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은은 과거에 고정재를 깊이 사랑했다. 몇 년간 그를 쫓아다니는 것만으로 행복해했지만 얼마 전 어렵게 고정재를 포기하고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남자를 찾았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결혼을 결심하다니, 너무 성급한 건 아닐까?내가 메시지에 답하지 않자 윤다은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나 임신한 지 거의 두 달 됐어요.”그녀가 결혼하려는 이유였다.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 남자를 사랑해?]며칠 전 그녀가 의사와 통화하던 모습을 보며 그녀가 그 남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하지만 그 마음이 정말 사랑일까?[네. 사랑해요.]윤다은의 대답이었다.나는 그녀가 사랑으로 결혼하길 바랐고 진정한 사랑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랐다.[축하해, 다은 씨.]윤다은은 곧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수아 언니, 내 들러리 좀 해줄래요? 희연 선배도 부르려고요. 아, 맞다. 담현아도 초대하려고 해요.]윤다은이 담현아까지 초대할 생각이라니.그 둘이 그렇게 친했었나?[좋아, 어디에서 결혼할 거야?][금운시요. 우리 둘 다 거기에 가족이 있거든요.][알았어. 희연이랑 같이 갈게.][고마워요, 수아 언니.]나는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고 곧바로 최희연에게 윤다은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최희연이 바로 답장했다.[나도 방금 알았어. 한 달도 안 남았더라. 그런데 우리 둘이 누군가의 들러리를 서는 건 처음 아닌가? 너는 축의금을 얼마나 할 생각이야?][윤다은은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서 적당한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겠어. 그때 가서 정해야지. 고씨 가문의 형제들도 참석할 거야.]나는 지금 고현성과 마주치는 게 가장 싫었다.최희연이 물었다.[석지훈 씨도 너와 함께 가는 거야?]나는 옆에서 운전 중인 석지훈을 흘깃 바라보고 다시 시선을 돌리며 답장했다.[잘 모르겠어.]그때 가서 결정하면 되겠지.산 아래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담현아가 메시지를 보냈다.[고정재 씨의 여동생이 나를 들러리로 초대했어요. 그런데 나랑 그렇게 친
고정재는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가 담현아와 잘 되길 바랐다.잠시 후, 고정재에게서 답장이 왔다.[고마워, 꼬마 아가씨.]나는 휴대폰을 넣고 눈을 감고 쉬었다. 차 안은 내내 조용했다.석지훈은 대화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동성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아침을 먹지 않아 배가 너무 고팠기에 석지훈은 곧바로 차를 몰아 석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멀리서 저택 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과거에 자신을 석씨 가문의 미래 안주인이라 칭했던 여자였다.석지훈도 그 여자를 발견한 듯했고 그는 차를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운 후 안전벨트를 풀며 나에게 말했다.“저 여자가 날 찾은 건 어머니와 관련된 일일 거야.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 안에서 얌전히 기다렸다.석지훈은 차에서 내려 안정된 발걸음으로 석나은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의 표정은 모두 담담했지만 석나은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반면 석지훈의 깊고 차가운 눈동자에서는 냉랭함만이 느껴졌다.석나은은 석지훈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자 석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어 마디로 응답했다.내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결국 석나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세워둔 차를 타고 떠났다.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석지훈에게 다가갔다.그의 표정은 여전히 냉랭하고 어두웠고 나는 그의 손바닥을 살며시 잡으며 물었다.“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어머니가 나보고 다시 운성시로 오라고 하셨어.”‘우리는 방금 돌아왔는데.’나는 그에게 물었다.“그럼 갈 거예요?”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당분간은 가지 않을 거야.”석지훈은 나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갔다.저택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서재로 들어갔고 나는 아래층에서 차를 한 잔 우려 그의 서재로 가져갔다.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차가운
좋았던 기분은 석지훈 어머니의 메시지를 본 뒤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나는 석지훈이 눈치채는 것이 두려워 화면이 꺼질 때까지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고 기다렸다.그는 나를 말없이 한참 안고 있다가 조용히 일어나 나를 내려놓고 서재를 나섰다.나는 순순히 그의 뒤를 따랐고 그가 갑자기 멈춰서서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나도 멈춰 서며 물었다.“왜 그래요?”그가 부드럽게 말했다.“고양이처럼 따라다니지 말고.”나는 무심코 대꾸했다.“고양이는 도도해요. 오빠가 말하는 건 아마 강아지겠죠.”말을 하고 나서 순간적으로 입을 막았다. 석지훈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빠 못됐어요.”그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그가 계단 끝에 다다르자 뒤돌아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똥강아지,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해?”맙소사. 이 말은 정말 심쿵이었다.내 마음을 정확히 저격한 이 말에 나는 활짝 웃으며 달려가 그의 허리를 안았다.“오빠.”그는 단단한 팔로 내 허리를 감싸안으며 낮게 대답했다.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나 오빠 좋아해요.”석지훈은 얇은 입술을 살짝 다물고 웃음 띤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그의 턱 밑에 얼굴을 기대며 물었다.“그럼 오빠는 나 좋아해요?”그가 차분하게 말했다.“응.”나는 물러서지 않고 물었다.“응이라니,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아니에요?”내가 계속 물으니,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만 좀 해.”그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어서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하지만 드물게 보이는 그의 어색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 나는 장난스럽게 계속 물었다.“그럼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아니에요?”결국 석지훈은 말없이 나를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나는 그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해 살짝 서운했지만 그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집요하게 묻지는 않았다.계단을
석지훈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착하지.”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휴대폰을 가져왔다.원태웅의 번호를 찾아내는 동안에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나는 원태웅을 두려워했다. 그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고 그는 항상 나를 냉소적으로 대했었다.용기를 내어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그제야 그가 나를 차단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 사실을 석지훈에게 알렸다.그러나 그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대신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그의 비밀번호가 내 생일이라니!놀란 마음으로 물었다.“언제 바꾼 거예요?”그는 힐끗 나를 보며 말했다.“할 일 해.”나는 근심 어린 얼굴로 다시 물었다.“꼭 내가 셋째 오빠한테 말해야 해요?”“응, 상황이 긴박해.”긴박한 상황이라 해도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만큼 급하지는 않을 텐데.나는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가 일부러 나에게 원태웅에게 전화를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사실을.그는 우리가 화해하기를 바랐던 것이다.사실 이건 오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였다. 본래 내 잘못이었고 원태웅은 나에게 오랫동안 앙금을 품고 있었다.석지훈은 우리가 화해하기를 원했고 그의 의도를 이해한 나는 곧바로 그의 휴대폰을 열고 원태웅의 번호를 찾았다.한민수는 예전에 나에게 말했었다.“원태웅이 끝내 널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 네가 스스로 굽힐 필요는 없어.”하지만 그는 석지훈의 형제였고 석지훈은 나의 남자였다.나는 그가 우리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게다가 지금 석지훈은 나에게 화해의 기회를 준 것이다.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원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마 석지훈의 번호라서 그런지 그는 전화를 굉장히 빠르게 받았다.“형!”그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셋째 오빠.”원태웅이 놀
“저는 몰라요. 셋째 오빠는 알고 있어요?”내 말에 전화 너머에서 원태웅이 설명했다.“나와 한민수는 지훈이 형이 감옥에 갇혀 있던 시기에 그가 석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나중에 윤 비서에게 들으니 형이 예전에 친부모를 찾으려 했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찾지 못했고 단서 몇 가지만 알았던 모양이야.”“이후 유럽 세력 재건으로 바빠서 그 일을 잠시 접어둔 것 같아. 나는 그 일에 마음이 쓰이다가 그를 대신해 조사를 했고 얼마 전 그의 친부모를 찾았어. 그런데 아주 평범한 한인 가정이더라고...”석지훈이 나웨이에서 친부모를 찾으려 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다. 그때 나는 한민수의 속임수로 나웨이에 끌려가기도 했다.그곳의 작은 나무 오두막이 바로 석지훈이 태어난 곳이었다.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둘째 오빠도 알아요?”원태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어.”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왜요?”“그 부부는 지훈이 형 외에 세 아들과 두 딸이 더 있어. 막내는 겨우 아홉 살이고.내가 그냥 손님 신분으로 그 집에 가봤는데 그들은 정말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과거에 대해 물어봤어. 그들은 확실히 갓 태어난 아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했어...”“내가 그 아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그들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그 아이는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였고 그들에게 짐이었을 수도 있거든.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없을 거라고 했어. 아마 그들은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받는 걸 두려워할 거야.”원태웅은 석지훈이 실망할까 봐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태웅은 내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말했다.“과거 일은 더 이상 너와 따지지 않을게. 둘째 형이 이런 기회를 준 덕분에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거든.”
고정재도 예전에 나에게 경고했었다.함 집사는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를 회사의 여러 부서를 둘러보도록 안내했다.석씨 가문의 산업망은 매우 광범위했으며 저녁이 되어서야 모든 부서와 핵심 부서를 둘러볼 수 있었다.석씨 가문의 핵심 부서는 굉장히 특별했다.이 부서는 석씨 가문이 전 세계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력의 분포를 관리하며 세계에 대한 인식과 분석을 담당하고 있었다.또한 내가 처음 들어본 최씨 가문에 대한 정보도 이곳에 있었다.최씨 가문은 과거 정치 가문이었으며 상업적 활동은 크지 않았다.그러나 석지훈이 반년 전 쇠퇴한 이후 그들은 그의 유럽 세력을 신속히 흡수하며 부상했고 이제는 진유겸 다음가는 상업 거물이 되었다.나는 이 부서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되어 함 집사에게 물었다.“왜 전에 석씨 가문에 이런 핵심 부서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때 준 자료에도 없었잖아요.”함 집사는 침착하게 설명했다.“가주님, 석씨 가문의 핵심 부서는 수백 년간 쌓아온 석씨 가문의 권력 기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가주님께서 가문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석 집사님이 떠나시기 전 가주님을 점진적으로 교육하라는 지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배우실 수 있습니다.”나는 그가 숨긴 것에 대해 나무라지 않고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최씨 가문의 자료는 여기 있던데 지훈 오빠에 대한 자료는 없어요?”“아직 수집하지 못했습니다.”나는 의아하게 물었다.“최씨 가문의 자료는 그렇게 빠르게 업데이트되는데 왜 지훈 오빠 자료는 그렇지 않나요?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요?”“아닙니다. 다만 석 대표님 측의 보안이 매우 철저합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더 이상 조사할 필요 없어요.”함 집사는 놀라며 말했다.“그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함 집사님, 이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
석지훈은 공적인 자리에서 애정을 과시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그의 이름으로 개설된 SNS라니.나는 태블릿을 들고 팔로워가 100명도 안 되던 그의 계정이 순식간에 20만 명으로 늘어나는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오빠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네요!”함 집사는 내 감탄하는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의 명성은 항상 높았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고 그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셀 수 없었죠. 하지만 그 누구도 대표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으며, 그의 연락처를 얻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SNS 계정을 개설하셨으니 팬들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하지만 곧바로 약혼 소식을 발표했으니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이겠지요.”함 집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드물게 자신의 직책을 넘어선 말을 덧붙였다.“대표님 눈에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가주님 한 분뿐일 겁니다. 가주님, 제가 몇 년 동안 대표님과 함께 일하며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가주님께서는 평생 믿으셔도 될 사람입니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는 제가 평생을 맡길 만한 사람이에요.”나는 태블릿을 함 집사에게 건네고 휴대폰을 꺼내 계정 이름을 ‘연수아’로 변경했다.그리고 계정과 비밀번호를 함 집사에게 알려주며 인증을 부탁했다.함 집사는 빠르게 나를 석씨 가문의 대표로 인증했다.나는 이 계정으로 석지훈의 게시글을 다시 리트윗하려 했지만 인기 댓글 중 하나를 보고 놀랐다.어떤 사용자가 ‘원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을 남긴 것이었다.[흑흑, 드디어 석 대표님과 연수아 씨가 인연을 맺다니 감격스러운 순간이네요! 팬으로서 축하드립니다. 두 분 행복하세요!]이 귀여운 댓글을 보니 원태웅이 떠올랐다.우리가 사이가 틀어지기 전 그는 이런 성격이었다. 게다가 오늘 낮에 우리가 화해하지 않았던가.댓글 아래에는 나와 석지훈의 사진도 많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잘생겼고, 나도 여전히 아름답
나는 놀라며 물었다.“운산이요?”혹시 석지훈이 그 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한민수가 대답했다.“네. 원태웅 대신 유진이가 유럽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 원태웅과 석지훈이 별장에서 요리하고 있어요. 덕분에 저도 석지훈 요리를 처음 맛보게 생겼네요!”나는 살짝 질투를 자극하려는 듯 말했다.“오늘 점심도 오빠가 나한테 해줬거든요.”한민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자랑은 그만하시죠!”나는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열어 기사를 확인했다.석지훈의 게시물은 이미 ‘좋아요’가 백만 개 가까이 달렸고 내 팔로워 수는 10만을 넘어섰다.내 계정 아래에는 ‘원 대인’이라는 사용자가 댓글을 남겼다.“흑흑, 연수아 양이 제 댓글을 따라 하다니 감격이에요!”나는 낮게 웃으며 답을 남겼다.“셋째 오빠, 재밌어요?”잠시 후, 그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윤아야, 그렇게 대놓고 밝히면 어떡해!”그가 나를 ‘윤아’라고 부르는 걸 보니 이제 완전히 나를 용서한 것 같았다.나는 답장을 보냈다.“셋째 오빠, 이렇게 하면 팔로워 늘릴 수 있어요.”그는 요리하느라 바쁜 것 같았고 더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사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혹시 석지훈이 오늘 나에게 프러포즈하려는 걸까?그런 사람이 대중 앞에서 화려한 프러포즈를 할 것 같진 않았다.아마도 파티를 여는 것 자체도 큰 결심이었을 테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한 거라고 생각했다.사실 이 정도로만 해줘도 나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고 그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운산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9시였다. 그곳에서는 석만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가주님.”그는 나를 별장 정원안으로 아내한 후 다시 밖으로 나갔다.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북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듯했다.별장 정원은 화려한 네온 조명으로 가득했다.네온 불빛 아래에는 하
이 경악하는 목소리는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석지훈의 머리에서 악마 머리띠를 벗겨내고 돌아서며 웃었다.“하! 태웅 오빠도 여기서 놀고 있었어요?”원태웅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맨날 정색하고 차가운 지훈이 형이 악마 뿔 머리띠라니, 진짜 귀엽다.”석지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점점 버릇없어지는구나.”말에 담긴 협박을 알아챈 원태웅은 재빨리 잘못을 빌었다.“잘못했어. 난 태림이 그 녀석한테 가봐야겠다. 두 사람 데이트 방해 안 할게. 근데 형 이런 모습 보니까 진짜 인간적이야.”석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뭐야? 아직도 손에 못 넣었어?”원태웅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아이고, 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먼저 갈게. 나중에 봐!”원태웅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흰 셔츠를 입은 문태림이 심각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잔뜩 짜증 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것 같았다.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두 사람은 뭐예요?”두 남자가 놀이공원에 있는 게 좀 수상했다.석지훈은 원태웅의 비밀을 바로 털어놓았다.“둘이 썸씽 같은 건데, 몇 년째 아웅다웅하면서도 관계를 정확히 안 정했어.”나는 놀라서 말했다.“태웅 오빠가 게이!”석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호기심에 재빨리 물었다.“다른 비밀은 없어요? 오빠는 완전 정보통 같아요. 두 사람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말했잖아. 다들 나한테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고.”그들의 속마음이 석지훈에게는 그저 쓰레기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혹시 창피해서 화났어요?”남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아하게 물었다.“어?”“태웅 오빠에게 냉정한 모습 말고 다른 모습 들켜서요.”“상관없어. 우리 관람차 타러 가자.”석지훈은 내 손을 꼭 잡고 사건 현장을 벗어났다. 우리는 표를 사고 관람차에 올라탔다. 이 높이에서 바라보는 운성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기분이 좋아졌다.내가 석지훈의 어깨에 기대어 그의 뺨에 얼굴을
석지훈은 가볍게 웃었다.“정말 자기애가 너무 심하다니까.”나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또 물었다.“나한테 주는 게 아니에요?”석지훈은 대답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뒤따라가서 물었다.“뭐하려고요?”석지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글쎄? 우리 사모님은 뭐가 먹고 싶을까?”나는 주방에 들어가 석지훈의 팔을 안고 애교를 부렸다.“배 안 고파요. 얼른 나랑 얘기 좀 해요.”석지훈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데이트하고 싶다면서.”“지금 데이트 아니에요?”“우리 사모님 눈에는 이게 데이트인가 보네...”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우리 이따가 어디 가요?”“밥 먹고 놀이공원에 갈 거야.”나는 기뻐하면서 물었다.“오빠, 놀이공원 가봤어요?”석지훈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날 보면서 얘기했다.“장난치지 마.”나는 석지훈의 팔을 놓아주었다.석지훈은 얼른 요리를 시작했다. 열심히 집중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석지훈의 부상 때문에 우리는 간이 적게 된 요리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나는 석지훈이 만드는 모든 음식을 좋아했다. 음식의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이 중요한 거니까 말이다.전에는 항상 내가 고현성을 위해 요리하는 거였다.그래서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밥을 먹은 후 석지훈은 운전대를 잡고 나를 데리고 시 중심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갔다.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젊은 커플들이었다. 나와 석지훈은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누볐다.어두운 녹색 코트를 입은 석지훈은 오늘따라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그와 함께 반짝이는 악마 머리띠를 샀다.머리띠를 한 후, 내가 물었다.“예뻐요?”석지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응.”나는 손을 들고 물었다.“오빠도 같이할 거죠?”석지훈이 악마 머리띠를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당연히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석지훈의 입에서 나온 건 긍정의 대답이었다.나는 석지훈에게 악마
“나도 진실은 잘 몰라. 그래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어. 하지만 진서준의 죽음이 왕씨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해. 진유겸이 알아냈거든. 하지만 그걸 최희연이 알면 버티지 못할까 봐 알려주지 않은 거야.”만약 왕자현이 최희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최희연은 유일한 희망을 잃고 그대로 사라지려고 할 것이다.나는 그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럼 어떡해요?”“사람을 시켜서 이 일의 진실을 알아보게 할 거야. 하지만 진실을 알아내기 전에는 꼭 비밀을 지켜야 해. 희연 씨가 이 일을 발견하게 해서는 안 돼.”“만약 진실이...”석지훈이 되물었다.“그게 중요한가?”나는 멍해졌다. 그럼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석지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얘기했다.“윤아야, 만약 정말 진유겸의 말대로 왕자현이 이 모든 것을 저질렀다고 해도 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야. 희연 씨에게는 왕자현이 진실보다 더욱 중요하니까.”최희연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진실이 아닌 왕자현이다.왕자현은 최희연의 유일한 희망이다.그래서 진유겸이 이 비밀을 까밝히지 않은 것이었다.진유겸이 이것까지 생각해 주다니.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알겠어요.”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혔다.하지만 왕자현은... 왜 최희연을 속인 거지?“그래, 배고파?”석지훈이 수영장에서 나왔다. 나는 익숙한 듯 석지훈의 팔을 안고 얘기했다.“아니요. 오늘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석지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는데?”“서오가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제가 담현아한테 부탁했거든요. 하지만 이걸 엄마한테 들키면 안 돼요. 아, 그리고 오늘 시혁 오빠한테 이연 씨의 병에 대해 알려줬어요. 하지만 한민수의 전여친 일은 처리하기 어렵네요.”석지훈은 서오의 일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별장 안의 방으로 데려가면서 넌지시 물을 뿐이었다.“한민수의 전여친? 혹시 엄슬기라는 사람 말이야?”석지훈이 한민수의 전여친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나
석지훈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진유겸은 석지훈의 말을 듣고 더욱 골치 아파했다.깊은 한숨을 내뱉은 진유겸이 얘기했다.“최희연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정신이 불안정해.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몰라. 그런 최희연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이 왕자현인데, 내가 진실을 알려줬다가 최희연이 정말... 정말 무너지면 어떡해.”최희연은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았다.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석지훈이 옆에서 얘기했다.“왕자현에게 의지하는 사람이니, 네가 만약 왕자현을 빼돌린다면 희연 씨 상황도 악화될 거야.”“그냥 거짓말 속에서 살라고 해.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왕자현은 정말 최희연을 사랑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런 짓을 하지 못했을 거야.”석지훈이 물었다.“너는?”“응?”“너는 그렇게 떠나보낼 수 있어?”진유겸은 석지훈의 질문에 피식 웃고 대답했다.“나를 뼛속까지 싫어하는 사람이야. 이번 생에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야. 내가 잘못해서 그래.”“내가 예전에 너한테 경고했잖아.”한층 더 차가워진 봄바람이 불었다.진유겸은 몸을 일으키면서 얘기했다.“지금 와서 얘기해봤자 소용없어. 지훈아. 난 운성을 떠날 거야. 왕자현과 마주치면 또 피튀기는 전쟁이 시작될 거니까 말이야.”진유겸의 말을 들어보면 왕자현은 여전히 운성에 있는 것 같았다.최희연은 왕자현이 아이스랜드에 있다고 했는데...석지훈은 진유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진유겸을 석지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얘기했다.“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도 꽤 오래됐지? 서로 죽고 죽이고 싸우고 화해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가 드디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는데... 너라도 성공해서 다행이다. 나는... 완전히 실패야. 네 말을 잘 들을 걸 그랬어.”석지훈은 몸을 약간 틀어 진유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얘기했다.“내가 말릴 때 넌 한 번도 듣지 않았어. 사실 우리는 많이 닮았어. 하지만 시작점이 달랐지. 나는 항상 내가 석씨 가
나는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문자를 보냈다.연시혁은 바로 답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별장으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어디야.”나는 밤바람을 맞으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송이연의 일로 전화를 건 것이 분명했다.나는 문자 속에서 똑똑히 얘기했다.송이연에게 남은 날이 많지 않다고 말이다.“지금 운성에 도착했어.”그렇게 말하는 연시혁의 목소리는 약간 젖어있는 것 같았다.“수아야, 이제 어떡해?”하지만 그렇게 물어도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오빠, 그냥 옆에 같이 있어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부담스러워 할 거야.”연시혁의 울먹임을 들으면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수아야, 나 죽을 것 같아.”차는 바닷가에 멈춰 섰다. 나는 연시혁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절벽 위의 호화로운 별장이 눈에 들어왔다.석지훈이 아침에 별장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이 별장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나는 별장 근처로 걸어갔다.300미터쯤 남았을 때, 나는 별장의 수영장에 두 남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명은 수영장 끝에 앉아있었고 한 명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서 있었다.서 있는 사람은 바로 석지훈이었다.나는 단번에 그의 뒷모습을 알아보았다.하지만 앉아있는 건...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돌이킬 수 없어. 모든 걸 버리고 여길 떠날 거야.”진유겸의 목소리였다.“희연 씨는 네가 준 것들에 대해 흥미가 없을걸?”진유겸이 최희연에게 뭘 준다고?나는 갑자기 진유겸이 나한테 준 서류가 생각났다.“희연이가 원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석지훈이 물었다.“상처는 좀 어때?”“왕자현이 미친개처럼 내 뒤를 쫓고 있어. 상처는 장난 아니지. 그래도 왕자현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야.”왕자현이 진유겸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왕자현은 보기엔 부드러워도 사실을 아
다소 친하지 않은 오빠 말이다.예지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좋은 남자가 있다면 소개해줘요. 난 결혼하고 싶어요.”나는 웃으면서 얘기했다.“이제 나이가 몇이라고 그래요.”“빨리 결혼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예지한은 그저 담현아보다 한 살 정도 많아 보였다.나는 일부러 예지한을 떠보려 말했다.“피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맞아요. 그러니까 얼른 남자친구를 찾아야겠어요.”예지한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서 물었다.“소개해줄 사람 있어요?”“소개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죠.”예지한이 실망한 듯 얘기했다.“그렇게 어려워요?”그리고 묵묵히 계속 일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있는 최희연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 자현 씨가 아이스랜드로 갔어.”왕자현이 갑자기 아이스랜드로 갔다니?지금 아이스랜드로 가는 게 최희연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알 텐데...최희연은 왕자현이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나는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급한 일이 있으셨나 봐?”“잘 모르겠어.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아서. 아마 처리할 일이 있는 모양이야. 어젯밤에 떠났는데 여태까지 아무 소식도 없어.”“쓸데없는 생각 하지마.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최희연은 내 말의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쓸데없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자현 씨가 떠나니까 마음이 복잡하고 기분이 이상해.”담현아가 물었다.“왜 복잡해요?”“요즘 꿈에서 자꾸만 진유경이 나와.”“...”카페에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원래는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엄마, 무슨 일이에요?”“서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생겼어. 좀 도와줄...”나는 어머니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그 일에 대해서 이미 들었어요. 민수 오빠가 연락했거든요. 아까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게 했는데 서오를 노리고 있는 건 현성 씨와 유희진 검사예요. 한 명
유희진이 고현성의 약혼녀라니.나는 어젯밤 골목에서 한시윤을 때리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시윤을 때리고 있었다.그럼 그때 이미 날 알아봤을 텐데...게다가 그 여자는 그때도 고현성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여자는 악의 하나 없이 이 사건을 받겠다고 했다.하지만 유희진은 유씨 가문 사람 같지 않았다.오히려 유서정보다 더욱 고급스러웠다.하지만 유서정이 더 예쁘긴 했다.유희진에게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흘러내렸다.그런 카리스마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아마 오랜 시간 검사를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담현아가 설명했다.“고현성 씨는 정신을 차려보니 약혼녀가 생긴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나는 담현아를 보면서 물었다.“무슨 뜻이야?”“고현성 씨는 이 결혼을 수긍하지 않았지만 또 혼약을 깨트리지도 않았어요. 그냥 유희진 검사를 방패막이로 쓰고 있는 느낌이에요.”“그럼 유희진 검사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아무렇지 않아 하더라고요. 그 사람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그날 밤 골목에서 한시윤을 때린 이유는 분명 고현성 씨 때문인데, 고현성 씨 앞에서는 차갑게 구니까 말이에요.”“차갑게 군다고?”“아저씨가 알려줬는데 두 사람은 거의 연락하지 않는대요. 오늘도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결국 서오의 일로 엮인 거래요.”유희진이 서오를 주시하고 있는 건 분명 고현성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유희진이 어떻게 우리 사이의 일을 알고 있는 거지?신비스러운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유희진은 본인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에요. 유서경처럼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요.”“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가자. 일단 희연이를 만나러 가자. 아마 카페에 있을 거야. 아마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걸?”최희연을 떠올리면 저번의 일이 생각났다.마음속 상처가 잘 치유됐을련지. 걱정되었다.그 사건이 일어난 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나는 담현아와
어머니한테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들키면 어머니는 마음 아파할 게 분명하니까. 나를 탓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시겠지.내 머릿속에서 문득 한 단어가 스쳐 갔다.“경찰서에 간 거야?”“선배를 보러 갔어요. 그러다가 본 거예요. 선배의 사건이 엄청 어려운가 봐요. 무죄판결이 나기 어려울 정도래요.”“유희진 씨는 뭐라고 하셨어?”“아직 조사 중이래요.”담현아는 말을 마친 후 나한테 또 물었다.“수아 언니, 처음은 피가 나요?”“갑자기 그건 왜?”“어젯밤에... 그런데 피가 안 났어요.”“피가 안 날 수도 있어.”아니, 잠깐만담현아와 고정재가...?나는 속으로 기뻐했다.“그럼 다행이네요. 어제 피가 안 나서 아저씨가 저를 엄청 위로해줬거든요. 이것 때문에 기분도 안 좋았어요.”나는 고정재가 이런 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마치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사랑을 속삭이는 석지훈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남자는 참 신기한 동물이다. 평소에는 차갑고 도도해 보여도 운명적인 그 상대를 만나면 입안의 사탕처럼 달달하게 구니까 말이다.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좋네.”담현아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뭐가요?”“우리 모두 사랑받고 있잖아.”전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던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적어도 지금은 사랑받고 있으니까 말이다.그리고 건강하고 귀여운 아들과 딸도 있고.“나는 인생이 그냥 다 쉬웠어요.”담현아가 만족한 듯 얘기했다.“사업도 문제없었고 모든 일에 걸림돌이 없었어요. 만난 남자도... 너무 좋은 사람이고요. 태어나서부터 유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부럽네.”“하하, 자랑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이런 삶에 감사하다는 거지. 이제 경찰서로 갈까요?”“지금 경찰서로 가면 내 어머니랑 마주치는 거 아니야?”“그러면 먼저 어머님께 연락해봐요.”내가 어머니한테 연락하려는데 조민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서오가 죄를 지어서 경찰서에 있다고 말이다. “까다로운 일이야.”난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물어본 거예요. 거기 외전에 썼잖아요. 날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오빠의 의견이 궁금했어요.”나는 석지훈의 반응이 궁금했다.석지훈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워서 얘기했다.“이제 좀 졸리네. 너도 얼른 자. 내일 다시 얘기하자.”“...”석지훈이 새벽에 먼저 일어났다. 나는 멍한 상태로 겨우 눈을 떴다. 눈앞에서는 두 의사가 석지훈을 치료해주고 있었다.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석지훈의 상처를 확인했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치료를 받은 후 석지훈은 나더러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송이연이 아래층에 있었기에 석지훈은 아래층에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하긴 익숙하지 않으니 그럴 법도 하다.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 한 잔을 따랐다. 이때 마침 원태웅이 전화 와서 억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내 트위터 계정, 결국 사라졌어!”난 의아해하면서 물었다.“해결한 거 아니었어요?”“형이 아침에 트위터를 다운 받았나봐. 그리고 내 계정이 있는 걸 보고 또 윤승민한테 전화를 걸었다. 윤승민도 놀라서 얼른 처리하겠다고 했지. 그래서 결국... 심지어 윤승민은 근무 태도 불량으로 월급까지 깎였다. 하지만 공식계정은 아직 남아있어!”“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그러게. 내 트위터 계정을 삭제할 생각은 했지만 공식계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나 봐.”석지훈은 그저 원태웅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나?나는 윤승민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다. 그러자 윤승민이 대답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아직 공식계정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대감 트위터만 먼저 삭제했습니다.]윤승민이 일부러 공식계정을 지우지 않은 것이었다.[고마워요, 윤 비서님.]그리고 생각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깎인 월급은 함승윤 씨한테 얘기해서 더 얹어드리라고 할게요. 그리고 3개월 치 보너스도 드릴게요.]나는 기쁜 마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가 석지훈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그리고 물을 마시는 석지훈의 모습을 물끄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