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미연의 임신 소식에 방 안은 금세 축하의 물결로 넘쳐났고, 그녀는 단숨에 모두의 사랑을 받는 중심이 되었다. 이 기쁜 소식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미연이 소희, 성연희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장명원이 형인 장시원 곁으로 다가갔다.시원이 물었다.“아직도 너희 둘이 밖에서 따로 살고 있어? 미연인 누가 돌봐?”장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엄마가 미연이 임신했다고 하니까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시긴 했어요.”“그런데 미연이 이달 말에 대회가 있어서 끝날 때까진 집에서 따로 지내기로 했고요. 그동안은 내가 미연일 돌볼 거예요.”시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대회? 임신했는데도?”명원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미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나도 말리긴 했죠. 근데 미연이 화날까 봐 강하게 말은 못 하겠더라고. 그냥 잘 챙겨주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아요.”그는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사실 아침마다 속이 안 좋아서 토하니까 보는 내가 더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살이 찐다는데, 미연인 오히려 더 말랐거든요.”시원이 물었다.“입덧인가 보네?”“그렇겠죠. 병원에도 가봤는데 의사 말로는 정상적인 증상이래요. 그냥 견딜 수밖에 없다더라고요.”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더 신경 써서 잘 챙겨줘야겠네.”명원은 결연하게 대답했다.“그럴 거예요!”...이날 모임은 시언과 아심의 결혼 소식을 시작으로, 장명원과 간미연의 임신 소식으로 마무리되며 새벽 전까지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이윽고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너무 늦은 시간이라, 시언과 아심은 가까운 아심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아심이 시언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꼭 작은 고양이처럼 애정을 구하는 모습이었다.시언은 아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몸이 안 좋아?”그는 오늘 밤 아심이 술을 꽤 많이 마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반쯤 취
장시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우청아, 내가 널 이렇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청아는 시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발끝을 살짝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췄다.“알아. 한 시간 안에 끝낼게. 당신 먼저 자.”시원은 청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네가 항상 말하던 개인 작업실 열겠다는 계획, 생각은 정리됐어?”청아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아직은 내가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타이밍도 좀 이른 것 같고. 지금은 그냥 스승님 밑에서 배우는 게 훨씬 즐겁고 보람차.”청아의 스승님은 고명기였다.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된 관계였다. 고명기가 일과 디자인에 대해 그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자, 청아가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때 고명기는 웃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명분이 생기는 거죠.”청아는 장난삼아 스승님이라고 불렀고, 그 호칭은 그대로 굳어졌다. 지금은 회사에서도 모두가 두 사람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알고 있었다.“그럼 빨리 끝낼게!”청아는 시원을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그를 안아주고는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었다. 이후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시원은 청아가 연일 이어지는 과중한 업무에 지쳐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주말만큼은 쉬게 하고 싶었지만, 청아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시원은 주방으로 가서 우유를 데운 후 서재로 들어갔다.“이거 마시고 일해. 너무 늦지 않게 자. 난 기다릴 테니까.”시원은 우유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청아의 이마에 입 맞추며 말했다. 청아는 시원의 배려에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조심스레 문까지 닫는 모습에 마음이 아릿해졌다.청아는 데운 우유를 손에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컴퓨터를 끄기로 결심했다....시원이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친 채 방으로 들어왔다.침대 옆 테이블에서 자료를 집어 들고 읽으려다, 이불 속에서 삐죽 나온 작은 머리 하나를 발견했다.청아가 하얀 얼굴에 장난기 어
다음 날, 장시원은 우청아와 함께 고명기를 위한 선물을 고르고는, 두 사람은 요요를 데리고 요양원으로 향했다.점심시간, 세 사람은 우임승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우임승의 얼굴빛과 기력은 훨씬 나아져 있었고, 특히 요요를 볼 때는 눈이 기쁨으로 반달처럼 휘어졌다.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던 중 우임승이 물었다.“네 새언니,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지?”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런 것 같아요.”청아는 한동안 우씨 집안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깊게 신경 쓰진 않았다.오후에 요양원을 떠난 뒤, 시원은 요요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청아가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다음 날 월요일, 청아는 회사로 출근했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동료들이 연달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청아 씨, 좋은 아침이에요!”“청아 씨, 이틀 못 봤더니 더 예뻐졌네요!”“청아 씨, 오늘 점심 내가 쏠게. 꼭 와요!”...청아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한 명씩 답례한 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장씨 그룹 빌딩 설계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후, 청아는 업계에서 이미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청아를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그녀의 명성을 듣고 직접 찾아오는 이들이었다.게다가 스승인 고명기가 청아를 크게 신뢰하며 지지해 준 덕분에, 회사에서도 동료들 사이에서 청아는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자리에 앉자마자, 동료들인 이지현과 몇몇 사람들이 청아 자리로 몰려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청아 씨, 오늘 아침 회의에서 고명기 부팀장님 승진 소식이 발표된다면서요? 축하해요!”청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승진하시는 건 제 스승님인데, 다들 스승님께 축하를 전해야죠.”지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저희 부서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부팀장님께서 제일 아끼는 제자가 청아 씨인 건 다들 알잖아요.”“부팀장님 승진이면 청아 씨도 바로 뒤를 따라 승진할 것 같은데요?”다른 동료가 맞장구를 쳤다.“스승님 인맥이고 뭐고, 청아 씨 실력이면 이번 연말에 고급 디자
“이렇게 C국 본사로 돌아와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처음 뵙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려요.”송미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어 황대헌이 덧붙였다.“송미현 팀장님은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앞으로 회사의 실적과 명성을 한층 더 끌어올리실 분이니,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길 바랄게요.”사람들은 일제히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의가 끝난 뒤, 직원들은 회의실을 떠나면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떤 이는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고명기를 지나쳤고, 어떤 이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물론 새로운 팀장인 미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앞다투어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청아는 자리에 돌아가기 전에 명기의 사무실로 먼저 향했다. 명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웃으며 말했다.“위로는 필요 없어요. 난 괜찮으니까. 사실 팀장 자리는 탐나지 않았거든요. 부팀장으로 있는 게 훨씬 편해요.”“설계만 신경 쓰면 되고, 굳이 다른 일들에 신경 쓸 필요 없으니 더 좋죠.”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스승님이 괜찮으시다면 다행이에요.”그녀는 준비해 둔 선물을 꺼내며 말했다.“원래는 승진 축하 선물로 드리려고 준비한 건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가 있었네요. 그래도 스승님께 드릴게요. 스승님께서 평소처럼 마음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어요.”명기는 크게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청아 씨 말이 맞아요. 이런 일이 뭐 대수겠어요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거죠. 고마워요.”그는 청아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가서 할 일 봐요. 난 조금 이따가 새로운 팀장님과 업무를 조율하러 갈 거라서요.”청아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스승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청아가 사무실 문을 열자 마침 미현이 문 앞에 서 있었고, 그녀는 문을 두드리려던 참이었다. 청아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인사했다.“팀장님!”미현은 어딘지 모르게 탐색하는 눈빛을 띠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청아는 자리를 양보하며
이지현은 잠시 멍해 있다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히 청아 씨가 더 적합하죠. 저보다 실력이 뛰어나니까요.”송미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현 씨는 회사에 더 오래 있었고, 경력도 많아 더 안정적이고 믿음직해 보이네요. 나는 그런 사람이 좋아요.”그 말에 지현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떠올랐다.“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해요!”미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일에 대해 부팀장님의 의견을 듣고 있어요. 아마도 그분은 청아 씨를 더 신뢰할 가능성이 있겠죠.”지현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지만, 금세 미소를 띠며 말했다.“괜찮아요. 저는 아직 젊고 기회도 많으니 더 노력할게요.”이에 미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도와줄게요.”지현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해요!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미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서 열심히 일하세요. 앞으로 함께 즐겁게 일해 봐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세요.”지현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알겠어요. 앞으로 최선을 다해 팀장님을 따를게요.”미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지현이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미현이 그녀를 불렀다.“지현 씨, 잠깐만요.”지현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고, 미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현 씨, 내가 오기 전에 회사가 고명기 부팀장님을 팀장님으로 승진시키려 했던 건 사실인가요?”그리고 지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런 얘기가 있긴 했어요.”미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그런가 보군요. 근데 제가 갑자기 내려와서 고명기 부팀장님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지현은 당황한 듯 급히 말했다.“다들 팀장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어요. 아무 문제 없고요.”미현은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청아 씨는요? 청아
“좋죠!”성우준을 배웅한 뒤, 고명기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에 송미현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청아 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 내가 미리 알아봤는데, 성우준 대표님 프로젝트는 일정이 굉장히 빠듯하더라고요.”“우리가 시간에서 우위를 점해야 이 협업을 따낼 수 있었어요.”“청아 씨가 하고 있는 일은 잠시 멈추고, 시간을 비워서 성우준 사장님 설계안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줘요. 이지현 씨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게요.”그 말에 명기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내일은 토요일이에요. 사전에 준비도 없었고, 설령 청아 씨가 주말에 쉬지 않고 일한다고 해도, 도면을 하루 만에 완성하는 건 불가능해요.”“게다가 다른 직원들까지 함께 야근하게 한다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요.”그러나 미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그럼 어쩌죠? 이미 제가 성우준 사장님께 약속을 드렸는데요!”그 말에 명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송미현 팀장님, 약속하시기 전에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셨던 건가요?”이에 미현은 차갑게 응수했다.“저도 회사 이익을 위해서 한 거예요. 성우준 사장님 같은 고객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요.”옆에 있던 고급 디자이너인 동영배가 중재하며 말했다.“저는 내일 일정이 없으니까, 청아 씨와 함께 야근해서 데이터 작업을 도와드리죠.”청아는 명기가 자신 때문에 미현과 다투는 걸 원치 않았기에 차분하게 말했다.“회사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죠. 이미 성우준 사장님께 약속을 드렸으니 월요일까지 설계안을 완성해서 드리죠.”미현은 곧장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청아 씨. 청아 씨가 회사에 헌신한 건 제가 잊지 않을게요.”청아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감사드려요, 송미현 팀장님.”회의실을 나선 뒤, 명기는 청아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송미현 팀장, 저건 일부러 그런 거예요.”이에 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요즘 팀장님이 제가 스승님과 어떤 관계인지 파악한 뒤로 일부러 저를
장시원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하루 종일 쌓였던 우청아의 피로를 단숨에 사라지게 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시원은 차를 출발시키며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오늘 밤은 어머니 댁에서 묵자. 내일은 주말이니까, 요요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서 낚시하자.” 지난번에 요요가 제대로 못 놀아서 아쉬웠잖아. 이번에는 실컷 즐기게 해 주자.”요즘 청아는 회사 일로 바쁘게 지냈기에. 시원은 그녀에게 잠시라도 여유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청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그를 바라보았다.“내일은 같이 못 가. 회사에 나가서 일해야 해.”시원의 이마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내일도 출근해야 해? 대체 얼마나 일을 하는 거야? 이렇게 바빠?”청아는 차분히 설명했다.“갑자기 들어온 프로젝트가 있어. 월요일까지 도면을 완성해야 해.”시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청아는 시원의 손을 뒤집어 꼭 잡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청아의 맑은 눈동자가 애틋하게 그를 응시했다.“화났어? 화내지 마. 다음 주에는 큰일이 없을 거야. 그때 다시 바다에 나가자, 응?”시원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화난 거 아니야.”차가 신호 대기 중에 멈추자, 시원은 손을 들어 청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냥 네가 너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그래. 나도 너랑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거야.”청아의 눈이 반짝이며 촉촉해졌다.“알아.”시원의 눈빛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걱정하지 마. 내 와이프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걸 어떻게 안 도와줄 수 있겠어?”시원의 와이프라는 말에 청아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 그녀는 시원의 손을 툭 치며 돌아섰지만, 마음속에는 따뜻함이 가득 찼다. 세상 그 무엇도 그의 지지만큼 청아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것은 없었다.시원은 청아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힘이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깊이 바라봤다.“그
이문이 옆에서 낄낄대며 말했다.“형님, 혹시 고양이 무서워하시는 거 아니에요? 형님 표정이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데요?”다른 사람들도 폭소를 터뜨렸고, 서인은 이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이 고양이, 그냥 집으로 데려가면 될 걸 굳이 여기까지 왜 가져온 거야?”유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여기가 이 고양이의 집이에요! 아직 오빠들을 본 적이 없잖아요!”서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임유진, 여기 동물원인 줄 아는 거야?”예전에도 유진이 길에서 야옹이를 데려오더니, 이번엔 또 애옹이를 들고 왔다. 자신은 이제 동물원장이라도 되는 걸까?유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요. 근데 임유민이 그러잖아요. 소희랑 임신 준비 중이라서 새로 애완동물을 못 키운대요.”“그렇다고 제가 이 고양이를 계속 동물병원에 둘 수도 없고요.”유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기 어린 빛을 띄운 눈길로 서인을 바라봤다.“그리고, 소희의 절친이자 동료로서, 사장님이 소희 언니를 위해서라면 조금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요?”서인은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남의 힘 빌리는 기술까지 배운 거야?”유진은 그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고양이를 안은 채 뒷마당으로 향하며 말했다.“저는 야옹이를 만나게 해주러 가요!”서인이 고개를 돌리자, 이문과 현빈을 비롯한 몇몇 직원들이 그 장면을 보고 몰래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각자 맡은 일이나 하러 가!”그 말에 직원들은 서둘러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려동물 가게 직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3층짜리 나무로 된 고양이 집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모든 도구와 사료, 모래, 장난감을 가져왔다.유진은 직원들에게 고양이 집을 야옹이가 있는 자리 맞은편에 설치하도록 지시했다.3층으로 된 나무 고양이 집은 유진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