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비서는 서류와 보온 통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갔다.그녀가 나간 후 윤슬은 의자에 기대어 콧대를 몇 번 누르며 숨을 돌렸다.갑자기 발견한 건데 박 비서의 성격도 많이 달라진 듯했다.전에는 마치 교감처럼 엄숙했고 얼굴에 거의 다른 표정이 없었다. 그래서 약간 무서운 느낌을 주었다.하지만 지금의 박 비서는 달랐다. 성격이 더 이상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러워졌다. 웃을 줄도 알고 심지어 그녀와 농담까지 하곤 했다.예를 들면 방금 자신을 놀린 것처럼.그 외에 박 비서의 옷차림도 예전이랑 달라진 듯했다. 그렇다고 엄청 눈에 띄
아무튼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사람은 이런 결말을 초래한 것도 당연한 거였다.유현의 나이가 벌써 60인데 출소할 때면 벌써 70세였다. 그리고 몸도 망가질 텐데, 장 비서는 그가 이러는 이유를 정말 몰랐다.장 비서는 입을 한번 삐죽거렸다. 그의 두 눈에는 유현에 대한 경멸로 가득했다."참, 대표님의 짐작이 맞았어요. 유현이 더 이상 벗어날 구멍이 없다는 걸 알고 자신의 지분을 진성하한테 팔 생각이에요. 그리고 진성하의 욕심을 불러일으켜 두 번째의 유현으로 만들 생각인 거죠. 그래야 대표님을 상대할 사람이 생길 테
"네.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진 이사장님이 화내실 때 드릴게요."장 비서가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부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서 결정해."장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음을 거두고 이마를 찌푸렸다."대표님, 진 이사장님께서 유현의 지분 인수를 거부하셨지만 유현은 대표님한테 팔 의향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지분을 감옥에 가져가더라도 대표님께 안 줄 거라고 그러던데요?"여기까지 말한 장 비서는 부시혁을 쳐다보았다."대표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안 줄 거라고?"부시혁은 다리를 꼬고 얼굴을 어둠에 감
"그래?"부시혁은 시선을 들고 백미러에 비친 장 비서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얼만데?""자동차 수리비만 해도 5천만 원인데 그 여자가 전혀 망설이지 않고 동의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돈을 보내줬대요."그러자 부시혁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5천만 원을 그냥 줬다고?""네."장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돈이 꽤 많은 모양이야."부시혁은 비웃듯 피식 웃었다.장 비서는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아무래도 전신 성형을 한 사람인데 당연히 그럴만한 재력이 있겠죠."부시혁은 고개를 끄덕
부시혁은 대답하지 않고 프런트를 툭툭 쳤다.프런트에 앉아 있던 직원은 뭘 적고 있어서 사람이 온 걸 발견하지 못했다.그런데 고개를 들자마자 이 회사의 주인을 보게 될 줄 생각 못했다. 그 직원은 깜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부, 부, 부…… 부 대표님."부시혁은 이마를 찌푸렸지만, 그 직원을 난처하게 하진 않았다.직원들한테 있어서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도 잘 알고 있어서 그는 그 직원의 실례를 이해했다.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천강에서 온 사람 없었어요?'부시혁은 손을 거두고 물었다
장 비서는 이미 체념했지만 그래도 천강의 사람이 빨리 오기를 기도했다.1분이라도 일찍 오면 그와 부시혁이 망신을 덜 당할 테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양복을 입고 보온 통을 든 남자가 입구에 들어섰다.그 남자를 보자 장 비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흥분하며 부시혁에게 말했다."대표님, 천강의 사람이 도착했어요. 그 사람이 들고 있는 보온 통, 본 적 있어요. 전에 윤슬 씨가 대표님을 보살필 때 썼던 거예요."부시혁은 마침 시간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장 비서의 말을 듣고 바로 고개를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보
오래 끓여진 국물은 뽀얀 색이었다. 이건 소뼈에 담긴 모든 영양을 다 끓여냈다는 증거였다.이로 보아 이 곰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다.장 비서는 또 참지 못하고 군침을 삼켰다. 그는 그 하얀 국물과 그 위에 떠 있는 파를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하얀색과 초록색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정말 사람을 미치게 했고 한번 맛보고 싶었다."대표님, 저……."장 비서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의자에 앉은 부시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지?"장 비서는 보온 통에 남은 국물을 쳐다보며 두 손을 비볐
부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받았어. 지금 먹고 있어."그는 이렇게 말하며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물소리가 나게 했다."들었어?"윤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들었어요. 맛은 어때요? 일부로 오래 끓인 건데.""맛있어."부시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이마를 찌푸리며 윤슬한테 일렀다."장용도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 보여서 자기도 달라고 하는 거야.""그래요?"윤슬은 경악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그럼 제 솜씨가 괜찮다는 거네요? 장 비서도 먹고 싶어 했으니까요.""내가 안 줬어."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