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하는 하수영의 얼굴은 어두웠다. 강소아가 어리둥절하더니 하수영의 말이 의미심장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게다가 요즘 발생한 이상한 점들까지 생각해 보면 작은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 강소아도 설명할 수 없었다. 강소아가 잠깐 침묵하더니 하수영의 손을 잡고 말했다.“넌 그럴 애가 아니야.”그 말에 놀란 하수영을 보며 강소아가 미소 지었다.“네가 정말 뭔가를 했다면 나한테 들키기 전에 그만해줘… 그러면 우리의 우정은 계속될 수 있어!”하수영이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입술을 핥았다. 강소아의 웃는 얼굴은 깨끗하고 투명한 수정처럼 하수영의 추악함을 반영해 주었다. 하수영은 작고 붐비는 자신의 집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기를 남동생을 돌봐주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나중에 그녀의 약혼 예물을 남동생이 결혼할 때 남동생에게 다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것보다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부잣집 사위를 얻지 못하면 돈 많은 노인네의 첩이 되어도 괜찮다는 교육을 주입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몸을 팔아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딸의 가치는 그뿐이었다! 하지만 강소아는 달랐다. 두 사람의 출신은 비슷해도 강소아의 부모님은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강소준도 철이 든 아이였다. 그는 누나인 강소아를 여동생처럼 아끼고 지켜줬다. 한편 하수영의 남동생은 하수영을 시녀로 여겼으며 기분이 조금만 나빠도 그녀를 때리고 욕했다. 비뚠 환경에서 자란 하수영은 자연스레 마음마저 비뚤어지게 되었다. 하수영은 강소아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를 질투하였다. 육명진의 부하가 강소아를 찾아 그녀의 진실한 신분을 알려주었을 때 그녀를 향한 하수영의 복잡한 감정은 극에 달했다. 부러움과 질투를 제외하고 미움의 감정도 있었다. 자신의 비천함이 미웠고 강소아가 납치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강우재 부부 같은 사람들이 강소아를 아껴주는 것이 미웠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
이튿날은 그림 전시회에 참가할 그림을 제출하는 날이다. 전시회에 참가하려는 학생들은 그림을 가져와야 했고 평심 위원의 초심과 재심을 거쳐 그림 전시회 조직 위원회의 마지막 심사를 받아야 했다. 항상 활동에 적극 참여하던 강소아는 오늘 웬일인지 등교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왔다. 게다가 반급 문 앞에서 한 학생을 만났다.“소아야...”“무슨 일이야?”그 여학생은 평소 정직하고 온순했으며 강소아의 그림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강소아가 일부러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소아야, 이 그림을 가져왔구나?”“물론이지!”강소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이건 그림 전시회에 참가할 그림이야!”“그런데...”여학생이 교실을 가리켰다.강소아가 교실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학생들이 구자영을 둘러싸고 있었다. 기고만장한 구자영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중이었다.“이 ‘반딧불이’는 내가 며칠 동안 생각해서 연구해 낸 거야! 어때? 특별하지?”“그림의 톤도 내가 하나하나 그려낸 거야... 엄청 힘들었어. 2박 2일 동안 꼬박 그렸지, 뭐야! 이 그림은 내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이야.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경매 회사에 팔 거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다음 해에 개인 그림 전시회를 열어주겠대. 그때 가서 이 그림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을 거야!”여학생은 강소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강소아의 억울함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강소아는 웃으며 듣고 있었다. 구자영, 네가 말한 대로 꼭 그림 전시회를 열고 그 그림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야 해!“소아야!”여학생이 난처해하며 말했다.“구자영이 그린 그림이 왜 네가 그린 거랑 똑같지? 이틀 전에 화실에서 너의 그림을 볼 때 구자영은 시작도 안 했어. 이건 분명...”“어머, 강소아?”구자영의 목소리가 들렸다.“교실 문 앞까지 왔으면 얼른 들어와.”강소아가 그림을 들고 들어가자 그림을 본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두 그림이... 똑같다니? 하지만 필치나 색조는
“실은 ‘반딧불이’는 참 좋은 작품이야. 상 받을 가능성도 크고. 강소아는 상과 인연이 없나 봐.”박나연이 강소아의 손을 가볍게 끌어당겼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강소아는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소아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구자영이 떠드는 소리를 사람들이 다 듣기를 바랐다!“왜? 할 말 없어?”구자영은 아직도 강소아 앞에서 거들먹거렸다.“흥, 강소아. 나 표절한 거 맞아. 어때? 날 때릴 거야? 아니면 폭로할 거야?”강소아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구자영을 쳐다보았다. 구자영이 핸드폰을 보더니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내 그림은 이미 재심조에 넘겨졌대... 강소아, 다 네 덕분이야! 상금을 받으면 밥 살게. ‘강아지 사료’를 먹는 건 어때?”“고마워,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강소아는 아주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강아지 사료’는 너 혼자 먹어. 넌 원래 많이 먹잖아. 적게 먹고 영양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다음에 표절하고 싶어도 표절할 힘이 없게 되잖아.”“너...”옆에서 구경하던 학생들이 강소아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낸 뒤 다른 데로 가버렸다. 강소아는 며칠 동안 참았다. 그녀의 마음은 아주 평온했다. 구자영의 그림이 재심조를 거쳐 그림 전시회 조직 위원회, 외국 전문가 평심회, 최종 심사까지 받는 걸 그녀는 지켜보았다. 게다가 구씨 가문은 구자영을 위해 인기몰이를 했으며 구자영을 예술 소녀의 캐릭터로 만들려고 했다. 인터넷에서 종종 구자영이 “반딧불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었으며 다재다능한 금수저, 청순하고 귀여운 부잣집 딸이라는 타이틀을 볼 수 있었다. 구자영은 하늘에 날아오르는 듯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후. 이른 아침, 강소아가 일어나서 운동하고 있는데 조깅을 마치고 온 최군형이 핸드폰을 그녀에게 들이댔다. 인터넷에는 구자영이 표절했다는 소식으로 도배되었다! 강소아가 웃었다.“벌써 들켰네!”최군형은 좋아요가 가장 많은 댓글을 보라고 했다.“이 그림은 남양 화가 윤문희 선배님이 그린 그림인데 구자영은 자기가 그렸다
"그런데..."강소아는 의아해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화가를 아시는 거예요?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어떻게 안 거예요?”최군형은 그녀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는 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핑계를 대려 했다.그는 어릴 때부터 최군성한테서 들은 엄마 아빠의 연애사가 갑자기 떠올랐다.그는 이런 것에 서투른 편이지만, 최군성은 염탐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매달려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다시 예쁘게 다듬어 그에게 들려주었다.그는 잠시 생각했다. '듣기로는 아버지께서도 신분을 숨기고 엄마를 속인 적이 있다고 하던데. 심지어 몇 번이나 엄마한테 들킬 뻔했지만 결국에는 들키지 않았다고 했는데. 듣기로는...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쓰셨을까?'최군형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머리를 열심히 굴렸는데, 조급해할수록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특히 강소아의 맑고 깨끗한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말이다.최군형은 생각했다. '동생이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그 녀석은 진짜 배우 수준으로 눈 깜빡 안 하고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데...'"군형 씨..." 그가 말을 하지 않을수록 강소아는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냐고요? 그리고 그 사이트...어떻게 VIP 계정이 생기셨어요?”"당신 옛날에...다른 사람에게 위조 증명서를 발급한 적 있죠?"강소아는 스스로 판단하며 물었다. "설마 남의 계정을 훔칠 줄도 아는 거예요?”최군형은 귀가 솔깃했다. 이만큼 좋은 핑곗거리는 없었다. "정말 똑똑하네요!”"네?" 강소아는 어리둥절해서 하며 물었다. "제 말이 맞아요?”"맞아요, 맞아요!" 최군형은 머리로 마늘을 찧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왜 그런 계정을 훔친 거예요? 당신은 경매장의 전문가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 윤씨 선배님의 그림이 이렇게 값진 줄 어떻게 알았어요?”최군형은 또 할 말을 잃었다."둘이 여기서 뭐 하는 거야?이때 소정애가 부엌에
"아이고, 군형아!"소정애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이 기름이 공짜인 줄 알아? ”그러나 이때 최군형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빨리 움직여!"소정애는 그의 등을 한 대 치며 말했다. "빨리, 냄비에 기름을 이 빈 그릇에 부어...”최군형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한 손에는 솥을 들고 다른 손에는 그릇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됐어, 빨리 나가!"소정애가 그릇을 뺏어오며 말했다."더는 너한테 시키면 이 부엌이 오늘 오후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최군형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소정애가 미는 대로 밖으로 밀려 나갔다.그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방금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아주머니." 그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그 말 진심이세요?”소정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무슨 말?”"가짜 결혼 증명서를 진짜로 바꾸고 싶다고 한 거 말이에요...”"저리 가, 저리 가!" 소정애는 얼굴에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지만,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먼저 내 땅콩기름을 물어주고 나서 다른 얘기를 해!”그리고 주방 문을 잡아당기더니 최준형을 문밖으로 내쳤다.최군형은 멍하니 현관으로 걸어갔다.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그의 눈에 들어왔고, 그는 맑은 하늘을 보며 여름 공기의 향기를 맡았다.그는 그제야 바보같이 계속 웃었다.그는 조금 후회했다, 그때 진짜 결혼을 했었어야 했다고 말이다. 그러면 지금 처리할 일이 하나 더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그와 강소아는 거의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낯선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말이 되지 않았다. 1년 정도의 시간을 거쳐 그는 점점 더 이 집에 잘 융합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결혼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최군형은 잠시 생각했다. '1년 정도라...장모님이 주신 시간은 정말 일리가 있네!'그는 보기 드물게 휘파람을 불며 아이처럼 방실방실 웃었다.
구자영은 요즘 거리를 지나는 쥐와 같이 어디를 가든 누군가가 그녀의 등골을 찔렀다.뻔뻔하게 학교에 오려 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꼭 싸매고 누구도 자신을 못 알아보게 했다. 그러나 주위의 비웃음 소리는 시시각각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같은 반 아이들은 이제 그녀가 강소아에게 한바탕 당했다는 것을 안다.구자영은 그들이 자기편이 되어주기를 바랬다. "강소아가 윤문희의 그림을 먼저 표절한 거지, 내가 아니야.”"구자영, 작작 하시지?"박나연이 먼저 반박해 말했다. "네가 심술궂게 굴지 않고 강소아의 그림을 표절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그러게 말이지..."이어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게다가 심사위원으로 보내진 것은 너의 그 그림이지 강소아 것도 아니잖아! 어쩌면 강소아는 그냥 어쩌다 그림을 따라 그리고 싶어서 그린 것일지도 몰라.”"평시에 구씨 아가씨가 강소아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다들 봐왔거든? 정말 쌤통이다!”"너희들...”구자영은 자기편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부끄럽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는 돌아서서 교실을 뛰쳐나갔다.평소에 그녀가 강소아를 괴롭힌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이 계집애들한테는 야박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인터넷에서 꾸지람 받고 조롱당하는 처지가 되니 다들 하나같이 태도를 바꿔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요즘 최군형도 인터넷 소식을 자주 살펴보고 있었다. 비록 그는 사이버 폭력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가끔 키보드만 말투를 따라 해서 구자영을 욕하기도 했다. 이날 그는 게시물을 보고 최군성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그동안 고생 많았다.”최군성은 잠이 덜 깼는데, 이 말을 듣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리고 생각했다. '잘못 들은 거 아니지? 형이 나한테...고생했다고 하는 거야?'"괜...괜찮아, 이 정도로 고생할 것까지야!”최군성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아무도 그가 요 며칠 동안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른다. 최군형이 구자영의 표절
이 장면은 구봉남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직 이렇게 젊은데 어쩌다가...”"콜록콜록!"최군형은 세게 기침을 해댔다.그의 팔짱을 끼고 있는 강소아의 작은 손은 그를 꽉 조였고, 필사적으로 그를 향해 눈짓하였다."어... 네."그는 몇 마디를 간신히 짜냈다."설탕 음식은 잘 못 먹어요...”그는 속으로 자신을 이해시켰다. 자기는 원래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말이다. 말을 마친 그는 강소아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최군형은 왠지 모르게...기분이 나빴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집에 가서 정애 아주머니가 안 계실 때 혼 좀 내줘야겠어!'"그렇군요."구봉남은 똑똑해서 빨리 눈치를 챘지만, 두 사람의 말에 따라 계속 말했다. "아니면 제가 요리를 몇 개 바꿔드릴까요?”"귀찮게 할 것 없어요."최군형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부부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무슨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요, 저와 아내는 다른 일이 있어서...”구봉남은 잠시 멈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눈을 두 번 돌렸다.최군형은 뭔지 모르게 매서운 압박감이 있었고, 턱선이 진하고 눈도 커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이것은 그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아주 달랐다.그리고 최군형 곁에 있는 강소아는 어찌나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어떻게 보아도 이 싸늘한 얼굴의 거친 남자와는 정말 잘 어울리지 않았다.뭔지 모르게 구봉남의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그는 속으로 강소아 같은 여자애는 분명 더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조카딸이 세력을 믿고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그녀는 최군형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생각에 구봉남은 약간 미안한 눈빛으로 강소아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자, 그럼 두 분과 더는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두 사람을 초대한 것은 확실히 내 조카 자영이를 위해서
"이 일은 원래부터 구자영이 스스로 벌린 거예요."말을 마친 최군형은 강소아를 끌어 일으켰다. 그리고 계속 말했다. "이 식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씀하신 것을 저희는 못 들은 것으로 할게요. 만약 당신이 집요하게 계속 우리를 귀찮게 한다면, 다음번의 구씨 집안과 만남은 법정일 것입니다!”"최군형 씨, 잠깐만요."구봉남이 그를 불렀다."정말 상의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제 남편이 없다고 하면 없는 거예요."강소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조카딸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되겠죠?”"내가 강소아 씨에게 구성 그룹의 인턴 자리를 줄 수 있다면요?”"뭐라고요?”강소아는 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최군형은 눈살을 찌푸리고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그는 몰래 그녀의 작은 손을 가볍게 두 번 쥐었다. 마치 그녀의 옆에 자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말이다."구성 그룹의 인턴 자리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구봉남이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원한다면 인턴은 물론 졸업 후 정규직 일자리도 제가 마련해 줄 수 있어요.”"어떻게 생각하시는지?”"구성 그룹의 자리는 정말 구하기 어렵긴 하죠."최군형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우리 소아가 자기의 원칙을 깨뜨리게 할만큼은 아니에요.""오히려 구봉남 씨는..."그는 구봉남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능력이 탁월한데, 어떻게 구자영 같은 사람을 위해 나서는 사람의 처지로 된 거예요?”구봉남은 얼굴빛을 흐리며 당당하게 말했다."그래도 제 조카딸인걸요? 저는 비록 출신이 좋지 않지만, 저와 큰형은 결국 한 가족이에요.”"그래요?" 최군형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구성 그룹이 구자영의 손에 넘어간다고 해도, 당신은 빼앗지 않고 기꺼이 그녀의 밑에 있겠다는 말씀인가요?”구봉남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최군형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그는 수없이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결국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