시였다.밤새 눈이 많이 온 탓에 거리와 나무에는 온통 눈이 덮여 있었고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거리가 너무 좁아 차는 골목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주차한 곳에서 만둣가게까지 가려면 이삼백 미터를 걸어서 가야만 했다.온다연이 차에서 내리자 유강후는 바로 그녀를 들어 안았다.“길에 눈이 너무 많아 미끌어서 넘어질까 봐 그래.”이 거리는 많이 익숙한 거리라서 온다연은 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내려줘요, 저 혼자 걸어갈래요. 이백 미터밖에 안 되는데 당신이 옆에서 조금만 잡아주면 넘어질 리 없어요.”그러면서 유강후의 품에서 빠져 내렸다.유강후는 온다연의 어깨를 꼭 껴안고 담요를 걸쳐주고는 말했다.“가자, 이제.”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어깨와 머리 사이에도 많은 눈이 덮여 있었다.그 모습을 본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의 머리카락
그때 유강후가 마침 들어오더니 그 말을 듣고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온다연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당당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저분이 제 남편이에요.”유강후는 몸집도 웅장하고 잘생긴 데다 옷차림도 깔끔하여 사모님은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말했다.“아가씨 남편은 정말 패기 있게 잘 생겼네요. 둘이 잘 어울려요. 그런데 낯이 익은데, 설마 연예인은 아니죠?”그 말에 유강후의 어두워졌던 얼굴색은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온다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유강후의 팔짱을 끼고 돌아서서 사장님을 보며 말했다.“사장님, 고기 속 한 접시랑 표고버섯 속 한 접시, 그리고 좁쌀죽 두 그릇이랑 밑반찬 두 접시 주세요.”“그래요.”사장님은 웃으며 물었다.“전에 고기 속만 드시더니 오늘은 왜 표고버섯 속도 시켜요?”온다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저의 남편이 표고버섯을 좋아해요.”그러고는 휴지를 가져와서 밥상과 의자를 다시 한번 닦고 유강후를 보며 말했다.“얼른 앉아요. 이 가게 위생은 괜찮아요, 걱정 안 해도 돼요.”유강후가 이런 구멍가게에 별로 와본 적이 없어 온다연은 그가 적응이 안 될까 봐 걱정되었다.그러나 유강후는 싫은 내색 한번 내지 않고 대신 온다연이 쓸 수저를 뜨거운 물에 헹구어주었다.온다연은 그가 처음 이런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약간 놀라웠다.유강후는 온다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주한이가 할 수 있는 거 나도 할 수 있어. 모르면 배워서라도 할 수 있어.”그때 사모님이 만두를 들고 오더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남편이 정말 자상하네요. 둘은 감정이 참 좋아 보여요.”“두 분 다 외모가 출중하니 아기는 또 얼마나 예쁘겠어요. 정말 부럽네요.”온다연은 웃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고마워요, 사모님이 만드신 만두는 역시나 맛있어요.”사모님은 웃으며 말했다.“저희는 다른 재주도 없고 만두 만들 줄밖에 모르니 아가씨 같은 단골손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어요.”
온다연은 사모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웃고 넘기며 부하 직원들을 불러 아침 식사를 하게 하고는 다시 만두를 먹으면서 사모님과 잡담을 나누었다.유강후는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지만 옆에서 들으면서 그가 알고 싶어 했던 것들과 온다연의 과거도 많이 알게 되였다.거의 다 먹을 때쯤 사모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 가게도 이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 양반이 몇 해 동안 밀가루 반죽만 해왔더니 손목도 이젠 못쓰게 됐어요.”“내년에 만약 우리 딸이 미래 그룹에 들어가면 우리도 가게를 내놓고 은퇴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단골손님들에게 마지막으로 아침 식사하러 오라고 통지할 것이니 꼭 와요. 그날은 돈 안 받고 제가 쏘는 거로 할게요.”온다연은 조금 아쉬워하며 말했다.“가게 문 닫는 거예요? 그럼 먹고 싶으면 어딜 가야 해요?”생각해 보니 좀 유치한 물음인것 같아서 온다연은 다시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따님이 지금 미래 그룹에서 출근한다고요?”“네, 아직은 인턴직이에요.”사모님은 얼굴에 자랑스러운 표정을 띠며 말했다.“딸이 다니던 학교에 모두 세 명의 미래 그룹 인턴직 자리가 있었는데 제 딸도 그중 한 명이에요. 잘하면 내년에 정규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했어요. 미래 그룹의 급여와 대우가 보통 회사의 네다섯 배잖아요. 정규직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우리 부모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거예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사모님 딸 저도 봤잖아요. 참 야무지고 착하시던데 틀림없이 정규직이 될 거예요.”두 사람은 한참 잡담을 나누고 나서야 온다연은 유강후와 가게를 떠났다.잠시 후, 방금 같이 나섰던 경호원 한 분이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그는 손에 든 입사 초대장 한 장을 사모님께 전해 드리며 말했다.“이건 사모님 딸에게 주는 입사 초대장이에요. 내일부터 정규직으로 미래 그룹에 입사시킬 것이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주말마다 고기만두 두 접시를 대표님 사무실에 가져다줘야 해요. 밖에서 사면 안 되고 꼭 이 가게
한편, 차 안에서 온다연은 포장한 만두를 따뜻한 채로 보온 도시락통에 넣어 두고 두유도 보온병에 담아 두며 음식이 식을까 봐 걱정하였다.그 행동을 본 유강후는 질투하는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장 집사 밥 먹었을 거야. 이렇게 안 챙겨줘도 돼.”온다연은 보온병을 제대로 놓고 말했다.“우리 다 같이 금방 비행기에서 내린 건데 집사님도 많이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또 우리 점심까지 챙겨줘야 하는데 당신은 집사님이 로봇인 줄 알아요?”유강후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집에 먹을 것도 많고 요리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그건 다르죠. 제가 가져다드리면 더 좋아하실걸요.”유강후는 화가 나서 불쾌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았다.온다연은 여태 그에게 선물해 준 적이 없었고 먹는 것을 포장해 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유강후는 그녀가 남만 챙기고 자신을 챙기지 않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이런 생각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박혀 있었지만 이번 일로 자극받아 더욱 불쾌해졌다.차 안에 저기압이 느껴지자 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깐 생각에 잠겨 있었다.‘이 남자는 갈수록 속이 좁아지네. 예전에는 일하는 면에서 침착하고 대범하여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하는 걸 보니 다 연기였네. 이 남자 속은 바늘구멍보다도 더 좁은 거 같아.’온다연은 화가 나 있는 유강후의 몸에 기대여 새끼손가락으로 그의 손가락을 터치하며 말했다.“그냥 장 집사한테 아침밥을 포장해 주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화내는 거예요?”유강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은 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장 집사님은 이제 당신 가족이랑 마찬가지예요.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그렇게 잘해주는데 아침 식사 하나 챙겨주는 게 이 정도로 화낼 일이에요? 진짜 너무 소심하네요. 유강후 씨, 그냥 이럴 거면 저도 화내요.”말하면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반대쪽으로 기대었다.유강후는 손을 뻗어 온다연을 다시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