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강지한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설마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건가 싶어 머뭇거리다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미연아, 나 왔어.”들어가 보니 침대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는데 순간 강지한은 깜짝 놀라 온몸이 굳어졌다.침대 머리맡의 결혼사진은 틀이 깨진 채 신부 머리는 잘려 나가고 웨딩드레스만 남겨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온통 유리 파편이 널려져 있었다.강지한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한참 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그러다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문을 박차고 아래층에 대고 소리 질렀다.“아주머니, 빨리 올라와 보세요!”임혜자는 무슨 일인지 몰라 부리나케 위층으로 달려갔다.“도련님, 무슨 일이에요?”강지한은 마음속의 화를 애써 억누른 뒤 침실을 가리키며 물었다.“오늘 누가 침실에 들어왔어요?”임혜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그에게 답했다.“오늘 사모님만 침실에 들어갔고 누구도 오지 않았는데요? 왜요? 뭐 귀중한 물건이라도 없어졌을까요?”강지한은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미연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도련님께서 아까 나가시고 얼마 안 돼서 사모님도 나갔어요. 어디 가시냐고 물어보니까 급한 일이 있다고만 하시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도련님께 따로 연락하지 않으셨을까요?”임혜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심미연은 어디 가면 꼭 강지한에게 먼저 알려줬던 것 같은데 왜 오늘은 나가면서 아무런 말도 없었는지 의문스러웠다.강지한은 마음속의 불안이 점점 커지더니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내려가서 혹시나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는지 한번 물어봐요.”그는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애써 덤덤한 척했다.임혜자는 그렇게 방문을 나오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강지한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가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임혜자는 내려가서 모든 사람에게 한 바퀴 물어봤지만 누구도 심미연의 행방을 알지 못했고 그녀는 이제야
“미연 씨랑 완전히 깨진 거야? 그럼 찾으면 이제 내 차례네?”박시훈은 어차피 이제 강지한이 심미연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박시훈, 지금 너랑 농담할 기분이 아니니까 빨리 사람 풀어서 찾아봐.”강지한의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만약 박시훈도 못 찾는 거라면 심미연은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봐야 한다.“강지한,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줘. 미연 씨를 아직 사랑하지?”박시훈은 만약 그가 여전히 심미연을 좋아하는 거라면 여기서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다짐했다.친구의 여자를 뺏는 건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그러나 강지한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큰 소리로 답했다.“전혀!”그는 여전히 자존심을 부렸다.강지한의 말에 박시훈은 또다시 히죽거리며 말했다.“그럼 미연 씨를 찾아도 나만 볼 수 있게 어디 숨겨둬야겠다.”강지한은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박시훈, 싫다는 사람을 왜 억지로 데려가려고 해.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 전 아내였던 사람인데 들이대고 싶어?”“난 미연 씨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그게 네 전 아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데?”박시훈도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답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됐어. 난 그만 사람 찾으러 가야겠다.”박시훈과의 통화 뒤에 강지한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모태 솔로인 박시훈이 심미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그는 모든 잡생각을 다 집어치운 뒤 강준형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들려왔다.“미연이한테 사과했어? 용서는 받았어?”“혹시 오늘 미연이 만나셨어요?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어요?”강지한은 다짜고짜 그녀가 사라졌다고 할 수 없었기에 에둘러 물었다.“미연이가 사라졌어?”강준형의 물음에 강지한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에게 거짓말했다.“혹시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서 무슨 이야기 나눴나 궁금해서요.”보아하니 강준형을 만나러 가지도 않은 것 같았다.“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그런데 너한테는 비밀이야.”
강지한은 심미연이 이제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는데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살짝 벌렸지만 너무 떨려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용솟음쳐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 뒤 낮은 신음을 내뱉더니 곧바로 입에서 피를 쏟아내면서 픽 하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그리고 마치 온몸의 모든 공기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힘없이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성무진은 갑자기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떨리는 손으로 임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주머니, 혹시 지금 위층 안방에 가서 강 대표님이 괜찮은지 확인 할 수 있으실까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너무 걱정돼서요.”전화 받은 임혜자도 그의 말에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러나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녀는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킨 뒤 성무진을 위로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강지한은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방안에는 이미 피비린내가 가득 퍼져있었다.임혜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가능한 빨리 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그러나 기다리는 1분 1초가 너무 괴로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집 앞에 도착했고 의료진들은 신속하고 질서 있게 방에 들어가 강지한을 조심스럽게 들것에 옮겨 데리고 나갔다.임혜자는 구급차가 떠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강지한이 이 고비를 빨리 넘길 수 있도록 기도했다.그렇게 강지한은 빠르게 응급실로 옮겨졌다.응급처치가 끝난 뒤 그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는데 여전히 깨나지 못한 채 긴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은 마치 길고 인상 깊었던 영화와 같았는데 프레임마다 그가 심미연과 함께한 3
임혜자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말했다.“성 비서님께서 아까 사모님 유품을 가져왔더라고요. 그리고 둘째 도련님께서는 지금 응급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임혜자는 강지한이 너무 걱정되었고 혹시나 그에게 일이 생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강준형이 그들을 탓하지는 않을지도 걱정되었다.“네...”강준형을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순간 본가 쪽도 아수라장이 되어 집사들은 그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의사와 간호사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강준형은 깨어날 수 있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김준혁은 그가 깨어난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어르신,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강준형은 겨우 침상에서 일어나 앉더니 온 힘을 다해 집사에게 말했다.“지금 당장 성 비서한테 전화해서 그 팔찌를... 가져오라고 해.”성무진도 마침 병원에 있었기에 빠르게 그의 병실로 오게 되었고 오자마자 주머니에서 그 팔찌를 그에게 넘겨줬는데 조명 아래 비치니 더욱 반짝거리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다.강준형은 떨리는 손으로 팔찌를 건네받고 만져보다가 익숙한 촉감에 결국에는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문득 심미연의 해맑은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녀의 것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강준형은 마음이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팔찌를 움켜쥐고 몸을 잘게 떨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칼로 찌르기라도 한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순간 그는 마치 온 세상을 잃은 듯 끝없는 공허함과 절망에 빠져버렸다.김준혁은 그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어르신,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너무 흥분하시면 심장에 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잠깐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떠세요?”그러나 강준형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가 그토록 아끼던 심미연이 이렇게 떠나버렸다.시신도 남기지 않고 가버린 사실을 강지한이 깨어나 알게 되면 얼마나 절망적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3일 후, 강지한이 드디어
성무진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뻗어 신하린을 붙잡았다.“신하린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신하린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성무진의 손을 한입 물었다.“놔요!”성무진이 아파서 손을 놓자 신하린은 또 강지한을 덮쳤다.순간 강지한이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신하린은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신하린 씨, 지금 하린 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일은 우리 강 대표님과 무관해요.”성무진은 황급히 입을 열어 강지한을 대신해서 설명했다.신하린은 몸을 곧게 펴고 머리카락이 국에 젖은 강지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강지한 씨가 온지유를 밑도 끝도 없는 포용하지 않았다면 온지유가 어떻게 감히 미연이 앞에서 그렇게 날뛰고 방자할 수 있겠어요? 강지한 씨가 미연이를 믿지 않은 게 아니었다면 미연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억울함을 당할 수 있었을까요!”“강지한 씨, 그거 알아요? 미연이는 강지한 씨를 꼬박 10년 동안 사랑했어요!”심미연은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니 계산해 보면 심미연은 정말 강지한을 10년 동안 사랑했다.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자신을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는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강지한의 차가운 표정이 마침내 흔들렸다.심미연이 그를 10년 동안 사랑했다니, 이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성무진도 놀란 표정이었다.강 대표님의 부인이 강 대표님을 10년 동안 사랑했다니.10년이란 시간은 참 긴 세월인데 말이다.“강지한 씨, 나도 알아봤어요. 온지유가 안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잘 지낸다는데 이렇게 하면 미연이게게 미안하지 않아요?”신하린은 화가 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내렸다.그 악독한 여자가 미연이와 외할머니를 죽였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빌어먹을!강지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그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온지유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성무진은 그제야 반응하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그는 온지유를 잘 모시라고 당부했었다.설마...그들이
짝! 짝!맑은 따귀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서 터져 마치 여름에 갑자기 닥친 천둥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신하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엔 억울함과 한이 반짝이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흐느낌을 참으며 마치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이 간단한 동작을 통해 털어놓으려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눈앞에 별이 보이도록 얻어맞았지만 그 따가운 통증이 뺨에 번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려 했다. 머릿속에는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는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랐고 심미연의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함께 보낸 따스한 시간이 조수처럼 밀려와 그를 파묻었다.“만약 심미연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끝없는 슬픔과 후회를 품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많은 장애물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멀어졌지만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 모습을 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도 신하린의 마음속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용솟음쳤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서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확고했다.“강지한 씨, 무슨 자격으로 미연이를 언급해요? 강지한 씨가 뱉는 모든 글자가 미연이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에요!”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그 순간 더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 것처럼 극도로 팽팽해졌다.그러나 바로 이 긴장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강지한이 갑자기 웃었다. 그것은 일종의 씁쓸하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그래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미연이를 죽였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반드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신하린은 모든 슬픔을 삼킨 것 같은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 입가에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 속에는 풍자와 경멸이 숨어 있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졸렬한 연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허, 정말 가소롭네
신하린의 눈빛은 마치 두 개의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조금의 온도도 없이 이진영의 깊은 눈동자를 찔렀다. 그 눈빛에는 의외와 분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가 가득했다.“무슨 일이 있어요?”그녀의 말은 나지막하고 힘차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온 듯 거부할 수 없는 무거움을 띠고 있었다.이진영은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이 한마디를 뱉는 순간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암울하게 변했고 마음속에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그는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내디디며 꿈에도 그리지만 아득히 먼 이 그림자에 접근하려 했지만 신하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담함과 거부감은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그를 격리했다.“괜찮으시다면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들어오세요!”그녀가 계속 말했다. 말투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확고함과 결단만이 있었다.그녀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핏줄이 하얀 손등에 내비쳐 그녀의 마음속 거친 정서를 드러냈다.이 순간, 그녀는 더는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라 복수의 사신으로 변신하여, 죽은 절친을 위해 따지려는 듯했다.이진영의 마음이 아프게 조여왔다. 그는 신하린의 증오로 가득 찬 두 눈을 바라보며 전례 없는 무력함과 고통을 느꼈다.그는 앞으로 나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위로해주고 싶고그녀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신하린의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두 사람은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긴장과 억압이 가득 차 있어 마치 시간조차 이 순간에 정체된 것 같았다.“왜 아직도 안 가?”신하린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더는 이 남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는 복수의 불길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진영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충격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왕 만났으니 우리 얘기 좀 할까?”신하린은 가슴이 아파지는 걸 느끼며 입을 벌리고 그를 불렀다.“진영 씨.”그녀의
그는 후회했다.몹시 후회하다.하지만 이 세상에 후회 약은 없다!신하린은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풍자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여름 오후에 갑자기 들이닥친 소나기처럼 차갑고 격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곧바로 쳤다.“미연이는 이미 한 줌의 흙이 되었는데 강지한 씨의 이런 능청스러운 태도는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어 주위의 공기를 굳힌 것 같다.강지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입술을 감빨며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했으니 그 강렬한 통증은 조수처럼 세차게 밀려와 그를 삼킬 것 같았다.그는 두 손을 주먹으로 꽉 쥐었다.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고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마치 이렇게 해야만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것 같았다.신하린은 강지한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더니 시큰둥하고 비참함으로 가득 찬 어투로 말했다.“뒤늦은 정은 길가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들풀보다 더 비천해요.”강지한의 마음은 이 순간 유난히 무거웠다.신하린은 그런 그를 보고 또 계속 말을 이었다.“온지유의 일에 더는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우레와 같이 그의 귓가에 폭발했고, 글자마다 천근 무게로 대처할 수 없는 힘을 띠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단지 확고함과 냉혹함만이 있었는데 마치 이미 온지유의 비참한 미래를 예견한 것 같았다.“난 끼어든 적 없어요. 온지유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에요. 신하린 씨가 어떻게 상대하든 상관없어요.”강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쌀쌀하게 말했다.신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심미연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만들어낸 불꽃이었다.“말한 대로 하기를 바라요!”또박또박 말하고 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신하린이 문을 나서자마자 성무진이 초조한
신하린은 손을 뻗어 눈물을 훔치고 소민을 보며 말했다.“작업실을 팔고 이곳을 떠날 생각이야.”심미연이 죽었으니 이 도시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어졌고 동시에 그녀를 슬프게 하는 곳이 되었다.그녀는 이곳을 떠나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네? 왜요?”소민은 그냥 너무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다.“도시를 바꿔서 살고 싶어.”“도시 생활을 바꾸는 것보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사장님은 너무 열심히 사세요.”신하린은 웃으며 대꾸했다.“아마도.”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정말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싶다면 작업실을 남겨 뒀다가 밖에서 적응이 되지 않으면 돌아와요.”신하린은 눈앞의 소민을 보며 머릿속에 갑자기 생각이 스쳤다.‘미연이가 죽지 않고 단지 도시 생활을 바꾸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앞으로 그녀는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사장님, 왜 이렇게 쳐다보세요?”소민은 그녀의 눈빛에 어리둥절했다.신하린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팔을 벌리고 힘껏 그녀를 껴안고 감격에 겨워 말했다.“고마워.”소민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신하린은 이미 그녀를 놓아주고 사무실을 나갔다.심미연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그녀는 당연히 마음먹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심미연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면 그녀는 그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어야 하니깐 말이다.심미연은 정신을 차리고 책상 위의 심미연이라는 이름을 힐끗 보았다....성무진은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대표사무실로 갔다.강지한은 그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어때?”성무진은 고개를 저었다.“신하린 씨가 원하지 않아요.”강지한은 입술을 감빨며 대답했다.“알았어.”신하린이 이노 하이브의 프로젝트를 거절했다는 건 심미연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녀는 그를 미워하니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동시에 신하린이 연기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그럼, 계속 신하린 씨와 협력할 거예요?”“네가 할아버지에게 연락해서 프로젝트를 신하린 씨에게 줘.”전에 할아버지가 이 프
작업실에 갔을 때 성무진이 아직 있었다.성무진을 본 그녀는 놀라며 왜 아직 안 갔는지 의아했다.소민이 와서 조용히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제가 말했는데 꼭 여기에 앉아서 사장님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먼저 가서 일 봐. 내가 얘기 좀 할게.”신하린은 성무진이 가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강지한이 꼭 완성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와 잘 이야기할 생각이었다.“그냥 승낙하면 안 돼요?”소민은 이렇게 큰 장사를 거절하는 것이 정말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누가 들어오는 돈을 밖으로 밀어낸단 말인가.“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일도 있어. 이 일은 말하자면 기니 나중에 다시 너에게 알려줄게. 됐어, 너 먼저 가서 일해.”신하린이 소민을 밀었다.“참, 너 인터넷에 채용 정보를 하나 발표해.”소민이 가고 나서야 신하린은 성무진에게 다가가 소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성 비서님,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알고 있어요. 전에도 직원에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 전해달라고 했지만 지금 나는 다시 한번 직접 얘기할게요. 나는 강지한 씨가 페푸는 걸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요. 난 미연의 죽음으로 양심을 속이는 돈을 벌지 않을 거예요!”성무진은 신하린의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모습을 보면서 사모님과 절친이 된 이유를 알 같았다.품위도 있고 기개도 있는 모습이었다.만약 평소에 있었다면 그는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 이노 하이브와의 협력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이노 하이브와 협력하면 이 작업실은 곧 작은 회사로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뜻밖에도 거절하다니,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이 일은 강 대표님이 이미 결정했으니 거절하려면 직접 찾아가세요.”성무진은 아예 이 일을 강지한에게 떠넘겼다.강 대표님의 말이라면 들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강 대표님에게 전화해요. 내가 직접 말할게요.”신하린이 성무진을 보며 말했다.“그럼 잠깐
이진영은 땅에서 일어나더니 침대 옆에 서서 분노한 신하린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심미연은 이제 없어. 나마저 밀어내면 너의 곁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을 거야.”신하린은 침대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난 혼자가 되더라도 다시는 진영 씨와 함께 있지 않을 거예요!”약혼녀가 있는 남자에게 매달리다가 결국 자신만 다칠 것이니 마지막에 엉망진창으로 지는 것보다 좀 일찍 떠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신하린, 나한테 여자는 너 하나뿐이야. 다른 여자와 함께 있지 않았어.”이진영은 설명하려 했다.“나를 믿어줘.”신하린은 그의 얼굴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진영 씨가 그 여자와 함께 있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약혼한 사이라는 건 변하지 않을 거잖아요! 다른 여자가 있는데도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은 나를 죽이려는 거에요? 미연의 결말로 내가 정신 차리기에 충분하지 않아요?”만약 심미연이 조금 일찍 강지한을 떠났더라면 온지유가 그녀에 대한 적의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심미연의 외할머니도 죽이지 않을 것이고 그녀도 죽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 세상에는 만약이 없다.이런 사실 앞에서 그녀가 어떻게 이진영과 계속할 수 있겠는가.“심미연은 심미연이고 너는 너야! 나는 너를 위험하게 하지 않을 거라고!”이진영은 맹세하며 말했다.“진영 씨, 나는 진영 씨가 사랑하는 사람이 구아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진영 씨가 나를 곁에 둔 이유는 단지 내가 구아정이랑 조금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일 뿐이잖아요. 진영 씨, 난 이제 대역이 되고 싶지 않아요. 우리 그만 헤어지고 더는 나를 방해하지 말아요.”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말을 마침내 뱉고 나니 신하린은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이진영은 놀라서 멍하니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신하린...”그는 입을 벌리고 설명하려 했지만 신하린이 먼저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끊었다.“진영 씨, 그만 가요.”예전에는 그의 마음속에 사람이 있었고, 지금은 그의
“지한아,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온지유를 놓아줄 수 있는 거야?”육현성은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또 한마디 물었다.강지한은 눈빛을 그의 얼굴에 떨어뜨렸다.“이것이 바로 온지유의 결말이야. 아무도 바꿀 수 없어. 너는 그만 가봐.”강지한이 내쫓자 육현성의 안색은 극도로 나빠졌다.“너는 왜 이렇게 정이 없는 거야!”강지한은 그의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예전에 심미연도 같은 말을 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세계에는 냉랭한 사람만 존재했고 감정은 없었다.육현성은 그곳에 앉아 그의 모습이 2층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모든 감정을 누르고 천천히 일어섰다.이 순간 그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정을 깨달았다.원래 강하지 못하면 발밑에 밟힐 수밖에 없다.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어디 갔어?”오미경은 분노로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이다은과 결혼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만약 그가 이다은과 결혼할 수 있다면 이씨 가문의 세력이 생길 것이고 그는 서서히 강해질 것이다....신하린은 흐리멍덩하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채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멀쩡하던 심미연이 왜 이렇게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의 배 속에 있는 두 아이도...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얼마나 울었을까,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꿈속에서만 그녀는 심미연을 볼 수 있다.얼마나 지났는지 그녀의 침대 옆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신하린, 넌 왜 나에게 사랑을 좀 나누어 줄 수 없는 거야? 젠장, 넌 양심이 없는 년이야!”이진영의 목소리는 침대 위의 여자를 깨우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럽게 들려왔다.욕을 한 후 그는 옷을 벗고 이불을 젖히더니 이불 속에 누웠다.그가 눕자마자 여자의 몸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그를 껴안고
성무진은 신미연이 정말 바다에 빠졌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이런 말을 그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다.그렇지 않으면 강 대표님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니 말이다.“빨리 가서 이 일을 처리해. 난 기사를 불러 집에 갈 거야.”성무진은 서둘러 갈 수밖에 없었다.강 대표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강지한은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 욕실로 갔다.손으로 얼굴의 손자국을 어루만지며 신하린의 당시 슬프고 분노하던 모습을 떠올렸는데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만약 심미연이 죽지 않았다면 신하린에게 알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심미연이 죽었다면...강지한은 감히 더는 생각하지 못하고 재빨리 수도꼭지를 틀고 물로 얼굴을 씼었다.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확 들었다.씻고 옷 갈아입고 나니 기사도 도착했다.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침실은 이미 깨끗이 청소되어 공기 중에 은은한 향기가 났다.강지한은 또 그 넥타이를 보고 마음이 뒤숭숭해졌다.심이연이 그리웠고 그가 전에 했던 일도 떠올라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오후가 되자 육현성이 찾아왔는데 얼굴이 초췌하고 수염도 깎지 않아 의기소침해 보였다.강지한은 소파에 앉아 눈앞의 육현성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온지유는 이미 체포되었으니 절차가 끝나면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육현성이 온지유의 도주를 도운 일에 대해 그는 결코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넌 분명히 이미 모든 것을 안배했는데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육현성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온지유가 체포된 일에 대해 그는 사람을 찾아 경위를 똑똑히 묻고 나서야 자신이 철두철미한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강지한의 눈에는 그가 아마 우스운 꼬락서니였을 것이다.집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그는 강지한을 찾아 분명히 묻기로 했다.“내가 너에게 말했으면 너는 온지유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강지한은 찻잔
그는 후회했다.몹시 후회하다.하지만 이 세상에 후회 약은 없다!신하린은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풍자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여름 오후에 갑자기 들이닥친 소나기처럼 차갑고 격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곧바로 쳤다.“미연이는 이미 한 줌의 흙이 되었는데 강지한 씨의 이런 능청스러운 태도는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어 주위의 공기를 굳힌 것 같다.강지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입술을 감빨며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려 했으니 그 강렬한 통증은 조수처럼 세차게 밀려와 그를 삼킬 것 같았다.그는 두 손을 주먹으로 꽉 쥐었다.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고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마치 이렇게 해야만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것 같았다.신하린은 강지한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더니 시큰둥하고 비참함으로 가득 찬 어투로 말했다.“뒤늦은 정은 길가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들풀보다 더 비천해요.”강지한의 마음은 이 순간 유난히 무거웠다.신하린은 그런 그를 보고 또 계속 말을 이었다.“온지유의 일에 더는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우레와 같이 그의 귓가에 폭발했고, 글자마다 천근 무게로 대처할 수 없는 힘을 띠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단지 확고함과 냉혹함만이 있었는데 마치 이미 온지유의 비참한 미래를 예견한 것 같았다.“난 끼어든 적 없어요. 온지유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에요. 신하린 씨가 어떻게 상대하든 상관없어요.”강지한은 차가운 눈빛으로 쌀쌀하게 말했다.신하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심미연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과 슬픔이 만들어낸 불꽃이었다.“말한 대로 하기를 바라요!”또박또박 말하고 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신하린이 문을 나서자마자 성무진이 초조한
신하린의 눈빛은 마치 두 개의 날카로운 얼음 조각처럼 조금의 온도도 없이 이진영의 깊은 눈동자를 찔렀다. 그 눈빛에는 의외와 분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가 가득했다.“무슨 일이 있어요?”그녀의 말은 나지막하고 힘차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이 사이로 비집고 나온 듯 거부할 수 없는 무거움을 띠고 있었다.이진영은 몸을 살짝 움직였다. 그녀가 이 한마디를 뱉는 순간 그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암울하게 변했고 마음속에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그는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내디디며 꿈에도 그리지만 아득히 먼 이 그림자에 접근하려 했지만 신하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담함과 거부감은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그를 격리했다.“괜찮으시다면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가 나중에 들어오세요!”그녀가 계속 말했다. 말투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확고함과 결단만이 있었다.그녀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핏줄이 하얀 손등에 내비쳐 그녀의 마음속 거친 정서를 드러냈다.이 순간, 그녀는 더는 그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니라 복수의 사신으로 변신하여, 죽은 절친을 위해 따지려는 듯했다.이진영의 마음이 아프게 조여왔다. 그는 신하린의 증오로 가득 찬 두 눈을 바라보며 전례 없는 무력함과 고통을 느꼈다.그는 앞으로 나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위로해주고 싶고그녀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신하린의 눈빛은 너무 차가웠다.두 사람은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긴장과 억압이 가득 차 있어 마치 시간조차 이 순간에 정체된 것 같았다.“왜 아직도 안 가?”신하린이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녀는 더는 이 남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는 복수의 불길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진영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충격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왕 만났으니 우리 얘기 좀 할까?”신하린은 가슴이 아파지는 걸 느끼며 입을 벌리고 그를 불렀다.“진영 씨.”그녀의
짝! 짝!맑은 따귀 소리가 고요한 공간에서 터져 마치 여름에 갑자기 닥친 천둥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신하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엔 억울함과 한이 반짝이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흐느낌을 참으며 마치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이 간단한 동작을 통해 털어놓으려는 것 같았다.강지한은 눈앞에 별이 보이도록 얻어맞았지만 그 따가운 통증이 뺨에 번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는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려 했다. 머릿속에는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는 심미연의 모습이 떠올랐고 심미연의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함께 보낸 따스한 시간이 조수처럼 밀려와 그를 파묻었다.“만약 심미연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런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끝없는 슬픔과 후회를 품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멍한 눈빛으로.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많은 장애물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멀어졌지만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 모습을 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도 신하린의 마음속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용솟음쳤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서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손끝은 너무 힘을 주어 하얗게 질렸지만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확고했다.“강지한 씨, 무슨 자격으로 미연이를 언급해요? 강지한 씨가 뱉는 모든 글자가 미연이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에요!”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그 순간 더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 것처럼 극도로 팽팽해졌다.그러나 바로 이 긴장된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강지한이 갑자기 웃었다. 그것은 일종의 씁쓸하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그래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미연이를 죽였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반드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신하린은 모든 슬픔을 삼킨 것 같은 강지한의 얼굴을 보고 입가에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 속에는 풍자와 경멸이 숨어 있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졸렬한 연기를 비웃는 것 같았다.“허, 정말 가소롭네
성무진은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뻗어 신하린을 붙잡았다.“신하린 씨,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신하린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성무진의 손을 한입 물었다.“놔요!”성무진이 아파서 손을 놓자 신하린은 또 강지한을 덮쳤다.순간 강지한이 갑자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신하린은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신하린 씨, 지금 하린 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일은 우리 강 대표님과 무관해요.”성무진은 황급히 입을 열어 강지한을 대신해서 설명했다.신하린은 몸을 곧게 펴고 머리카락이 국에 젖은 강지한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강지한 씨가 온지유를 밑도 끝도 없는 포용하지 않았다면 온지유가 어떻게 감히 미연이 앞에서 그렇게 날뛰고 방자할 수 있겠어요? 강지한 씨가 미연이를 믿지 않은 게 아니었다면 미연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억울함을 당할 수 있었을까요!”“강지한 씨, 그거 알아요? 미연이는 강지한 씨를 꼬박 10년 동안 사랑했어요!”심미연은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러니 계산해 보면 심미연은 정말 강지한을 10년 동안 사랑했다.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자신을 다른 세계로 보내버렸는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강지한의 차가운 표정이 마침내 흔들렸다.심미연이 그를 10년 동안 사랑했다니, 이것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성무진도 놀란 표정이었다.강 대표님의 부인이 강 대표님을 10년 동안 사랑했다니.10년이란 시간은 참 긴 세월인데 말이다.“강지한 씨, 나도 알아봤어요. 온지유가 안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잘 지낸다는데 이렇게 하면 미연이게게 미안하지 않아요?”신하린은 화가 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내렸다.그 악독한 여자가 미연이와 외할머니를 죽였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빌어먹을!강지한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그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온지유의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성무진은 그제야 반응하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요.”그는 온지유를 잘 모시라고 당부했었다.설마...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