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은침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상대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뒤이어 차갑고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지서현, 지금 뭐 하는 거야?”탁.손에서 놓친 은침이 바닥에 떨어졌다.지서현은 순간 얼어붙었다.눈앞의 사람은 하승민이었다.“왜 여기에 있는 거야?”하승민은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며 서늘한 눈빛으로 방 안을 한 바퀴 훑었다.그리고 곧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이호성에게 시선이 닿았다.“저 사람은 누구지?”사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아까부터 아래층에서 지서현을 지켜보고 있었으
이호성 밑에 깔린 여자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소리쳤다.“놔요! 사람 살려!”이윤희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딱 생각했던 그림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소리쳤다.“지서현! 역시 네가 여기서 남자랑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구나! 정말 실망이야!”뒤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게 정말 시골에서 온 지서현이라고? 너무 뻔뻔한 거 아냐?”지동욱과 강미화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지서현을 하찮게 여겼기에 마치 벌레 보듯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니, 지서현은 우리 지씨 가문의 수치입니다. 빨리 내쫓아
지유나가 앞으로 나서서 해명하려 했다.“그런 게 아니에요...”“꺼져!”강미화가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쿵!벽에 부딪히는 바람에 지유나의 이마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다.이윤희는 곧장 앞으로 나와 강미화의 팔을 붙잡았다.“감히 우리 유나를 때려?”강미화는 즉시 반격했다.그녀는 이윤희의 긴 머리채를 거칠게 휘어잡더니 날카로운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려 했다.“형님, 뭐라고 잘난 척하는 거예요? 형님이 누구인지 잊었어요? 자기 시숙한테 시집간 더러운 년 주제에!”지씨 가문이 점점 번성하면서 이윤희의 과거는 묻혀버렸었다.그
“하 대표님, 약에 당하셨어요!”하승민은 차갑고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는 이미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있었다.커튼 뒤에서 함께 숨어 있던 두 사람. 그녀의 가녀린 몸이 자신의 몸에 닿아 있었고, 부드러운 손바닥이 그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러자 마치 불이 붙은 듯 온몸이 달아올랐다.약에 취한 채로 하승민은 지서현의 가느다란 팔목을 붙잡았다.그리고 그대로 지서현을 데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밖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지해준네 집안과 지동욱네 집안이 한바탕 치고받으며 싸우고 있었고 몰려든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그 혼란
지서현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다.그러나 하승민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얇은 입술을 살짝 비틀어 흥미로운 기색이 역력한 미소를 지었다.“도와준다고?”‘약에 취해있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야.’“...”지서현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져 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다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다고요!”“응?”그녀가 허둥대며 설명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하승민은 가늘고 긴 눈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럼 그 다른 방법이란 게 뭔데?”“...”‘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성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아직 밖에서 손님들을 배웅하고 있던 지해준은 억지로 웃으며 안 대표와 구 대표를 차까지 모시고 갔다.“안 대표님, 구 대표님, 저희 협력 관계는...”안 대표는 지해준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비웃듯 말했다.“지 대표님, 그보다 먼저 얼굴부터 치료하는 게 좋겠어요.”그렇게 몇몇 대표들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지해준은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윤희 앞에 다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이윤희, 이게 당신이 벌인 짓이야? 나 완전히 망신당했잖아!”하지만 정작 가장
그때 욕실 문이 열리더니 짙은 수증기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하승민이 샤워를 마친 것이다.그는 검은색 실크 잠옷을 걸치고 있었고 나오자마자 유정우가 지서현에게 놀러 가자고 약속을 잡으려는 걸 들었다.지서현은 고개를 돌려 하승민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래서 결국, 지서현은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유정우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게요.”전화를 끊고 지서현은 가방을 집더니 떠나려는 듯 몸을 일으키며 하승민에게 말했다.“하 대표님, 전
지유나가 왔다는 말에 하승민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그리고 방금 전까지 흐려졌던 이성 또한 단숨에 되돌아왔다.그는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허탈하게 자신을 되돌아보았다.‘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하승민은 지서현을 벽에 밀어붙이고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그 순간, 지서현을 옥죄고 있던 그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이제야 하승민은 그녀를 완전히 놓아주었다.“여기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그는 단호하게 말한 후, 곧바로 방을 나섰다.지서현을 홀로 두고 지유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방금 전
말하면서 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내 남자 친구는 하 대표님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아요.”그녀가 이 말을 할 때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정말 대단한 남자 친구라도 있는 것 같았다. 순간 하승민의 미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하하하.지씨 가문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박경애가 말했다.“서현아, 허풍 떨지 마. 너한테 그런 남자 친구가 있을 리가 있겠냐.”이윤희도 맞장구쳤다.“서현아, 웃기지 마.”지서현은 가느다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휴대폰에 저장된 셋째 오빠 소문익이 보낸 문자를 떠올렸던 것이다.[서현아
박경애와 둘째, 셋째네 식구들은 일찌감치 최고 학술 포럼 초대장을 손에 넣었다. 모두 천재 소녀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그들은 천재 소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렇게 뛰어난 걸까?지유나는 하승민의 팔에 팔짱을 낀 채 천재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질투심에 속이 타들어 갔다.지금 해성의 모든 관심은 천재 소녀에게 쏠려 있었다. 모두가 하승민과 천재 소녀의 첫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고 지유나 역시 모레 직접 그 모습을 확인하려고 했다.지서현은 한쪽에 서서 맑고 투명한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묘
지서현은 드디어 박경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늘 밤 그녀에게 맞선 자리를 마련해 시골로 시집보내려는 것이었다.이우진은 지서현을 쳐다보았다. 지서현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는지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지서현 씨, 안녕하세요.”바로 그때, 지유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 무슨 얘기 하세요?”지서현이 눈을 들어보니 지유나였다. 지유나는 혼자 온 게 아니라 하승민의 팔짱을 끼고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하승민도 왔다.박경애가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 대표, 유나야. 마침 잘 왔네. 서현이가 지금 맞선을
이혼 후, 지서현은 하승민 앞에서 새끼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작은 발톱을 내밀어 그의 심장을 살짝살짝 긁어댔다.아프진 않지만 은근히 거슬렸다.지서현은 그의 품에 부딪히자 곧바로 그에게서 풍기는 깨끗하고 청량한 남자의 향기에 휩싸였다. 그녀는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소리쳤다.“놔요!”하승민은 손을 뻗어 지서현을 침대로 밀쳤다. 지서현의 가녀린 등은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닿았고 막 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그 남자의 향기에 휩싸였다. 하승민은 한쪽 무릎을 침대에 꿇고 양손을 그녀의 옆에 짚은 채, 장난스럽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를
하지만 그녀는 지서현이 아니었다.지유나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오늘 지서현은 자신의 계략을 역이용해서 하승민을 불러 자신에게 치명타를 날렸다.예전에는 지서현을 우습게 봤는데 이젠 지서현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게 됐다.지서현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다. 지유나는 휴대폰을 꺼내 할머니 박경애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서현이 기숙사로 돌아오니 엄수아도 돌아와 있었다.지서현이 물었다.“수아야, 진세윤 따라잡았어?”엄수아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못 잡았어. 진세윤은 나한테 눈길도 안 주더라.”지서현은 웃었다.“진세윤,
지유나는 고개를 들었다. 잘생기고 고귀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승민이었다.그녀는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하승민이 왜 여기에?’“승... 승민 오빠, 어떻게 왔어?”하승민은 차가운 표정으로 지유나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서현이 미소 지었다.“유나야. 내가 하 대표님께 전화했어.”뭐라고?지유나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지서현이 미리 하승민에게 전화해서 불러올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지서현은 지유나 앞으로 다가갔다. 맑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그녀는 비아냥거리듯 입술을 말아 올렸다.“오늘 네가 하은
진세윤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돌아서 가버렸다.조군익은 어이가 없었다. 진세윤이 감히 자신을 무시하다니.엄수아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군익아, 네가 뭔데 농구 시합을 하자 마라 해? 진세윤,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잠깐만!”엄수아는 다시 진세윤에게 달려갔다.조군익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농구공을 집어 들어 진세윤의 등을 향해 던졌다.“진세윤, 조심해!”엄수아가 소리쳤다. 농구공은 빠르게 진세윤을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라면 등에 맞을 것 같았다. 그때 진세윤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날아오는 공을 잡았다. 진세윤
손목을 잡힌 엄수아는 어리둥절했다.“무슨 뜻이냐니, 무슨 말이야?”조군익은 진세윤을 보고 다시 엄수아를 쳐다보았다.“너, 얘랑 무슨 사이야?”엄수아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조군익의 손을 탁 쳐냈다.“군익아, 우리 이미 파혼했잖아.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네 여자친구는 하은지야!”하은지가 달려왔다. 엄수아가 진세윤을 쫓아가자 놀랍게도 조군익이 따라간 것이다. 그것도 그가 먼저 엄수아를 쫓아서. 조군익이 엄수아를 쫓아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은지는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엄수아는 사실 아주 예뻤다. 명문가에서 애지중지 키워 온 덕분에 고상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점을 지우자 오른쪽 눈 밑에는 작고 예쁜 눈물점까지 있어서 완전 미인이었다.대박.사람들은 놀라 숨을 죽였다. 못생긴 여자애가 순식간에 절세미인으로 변신한 것이다.가장 놀란 사람은 지유나와 하은지였다.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엄수아를 쳐다보았다.‘점이 정말 사라졌다고? 말도 안 돼!’지서현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됐다.”그녀는 작은 거울을 꺼내 엄수아에게 건넸다.“수아야, 다시 한번 네 얼굴을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