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보통 장소가 아니기에 우리는 억지로 할 수 없어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죠.”김서진은 미간을 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별수 있겠어요. 억지로 할 수도 없으니 국가에서 교섭하게 하면 안될까요?”임상언은 불평을 토로했다.김서진은 눈을 떨어뜨리며 말했다.“아니요, 그럴 수도 없진 않죠.”임상언은 놀라 했다.“네?”그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대사관 쪽의 신분은 확실히 까다로웠다. 만약 진정기가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역시 자신이 나설 형편이 아니라며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정기 말고도 사실 대사관에 들어가 떳떳하게 ‘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다만, 먼저 그쪽과 상의해야 했다.원 씨네 가문에서 원철수는 모두에게 진맥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살이 많이 빠져서 광대뼈가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정신은 유달리 좋았으며 눈에서 빛이 났다.“철수야, 수고 많았어.” 함송희는 철수의 땀을 닦아주면서 안타까워하며 말했다.“힘들지 않아요. 다 나 때문에 일어났는데 이제 모두 무사하니 시름이 놓여요.”함송희가 주신 컵을 받아 물을 마시면서 원철수는 말했다.“어머니, 저는 이미 가족 모두에게 진맥했어요. 다 괜찮아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 몸이 허약하니 한동안 몸조리를 해야 해요.”“알았어.”함송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이 녀석, 며칠 못 봤는데 많이 말랐구나. 이젠 건강도 좋아졌으니 다시 돌아올래?”그러나 원철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니요, 저는 둘째 할아버지한테 배우러 가야 해요. 아직 할 일이 많고 배울 것이 많아요. 나는 이제야 내가 배운 것과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무지했어요.”“아들이 발전하려는 것은 좋은 일이야. 모처럼 둘째 삼촌이 가르치려고 하니 막지 말아요.” 원상철이 말했다.“그런데...”함송희도 물론 이 도리를 알고 있었지만 아들과 헤어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일 년 내내 돌
“단지...”눈물을 닦으며 함송희는 뭔가 또 생각났다.“요즘엔 각종 바이러스가 있으니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어. 꼭 이 시기에 먼 길을 떠나야 해?”비록 아들이 철이 들어 기쁘지만 그래도 안위가 걱정되었다.“어머니, 지금 가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안정된 후에 떠나요.”원철수는 빙그레 웃으며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았다.“아 참, 시간이 늦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겠어요.”함송희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급해서 하며 물었다.“이렇게 서두르다니. 곧 식사 준비가 끝나니 밥을 먹고 가!”“안 먹을래요.”원철수는 말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밥을 먹을 기회가 앞으로 많겠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서 먼저 가볼게요.”“뭐가 그렇게 중요해, 너...”함송희는 무슨 말을 더하려다가 남편에게 끌려갔다. “그만 가게 해줘.”“하지만...”“아들이 커서 철이 든 것은 좋은 일이야. 지금의 철수가 더 좋은 의사처럼 보이지 않아?”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원상철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함송희는 더는 말이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소 상심했다. 하지만 함송희도 확실히 아들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원철수는 차를 몰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고 어르신은 저기 있는 한 아가씨가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어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전에 연락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오는 사람이 있어 바로 소독을 하고 보호복을 입으며 준비를 했다.소독 절차가 번거롭자 원철수는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였다. 그는 가운을 입고 마스크와 안경만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아, 선생님!”원철수를 접대하는 사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낮은 소리로 부르더니 뒤쫓아 갔다.“이건 감염 사례일 거예요. 그러니...”“내가 뭐 하러 왔죠?”원철수는 돌아보며 웃으며 물었다.“선생님은... 병을 치료해주려고 왔어요.”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원철수는 웃었다.“그럼 됐어요.”말을 마친 원철수는 빠른 속도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며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목소리를 냈고, 순식간에 서로를 알아봤다.원철수는 다만 한 아가씨 감염되어 그가 치료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아가씨가 진가연인지 몰랐다.진가연도 첫눈에 이 사람이 바로 전에 그녀를 치료해준 ‘신의’임을 알아봤다.외숙모가 추천했지만 알고 보니 그는 사기꾼이었다.“아니, 당신은 의사가 아니라 사기꾼이에요. 내가 치료하지 말라고 하면 당신이 치료해 줄 필요 없어요!”진가연은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서며 놀라서 말했다.“나는...”원철수는 순간 당황했다.‘사실 진가연의 말도 맞아, 예전에 확실히 허세를 부리고 사기 치는 사기꾼 같았어.’비록 자신은 의술이 있었고 많은 환자를 치료했지만 필경 의술이 뛰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때 그는 명예만 추구했다.“이젠 아니에요. 당신을 치료하러 왔어요. 당신의 병은 나만 고칠 수 있어요.”원철수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믿지 못하겠어요. 필요 없어요!”진가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원철수를 쳐다보면서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내 말 좀 들어봐요!”두 손으로 진가연을 누르며 그녀를 좀 냉정하게 하려고 목소리를 높였다.“김 대표님과 한소은 씨가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 나를 보냈어요.”두 사람의 이름을 들은 진가연은 다소 냉정해졌지만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김 대표님? 한소은 씨?”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다만, 지금 그들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신을 보러 올 수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한소은 씨에게 치료를 부탁해도 돼요.”“나...”진가연은 머뭇거렸다.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의심스러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실한 태도가 보였다.옆에 있던 사람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진가연 씨, 확실히 이분은 김 대표님께서 특별히 외부에서 모셔온 전문가세요.”이 말을 들은 진가연은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설사 원철수가 나를 속였다고 해도 김서진의 부하들까지 짜고 속일 수는 없겠지.’“제 병을 고칠 수 있어요?”진
“당신 말 들을게요, 잘 들을게요!”진가연은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김서진이 파견한 사람이고 또 성공한 경험도 있으니 치료를 잘 받고 나가서 아버지를 찾아야 했다. 진가연이 기꺼이 협조하는 것을 보고 원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왕을 만난 후 한소은은 다시 보내졌다. 이번엔 그 텅 빈 병실이 아니라 이전과 비슷한 호텔 방이었다.여전히 바깥 경치를 볼 수 없는 것 외에 전반적인 느낌은 예전보다 좋아졌고 심지어 TV도 볼 수 있었다.한소은은 TV가 있으니 인터넷 신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이전에 배운 방법에 따라 몇 번 시험해 보았지만 신호를 측정하지 못했다. 결국, TV는 내부 네트워크로 연결되었기에 여전히 외부와 통신할 수 없었다.이 사람들은 정말 신통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상대는 Y 국의 여왕이었다.‘그렇다면 Y 국의 여왕이 여기로 왔을까, 아니면 내가 Y 국에 간 걸까?’‘아니, 아니다. 이곳은 절대로 Y 국이 아니야. 그들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창밖의 경치마저 보지 못하게 봉쇄하였으니 이곳은 틀림없이 H 국일 거야.’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출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것은 당연히 좋은 소식이다. 출국하지 않은 이상 H 국 내에서 구조하기 훨씬 쉬울 것이고 또 탈출할 기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Y 국이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여왕을 만난 지 이틀이 지났고 한소은의 몸은 나날이 좋아졌다. 여전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데려와 보여주었고 한소은은 틈을 타 두 아이의 맥을 짚으며 건강과 안전을 확인했다.이 사람들은 사람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을 좋아하니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가지고 실험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워도 스스로 검사해 봐야 안심할 수 있었다.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이 노크도 사실 형식일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떼고 들어온다.다행히도 한소은은 수시로 손님맞이가 가능한
한소은이 호통을 치자 이영민은 손놀림을 멈추었다.한소은은 아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지막하게 달래면서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온종일 나에게 이런 검진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내 몸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요. 만약 내가 죽고 싶다면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요. 돌아가서 당신 주인께 알려요. 만약 나의 협력을 원한다면 나의 조건에 동의해야 해요. 아니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절대 얻을 수 없어요.”이영민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잠시 묵묵히 있다가 이영민은 다가와서 말했다.“한소은 씨, 지금 저희를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 우리는 사실 그 위에 누가 있고, 당신과 어떤 거래나 어떤 조건을 가졌는지 몰라요. 단지 지시대로 할 뿐이에요.”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이영민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당신네 주인에게 가서 전해요. 내가 만나서 할 말이 있으니 만약 만나주지 않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거에요.”한소은은 간단히 말하고서야 아이를 조심스럽게 다시 유모차에 눕혔다.다른 한 녀석을 보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아주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오누이는 많이 닮았으나 며칠 만에 이미 구별을 할 수 있었다. 오빠는 성격이 좋고 잠도 잘 자서 올 때마다 푹 자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동생은 장난기가 심해서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터뜨렸다.한번은 아이가 아파서 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동생이 그렇게 심하게 울어도 옆의 오빠는 여전히 달콤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한소은은 아이를 토닥토닥 다독여 진정시킨 다음 일어섰다.“어디요?”이영민은 벙벙해서 물었다.“뭐요?”“건강검진을 한다면서요? 빨리하세요.”한소은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아, 다 괜찮아요.”정신을 차리고 이영민이 말했다.여전히 의사와 간호사 2명이지만 이번에는 간호사를 교체했다. 사실 그 전에 의사도 교체하였었다. 그들은 한소은을 막기 위해 여러
“남들이 보기엔 내가 나이도 어리고 정신 상태도 좋고, 게다가 무술을 익히기도 해서 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왜 한의학을 공부하는지 아세요?”한소은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영민은 어리둥절해서 하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몰라요!”“몸이 안 좋아서 그래요. 하여 한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방을 통해 천천히 몸조리하며 치료하려 했어요. 스스로 배우면서 몸을 추스르고 싶었죠. 그 효과 때문인지 최근 몇 년 동안 몸 상태가 좋아졌어요. 다들 제가 건강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나요?”“네.”한소은의 의도를 모른 채 셋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특히 최근 아이를 낳고 몸이 많이 쇠약해졌어요. 당신들과 같은 서의는 모를 거예요.”한소은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여러분께 그렇게 많이 말할 필요가 없어요. 사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오래 살지도 못하겠는데 몸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어요.”“한소은 씨,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몸조리 잘하세요.”이영민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조용히 한소은을 위로했다.“돌아가서 보고하세요.”한소은은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이영민은 한소은을 한 번 깊이 보고 나서야 물러났다.방안은 다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한소은은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의사의 말처럼 자신의 몸을 잘 돌봐야 했다. 아니면 도망갈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몸이 힘들어진다.“한소은이 정말 그렇게 말했어?”프레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이영민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는 두 명의 간호사들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교활한 여자!”프레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경멸하듯 말했다.“무슨 말씀이세요...”프레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요즘 검진 결과가 어때?”“출산 후 허약해진 것 빼고는 다 정상이에요.”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영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바로 그것이야.”프레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그만 가봐.”“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폐하, 왜 저 여자 말 몇 마디에 흔들리세요?”프레드는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차분히 말하려고 애썼다.“오랫동안 이 실험을 연구해 온 끝에 겨우 적임자를 찾았어요. 폐하와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았는데 그녀의 몇 마디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돼요.”잠시 머뭇거리다 프레드는 계속 말했다.“폐하, 착한 마음을 알겠으나 백성을 생각하고 아직도 당신이 이루지 못한 대업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는 당신이 필요하고 국민도 폐하가 필요해요!”프레드의 말을 듣고 설득됐는지 여왕은 잠잠해졌다.“폐하, 만약 한소은의 몸이 좋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의사를 납치할 수 있고 또 번마다 우리의 단속을 벗어날 수 있겠어요? 한소은은 총명하고 체질도 좋거니와 폐하와 잘 어울려요! 지금, 이 실험은 당신 혼자만의 실험이 아니에요.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득을 볼 것이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거에요. 누가 감히 우리에게 눈치를 주겠어요?”프레드의 말은 여왕의 심금을 울렸다. 비록 프레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왕은 더는 망설이거나 질의하지 않았다.“한소은에게 속지 마세요. 이제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시고 시간만 기다리면 돼요. 시간이 되면 즉시 실시할 것이니 그때가 되면 가치를 알게 될 거에요.”한참 뒤에서야 긴 탄식이 터져 나왔으며 그 뒤로는 다른 말이 없었다.프레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텅 빈 집에 오니 마음마저 텅 비었다.전등도 켜지 않고 넥타이를 풀고는 소파에 누웠다가 일어나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 한 캔을 꺼내 열었다.펑!그런데 순간 불이 켜졌고 이어 두 아이가 뛰쳐나왔다.“아빠, 생일 축하해요.”이영민은 멍해졌다. 천천히 몸을 돌려보니 눈앞의 것이 마치 꿈속처럼 느껴졌다.두 아이가 그를 둘러싸고 불꽃놀이를 하고 아내는 커다란 생일 케이크를 들고 웃으며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이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영민은 그곳에서 꼼짝달싹 못 하고 서 있었다.
“좋아, 너무 좋아!”이영민은 말하면서 옆에 서 있는 아내를 바라보았다.“당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원미연은 환하게 웃으며 촛불을 켠 케이크를 들고 이영민을 바라봤다.그는 천천히 일어나 케이크와 타고 있는 촛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소원을 빌 필요 없어, 내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어!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너희들이 모두 돌아와 평안하고 우리 가족이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야.”원미연은 웃었고, 두 아이는 케이크를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좋아, 케이크 먹어!”이영민은 촛불을 불어 끄고 뽑아낸 뒤 케이크를 작게 잘라 아이들에게 나눠줬다.아이들은 케이크를 하나씩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했고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앉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그들은 잡혀간 것이 아닌가? 비록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납치되었을 뿐 좌우간 협박하여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서한 씨가 구해줬어.”원미연은 또박또박 말을 했다.“서한 씨?”“서한 씨가 우리를 데려다주었어.”원미연은 다시 말했다.“저기 있어.”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창밖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만약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면 언뜻 보았을 때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서한은 창밖에 서 있었다. 혼자 들어가 그들 일가를 방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이제는 그들이 함께 자기 쪽을 바라보자 서한은 손을 들어 흔들며 인사했다.그러나 이영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들이 당신을 학대했어?”서한은 긴장해서 하며 원미연의 몸을 위아래로 검사하려 했다.방금 아이를 안을 때도 그들의 몸에 무슨 상처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나 어떤 상처는 감추어진 것이기에 쉽게 발견될 수 없었으니 두려웠다.원미연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아니, 우리를 잘 대해줬어. 그저 당신이 보고 싶었어!”아내의 말을 들은 이영민은 다시 꼭 안았다.“미안해! 나 때문에 이런 상처를 받은 거야. 다 내 탓이야.”“아니, 당신 탓이 아니야.”고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