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요.”“감사드려요!”이지현은 송미현의 사무실을 나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옆자리에 비어 있는 우청아의 책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청아도 결국 송미현 때문에 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내가 청아를 발판 삼아 올라서는 것도 어쩌면 날 도와준 셈이 아닐까?”“청아와 내가 송미현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아?’지현은 마음을 다잡으며 서랍에서 청아의 도면을 참고한 설계도를 꺼냈다....드디어 수요일이 되었다. 청아는 심하 회사에 제출할 도면 작업을 끝낸 뒤, 사무실에 남아 심하 회사 관계자들을 기다렸다.오전 10시쯤, 심하 회사 측 사람들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미현은 청아를 회의실로 부르도록 지시했다.회의실에 들어선 청아는 지현이 먼저 와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미현은 환한 미소로 그녀에게 다가와 설명했다.“심하 회사의 프로젝트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잖아요. 우리 사장님께서도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에요.”“그래서 혹시라도 청아 씨 혼자 작업한 도면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지현 씨에게도 따로 도면을 준비하게 했어요.”“잠시 후 심하 회사의 관계자분이 오셔서 두 도면을 보고 더 나은 쪽을 선택하는 걸로 하기로 했어요. 괜찮죠?”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청아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청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 팀장님께서 철저히 준비해 주셨네요.”미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역시 청아 씨는 이해심이 깊고 협조적이네요.”이때, 미현의 비서가 회의실 문을 열며 말했다.“팀장님, 심하 회사에서 오신 분들 도착하셨어요.”미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완벽한 미소를 띠며 나아갔다.“아, 성우준 사장님! 어서오세요!”성우준은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저희 사장님도 함께 오셨어요.”그는 옆에 있는 남자를 송미현에게 소개했다.“저희 회사 실질적 사장님, 여송안 사장님이세요.”
송미현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원래 성우준 사장님께서 지정하신 디자이너는 우리 우청아 디자이너였어요.”“하지만 최근 우청아 디자이너가 너무 바쁜 나머지, 프로젝트 진행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돼서, 실력이 뛰어난 이지현 디자이너에게도 도면 작업을 부탁했어요.”“오늘 마침 여송안 사장님도 와 계시니 두 분의 도면을 모두 보시고, 어떤 게 더 마음에 드는지 결정하시면 어떨까요?”성우준은 옆에 앉아 있는 여송안을 바라봤고, 여송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두 분의 도면을 다 확인해보고, 더 나은 쪽을 심하 회사의 지정 디자이너로 정하죠.”미현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지현에게 눈짓을 보냈고, 곧바로 말했다.“그렇다면 먼저 이지현 디자이너의 도면부터 보시죠. 준비를 더 철저히 했거든요.”여송안은 미소를 지으며 미현을 바라봤다.“그럼 송미현 팀장님의 말씀은, 우청아 디자이너가 오늘 준비한 도면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인가요?”송미현은 당황하며 서둘러 대답했다.“그런 건 아니고요. 단지 이지현 디자이너가 준비할 시간이 조금 더 많았다는 뜻이에요. 우청아 디자이너는 요즘 워낙 바쁘다 보니...”지현은 몰래 청아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청아는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현의 불공정한 태도에도 전혀 반발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이때 여송안이 청아에게 물었다.“우청아 디자이너, 요즘 그렇게 바쁘시다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청아는 고개를 들고 가벼운 미소로 대답했다.“현장을 다니며 공사장을 확인하고, 건물 구조를 살펴봤어요. 그리고 운 좋게 한 어르신께 풍수를 배우는 기회도 얻었죠.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미현은 눈에 띄게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송안은 큰 소리로 웃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그랬군요. 그럼 배운 것 중 가장 큰 수확은 무엇이었나요?”청아는 미소를 띠며 손에 들고 있던 도면을 가볍게 두드렸다.“이 도면 안에 모두 담겨 있어요. 조금
송미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송안 사장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우청아 디자이너는 아직 젊고, 비판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요.”“저희는 완벽을 추구하니까요!”여송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송미현 팀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들리네요.”미현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당연히 두 분이 만족해하시는 결과를 원하죠.”여송안은 온화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목소리에는 자연스러운 압박이 깃들어 있었다.“준비가 충분하다는 도면이 준비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도면보다 훨씬 못하다니, 팀장님은 자신의 디자이너들을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이지현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미현의 얼굴도 순식간에 굳었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장님 말씀 맞아요. 제가 조금 더 깊이 이해해야 할 것 같네요.”여송안은 청아를 바라보며 눈빛을 부드럽게 바꾸고 말했다.“이번 설계,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제가 원하던 점들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스타일을 완벽히 결합했어요.”“게다가 불합리한 부분까지 잘 해결해 주셨더군요. 아주 훌륭해요.”청아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이 도면은 아직 최종본이 아니예요.”“오늘은 전체적인 설계 스타일을 먼저 보여드리는 단계일 뿐이고, 이후 더 세부적인 부분을 보완한 뒤 성우준 사장님과 구체적으로 협의할 예정이에요.”여송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저와 직접 소통해도 괜찮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세요.”청아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옆에서 미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여송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결론을 내렸다.“그럼 이 도면으로 결정하죠. 앞으로 심하 회사의 프로젝트는 모두 우청아 디자이너가 맡기로 하죠.”그는 미현을 돌아보며 덧붙였다.“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가볼게요. 설계와 관련된 내용은 우 디자이너와 직접 조율하고
송미현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사직서를 냈다고요? 우청아 씨는 막 심하 사장님께 설계를 승인받았는데, 곧바로 사직서를 냈다니요?”“그것도 고명기 부팀장과 함께라니, 이 안에 무슨 음모가 있는 거 아닌가요?”황대헌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송미현 팀장님은 혹시 청아 씨가 왜 사직서를 냈는지 모르시나요?”그러자 미현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비웃듯 대답했다.“둘이 사직서를 낸 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이전에 청아 씨의 설계가 불합격이라 생각해서 다시 설계하게 했고, 오늘 결과적으로 심하 쪽이 더 만족하는 도면을 만들었잖아요.”“제 결정이 옳았다는 증거 아닌가요? 한번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세요.”“제가 청아 씨에게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요구했던 거예요. 그게 잘못인가요?”그녀는 이어서 말했다.“저는 항상 철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잖아요.”“만약 청아 씨가 칭찬과 격려만 받고 싶어 하고, 진심 어린 비판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죠. 어쨌든 저는 제 방식에 후회가 없어요.”황대헌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송미현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본인의 입장은 명확하신 것 같군요. 사장님께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죠.”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해 주세요. 사실 직원이 그만두는 건 회사에서 흔한 일이잖아요. 직원이 하기 싫거나 불편해서 떠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일이죠.”“게다가 저희 회사에서는 디자이너가 부족할 일이 없잖아요. 누군가 떠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되죠.”“세상은 누구 한 사람 없어도 계속 돌아가잖아요. 황대헌 부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황대헌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청아 씨는 신예 디자이너로, 회사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던 인재예요. 고명기 부팀장은 디자인 부서의 핵심 인물이죠.”“이 두 사람이 함께 사직서를 냈다는 게 회사에 얼마나 큰 손실이 될지 팀장님은 생각해 보셨나요?”
표절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면, 남은 직장 생활은 완전히 끝장날 게 뻔했다. 이 사실을 떠올리자, 이지현의 온몸에 소름이 돋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다행히도, 어떤 이유에서든 마지막 순간 지현은 이성을 잃지 않았고, 아마도 약간의 양심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우청아는 짐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녀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열심히 일하며 성장해 온 이곳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지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지현 씨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요. 송미현의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와의 우정을 잃고 싶지도 않았던 거죠.”“그래서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쓴 거겠죠. 내가 떠나면 좀 더 편해질 거예요. 적어도 송미현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는 되지 않을 테니까요.”“하지만 송미현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려면, 그 사람보다 더 영리해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너도 당할 테니까.”지현은 청아를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아의 눈은 여전히 맑고 순수했다.‘내가 이 더러운 곳에서 이런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지현은 마음이 아려왔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위해 노력하며,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어온 동료였다. 아무리 번거로운 업무도 서로의 이해와 응원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지현은 목이 메이며, 안타깝고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청아 씨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어요?”“작은 회사를 차리려고 해요.”청아는 담담히 웃었다.“다시 한번 스스로를 밀어붙여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요!”지현은 눈물을 머금은 채로 웃으며 말했다.“분명히 해낼 거예요!”그 말에 청아는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우리 서로 열심히 해요.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이미 고급 디자이너로 승진해 있길 바랄게요.”지현은 참지 못하고 청아를 꽉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청아 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청아는 그녀의 어깨를
해가 저물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술집에 가기로 한 약속에 앞서, 우청아는 하성연의 카페에 들렀다.성연은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아를 보자, 성연은 남자에게 간단히 인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청아 쪽으로 걸어왔다.“청아야, 오늘은 어떻게 시간이 나서 왔어?”청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리 연락 못 했는데, 방해한 건 아니죠?”“아니야.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매일 이 시간에 찾아오는데, 사실 좀 귀찮았거든. 네가 와줘서 차라리 한시름 놓였어!”성연은 웃으며 청아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청아는 본론부터 꺼냈다.“성연 선배, 미안해요. 같이 작업실을 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성연은 다소 놀란 듯 물었다.“왜? 무슨 문제가 생겼어? 혹시 자금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 초기 자금은 내가 전부 부담할 수도 있어.”청아는 웃으며 대답했다.“선배가 부담하는 거예요? 아니면 고태형 선배요?”성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시원이 자리를 비운 동안, 청아는 자신과 태형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특히 이전에 장씨그룹에서 일할 때를 포함해서 말이다.태형의 등장은 항상 너무나도 우연이었다. 그랬기에 시원이 의심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성연은 원래부터 큰 야망이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우연히 건축학을 선택했을 뿐이고, 지금 운영 중인 카페 역시 처음 문을 열 때 태형이 자금을 대줬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큰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물론, 이는 단지 청아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고 시원의 감정을 배려하기 위해서라도, 청아는 태형과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성연은 천천히 커피를 저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청아야, 솔직히 말할게. 사실 태형이 나를 찾아왔어. 네가 회사에서 새로 온 상사에게 배척당하고 있다고 하더라고.”“그래서 너라면 네 실력으로 충분히 독립해서 작업실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
성연희도 우청아를 바라보았다. 청아는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며 가볍게 웃었다.“이렇게 된 것도 잘된 일이야. 전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잖아.”연희는 차갑게 말했다.“송미현, 대체 어디서 나온 미친 여자야? 이렇게 음흉하고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소희가 물었다.“고명기 부팀장님도 퇴사한 거야?”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내가 작업실을 열겠다고 하니까, 스승님께서 돕겠다고 하셨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스트레스 받는 이야기 그만하고, 우리 다 같이 청아의 작업실이 순조롭게 개업하고 대박 나길 미리 축하하자!”연희가 바로 말을 받았다.“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이건 청아의 불사조 같은 부활이야! 이제부터는 스스로 작업실 열고 사장님 되잖아?”“내가 이 두 손 들고 응원할게. 우리 청아의 사업이 날개를 달고 번창하길!”소희는 청아를 보며 웃었다.“자기 집안 회사 맡을 때는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더니!”연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건 노명성이 내 할 일을 다 해버리니까 내가 열정을 발휘할 데가 없었지!”소희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지금 청아한테 와서 네 열정을 쏟아내는 거야?”연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말로만 해보는 거야. 그것도 안 돼?”청아는 웃으며 말했다.“나중에 개업하면, 연희 너를 초청해서 연설 한번 하라고 해야겠네.”소희가 말을 받았다.“그만둬. 그러다 얘가 너무 열심히 해서 네 직원들 전부 자기네 회사로 데려가려고 하면 어쩌려고?”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고 떠드는 사이, 한 남자가 청아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왔다. 그러나 남자가 다가가기 전에 트레이를 든 남자 웨이터가 그를 막아섰다.남자가 웨이터와 부딪히며 화가 난 듯했지만, 웨이터는 침착하게 그의 팔을 한 손으로 잡아 뒤로 꺾더니 그대로 밀어냈다.남자는 깜짝 놀라 소리치려 했지만, 웨이터는 빈 와인병 코르크 마개를 들어 그의 입에 틀어막았다. 웨이터
한편, 임구택은 소파에 앉아 한쪽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노명성을 보며 말했다.“이게 성연희 씨가 나한테 약속한 축하 방식인가요?”명성은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담담히 웃었다.“가끔은 이렇게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죠. 별문제 없잖아요.”지난번 시언이 한턱 쏜 이후로 연희가 처음으로 술을 마시러 나온 날이었다. 명성은 연희를 너무 엄하게 다루면 오히려 반발심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만큼은 그녀의 외출을 막지 않았다.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정교육은 엄격해야 현명한 아내가 나오는 거죠.”이에 명성은 미소를 머금고 반문했다.“사장님 댁의 가정교육도 엄격했나 보네요?”구택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연희 씨처럼 자유분방한 성격은 엄격한 방식이 어울리죠. 하지만 소희는 다르죠. 소희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고집이 있어 부드러운 방식이 더 적합하니까요.”명성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사장님, 아마 모르실 텐데, 연희가 제게 화를 내면 걔는 친정으로 가지 않아요. 첫 번째로 찾는 사람은 항상 소희죠.”“만약 그때 연희가 사장님 댁에 머물게 된다면, 잘 부탁드려요. 연희의 화가 풀리면 제가 바로 데리러 가도록 하죠.”구택은 잠시 침묵하다가 노명성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아내가 뭘 하든 남편은 좀 더 포용력이 있어야 하죠. 여자는 누구나 부드러운 배려를 필요로 하니까요.”명성은 술잔을 들어 구택과 부딪히며 말했다.“사장님의 말씀에 공감해요. 한 수 배워가요.”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때, 두 사람 앞의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자 구택이 고개를 들며 입술을 얇게 열었다.“딱 너만 없었지.”장시원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멀리 있는 청아의 옆모습을 한 번 보고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 자리, 누가 주선한 거지?”명성이 입을 열었다.“청아가 퇴사한 걸 축하한다고 연희가 자리를 마련한 거죠.”시원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술잔을 들어 명성에게
“흥성.”흥성은 강성의 옆도시로, 관광 도시였다. 이에 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도 같이 갈게요!”꽤 발랄하게 말하는 유진에 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가겠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뭘 하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갈 거니까요!”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오늘 돌아오지 못할 거야. 거기서 이틀은 머물러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면 불편해.”“그냥 여행 가는 셈 치면 되잖아요!”서인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거리에서 임씨 저택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에 유진은 여유롭게 말했다.“그러면 집에 데려다줘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내 차로 흥성으로 갈게요. 어쩌면 거기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임유진.”서인은 얼굴을 굳히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우리 동료들은 다 놀러 갔는데, 난 너 때문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두고 혼자 나가겠다고요? 그게 맞는 거예요?”서인은 설명했다.“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이 생겨서 가는 거야.”“몰라요. 어쨌든 따라갈 거예요. 나 어린애 아니니까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 없는 셈 치면 되잖아요!”유진은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사장님은 일 보러 다니고, 난 혼자 놀러 다닐게요. 절대 방해 안 할 거예요. 됐죠?”서인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더 미루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럼 말 잘 들어야 해.”서인이 신신당부했다.“약속할게요!”유진은 신나서 손까지 들며 맹세할 기세였다.서인은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 오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은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다.유진도 노정순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설명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만 말했다. 노정순은 오전에 여진구가 찾아와 회사 워크숍을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그녀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줄 알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
강성의 한 묘지.홍복과 표용을 비롯한 전우들의 묘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전우들은 이제 백랑의 곁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서인은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씩 놓았고, 임유진도 묘지 밖에서 사 온 꽃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돌계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유진도 서인의 곁에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서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얘기했잖아.”유진은 묘지를 찾을 때마다 늘 삼각주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서인이 기억하는 건 이미 다 말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유진은 질세라 다시 말했다.“이번에 전우들 묘지가 새로 생겼잖아요. 분명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없어.”서인은 한쪽 다리를 굽힌 채 느슨하게 앉아 있었고, 말투 역시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이에 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 다음에 소희한테 물어봐야겠네!”그제야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봤다.“진짜 듣고 싶어?”“당연하죠!”유진은 활짝 웃으며 턱을 괴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했다. 유진은 과거가 늘 궁금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맨날 말하는 내 229명의 여자친구들 얘기, 하나씩 다 해 줄까?”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던 꽃을 집어 들어 서인에게 던졌다.서인은 피식 웃으며, 거친 목소리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다.“이야기 듣고 싶다며? 229개의 이야기가 있지. 아마 내년까지도 다 못 들을걸.”“아직도 그 말을 해요?”유진은 씩씩거리며 서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서인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도 않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밀어낼 수 없었다.마치 큰 회색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처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잠시 후,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문신 남자는 점점 짜증이 났다.“겨우 서빙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내가 맞팔 달라는 것도 네 급을 봐준 거라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사장님! 여기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은 주변 공기마저도 서늘하게 만들었다.서인의 싸늘한 눈빛이 문신 남자를 향하자, 그는 마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유진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돈을 내기 전에 제 SNS 맞팔하라고 요구했어요.”그제야 문신 남자의 일행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일어나 힐끗거리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오현빈과 이문이 후원에서 걸어 나왔다.현빈은 본래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손에 주방칼까지 들고 있었다.문신 남자의 일행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그때, 서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문신 남자를 향해 말했다.“좋아. 내꺼를 추가해요. 나랑 얘기 좀 하자고요.”문신 남자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결제를 마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불러 가게를 빠져나갔다.사람들이 나가자, 현빈이 비웃으며 말했다.“이런 겁쟁이 녀석들. 다음에 또 이런 쓰레기들이 나타나면 말도 필요 없어. 바로 나를 불러.”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알겠어요!”서인은 유진을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문은 그를 따라가며 넌지시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임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 찻주전자를 훔쳐 가겠어요? 안심하세요!”서인은 유진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님이 너 찾으러 왔으면,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라. 가게 바쁘다.”유진은 서인의 표정이 더 이상 좋지 않자, 정말로 화를 낼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먼저 보낼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여진구를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구가 서인의 찻주전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그거 내려놔요!”유진은 깜짝 놀라 뛰어가며 소리쳤다. 놀란 진구는 손을 헛디뎌 찻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했다.“왜 그래?”유진은 재빨리 찻주전자를 낚아채듯 빼앗았다.“이거 사장님이 2,000만 원 주고 산 거예요. 깨지면 감당할 수 있어요?”“뭐? 2,000만 원?”진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2,000만 원짜리 골동품 같지는 않은데?”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선배 골동품에 대해 알아요?”“아니?”“그럼 됐죠!”유진은 찻주전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2,000만 원인데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어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거죠. 깨지면 당연히 화내겠죠!”진구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난 잘 모르지만, 우리 작은아버지는 골동품 전문가야. 가져가서 감정받아 볼까?”그리고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혹시라도 바가지를 썼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이 찻주전자가 아무리 봐도 2,0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진구를 밖으로 밀어냈다.“무슨 바가지요? 마음에 들면 2,000만 원이든 2억이든 가치가 있는 거고, 마음에 안들면 2천원도 아까운 거죠.”“그러니까 선배도 선배 할 일 하러 가요! 내 일 방해하지 말고요!”진구는 서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마지못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유진아, 연애
여진구는 바로 문을 나가려 했다. 임유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따라붙으며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선배 지금 우리 엄마한테 말하러 가는 거예요?”진구는 붉어진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어린애들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안 될 이유가 뭐야?”“안 돼요! 절대 가면 안 돼요!”유진은 온 힘을 다해 진구를 붙잡았다. 그러나 진구는 유진의 손목을 잡고 힘을 줘서 떼어내려 했다.“손 놔!”“안 놔요! 선배, 선배가 뭔데 내 일에 참견죠?”“너희 가족은 전부 내가 너를 회사에서 관리한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 난 너에 대한 책임이 있고!”“뭐요? 지금 미쳤어요? 선배 회사가 무슨 어린이집이에요? 선배는 그냥 내 상사죠,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잖아요!”“너 내 부서 사람이잖아. 내 책임이야!”“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요!”“넌 너무 철이 없어!”“뭐요? 철이 없다고요?”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순식간에 진구의 팔을 붙잡고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차려 했다. 진구는 황급히 몸을 피하면서도, 유진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봐 신경을 썼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서인이 커다란 뼈다귀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무뚝뚝했고, 목소리에도 차가움이 묻어 있었다.“비키지?”유진은 순간 당황해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서인은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야옹이에게 가서 음식을 내려놓았다. 애옹이는 음식 냄새를 맡고 서인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서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살짝 밀어냈다.서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애옹이는 몸이 가볍고 재빠른 덕분에 부드럽게 착지했다.야옹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마치 동정을 하듯, 입에 물고 있던 뼈 하나를 작은 애옹이 쪽으로 던졌다.그리고 유진은 이 장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서인이 애옹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이런 태도일 줄은 몰랐다.그때
가끔 서인이 몇 마디 맞장구를 쳤지만, 대부분은 임유진이 혼자 말하는 시간이었다.“옆 부서에 새로 들어온 인턴이 있는데, 자꾸 우리 사무실에 와요. 꼭 진구 선배가 있을 때 찾아와서, 다들 걔가 짝사랑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그런데 문제는 진구 선배가 그 애를 네 번이나 봤는데도 아직 이름을 기억 못 한다는 거죠.”“이번 워크숍에 그 부서도 같이 가는데, 혹시 이번 기회에 좀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죠!”“우리 동료 중 한 명이 집에서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는데, 벌써 한 살이 넘었대요. 내가 애옹이 사진 보여줬더니 완전 반하더라고요.”“나중에 둘이 고양이 맞선 한 번 보자더라고요. 물론, 이건 사장님 허락이 필요하죠!”...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던 유진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서인을 바라보았다. 이에 서인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유진은 입술을 앙다물다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결혼하면, 매일 이렇게 같이 있는 거잖아요. 꽤 괜찮지 않아요?”서인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무심한 듯 말했다.“도대체 네 머릿속에는 맨날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 거야?”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사장님 생각이죠!”유진은 서인의 등 뒤에서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서인의 어깨가 살짝 경직되었고,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졌다. 그러나 서인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유진은 애옹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너 말해 봐. 저 사람,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 맞지?”“냐옹.”애옹이는 맑은 크리스탈 같은 눈동자로 유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울었다.잠시 후, 오현빈이 다가와 유진을 불렀다.“유진아, 수박 가져왔어. 먹고 가!”유진은 애옹이를 내려놓고, 마당을 정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달콤한 수박을 먹으며 쉬던 중,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어서 오세요.”그러나 바로, 유진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앞에
소희는 우청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금요일, 샤부샤부 가게아침에는 영업하지 않기 때문에, 오현빈과 직원들은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가게 청소하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식재료를 구매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전 10시. 막 가게 문을 연 순간, 임유진이 커다란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자 안에는 애옹이를 위한 사료, 간식, 모래 등이 잔뜩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현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평일인데, 너 출근 안 했어?”유진은 흰색 티셔츠를 입고 반묶음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회사 단체 워크숍이 있는데 안 갔어요.”이문이 다가와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워크숍 좋잖아.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도 하고.”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뭐가 좋아요? 차라리 집에서 푹 쉬는 게 낫죠.”현빈은 이문과 눈을 맞추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주된 이유는 워크숍에 사장님이 없어서겠지?”“사장님이랑 무슨 상관이죠?”유진은 턱을 치켜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위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사장님, 아직 안 일어났어요?”현빈과 이문을 비롯한 직원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서인이랑 상관없다고 하더니, 바로 그의 일정을 묻다니!유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상자 안에서 작은 공을 꺼내 현빈에게 던졌다.“뭘 웃어요?”“아직도 웃어요?”오현빈은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두 손을 들었다.“알겠어,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한바탕 장난을 친 후, 유진은 후원으로 가서 애옹이를 보러 갔다.한편, 서인은 아침 운동으로 샌드백을 몇 번 친 뒤, 아래층 주방에서 야옹이의 밥그릇을 챙겼다. 그리고 후원으로 가려고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작은 나무집
도설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졌다.“지금 나를 일부러 모욕하는 거예요?”심명의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차갑고 무심한 눈빛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내가 준 거울은 가져가고, 이제 꺼져요. 그 따위로 소희에게 덤비다니, 집에 거울이 부족했나 보군.”설유는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그래서 이 모든 게 일부러였다는 거네요!”설유는 심명의 말을 곱씹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설마, 당신도 임구택을 좋아하는 거예요?”‘그래서 자신이 임구택에게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약혼식장에서 데려왔던 거라면?’콜록!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심명은 담배 연기에 기침이 나왔다. 그러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설유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당장 꺼져요.”‘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거야?’설유는 계속 차에서 내리길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자 심명은 그대로 차 문을 열어 설유를 밀어냈다.마침 밖에 있던 남자가 설유가 다치지 않게 잡아주려 했지만, 설유는 격분하며 그를 마구 밀쳤다.“건방지게 어디 감히 날 만져?”남자는 설유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놓아버렸다.쿵! 그리고 설유는 땅바닥에 세게 내팽개쳐졌다. 그녀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지만, 제대로 화를 낼 틈도 없이, 앞에서 스포츠카가 급가속하며 떠났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가 설유의 얼굴을 향해 뿜어졌다....연회장에서 소희와 우청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희는 심명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소희야, 너 때문에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어!]뒤에는 벽에 숨어 우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소희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어이가 없었다.[그 여자가 나한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어?]심명은 단호하게 답장을 보냈다.[안 돼, 네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면 안 돼.]소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그래서, 무슨 짓을 했어?]심명은 여전히 장난스러
소희는 임구택의 넓고 단단한 어깨에 몸을 기댔다. 소희의 섬세한 눈매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었고, 손가락은 그의 어깨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 구택의 손이 소희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 가슴으로 끌어안았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맞춤이 소희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도설유는 화원으로 돌아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물었다.“아까 장시원 사장 옆에 있던 남자,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누구야?”설유의 질문에 몇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짐작했다.“장시원 사장이랑 친한 사람이라면, 임구택, 조백림, 장명원 정도인데, 누구 말하는 거야?”설유는 직감적으로 대답했다.“임구택? 임씨 그룹의 사장?”“맞아, 임구택!”도설유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그 사람, 결혼했어?”그 말을 듣자 상대방은 흥분한 듯 대답했다.“당연하지! 엄청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어. 그때 인터넷에서도 라이브로 방송됐었는데!”설유는 곧바로 호텔 복도에서 마주쳤던 여자를 떠올리고는 비웃듯이 말했다.“그 사람 와이프, 성격 엄청 안 좋아 보이던데? 그런 남자가 왜 그렇게 무서운 와이프를 골랐을까?”그때, 옆에서 부드럽고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임구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나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난 그의 모든 걸 알고 있는데요?”도설유가 뒤를 돌아보자,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다. 베이지 캐주얼 슈트를 입고, 귓가에는 흑요석 귀걸이가 반짝이는 남자.그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남이었고, 요염한 매력까지 풍기자, 설유의 눈빛이 흔들렸다.“당신 임구택 사장을 알아요?”그 남자는 능청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남자는 입꼬리를 날렵하게 올리며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고, 도발적인 눈길은 상대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설유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나 나눌까요? 궁금한 거, 다 알려줄게요. 심지어 네가 임구택을 쫓아다니게 도와줄 수도 있어요.”설유는 살짝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