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가문 저택에 돌아와 보니 이미 환영회 준비가 성대하게 되어 있었다.강씨 가문의 모든 친척들이 모였고 길게 놓인 테이블 앞은 수십 명의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몇 년 만의 일이었는데 강씨 가문은 단결력이 강하고 쉽게 내부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회사의 주가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심지어 유강후가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순간에도 그를 배신하거나 등에 칼을 꽂은 사람은 없었다. 그제야 온다연은 유강후가 왜 이토록 강씨 가문을 위해 애써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가장 상석에는 강양호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유강후와 온다연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온다연의 맞은편에는 강현미와 안심이 앉았는데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유강후와 온다연이 자리에 앉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이제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음식도 거의 다 차려진 상태였다. 강양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그는 많은 말을 했지만 요지는 단순했다. 이번 위기 속에서 강씨 가문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공로는 온다연에게 있으며 그가 강씨 가문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오늘부터 온다연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경제적 권한을 전적으로 맡게 된다는 공식적인 발표도 덧붙였다.그 후 자연스럽게 유강후와 온다연의 결혼식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은 강씨 가문의 큰 행사였고 사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몇 달 전에 이미 치러졌어야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미뤄진 것이다.강씨 가문 사람들은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를 생각이었고 초청할 하객 명단까지 이미 준비해 둔 상태였다.하지만 온다연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녀는 현재 쌍둥이를 임신 중이었고 최근 산전 검진을 받으면서 아이들의 몸이 평균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곧 조산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지금 그녀는 임신 5개월 차였고 설령 8개월까지 무사히 버
유강후는 바로 게를 집어 들고 정성스럽게 속살을 발라 온다연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게 유강후는 언제나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그는 가문의 모든 이들이 의지하는 거목이었다.그런데 지금 유강후가 온다연 앞에서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자 다가올 아이들의 좋은 아버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생경하기도 했지만 지난 몇 년간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졌다.환영회가 끝난 후 안심이 온다연을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그런데 안심이 입을 떼기도 전에 온다연이 먼저 물었다.“아빠는 아직도 강후 씨를 만나려 하지 않으세요?”안심은 한숨을 내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유씨 가문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아는데 그 얘기를 듣고도 네 아버지가 강후를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양보를 한 거야. 조금만 더 시간을 줘.”온다연은 고개를 떨궜다.“전 정말 나쁜 딸이에요. 부모님께 걱정만 끼쳐 드리고...”안심은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잘못한 건 우리야. 어릴 때 우리가 널 잃어버려서 결국 네 인생을 힘들게 만들었어. 그 오랜 시간 동안 넌 혼자서 너무 많은 걸 감당해야 했고.”온다연은 다가가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하지만 결국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잖아요. 그동안의 고생이 이 순간을 위한 거라면 저는 괜찮아요.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님이세요.”안심은 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혔다.“내일이면 난 신국으로 돌아가야 해. 네 아빠가 집에 혼자 있는데 늘 네 걱정을 하니 곁에 있어 줘야지. 그래도 강씨 가문이 널 잘 대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여.”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정말 H국에서 출산할 생각이야? 신국에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네 아빠랑 나는 네가 집에서 아이를 낳길 바라고 있어
다음 날 오후, 온다연은 안심을 배웅한 뒤 H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한 손으로 배를 살며시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도우미들에게 이것저것 짐을 싸라고 지시했다.그 모습을 보던 장화연은 진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 평소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는 다급하게 온다연의 팔을 붙잡고 소파로 데려갔다.“사모님, 제발 좀 쉬세요. 며칠 동안 피곤하셨잖아요. 이런 건 제가 알아서 챙기면 됩니다. 그리고 집에 필요한 물건은 다 있어요. 예전에 쓰셨던 것들도 전부 그대로 보관되어 있어서 새 거랑 다름없어요.”“지금 겨울이라 돌아가시면 영운산 별장에서 지내시겠죠? 거기에 천연 온천이 있어서 출산 후 몸조리하기도 좋아요. 거긴 원래 신혼집으로 지내려고 준비한 곳이라 하루도 사용한 적이 없어요. 사모님께서 떠나신 후에도 매일 관리인을 보내 청소해 왔으니 따로 뭘 챙겨 가실 필요 없어요.”하지만 그 말을 듣고 온다연은 표정이 굳어졌다.“전 영운산 별장이 싫어요.”그곳에 가기만 하면 그해 겨울 유강후와 나은별이 다정하게 지내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장화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모님께서는 그 별장이 나은별 씨를 위해 지어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그 집은 처음부터 사모님을 위해 준비된 곳이고 내부 인테리어도 사모님께 맞춰 설계된 거예요. 그때 사모님께서 H국에 계셨을 때부터 말이에요.”“나은별 씨와는 정말 아무 관계도 없어요. 나은별 씨가 거길 두어 번 구경하러 갔던 게 전부예요.”잠시 말을 멈췄던 장화연은 다시 덧붙였다.“게다가 나은별 씨도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러니 제발 그 일로 사모님께서 도련님과 다투시지 않길 바라요.”그녀는 진심으로 걱정했다. 유강후와 온다연 두 사람은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극단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이제야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는데 장화연은 다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왜 나은별 씨
유강후는 무심하게 말했다.“그건 네 형이 결정한 일이야.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난 그냥 임혜린한테 집 키 하나 줬을 뿐이야. 네가 무능해서 못 찾은 걸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내 집이 그렇게 찾기 어려웠어?”한이준은 폭발 직전이었다.“그래! 너 딱 기다려. 나 나은별에 관한 소식 들었거든? 이따가 온다연에게 말해 줄 거야. 그럼 넌 평생 버림받겠지!”하지만 유강후는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끊고는 표정이 굳은 채 이권에게 전화를 걸었다.“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은별이가 새어나갈 구멍을 끊으라고 했는데 왜 아직도 은별이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오는 거냐고?”이권은 잽싸게 답했다.“도련님, 제가 바로 그 문제를 보고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마침 전화를 주셨네요. 나은별 씨가 그곳에서도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았는데 여러 번 도망치려 했고 마지막에는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아래 있는 대나무에 찔렸습니다.”“하지만 그쪽 사람들은 나은별 씨를 구해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피가 한 시간 넘게 흘렀고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그쪽에서 시신을 수습할지 묻더군요.”유강후의 목소리는 싸늘했다.“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나씨 가문과 소씨 가문에게 이 소식을 흘려서 양쪽에서 더 심하게 싸우도록 만들어. 그리고 다연이 앞에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마. 다연이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으니까. 알아들었지?”“네,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그리고 당분간 한이준의 전화는 전부 차단해. 나한테도 다연이에게도 연락 못 하게 말이야. 문자도 못 보내게 해.”“알겠습니다, 도련님!”성당 근처에서 임혜린은 선배 정연석과 이야기를 나누며 느긋하게 산책하고 있었다.오랜만의 재회였다. 서로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지만 임혜린은 이사 온 지 이틀 만에 동네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정연석은 이제 국제적으로 유명한 변호사가 되었고 그의 집은 임혜린이 사는 건물의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과거 두 사람은 꽤 친한 사이였지만 한이준이 의도적으로 둘 사이에 오해를 만들면서 연락이 끊겼던 것이
임혜린은 이를 악물고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한이준을 노려보았다.“뭐 하는 거예요?”한이준은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왔고 어둠 속에서 보이는 그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그는 천천히 검은 가죽 장갑을 벗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널 잡으러 왔지.”임혜린은 코웃음을 쳤다.“이준 씨가 뭔데요? 무슨 자격으로 날 잡겠다는 거예요?”한이준은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내 자격은 누가 주는 게 아니야. 네가 정말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넌 무릎 꿇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임혜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예전엔 그래도 착한 척이라도 하더니 이젠 그러지도 못하겠어요? 이게 이준 씨 본모습이죠?”그녀의 움직이는 입술을 본 순간 한이준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 입술이 다른 남자에게 닿았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가정을 꾸렸다는 것.그 사실들은 밤낮없이 그를 괴롭혔고 가슴을 죄어오며 미칠 듯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임혜린을 그냥 목 졸라 죽여 버릴까? 아니면 갈기갈기 찢어 삼켜 버릴까? 그럼 어디에도 도망가지 못할 텐데.’그런 생각이 들수록 한이준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손아귀의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임혜린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파 손톱으로 그의 손을 할퀴었다.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절박해진 그녀는 한이준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힘껏 물어버렸다. 그러자 한이준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그녀의 이빨이 살을 뚫고 들어가자 그는 순간적으로 손을 놓고 소리쳤다.“임혜린, 너 개야? 왜 이렇게 물어대!”임혜린은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옆에 있는 골든 리트리버를 가볍게 두드렸다.“코코, 네가 나설 차례야. 물어!”평소 순한 성격의 코코는 몇 번 신음을 내더니 바닥을 긁으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몸집으로 한이준에게 덮쳐들어 그의 옷을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이
한이준은 개를 떼어내지 못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러자 그는 코트를 홱 벗었고 그제야 개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그 틈을 타 경호원들이 재빨리 달려들어 코코의 머리에 옷을 씌우고 눌러서 제압했다.임혜린은 그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만해요!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하지만 한이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코코에게 물린 손목을 문지르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저 여자도 잡아서 묶어!”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길목에서 경찰차 한 대가 나타났다.임혜린은 눈이 번쩍 뜨였고 재빨리 길가로 달려가 외쳤다.“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한이준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소리쳤다.“입 막아!”그러자 경호원 한 명이 황급히 달려들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임혜린은 발버둥 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들은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제압했다.그러나 경찰차는 이미 멈춰 섰고 차에서 내린 두 명의 백인 경찰이 상황을 살피더니 즉시 총을 빼 들었다.“손 떼!”경호원들은 순간 긴장해서 손을 가슴께로 가져갔고 한이준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놓아 줘.”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임혜린은 곧바로 경찰 쪽으로 달려갔다.“저 납치당했어요! 제 강아지도 학대당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필사적으로 외쳤다.그러자 한이준도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오해입니다, 경찰관님. 저희는 부부입니다.”그리고 그는 일부러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아주 사소한 부부 싸움이었어요. 제 아내가 우리 개를 데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겠다고 해서 제가 반대했거든요. 그랬더니 보세요.”그는 아직도 피가 흐르는 손을 들어 보였다.“이 상처, 보이십니까? 이건 제 아내가 문 겁니다.”그리고 살짝 걷어 올린 소매를 가리켰다.“여긴 개가 문 자리입니다. 아내가 개를 시켜 저를 공격하게 했어요.”실제로 그의 손에 선명한 치아 자국이 남아 있었고 팔에는 긁힌 자국까지 있었다.한이준은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말했다
경찰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총을 집어넣었다.그중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진짜 부부인가 보네. 가자.”그러나 다른 경찰이 곧바로 반박했다.“난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저 남자 뭔가 수상해.”“설령 부부가 아니라 해도 아는 사이는 맞겠지. 연인끼리 싸우다 벌어진 일일 수도 있어. 굳이 우리가 개입할 필요 없다고. 게다가 요즘 이 근처에 아시아계 조직이 활개 치고 있어. 어제도 경찰을 습격해서 몇 명이 죽었잖아.”“맞아. 그놈들 세력이 장난 아니야. 건드렸다간 괜히 우리만 피곤해질 거야.”“그래, 저 남자도 딱 범죄 조직의 보스처럼 생겼잖아.”그때 무전이 울렸다.“바 근처에서 신고 들어왔어. 싸움이 났다니까 어서 출동해!”경찰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더 이상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이만 가자.”...임혜린은 경찰들이 돌아서자 다급하게 소리쳤다.“두 분은 경찰이시잖아요! 제가 신고하겠다는데 왜 안 도와주시는 거예요?”총을 꺼냈던 경찰이 그녀를 흘끗 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저흰 부부 싸움엔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알아서 해결하세요.”그렇게 경찰들은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멀어지는 경찰차의 붉은 테일라이트를 바라보자 임혜린은 속이 뒤집혔다.“젠장!”한이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웃었다.“외국에서 몇 년 살았다면서 아직도 세상을 몰라? 경찰이 움직일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이 뭔지 알아? 바로 자기 보호야. 한국이랑 같을 거라 생각했어?”임혜린은 분노로 몸을 떨며 한이준을 노려봤다.“이준 씨가 뭐 하든 난 절대 따라갈 생각 없어요!”그러자 한이준은 눈빛이 싸늘해졌다.“그건 네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그가 손짓하자 경호원들이 일제히 임혜린을 둘러싸고 강제로 차에 태웠다.이번에는 그녀가 또다시 도망칠 걸 우려해 한이준은 같은 차에 타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탄 차 뒤에 있는 차량에 올랐다.그런데 몇백 미터쯤 달렸을까, 앞 차의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임혜린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한이준은 천천히 임혜린의 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마치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처럼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중얼거렸다.“혜린아, 너... 우는 거야?”임혜린은 그를 확 밀쳐내고 아이에게 달려가 품에 안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등을 다독였다.“동현아, 울지 마. 엄마 괜찮아. 엄마랑 삼촌이 장난친 거야. 우리 동현이 착하지? 아무 일도 없어. 아무 일도... 그냥 어른들끼리 장난친 거야. 게임이야, 게임!”그러나 아이는 계속 흐느끼며 임혜린에게 매달렸고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울음을 멈췄다.그때 한이준이 다가와 아이의 얼굴을 스치듯 만졌다.“네가 동현이야?”아이의 보드라운 피부를 느낀 순간 한이준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만약 임혜린이 조금만 더 순종적이라면 이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너 몇 살이야?”그러자 임동현이 눈을 붉히며 그를 노려봤다.“나쁜 삼촌! 우리 엄마 괴롭혔잖아요! 정씨 아빠한테 말할 거예요. 정씨 아빠가 와서 삼촌 혼내줄 거예요!”그 말에 한이준은 표정이 굳어졌고 순간 속에서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정씨 아빠? 임혜린 이 여자... 아이를 몰래 키운 것도 모자라 아빠를 둘이나 만든 거야?’그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난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이제부터 너랑 엄마는 나랑 같이 지낼 거야. 우리 셋이 가족이 되는 거야.”한이준은 천천히 손을 거둬들이며 손바닥을 펼쳤는데 아이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이 모든 행동을 임혜린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빛이 흔들렸고 그러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이준 씨, 나랑 얘기 좀 해요.”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도우미에게 넘겼다.“아주머니, 동현이랑 같이 다른 차 타고 가세요. 우리 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동현이가 울지 않게 잘 달래 주시고 재워 주세요.”그러자 정미숙은 고개를 끄덕였
소년의 사랑은 뜨겁고도 아름다웠다.그들의 눈에는 오직 서로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나도 어렸기에 감히 공개하지 못했다. 공개하는 순간, 신분 차이가 극명한 그들의 사랑은 절대로 부모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지나치게 탐닉했고 상대의 숨결마저도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이 빠져들었다.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구석에서, 어두운 작은 방에서, 깊은 밤 적막한 후원에서, 그들은 주저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고 서로를 껴안았다.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그녀가 그에게 다가간 것은 목적이 있어서였다.그녀가 원했던 것은 오직 그의 신분과 봉씨 가문의 젊은 안주인으로서 누릴 영광과 부귀. 더 치욕적인 것은, 그녀가 감히 그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몸을 섞었다는 것!그녀가 다른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 있던 모습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일은 꿈속에서조차 목을 조이는 밧줄이 되어 그를 숨 막히게 했고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그가 불행하다면, 그녀 또한 벌을 받아야 했다. 그녀를 지옥 끝까지 끌고 가야만 했다.그런데 지금 그녀가 다시 예전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그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망할. 대체 또 무슨 속임수를 쓰려는 거지?’봉현수는 몸이 몇초간 굳어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닥쳐. 네가 그렇게 부를 자격이나 있어? 다시 한번만 더 지껄여봐. 내가 가만두나 봐.”지예솔은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발 저 좀 놔주세요. 저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래요.”“요즘 계속 옛날 꿈을 꿔요. 그때의 우린 참 좋았죠. 하지만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네요.”봉현수는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네가 감히 ‘옛날’이라는 말을 입에 올려? 지예솔, 또 도망칠 속셈이냐? 다시 가두어 놓아야 정신 차리겠어?”지예솔은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눈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사실 눈치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지예솔과 그 남자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봉현수는 그 일을 철석같이 믿었고, 그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예솔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고 여러 가지 감정이 겹치면서 그가 지예솔한테의 태도는 점점 더 무서워졌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그들의 일에 우리가 끼어드는 건 좋지 않아. 두 사람이 모두 마음을 열고 과거를 내려놓지 않는 한, 이 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아무리 큰 원한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예솔 씨를 괴롭히는 건 옳지 않아요. 그러다가 예솔 씨 잘못되기라고 하면 어쩔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예솔 씨를 도와주고 싶은 거야? 다연아, 제발 이 일에 끼어들지 마. 현수 씨가 그녀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끼어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도와주려는 건 아니고 그냥 물어본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역시 우리 다연이가 제일 말 잘 듣지. 정말 예솔 씨가 좋다면 둘이서 약속이라도 자주 잡아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내 체면을 봐서라도 현수 씨가 거절하진 않을 거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야.”온다연은 인츰 말을 돌리었다.“맞다, 로운 씨는 어디 있어요? 진 씨 가문 쪽에 일이 좀 있어 그러는데 그에게 맡기려고요.”유강후가 대답했다.“무슨 일이든 나한테 말하면 돼.”온다연은 입을 삐쭉 내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 거예요. 무능한 건 싫거든요?”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알겠어, 알겠어. 화내지 마. 로운이더러 당신한테 연락하라고 할 테니까, 무슨 일이든 편하게 지시하면 돼.”봉현수는 차에 오르자마자 지예솔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의 얼굴은 심하게 굳어 있었다.“내가 너한테 덜어준 반찬, 왜 안 먹었어?”지예솔은 조용히
온다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이틀만 시간을 줘요. 그동안 예솔 씨는 일단 계속해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모든 일을 그의 뜻에 따르면서 경계를 풀게 만들어요. 저는 예솔 씨가 여기서 나갈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볼게요.”그때 봉현수의 부하가 들어왔다.“예솔 씨, 약 먹을 시간입니다.”그는 미리 준비한 약을 지예솔 앞에 내밀었다.지예솔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다.“먹을 테니까 먼저 나가주세요. 친구와 잠시 이야기하고 싶어요.”그 사람이 대꾸했다.“주인님께서 예솔 씨가 약 드시는 걸 직접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버린다고 하더라고요.”온다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나가세요. 제가 예솔 씨 약 먹는 걸 볼 테니. 여기서 저희 두 사람 방해하지 마세요.”온다연이 나서자 그는 마지못해 문가로 물러났다.“예솔 씨, 모두 다 예솔 씨 좋아지라고 준비해 둔 약이에요. 버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주인님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사가 다가와 다실의 문을 닫았다.지예솔은 약을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보고는 전부 쓰레기통에 던졌다.온다연이 물었다.“무슨 약이에요?”지예솔의 표정이 싸늘해졌다.“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예요. 3년째 먹고 있어요. 이제는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요.”온다연이 말했다.“그래도 약은 먹어야죠. 아프면 치료도 하고. 예솔 씨에겐 동생도 있잖아요. 쉽게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죠.”지예솔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다연이 다시 물었다.“여길 나가면 무슨 계획이에요?”지예솔은 담담하게 말했다.“다 생각해 놓았어요. 일단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서 온라인에서 일감을 받을 거예요. 제 디자인 스타일이면 먹고사는 건 문제없을 거예요.”온다연이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계획이 있다니 참 다행이네요. 저는 예솔 씨가 여길 벗어나는 것 까지만 도와줄 수 있지, 그 뒤에 일은 예솔 씨가 알아서 해야
온다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둘 사이 정말로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거예요?”지예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눈에는 냉담한 기색이 가득했다.“현수 씨 어머니가 저희 어머니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저희 둘 사이에는 그 어떤 가능성도 사라졌어요. 그는 단지 저에게 복수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제가 비참할수록 그는 더 기쁘겠죠.”“이 몇 년 동안, 그는 제 모든 디자인 도면을 자신의 소꿉친구에게 넘겨줬고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지씨 가문의 가정부일 뿐이에요. 그는 제 영광과 미래를 모조리 빼앗아 갔어요. 7년 동안이면 목숨 하나에 대한 대가로 충분하지 않나요.”이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마치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온다연은 그녀의 테이블 아래에 숨겨져 있는 두 손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게 보였다.“지난달, 현수 씨가 제가 동생이랑 다시 연락을 주고받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다시 저를 감금하기 시작했어요. 어디를 가든 저를 무조건 데리고 다니면서 제가 어디로 도망칠까 봐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더라고요. 제가 없으면 장난감도, 화풀이할 대상도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절 데리고 나온 거예요. 저는 한 달 동안 그 방을 벗어난 적이 없었어요.”온다연의 표정이 심하게 찡그러졌다.“아직도 쇠사슬로 예솔 씨를 묶어놔요?”그녀는 지예솔의 몸에 남아 있던 끔찍한 상처들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지예솔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 아이가 죽은 후로는 더 이상 쇠사슬을 쓰지 않았어요. 조금이나마 자유를 얻은 게 제 아이의 목숨과 맞바꾼 거라니, 믿기지 않네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일어나 창밖을 살폈다.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지예솔은 갑자기 온다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다연씨,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경원시를 떠나고 싶고 봉현수 씨 곁에서도 떠나고 싶어요. 다연씨라면 절 도와주
유강후가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들은 금방 크니깐 명품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직접 골랐다는 거야. 엄마의 사랑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거니까.”“내가 보니까 옷들 다 품질 좋고 디자인도 예쁘던데? 당신 안목이 틀릴 리 없지.”온다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말은 참 예쁘게도 한다니까.”그녀는 알지 못했다. 비록 마트는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오기 전에 마트는 모든 안전 검사를 마쳤고, 진열된 상품들도 전부 점검을 마쳤으며, 생활용품과 유아용품 코너의 제품들은 전부 최고급 브랜드의 상품으로 교체되었다는 것을.온다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강후 씨, 미리 말해두지만, 아이들은 무조건 제 곁에서 키울 거예요. 우리 아이들을 우림이를 훈련하듯이 키우는 건 절대 용납 못 해요.”유강후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알겠어.”하지만 훗날 강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텐데 훈련을 시키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아들이라면 우림이 못지않은 강도 높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 말은 지금 해서는 안 된다. 괜히 말을 꺼냈다간 온다연이 출산할 때까지 그와 끝없는 싸움을 벌일 게 뻔하니까.온다연은 단호하게 말했다.“강후 씨는 어릴 때 어머니 곁에서 크지 못해서 지금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렇게 서먹한 거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키울 수 없어요. 무조건 사랑이 가득한 환경에서 자라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커서 강후 씨처럼 성격이 까칠해질 게 뻔해요!”유강후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내 성격이 까칠하다고?”온다연이 코웃음을 쳤다.“아닌가요?”유강후는 그녀가 볼이 잔뜩 부풀어 오른 채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귀여워서 다시 한번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래, 나 성격 까칠해. 고칠게.”온다연이 보상이라도 하듯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줄 아는 사람은 무조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
이번에 유강후는 아무런 의견 없이 그저 조용히 옆에서 그녀가 물건 고르기를 내심이 기다렸다.그녀가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고민할 때, 유강후는 두 가지 스타일 모두 카트에 담았다.온다연은 속옷을 고를 때 얼굴이 빨개지었다. 그러고는 몇 장의 팬티를 눈에 뜨이는 족족 무심코 카트에 던졌다.이 모습에 유강후는 불만을 느끼고 그 팬티들을 꺼내며 말했다.“다연아, 좀 제대로 골라주면 안 돼? 나 이 색깔 별로고 게다가 사이즈도 작아.”온다연은 그의 허리 쪽을 슥 쳐다보고는 조용히 말했다.“어느 사이즈인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알아서 골라요!”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다 너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지.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색깔로 골라봐. 너한테 입어 보여 줄게.”“넌 남편 사이즈도 몰라? 제일 큰 사이즈로 골라!”온다연의 얼굴은 더 빨개지였다.그러고는 말을 더듬었다.“누, 누가 강후 씨 입는 거 보고 싶댔어요! 알아서 골라요!”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것처럼 속옷을 휙 던져 버렸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안되지, 내 속옷은 원래 네가 골라줘야 맞는 거지. 남편의 속옷을 네가 관리하지 않으면 누가 관리해?”유강후는 온다연의 귀에 숨을 살짝 불어넣었다.“다연이가 골라준 거로 하자. 그러면 내 컨디션도 따라서 좋아질 거야.”온다연의 얼굴은 너무나도 빨개서 금세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이를 꽉 악물고 말했다.“강후 씨, 이런 말 애들이 다 듣는단 말이에요! 나중에 애들한테 변태 취급 받고 싶어요?”유강후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감히 나한테 그렇게 말한다고? 엉덩이를 때려서라도 교육해야지. ”온다연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강후 씨 애들 때리기만 해봐. 나 가만 안 있어!”유강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빨리 골라, 이건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아니면 여기서 내가 너한테 뽀뽀할까? 아까 애들이 뒤에서 계속 우릴
마트는 엄청 크고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온다연은 생활용품 구역으로 갔다.여기에는 특별히 비싼 브랜드는 없지만 상품이 다양하고 품목이 잘 갖춰져 있다. 그 상품들의 색상과 디자인은 꽤 잘 되어 있고 질감도 대형 브랜드와 비교할 바 있다.그녀는 매우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치약, 컵, 칫솔, 수건 모두 커플용으로 골랐다. 색상과 패턴이 귀여워 보였고 아기자기해서 다소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그런데 유강후는 컵과 수건에 있는 딸기 그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이거 너무 핑크색 아니야?”온다연은 기분 좋게 고르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자 기분이 나빠졌다.그녀는 아까 고른 남자용 커플 아이템을 선반 위에 다시 돌려놓았다.“각자 알아서 고르는 거로 하죠.”유강후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그녀가 돌려놓은 컵과 수건을 다시 가져와서는 카트에 넣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못생겼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너무 핑크색이라서.”온다연은 차갑게 대답했다.“다른 색을 고르세요. 이건 강후씨한테 어울리지 않아요.”그러면서 그녀는 로봇 컵을 카트에 던졌다.“이거 강후씨한테 완전 찰떡이네요. 보는 눈은 없으면서 말은 많다니깐.”유강후는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유치한’ 컵을 집어 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성격이 점점 더 나빠지네. 내가 핑크색이 너무 많다고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 화를 내야 해?”온다연은 몸을 돌리더니 다른 물건을 고르러 갔다.“임신한 사람은 원래 평소보다 더 예민하단 말이에요!”유강후는 실눈을 뜨더니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온다연은 그의 다리를 차면서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 나 내려놔요!”마트에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고 옆에 있는 어린이들은 호기심의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봤다.유강후는 그녀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더 꽉 안았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손이 닿지 않잖아. 내가 안아줄게!”옆에 있는 어린이는 4, 5살쯤 되어 보였고 그들이 함께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재빨리 손으로
수건도 너무 오래되어 이미 무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온다연은 자기가 떠나기 전에 사용했던 것임을 알아볼 수는 있었다.아줌마는 다시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모님이 떠나신 후 대표님은 우리가 이 물건들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신국에 가기 전 대표님은 3년 동안 계속 이 물건들을 사용하셨어요. 그때 사모님이 쓰시던 수건 두 장도 3년 동안 쓰셔서 정말 더는 쓸 수 없을 정도예요. 저희는 감히 버리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될지 말만 해주세요.”이 물건들을 3년 동안이나 계속 사용했다고?온다연은 코끝이 찡해나며 눈물이 나오려 하자 급히 고개를 돌려 다른 것을 보는 척했다.“이 물건들을 가지고 가서 소독한 후 박스에 넣어 밀봉하여 다락방에 올려놓아 주세요. 바꿀 물건들은 제가 챙길 테니 상관하지 않으셔도 돼요.”“네, 사모님.”아줌마가 간 후 온다연은 다시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수건이든 컵이든 전부 전에 그녀가 사용했던 것이었고 욕조 옆에 놓인 빈 바디워시병조차도 낡고 오래된 것이었다.온다연은 아직도 그 병을 기억하고 있었다.그것은 전에 온다연이 인터넷에서 구매한 상큼한 향의 바디워시였다.온다연은 그 바디워시병을 코끝에 대고 향기를 맡아보더니 역시 그 향기가 틀림없었다.그녀는 욕실에 잠깐 머무르다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서 직접 홍차를 끓였다.아줌마가 주방으로 들어오면서 곰돌이의 얼굴이 그려진 물컵을 건네주었는데 위에 페인트는 반 이상 떨어져 있었고 그것을 본 온다연이 어리둥절해하자 아줌마가 재빨리 말했다.“이 컵은 대표님이 제일 아끼시는 컵이에요. 지금 3년째 쓰고 계시고 바꾸지도 못하게 해요.”온다연은 다시 눈시울을 붉히더니 결국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그녀는 얼굴을 돌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 컵은 이제 사용할 수 없어요. 욕실에 있던 물건이랑 함께 소독하여 넣고 다른 컵을 가지고 오세요.”아줌마는 대답을 건네고 다시 돌아갔다.차를 다 끓인 후 온다연은 찻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갔다.찻잔을 책상 위에 놓
온다연은 장화연을 식탁으로 데리고 가서 포장된 만두를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일단 따뜻한 아침 식사라도 하세요. 집사님도 이 가게 만두 좋아하실 거예요.”장화연은 만두를 한 입 먹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맛있네요. 밀가루 반죽이 잘된 거 같아요. 제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데요.”온다연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했다.“좋아하실 줄 알고 집사님을 위해 포장해 온 것이니 이거 다 드셔야 해요.”장화연은 먹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미리 말해주면 제가 준비할게요. 근데 아직 배달되지 않은 음식 재료들이 있어서 만들 수 없는 요리도 있을 거예요.”“오늘 금방 집에 도착하여 다들 피곤하실 테니 먼저 쉬세요. 쉬고 오후에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 봐도 돼요. 제 기억으로 은행 반점의 생선찜이 맛있었는데 그 가게 요리사를 집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니 집사님은 오늘 푹 쉬세요. 제가 다 안배할게요.”장화연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그냥 제가 안배할게요. 사모님 거동도 불편하실 텐데 많이 쉬셔야죠.”온다연은 배를 만지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저는 너무 많이 잤어요. 비행기에서 오는 내내 잠만 자서. 지금은 상태가 엄청 좋아요. 집사님은 여태 쉬지도 못하셨잖아요. 일단 아침 드시고 나면 들어가서 좀 쉬어요. 집에 부족한 음식 재료들이 있는지 제가 한번 보고 사람 시켜 사 오라 하면 돼요.”그때 유강후가 들어오더니 온다연과 장화연이 사이좋게 얘기 나누는 것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점심은 다 준비됐어?”온다연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그저 먹을 줄만 알지? 오늘 점심은 하지 않고 모두 쉬는 거로 하고 다 쉬고 나서 은행 반점의 요리사를 불러 저녁 식사를 준비하게 할 거예요. 그 가게 생선찜도 엄청 맛있어요.”“왜요? 내가 주인 노릇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틋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되지. 마누라가 말한 건 다 맞는 말이지. 이 집에서는 네 마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