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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누구냐, 넌?
작가: 꼬꼬

제1화

작가: 꼬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09 18:38:27
우정을 과시하려고 우리 룸메이트 넷은 같은 폰 케이스를 샀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게 전에 내가 사용했던 폰 케이스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바로 기름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에 땀이 많아 그런 줄 알았다. 그날 해야 할 숙제가 많은 탓에 반나절 동안 휴대폰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밤에 봤을 때도 폰 케이스에 누런 기름기가 묻어있었다.

나머지 셋이 다 이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어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나절마다 닦아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절친 전희진에게 하소연했다. 그런데 그녀의 답장을 본 순간 마음이 움찔했다.

[기름기가 묻어나온다고? 인간의 가죽이니까 그렇지.]

화들짝 놀란 나는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젠장. 놀라게 하지 마.]

그런데 전희진은 나더러 폰 케이스를 빼고 홀로 밖에 나와 얘기하라고 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한 그때 전희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숙사 룸메이트 네 명 모두 같은 폰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에 그녀의 표정이 확 변했다.

“너희 기숙사에 죽은 사람이 숨어 있는 게 틀림없어.”

겁에 질린 나는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전희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제는 죽었다는 걸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죽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려 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 나에게 기숙사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폰 케이스에 기름기가 묻어난다는 말을 한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죽은 사람이 절대 알아차릴 리가 없다고 하자 전희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경찰에 신고하고 기숙사를 바꾸고 싶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혹시라도 죽은 사람을 잘못 찾아낼 경우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희진은 이제 보름만 지나면 방학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고 집에 온 다음에 같이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아무리 두려워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나는 대화 기록을 전부 지운 후 과일 가게에 들러 딸기를 사 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들어갔다.

기숙사로 돌아갔을 때 기숙사장 박예은은 자리에 없었다. 박예은은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지도 교수를 도와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에 소등하기 전에 돌아오곤 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를 시간조차 없는 박예은을 바로 배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 사람도 공부하기를 싫어하는데 죽은 사람이 그렇게 공부에 미쳤을 리가 없다.

나는 딸기를 먹고 있는 두 사람을 몰래 관찰했다.

이민주와 유하늘 중에 대체 누가 죽은 사람일까?

반학기나 함께 지낸 룸메이트가 죽은 사람이라니,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둔감해서 문제다. 여름방학이 거의 다 돼서야 이상함을 감지했으니 말이다.

보름, 딱 보름만 더 버티면 되었다.

나는 더는 그들을 관찰하지 않고 속으로 나 자신을 응원했다.

조별 과제를 잠깐 한 후 이민주는 메이크업하기 시작했다.

이민주는 우리 반 퀸카였는데 키가 크고 다리도 긴 데다가 얼굴까지 반반해서 대시하는 남학생이 끊이질 않았다.

이따가 남자 친구와 데이트할 겸 밥 먹으러 간다고 했다.

셋일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산 사람 한 명이 옆에 있으니까.

하지만 기숙사에 나와 유하늘만 남았을 때 나는 심장이 터져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녀가 혹시 눈치라도 챌까 봐 밥을 사러 나가겠다고 핑계를 댔다. 그런데 나의 팔을 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같이 가자.”

나는 유하늘의 표정을 살피려고 했지만 두꺼운 안경알에 가려져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냥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같이 가자.”

가로등이 식당으로 가는 길을 밝게 비춰주었고 길옆에 끌어안고 있는 커플들이 가득했다. 그래도 사람이 많아 마음이 안정되면서 겁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유하늘은 뭔가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긴장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면서 내 팔을 꽉 잡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얘가 죽은 사람은 아니겠지? 날 죽이려고 사람 없는 곳을 찾는 건가?’

어느새 나의 손에 땀이 흥건했다. 전희진이 했던 얘기가 문득 떠올라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늘아, 괜찮아? 몸이 안 좋으면 밥 사고 얼른 들어가자.”

유하늘이 고개를 돌렸는데 안색이 핏기라곤 없이 창백했다. 나는 그녀를 뿌리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계속 걱정하는 척했다.

시간이 마치 한 세기가 지난 듯했고 나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 그런데 그때 유하늘이 갑자기 나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다연아, 민주 이미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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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냐, 넌?   제2화

    나는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유하늘을 쳐다보았다. 두꺼운 안경알에 비친 나의 놀란 얼굴을 보고는 다급하게 표정을 관리했다.“하늘아, 너 미쳤어? 우리 맨날 민주랑 함께 살고 있는데 죽은 사람이라는 게 말이 돼? 공포 소설을 하도 많이 봐서 누굴 보든 다 귀신 같아서 그래...”제 발 저린 탓인지 나도 말이 많아졌다.나는 유하늘이 나를 속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믿지 않았다. 설령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의심만 할 것이기에 기숙사에서 대놓고 이 일을 얘기하진 않을 것이다.죽은 사람에게 딱 보름만 들키지 않으면 되었다.유하늘은 내가 계속 반박하자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주변의 공기마저 싸늘해져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었고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기숙사로 들어가면 얼른 밥 먹고 잠이나 자야지.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우리가 기숙사 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유하늘은 결국 참지 못했다. 나를 벤치에 앉히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그녀가 겪은 무서운 얘기를 꺼냈다.그날 유하늘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기숙사 문이 거의 닫힐 시간이라 커플들도 다 기숙사로 돌아갔고 이민주와 남자 친구만 밑에 있었다.우리 기숙사는 가장 뒤에 있어 뒤에 택배 보관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시간이면 택배 보관소도 문을 닫아 칠흑같이 어두웠다.어두운 가로등 밑에 이민주와 그녀의 남자 친구 두 사람만이 유하늘을 등진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여기까지 얘기하던 유하늘이 갑자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나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손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듣고 있는 나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등골이 오싹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나는 유하늘의 손을 꽉 잡았다.“그만 얘기해, 하늘아. 밤에 얘기하니까 무섭잖아.”그런데 유하늘이 두 눈을 부릅떴다.“안 돼. 내 얘기 꼭 다 들어야 해.”유하늘은 나의 어깨를 누르면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힘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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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냐, 넌?   제3화

    조금 전에는 내가 너무 경솔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많은 생각을 했다.유하늘에게 진실을 얘기해야 할까? 나는 아무도 없는 틈에 전희진과 상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민주도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나는 그대로 굳어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또 가겠다고 한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유하늘은 몰래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내가 옆에 있어 줄까?]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잠깐 생각하다가 또 문자를 보냈다.[너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환각이 보였나 봐. 룸메이트끼리 잘 지내야지. 너랑 민주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같은 헛소리를 할 필요까진 없잖아. 너무 황당해서 믿을 수가 없어.]유하늘은 더는 답장하지 않았다.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기숙사에 나와 이민주 단둘이 남게 되었다.나는 잠을 청하려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두려움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주변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슬리퍼와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겨우 시름을 놓았는데 마찰 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곧이어 나의 침대가 흔들렸다. 침대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나는 숨도 쉬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았다. 한 손으로 휴대폰을 꽉 잡았는데 이건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커튼이 열리면서 밝은 빛이 들어와 눈이 다 부셨다. 나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두 눈을 떴다.“이민주, 뭐 하는 거야?”그런데 이민주가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다가왔다.“다연아, 하늘이가 이미 죽은 것 같아.”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헛소리 아니야. 그날 남자 친구랑 벤치에 앉아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가려는데 하늘이가 베란다에 서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기억을 더듬는 이민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표정도 아주 진지했다.“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돼서는 베란다에 가만히 서 있었어. 난 걔가 산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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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냐, 넌?   제4화

    이민주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다연이한테 장난치고 있었어.”유하늘은 믿지 못하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장난치던 중이었어.”유하늘이 돌아온 후 기숙사는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 커튼을 빈틈없이 닫고 이불 속에서 울면서 전희진에게 문자를 보냈다.이젠 이민주가 죽은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나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이대로 더 있었다간 내가 죽게 생겼다. 이런 공포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전희진은 나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의 룸메이트가 미쳐 날뛰는 걸 보면 엄청 강한 귀신일 거라면서 직접 와보겠다고 했다.그녀는 내일 티켓을 구매했으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했다.소등하기 전에 다들 침대 위로 올라갔다.박예은은 이제야 기숙사로 들어왔다. 박예은이 씻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간 후에는 기숙사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에 빠졌다.이런 일이 생긴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긴장한 상태로 있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오늘의 기숙사가 이상하리만큼 더 조용한 것 같았다. 내가 숨을 죽일 때면 그 어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안에 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안 돼. 그만 생각하자. 생각할수록 더 무서워. 엄다연, 조금만 더 버텨. 하룻밤만 버티면 내일이면 괜찮아져.’나는 속으로 양을 세면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무서운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정수리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 나의 침대 커튼을 연 것이었다.‘이민주? 내가 걔 비밀을 알았다는 걸 알고 죽이러 왔나?’나는 머리가 쭈뼛 섰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음속의 공포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바로 그때 누군가가 손을 나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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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냐, 넌?   제5화

    기숙사가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졌다. 박예은이 스탠드를 켠 것이었다.그녀가 나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다연아, 왜 소리를 질러? 옆방에서 와서 시끄럽다고 욕하겠어.”산 사람의 온기에 나는 재빨리 박예은의 옆에 바짝 붙었다.“여기 귀신 있어. 얼른 도망치자.”박예은이 스탠드로 나의 침대를 비췄다. 텅 빈 게 아무것도 없었다.“귀신이라니? 아무것도 없어. 다연이 너 요즘 공포 영화 많이 봐서 꿈꾼 거 아니야?”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쳐다보았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내 두 눈으로 귀신을 봤어. 그리고 나한테 내 얼굴 가죽을 벗기겠다고 말도 했어...”박예은은 어이없어하며 내 얼굴을 가리켰다.“얼굴에 아무 상처도 없어.”나는 거울을 비춰보았다. 여전히 부드럽고 하얬고 벌건 자국도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악몽을 꿨나? 근데 아까 그 고통이 엄청 생생했는데 그게 다 꿈이라고?’나는 여전히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박예은은 나에게 귀신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다.“가죽이 없고 온몸이 피범벅인 데다가 흑갈색의 기름이 나오고 있었어. 그리고 눈동자가 하나였는데 고개를 숙이면 툭 떨어지더라고.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났고 말을 할 땐 입이 귀에까지 째졌어...”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계속 말했다.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젠 내 말 믿겠어? 직접 본 적이 없으면 이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을 리도 없잖아.”박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그렇게 생긴 거 맞아?”내가 대답하려는데 박예은의 얼굴 가죽이 벗겨지더니 떨어진 눈동자가 내 발 옆을 스쳐 침대 밑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나처럼 이렇게 생겼어?”순간 겁에 질린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 룸메이트 세 명이 옆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다연아, 방금 악몽 꿨어? 계속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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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냐, 넌?   제6화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설마 예은이도 이민주가 귀신인 걸 아나?’박예은은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나에게 말했다.사실 우리 기숙사 동에 계속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신입생을 모집하려고 다들 수군거리기만 할 뿐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박예은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만난 선배에게서 들었다고 했다.어느 날 소등 전에 돌아오다가 그 귀신을 만났는데 한바탕 심한 욕설을 퍼붓자 그냥 가버렸다고 했다.박예은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이것만 명심해. 그 귀신을 만나면 귀신이라고 소리를 질러. 그럼 모든 게 떠올라서 다신 널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왜 희진이가 얘기한 거랑 다르지? 희진이는 귀신인 걸 모르는 척하라고 했는데 예은이는 귀신이라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어. 완전히 다르잖아.’나는 박예은의 옷소매를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만약 계속 얘기하지 않으면?”박예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럼 계속 널 귀찮게 할 거야. 죽을 때까지.”내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박예은이 웃음을 터트렸다.“장난이야, 장난. 뭘 그렇게 놀라? 얼굴이 다 하얘졌어.”나는 더는 박예은을 신경 쓰지 않고 수심에 찬 얼굴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와 전희진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사이라 나를 해칠 리 없다고 믿었다.이민주와 유하늘은 다시 화해하고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걸 보더니 그 귀신에게 당한 거라면서 다 오해라고 했다.박예은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진실을 알았다. 학교에서 죽은 학생을 받을 리가 없었다.기숙사마다 고정 자리가 있다. 만약 룸메이트가 귀신이라면 나머지 그 학생은 어디서 잔단 말인가?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귀신이 사람에게 장난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지난번에 서로의 얼굴로 변하여 한꺼번에 두 사람에게 장난을 친 다음 비난하게 했다. 이젠 그 사실을 알았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들은 또 나에게 참지만 말고 귀신과 용감하게 맞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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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냐, 넌?   제7화

    한잠 푹 잔 바람에 정신이 너무도 맑았다. 부적이 있으니 귀신이 직접 찾아오길 기다렸다.박예은은 내가 놀라서 자지 못하는 걸 알고 스탠드를 빌려주었다.그녀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작 스태드일 뿐이라 별일이 없을 거로 생각하여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기숙사가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룸메이트들의 숨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나는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비수를 든 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앞을 주시했다.침대 모퉁이에 스탠드를 놓아 대낮처럼 환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나는 멍하니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머릿속에 무서운 장면이 계속 스쳐 지나갔다.결국 그 생각을 잊으려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안 그러면 귀신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놀라서 죽게 생겼다.전희진은 나에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고 했다.휴대폰을 잠깐 들여다보다가 목이 뻐근하여 자세를 고쳤다. 그런데 그 순간 스탠드가 스스로 꺼졌다.온몸이 갑자기 굳어졌고 등골이 오싹했다.“뭐야? 배터리가 다 나갔나?”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런데 스탠드가 꺼진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미약한 휴대폰의 불빛으로 비춰보았는데 가죽이 벗겨진 귀신의 얼굴이 나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그녀는 나를 쳐다보면서 검푸른 손가락으로 스탠드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계속 내 뒤에 있었던 거야? 부적이 있으면 들어오지 못한다며. 저 귀신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손을 떨면서 떨어뜨린 비수를 다시 주웠다. 나는 귀신에게 비수를 겨눈 채 전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통화연결음이 울리긴 했지만 받질 않았다.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내가 널 얼마나 믿었는데 날 속인 사람은 결국 너였어? 어떻게 날 속일 수가 있어?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나는 울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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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룸메이트들을 쳐다보았다. 웃고 있긴 했지만 입가가 찢어질 것처럼 괴이했다.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오늘 너무 늦었으니까 이만 올라가서 잘게.]나는 웃으면서 일어나 침대 위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박예은이 나를 꾹 눌러 자리에 앉혔다.하얗고 매끈하던 손가락이 점점 썩어들어갔고 손톱이 검푸르게 변하면서 길어졌다.“다연아, 어디 가려고?”이민주와 유하늘도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그래. 다연아. 어디 가?”“여기 남아서 우리랑 같이 살자. 우리 엄청 친하잖아.”세 사람의 얼굴 가죽이 다 벗겨졌다. 목소리도 이상할 정도로 날카롭게 변했다.나에게 빌려줬던 스탠드마저 장명등으로 변했다.이젠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전희진의 부적이 진짜 소용이 있었고 침대 위에서 봤던 귀신은 그저 속임수일 뿐이었다. 만약 계속 침대에 있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들이 나를 놀라게 한 다음 침대에서 끌어 내리려고 꾸민 일이었다.‘엉엉. 미안해, 희진아. 내가 널 의심했어.’나는 숨을 죽이고 풍겨오는 악취를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정말 피곤해서 그래. 올라가서 잘 테니까 너희들도 올라가서 자. 내일 수업도 있단 말이야.”나는 최선을 다해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두어 걸음 올라가기도 전에 발이 잡히고 말았다.이민주와 유하늘이 나를 바닥에 꾹 눌렀고 박예은이 검푸른 손톱으로 나의 얼굴을 만졌다.“우리 가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걸로 해. 이렇게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로 만든 폰 케이스라면 엄청 좋을 거야.”나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얼굴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고 극심한 두려움에 결국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내가 다시 깨어났을 땐 모든 게 사라지고 없었다.전희진이 밖에서 들어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와락 안겨 손을 놓지 않았다.“네가 날 구하러 올 줄 알았어.”너무 감동하여 울고 싶었지만 웬일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전희진이 냉랭

  • 누구냐, 넌?   제7화

    한잠 푹 잔 바람에 정신이 너무도 맑았다. 부적이 있으니 귀신이 직접 찾아오길 기다렸다.박예은은 내가 놀라서 자지 못하는 걸 알고 스탠드를 빌려주었다.그녀가 사람인지 귀신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작 스태드일 뿐이라 별일이 없을 거로 생각하여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기숙사가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룸메이트들의 숨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나는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비수를 든 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앞을 주시했다.침대 모퉁이에 스탠드를 놓아 대낮처럼 환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나는 멍하니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머릿속에 무서운 장면이 계속 스쳐 지나갔다.결국 그 생각을 잊으려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안 그러면 귀신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놀라서 죽게 생겼다.전희진은 나에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고 했다.휴대폰을 잠깐 들여다보다가 목이 뻐근하여 자세를 고쳤다. 그런데 그 순간 스탠드가 스스로 꺼졌다.온몸이 갑자기 굳어졌고 등골이 오싹했다.“뭐야? 배터리가 다 나갔나?”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런데 스탠드가 꺼진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미약한 휴대폰의 불빛으로 비춰보았는데 가죽이 벗겨진 귀신의 얼굴이 나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그녀는 나를 쳐다보면서 검푸른 손가락으로 스탠드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계속 내 뒤에 있었던 거야? 부적이 있으면 들어오지 못한다며. 저 귀신은 어디서 나타난 거지?’손을 떨면서 떨어뜨린 비수를 다시 주웠다. 나는 귀신에게 비수를 겨눈 채 전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통화연결음이 울리긴 했지만 받질 않았다.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내가 널 얼마나 믿었는데 날 속인 사람은 결국 너였어? 어떻게 날 속일 수가 있어?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몇 년인데...’나는 울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 누구냐, 넌?   제6화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설마 예은이도 이민주가 귀신인 걸 아나?’박예은은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나에게 말했다.사실 우리 기숙사 동에 계속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신입생을 모집하려고 다들 수군거리기만 할 뿐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박예은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만난 선배에게서 들었다고 했다.어느 날 소등 전에 돌아오다가 그 귀신을 만났는데 한바탕 심한 욕설을 퍼붓자 그냥 가버렸다고 했다.박예은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이것만 명심해. 그 귀신을 만나면 귀신이라고 소리를 질러. 그럼 모든 게 떠올라서 다신 널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왜 희진이가 얘기한 거랑 다르지? 희진이는 귀신인 걸 모르는 척하라고 했는데 예은이는 귀신이라고 소리를 지르라고 했어. 완전히 다르잖아.’나는 박예은의 옷소매를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만약 계속 얘기하지 않으면?”박예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럼 계속 널 귀찮게 할 거야. 죽을 때까지.”내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박예은이 웃음을 터트렸다.“장난이야, 장난. 뭘 그렇게 놀라? 얼굴이 다 하얘졌어.”나는 더는 박예은을 신경 쓰지 않고 수심에 찬 얼굴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와 전희진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사이라 나를 해칠 리 없다고 믿었다.이민주와 유하늘은 다시 화해하고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걸 보더니 그 귀신에게 당한 거라면서 다 오해라고 했다.박예은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진실을 알았다. 학교에서 죽은 학생을 받을 리가 없었다.기숙사마다 고정 자리가 있다. 만약 룸메이트가 귀신이라면 나머지 그 학생은 어디서 잔단 말인가?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귀신이 사람에게 장난치기를 좋아한다고 했다.지난번에 서로의 얼굴로 변하여 한꺼번에 두 사람에게 장난을 친 다음 비난하게 했다. 이젠 그 사실을 알았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들은 또 나에게 참지만 말고 귀신과 용감하게 맞서 싸워야

  • 누구냐, 넌?   제5화

    기숙사가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졌다. 박예은이 스탠드를 켠 것이었다.그녀가 나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다연아, 왜 소리를 질러? 옆방에서 와서 시끄럽다고 욕하겠어.”산 사람의 온기에 나는 재빨리 박예은의 옆에 바짝 붙었다.“여기 귀신 있어. 얼른 도망치자.”박예은이 스탠드로 나의 침대를 비췄다. 텅 빈 게 아무것도 없었다.“귀신이라니? 아무것도 없어. 다연이 너 요즘 공포 영화 많이 봐서 꿈꾼 거 아니야?”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쳐다보았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내 두 눈으로 귀신을 봤어. 그리고 나한테 내 얼굴 가죽을 벗기겠다고 말도 했어...”박예은은 어이없어하며 내 얼굴을 가리켰다.“얼굴에 아무 상처도 없어.”나는 거울을 비춰보았다. 여전히 부드럽고 하얬고 벌건 자국도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악몽을 꿨나? 근데 아까 그 고통이 엄청 생생했는데 그게 다 꿈이라고?’나는 여전히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박예은은 나에게 귀신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었다.“가죽이 없고 온몸이 피범벅인 데다가 흑갈색의 기름이 나오고 있었어. 그리고 눈동자가 하나였는데 고개를 숙이면 툭 떨어지더라고.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났고 말을 할 땐 입이 귀에까지 째졌어...”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계속 말했다.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젠 내 말 믿겠어? 직접 본 적이 없으면 이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을 리도 없잖아.”박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그렇게 생긴 거 맞아?”내가 대답하려는데 박예은의 얼굴 가죽이 벗겨지더니 떨어진 눈동자가 내 발 옆을 스쳐 침대 밑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나처럼 이렇게 생겼어?”순간 겁에 질린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 룸메이트 세 명이 옆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다연아, 방금 악몽 꿨어? 계속 소리를

  • 누구냐, 넌?   제4화

    이민주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다연이한테 장난치고 있었어.”유하늘은 믿지 못하는 듯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장난치던 중이었어.”유하늘이 돌아온 후 기숙사는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침대 커튼을 빈틈없이 닫고 이불 속에서 울면서 전희진에게 문자를 보냈다.이젠 이민주가 죽은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나는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이대로 더 있었다간 내가 죽게 생겼다. 이런 공포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전희진은 나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의 룸메이트가 미쳐 날뛰는 걸 보면 엄청 강한 귀신일 거라면서 직접 와보겠다고 했다.그녀는 내일 티켓을 구매했으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했다.소등하기 전에 다들 침대 위로 올라갔다.박예은은 이제야 기숙사로 들어왔다. 박예은이 씻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간 후에는 기숙사 전체가 칠흑 같은 어둠에 빠졌다.이런 일이 생긴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긴장한 상태로 있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오늘의 기숙사가 이상하리만큼 더 조용한 것 같았다. 내가 숨을 죽일 때면 그 어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안에 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안 돼. 그만 생각하자. 생각할수록 더 무서워. 엄다연, 조금만 더 버텨. 하룻밤만 버티면 내일이면 괜찮아져.’나는 속으로 양을 세면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무서운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정수리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 나의 침대 커튼을 연 것이었다.‘이민주? 내가 걔 비밀을 알았다는 걸 알고 죽이러 왔나?’나는 머리가 쭈뼛 섰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음속의 공포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바로 그때 누군가가 손을 나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 누구냐, 넌?   제3화

    조금 전에는 내가 너무 경솔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많은 생각을 했다.유하늘에게 진실을 얘기해야 할까? 나는 아무도 없는 틈에 전희진과 상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민주도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나는 그대로 굳어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또 가겠다고 한다면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유하늘은 몰래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내가 옆에 있어 줄까?]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잠깐 생각하다가 또 문자를 보냈다.[너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환각이 보였나 봐. 룸메이트끼리 잘 지내야지. 너랑 민주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같은 헛소리를 할 필요까진 없잖아. 너무 황당해서 믿을 수가 없어.]유하늘은 더는 답장하지 않았다.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기숙사에 나와 이민주 단둘이 남게 되었다.나는 잠을 청하려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두려움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주변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슬리퍼와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겨우 시름을 놓았는데 마찰 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곧이어 나의 침대가 흔들렸다. 침대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나는 숨도 쉬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았다. 한 손으로 휴대폰을 꽉 잡았는데 이건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커튼이 열리면서 밝은 빛이 들어와 눈이 다 부셨다. 나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두 눈을 떴다.“이민주, 뭐 하는 거야?”그런데 이민주가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다가왔다.“다연아, 하늘이가 이미 죽은 것 같아.”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었다.“그게 무슨 헛소리야?”“헛소리 아니야. 그날 남자 친구랑 벤치에 앉아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가려는데 하늘이가 베란다에 서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기억을 더듬는 이민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표정도 아주 진지했다.“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돼서는 베란다에 가만히 서 있었어. 난 걔가 산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해.

  • 누구냐, 넌?   제2화

    나는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유하늘을 쳐다보았다. 두꺼운 안경알에 비친 나의 놀란 얼굴을 보고는 다급하게 표정을 관리했다.“하늘아, 너 미쳤어? 우리 맨날 민주랑 함께 살고 있는데 죽은 사람이라는 게 말이 돼? 공포 소설을 하도 많이 봐서 누굴 보든 다 귀신 같아서 그래...”제 발 저린 탓인지 나도 말이 많아졌다.나는 유하늘이 나를 속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믿지 않았다. 설령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인정하지 않는 한 의심만 할 것이기에 기숙사에서 대놓고 이 일을 얘기하진 않을 것이다.죽은 사람에게 딱 보름만 들키지 않으면 되었다.유하늘은 내가 계속 반박하자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주변의 공기마저 싸늘해져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파르르 떨었고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기숙사로 들어가면 얼른 밥 먹고 잠이나 자야지.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우리가 기숙사 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유하늘은 결국 참지 못했다. 나를 벤치에 앉히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그녀가 겪은 무서운 얘기를 꺼냈다.그날 유하늘은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기숙사 문이 거의 닫힐 시간이라 커플들도 다 기숙사로 돌아갔고 이민주와 남자 친구만 밑에 있었다.우리 기숙사는 가장 뒤에 있어 뒤에 택배 보관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시간이면 택배 보관소도 문을 닫아 칠흑같이 어두웠다.어두운 가로등 밑에 이민주와 그녀의 남자 친구 두 사람만이 유하늘을 등진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여기까지 얘기하던 유하늘이 갑자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나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손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듣고 있는 나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등골이 오싹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다 돋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만 했다.나는 유하늘의 손을 꽉 잡았다.“그만 얘기해, 하늘아. 밤에 얘기하니까 무섭잖아.”그런데 유하늘이 두 눈을 부릅떴다.“안 돼. 내 얘기 꼭 다 들어야 해.”유하늘은 나의 어깨를 누르면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힘이 어

  • 누구냐, 넌?   제1화

    우정을 과시하려고 우리 룸메이트 넷은 같은 폰 케이스를 샀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게 전에 내가 사용했던 폰 케이스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바로 기름기가 많다는 것이었다.나는 손에 땀이 많아 그런 줄 알았다. 그날 해야 할 숙제가 많은 탓에 반나절 동안 휴대폰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밤에 봤을 때도 폰 케이스에 누런 기름기가 묻어있었다.나머지 셋이 다 이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어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나절마다 닦아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결국 나는 참다못해 절친 전희진에게 하소연했다. 그런데 그녀의 답장을 본 순간 마음이 움찔했다.[기름기가 묻어나온다고? 인간의 가죽이니까 그렇지.]화들짝 놀란 나는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젠장. 놀라게 하지 마.]그런데 전희진은 나더러 폰 케이스를 빼고 홀로 밖에 나와 얘기하라고 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한 그때 전희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숙사 룸메이트 네 명 모두 같은 폰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에 그녀의 표정이 확 변했다.“너희 기숙사에 죽은 사람이 숨어 있는 게 틀림없어.”겁에 질린 나는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전희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그 전제는 죽었다는 걸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죽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려 할 것이라고 했다.그녀는 또 나에게 기숙사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곰곰이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폰 케이스에 기름기가 묻어난다는 말을 한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죽은 사람이 절대 알아차릴 리가 없다고 하자 전희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경찰에 신고하고 기숙사를 바꾸고 싶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혹시라도 죽은 사람을 잘못 찾아낼 경우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전희진은 이제 보름만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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