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들은 빠르게 물러났고 나가면서 방 문도 굳게 닫았다.순간, 침실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그제야 김단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소인이 명정 대군을 보았을 때, 명정 대군은 산적들에게 갖은 고문을 당한 뒤였습니다. 온몸에 상처가 많았고 명정 대군께서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산적들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습니다.”김단은 진실을 원하는 덕빈에게 사실대로 얘기했고 조용히 듣고 있던 덕빈은 그때 당시의 상황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듯이 아팠다.하지만 조금 전에 목숨 걸고 김단을 지키다가 살해됐다는 말보다는 지금 김단이 한 얘기가 더 믿음이 갔다.김단은 덕빈의 팔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덕빈은 여전히 영혼을 빠져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마, 혹시 이 궁 안에 있었던 정아라는 궁녀가 기억나십니까?”정아?덕빈의 머릿속에 늘 환한 미소를 짓던 해맑은 여자애가 떠올랐다. 정아는 궁 안에서 일하던 궁녀였지만 나중에 명정 대군이 그 아이를 한양 서쪽에 데리고 갔다.불안한 마음에 덕빈은 재빨리 고개를 들고 김단을 쳐다보았다.“네가 정아 그 아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냐?”겁에 질린 덕빈의 표정에 김단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내각에서 무술 실력이 뛰어난 내시 한 명을 소인에게 보내주었고 그 내시는 소인과 함께 명정 대군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 내시는 손쉽게 산적들을 전부 죽여버렸지만 명정 대군을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자는 정아를 위해 복수를 선택했습니다.”김단의 말에 덕빈은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그럼 내각에서 보낸 내시가 명정 대군을 살해했다는 뜻인가? 하지만 내각에는 전부 전하의 사람들이잖아!이때, 김단이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덕빈 마마, 이게 바로 인과응보 아니겠습니까?”만약 명정 대군이 예전에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학살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명정 대군은 덕빈과 무사히 상봉했을 것이다.한편, 덕빈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니야. 넌
김단은 심장이 철렁했다. 김단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덕빈이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더니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어제 류 나인에게 민간 시장에 가서 제사에 쓰일 물건을 사오라고 시켰거든. 그런데 네가 오늘 이렇게 궁까지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내가 너에게 영혼 결혼식을 시켜 내 아들 곁에 생매장할까 봐 두려운 거로군?”숨을 크게 들이마신 김단은 잡힌 손으로 덕빈 얼굴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주며 대답했다.“맞습니다. 소인의 목숨이 한없이 천한 건 맞지만 소인도 죽는 게 두렵습니다.”김단의 거친 손이 덕빈의 얼굴에 닿자 덕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덕빈은 여인의 손이 이렇게까지 거칠 줄 몰랐으며 그녀 곁을 지키는 나인도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김단은 되레 덕빈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돌아가신 분은 사정이 너무 딱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마마께서 소인의 뜻을 이해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명정 대군은 덕빈의 유일한 아들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명정 대군이 죽은 지금, 덕빈에게 급선무는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상대를 다시 찾는 것이고 후궁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궁 안에서 눈치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덕빈은 김단의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 잠시 고민하더니, 조용히 돌아서서 곁에 놓인 이불 위에 몸을 뉘였다.김단은 덕빈의 몸 위에 담요를 살짝 덮어준 뒤, 품에서 땅문서를 꺼냈다.“마마, 이건 마마께서 전에 소인에게 선물로 하사하셨던 땅문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인은 이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없을 것 같아서 마마께 다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덕빈은 고개를 살짝 돌려 땅문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하사한 물건을 도로 거두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명정 대군을 잃은 덕빈이 궁중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필요한 일이 많을 것이다.한참동안 고민하던 덕빈은 결국 땅문서를 받았
덕빈이 명정 대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라 한 것은 그저 인사만 하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그래서 김단은 예를 갖춰 물러난 뒤 한쪽으로 가서 명정 대군을 위해 지전을 태웠다.영당 밖의 두 명의 어린 환관이 이 광경을 보고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김 낭자가 명정 대군을 향한 정이 매우 깊구먼! 오늘 아침에도 왔었는데, 지금 또 왔네.” “맞아. 아까 명정 대군 관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거 봤어? 정말이지, 안타깝네!” "어휴… 예로부터 다정함은 부질없는 원한만을 남기는 법이지… 헉! 소, 소인 소 장군님을 뵙습니다!”소한의 표정은 차가운 얼음과 같이 얼어붙은 듯 싸늘했다. 그는 두 눈으로 두 환관을 훑어보았고,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궁궐 법도에서 주인을 함부로 평하라고 가르치더냐?”두 명의 어린 환관은 깜짝 놀랐다. 김 낭자는 주인이라고 모실 정도가 아니지 않나?하지만 소한의 싸늘한 모습을 보고는 몹시 당황하였고,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이 소인, 감히 그러지 못하옵니다. 부디 소 장군님께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소 장군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직접 들어가 벌을 받거라!”두 명의 어린 환관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자신들이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알아서 순순히 떠났다.소한은 그제서야 영당 안으로 들어갔다.명정 대군에게 향을 올린 후, 그는 김단 곁으로 걸어갔다.기척을 느낀 김단은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치며 퉁명스레 말했다. “소 도련님, 정말 거만하시는군요.”방금 전의 소란을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그녀의 모습을 보던 소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영문 모를 불쾌감에 휩싸였다. 이에 그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비꼬듯 말했다. “김 낭자께서는 명정 대군께 정말 정이 깊으시군요.” “…” 김단은 그제야 손에 든 지전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소한을 바라보았다.분명 지전을 태우는 연기에 눈이 매워진 것일
“대군 생전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에 주상은 순간 멈칫하였다.주상이 정말 이 일을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본 김단은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소한이 먼저 예를 올리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만부당합니다. 김 낭자는 단지 명정 대군과 혼약을 맺은 사이일 뿐, 미망인의 신분으로 장례를 치르게 한다면 분명 좋지 않은 말이 나올 것입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만약 김 낭자가 정말 미망인의 신분이 되면 조선의 풍속에 따라 3년간은 다시 혼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소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주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이 옳소. 서원 공주, 함부로 그런 제안을 하지 마시오.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을 때 해를 입는 것은 황실의 체면이오.”그러자 서원은 볼을 부풀며 주상의 어깨에 기대어 어리광을 부렸다. “공주는 그냥 한번 말해 본 것입니다!”주상에게는 서원 공주 외에는 딸이 없었기에, 당연히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매우 어여삐 여기며 서원의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하지만 그는 서원 공주가 김단을 바라볼 때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으로 바라봤다는 걸 보지 못했다.그녀의 싸늘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비록 미망인의 신분으로 장례를 치를 수는 없더라도, 김 낭자의 목숨은 어쨌든 대군이 구한 것이니, 소복을 입고 상여를 치르는 것이 지나친 일은 아니겠지요?”서원 공주는 김단을 백성들 앞에 나서게 하려고 작정한 것이 분명했다.황후가 이어서 입을 열었습니다. “덕빈 슬하에는 명정 대군 한 명뿐인데, 그 대군이 김 낭자를 구하려다 돌아가셨으니, 김 낭자께서 대군을 배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하면 덕빈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주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내일 발인 때, 김 낭자는 서원이 말한 대로 함께 가도록 하시오!”서원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소복을 입고 상복을 갖춰 입어야만 한다.김단은 가슴이 답답한 게, 꽉 막힌 것 같았다. 하지만
김단은 이를 인정했다. 그녀도 서원 공주를 시켜 임원을 상대하게 하려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손을 빌려 죽이려던 것은 아니었다.하물며, 그 옷은 원래 그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김단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 옷가게는, 이미 덕빈 마마께 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옷은 자네 것이지!” 서원 공주는 호통을 쳤다. “이 공주가 다음 날 사람을 시켜 이미 다 알아보았소! 그 옷은, 소한이 자네 치수에 맞춰 주문한 것이오!”김단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그것은 천잠사로 만든 옷으로, 3, 5년이 되어도 한 벌 나오기 힘든 옷인데……소한이, 그녀에게 준 것이라고?멍해 있는 김단의 모습을 본 서원 공주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이내 호통을 쳤다. “여기서까지 가식 떨지 마시오! 김단, 자네도 이제 이 공주가 소한을 점찍어 두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눈치껏 물러나야 할 것이오!”이에 김단은 즉시 서원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공주 마마,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만약 그 옷이 정말 소 장군님께서 소인에게 주신 것이라면, 소인이 행한 것은 하나 밖에 없사옵니다. 이는 바로 사죄입니다!”서원 공주는 다소 의아했다. “사죄?”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전 일에 대한 사죄입니다.”3년 전, 눈앞에서 그녀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을 보면서도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이제 와서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이에 그 귀한 옷을 가져와 배상한 것이다!서원 공주는 김단이 누명을 썼던 일은 알지 못했지만, 당시 소한이 옆에 서서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다만 훗날, 소한은 분명…서원 공주는 김단을 보며 물었다. “자네, 모르는 것이오?”김단은 서원 공주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무엇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정말 모르는 것이었다!서원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 얼굴의 노기가 사라지고, 오히려 약간의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아니오. 어
김단이 별당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난 후였다.자신의 방에 들어선 그녀는 힘없이 옆에 있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서원 공주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했던 말뿐이었다.그녀는 이제서야 지난 3년 동안 임원이 진산군 댁으로부터 얼마나 보호받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이전에도 그녀가 세답방 궁녀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임씨 가문 사람들은 임원을 궁 대문 안으로조차 들여보내지 않았다!마치 그녀가 세답방으로 벌을 받으러 간 것도 진산군 댁을 위한 경종으로 쓰기 위한 것처럼, 그들은 궁궐의 사람이나 일이 조금이라도 임원과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꼬박 3년 동안 그녀에게 아무런 소식도 묻지 않았던 것이다…우스운 것은, 그녀가 진산군 댁으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임씨 부인이 득달같이 그녀를 지난 3년 동안 그들이 맹수굴처럼 여겼던 궁궐로 데려갔다는 것이다…이런 생각이 들자,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쓰디쓰고 씁쓸했다.그녀는 사실 견딜 수 있었다. 3년간의 무관심을 겪은 후, 그녀는 진산군 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깨달았기 때문이다.단지 유일하게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대비라는 두 글자였다.임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것과 임원을 대하는 것이 하늘과 땅만큼 달랐고, 15년 전과 현재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그녀는 부모님의 사랑과 형제들의 총애를 느껴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한때 그들의 손바닥 안에서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었다.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족을 가졌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햇빛을 보았었다.그래서 지금, 차갑고 음습하며 끝없이 어두운 곳에 누워 해를 볼 수 없게 되자, 그녀의 마음이 괴로워진 것이다……원래 그녀에게 향했던 따스한 햇살이, 이제는 모두 임원을 향해 비추고 있었다.어떻게 달갑겠는가?당연히 달갑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이제 그녀는 그저 외부인일 뿐인데……그러고 있는 와중, 숙희
그녀는 흰 소복 차림을 하고 발인 행렬의 맨 뒤를 따라갔다. 가는 내내 많은 백성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단순히 배웅만 하는 것으로도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는데, 만약 소복을 입고 상주 노릇까지 해야 했다면…김단은 차마 더 상상할 수 없었다.발인 행렬을 한양 밖까지 이어가고 나서야 김단은 몸을 돌려 돌아갔다.돌아오는 길에도 백성들은 여전히 그녀를 곁눈질했지만, 다행히 김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오히려, 다소 안도하는 기색이었다.적어도 명정 대군의 일에 대해서는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러고 있을 때, 누군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낭자.”김단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뜻밖에도 정암이었다.그녀는 이내 미소로 화답하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정암에게 몸을 숙여 예를 표했다. “정 종사관 나리를 뵙습니다.”정암은 황급히 공수하며 답례했다. “김 낭자께서 이리 과하게 예를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그의 손짓에, 김단은 그의 손에 들린 다과를 보게 되었다. “이것은, 혹시 저에게 주시려는 것입니까?”정암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수줍어하는 기색이었다.두 손으로 다과를 김단 앞에 내밀었다.김단은 손을 내밀어 받긴 하였지만, 이내 의아해하며 말했다. “정 종사관 나리, 감사합니다. 하지만… 어째서 며칠 동안 계속 이것을 저에게 보내시는 것입니까?”그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정암은 약간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그저, 며칠간 김 낭자께서 분명 마음이 심란하실 거라고 생각해, 좋아하는 것을 좀 드시면 마음이 좀 나아지실까 해서 그랬습니다.”김단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정암의 목적이 이렇게 순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단지 그녀의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니?눈앞의 순박한 사람을 보며 김단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도리어 입을 열고 말했다. “정 종사관 나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다과를 좋아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이 말을 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다시 이주가 지났다.보름 동안, 진산군 댁은 평화로웠다. 춘화연 초대장이 집으로 도착할 때까지는 말이다.춘화연은 중전이 개최하는 연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주가 주관했다. 매년 봄이 되면 공주는 날이 가장 따뜻한 날을 골라 각 집안의 젊은 남녀들을 궁으로 초대해 꽃을 감상하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도록 하였다.김단이 초대장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자, 숙희가 이를 보고 물었다. “아가씨, 가시려고요?”말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김단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 안 가겠느냐?”숙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매년 춘화연 초대장이 왔을 때, 어르신들께서는 둘째 아가씨가 병에 걸렸다 거짓말하시고 가지 못하게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춘화연이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닌 것 같아요!”김단은 입꼬리를 올리고 옅게 웃었다.확실히 좋은 곳은 아니다. 예전에 그녀는 춘화연에서 벌을 받아 세답방에 가게 되었었다.다만 그녀는 진산군과 임씨 부인의 임원에 대한 편애가 이렇게나 눈에 띌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집안의 하녀들조차 알아챌 정도였다.“그래서, 네 생각에는 임원이 올해도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숙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가지 못하게 할 거예요.”하지만 어찌할 수 있을까…공주가 직접 이름을 거론하며 임원에게 올해 춘화연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는데!그러고 있는 와중, 밖에서 어린 하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가씨, 소 장군님께서 옷 한 벌을 보내셨어요!” “뭐? 소 장군님이?” 숙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문밖으로 나가 다른 하녀에게 재차 확인하였다. 이후 그제야 그 옷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옷은 나무 책상 위에 놓였다. 옷 위에는 붉은 천이 덮여 있었다.숙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소 장군님께서 어째서 아무런 이유 없이 아가씨께 옷을 보내신 걸까요?”김단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숙희 앞으로 가서 붉은 천을 걷어 올렸다.안에는 연
5일 후.김단은 허약해 보이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 가볍게 치장을 하고 외출하려 했다.그녀는 이미 십여 일 동안 조모께 문안드리지 않았다. 비록 수 나인께서 돌보고 계시지만, 조모는 틀림없이 그녀를 매우 걱정하실 것이다. 그녀는 조모께 안부를 드려야 한다.조모를 만난 후에 그녀는 정암을 찾아가려 한다.그녀는 정암도 틀림없이 자기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마당에 서 있는 임씨 부인을 보았다.김단을 보자 임씨 부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가서려 했으나 김단이 밀어낼까 봐 걱정되어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김단은 살짝 한숨을 쉬고 나서야 임씨 부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인사를 올렸다.“마님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김단의 부드러운 말투를 듣자, 임씨 부인의 웃음은 그제야 어색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김단을 보고 말했다.“원이가 오늘 침대에서 내려온 것을 보고서야 너를 보러 왔다. 지금 네가 이렇게 잘 회복되는 것을 보니 나도 안심할 수 있다.”김단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어색해하자, 임씨 부인은 다시 물었다.“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외출하려는 것이냐?”김단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정암한테 가려고 합니다.”“뭐?”임씨 부인은 좀 놀랐고,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단이야, 잘 생각했어? 정말 정암과 함께 할 셈이야?”김단은 대답은 하지 않고 단지 조용히 임씨 부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임씨 부인은 그녀 눈에 담겨있는 확고함을 똑똑히 보았다.이 상황을 본 임씨 부인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나는 네 결심을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정암의 아버지께 일이 생기고, 그럼 다음은? 앞으로 정암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너는 계속 이렇게 너와 원이의 몸을 망가트릴 것이냐?”이 말을 듣고서야 김단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임씨 부인이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정암은 진산군댁에 들어서자마자, 별당으로 곧장 달려갔지만, 김단을 만나지 못했다.숙희가 방문 밖에 서서 정암을 향해 인사하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정암 종사관님의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다니 첨만 다행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아씨께서 휴침 중이시라 아마도 종사관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정암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아씨께서 날 만나고 싶지 않은 건지?”숙희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가 다시 말했다.“종사관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는 최근 며칠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종사관님 아버님께서 풀려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정암은 심장이 갑자기 쪼여지더니,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방해하지 말고, 푹 쉬게 해야지. 그럼, 그럼 내일 다시 오겠네.”그는 말하고는 돌아가려 했다그러나 숙희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종사관님!”정암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숙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아씨는 종사관님 아버지께서 감옥에서 고생하셨을 거라 생각하셨고, 종사관님께서 요 며칠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며 아버님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지나서 저희 아씨께서 종사관님을 보러 갈 것입니다.”며칠 지나서 김단이 그를 보러 갈 테니, 그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정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그녀는 며칠 동안 단식을 했으니, 지금은 분명히 매우 허약할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걱정하고 자책할까 봐,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다만,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그의 두 눈마저 시뻘게졌다.그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밉다.숙희는 정암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바삐 입을 열었다.“종사과님, 아씨의 마음속에는 종사관님이 있어요.”이 말을 듣고 정암이 멍하니 있다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정암은 멍해졌다.단식? 찌꺼기를 먹는다고?요즘, 그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녔고, 가끔 한가해질 때면 항상 그녀를 그리워했다.그는 그녀가 자기 아버지가 걱정되어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진산군댁의 호위가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그도 감히 담을 넘지 못한다.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그녀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할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그는 그녀가 이렇게 큰 희생을 할 줄 몰랐다.그는 그가 찾은 증거가 충분해서 아버지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경조부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단식하고, 찌꺼기까지 먹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가슴이 무언가에 찢기는 것 같았다. 정암은 지금처럼 자신을 미워한 적이 없다.무능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 이 지경까지 괴롭힘을 당했다!임학은 이 틈을 타서 정암의 제한 속에서 벗어났고 정암의 얼굴을 향해 두 주먹을 날렸다.“너 때문이야! 이 썩을 놈아! 네가 뭔데 내 여동생이라 혼인하겠다는 거야!”정암은 비틀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임학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이 사정없이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당신들은 왜 계속 그녀를 괴롭힙니까? 그녀는 진산군댁의 친딸이 아니더라도 당신 집에서 15년 동안 키운 딸이지 않습니까?”임학은 몇 대 맞고 피를 토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정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네가 분수도 모르고 나대지만 않았어도 단이는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정암은 피하지 않았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는 자신이 맞아도 싸다고 느꼈다.자신의 무능함에 주는 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임학이 자기보다 더 못났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다시 주먹을 휘두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이 그녀의 살갗을 벗기고 피를 마시고 있습니다!”임학은 쓰러지더니, 발버둥 치며 일어나 바닥에 앉아 거
진산군은 몸을 돌려 시녀들을 향해 화냈다.“다들 멍청이느냐? 빨리 의원을 불러 큰 아씨한테 오라고 해! 어서 제비집 죽 가져와!”이렇게 소리쳤지만 몸을 돌려 김단을 쳐다보지는 못했다.숙희도 그제야 김단 곁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그의 다른 손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아씨, 흑흑흑, 방에 들어가요...”그러나 김단은 그저 평온하게 임학을 바라보며 목이 멘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도련님께서는 말한 대로 하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이후로, 진산군댁은 더 이상 정암 가족을 괴롭히지 못한다!이 말은 마침내 임학을 자극했다.임학은 김단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정암이 그렇게 좋아?”얼마나 좋았으면, 정암을 위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통의 찌꺼기를 다 먹을 수 있겠어?정암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녀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 건가?김단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숙희랑 방 안으로 걸어갔다.그녀는 과연 정암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나?그녀도 잘 모른다.그녀의 진산군댁 생활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했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그러나 정암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쪽배처럼 그녀가 익사할 때 나타나 그녀를 배에 태워서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모든 사람이 정암은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쪽배도 바다 위에서는 물결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거센 파도가 밀려올 때면 쪽배도 부서지고 새고 결국 그녀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이 쪽배가 그녀의 생명을 구했었다는 것을 모른다.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암이 그녀를 버리지 않는 한 그녀는 정암을 포기할 수 없다!임씨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김단을 따라 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방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김단이 막았다.“숙희만 있으면 돼요, 마님은 돌아가세요!”말이 떨어지자, 김단은 방에 들어가 담담하게
임학은 김단을 노려보았다. 마치 김단이 먹지 않을까 봐 걱정된 듯 또 입을 열었다.“만약 네가 이 통 안의 것을 먹는다면 진산군댁에서 더는 정암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임학의 말을 듣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쪼여졌다.“학아,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 단이는 벌써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단이에게 찌꺼기를 먹이느냐?”임학은 몸을 돌려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제가 독한 것이 아니라, 정말 김단이 너무 교활해서 그래요! 이번에 원이를 단식하게 하고, 다음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두 분은 정말 더 이상 김단을 믿어서는 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임학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원마저 삼키는 동작을 멈추고 모든 사람과 함께 놀라서 그의 뒤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그제야 임학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온몸이 뻣뻣해져 천천히 몸을 돌렸다.김단은 어느새 찌꺼기 통 옆에 엎드려 두 손을 통에 넣고 통 안의 물건을 잡고 먹고 있었다.임원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천천히 먹고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먹고 있었다.마치 평범한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그런데, 그것은 어젯밤에 남겨진 찌꺼기다!모든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다!먹기는커녕, 한쪽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찌꺼기 통에서 가끔 풍기는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쓰리다.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지?임원의 눈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3년 전에 그녀가 김단을 해쳤지만, 그녀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만들었는지 잘 몰랐다.지금, 이 순간, 한때 구슬처럼 눈부시게 빛났던 사람이 지금에 와서 길가의 거지처럼 찌꺼기 통을 안고 먹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가 도대체 김단을 어느 지경까지 헤쳤는지 깨달았다!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진산군과 임씨 부인을 바라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놀
김단의 움푹 들어간 검은 눈언저리를 본 숙희는 마음이 깨질 것만 같았다.김단이 힘없이 입을 여는 것을 보았다.“사람을 보내서 경조부에 가서 확인해 봐.”숙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숙희는 즉시 사람을 경조부로 보냈다.진산군은 조급했다.“너도 사람을 보냈으니, 내가 속일 수는 없지 않느냐? 빨리 네 여동생에게 좀 먹어라 해!”말하는 사이에 임씨 부인도 왔다. 그녀의 뒤를 바짝 따르던 시녀 두 명이 제비집을 넣고 끓인 죽을 한 그릇씩 들고 있었다.김단과 임원을 보고 임씨 부인은 마음이 아팠고 바삐 시녀에게 말했다.“빨리 두 아씨에게 죽을 먹여라!”그러자 두 시녀는 김단과 임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제비집 죽 한 숟가락을 떠서 두 사람의 입으로 떠넣었다.그러나 김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김단은 위협하는 눈빛으로 임원을 바라보았다.김단의 시선을 감지한 임원은 가슴이 조여와, 이미 벌린 입을 재빨리 다물고 다시 누웠다.임원은 눈을 감고 어깨를 계속 떨며 우는 것 같았다.그러나 5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서, 그녀는 지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이 장면을 보고 진산군과 임학은 분노했다.임학은 심지어 욕설을 퍼부었다.“양심 없는 년! 아버지께서 이미 사람을 풀어주셨는데, 또 뭐 어쩌려고? 정말 원이를 죽게 만들 셈이야? 정암 때문에 네 눈에는 네 여동생의 목숨도 보이지 않니?”임학은 화가 나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그러나 김단은 천천히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았다.5일 동안 먹고 마시지 않았는데, 그녀는 지금 정말 그와 다툴 힘도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꼭 한마디 했을 것이다. 임원은 자기의 여동생이 아니라고!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희가 보낸 머슴애가 황급히 돌아왔다.이 머슴애는 별당 사람이다. 김단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려 말하는 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씨, 소인은 정암 종사관이 그의 아버지를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이
예전에 김단을 위해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지금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참!김단은 소리 내며 웃더니, 몸을 돌려 계속 풀을 뽑았다. 땅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이 숨어 있었다.“대감마님께서 정말 임 낭자를 아끼신다면 빨리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임 낭자는 굶어 죽어도 전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자, 김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진산군을 바라보았다.눈빛에 담긴 슬픔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비웃음만이 남아 있었다. “임 낭자는 대감마님의 유일한 딸이십니다.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진산군은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김단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솟구쳤다.“좋아! 좋아! 정말 이것으로 나를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너는 정말 이 아버지를 우습게 보는구나! 내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진산군은 김단에게 자기도 고집불통이라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그러나 김단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제 아버지의 성은 김씨 입니다. 벌써 죽었다고 들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손가락으로 김단을 가리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커다란 별당이 다시 썰렁해졌다.김단은 그제야 동작을 멈추고 다시 굳게 닫힌 정원 문을 보면서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정원 문이 다시 열릴 때는 3일 후였다.이때 김단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누워 힘이 조금도 없었다.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니 진산군이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화내며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배고픔이 극에 달했는지, 김단은 눈앞이 흐릿해져도 진산군이 오는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진산군의 뒤를 따르는 임학과, 뒤에서 누군가에게 이끌려 오는 임원의 모습을 뚜렷이 알아보았다.그녀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렸다.보
김단은 정원 문 뒤에 서서 어두운 밤 속에 가려진 연못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연못 물은 맞은편에 있는 초롱의 빛을 거꾸로 비추고 있었다. 약한 빛은 마치 언제든지 어둠에 삼켜 버릴 것만 같아 연못의 돌다리조차도 똑똑히 비추지 못했다.김단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야 돌다리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의 살쩍을 불었지만,연못은 미동도 없었다.김단은 자기가 마치 초롱의 빛이고, 부드러운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든 옛 가족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었다.이 순간, 그녀는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임원이 정말 마시지 않고 먹지 않는 한 진산군은 반드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김단의 짐작이 맞았다.이틀이 지나자, 진산군은 노기등등하여 별당으로 왔는데, 마침, 김단은 정원에서 김매고 있었다.초봄이 되어 화단의 잡초가 매우 빨리 자라서 제때 뽑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꽃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진산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걸 본 김단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두 손을 진산군을 향해 내보이며서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대감마님께서 오늘 오실 줄 몰랐습니다.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망할 년!”진산군은 노발대발하더니 손을 휘젓더니 엄하게 명령했다.“뒤져라!”갑자기 두 팀의 호위가 좌우로 나뉘어 줄지어 들어왔다.김단은 그제야 눈살을 찌푸렸다.“대감마님께서 무슨 뜻입니까?”진산군은 대답 없이 김단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팀의 호위는 또 모두 나왔다.“대감마님, 어떤 음식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대감마님, 저희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녀가 음식을 숨겨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진산군이 차갑게 소리치며 물었다.“너는 도대체 먹을 것을 어디에 숨겼느냐!”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서 임원은 침대에서 내려올 힘
진산군은 이 일을 알고 매우 화가 났다.김단이 별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산군댁의 호위들은 벌써 별당을 포위했다.호위장은 때마침 돌아온 김단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마님께서 오늘부터 큰 아씨를 별당에 연금하여 외출을 금지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김단은 이미 예상해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별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호위장은 또 김단을 막고,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큰 아씨께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오늘부터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마시지 말고, 먹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김단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말했다.“알겠으니,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김단이 이렇게 차분한 것을 보자, 호위장은 의아했다. 김단이 무슨 방법이 있어 연금에서 빠져나갈까 봐 작은 소리로 알려줬다.“대감마님께서 우리더러 별당을 엄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기간에 별당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못합니다. 명을 거역하는 자는 당장 죽이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은 김단이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밖의 사람과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예를 들면, 전에 몰래 그녀를 보러 왔던 정암을 말한다.하지만 지금, 김단이 걱정되는 사람은 정암이 아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대감마님께서 벌을 내린 사람은 나뿐이오. 내 마당의 하인과는 무관하오. 나를 가둬두기 전에 내 마당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오라 해도 되겠소?”이 말을 듣자, 호위장도 난감했다.“이러면...”“모두 살자고 일하는 것인데, 그들도 집에 살려 먹여야 할 사람이 있는데, 주인인 내가 잘못했다고 그들까지 연루해야 하오?”김단은 말하면서 머리에서 비녀 하나를 뽑아서 호위장 손에 넣어 줬다.“좀 봐주시죠.”이 비녀는 전에 궐에서 하사한 것이다. 비녀 위에 있는 진주만이라도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호위장은 바로 마음이 움직였다. 생각해 보면 김단의 말도 도리가 있다.더군다나, 진산군은 큰 아씨를 연금하라 했지, 미리 별당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