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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 화

Author: 토토만
last update Last Updated: 2025-01-13 18:01:07
전영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강수지는 멍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책상 뒤에 앉아 있는 하시원을 바라보며 그가 대답해주길 바랐다.

강수지의 맑고 어리숙한 꽃사슴 같은 눈망울을 보며 하시원은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다. 어젯밤 그녀가 이런 수줍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색함을 달래느라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오해였다니 인사부에 해고 신청을 기각하라고 할게. 전영미 부장, 당신은 이미 회사의 임원이니 앞으로 업무에서 이런 작은 실수를 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해.”

하시원은 ‘작은 실수’라고 말할 때 힘을 주었는데 전영미는 오히려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억울하고 달갑지 않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 대표님, 명심하겠습니다.”

강수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해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후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며 심지어 최악의 타산도 했는데 막판에 반전이 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

흥분한 강수지는 전영미가 떠날 때 그녀를 원망스럽고 증오에 찬 눈빛으로 째려봤다는 것을 몰랐다.

사무실 문이 다시 닫혔고 이젠 강수지와 하시원만 남았다.

강수지는 용기를 내어 하시원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하 대표님, 저는 정말 해고당하지 않는 거예요?”

그녀가 이렇게 공손하게 부르자 하시원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커피 한 잔 타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하고 냉담했다.

강수지는 멍해졌다. 비서실 사람들은 하시원의 입맛이 까다로워 평소에 소정원이나 전영미가 끓여주는 커피만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두 사람만이 하시원이 요구하는 온도와 농도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시원이 갑자기 그녀더러 커피를 끓여오라고 하자 강수지는 그의 입맛에 따라 만들지 못해 욕을 먹을까 봐 긴장했다.

그러나 하시원이 지시했으니 그녀는 거절할 수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탕비실 커피머신 앞에 선 강수지는 하시원과 충동적으로 결혼한 것을 은근히 후회했다.

예전에 출근하면 힘들었지만 퇴근 후에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지금 상사와 ‘협력’ 관계가 되다 보니 앞으로는 구애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한성준을 화나게 하려고 자신의 미래를 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지경에 이르니 그녀에게는 돌이킬 기회조차 없었다.

커피를 다 끓인 후 강수지는 커피잔을 들고 대표님 사무실로 들어갔다.

“커피왔어요...”

그녀가 따뜻한 커피를 책상에 올려놓은 후 손끝이 커피잔에서 떨어질 무렵 건조하고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하시원은 힘이 세서 단번에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이것은 익숙한 자세고 그녀의 몸에는 아직도 어젯밤 화끈하게 보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저 하시원의 다리에 앉았을 뿐인데 강수지의 머릿속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림들이 가득 나타났다.

모두 어젯밤 그녀가 직접 겪은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얼굴이 이렇게 빨개졌어?”

차가운 목소리가 따스한 호흡과 함께 그녀의 귓불에 쏟아지자 짜릿한 느낌이 귓불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강수지는 더듬거리며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왜 이럴까?’

한성준과 사귈 때 그는 그녀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이런 문제로 그녀와 여러 번 싸웠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고 한성준은 심지어 그녀가 성적으로 냉담하다고 의심까지 했다.

그가 백아린과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는 심지어 이런 이유로 그녀를 탓했는데 그녀가 그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백아린과 바람을 피우게 됐고 후에는 서로 사랑에 빠져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강수지는 고개를 숙였다.

하시원이 조금만 더 가까이 와도, 심지어 만지지 않아도 그녀는 야릇한 느낌이 오곤 했다.

‘이런 내가 어떻게 냉담한 여자겠어? 이런 건 굶주린 여자라고 해야겠지?’

강수지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이 방면에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한성준에게 생리적으로 무감각한 것 같았는데 이로써 오래된 의혹이 풀리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해?”

남자가 갑자기 묻자 강수는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전 부장님께서 왜 저에게 사과했어요? 우리 결혼한 일을 말했어요?”

“아니.”

하시원은 그녀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데이터가 틀렸는데 그건 전 부장이 실수로 고친 거지 네가 잘못 기록한 게 아니야.”

“회사의 모든 컴퓨터는 실시간으로 기록이 업뎃되거든. 조사 결과 네가 데이터를 기록할 때는 틀리지 않았고 제출한 최종 문서도 정확했어.”

강수지는 회사에서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았지만 그가 이런 일로 인해 특별히 사람을 보내 조사할 줄 몰랐다.

만약 그녀가 이번에 정말 잘못을 저질렀다면 아마 지금쯤 이직 절차를 밟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강수지는 식은땀이 맺혔다.

‘역시 공정한 남자야. 내가 아무리 아내라고 해도 공정하고 공평한 결단력을 잃지 않았네.’

다행히 자신의 문제가 아니어서 강수지는 위축이 들지 않고 허리를 곧게 펴게 되었다.

어쨌든 3년 가까이 일했는데 아무리 정신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강수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지켜보던 하시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영미가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실수로 데이터를 고쳤는데 너의 실수로 착각했다고 인정했어. 그러나 어쨌든 회사의 임원이니 이번만큼은 기회를 한 번 주기로 했어.”

강수지는 어이가 없었다. 전영미가 이런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한다고? 심지어 정말 실수했다고 해도 전영미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없었다.

강수지는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전영미는 하시원의 후배였고 또 항상 그를 따랐던 유능한 인재였다. 전영미가 중대한 실수를 했더라도 하시원은 특별히 그녀를 위해 은혜를 베풀 수도 있었지만 강수지는 달랐다.

이렇게 생각하자 강수지는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의견을 제출할 자격이 없었고 하진 그룹에서도 그저 말단 직원일 뿐이다.

그녀처럼 수시로 대체될 수 있는 ‘말단 직원’과 전영미와 같은 ‘베테랑’ 직원 가운데 하시원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대답은 확실했다.

강수지의 얼굴이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금세 어두워지자 하시원의 눈빛도 침울해졌다.

그는 강수지의 턱을 꼬집어 그녀의 수그러든 머리를 쳐들었다.

“기분 나빠?”

강수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전 잘못하지 않았고 계속 출근할 수 있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걸요.”

‘됐어, 그만해. 뭘 그렇게 많이 생각해? 나와 대표님의 결혼은 그저 연기일 뿐이야. 혼인 신고했다고 날 포용할 리도 없고 심지어 더 가혹하게 대할 수도 있어. 괘씸한 대표님이야.’

어쨌든 지금 일자리를 지켰고 하진 그룹의 월급이 다른 회사보다 높아 좋았다.

강수지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얼핏 화면에 자신이 정리했던 파일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수지는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아까 말씀하신 것은 혹시 직접 문서를 검사한 거예요?”

하시원이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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