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그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가자!”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은별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질투와 혐오의 눈빛을 애써 감추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온다연 씨, 오셨군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명월루는 예약이 어려워 보통 일주일 전에 연락해야 하는데, 다행히 제가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칸막이가 있는 자리로 안내받았어요.”명월루는 북아메리카 지역의 고급 멤버십 클럽으로, 연회비만 수억에 달하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귀족이나 재벌이다.나은별은 자기가 이곳 주주와 아는 사이라는 점과 온다연이 북아메리카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곳 상황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의 등장은 그녀의 예상을 뒤집었다.온다연은 최고급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왔고 호위 차량마저 롤스로이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얼굴이 예쁜 건 그렇다 치고, 몸에 걸친 옷만 가격이 수십억은 될 것 같았다.이는 나은별이 기억하는 온다연과 전혀 달랐다.기억 속의 온다연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녀였고, 아름답지만 카리스마는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온다연은 카리스마가 넘쳐 ‘여왕님’ 같은 포스를 풍겼다.‘이년이 죽은 줄 알았더니 3년 동안 뭘 한 거야? 왜 이렇게 몰라보게 변했지?’온다연이 입은 드레스는 북아메리카 최고 디자이너의 핸드메이드 오트쿠튀르였고, 보석은 200억, 가방은 6억 넘었다.반면, 그녀가 입은 옷은 지난해 출시된 샤넬 슈트로 유행이 지난 지 오래다. 이전 같으면 이런 옷은 진작에 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나은별은 이제 더 이상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한정판 단골 고객이 아니다.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기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안쪽에서 얘기합시다.”나은별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이곳은 상류층이 모이는 곳인데, 온다연 씨는 처음이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원한다면 잠시 후에 내로라하는 몇몇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혜린이 빵 터졌다
유강후는 평범한 부자들에겐 불가능한 이 특권을 부릴 수 있는 남자다.권력과 재력, 사람을 미치게 하는 얼굴, 심지어 젊은 나이에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 남자다.‘나 나은별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이런 남자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가질 자격이 없다.’온다연은 나은별을 힐끗 보더니 그녀의 속내를 꿰뚫은 듯 말했다.“나은별 씨, 가시죠. 이곳에 왔으니 당연히 제가 사야죠. 홀에는 사람이 많아 얘기를 나누기 불편하니 VIP룸으로 갑시다.”말을 마친 그녀는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갔다.나은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곧바로 뒤따라 올라갔다.최고급 VIP룸에는 이미 최상급 홍차와 다양한 한식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청아한 솔향이 공간을 채웠지만, 나은별에겐 모든 것이 거슬렸다.원래 이곳에서는 한식 디저트와 차를 제공하지 않았고, 서양식 디저트가 주메뉴였다.북아메리카 유학 시절, 그녀는 동창들과 자주 이곳을 찾았는데, 그때는 유강후의 멤버십 카드를 쓰며 정말 화려한 나날들을 보냈다.모든 직원이 그녀를 공손하게 대했다. 북아메리카 한인 사회에서는 모두가 그녀 뒤에 유강후가 있다는 걸 알기에 온갖 특권이 저절로 주어졌다.심지어 국내에 있는 나씨 가문도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특권들은 서서히 박탈됐고, 그녀 발밑에 있던 자들조차 머리 위에서 똥을 싸기 시작했다.그녀는 억울했다. 이 모든 것이 원래 그녀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 계집애에게 넘어갔다. 왜?그녀는 문어귀에 서서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이년은 이 얼굴로 유강후를 꼬셨겠지. 얼굴만 망가지면 유강후가 이년을 버릴 텐데.’독기 어린 눈빛을 감지한 듯 온다연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건넸다.“나은별 씨는 이곳에 오신 적이 있으니 아시겠지만, 이 차와 디저트는 일반 손님께 제공되지 않아요. 디저트 장인이 궁중 다과 전통을 잇는 분인데, 극소량만 제작해 최상위 VIP고객에게만 제공한다고 하네요.
나은별의 눈에 순간적으로 증오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강후 씨는 옛정을 중시하는 남자예요. 다연 씨에게 빚진 느낌이 들어서 제게 접근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우린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사이...”언어 기교가 뛰어난 그녀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이런 건 상대방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게 모든 진실을 까발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하지만 온다연은 예상과 달리 화를 내지 않았다.온다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아, 소꿉친구였군요. 그런데 서른이 훌쩍 넘지 않았나요? 30년 동안 사람 하나 못 잡은 건 매력이 부족해서인가요? 수단이 없어서인가요?”나은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무슨 뜻이죠?”온다연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저는 너그러운 성격이 아니에요. 제가 이미 선택한 남자를 누가 뻔뻔하게 빼앗으려 든다면,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고요.”고개를 들고 나은별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제가 그쪽 뒷조사를 해봤는데, 집안이 망했다면서요? 옛정을 구실로 유강후와 한재민 사이에서 한몫 챙기려나 보죠?”나은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온다연이 이렇게 말발이 뛰어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온다연 씨, 말씀이 너무 지나치네요. 우린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고, 집안끼리도 아는 사이인데 좀 도와주면 어때서요?”온다연은 그녀의 이마에 붙은 거즈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과거의 일은 제가 어찌할 수 없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이 그 사람에게서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거예요. 나은별 씨, 저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나은별이 주먹을 불끈 쥐며 코웃음을 쳤다.“네가 뭔데? 유강후 같은 남자가 여자 말에 휘둘릴 것 같아? 그 사람이 너에게 특별한 감정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나?”“아니면 유강후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정도의 남자가 어떤 여자를 못 가지겠어?”그녀는 일부러 음흉하게 웃으
온다연이 콧방귀를 뀌었다.“눈치는 있군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의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를 지켜보던 나은별이 코웃음을 쳤다.“이런다고 유강후가 정말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온다연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설마 상간녀 짓을 하려고?”나은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누가 상간녀인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독기 서린 눈빛으로 물었다.“네가 그때 유강후와 어떻게 헤어지게 됐는지 알고 싶지 않아?”그녀의 눈에 음산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정말 그 사람이 너를 뼛속까지 사랑한다고 생각해? 그저 죄책감에 보상하려는 거뿐이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다연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은별의 따귀를 후려쳤다.“진작 때리고 싶었어.”나은별은 얼굴을 붙잡은 채 멍하니 있다가 발끈했다.“네가 뭔데 감히 나를 때려?”온다연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때리고 싶어서 때린 건데, 날짜라도 골라야 하나?”나은별이 눈을 부라렸다.“엄마도 없는 천한 계집애가 감히 내게 손을 대? 죽을래?”이때 밖에서 대기하던 진씨 가문 경호원 임원식이 뛰어 들어와 나은별의 얼굴에 따귀 두 대를 날렸다.힘이 어찌나 센지 나은별은 머리가 핑 돌며 휘청이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너희들이 감히...”온다연이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아, 손이 아파. 빨개졌어.”임원식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아가씨, 이런 여자와 얘기 나누실 필요 없어요. 조사해 보니 몰락해서 허울뿐인 H국 삼류 가문의 여식이더군요. 유씨 가문에서 굶어 죽지 않게 봐주는 덕에 간신히 버티는 거지, 아니면 벌써 뒷골목에서 쓸려나갔을 거예요. 아가씨의 귀한 시간을 낭비할 만큼 가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온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하도 심심해서 유강후의 소꿉친구가 어떤 수준인지 보려고 나왔는데... 진짜 실망스럽네.”“아가씨?”나은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네가 무슨 아가씨야?”온다연이 대답하기
나은별의 속내를 꿰뚫은 듯 온다연이 차갑게 말했다.“네가 예전에 유강후와 무슨 사이였든 상관없어. 하지만 앞으로 감히 그 남자에게 치근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 너 하나쯤 없애는 건 식은 죽 먹기야.”나은별은 부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아?”“유강후가 너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지웠어. 이제 누가 조사해도 유용한 정보는 나오지 않아. 왜 그랬을까?”임혜린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입 닥쳐! 한마디만 더 하면 혀를 뽑아버릴 거야!”나은별이 독사 같은 웃음을 지었다.“뭐가 그렇게 두려운데? 유강후가 너한테도 과거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어?”“온다연이 진실을 알까 봐 몹시 두려운 모양이지?”임혜린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진실이 뭐든 두 사람 사이의 문제야!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나은별, 너는 스스로 호감을 모두 갉아먹었어. 네가 저지른 더러운 일들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 유강후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해?"나은별은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임혜린이 콧방귀를 뀌었다.“정말 어리석구나. 온다연 사건 이후로 유강후가 네게서 완전히 손 뗀 걸 몰라? 그 뒤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잖아. 영화 제작이든 다른 투자든 한 번이라도 성공한 적 있어?”나은별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무슨 소리야?”임혜린이 말을 이었다.“너희 집안도 그만하면 탄탄한데, 투자에 실패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 게다가 매번 성공 직전에 좌절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나은별은 벼락 맞은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헛소리하지 마!”이건 그야말로 심장에 칼 꽂는 말이었다.사실 나은별도 한때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유강후는 비록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지만, 매번 사업 초기 자금은 제공해 주었다. 그녀가 실패하면
나은별이 부은 얼굴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온다연, 넌 너무 건방져. 감히 나를 때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이 어깨를 으쓱했다.“가만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조만간 나씨 가문도 사라질 텐데 네가 뭘 할 수 있겠어?”그녀는 테이블 위의 정교한 디저트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정말 이 디저트를 안 먹을 거야? 어쩌면 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맛볼 수 있는 고급 디저트가 될 텐데.”나은별이 코웃음을 쳤다.“네가 갑자기 진씨 가문의 딸이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어.”“하지만 네가 아무리 하늘 높이 올라가도 바꿀 수 없는 게 있어.”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김원도가 나를 납치한 후, 유강후에게 너를 갖다 바치면 나를 놓아주겠다고 했는데, 유강후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온다연은 관자놀이가 욱신거려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어떻게 했든 이미 지나간 일이야. 나은별, 당장 꺼져. 나한테 도발하지 마. 너는 그런 자격이 없어.”하지만 나은별은 말을 이어갔다.“유강후는 주저 없이 너를 납치범에게 넘겼고, 너는 결국 김원도에게 끌려가 바다에 빠져 죽었지.”“아니, 죽지 않았네.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너에 대한 유강후의 사랑은 단지 죄책감을 덜기 위한 보상일 뿐이야. 언젠가는 내 곁으로 돌아올 거야.”온다연은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지만 애써 진정하고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확신에 차 있다면 기회를 주지. 지금 유강후를 불러 너를 선택할 건지 물어보는 게 어때?”나은별은 눈에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지금 당장은 날 선택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 당연히 너에게 미안해서...”“닥쳐!”온다연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딴 헛소리 집어치우고 정신병 치료나 받아. 과거에 나와 유강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나는 그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목숨 걸고 지키는 사람은 없으니까.”“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나
나은별은 몸을 떨며 눈에 두려운 기색을 띠었다.“네가 감히!”온다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코웃음을 쳤다.“못 할 게 뭐가 있어? 네가 죽으면 너를 찾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네.”그녀는 몸을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지도, 메시지를 보내지도 마.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나은별은 독살스럽게 그녀를 노려보더니 돌아서서 가버렸다.온다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 여자에게 사람을 붙여서 대체 뭘 하려는지 지켜봐요. 저 여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아가씨!”임원식이 떠난 후에야 온다연은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셨다.머리 통증이 더 심해져 토할 것 같았다. 나은별의 말은 칼날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휘저었다.임혜린은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몸이 안 좋아? 나은별이 헛소리한 거니까 마음에 두지 마.”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잠시 쉬니 조금 나아졌다.“그 여자 말이 사실인 것 같아.”임혜린이 급히 그녀를 달랬다.“말도 안 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유강후가 성질이 더럽고 잘난 척하는 데다 남의 비밀을 마음대로 까발리긴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나쁘지 않아. 너를 두고 나은별을 좋아할 리 없어.”온다연이 고개를 저었다.“그 말이 아니야. 강후 씨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아. 이전에 나은별이 납치됐을 때, 강후 씨가 나를 그 여자 대신 납치범에게 넘겼다는 거 말이야. 사실인 것 같다고.”임혜린은 한참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그 일은 내가 아는데, 오해가 있어. 그때 유강후는 너를 닮은 사람을 준비해 납치범에게 넘기고 나은별을 구출하도록 지시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부하들이 너를 그 사람으로 착각해 현장으로 데려간 거야.”온다연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으로 시큰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그다음은?”임혜린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깊이 생
나은별은 깜짝 놀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입술마저 하얗게 질렸다.유강후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이마에 닿은 권총을 의식한 나은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강, 강후 씨, 왜 총을 나한테...”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유강후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말해, 왜 여기에 있냐고?”그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고 싶은 눈빛이었다.그녀는 겁에 질려 손에 땀을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나는 그냥 커피 마시러 왔을 뿐이야...”유강후는 믿지 않는 듯 서늘한 총구를 천천히 내리꽂았다.총구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나은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강후 씨, 제발 이러지 마...”총구는 결국 그녀의 턱에 닿았고, 목소리는 얼음 동굴에서 나온 듯 차가웠다. “온다연에게 무슨 말을 했어?”나은별은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무 말도 안 했어. 강후 씨, 총을 치워줘. 무서워.”유강후는 무자비하게 말했다.“너도 무서운 걸 알아? 나쁜 짓을 할 때는 왜 겁이 안 났지?”나은별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강후 씨, 난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여자 때문에 나를 죽일 거야?”유강후는 극도로 혐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잔인하게 말했다.“한 번 더 온다연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입을 총으로 갈겨버려 영원히 말 못 하게 할 거야!”나은별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의 눈빛에 서린 독기에 그녀의 심장이 얼어붙었다.“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인사만 했을 뿐이야...”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않아. 무슨 말을 했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말해서는 안 될 단어 하나라도 흘렸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나은별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믿고 이렇게 괴롭히는 거잖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봉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너도 요즘 아이랑 마누라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없을 거잖아. 내가 알아서 방법 구해볼게.”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송지원도 뒤따라 나와 봉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에 지예솔 씨가 진짜 큰맘 먹고 멀리 가버린 거 같은데 현수는 아직도 경원시 근처에서만 찾고 있어. 어쩌면 출국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을 해줄 수가 없네.”“현수 지금 상태가 매우 위험해. 마치 밧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정도로 한계에 도달한 거 같아. 저러다 큰일이 일어날까 봐 두렵네.”두 사람은 한마디씩 하고는 침묵하였다.한참 지나 유강후가 먼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해. 요 며칠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네가 옆에서 좀 더 신경 써줘.”송지원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한이준은 며칠 동안 보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통하던데. 내가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비서가 그러는데 걔가 섬에 집을 사서 지금 장식을 하고 있고 외부 사람들과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이 자식 또 무슨 미친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어.”이때 방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유강후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들어가. 현수랑 이준의 일은 네가 좀 더 신경 써줘. 내 쪽에 사람들은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조정해서 데리고 가면 돼.”들어가 보니 동생이 울면서 손발을 자꾸 흔들어 옆에 자고 있던 오빠도 깨웠다.오빠는 오히려 깜깜한 눈을 뜨고 조용하게 누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듯 하였다.유강후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말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온다연을 한 번 보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장화연은 간호사의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분유로 먹여요. 사모님은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요.”이때 온다연도 놀라 잠에서 깼다.
유강후는 당황했던 마음이 그제야 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그 아이는 힘들게 임신했고 유강후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안전하게 출산까지 했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가장 걱정되는 건 바로 온다연의 건강 상태였다.“주 선생님, 앞으로 제 아내의 건강을 잘 부탁드릴게요. 두 아이도 만약 두통이나 열이 있다 해도 많이 신경 써주셔야 해요.”주 선생님은 급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큰일은 아니에요. 두 아이도 지금 봐선 건강 상태가 아주 좋으니 잘 키우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유 대표님.”주 선생님을 보낸 후 유강후는 정성스럽게 온다연을 보살피며 약도 먹이고 재우기도 하였다.한참 뒤에 송지원과 봉현수가 아이들 보러 병원에 찾아왔다.송지원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시정 쪽에서 방금 온 것이 분명했다.봉현수는 비록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이전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유강후는 보자마자 그의 정신이 극도로 쇠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봉현수는 아이들의 선물을 유강후에게 건네고 나서 소파에 앉아 넋 놓고 있었다.반면 송지원은 두 아이에게 관심을 쏠리며 간호사에게 아이를 안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송지원은 아이를 안고 웃으며 말했다.“넌 아들딸을 한꺼번에 얻었지만 우리 몇 명에서 한재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네. 이 아이의 행운을 빌어 나도 나중에 쌍둥이가 생길 거야.”유강후는 얼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말했다.“저리 비켜, 누가 너더러 내 아들의 행운을 빌라 했어. 그렇게 행운을 갖고 싶으면 너 절로 절에 가서 빌던지.”송지원은 두 녀석을 매우 귀하게 여기며 또 손을 뻗어 여동생을 안았다.“핑크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여자아이겠지? 너무 귀여워, 나도 딸이 욕심나네.”송지원은 여동생의 작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 두 아이의 양 아빠가 될 거야. 앞으로 날 송 아빠라고 부르라고 해.”유강후는 송지원이 딸을 안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유강후는 온다연의 상처가 아플까 봐 번갈아 가며 아이를 안아 보여줬다.조용하고 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 온다연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이번에는 보온 실에 들어갈 필요가 없네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유강후는 속상한 마음으로 온다연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보온 실은 필요 없어. 의사가 아이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말해줬어. 하지만 그래도 그웬을 와서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 집에 있으라 했어.”“우리 아들을 데리고 와봐요, 한번 보게요.”유강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온다연의 옆에 눕혔다.온다연은 감히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머리만 옆으로 돌려 쳐다보면서 이 아이가 꿈속의 그 아이를 닮았는지 궁금했다.안타깝게도 아이는 아직 너무 작아 이목구비가 모두 주름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온다연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유강후는 웃으며 말했다.“아들은 날 닮았고 딸은 널 닮았어.”온다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아이가 이목구비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유강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난 보이거든.”유강후는 몇 시간 동안 작은 침대 옆에 붙어 서서 아이의 이목구비와 윤곽을 수없이 분석한 결과 아들은 그를 닮았고 딸은 온다연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유강후는 희망컨대 두 아이가 모두 온다연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더니 남자아이는 좀 강하게 생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두 아이를 모두 온다연의 곁에 눕혀두고 팔을 뻗어 그들 세 모녀를 품에 안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다연아, 이젠 너희들은 내 인생의 전부야.”유강후는 앞으로 약점이지만 보호막이 될, 그한테는 세상 전부인 이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온다연은 유강후의 턱에 나온 수염을 만지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 요즘 많이 피곤했죠? 안색이 너무 안 좋으니 이제 좀 쉬어
“네가 정치일에 개입도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곧 은퇴할 것인데 만약 본가에서 나쁜 기사라도 터지면 우린 경원시에서 설 자리도 없게 돼. 그럼 우주 그룹이나 본가나 다 영향받을 수 있잖아.”유강후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유연서는요? 연서의 일은 어떻게 말씀하실 건데요? 은혜를 갚고 싶으면 알아서 갚으세요.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겠지만 누나의 목숨으로, 또 저의 행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려 하지 마세요.”“그리고 제 아이들은 유씨 성을 안 가질 거고 본적에도 넣지 않을 거예요. 아이들은 이미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강 씨 이고 하나는 진 씨 에요. 본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괜히 여기 와서 다연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세요. 다연이는 본가 사람이라면 이제 치를 떨어요.”유재성은 급해하며 말했다.“괜찮아, 나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아. 아이들이 유 씨가 아니라도 내 손 군들이야. 다연이가 날 싫다 그러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만 잠깐 만나볼게. 그래도 할아버지인데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하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이때 이권이 걸어오더니 말했다.“대표님, 아이들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작은 도련님이랑 아가씨 이름은 준비하셨죠?”유강후는 이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받아 그 위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었다.그러자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셨군요.”“남자아이는 다연이랑 같은 성씨로 진 강남으로 했고 이건 다연의 아버지가 지어주신 거고 여자아이는 강아름으로 나랑 어르신이 같이 지은 거야.”이권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작은 도련님이 진씨 가문의 성을 따르게 되면 어르신이 화 안 내실까요?”유강후는 종잇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어르신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아 이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 거야. 그럼 아이의 성이 둘 다 진 씨라면 강씨 가문의 자손이 아닌 거야? 다연이가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들인데 하나는 진 씨 성을 가지면 또 어때? 둘 다 진 씨 성을 따른
유강후가 가장 세게 흔들고 있는 작은 손을 건드렸더니 녀석은 바로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이상하게도 녀석은 곧 칭얼거리지 않았고 작은 입을 쩝쩝대더니 조용해졌다.유강후는 갑자기 멍해지며 신기하면서도 행복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이것이 내 아이와 실제로 접촉하는 느낌인 건가?’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유강후가 막 아이를 안으려 할 때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입원실에 가서 안아봐요. 산모도 곧 나올 테니 여기 막아서면 안 돼요.”유강후는 몹시 아쉬워하며 장화연과 이권 더러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고 자신은 문 앞에서 온다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도 나왔다.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다연은 아직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녀를 받아 입원실로 옮겼다.입원실은 예전 온다연이 쓰던 큰 방으로 이미 모두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두 꼬마 녀석은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두었다.두 아이와 온다연은 모두 조용히 자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들 모자 셋을 옆에서 지켜보았다.잠깐 사이에 유강후는 많은 사진을 찍었고 한장 한장 들여다보면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모멘트도 일 년에 한 번쯤 업데이트하는 유강후가 오늘은 연속으로 세 개의 게시물을 올렸다.그것도 모자라 다시 작은 그룹 채팅을 만들어 잘 아는 몇몇 친구들을 그룹에 끌어들이고 그중에는 염지훈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러고는 제목에 쌍둥이 남매가 부럽지 않냐고 그래도 소용없다고 계속 부러워하라는 글을 덧붙여 20장이 넘는 아기의 사진을 연이어 보냈다.얼마 안 되자 답글들이 올라왔다.송지원: 아이들이 태어난 거야? 축하해, 내일 보러 갈게.봉현수: 금방 태어난 거야? 난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뒀어. 내일 지원이랑 같이 갈게.그 밑에는 붉은색으로 된 부동산 증명서 두 권의 사진이 첨부되었다.한재민: 축하해. 선물은 지금 오는 길에 있어. 설쯤에 제수와 아이들 보러 갈게.그웬: 벌써? 내가 아직 가지도 않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한 명은 태어났고 지금 다른 한 명도 나오는 중이니 가족들 진정하고 조용히 해주세요.”말을 하고 있는데 반쯤 열린 문에서 또 다른 한 명의 나긋나긋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의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2.6킬로가 되는 여자아기예요. 아기 상태도 아주 좋아요.”“산모 상태도 좋아요. 이제 봉합 수술을 시작하죠.”유강후는 기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제 자리에서 굳어 있는 채로 꼼짝도 못 했다.간호사는 그 표정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들으셨죠? 동생도 나왔다네요.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합니다.”“유 대표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협조해 주시고 더는 문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유강후는 바로 손을 놓고 부들부들 떨며 담배를 가지려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옆에 서 있던 이권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축하해요. 작은 아가씨가 2.6킬로나 되는 걸 보니 도련님은 더 건장할 거예요.”유강후는 기쁜 나머지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수 없었고 신이 나서 말했다.“다연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오면 바로 통지해. 우리 회사 직원들 전부 3일 동안 휴가를 내줄 것이고 이번 달은 두 배의 급여를 발급할 거야.”그 말에 이권은 너무 좋아 웃으며 말했다.“그럼 직원들은 아마 좋아 죽을걸요? 대표님은 참 통쾌하시다니까요.”장화연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했다.“도련님, 제가 가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의 옷을 가져올게요. 방금 급하게 나서다 보니 챙기는 걸 까먹었어요.”그러자 유강후가 바로 말했다.“다른 사람 보낼 테니 장 집사는 가지 말고 여기서 다연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내가 혼자서 서툴까 봐 그래.”“그리고 앞으로 날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회장님이라 불러.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었으니 좀 무게감 있는 호칭으로 바꿔야지.”장화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선생님이라 부를게요. 무게감 있고 더 뜻깊어 보이잖아요?”“집안의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된 온다연은 의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빨리 수술해야 해요? 혹시 아이가 어떻게 된 건가요?”지난번의 임신 사건 후 온다연은 이제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두려웠고 지금은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긴장되는 것이 당연했다.그러자 의사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급해하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일은 누구도 장담 못 해요. 앞당겨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많이 생겨요. 지금은 양수가 터져서 자궁 상태가 안전하지 못하니 빨리 수술해야 해요. 아직 만삭이 안 되었지만 이 두 아이는 온다연 씨의 몸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라 일찍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에요.”온다연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저는 괜찮아요.”온다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비록 그웬은 아니지만 경원시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이며 심지어 옆에서 수술에 도움을 주는 사람도 국내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였다.그런데도 유강후는 긴장한 나머지 수술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마저 바닥에 열 번 넘게 떨어뜨렸다.30분이 넘게 지났는데도 수술실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유강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장화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도 수술실에 들어가 봐야겠어.”그렇게 말하고 바로 수술실 문을 잡아당기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유 대표님, 지금은 수술 중이라 여기서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장화연도 재빨리 달려가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도련님, 아이를 낳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은 건강 상태가 아주 좋고 아기도 뱃속에서 건강한 상태였어요. 게다가 많은 전문가가 수술실에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니 내심이 기다려요.”유강후는 처음으로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그러자 호사가 황급히 대답했
“지예솔이 며칠 전에 갑자기 사라졌대. 봉현수가 경원시의 땅 전체를 파헤칠 정도로 찾았지만 사람은 찾지 못했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게다가 봉현수의 회사에 일이 좀 생겨 그걸 도와 처리하느라 좀 늦었어.”유강후의 말에 온다연은 당황했지만 일부러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예솔 씨가 또 집 나갔어요? 이런 일도 이젠 한두 번이 아닌데, 며칠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죠.”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엔 좀 다른 거 같아. 지예솔이 봉현수와 함께 썼던 물건들을 모두 불태우고 사진이랑 다 삭제했어. 십여 년 전의 편지조차 다 버려버린 걸 보니 아주 철저하게 돌아선 거 같아. 이번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온다연은 냉정하게 말했다.“봉현수가 예솔 씨를 그렇게 대하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 남아 있겠어요? 찾지 못한다 해도 자업자득이죠 뭐.”“봉현수가 지금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 게다가 쓰레기 처리 센터까지 가서 뒤지면서 몇 통의 편지와 망가진 장난감 몇 개를 되찾아왔어.”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지예솔이 너랑은 좀 친해 보이던데 혹시 너한테 메시지라도 보낸 건 없어?”온다연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그렇게 친한 정도도 아닌데 저한테 뭐 하러 연락하겠어요?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니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근데 저는 지예솔 씨의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말 안 해줄 거예요.”“됐어요. 남의 집안일은 집에서까지 논하지 말아요. 장 집사님이 맛있는 걸 해놨어요.”말을 마친 후 온다연은 유강후를 밀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겨우 두 걸음을 걷던 온다연은 배가 처지는 느낌을 받아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저는 배가 너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드니 강후 씨 혼자 내려가서 먹어요.”유강후는 갑자기 긴장해 하며 말했다.“낳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온다연은 그가 긴장해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직도 이틀 더 있어야 겨우 8개월이
또 어느 큰 눈이 내린 날, 날씨도 엄청 추웠다.온다연은 오후에 잠깐 집을 나서 좀 먼 곳에 있는 작은 여관에 갔다.여관방에서 온다연은 주머니 하나를 지예솔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사람 찾아 만든 새 등록증이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거니 일단 받아요.”“참, 그리고 안에 카드 한 장 있어요. 천만 원이 들어 있으니 저의 성의라 생각하고 그쪽에 가서 잘 살아요.”온다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 말했다.“확인해 보니 라현쪽에 유강후의 지사가 있었어요. 제가 이미 이유를 대서 그 지사를 대진 그룹 명의로 옮겼어요. 그쪽 사람들한테도 이미 인사를 했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지금 예솔 씨의 이름으로 경리를 찾아가면 돼요. 이름은 임진혁이라 해요. 하지만 그쪽은 외진 곳이라 제가 많은 도움은 줄 수 없을 거 같으니 이후의 일은 예솔 씨가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지예솔은 등록증과 은행 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결국 받아들이고 자그마한 짐가방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온다연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건 저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물건이니 이거라도 받아주세요.”그녀가 건넨 물건은 너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옥팔찌로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천만은 되는 듯해 보였다.온다연이 거절하려고 하기 전에 지예솔이 한마디 덧붙였다.“이거라도 받지 않으면 제 마음이 안 편해서 그래요. 다연 씨가 갖고 있는 액세서리 하나도 이것보다 더 비싸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물건이에요.”온다연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옥팔찌를 받아들였다.“차가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제 내려가요.”지예솔은 남성복으로 갈아입고 자그마한 짐가방을 메고 온다연과 함께 내려갔다.밖에는 검은색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예솔은 바로 그 차에 타고 창문을 내리며 온다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차가 떠나간 후 온다연도 옆에 있던 차량에 탔고 기사는 유강후가 제일 믿는 장 아저씨였다.온다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장 아저씨, 아드님이 경대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