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요.”“감사드려요!”이지현은 송미현의 사무실을 나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옆자리에 비어 있는 우청아의 책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청아도 결국 송미현 때문에 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내가 청아를 발판 삼아 올라서는 것도 어쩌면 날 도와준 셈이 아닐까?”“청아와 내가 송미현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아?’지현은 마음을 다잡으며 서랍에서 청아의 도면을 참고한 설계도를 꺼냈다....드디어 수요일이 되었다. 청아는 심하 회사에 제출할 도면 작업을 끝낸 뒤, 사무실에 남아 심하 회사 관계자들을 기다렸다.오전 10시쯤, 심하 회사 측 사람들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미현은 청아를 회의실로 부르도록 지시했다.회의실에 들어선 청아는 지현이 먼저 와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미현은 환한 미소로 그녀에게 다가와 설명했다.“심하 회사의 프로젝트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잖아요. 우리 사장님께서도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에요.”“그래서 혹시라도 청아 씨 혼자 작업한 도면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지현 씨에게도 따로 도면을 준비하게 했어요.”“잠시 후 심하 회사의 관계자분이 오셔서 두 도면을 보고 더 나은 쪽을 선택하는 걸로 하기로 했어요. 괜찮죠?”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청아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청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 팀장님께서 철저히 준비해 주셨네요.”미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역시 청아 씨는 이해심이 깊고 협조적이네요.”이때, 미현의 비서가 회의실 문을 열며 말했다.“팀장님, 심하 회사에서 오신 분들 도착하셨어요.”미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완벽한 미소를 띠며 나아갔다.“아, 성우준 사장님! 어서오세요!”성우준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저희 사장님도 함께 오셨어요.”그는 옆에 있는 남자를 송미현에게 소개했다.“저희 회사 실질적 사장님, 여송안 사장님이세요.”
송미현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원래 성우준 사장님께서 지정하신 디자이너는 우리 우청아 디자이너였어요.”“하지만 최근 우청아 디자이너가 너무 바쁜 나머지, 프로젝트 진행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돼서, 실력이 뛰어난 이지현 디자이너에게도 도면 작업을 부탁했어요.”“오늘 마침 여송안 사장님도 와 계시니 두 분의 도면을 모두 보시고, 어떤 게 더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시면 어떨까요?”성우준은 옆에 앉아 있는 여송안을 바라봤고, 여송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두 분의 도면을 다 확인해보고, 더 나은 쪽을 심하 회사의 지정 디자이너로 정하죠.”미현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지현에게 눈짓을 보냈고, 곧바로 말했다.“그렇다면 먼저 이지현 디자이너의 도면부터 보시죠. 준비를 더 철저히 했거든요.”여송안은 미소를 지으며 미현을 바라봤다.“그럼 송미현 팀장님의 말씀은, 우청아 디자이너가 오늘 준비한 도면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인가요?”송미현은 당황하며 서둘러 대답했다.“그런 건 아니고요. 단지 이지현 디자이너가 준비할 시간이 조금 더 많았다는 뜻이에요. 우청아 디자이너는 요즘 워낙 바쁘다 보니...”지현은 몰래 청아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청아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현의 불공정한 태도에도 전혀 반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이때 여송안이 청아에게 물었다.“우청아 디자이너, 요즘 그렇게 바쁘시다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청아는 고개를 들고 가벼운 미소로 대답했다.“현장을 다니며 공사장을 확인하고, 건물 구조를 살펴봤어요. 그리고 운 좋게 한 어르신께 풍수를 배우는 기회도 얻었죠.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미현은 눈에 띄게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송안은 큰 소리로 웃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랬군요. 그럼 배운 것 중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이었나요?”청아는 미소를 띠며 손에 들고 있던 도면을 가볍게 두드렸다.“이 도면 안에 모두 담겨 있어요. 조금
송미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송안 사장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우청아 디자이너는 아직 젊고, 비판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요.”“저희는 완벽을 추구하니까요!”여송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송미현 팀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들리네요.”미현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당연히 두 분이 만족해하시는 결과를 원하죠.”여송안은 온화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목소리에는 자연스러운 압박이 깃들어 있었다.“준비가 충분하다는 도면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도면보다 훨씬 못하다니, 팀장님은 자신의 디자이너들을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이지현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미현의 얼굴도 순식간에 굳었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장님 말씀 맞아요. 제가 조금 더 깊이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여송안은 청아를 바라보며 눈빛을 부드럽게 바꾸고 말했다.“이번 설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제가 원하던 점들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스타일을 완벽히 결합했어요.”“게다가 불합리한 부분까지 잘 해결해 주셨더군요. 아주 훌륭해요.”청아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이 도면은 아직 최종본이 아니예요.”“오늘은 전체적인 설계 스타일을 먼저 보여드리는 단계일 뿐이고, 이후 더 세부적인 부분을 보완한 뒤 성우준 사장님과 구체적으로 협의할 예정이에요.”여송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저와 직접 소통해도 괜찮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세요.”청아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옆에서 미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여송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결론을 내렸다.“그럼 이 도면으로 결정하죠. 앞으로 심하 회사의 프로젝트는 모두 우청아 디자이너가 맡기로 하죠.”그는 미현을 돌아보며 덧붙였다.“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가볼게요. 설계와 관련된 내용은 우 디자이너와 직접 조율하고
송미현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사직서를 냈다고요? 우청아 씨는 막 심하 사장님께 설계를 승인받았는데, 곧바로 사직서를 냈다니요?”“그것도 고명기 부팀장과 함께라니, 이 안에 무슨 음모가 있는 거 아닌가요?”황대헌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송미현 팀장님은 혹시 청아 씨가 왜 사직서를 냈는지 모르시나요?”그러자 미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비웃듯 대답했다.“둘이 사직서를 낸 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이전에 청아 씨의 설계가 불합격이라 생각해서 다시 설계하게 했고, 오늘 결과적으로 심하 쪽이 더 만족하는 도면을 만들었잖아요.”“제 결정이 옳았다는 증거 아닌가요? 한번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세요.”“제가 청아 씨에게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요구했던 거예요. 그게 잘못인가요?”그녀는 이어서 말했다.“저는 항상 철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잖아요.”“만약 청아 씨가 칭찬과 격려만 받고 싶어 하고, 진심 어린 비판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죠. 어쨌든 저는 제 방식에 후회가 없어요.”황대헌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송미현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본인의 입장은 명확하신 것 같군요. 사장님께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죠.”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해 주세요. 사실 직원이 그만두는 건 회사에서 흔한 일이잖아요. 직원이 하기 싫거나 불편해서 떠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일이죠.”“게다가 저희 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부족할 일이 없잖아요. 누군가 떠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되죠.”“세상은 누구 한 사람 없어도 계속 돌아가잖아요. 황대헌 부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황대헌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청아 씨는 신예 디자이너로, 회사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인재예요. 고명기 부팀장은 디자인 부서의 핵심 인물이죠.”“이 두 사람이 함께 사직서를 냈다는 게 회사에 얼마나 큰 손실이 될지 팀장님은 생각해 보셨나요?”
표절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면, 남은 직장 생활은 완전히 끝장날 게 뻔했다. 이 사실을 떠올리자, 이지현의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다행히도, 어떤 이유에서든 마지막 순간 지현은 이성을 잃지 않았고, 아마도 약간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우청아는 짐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녀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열심히 일하며 성장해 온 이곳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지현 씨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요. 송미현의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와의 우정을 잃고 싶지도 않았던 거죠.”“그래서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쓴 거겠죠. 내가 떠나면 좀 더 편해질 거예요. 적어도 송미현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는 되지 않을 테니까요.”“하지만 송미현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려면, 그 사람보다 더 영리해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너도 당할 테니까.”지현은 청아를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아의 눈은 여전히 맑고 순수했다.‘내가 이 더러운 곳에서 이런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지현은 마음이 아려왔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위해 노력하며,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어온 동료였다. 아무리 번거로운 업무도 서로의 이해와 응원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지현은 목이 메이며, 안타깝고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청아 씨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어요?”“작은 회사를 차리려고 해요.”청아는 담담히 웃었다.“다시 한번 스스로를 밀어붙여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지현은 눈물을 머금은 채로 웃으며 말했다.“분명히 해낼 거예요!”그 말에 청아는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우리 서로 열심히 해요.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이미 고급 디자이너로 승진해 있길 바랄게요.”지현은 참지 못하고 청아를 꽉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청아 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청아는 그녀의 어깨를
해가 저물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술집에 가기로 한 약속에 앞서, 우청아는 하성연의 카페에 들렀다.성연은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아를 보자, 성연은 남자에게 간단히 인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청아 쪽으로 걸어왔다.“청아야, 오늘은 어떻게 시간이 나서 왔어?”청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리 연락 못 했는데, 방해한 건 아니죠?”“아니야.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매일 이 시간에 찾아오는데, 사실 좀 귀찮았거든. 네가 와줘서 차라리 한시름 놓였어!”성연은 웃으며 청아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청아는 본론부터 꺼냈다.“성연 선배, 미안해요. 같이 작업실을 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성연은 다소 놀란 듯 물었다.“왜? 무슨 문제가 생겼어? 혹시 자금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 초기 자금은 내가 전부 부담할 수도 있어.”청아는 웃으며 대답했다.“선배가 부담하는 거예요? 아니면 고태형 선배요?”성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시원이 자리를 비운 동안, 청아는 자신과 태형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특히 이전에 장씨그룹에서 일할 때를 포함해서 말이다.태형의 등장은 항상 너무나도 우연이었다. 그랬기에 시원이 의심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성연은 원래부터 큰 야망이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우연히 건축학을 선택했을 뿐이고, 지금 운영 중인 카페 역시 처음 문을 열 때 태형이 자금을 대줬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큰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물론, 이는 단지 청아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고 시원의 감정을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청아는 태형과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성연은 천천히 커피를 저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청아야, 솔직히 말할게. 사실 태형이 나를 찾아왔어. 네가 회사에서 새로 온 상사에게 배척당하고 있다고 하더라고.”“그래서 너라면 네 실력으로 충분히 독립해서 작업실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
성연희도 우청아를 바라보았다. 청아는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 된 것도 잘된 일이야. 전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잖아.”연희는 차갑게 말했다.“송미현, 대체 어디서 나온 미친 여자야? 이렇게 음흉하고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소희가 물었다.“고명기 부팀장님도 퇴사한 거야?”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내가 작업실을 열겠다고 하니까, 스승님께서 돕겠다고 하셨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 그만하고, 우리 다 같이 청아의 작업실이 순조롭게 개업하고 대박 나길 미리 축하하자!”연희가 바로 말을 받았다.“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이건 청아의 불사조 같은 부활이야! 이제부터는 스스로 작업실 열고 사장님 되잖아?”“내가 이 두 손 들고 응원할게. 우리 청아의 사업이 날개를 달고 번창하길!”소희는 청아를 보며 웃었다.“자기 집안 회사 맡을 때는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더니!”연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건 노명성이 내 할 일을 다 해버리니까 내가 열정을 발휘할 데가 없었지!”소희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지금 청아한테 와서 네 열정을 쏟아내는 거야?”연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말로만 해보는 거야. 그것도 안 돼?”청아는 웃으며 말했다.“나중에 개업하면, 연희 너를 초청해서 연설 한번 하라고 해야겠네.”소희가 말을 받았다.“그만둬. 그러다 얘가 너무 열심히 해서 네 직원들 전부 자기네 회사로 데려가려고 하면 어쩌려고?”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고 떠드는 사이, 한 남자가 청아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왔다. 그러나 남자가 다가가기 전에 트레이를 든 남자 웨이터가 그를 막아섰다.남자가 웨이터와 부딪히며 화가 난 듯했지만, 웨이터는 침착하게 그의 팔을 한 손으로 잡아 뒤로 꺾더니 그대로 밀어냈다.남자는 깜짝 놀라 소리치려 했지만, 웨이터는 빈 와인병 코르크 마개를 들어 그의 입에 틀어막았다. 웨이터
한편, 임구택은 소파에 앉아 한쪽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노명성을 보며 말했다.“이게 성연희 씨가 나한테 약속한 축하 방식인가요?”명성은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담담히 웃었다.“가끔은 이렇게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죠. 별문제 없잖아요.”지난번 시언이 한턱 쏜 이후로 연희가 처음으로 술을 마시러 나온 날이었다. 명성은 연희를 너무 엄하게 다루면 오히려 반발심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만큼은 그녀의 외출을 막지 않았다.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정교육은 엄격해야 현명한 아내가 나오는 거죠.”이에 명성은 미소를 머금고 반문했다.“사장님 댁의 가정교육도 엄격했나 보네요?”구택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연희 씨처럼 자유분방한 성격은 엄격한 방식이 어울리죠. 하지만 소희는 다르죠. 소희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고집이 있어 부드러운 방식이 더 적합하니까요.”명성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사장님, 아마 모르실 텐데, 연희가 제게 화를 내면 걔는 친정으로 가지 않아요. 첫 번째로 찾는 사람은 항상 소희죠.”“만약 그때 연희가 사장님 댁에 머물게 된다면, 잘 부탁드려요. 연희의 화가 풀리면 제가 바로 데리러 가도록 하죠.”구택은 잠시 침묵하다가 노명성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아내가 뭘 하든 남편은 좀 더 포용력이 있어야 하죠. 여자는 누구나 부드러운 배려를 필요로 하니까요.”명성은 술잔을 들어 구택과 부딪히며 말했다.“사장님의 말씀에 공감해요. 한 수 배워가요.”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때, 두 사람 앞의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자 구택이 고개를 들며 입술을 얇게 열었다.“딱 너만 없었지.”장시원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멀리 있는 청아의 옆모습을 한 번 보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 자리, 누가 주선한 거지?”명성이 입을 열었다.“청아가 퇴사한 걸 축하한다고 연희가 자리를 마련한 거죠.”시원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술잔을 들어 명성에게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