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의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부시혁은 이미 계단 앞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걸음을 멈추며 몸을 돌렸다.왕수란은 그가 갑자기 돌아볼 줄 생각 못했다. 그의 음침한 얼굴을 본 왕수란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시혁아…….""어머니, 제가 전에 그랬었죠. 윤슬을 싫어하신다면 저도 강요하지 않을 거라고. 사람마다 자신이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싫어도 제 앞에서 티 내지 마세요. 불쾌하니까요. 윤슬은 제 여자예요. 전 다른 사람이 제 여자를 함부로 말
그러자 왕수란이 그를 붙잡았다."잠깐만 시혁아. 갑자기 왜 액세서리를 선물하는 거야? 이렇게 비싼 걸 주면 안 좋을 거 같은데."그녀는 그를 걱정하는 표정으로 이 말을 했다.그러자 부시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나쁜 버릇이 또 나왔다.윤슬의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귀가 있는 사람이면 이 액세서리를 윤슬한테 주지 말라는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을 것이다.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왜 윤슬을 이렇게 싫어하는지.6년이나 지났는데 그녀는 여전히 윤슬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몰락한 가문의 딸과 결혼해서 그의 도움은 되기는
부시혁의 걱정하는 얼굴과 자신을 위해 복수해 주겠다는 표정에 윤슬의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조금 자책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미안해요. 제가 예복을 잃어버렸어요.""뭐?"부시혁은 잠시 당황했다."예복을 잃어버렸다고?"'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괴롭혀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지? 몇억짜리 옷을 잃어버려서 속상하고 긴장하고 있었다는 거야?'이렇게 생각하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그에게 있어서 몇억과 몇백 원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 땅에 떨어졌다 해도 그는 허리를 굽혀 줍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시혁 씨, 걱정하지 마요. 헛생각하지도 말고요. 쫓아가긴 했지만 뛰면서 쫓아간 게 아니라 운전했어요. 그러니까 위험하지 않았어요. 언제든지 차를 몰고 도망칠 수 있었어요."하지만 부시혁은 그녀의 말에 위로받지 못했다. 그는 얇은 입술을 한번 꾹 다물었다."운전하면 안전 안 줄 알아? 만약 네가 뒤에서 쫓고 있는 걸 알고 일부로 널 일행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는 거라면? 거리에서 대놓고 강도질하는 사람은 보통 조직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의 영역에 들어서면 네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 같아? 사람이 많아서 네 차를
윤슬은 진지한 남자의 표정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믿어요."부시혁은 다시 그녀를 품에 안았다."믿으면 됐어. 걱정 마. 널 실망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네."윤슬은 다시 고개를 들고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안았다.부시혁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예복 뺏긴 거 신고했어?""네."중요한 얘기가 나오자, 윤슬의 표정이 바로 엄숙해졌다. 그리고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예복이 뺏기자마자 바로 신고했어요. 경찰도 제가 제공한 단서로 추적했는데 잡으면 바로 연락할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벌써 몇 시간이
윤슬은 뜨거워진 얼굴을 가리며 난처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다.부시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의 몸매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그래서 부시혁은 속으로 의기양양하기만 했다."일단 앉아 있어. 내가 주방에 가서 만들게."부시혁은 고개를 들고 윤슬의 머리를 살짝 치며 말했다.그러자 윤슬은 어색한 기분에서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기침을 한번 했다."만들 줄 알아요? 팬케이크.'그녀가 팬케이크 재료를 산 지도 조금 오래되었다.가끔 집에 돌아와서
마찬가지로 부시혁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왜냐면 그도 그녀처럼 상대방을 믿고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성숙했고 두 사람의 감정에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윤슬은 시선을 케이스에서 거두었다. 그리고 눈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얼마 지나지 않아 향기로운 냄새가 주방에서 풍겨왔다.윤슬은 단번에 팬케이크 냄새라는 걸 알아챘다. 그녀가 평소에 먹던 거랑 향기가 거의 비슷했다.보아하니 부시혁의 요리 실력도 참 대단했다. 초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팬케이크를 만드는 데 능숙한 그녀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슨 쪽팔린 일도 아니잖아."부시혁은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잘 보이는 게 부끄럽고 자존심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만약 애인한테 잘 보이고 애인을 기쁘게 하는 게 자존심 없는 거라면 그건 그만큼 사랑하지 않거나 아예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한 사람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건 하나의 재미였다.그래서 그는 윤슬이 이런 행동을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했다.윤슬은 부시혁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당신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제가 무슨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