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혁의 무거운 표정을 본 윤슬은 그가 뭘 생각하는지 대충 짐작 갔다. 그래서 손을 그의 다리에 얹고 가볍게 웃었다."걱정 마세요. 입양 증명서가 있으니까요.""있다고?"부시혁이 경악했다.그러자 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처음엔 없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가 절 입양할 때 입양 수속을 밟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경찰서에 한 번 전화해 봤거든요. 당신도 알다시피 제 부모님의 친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절 입양할 때도 공개하지 않았고요. 그건 친딸이 죽었다는 사실과 절 입
윤슬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담요를 들어 올렸다.이 담요의 겉은 비단으로 만들어졌고 위에는 많은 그림이 수놓아져 있었다.그 자수들은 바늘땀이 밀집되어 있어서 수놓은 효과가 진짜 같았는데, 이건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그렇기에 손으로 수놓은 그림들이었다.이렇게 정교한 자수에 매끄러운 비단까지, 이 담요의 가격은 절대로 낮지 않을 것이다.아기 옷도 마찬가지였다. 촉감이 부드러운 게 아주 좋았다. 너무 오래돼서 그런 건지 조금 누르스름해 보이지만 이 촉감만으로도 이 옷의 가격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아버진 왜 금
부시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특히 고씨 가문의 사람이나 고 씨 노부인의 자수를 알아보는 사람이 보면 안 되었다.안 그럼 그녀의 신분이 더 이상 숨겨지지 못할 테니까.고 씨 노부인의 자수 솜씨는 아주 훌륭했고 자기만의 스타일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노부인의 작품을 구분하기가 아주 쉬웠다.고 씨 노부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그가 알기로는 사모님 열 명 중에서 거의 여섯 명이나 이 자수를 알아볼 것이다.윤슬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진지한 남자를 바라보았
윤슬은 차 안에서 이 장면을 보고 심장이 움찔했다.그리고 가슴을 두드리며 감탄했다."정말 좀비들이 달려드는 것 같네요."운전석에 앉아 있던 장 비서가 그녀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윤슬 씨의 말이 맞아요. 정말 좀비들 같아요.""됐어. 빨리 내려가서 기자들을 막아봐."부시혁은 이마를 찌푸리며 장 비서를 재촉했다."네."장 비서가 대답했다. 그리고 안전벨트를 풀고 운전석의 문을 열고 내렸다.그가 내려가자,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그에게 갔다 대며 여러 문제를 연이어 물었다."장용 비서님, 혼
그의 말은 스킨십을 목적으로 한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 이었다.기자들은 마치 파리처럼 기회가 보이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윤슬도 잘 알고 있기에 부시혁을 의심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손을 들고 남자의 허리를 안았다.이 장면을 본 기자들은 순간 찰칵찰칵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윤슬과 부시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안으며 앞으로 걸어갔다.장 비서는 그들 뒤에서 두 팔을 벌리고 접근하려는 기자들을 막았다.기자들은 몰려들기만 하면 이성을 이른 것과 다름없기에 만약 가까이 가서 두 사람을 다치게 하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부 대표 옆에 있는 비서가 얼마 큰 권력이 있는지 알고 있다.그들 사장도 장 비서가 부시혁의 사람인 걸 봐서 그의 말을 듣고 그들을 해고할지도 몰랐다.그렇기에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 비서 주위를 둘러쌌던 기자들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장 비서는 양복 위의 먼지를 털어내며 흐뭇하게 웃었다."쳇, 감히 나한테 덤벼?"그리고 의기양양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기의 넥타이를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나서야 천강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한편, 회의실 안.윤연이
"걱정하지 마세요, 호준 삼촌.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더구나 삼촌의 도움도 필요할 텐데요."윤슬이 찻잔을 들고 술을 권하는 동작을 했다.그러자 주호준도 자기의 찻잔을 들었다.두 사람은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얘기했다.주호준의 사람은 별 느낌 없었고 오히려 기뻐했다.하지만 윤슬을 따르는 사람은 이마를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냐면 그들도 윤슬이 오늘 기자회견에서 이겨낼 거란 자신이 없으니까.순간 회의실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나뉘었다.기뻐하는 사람들은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기뻐서 어쩔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참가하러 온 게 아니라 마치 공원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걸음걸이가 여유로웠다.물론 이게 중점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둘의 행동이 보는 사람이 다 감탄 정도로 친밀했다는 거였다.그 두 사람을 보면서 윤연은 희망의 불씨가 점점 커지는 걸 느꼈지만 반면 주호준은 더욱더 불안해졌다.부시혁이 윤슬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그녀를 무척 사랑하는 모양이었다.오늘의 기자회견이 실패해서 그가 이 일에 휘말리게 되더라도 윤슬을 포기할 가능성이 작을 것 같았다.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주호준에게 불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당연히 그런 일에 관한 거지!‘이 구제불능과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도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게 아니었는데 부시혁은 이것마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있었다.‘골치 아파.처음에 부시혁이 보던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충분히 이상한데.거기서 배운 게 아니면 이 구제불능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윤슬이 말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는 뜻이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불경스럽다니.’“그만 좀 해요, 부
부시혁의 이런 눈빛을 볼 때마다 윤슬은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졌다. 그녀는 부시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부씨그룹의 대표 말고 선생님이 되면 틀림없이 학생들에게 엄청 환영받는 선생님이 될 거예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바로 당신처럼 학생들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추는 선생님이라구요.”부시혁은 윤슬의 머리를 만지며 가볍게 웃었다.“어쩌지? 나는 선생님 되는 건 별로야. 그냥 너만 가르치는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야.”이 말이 너무 웃겨서 윤슬은 자기도
그렇기 때문에 윤슬은 반드시 공부하고 더 공부해서 더욱 강하고 더욱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책임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강그룹 경영에 대한 책임이며 천강그룹의 수백 수천의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다.그렇지 않으면 천강그룹이 무너지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생존해야 하는 이런 종업원들 또한 앞길이 막막해진다.그래서 윤슬은 부시혁이 자신을 가르치겠다는 제의에 매우 감격하고 기뻐하며 기대했다.필경 부시혁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자신을 가르치게 되면 자신은 꿈에서도 좋아서 웃음이 나와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 점은 틀림없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그런 학생들과 윤슬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부시혁에게 윤슬만큼은 예외였다.윤슬을 대할 때 부시혁 역시 평소와는 달리 늘 부드러운 남자였다.비록 이 순간 잠시 윤슬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부시혁은 여전히 온화하고 꽤 인내심을 발휘했다.부시혁에게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윤슬은 배운 내용을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부시혁이 자신을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부시혁이 그다지 훌륭한 인내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부시혁이 말했다.윤슬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에게 알려준다는 걸 깜빡 잊었네요. 고택에 가져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부시혁이 윤슬이 이마를 살며시 눌렀다. 부시혁에게 윤슬의 이 말은 무엇이든 잊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 듯했다. “대체 얼마나 큰 뼈길래, 이모께서 직접 친정이 있는 곳까지 가서 구해오신 거야? 우리도 사고 싶다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부시혁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돌리며 호기심을 표시했다.‘혹시 야생동물의 뼈는 아
윤슬이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부시혁을 향해 말했다. 부시혁은 자신이 윤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윤슬이 분명 본인의 마음대로 행동할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윤슬을 확실히 그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지라도, 윤슬은 부시혁으로 하여금 어떠한 이득도 취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하면 되잖아!”부시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윤슬의 사무용 의자에 앉았다. “이제 됐지?”“됐어요.”윤슬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하지만, 이처럼 윤슬의 허락을 구한다는 것은 부시혁이 윤슬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천강그룹에 대한 존중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부시혁은 회사의 규묘가 작다는 이유로 천강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시혁은 윤슬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윤슬의 말을 듣고는 낮은 웃음을 지었다.“왜 천강그룹이 나한테 가치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당신이 여기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천강그룹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곳이지.” 갑작스러운 부시혁 말에 얼굴이 붉어진 윤슬이 부시
윤슬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를 알아차린 부시혁이 윤슬을 놀렸다. “왜? 난 여기 올라오면 안 돼?”“아니에요.” 윤슬은 다가가서 부시혁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천강그룹에 오면 직원들이 나보다 당신을 더 친절하게 대하는 거 알아요? 오죽하면 내가 당신이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도, 직원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예요. 물론 당신이 몰래 올라오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내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 소용 없지.”부시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전화 너머에서, 윤슬이가 박희서를 언급하자 육재원의 얼굴은 삽시에 굳어졌다.윤슬이 말한 자신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 이야기가 바로 박희서에 관한 것이었다니. 육재원은 조금 듣고 싶지 않았다.육재원이 침묵하자, 윤슬은 자신이 박희서를 언급한 것이 육재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재원아, 박 비서가 해외로 연수를 간다는 걸 알고 있었어?”물론 윤슬은 이렇게 물었지만, 사실 그녀는 육재원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재원의 예상외 대답은 윤슬을 놀라게 했다.“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