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후, 커피를 마시고 있던 부시혁은 갑자기 맞은편의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그리고 회의실 쪽을 쳐다보았다. 마침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두루두루 나오기 시작했다.부시혁은 그 사람들을 주시하며 자기가 기다리던 사람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하지만 몇 명이나 나왔는데도 그가 보고 싶은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부시혁은 조금 실망한 눈빛이었다.보아하니 그녀는 마지막에 나올 듯했다.부시혁은 입을 꾹 다물고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혹시라도
즉 지금의 천강은 윤슬의 힘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천강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걸 주호준만 몰랐다. 아마 권력에 눈이 멀어 현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윤슬이 이사장 자리에서 내려와도 천강이 여전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하, 그만 꿈 깨시지.'한 대표가 주호준을 한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돌려 자기보다 한 급 아래인 부장한테 분부했다."들어가서 이사장님한테 말씀드려. 부 대표님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회의 기록을 그만 정리하고 빨리 나와서 부 대표님을 만나라 그래.
부시혁은 무의식적으로 힘을 뺐다."왜 그래?"윤슬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보는 사람 있잖아요."부시혁은 문득 깨달았다.'그런 거였어? 난 또 나랑 스킨십하는 게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네.'부시혁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만졌다. 그리고 시선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던 고위층들을 쳐다보았다."회의가 끝났는데 왜 안 가고 여기 있는 거죠?"이 말을 고위층 귀에 이렇게 들렸다."안 가고 여기서 방해할 거야?"그러자 고위층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그럼 이만 가겠습니
사실이 증명한 건데 부시혁이 윤슬의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은 보통 웃긴 게 아니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처음엔 경악하다가 그리고 입을 꾹 다물며 웃음을 참았다.겁이 없는 사람은 그 두 사람이 멀어지자 몰래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보냈다.그래서 부시혁이 여자 가방을 멨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 더 많아졌고 그를 웃는 사람도 자연스레 많아졌다.순간 천강 그룹은 그 웃긴 사진 때문에 떠들썩했다.이사장인 윤슬은 직원 단톡방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고위층의 단톡방에서 부시혁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이 세상에는 늘 소식을 퍼뜨
"응. 가자."부시혁은 단추를 잠그며 대답했다.윤슬은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걸어갔다.아마 금방 깬 데다가 배가 고파서 그런지 그녀는 힘이 없었다.그래서 몇 걸음 걷는 것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막 넘어 질려했다.그 모습에 부시혁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아직 다 채우지 못한 단추도 고려할 새가 없이 윤슬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자기 품 안으로 힘껏 끌어당겼다.윤슬은 당황한 표정으로 부시혁 품에 기대었다.그녀는 단단히 놀란 모양이었다.부시혁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긴장한 말
부시혁은 어릴 적부터 매우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어떤 일을 해도 제일 높은 기준이었고 그 안엔 식사도 포함되어 있었다.하루의 세끼는 제시간에 먹어야 했고 양까지 정해져 있었다.그래서 30년 동안 그는 늘 비스듬하게 먹었지 배터지게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큰 그릇의 국수를 다 먹고 배가 터질 정도로 부른 느낌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사실 그의 배가 거의 불렀을 때 젓가락을 놓고 그만 먹었어야 했다.하지만 윤슬이 기뻐하며 먹는 모습을 보니 그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와 함께 계속 먹고 싶었다.솔직히 다른
윤슬은 잠시 당황하더니 조금 화가 났다.'이 남자 지금 몰래 욕실에 들어온 거야? 난 또 어떤 변태가 들어온 줄 알았네. 근데 부시혁이었어! 너무 놀라서 숨넘어갈 뻔했잖아!'윤슬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기 허리에 놓인 부시혁의 손을 찰싹 때렸다.부시혁은 무의식적으로 힘을 뺐다.그러자 윤슬은 냉큼 앞으로 걸어가 그와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그의 옷은 이미 샤워기에서 흘러내린 물 때문에 흠뻑 젖었고 머리도 축축하게 얼굴에 붙어있었다.하지만 그의 모습은 전혀
"이거 놔요. 들었어요? 얼른 놔요!'부시혁은 그녀의 매끄러운 등을 안으며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그냥 같이 씻자는 건데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 그리고 내가 씻겨줬었잖아. 쑥스러워할 필요 없어."그녀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빨개졌다."그게 같아요?"그가 씻겨줄 땐 윤슬은 무의식 상태여서 아무것도 몰랐다.자기를 인형으로 생각하고 모른척한다면 어색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정신이 멀쩡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다를 거 없어."부시혁은 낮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