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요?”최군형이 손을 폈다. 큰 액수의 돈이었다.강소아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돈을 받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진짜가 아니라 그린 돈이었다. 하지만 진짜와 너무나도 똑같았다.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강소아가 멍하지 최군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정말 내가 위조지폐를 만들 줄 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최군형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지난번 아저씨가 위조지폐를 만들 줄 아냐고 하셨잖아요. 만들 줄은 모르지만 그릴 줄은 알아요. 이건 특별히 소아 씨를 위해 그린 거예요.”“제게 주는 거라고요?”“네, 뒷면도 한 번 봐요.”강소아가 반신반의하며 지폐를 뒤집었다. 발권 은행이 쓰여 있어야 할 자리에 초성 몇 개가 쓰여 있었다.ㄱㅅㅇ.강소아?강소아가 고개를 확 들었다. 최군형의 눈빛은 더는 전처럼 차갑지 않았다. 그 눈 속에 말 못 할 따뜻함이 들어있었다.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뭘 줬으면 좋을지 모르던 참에 이게 생각났어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이런 말을 해본 적 없었기에 말투는 어색하기만 했다.강소아는 환하게 웃고는 그림을 서랍 속에 넣고 작게 말했다.“잘 간직하고 있을게요. 다른 일은 없어요?”“네, 없어요.”최군형이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강소아는 그를 보지 않았지만 공기 속은 온통 그의 향기로 가득했다. 벽에 드리운 두 사람의 그림자는 아주 가까이 붙어있었다.강소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최군형은 자신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느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귀 끝도 화끈거렸다.그는 얼른 핑계를 대고 이곳을 피했다.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질 뻔까지 했다.강소아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그 와중에도 걱정은 되는지 불안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다.바로 이때 최군형도 고개를 들었다.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눈 속엔 서로의 모습뿐이었다.......강소아는 아주 잘 잤다.그녀는
최군형이 깜짝 놀랐다. 강소아가 난처한 듯 말했다.“수업까지 10분 남았어요, 과제는 3교시에 쓸 것 같은데, 전...”최군형이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돌려 어딘가로 달려갔다. 자리에 남겨진 강소아만이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교실에 들어서니 수업까지 5분 남았다. 강소아는 주먹밥을 한입 물었다. 분명 간을 했는데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3교시 전, 그녀는 수업을 들을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교수님의 강의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과제 생각뿐이었다.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교실 문가에서 하수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소아야!”“응? 왜?”“잠깐 들어가지 마.”하수영이 신비한 얼굴로 말했다. 강소아는 교실을 힐끗 쳐다보았다. 구자영이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너희 다 모르지? 강소아 결혼했어!”학생들이 구자영의 주위로 모여들었다.“강소아 남편이 누군 줄 알아? 원래 구성 그룹에서 트럭 기사 일을 했어. 하, 어찌나 과묵한지,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구자영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교실 안은 시끄러웠지만 그녀의 말들은 선명하게 강소아의 귀에 가 박혔다.강소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깨가 저도 모르게 부들거렸다.하수영이 교실 안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미친 X... 소아야, 너무 신경쓰지 마. 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소아가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굳이 일을 만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참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곧 수업 시간인데 교실에 들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강소아는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뚝 그쳤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도련님, 아가씨 중에서 강소아는 특별한 존재였다. 유부녀는 더욱 그랬다.그들은 강소아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강소아를 보는 시선에는 호기심과 연민이 어려있었다. 착한 사람들은 그녀를 존중했지만 거리를 두는 건 마찬가지였다. 구자영
“너...”구자영이 하마터면 그녀를 때릴 뻔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착하고 상냥한 재벌 집 아가씨의 이미지를 잘 지켜왔었다. 오늘 정말 강소아를 때린다면,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찍혀 인터넷에 퍼지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날 것이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강소아, 그만 깝죽거려! 그놈과 결혼했다고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아? 이 일은 아직 안 끝났어!”강소아는 구자영을 힐긋 보고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책을 펼쳤다.하수영이 강소아의 옆에 앉아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이 광경은 마침 문가에 있던 최군형이 똑똑히 보았다. 그는 인상을 쓰며 혐오가 담긴 눈길로 구자영을 쳐다보고는 복도 구석에서 낮은 소리로 전화를 걸었다.“성원아, 나야.”문성원이 깜짝 놀랐다. 최군형이 먼저 전화를 걸다니?“무슨 일인데요?”“구성 그룹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구성 그룹이요? 그건 형이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저한테 물어요?”최군형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침묵을 지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문성원은 강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농담할 생각을 접어두고 잠깐 생각한 뒤 말했다.“구성 그룹 자체는 별 실력이 없으나, 그 배후가 강해서...”최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어떤 가문은 별 실력이 없었지만 라인을 잘 타서 명문가가 되었다.“형님, 구성 그룹 일은 너무 급해 하면 안 돼요. 아직 증거가 부족해서 어떻게 될지 몰라요!”“응, 알아.”“알아요? 알면서도 물어요?”“재판에 대한 걸 물어본 것도 아니야!”문성원이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그럼...”“구자영에 대해 얼마나 알아?”문성원이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꽤 최군형다운 물음이었다. 문성원은 언제나 최군형이 뭘 하려는 지 몰랐다. 그냥 아는 만큼 대답하는 게 답이었다.“구자영이요, 착한 재벌가 아가씨로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이쪽 사람들은 그녀 인성을 알아요. 팔로워도
구자영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맞다, 강소아, 결혼식은 했어? 돈이 없어서 못 한 거 아니야? 이렇게 가난한 남자한테 시집가다니, 대체 뭘 바란 거야?”“구자영, 소아가 왜 결혼하게 됐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잖아!”“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 아니지? 하하하...”“그런 건 당연히 없어.”강소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늘한 눈빛이 모두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 구자영에게 가 닿았다. 그녀는 태연하게 구자영의 눈을 응시했다. 구자영은 그녀의 기세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들 왜 결혼했는지 궁금해하니, 그 호기심을 해결해 줄게.”강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몇 글자를 발음했다.“사랑하기 때문이야!”“뭐?”구자영을 포함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강소아가 작게 웃었다. 최군형이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창피한 상황이 일어났을 것이었다.강소아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천천히 말했다.“응, 사랑하기 때문이야! 우리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자야! 날 든든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남자야. 어떤 사람이 하루가 멀다고 가게에 와 소란 피울 때도 우리 남편이 그걸 막아줬어. 이런 사람을 어떻게 안 사랑하겠어?”강소아가 구자영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그래, 구자영 아가씨?”구자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옆에서 누군가 작게 말했다.“자영아, 둘이 좋아서 결혼한 거잖아! 그게 뭐 말할 게 있다고... 재미없게!”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흩어졌다. 곧 수업 시간이었다. 구자영은 여전히 아무 수확도 없었다. 그녀는 원래 강소아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했다. 억지로 그런 남자에게 시집갔으니,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강소아는 잘 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구자영은 옷깃을 꼭 부여잡았다. 짜증이 났다.‘내가 그년을 도와 좋은 신랑감을 찾아줬다고?’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최군형이 나타
이때 교수가 들어왔다.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이번 수업은 설계 이론이었다. 강소아는 언제나 우등생이었다. 그녀의 과제도 종종 우수 과제로 선정됐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과제를 멍하니 쳐다보며 방금 최군형이 들어오던 모습을 떠올렸다.그녀는 머리를 만져보았다. 아직도 최군형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강소아가 작게 웃었다.‘그가 갈 때 뭐라고 했지? 점심을 갖다준다고?’강소아가 멍하니 헤헤 웃었다.‘그럴 리가 있나, 점심이면 가게에 손님이 많을 텐데, 아빠 엄마랑 같이 가게에 있겠지, 어떻게 점심을 갖다줄 수 있지? 밥할 줄은 알고? 그냥 해보는 말일 거야.’그렇게 생각해도 기분은 좋았다.......어느새 점심이 되었다. 학생들은 모두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하수영이 강소아를 끌며 말했다.“식당 갈래?”그 말을 들은 구자영이 옆에서 비웃었다.“너 정말 눈치 없다. 남편이 도시락을 싸준다잖아!”“미친 X.”구자영은 그 욕을 듣지 못한 채 한술 더 떴다.“강소아, 벌써 12시인데, 네 남편은? 하하하, 그냥 말뿐인 거야?”“구자영, 네 알 바 아니니까 꺼져! 너...”하수영이 벌떡 일어나 구자영을 상대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문가에서 소리쳤다.“여기 강소아가 누구야?”강소아가 흠칫하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문가의 사람이 몸을 옆으로 비켰다. 정장을 입고 흰 장갑을 낀 남자들이 한 줄로 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사람마다 손에 정교하고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 위에는 강주 최고의 호텔인 “베스트 레벨 호텔” 로고가 박혀있었다.강소아는 깜짝 놀랐다.베스트 레벨 호텔은 가장 번화가에 있었다. 그 호텔의 메뉴 하나만 해도 일반인의 월급과 비슷한 값이라 했다. 그 양도 엄청나게 적었다.그런데 지금, 이렇게 많은 메뉴가...강소아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지배인 차림의 사람이 강소아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뒤 웃는 얼굴로 말했다.“아가
“강소아 님입니까?”지배인이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구자영이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아뇨.”“그럼, 별일 없겠네요, 저흰 강소아 씨에게 배달하는 거라서요. 절대 틀릴 리 없어요!”“하지만...”구자영은 뭔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지배인은 그녀를 무시한 채 허리를 세우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강소아 님, 맛있게 드십시오!”......강소아는 불안한 심정으로 식사를 마쳤다. 열몇 명의 직원들이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지배인이 직접 그녀를 시중 들었고, 밖에는 무수한 학생들이 이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강소아는 식은땀이 났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집에 가자마자 그녀는 최군형을 잡아 심문했다.“점심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최군형이 인상을 썼다. 베스트 레벨 호텔의 음식을 갖다줬는데, 입에 맞지 않았나?“최군형 씨! 사실대로 말해줘요...”강소아는 초조한 모습이었다. 커다란 눈에 안개처럼 의혹이 드리워졌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겨우 몇 글자를 뱉어냈다.“당신 대체 정체가 뭐예요?”최군형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다.이때 소정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소아더러 장부를 정리하라는 당부였다.강소아는 최군형을 쏘아보고는 독하게 말했다.“돌아와서 다시 얘기해요!”최군형은 어리둥절해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이때 마침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히 정원에 들어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베스트 레벨 호텔에서 보낸 동영상이었다.“점심에 강소아 님께 준비해 드린 겁니다. 모두 최신 상품으로 준비해 드렸습니다. 지배인과 직원들도 정예 인원들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최군형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묵묵히 그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성대했다!최군형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밥이나 한 끼 갖다주라고 했지 이 정도로 대접하란 말은 아니었는데!강소아가 왜 그의 정체를 물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당연히 그의 신분을 의심할 것이었다!
최군형이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말랐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일에 익숙했지만 거짓말에는 익숙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교육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머리를 짜내 인생의 첫 거짓말, 어쩌면 가장 큰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었다.강소아가 의심 어린 눈길로 최군형을 쳐다보며 말했다.“최군형 씨, 그 호텔의 밥 한 끼는 다른 사람 연봉이에요. 그러니까...”“일을 하긴 했지만, 불법적인 건 아니에요.”최군형이 강소아의 눈을 피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전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보지 않은 것이지만, 지금은 찔리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강소아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뭘 했는데요?”최군형이 침묵을 지켰다. 어떤 일을 하면 짧은 시간 안에 큰돈을 벌 수 있을까...그는 멀리 남양에 있는 아저씨를 떠올렸다. 지금은 잠정 은퇴했지만 남우주연상 수상자였다. 돈을 무더기로 버는 모습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그러니까... 배우가 가장 빠른 방법이겠지? 학력도 낮은 데다 전과자이고, 내세울 건 얼굴밖에 없으니...최군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최군형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생애 첫 거짓말을 뱉어냈다.“어, 그러니까... 연기했어요.”“네?”강소아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답이었다. 그녀는 몇 초간 멍해 있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거짓말 아니고요? 하, 당신이 연기를요? 당신을 쓸 팀이 있긴 해요?”“네, 전에 기사 일을 할 때 틈틈이 남만에 갔었어요. 최근에도 계속 갔었고요. 전에 함께 일했던 감독님들과 아직도 연락해요!”강소아는 팔짱을 끼고 최군형을 쳐다보았다. 강주 남만에는 확실히 커다란 드라마 세트장이 있었다. 종종 열몇 팀이 동시에 드라마를 찍곤 했다.최군형은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니 꽤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강소아가 최군형을 아래 우로 훑어보며 말했다.“엑스트라에요? 그거 돈 얼마 못 벌지 않아요?”“아뇨, 대역이요. 위험한 장면을 대신 찍는 거 말이에요. 돈을 꽤 많이 벌어요.
진작 이런 거짓말을 할 줄 알았으면 아픈 척이라도 할 걸 그랬다고 최군형은 생각했다. 이틀을 소처럼 일하고 이런 말을 한다니, 퍽이나 설득력 있었다.“최군형 씨, 한 번 봐봐요!”“네? 뭐, 뭘 본다고요?”“상처가 어떤지 봐야죠! 마침 집에 응급처치 연고들도 있으니, 많이 다쳤다면 발라줄게요!”“아뇨!”최군형이 딱 잘라 말했다. 그는 강소아가 그를 공격이라도 할 것처럼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있었다.“그... 정말 괜찮아요. 전 튼튼하고, 다치는 건 너무 익숙해서 약은 안 발라도 돼요.”“최군형 씨!”강소아가 최군형의 티셔츠를 잡고 위로 올리려 했다.“한 번 보자니까요!”“가까이 오지 마요!”“소리는 왜 질러요?”“제발 그만해요! 나 만지지 마요!”최군형이 강소아를 향해 눈을 크게 떴다. 강소아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군형 씨, 저도 좋은 마음에...”강소아가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소정애는 이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방 안에 있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최군형이 소리 지르는 것은 똑똑히 들었다.‘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이런 화를 받으며 산다니? 데릴사위가 이런 법이 어디 있어?’“소아야, 군형아, 너희 뭐 해?”소정애는 손에 든 식칼을 놓지도 못한 채 주방에서 뛰쳐나왔다. 식칼을 본 최군형이 금세 얌전해졌다.“소아야, 넌 먼저 들어가 있어. 좀 있다가 밥 먹으러 나와!”소정애는 부드럽게 웃으며 딸을 들여보내고는 돌변한 표정으로 최군형을 노려보았다.“군형아, 주방 일 좀 도와줘!”“아줌마, 저...”“올 거야, 안 올 거야?”소정애는 한 손에 식칼을 든 채 기세등등하게 서있었다. 그 기세에 눌린 최군형이 얌전히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둘러맸다.소정애가 웃으며 양파를 꺼내 들었다.“자, 이거 썰어봐!”최군형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식칼은 이미 그의 손에 쥐어졌다.“썰어!”소정애의 고함과 함께 최군형은 식칼을 휘둘러 양파에 칼을
배현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도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그는 허공에 떠 있는 듯 응급실의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의사들이 급히 자신을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누워 있는 자기 육체를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에서 해방된 듯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의식은 또렷했지만,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없었다.그날, 배현진은 오강호와 싸웠다.송윤희와 이혼 후 더 나락으로 떨어진 오강호는 그날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있던 배현진과 우연히 마주쳤다.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고 오강호는 배현진이 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 송윤지를 언급하며 조롱을 쏟아냈다.배현진은 격분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댄 쪽이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오강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배현진은 오강호에게 몇 대 얻어맞고는 응급실로 실려 가고 말았다.지금도 배현진의 귀에는 오강호의 말이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배씨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별수 없군. 여자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결국 임지강에게 뺏겼다지? 하하하...”“배 도련님, 혹시 속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임지강이 송윤지에게 접근한 건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였을 거야!”“너 같은 쓰레기가 무슨 남자야. 약혼녀도 남에게 빼앗기고 말이야.”배현진의 가슴 한구석이 세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강한 힘이 그의 영혼을 다시 육체로 끌어당겼다.옆에서 심전도가 삐 울리더니 직선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의사들은 제세동기를 정리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환자가 심장박동을 회복했습니다. 약물을 투여하세요.”배현진의 꼭 감겼던 두 눈이 살짝 떨렸다.그를 때린 사람이 임지강과 송윤지의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혹시, 그 둘 사이에 정말로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그는 알아내야 했다.죽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수모를 반드시 임지강에게 똑같이 되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지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제가 누나랑 형부께 누를 끼쳤네요.”“그렇게 생각하지 마.”임우정은 부드럽게 말했다.“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운명 같은 거야. 따지고 보면 이 일의 원인은 나야. 내가 처음에 송윤지를 현진이에게 소개하지 말아야 했어.”“저 때문에 누나가 곤란해진 거예요.”임지강은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제가 조금 비겁한 방법을 썼어요.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배씨 가문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배현진이 은행에 진 빚은...”임지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임우정이 임지강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경원이와 수정이는 모두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빚진 돈은 은행에 분할해서 납부할 거야.”“그럼 이자는 받지 않을게요.”임우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안도와 약간의 무력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배현진에 대해서는.”임지강은 계속해서 말했다.“저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윤지를 괴롭힐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예상했어야죠. 지금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심지어 정말로 정신이 나갔다 해도 그건 자업자득이에요.”“됐어, 봐줄 줄도 알아야지. 너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임지강은 고개를 들어 임우정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뒤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무슨 냄새예요?”갑자기 집 안에서 송윤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지강은 놀라며 황급히 돌아섰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송윤지가 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왔다.임지강도 곧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아이고, 이거 다 태웠네요!”송윤지는 놀라 외치며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행주로 냄비 뚜껑을 열었다.“이건 뭐예요?”“제가 만든 당근 소고기 스튜예요...”임지강은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윤지에서 한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결과는 역시나 이 모양이었다.“물 안 넣었어요?”송윤지는 코를 찡그리며 물었다.“당근
임지강은 송윤지의 세계에 다시 한번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임지강은 이제 송윤지의 아파트에서 종종 머물렀다. 겉으로는 송윤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송윤지는 몇 번 거절하려 했지만, 임지강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그냥 놔두기로 했다.임지강은 비록 소파에서 자야 했지만, 그것조차도 행복했다.임지강은 언젠가는 송윤지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임지강은 대부분의 시간을 송윤지와 함께 보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세 끼를 직접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송윤지가 과거에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정성이 담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과거 송윤지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가끔 송윤지는 집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임지강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꿈이 자꾸 송윤지를 괴롭혔지만, 송윤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조강이 곁에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인다는 것을.임지강은 배현진과는 완전히 달랐다.배현진은 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앞으로’ 같은 말로 막연한 미래를 약속하곤 했다.반면, 임지강은 ‘내가 있잖아’, ‘나한테 맡겨’, ‘두려워하지 마’ 같은 말로 송윤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임지강의 말 속에는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송윤지를 얼마나 아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그날은 송윤지가 쉬는 날이었다. 임지강은 주방에서 당근과 소고기를 넣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이 요리는 임지강이 새로 배운 것이었다. 임지강은 요리의 모든 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했고 조미료를 넣는 것도 마치 화학 실험을 하듯 정밀하게 측정했다.잠시 후, 요리의 향기가 퍼져 나갔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조절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그가 문을 열자, 임우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우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누나?”
배현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임지강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소중히 여겨야 할 때 외면했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임지강은 손가락으로 배현진의 코앞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다시 내 여자를 건드리면, 소피아와 함께 감옥에서 만나게 될 거야.”임지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갔다.방 안에는 이제 배현진과 배윤아 두 남매만 남아 있었다.배현진은 멍하니 바닥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후회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배현진의 모습을 보며 배윤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오빠...”배윤아는 조심스럽게 배현진을 부축하며 말했다.“사실, 오빠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진작에 알아봐야 했어. 소피아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배현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머리를 부딪치며 자신을책망했다.“오빠.”배윤아는 애써 배현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말했다.“내 생각엔 임지강 씨는 오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진심으로 오빠를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 거야. 이미 송윤지의 복수를 한 거나 다름없으니, 더는 오빠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게다가 다행히도 오빠가 진 빚은 임지강 씨의 은행에서 대출받은 거니까, 그에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부탁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봐준다고?”백약곡의 쓴웃음은 공허하고 힘이 없었다.“지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끝났어...”“오빠에겐 아직 나랑 부모님이 있잖아!”배윤아는 울먹이며 말했다.“우리는 여전히 가족이야! 오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해. 오빠가 진 빚은 부모님이 분명 해결하려고 하실 거야.”“내가 은행에 진 빚은 수천억이라고.”배현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게다가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 사람은 임지강이야. 그 사람은 절대 날 그냥 놔두지 않을 거야.”“오빠...”배윤아가 더 말을 이어가려 했
“현진 씨, 제발 내 말 좀 들어봐!”소피아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렇게 한 건... 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은 모든 걸 여동생에게 넘겼잖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랑 제임스는? 당신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여기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제임스를 어떻게 키우겠어?”“그만해!”배현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피아는 오직 자신과 제임스의 미래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소피아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배현진이 제임스를 친아들처럼 대하려 했던 건 소피아를 사랑해서지, 빚진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현진 씨...”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정말 우리 미래를 위해서였어. 당신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 주길 바랐고 우리가 순조롭게 결혼하길 원했을 뿐이야. 그래서 내가...”“네가 원하는 건, 배씨 가문을 차지하는 거잖아?”“당신...”“윤아는 내 친동생이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내 등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배현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소피아는 배현진의 외침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소리쳤다.“배현진! 앞으로 네 여동생이랑 살 거야? 아니면 나랑 살 거야?”그 말에 배현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배현진은 소피아의 뺨을 세게 때리며 속에 쌓여 있던 모든 후회와 분노를 폭발시켰다.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배현진의 얼굴을 긁으려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이며 뒤엉켰고 배현진의 얼굴에는 소피아에게 긁힌 상처가 선명하게 남았다.그때, 경찰이 방으로 들이닥쳐 두 사람을 강제로 떼어놓았다. 차가운 수갑이 소피아의 손목에 채워졌다.배현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소피아가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의 존재는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온몸이 퍼즐 조각처럼 부서져 다시는 하나로
임지강은 대출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 선명한 배현진의 서명과 붉게 찍힌 도장은 마치 피로 얼룩진 조롱처럼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듯했다.“제 생각엔,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조 회장이 말했다.“지강아, 빨리 돈을 배 도련님 계좌로 송금하고 그 두 광산을 사들여라. 그리고 배 도련님,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데, 도련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도 안 되죠. 흥! 약속을 어기는 일은 배씨 가문의 품격에도 맞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배현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회와 절망이 그의 마음을 홍수처럼 휩쓸고 있었다.“배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제가 데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배 도련님도 보고 싶었을 겁니다.”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룸의 문이 열리며 배윤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배현진은 배윤아를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놀라움은 곧 걱정과 초조함으로 변했다. 배현진은 재빨리 배윤아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윤아야, 괜찮아?”“나 괜찮아.”배윤아는 눈가가 붉어졌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고작 사흘뿐이었지만, 그 시간은 마치 몇 세기가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그러나 배윤아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하는 순간, 증오가 담긴 눈빛이 소피아를 사로잡았다. 배윤아는 이를 악물며 소피아를 가리켰다.“오빠, 바로 저 여자가 사람을 시켜 날 해친 거야!”“뭐라고?”배현진은 몸을 떨며 경악했다.소피아는 그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발악하듯 배현진 곁으로 뛰어들며 변명했다.“아니야! 내가 아니야! 윤아야, 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네가 사라진 동안, 난 네 소식을 찾으려고 정말 애를 썼어. 난 정말로...”“거짓말하지 마세요!”배윤아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소피아 씨가 사람을 시켜 날 폭행하고 내 물건을 훔쳐 간 건 분명해요! 그리고 소피아 씨가 가장 원했던 게 배씨
“조 회장님,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소피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우리가 그 광산을 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대박을 기대했는데, 지금 헐값에 팔면 원금도 못 건질 뿐만 아니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요. 게다가 그 돈은 전부 은행 대출입니다.”“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조 회장은 다 피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건 아가씨가 주도한 일 아닌가요? 제 기억으로는 배 도련님이 처음엔 그 두 광산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조 회장님...”“배 도련님.”조 회장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오히려 추악한 수단으로 올라선 여자의 말을 믿었으니, 그 손해는 당연히 본인이 책임져야죠.”“지금 말 다했어요?”소피아는 벌떡 일어나며 격분해 외쳤다.조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짓누르듯 바라보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고 소피아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배 도련님, 매입자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배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 회장은 부하에게 매입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본 배현진은 그만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임지강과 송윤지였다.배현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다 테이블을 건드렸고 접시와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임지강은 송윤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를 위해 의자를 빼주고 임지강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배 도련님, 아는 분이시죠?”조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제가 따로 소개해 드려야 할까요?”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배 도련님.”임지강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론 도련님이 투자하신 두 광산이 이제 3200억밖에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3400억에 사들이겠습니다. 도련님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
화면에 띄워진 데이터는 충격 그 자체였다.두 사람은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친 듯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배현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소피아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소피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우리가 1조를 들여 산 두 광산이라고! 무려 1조라고!”배현진이 소리쳤다.“가격이 분명 오를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3200억으로 폭락한 거냐고!”“나도... 나도 모르겠어...”소피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광산의 시장 가격을 철저히 조사했었단 말이야. 그 두 광산은 운산시에 있는데, 지금 운산시 광산 가격이 상승세잖아. 분명 손해 볼 투자가 아니었어.”“하지만 지금 상황 좀 봐.”배현진은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소피아, 그 1조는 전부 은행 대출금이야. 지금 난 은행에 수천억 빚을 졌고 이자도 엄청나다고.”“현진 씨, 진정해.”소피아는 급히 배현진을 달래며 말했다.“이 일은 조 회장이 중간에서 소개한 거래잖아. 조 회장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밝혀질 거야. 내가 직접 물어볼게.”...배현진과 소피아는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텔 룸에서 조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진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호텔 매니저에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도록 특별히 부탁했다. 테이블 위에는 호텔의 대표 메뉴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었다.조 회장이 방에 들어서자, 배현진은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조 회장의 눈빛은 마치 코너에 몰린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았고 배현진과 소피아는 그 쥐가 된 듯한 압박감에 사로잡혔다.“두 분이 너무 과하게 준비하셨네요.”조 회장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술잔을 힐끗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는 없었어요. 나이
이른 아침, 소피아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누운 남자의 맨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현진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했다.배현진은 그녀의 키스에 미소로 답하며 부드럽게 눈을 떴다.하룻밤의 열정에 지친 두 사람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제임스는 아직 안 깨어났어?”“이 시간엔 절대 안 일어나요.”소피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 위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우리 한 번 더?”“아니.”배현진은 소피아의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그는 정말로 피곤했다. 소피아는 도대체 어떻게 매일 밤 이렇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걸까?소피아는 송윤지와 완전히 달랐다. 송윤지는 늘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가 바라볼 때만 순수한 미소를 띠곤 했다.배현진은 문득 송윤지를 떠올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자기야, 무슨 일이야?”“아, 별거 아니야.”배현진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맞다, 나 현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소피아는 배현진의 얼굴을 자신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제임스도 점점 크고 있어. 가정교사를 불러서 집에서만 공부시키는 건 이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또래 아이들과 학교에서 어울리는 게 필요하지 않겠어? 어쨌든 앞으로는 제임스가 배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렇지?”“음...”배현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장래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부모님이 이미 가업을 전부 윤아에게 넘겼잖아.”소피아는 미소를 띠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흡족해했다.배윤아 같은 풋내기는 소피아와 겨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배윤아를 기절시켜 조 회장의 카지노 앞에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조 회장이 배윤아를 데려갔으니, 모두가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한 범인이 조 회장과 임지강이라고 믿을 것이다.혹시 조 회장이 색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더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