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식뿐만 아니라 그의 눈빛 때문에 윤슬의 마음도 미묘했다.그녀는 이미 악의와 계산으로 가득한 고도식의 눈빛에 익숙했다. 하지만 지금 고도식의 눈빛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 눈빛은 여전히 음침했지만, 그녀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그 감정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고 안절부절못하게 했다.하지만 윤슬은 이런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빈틈없이 감추며 아주 침착하게 고도식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조용히 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녀는 한동안 고도식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가 자주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제발? 채연희가 지금 나한테 부탁한 거야? 아니…….'순간 윤슬의 기분은 너무 복잡해서 말이 안 나왔다.기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원수가 애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부탁했는데 그녀는 기뻐해야 했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왠지 모를 복잡한 기분이었다.윤슬뿐만 아니라 고도식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의 얼굴은 부들부들 떨렸고 화가 담긴 눈빛으로 채연희를 노려보았다."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왜 부탁을 해!"'윤슬 이 계집애가 우리 웃음거리를 보게 하는 거랑 뭐가 달라?'채연희도
하지만 그녀는 지금 너무 짜증이 났고 초조하기만 했다.왜 채연희가 넘어지려는 걸 보고 자신이 긴장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내가 정말 미쳤지.'저번 병원에서 채연희와 우연히 마주친 후부터 그녀는 채연희에 대한 감정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걸 느꼈다.그녀는 통제할 수 없는 이런 감정이 싫었고 조금 두렵기도 했다."괜찮아?"고도식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채연희를 보며 물어보았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그녀는 조금 실망했다.고도식은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음침해진 얼굴로 윤슬을 보며 악독한 말투로 입을 열
"안 그럼 어쩔 건데?"고도식은 음침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우릴 죽이기라도 할 거야?"윤슬은 이마를 찌푸리다가 갑자기 웃었다."죽이진 않을 거예요. 제 손을 더럽히긴 싫거든요.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당신을 죽겐 할 수 있죠."그녀는 갑자기 한 걸음 다가서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당신이 윤연과 이수지 모녀를 시켜서 제 아버지한테 독을 먹인 일, 저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했던 다른 일도 알고 있으니까, 증거만 손에 넣으면 당신이 어떻게 될지 잘 아시죠?"이 말을 듣자, 고도식의
채연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그녀도 자신이 이러는 게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는 윤슬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자꾸만 윤슬이 유정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심지어 가끔 윤슬이 지금의 고유정보다 더 유정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윤슬의 몸에는 유정이랑 비슷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타난 시간, 자신과 비슷한 입맛, 시어머니와 비슷한 생김새, 유정이랑 같은 손목 특점.하지만 지금의 고유정은 하나도 없는 듯했다.그녀가 저번에 그랬듯이 그녀는 고유정에게 잘해 줄 순 있지만 정이 안 갔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기분이 별로 안 좋은 듯했다. 마치 무슨 일을 겪은 것처럼 분위기가 무겁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왜 그래?"부시혁은 윤슬 옆에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윤슬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눈빛이 변하더니 원래 어두웠던 눈동자가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돌아왔어요?"그녀는 남자를 보며 입꼬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부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왔어. 왜 아직도 안 잤어? 여기에 앉아서 뭐 하는 거야? 불은 왜 안 켜고 있어? 무슨 일
그녀는 일부로 화난 척 그를 노려보았다.그러자 부시혁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한번 맞추고 대답했다."알았어. 바보 아니야. 똑똑해.""당연하죠!"윤슬은 자랑스럽다는 듯 턱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다시 사그라지더니 조금 복잡해졌다.부시혁은 그녀의 기분이 많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의기소침해진 그녀를 보고 다시 이마를 찌푸렸다.그는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자신을 쳐다보게 했다."왜 또 이러는 거야?"윤슬은 그의 손을 턱에서 떼어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알았으면 됐어."그제야 만족한 부시혁은 그녀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이 시간까지 안 자고, 배고프지? 내가 뭐 만들어 줄까?"윤슬은 고개를 저었다."살쪄요. 안 먹을래요. 어차피 배도 안 고파요. 그나저나 당신은요. 퇴근하고 왔는데 배고파요?""아니."부시혁도 고개를 저었다.윤슬은 하품을 한번 했다."안 고프면 그만 씻고 자요. 하루 종일 힘들었는데 졸리죠? 다크서클 생긴 거 보세요."그녀는 그의 눈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부시혁은 손을 들고 그 자리를 한번 만지더니 신경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