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C국 본사로 돌아와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처음 뵙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려요.”송미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어 황대헌이 덧붙였다.“송미현 팀장님은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앞으로 회사의 실적과 명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실 분이니,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길 바랄게요.”사람들은 일제히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의가 끝난 뒤, 직원들은 회의실을 떠나면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는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고명기를 지나쳤고, 어떤 이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물론 새로운 팀장인 미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앞다투어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청아는 자리에 돌아가기 전에 명기의 사무실로 먼저 향했다. 명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웃으며 말했다.“위로는 필요 없어요. 난 괜찮으니까. 사실 팀장 자리는 탐나지 않았거든요. 부팀장으로 있는 게 훨씬 편해요.”“설계만 신경 쓰면 되고, 굳이 다른 일들에 신경 쓸 필요 없으니 더 좋죠.”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스승님이 괜찮으시다면 다행이에요.”그녀는 준비해 둔 선물을 꺼내며 말했다.“원래는 승진 축하 선물로 드리려고 준비한 건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가 있었네요. 그래도 스승님께 드릴게요. 스승님께서 평소처럼 마음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어요.”명기는 크게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청아 씨 말이 맞아요. 이런 일이 뭐 대수겠어요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거죠. 고마워요.”그는 청아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가서 할 일 봐요. 난 조금 이따가 새로운 팀장님과 업무를 조율하러 갈 거라서요.”청아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스승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청아가 사무실 문을 열자 마침 미현이 문 앞에 서 있었고, 그녀는 문을 두드리려던 참이었다. 청아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인사했다.“팀장님!”미현은 어딘지 모르게 탐색하는 눈빛을 띠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청아는 자리를 양보하며
수요일 저녁 7시 정각 소희는 전위 호텔 앞에 나타났다.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아빠 소정인이었다. [소희야, 아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차가 좀 막히네. 먼저 들어가있어.]소희는 발걸음을 늦추며 이따 임구택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고 있었다.결혼 3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임구택이 이 결혼을 동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부한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그렇다고 임구택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과거 소씨 가문의 회사가 위기를 맞자 뻔뻔하게 임씨 가문을 찾아가 혼인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당시 임씨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을 한 터라 자연스레 그 약속은 차남 임구택이 이행하게 되었다. 그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임씨 가문은 당연히 소씨 가문에 좌지우지 당하지만은 않았다. 예물로 50억 원을 건네어 소씨 가문이 난관을 이겨내게 도우면서도 조건을 제시했다. 3년 뒤에 이 혼사가 자동 해지되는 것으로.3년 전, 그녀는 아직 법정 결혼 연령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대리인이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하자마자 임구택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 해지를 석 달 앞두고 돌아왔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태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그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소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였다. “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 아내에요!”그가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까?듣건대 임구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강성의 유명한 악질이었다고 한다. 강성의 흑과 백을 모두 통솔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섭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지만 며칠 전 TV의 경제 채널에서 임구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명품 양복을 입고, 거만하면서도 우아하고 듬직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다니.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여기는 층고가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그가 그렇게 무서웠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물을 끼얹은 듯 청량한 바람이지만 남자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화는 식히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 ......택시에 앉은 소희가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각별히 조심해야 되요.”“네, 감사합니다. 기사님.”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따위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임구택이 그녀가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운해로에서 내리면서 소희는 뒷좌석을 적신 대가로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작은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목욕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못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까지 물속에 파묻고 오늘 밤에 있
소희는 멍해졌다.남자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왜 절 따라오시는 거예요? 강성대 학생이신가요?”그는 오는 길에서부터 이 여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멈추면 그녀도 무슨 일이 있는 척 멈추더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소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 “여기가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인가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왜 제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거죠?”남자의 눈동자의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소희에게 올라오라고 눈짓했다.소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됐어요, 오해받을 만한 행동 안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걸어갔다.그녀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며 남자의 가늘게 뜬 눈을 가렸다.소희는 임구택과 다시 마주칠까 봐 아예 계단으로 9층까지 올라갔다.회의실에 도착하니 조교가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는 그녀를 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그 옆에는 몇몇 학생들도 자료를 제출하러 왔는데, 그중 한 명은 따가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못 본 척 휴대폰을 꺼내 스도쿠를 했다.5분도 안 돼 한 판을 풀고 나니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죠? 출국한지 오래됐으니 돌아올 때 됐구나 싶었는데”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임구택도 소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고 바로 지나갔다.학과장은 급히 마중 나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방 교장은 그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LS그룹의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지요. 참, 우리 학교 여러 항목의 장학금도 임 회장님이 후원한 것입니다.”그러자 학과장은 냉큼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임구택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마침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출
임구택은 그날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자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명우는 제일 먼저 천위 호텔의 CCTV를 조사했다.이상하게도 7시와 9시 두 시간대 모두 공백 상태였고 천위 호텔의 보안요원조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인터넷이 끊겼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었다.그래도 명우는 한 사람을 찾았다. 서이연.서이연은 B급 배우로 청순하고 러블리한 이미지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줄곧 뜨지 못했다. 어제 저녁 6시 50분쯤 그녀가 천위 호텔에 들어가 연풍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CCTV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CCTV 기록에는 공백이 있어 그녀가 어느 방으로 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9시 5분경 서이연의 매니저가 그녀를 부축하고 연풍관 밖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한쪽 다리를 구부린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그 뒤로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명우는 서이연이 어떤 차를 타고 떠났는지 몰라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젯밤 그녀는 왼쪽 다리를 수술했다.명우는 이미 차트를 확인했는데 낙상이었다.그날 밤, 강성의대 부속병원.VIP706호. 병상에 누워있는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불안한 표정으로 맞은 켠 소파에 앉은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임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다리 어떻게 다쳤어요?” 임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이연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반쯤 늘어뜨린 눈꺼풀 아래 눈물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 대표님과 관련이 있나요?”“숨길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 이미 CCTV를 확인했으니까. 어젯밤 9시쯤 매니저가 당신을 부축해서 차를 타고 떠날 때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죠. 그날 밤 제 방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맞나요?” 임구택의 어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손님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천위 호텔은 카메라가 객실 창문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이연이 어디서 뛰어내렸는지는 볼 수 없지만,
여인이 달려들며 손에 들고 있던 꽃들은 소희의 몸에 던져졌다. 힘껏 소희를 뒤로 밀치고는 소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진원은 긴장한 채 소연의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다친 거야? 혹시 피났어? 어디 아프니?”이슬을 머금은 꽃잎이 온 바닥에 흩어지고 꽃의 가시가 소희의 목덜미를 찔러 따끔거렸다. 그녀는 여인의 긴장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소정인은 이내 다가와 소희에게 물었다.“안 다쳤니?”진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소연이를 죽이려는 거니?”소희는 여인의 눈에 비친 혐오와 원한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소연은 소희를 한 번 쳐다보고는 급히 진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엄마, 오해예요. 제가 언니한테 머리 좀 잘라달라고 했어요. 언니는 절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그렇구나!”소정인은 ‘하하’하고 웃으며 진원을 원망했다. “당신은 항상 너무 급해서 문제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화부터 낸단 말이야. 당신 때문에 소희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진원은 자신이 소희를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안해하며 변명했다. “들어오자마자 소희가 가위를 소연이의 목에 대고 있길래... 머리를 자르는 건줄도 모르고...”“그만 해!”소정인은 진원에게 눈짓을 하고는 소연에게 말했다. “언니 데려고 가서 옷 좀 갈아입혀. 옷이 다 더러워졌네.”“언니, 이리 와!”소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희는 어깨의 꽃잎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2층 침실로 들어가자 소연이 사과했다. “언니,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이 시간에 돌아올 줄 몰랐어. 나 때문에 언니가 다쳤네.”“너 때문이 아니야!”소희의 순수한 얼굴에는 한 줄기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연은 옷방에 가서 흰색 티셔츠를 가져와 소파에 놓았다. “언니, 이건 새거야, 한 번도 안 입었어. 옷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기다릴게.”“응.”소연이 문을 닫자 소희는 소파 위의 옷을 보며 안색이 흐려졌다. 한쪽에서는 머리를 잘라달라
임구택은 고개도 들지 않고 손에든 서류를 보고 있었다.임유림은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 “소희야, 과외하러 온 거야?”그녀는 소희의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곳이 부자동네여서 당연히 과외 하려 온 줄 알았다.소희는 웃어 보였다.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그녀는 임유림이 임구택 형의 딸, 즉 그의 조카라는 걸 어떻게 잊었단 말인가?거의 3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최근에만 일주일에 3번을 만났다. 그들을 주선해 준 중매쟁이가 드디어 깨어난 건가요?임유림은 돌아보며 소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분은 내 둘째 삼촌이야!”소희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임구택은 목소리가 익숙한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가 또 있어 눈을 가늘게 떴다.소희는 손에 들고 있는 우산 손잡이를 꽉 쥔 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임유림은 열정적으로 소희와 대화를 나눴다. “주경이가 고석 좋아하는 거 아니야?”소희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답하였다. “그런 것 같아!”소희는 무의식적으로 임구택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며 답했다. “나와 고석은 그냥 친구야, 그가 누구와 함께 있는 나랑 상관없어.임유림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눈치를 보내니 소희의 마음속이 불안해졌다. 그녀가 결혼을 합의 때문에 하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그녀는 결혼한 신분이다.시내로 들어서자 앞쪽에 사고가 나 차가 막혔다. 임유림은 고픈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길 언제 뚫리지, 배고픈데 먼저 밥 먹으러 갈까?”소희는 답혔다. “나 여기서 내릴게 나 학교 가야 해.”“학교는 무슨, 점심인데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임유림은 이미 스스로 결정을 내린 듯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던 임구택은 시계를 보고 명우에게 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세 사람은 프렌치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았다. 임유림은 소희가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와본 적이 없을까 봐 소희에게 물어본 뒤 대신 주문해 주었다.임유림이 음식을 주문하고 화장실에 가자 자리에는 임구택과 소희 둘만 남았다.소
임구택은 의아한 듯 그녀를 한 번 더 보았다.때마침 임유림이 돌아오자 그녀는 소희 옆에 앉아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 만나서 잠시 얘기하다 왔어.”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오고 나서 세 사람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임유림은 소희와 함께 학교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다.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이 출발할 때 성연희 일행을 만났다. 성연희도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나오다가 문 앞에서 마주쳤지만 두 사람은 모르는 척하며 스쳐 지나갔다.두 명의 사장님은 임구택을 알아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밖은 이미 비가 그치고 길도 뚫린 상태였다. 명우가 차를 몰고 세 사람을 태웠다.“소희야, 어디로 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임유림이 물었다.“가는 길이면 강성대 앞에 세워주면 돼.”“가는 길이라 문제없을 거예요.” “우리 삼촌은 말도 참 예쁘게 하네.” 임유림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소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전에 했던 독설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단순하게 믿었을 것이다.학교에서 잠시 떨어진 곳에서 임유림과 소희는 잡담을 나누고 임구택은 옆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오늘 두 명의 부부는 같은 차에 동승했고 소희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차는 학교 입구 앞에서 멈추었고 소희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유림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유림아.”“뭘, 다음에 밀크티 한잔 사줘.” 임유림은 눈매가 날렵하면서 귀여웠다.소희는 웃으며 동의했고 자신의 우산과 가방을 들고 내렸다. “감사합니다, 임 선생님.”임구택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네.”소희는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며 임유림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소희는 버스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기다렸다.차에서 유림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돌아서며 임구택에게 말했다. “삼촌, 저 소희에게 유민이의 가정교사를 맡기고 싶어요.”그녀의 부모님은 자주 집을 비우셨다. 며칠 전에는 런던 경제 세미나에 참석하러 갔고, 이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가셨다. 유민이의 가정교사는 핑계를 대고
“이렇게 C국 본사로 돌아와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처음 뵙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려요.”송미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어 황대헌이 덧붙였다.“송미현 팀장님은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앞으로 회사의 실적과 명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실 분이니,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길 바랄게요.”사람들은 일제히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의가 끝난 뒤, 직원들은 회의실을 떠나면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는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고명기를 지나쳤고, 어떤 이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물론 새로운 팀장인 미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앞다투어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청아는 자리에 돌아가기 전에 명기의 사무실로 먼저 향했다. 명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웃으며 말했다.“위로는 필요 없어요. 난 괜찮으니까. 사실 팀장 자리는 탐나지 않았거든요. 부팀장으로 있는 게 훨씬 편해요.”“설계만 신경 쓰면 되고, 굳이 다른 일들에 신경 쓸 필요 없으니 더 좋죠.”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스승님이 괜찮으시다면 다행이에요.”그녀는 준비해 둔 선물을 꺼내며 말했다.“원래는 승진 축하 선물로 드리려고 준비한 건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가 있었네요. 그래도 스승님께 드릴게요. 스승님께서 평소처럼 마음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어요.”명기는 크게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청아 씨 말이 맞아요. 이런 일이 뭐 대수겠어요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거죠. 고마워요.”그는 청아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가서 할 일 봐요. 난 조금 이따가 새로운 팀장님과 업무를 조율하러 갈 거라서요.”청아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스승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청아가 사무실 문을 열자 마침 미현이 문 앞에 서 있었고, 그녀는 문을 두드리려던 참이었다. 청아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인사했다.“팀장님!”미현은 어딘지 모르게 탐색하는 눈빛을 띠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청아는 자리를 양보하며
다음 날, 장시원은 우청아와 함께 고명기를 위한 선물을 고르고는, 두 사람은 요요를 데리고 요양원으로 향했다.점심시간, 세 사람은 우임승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우임승의 얼굴빛과 기력은 훨씬 나아져 있었고, 특히 요요를 볼 때는 눈이 기쁨으로 반달처럼 휘어졌다.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던 중 우임승이 물었다.“네 새언니,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지?”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런 것 같아요.”청아는 한동안 우씨 집안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깊게 신경 쓰진 않았다.오후에 요양원을 떠난 뒤, 시원은 요요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청아가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다음 날 월요일, 청아는 회사로 출근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동료들이 연달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청아 씨, 좋은 아침이에요!”“청아 씨, 이틀 못 봤더니 더 예뻐졌네요!”“청아 씨, 오늘 점심 내가 쏠게. 꼭 와요!”...청아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한 명씩 답례한 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장씨 그룹 빌딩 설계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후, 청아는 업계에서 이미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청아를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그녀의 명성을 듣고 직접 찾아오는 이들이었다.게다가 스승인 고명기가 청아를 크게 신뢰하며 지지해 준 덕분에, 회사에서도 동료들 사이에서 청아는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자리에 앉자마자, 동료들인 이지현과 몇몇 사람들이 청아 자리로 몰려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청아 씨, 오늘 아침 회의에서 고명기 부팀장님 승진 소식이 발표된다면서요? 축하해요!”청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승진하시는 건 제 스승님인데, 다들 스승님께 축하를 전해야죠.”지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저희 부서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부팀장님께서 제일 아끼는 제자가 청아 씨인 건 다들 알잖아요.”“부팀장님 승진이면 청아 씨도 바로 뒤를 따라 승진할 것 같은데요?”다른 동료가 맞장구를 쳤다.“스승님 인맥이고 뭐고, 청아 씨 실력이면 이번 연말에 고급 디자
장시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우청아, 내가 널 이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청아는 시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발끝을 살짝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췄다.“알아. 한 시간 안에 끝낼게. 당신 먼저 자.”시원은 청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네가 항상 말하던 개인 작업실 열겠다는 계획, 생각은 정리됐어?”청아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아직은 내가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타이밍도 좀 이른 것 같고. 지금은 그냥 스승님 밑에서 배우는 게 훨씬 즐겁고 보람차.”청아의 스승님은 고명기였다.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된 관계였다. 고명기가 일과 디자인에 대해 그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자, 청아가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때 고명기는 웃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명분이 생기는 거죠.”청아는 장난삼아 스승님이라고 불렀고, 그 호칭은 그대로 굳어졌다. 지금은 회사에서도 모두가 두 사람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알고 있었다.“그럼 빨리 끝낼게!”청아는 시원을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그를 안아주고는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었다. 이후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시원은 청아가 연일 이어지는 과중한 업무에 지쳐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주말만큼은 쉬게 하고 싶었지만, 청아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시원은 주방으로 가서 우유를 데운 후 서재로 들어갔다.“이거 마시고 일해. 너무 늦지 않게 자. 난 기다릴 테니까.”시원은 우유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청아의 이마에 입 맞추며 말했다. 청아는 시원의 배려에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문까지 닫는 모습에 마음이 아릿해졌다.청아는 데운 우유를 손에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컴퓨터를 끄기로 결심했다....시원이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친 채 방으로 들어왔다.침대 옆 테이블에서 자료를 집어 들고 읽으려다, 이불 속에서 삐죽 나온 작은 머리 하나를 발견했다.청아가 하얀 얼굴에 장난기 어
간미연의 임신 소식에 방 안은 금세 축하의 물결로 넘쳐났고, 그녀는 단숨에 모두의 사랑을 받는 중심이 되었다. 이 기쁜 소식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미연이 소희, 성연희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장명원이 형인 장시원 곁으로 다가갔다.시원이 물었다.“아직도 너희 둘이 밖에서 따로 살고 있어? 미연인 누가 돌봐?”장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가 미연이 임신했다고 하니까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시긴 했어요.”“그런데 미연이 이달 말에 대회가 있어서 끝날 때까진 집에서 따로 지내기로 했고요. 그동안은 내가 미연일 돌볼 거예요.”시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대회? 임신했는데도?”명원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미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나도 말리긴 했죠. 근데 미연이 화날까 봐 강하게 말은 못 하겠더라고. 그냥 잘 챙겨주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아요.”그는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사실 아침마다 속이 안 좋아서 토하니까 보는 내가 더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살이 찐다는데, 미연인 오히려 더 말랐거든요.”시원이 물었다.“입덧인가 보네?”“그렇겠죠. 병원에도 가봤는데 의사 말로는 정상적인 증상이래요. 그냥 견딜 수밖에 없다더라고요.”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더 신경 써서 잘 챙겨줘야겠네.”명원은 결연하게 대답했다.“그럴 거예요!”...이날 모임은 시언과 아심의 결혼 소식을 시작으로, 장명원과 간미연의 임신 소식으로 마무리되며 새벽 전까지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이윽고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너무 늦은 시간이라, 시언과 아심은 가까운 아심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심이 시언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꼭 작은 고양이처럼 애정을 구하는 모습이었다.시언은 아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몸이 안 좋아?”그는 오늘 밤 아심이 술을 꽤 많이 마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반쯤 취
“필요 없어!”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애옹이의 생사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임유진은 그런 말에 전혀 기가 죽지 않고,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장님도 곧 좋아하게 될 거예요!”“절대 좋아하지 않아.”“꼭 좋아하게 될걸요!”서인은 유진과 이런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유진은 자신이 이긴 것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밝게 웃었다.두 사람이 케이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모두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창 떠들며 강시언과 강아심에게 건배를 요구했다. 두 사람도 대범하게 술잔을 들고 기꺼이 함께 마셨다.이어서 장명원이 긴 줄에 매달린 체리를 꺼내며 말했다.“이번에는 두 분이 동시에 한입에 체리를 물어야 해요!”모두가 흥겹게 웃으며 분위기가 더 뜨거워졌다. 서인이 들어오자 장명원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이 줄 좀 잡아 줘요!”과거 싸운 적이 있었지만, 그 일 이후로 둘은 의외로 친해졌고, 지금은 조금 더 가까워진 사이였다. 시언은 소파에 앉아 이 상황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조백림이 웃으며 말했다.“명원이 서인 사장님한테 줄을 맡기면, 이거 체리를 직접 시언 형님 입으로 보내겠다는 소리 아니야?”명원도 농담을 던졌다.“이게 바로 서인 형님이 공개적으로 사적인 감정을 풀 기회죠!”모두가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서인을 바라보며 기대했다. 서인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가 잘하는 건 조준이야. 조심하지 않으면 진짜로 시언 형님 입으로 보내줄 수도 있어.”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 후에는 노래방 기계가 켜졌고, 다들 함께 노래를 부르며 카드 게임도 하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파티는 밤 11시가 되어도 끝날 줄 몰랐다.“다들 조용히 좀 해봐요!”갑자기 명원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자. 순식간에 방 안은 조용해졌고,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명원은 옆에 있는 간미연을 끌어안으며 자랑스럽게 외쳤다.“저 곧
임유진은 말했다.“우리 회사 맞은편에 바로 애완동물 병원이 있어요. 이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 좀 받아주세요. 저는 위로 올라가서 자료를 찾고 금방 병원으로 갈게요!”서인은 그녀가 안고 있는 상자를 한 번 쓱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이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거야?”유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버릴 순 없잖아요!”서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서인이 그렇게 간단히 수락하자, 유진은 비로소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30분 후, 서인의 차는 임유진이 근무하는 사무실 건물 앞에 도착했다. 유진은 상자를 서인에게 건네며 맞은편 병원을 가리켰다.“저기 보여요? 저곳이에요. 평소에도 회사 사람들 반려동물을 맡아주곤 하거든요. 먼저 가 계세요. 저는 자료를 보내고 바로 병원으로 갈게요.”서인은 무심한 듯 물었다.“오늘 주말인데 회사에 사람 있어?”유진은 잠시 멈칫했지만, 금방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왜요, 저 걱정되세요?”서인은 눈빛을 살짝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자를 들고 길을 건넜다. 유진은 입가에 미소를 마금으며 그를 향해 크게 말했다.“고양이 조심히 다뤄요! 작은 아이라서 놀랄 수도 있다고요!”서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순식간에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진도 미소를 머금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사무실에 도착한 임유진은 컴퓨터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 출장 중인 동료에게 보냈다. 이후 동료와 몇 가지 세부 사항을 통화로 논의하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시간을 확인한 유진은 서둘러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 건물 밖에 도착했을 때, 마침 서인이 병원에서 나와 유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유진은 서인을 보자마자 물었다.“고양이는요?”서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병원에 맡겨뒀어. 아프긴 한데 심각한 상태는 아니야. 치료가 필요해서 일주일 정도는 거기 있어야 해.”유진은 다시 물었다.“무슨 병인데요?
파란 치마를 입은 여자는 어려 보였고, 돌아서며 변명했다.“나도 속았어요. 돈을 많이 주고 샀는데, 알고 보니 병든 고양이를 팔았더라고요!”유진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그래서 그냥 버린다고요?”파란 치마를 입은 여자는 눈치를 보다가 오히려 화를 내며 말했다.“내가 돈 주고 산 건데, 내가 싫으면 버릴 수도 있죠! 당신이 뭔 상관이에요? 그렇게 착한 척하려면 당신이 데려다 키우든가. 아니면 그냥 신경 끄세요!”그러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유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여자를 쫓아가려 했지만, 서인이 그녀를 붙잡았다.“왜 그래?”유진은 땅에 놓인 종이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키우기 싫다고 그냥 버리다니요! 이건 생명이잖아요. 이런 사람들, 사랑이랍시고 하는 건 전부 가식이에요!”서인은 냉랭한 시선으로 바닥의 종이 상자를 보았다. 안에는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고양이는 아파 보였고, 힘없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고작 고양이 한 마리잖아. 키울 능력이 없으면 버릴 수도 있는 거지.”“네가 그 사람한테 절약해서 고양이를 먹여 살리라고 강요할 거야? 아니면 돈을 빌려서라도 책임지라고 할 거야?”유진은 서인의 말에 바로 반박했다.“고작 고양이 한 마리? 키우기로 했으면 책임을 져야죠!”서인은 냉정하게 되물었다.“책임을 질 돈이 없으면? 모두 너처럼 돈 걱정 없는 집에서 태어난 게 아니야. 고양이 한 마리가 더 중요해, 아니면 자기 생활이 더 중요해?”유진은 그의 말을 듣고 멍해졌다. 유진의 눈에는 상처받은 듯한 감정이 스쳤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잠시 후, 유진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여 종이 상자를 들어 올린 뒤 뒤돌아섰다. 서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유진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유진은 서인의 차를 지나쳐 계속 앞으로 걸었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빨라졌다.서인은 유진의 팔을 붙잡았다.“어디 가려고? 차에 타.”유진은 눈물이 맺힌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일이 커질까 봐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맞은 남자의 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이 술기운을 빌려 서인에게 덤벼들었다.“내 뒤에 서서 움직이지 마.”서인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며 임유진을 자신의 뒤로 잡아당겼다. 넓은 등이 그녀 앞을 완전히 가렸다. 이어서 서인은 다리를 뻗어 단번에 한 명을 쓰러뜨렸다.유진은 서인의 넓은 등에 완전히 가려져, 앞에서 나는 비명 소리와 고함만 들을 수 있었다. 호기심에 고개를 살짝 내밀어 상황을 보려 할 때마다 서인이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눌러 고개를 돌리게 했다.이에 유진은 속으로 생각했다.‘아마 나를 겁주고 싶지 않아서, 혹은 자신의 이런 무서운 모습을 내가 보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걸 거야.’...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고,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안의 상황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바닥에는 네 명의 남자가 쓰러져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그 가운데 서 있는 서인은 고요한 눈빛으로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한 손으로는 유진을 잡아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서인의 무심하고 냉랭한 모습은 한층 더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케이슬을 떠나 서인의 차에 올라탄 유진은, 이제야 안심한 듯 눈을 반짝이며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진짜 멋져요!”서인은 그녀를 옆눈으로 흘기며 말했다.“싸움 잘하면 멋있는 거야? 그럼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다 네가 존경해야 할 대상이겠네.”유진은 서인의 말을 듣고 얼굴이 뜨거워졌고, 입술을 깨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서인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았다. 자신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라는 것을 꼬집으며, 단순히 싸움 잘하는 남자에게 끌리는 감정은 어리석다고 비꼰 것이다.유진은 속으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그
임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시선은 시언의 모습에 고정되었고,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소희도 서인을 보고 유진의 두 눈이 멍하니 빛나는 모습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났다.서인은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강시언과 임구택 등에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몇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유진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연희는 아심을 향해 눈짓하며 말했다.“아심아, 이제 역할을 좀 발휘해야지!”그 말에 유진은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아니예요! 서인 사장님 마음은 제가 알아요. 그냥 제가 천천히 해볼게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요.”유진은 씩 웃으며 답했다.“그럼요! 가족인데 제가 뭐 눈치 보겠어요?”모임이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 유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고 돌아온 아심은 가방을 찾으며 말했다.[소희야, 회사 동료가 출장 중인데 급하게 자료가 필요하대.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라 회사에 가야 해.]소희는 놀라며 물었다.“이 시간에 그렇게 급한 거야? 그럼 내가 회사까지 데려다줄게.”오늘 주말이라 소희와 임구택은 종일 본가에 머물다가 저녁 모임에 왔다. 자연히 유진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연희는 소희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이런 건 딱 누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소희는 순간 눈빛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인에게 다가갔다. 서인은 시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결혼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시언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뭘 고민해.”서인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형은 형이니까 뭐든 맞는 말이지.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축하해요!”시언은 웃으며 물었다.“너는 어때? 마침 소희와 구택도 있으니, 너도 누군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보는 건 어때?”서인은 잔에 술을 따르며 고개를 저었다.“생각해 본 적 없어요.”시언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나도 결혼했는데 너는 아직도 생각이 없는 거야?”서인은 가볍게 술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