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씨 가문에서는 담현아를 아주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다.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담현아의 존재는 노출되지 않았다.나도 최근에서야 담현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나는 마음속으로 감탄했지만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신의 은총을 받고 태어난 것이다. 게다가 담씨 가문 같은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니 담현아의 성장과 발전에 매우 유리했을 테다.나는 담현아에게 장미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며 메시지를 남겼다.[난 정말 너를 존경해. 완전히 감탄했어. 아, 그리고 내 스포츠카는 당분간 너에게 맡길게. 질릴 때가 되면 돌려줘. 네가 원하는 대로 경찰이 된다면 최신형 슈퍼카 한 대 선물로 줄게.]담현아는 단 한 글자만 보냈다.[네.]‘아휴, 정말 짧네.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니.’차는 거의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반경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우리 자기 집에 도착했어?”‘자기라니.’나는 반경우의 장난기 많은 성격을 알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문제는 지금 내 옆에 석지훈이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석지훈이 오해하는 걸 원치 않았다.더욱이 석지훈이 나와 다른 남자 사이의 이런 친밀한 대화를 듣고 나에게서 더 멀어질까 봐 두려웠다. 원태웅의 말에 의하면 석지훈은 자신에게 충실하고 스캔들이 없는 여자를 원한다고 했다.하지만 나는 온갖 스캔들을 갖고 있는 여자였다.나와 얽힌 남자만 해도 셋 넷은 된다.나는 문득 한때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연수아의 남자들이라는 글이 떠올랐다.남자들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쿡 찔렀다.나는 화를 내며 반경우에게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왜? 내가 널 자기라고 부르면 안 돼? 우리 서로 사랑했을 때는 거절하지 않았잖아. 지금은 석지훈이 생겼다고 나를 멀리하는 거야? 이거 완전 배은망덕하네.”반경우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목소리로 내게 따졌다. 이때 차가 아파트 앞에 도착했고 차가 멈추자마자 석지훈은 문을 열고 내렸다.마치 더 이상 나의 통
석지훈은 마치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지만 냉담하게 물었다.“어제 내가 한 말 잊었어?”나는 대답했다.“기억해요.”이 순간 석지훈은 너무 차가웠다. 아마도 석지훈은 나를 구하려고 경찰서에 온 걸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석지훈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오빠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그리고 나도 내가 오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요.”내가 말을 더 하려던 찰나 석지훈은 차갑게 내 말을 끊으며 아주 치명적인 질문을 던졌다.“내가 물을게. 만약 고현성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해도 네가 지금 나에게 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석지훈은 고현성이 살아 있다는 가정을 했지만 이런 가정을 누가 생각할까?나는 어떻게 석지훈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지 몰랐지만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말했을 거예요.”지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석지훈이었고 고현성은 이미 나의 과거였다.내 대답을 들은 석지훈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나는 석지훈이 미소를 짓는 것을 처음 봤다.그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내가 멍하니 석지훈의 손바닥을 쓰다듬고 있을 때 석지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너는 여전히 옛 감정 때문에 방황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명확해. 미안하지만 나는 너의 뜻에 따를 수 없어.”“오빠, 그럼 왜 나에게 그렇게.”석지훈은 마치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내 말을 끊고 무심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에게 친절하게 대했는지 묻는 건 너무 유치한 질문이야. 수아야,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논하기 전에 먼저 네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해. 고현성인지 아니면 난지.”석지훈은 계속 고현성을 언급하며 이상한 가정을 했다.나는 석지훈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고현성 얘기는 그만해요. 나도 딱 하나만 물을게요. 오빠는 날 좋아하긴 해요?”“어제 대답했잖아.”석지훈은 내가 쥐고 있는
그러나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그건 바로 석지훈이 나에게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석지훈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고현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석지훈은 내가 그에게 어떤 환상을 품고 있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석지훈은 내가 고현성이 살아 있다는 걸 알면 결국 고현성에게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나는 어떻게 고현성을 대해야 할까?나는 고현성과의 모든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야만 석지훈과의 관계에 작은 가능성이라도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 석지훈과 고현성 사이에서 나는 석지훈을 선택했다.나는 챙김을 받는 걸 좋아했고 사랑받고 보호받는 것이 좋았다.이 모든 것을 오직 석지훈만이 내게 줄 수 있다.고현성과 나는 결국 과거의 인연으로 남을 운명이었다.나는 그때 고현성과의 문제만 잘 해결하면 용기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마침 내가 몸을 돌려 아파트로 들어가려는 순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금운시의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어디야?”나는 깜짝 놀랐다.“현성 씨.”“그래, 나야.”고현성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나 아직 살아 있어. 건강히 네 옆으로 돌아왔어. 지금 운전해서 운성에 도착했는데 지금 어디야?”나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다.기쁨과 당혹감이 교차했지만 고현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러나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도망칠 수 없다면 차라리 담담히 맞이하기로 했다.나는 주소를 알려줬고 고현성은 가볍게 말했다.“지난 4개월 동안 난 계속 의식이 없었어. 미안해, 네 옆에 돌아오지 못해서. 널 힘들게 했어.”나는 고개를 저으며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힘든 건 오히려 고현성이었을 것이다.고현성이 차 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고현성과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고현성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말했다.“일단 차에 타. 널 데리고 갈 곳이 있어.”고현성은 꽤 고집스러웠다.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조수석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타자마자 고현성은 차의 문을 잠갔다. 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동안 계속 금운에 있었어요? 언제 깨어난 거예요?”고현성은 간단하게 대답했다.“얼마 되지 않았어.”“그럼 몸은 괜찮아요?”“괜찮아.”내가 차에 타고 나서부터 고현성은 무척 차가워 보였다. 나와 대화할 마음이 없는 듯한 그의 모습에 나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고현성은 차를 몰아 해변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나는 계속 어떻게 지금 나의 마음을 고현성에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현성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해변에 도착하자 고현성은 차를 멈췄다. 고현성은 안전벨트를 풀더니 내게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 바로 마셨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이런 느낌은 익숙했기에 별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고현성은 차 문을 열고 내려 모래사장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등은 쓸쓸해 보였다. 나도 그를 따라 내리려고 했는데 바로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고승철이었다.고승철이 왜 갑자기 나에게 전화했을까?나는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고승철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지금 어디 있니?”나는 의아해서 물었다.“무슨 일이세요?”“현성이 지금 네 옆에 있니?”나는 처음에는 있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요즘 고승철이 나를 대했던 태도가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부인했다.“아니요.”고승철은 멈칫하더니 놀란 듯 말했다.“현성이가.”고승철은 차분히 설명했다.“현성이 죽지 않았어. 3개월 동안 의식이 없었다가 깨어난 지는 한 달도 안 됐다.”‘깨어난 지 한 달이라고? 고현성은 방금 며칠 안 됐다고 했는데?’고승철은 잠시 말을
아직 석지훈에게 전화를 걸기도 전에 고현성이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가방에 숨기며 불안하게 말했다.“나 집에 가고 싶어요.”고현성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집에 가서 뭐 하려고?”“현성 씨, 뭔가 현성 씨가 좀 달라 보여요.”“응? 난 여전히 나야.”고현성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석지훈에게 건 전화가 연결됐을까?’만약 연결됐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고 싶었다.내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려 했지만 고현성은 강제로 나를 차 밖으로 끌어냈다.고현성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아니면 우리 지금 한 번 해볼까?”나는 두려움에 입술을 떨며 물었다.“무슨 뜻이에요?”나는 갑자기 고현성이 건네준 음료수가 떠올라 경악하며 물었다.“혹시 약을 탄 거예요?”“맞아.”고현성은 강한 힘으로 나를 차 밖으로 끌어냈고 나는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나는 다급하게 고현성을 노려보며 말했다.“이거 놔요.”“허. 네가 자초한 거 아니야? 내 형을 유혹하고 반경우를 유혹하더니 이제는 석지훈이야? 연수아, 넌 내가 너한테 잘못했다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네가 나한테 잘못한 거 아이야? 난 단지 네가 살아있길 바랐을 뿐이야. 근데 넌 나를 원망하면서도 한 번도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잖아.”고현성은 내 옷을 재빨리 벗겨냈고 나는 순식간에 그의 앞에 나체가 되었다. 나는 순간 공포에 휩싸여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제발 놔줘요.”만약 고현성이 오늘 밤 이런 짓을 저지른다면 나는 석지훈과 다시는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두려움이 밀려왔다.“고현성 씨, 제발 나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하지 마요. 당신의 이런 행동을 원망하지 않을게요. 차라리 나를 바다에 던져줘요. 날 건드리지 말고, 고현성.”고현성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몸은 아주 솔직한데? 이 약은 효과가 강해서 남자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네 몸이 견디지 못해 자궁에 손상을 줄 거야.”고현성은 악마처럼 웃었다.“이건 너를 위
석지훈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감정 없는 킬러처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했다.“날 이렇게 냉정하게 대하지 마요. 지훈 오빠, 난 정말 오빠를 많이 사랑해요. 제발 날 거절하지 말아줘요. 네?”나는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헛소리를 늘어놓았다.눈앞에 검은 정장을 입은 석지훈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러다 문득 냉랭하게 명령했다.“주변 모든 차량과 CCTV를 치우고 두 시간 뒤에 나를 데리러 와.”“네, 대표님.”그 목소리는 아마도 윤승민이었다.그들이 떠난 뒤에야 석지훈은 몸을 굽혀 바닥에 있는 나를 안아 올렸다.석지훈의 입술은 차갑기만 했다. 내가 아무리 키스하고 깨물어도 석지훈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막지 않았을 뿐 내게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았다. 석지훈은 나를 품에 안고 아주 단호하게 바닷가로 걸어갔다.나의 마음은 너무나 불안했다. 나는 석지훈의 얼굴을 감싸안고 그의 입술을 계속해서 빨아들였다. 입술 사이로 느껴지는 석지훈의 숨결은 청량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마치 거대한 산처럼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 같았다.그러나 석지훈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나는 석지훈의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키스를 이어갔고 나의 립스틱은 석지훈의 뺨에 잔뜩 묻었다. 나는 석지훈의 뺨을 따라 그의 귓불까지 깨물었다. 그러다 선을 더 넘으려는 순간 몸이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렸다.나는 물을 몇 번이나 들이마시며 거의 질식할 뻔했다. 그러던 중 차가운 느낌이 내 입술에 닿았고 곧이어 그의 숨결이 내 입술 사이로 전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숨결을 탐했다.석지훈은 갑자기 나를 놓아주더니 나의 머리를 바닷물 속에서 꺼내줬다. 그러자 석지훈의 단정했던 정장이 이미 물에 젖어 흐트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밤의 어둠 속에서 석지훈의 야성적인 매력이 더욱 돋보였다.석지
처음 석지훈을 만났을 때도 나는 그의 방에서 깨어났다. 그때도 발코니에 나가자 석지훈은 아래에서 여유롭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석지훈은 마치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남자처럼 너무나도 잘생겼다. 거의 모든 부분이 정교하고 완벽했다. 그에게서 풍기는 독특한 기품을 나는 다른 남자들에게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고독하면서도 오만한 분위기가 마치 세상에 석지훈 혼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머지는 그저 보잘것없는 먼지에 불과한 듯했다.나는 난간을 잡고 그를 불렀다.“오빠.”석지훈은 눈을 들어 강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어젯밤 내가 그에게 한 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나는 석지훈에게 나를 책임질 필요 없다고 말했다.나는 이 일로 석지훈을 협박해 나와 함께하도록 강요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석지훈에게 기대고 싶었다.나는 부드럽게 그를 다시 불렀다.“오빠.”석지훈은 깊고 차가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짧게 대답했다.“왜?”“어젯밤.”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멈췄다.석지훈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고 어젯밤의 일에 대해 어떤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갑자기 나는 어젯밤 우리가 겪었던 일이 아무 의미도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먼저 다가갔고 모든 일은 내가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어젯밤 일로 오빠를 강요하거나 부담 주지 않을게요. 그리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석지훈의 눈이 살짝 가늘어지는 것을 보고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오빠. 곧 떠날게요.”내 말을 듣고 석지훈의 눈빛은 완전히 어두워졌다.나는 방으로 달아와 내 가방이 옆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 가방은 아마도 어젯밤 고현성이 떠나기 전에 차에서 던져 놓은 것 같았다.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석지훈과의 통화 기록이 약 3시간이나 이어져 있었다.즉 석지훈은 전화를 끊지 않았던 것이다.고현
고승철은 고현성이 나를 해치고 복수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고승철은 무슨 내막을 알고 있는 걸까?고승철은 지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말했다.“수아야.’나는 인내심을 갖고 물었다.“현성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고승철이 대답했다.“현성이가 한 달 전에 막 깨어났을 때 예상치 못하게도 유서정이 우리가 없는 틈을 타 심리 상담사를 불러 최면을 걸었다. 현성이가 너를 증오하도록 말이야. 하지만 현성이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어. 현성이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다 보니 두 가지 성격이 생긴 거야. 하나는 너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너를 미치도록 증오하는 성격이지. 현성이는 네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현성이의 마음속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너뿐이었단다.”이 말을 듣자 나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깊은숨을 내쉬고 물었다.“치료될 수 있나요?”“현성이는 지금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어.”어젯밤 고현성이 갑자기 멈춘 것은 그의 다른 성격이 깨어났기 때문일 것이다.지금 고현성은 분명히 자신이 나를 상처 입혔다고 생각하며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이 모든 건 다 유서정의 계략 때문이었다.나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유씨 가문을 파멸시키겠다고 다짐했다.나는 옷장을 열어 등이 완전히 드러나는 성숙한 느낌의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하지만 거울을 보니 등에 멍이 들어 있었다.결국 보수적인 디자인의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내가 떠나려는 순간 문 앞에 윤승민이 기다리고 있었다.윤승민의 옆에는 안경을 쓴 흰 가운 차림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저 사람은 누구죠?”윤승민이 말했다.“최면 전문가입니다.”나는 놀라서 물었다.“이게 무슨 일이죠?”“대표님께서 어젯밤의 일은 없었던 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연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단지 어젯밤 바닷가에서 두 분이 함께 있었던 기억만 지우는
이 경악하는 목소리는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석지훈의 머리에서 악마 머리띠를 벗겨내고 돌아서며 웃었다.“하! 태웅 오빠도 여기서 놀고 있었어요?”원태웅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맨날 정색하고 차가운 지훈이 형이 악마 뿔 머리띠라니, 진짜 귀엽다.”석지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점점 버릇없어지는구나.”말에 담긴 협박을 알아챈 원태웅은 재빨리 잘못을 빌었다.“잘못했어. 난 태림이 그 녀석한테 가봐야겠다. 두 사람 데이트 방해 안 할게. 근데 형 이런 모습 보니까 진짜 인간적이야.”석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뭐야? 아직도 손에 못 넣었어?”원태웅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아이고, 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먼저 갈게. 나중에 봐!”원태웅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흰 셔츠를 입은 문태림이 심각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잔뜩 짜증 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것 같았다.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두 사람은 뭐예요?”두 남자가 놀이공원에 있는 게 좀 수상했다.석지훈은 원태웅의 비밀을 바로 털어놓았다.“둘이 썸씽 같은 건데, 몇 년째 아웅다웅하면서도 관계를 정확히 안 정했어.”나는 놀라서 말했다.“태웅 오빠가 게이!”석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호기심에 재빨리 물었다.“다른 비밀은 없어요? 오빠는 완전 정보통 같아요. 두 사람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말했잖아. 다들 나한테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고.”그들의 속마음이 석지훈에게는 그저 쓰레기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혹시 창피해서 화났어요?”남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아하게 물었다.“어?”“태웅 오빠에게 냉정한 모습 말고 다른 모습 들켜서요.”“상관없어. 우리 관람차 타러 가자.”석지훈은 내 손을 꼭 잡고 사건 현장을 벗어났다. 우리는 표를 사고 관람차에 올라탔다. 이 높이에서 바라보는 운성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기분이 좋아졌다.내가 석지훈의 어깨에 기대어 그의 뺨에 얼굴을
석지훈은 가볍게 웃었다.“정말 자기애가 너무 심하다니까.”나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또 물었다.“나한테 주는 게 아니에요?”석지훈은 대답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뒤따라가서 물었다.“뭐하려고요?”석지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글쎄? 우리 사모님은 뭐가 먹고 싶을까?”나는 주방에 들어가 석지훈의 팔을 안고 애교를 부렸다.“배 안 고파요. 얼른 나랑 얘기 좀 해요.”석지훈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데이트하고 싶다면서.”“지금 데이트 아니에요?”“우리 사모님 눈에는 이게 데이트인가 보네...”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우리 이따가 어디 가요?”“밥 먹고 놀이공원에 갈 거야.”나는 기뻐하면서 물었다.“오빠, 놀이공원 가봤어요?”석지훈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날 보면서 얘기했다.“장난치지 마.”나는 석지훈의 팔을 놓아주었다.석지훈은 얼른 요리를 시작했다. 열심히 집중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석지훈의 부상 때문에 우리는 간이 적게 된 요리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나는 석지훈이 만드는 모든 음식을 좋아했다. 음식의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이 중요한 거니까 말이다.전에는 항상 내가 고현성을 위해 요리하는 거였다.그래서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밥을 먹은 후 석지훈은 운전대를 잡고 나를 데리고 시 중심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갔다.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젊은 커플들이었다. 나와 석지훈은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누볐다.어두운 녹색 코트를 입은 석지훈은 오늘따라 더욱 부드러워 보였다. 나는 그와 함께 반짝이는 악마 머리띠를 샀다.머리띠를 한 후, 내가 물었다.“예뻐요?”석지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응.”나는 손을 들고 물었다.“오빠도 같이할 거죠?”석지훈이 악마 머리띠를 쓴다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당연히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석지훈의 입에서 나온 건 긍정의 대답이었다.나는 석지훈에게 악마
“나도 진실은 잘 몰라. 그래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어. 하지만 진서준의 죽음이 왕씨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해. 진유겸이 알아냈거든. 하지만 그걸 최희연이 알면 버티지 못할까 봐 알려주지 않은 거야.”만약 왕자현이 최희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최희연은 유일한 희망을 잃고 그대로 사라지려고 할 것이다.나는 그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럼 어떡해요?”“사람을 시켜서 이 일의 진실을 알아보게 할 거야. 하지만 진실을 알아내기 전에는 꼭 비밀을 지켜야 해. 희연 씨가 이 일을 발견하게 해서는 안 돼.”“만약 진실이...”석지훈이 되물었다.“그게 중요한가?”나는 멍해졌다. 그럼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석지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얘기했다.“윤아야, 만약 정말 진유겸의 말대로 왕자현이 이 모든 것을 저질렀다고 해도 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거야. 희연 씨에게는 왕자현이 진실보다 더욱 중요하니까.”최희연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진실이 아닌 왕자현이다.왕자현은 최희연의 유일한 희망이다.그래서 진유겸이 이 비밀을 까밝히지 않은 것이었다.진유겸이 이것까지 생각해 주다니.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알겠어요.”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혔다.하지만 왕자현은... 왜 최희연을 속인 거지?“그래, 배고파?”석지훈이 수영장에서 나왔다. 나는 익숙한 듯 석지훈의 팔을 안고 얘기했다.“아니요. 오늘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석지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 있었는데?”“서오가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제가 담현아한테 부탁했거든요. 하지만 이걸 엄마한테 들키면 안 돼요. 아, 그리고 오늘 시혁 오빠한테 이연 씨의 병에 대해 알려줬어요. 하지만 한민수의 전여친 일은 처리하기 어렵네요.”석지훈은 서오의 일에 관해서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별장 안의 방으로 데려가면서 넌지시 물을 뿐이었다.“한민수의 전여친? 혹시 엄슬기라는 사람 말이야?”석지훈이 한민수의 전여친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나
석지훈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진유겸은 석지훈의 말을 듣고 더욱 골치 아파했다.깊은 한숨을 내뱉은 진유겸이 얘기했다.“최희연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정신이 불안정해.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몰라. 그런 최희연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이 왕자현인데, 내가 진실을 알려줬다가 최희연이 정말... 정말 무너지면 어떡해.”최희연은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았다.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석지훈이 옆에서 얘기했다.“왕자현에게 의지하는 사람이니, 네가 만약 왕자현을 빼돌린다면 희연 씨 상황도 악화될 거야.”“그냥 거짓말 속에서 살라고 해.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왕자현은 정말 최희연을 사랑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런 짓을 하지 못했을 거야.”석지훈이 물었다.“너는?”“응?”“너는 그렇게 떠나보낼 수 있어?”진유겸은 석지훈의 질문에 피식 웃고 대답했다.“나를 뼛속까지 싫어하는 사람이야. 이번 생에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야. 내가 잘못해서 그래.”“내가 예전에 너한테 경고했잖아.”한층 더 차가워진 봄바람이 불었다.진유겸은 몸을 일으키면서 얘기했다.“지금 와서 얘기해봤자 소용없어. 지훈아. 난 운성을 떠날 거야. 왕자현과 마주치면 또 피튀기는 전쟁이 시작될 거니까 말이야.”진유겸의 말을 들어보면 왕자현은 여전히 운성에 있는 것 같았다.최희연은 왕자현이 아이스랜드에 있다고 했는데...석지훈은 진유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진유겸을 석지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얘기했다.“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도 꽤 오래됐지? 서로 죽고 죽이고 싸우고 화해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가 드디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는데... 너라도 성공해서 다행이다. 나는... 완전히 실패야. 네 말을 잘 들을 걸 그랬어.”석지훈은 몸을 약간 틀어 진유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얘기했다.“내가 말릴 때 넌 한 번도 듣지 않았어. 사실 우리는 많이 닮았어. 하지만 시작점이 달랐지. 나는 항상 내가 석씨 가
나는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문자를 보냈다.연시혁은 바로 답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별장으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어디야.”나는 밤바람을 맞으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송이연의 일로 전화를 건 것이 분명했다.나는 문자 속에서 똑똑히 얘기했다.송이연에게 남은 날이 많지 않다고 말이다.“지금 운성에 도착했어.”그렇게 말하는 연시혁의 목소리는 약간 젖어있는 것 같았다.“수아야, 이제 어떡해?”하지만 그렇게 물어도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오빠, 그냥 옆에 같이 있어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부담스러워 할 거야.”연시혁의 울먹임을 들으면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수아야, 나 죽을 것 같아.”차는 바닷가에 멈춰 섰다. 나는 연시혁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절벽 위의 호화로운 별장이 눈에 들어왔다.석지훈이 아침에 별장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이 별장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나는 별장 근처로 걸어갔다.300미터쯤 남았을 때, 나는 별장의 수영장에 두 남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 명은 수영장 끝에 앉아있었고 한 명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서 있었다.서 있는 사람은 바로 석지훈이었다.나는 단번에 그의 뒷모습을 알아보았다.하지만 앉아있는 건...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돌이킬 수 없어. 모든 걸 버리고 여길 떠날 거야.”진유겸의 목소리였다.“희연 씨는 네가 준 것들에 대해 흥미가 없을걸?”진유겸이 최희연에게 뭘 준다고?나는 갑자기 진유겸이 나한테 준 서류가 생각났다.“희연이가 원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석지훈이 물었다.“상처는 좀 어때?”“왕자현이 미친개처럼 내 뒤를 쫓고 있어. 상처는 장난 아니지. 그래도 왕자현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야.”왕자현이 진유겸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왕자현은 보기엔 부드러워도 사실을 아
다소 친하지 않은 오빠 말이다.예지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좋은 남자가 있다면 소개해줘요. 난 결혼하고 싶어요.”나는 웃으면서 얘기했다.“이제 나이가 몇이라고 그래요.”“빨리 결혼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예지한은 그저 담현아보다 한 살 정도 많아 보였다.나는 일부러 예지한을 떠보려 말했다.“피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맞아요. 그러니까 얼른 남자친구를 찾아야겠어요.”예지한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서 물었다.“소개해줄 사람 있어요?”“소개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죠.”예지한이 실망한 듯 얘기했다.“그렇게 어려워요?”그리고 묵묵히 계속 일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있는 최희연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 자현 씨가 아이스랜드로 갔어.”왕자현이 갑자기 아이스랜드로 갔다니?지금 아이스랜드로 가는 게 최희연에게 얼마나 큰 상처인지 알 텐데...최희연은 왕자현이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나는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급한 일이 있으셨나 봐?”“잘 모르겠어.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아서. 아마 처리할 일이 있는 모양이야. 어젯밤에 떠났는데 여태까지 아무 소식도 없어.”“쓸데없는 생각 하지마.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최희연은 내 말의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쓸데없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자현 씨가 떠나니까 마음이 복잡하고 기분이 이상해.”담현아가 물었다.“왜 복잡해요?”“요즘 꿈에서 자꾸만 진유경이 나와.”“...”카페에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원래는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를 받았다.“엄마, 무슨 일이에요?”“서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생겼어. 좀 도와줄...”나는 어머니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그 일에 대해서 이미 들었어요. 민수 오빠가 연락했거든요. 아까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게 했는데 서오를 노리고 있는 건 현성 씨와 유희진 검사예요. 한 명
유희진이 고현성의 약혼녀라니.나는 어젯밤 골목에서 한시윤을 때리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시윤을 때리고 있었다.그럼 그때 이미 날 알아봤을 텐데...게다가 그 여자는 그때도 고현성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여자는 악의 하나 없이 이 사건을 받겠다고 했다.하지만 유희진은 유씨 가문 사람 같지 않았다.오히려 유서정보다 더욱 고급스러웠다.하지만 유서정이 더 예쁘긴 했다.유희진에게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흘러내렸다.그런 카리스마는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아마 오랜 시간 검사를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담현아가 설명했다.“고현성 씨는 정신을 차려보니 약혼녀가 생긴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나는 담현아를 보면서 물었다.“무슨 뜻이야?”“고현성 씨는 이 결혼을 수긍하지 않았지만 또 혼약을 깨트리지도 않았어요. 그냥 유희진 검사를 방패막이로 쓰고 있는 느낌이에요.”“그럼 유희진 검사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아무렇지 않아 하더라고요. 그 사람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그날 밤 골목에서 한시윤을 때린 이유는 분명 고현성 씨 때문인데, 고현성 씨 앞에서는 차갑게 구니까 말이에요.”“차갑게 군다고?”“아저씨가 알려줬는데 두 사람은 거의 연락하지 않는대요. 오늘도 서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결국 서오의 일로 엮인 거래요.”유희진이 서오를 주시하고 있는 건 분명 고현성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유희진이 어떻게 우리 사이의 일을 알고 있는 거지?신비스러운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유희진은 본인 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에요. 유서경처럼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요.”“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가자. 일단 희연이를 만나러 가자. 아마 카페에 있을 거야. 아마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걸?”최희연을 떠올리면 저번의 일이 생각났다.마음속 상처가 잘 치유됐을련지. 걱정되었다.그 사건이 일어난 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나는 담현아와
어머니한테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들키면 어머니는 마음 아파할 게 분명하니까. 나를 탓하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시겠지.내 머릿속에서 문득 한 단어가 스쳐 갔다.“경찰서에 간 거야?”“선배를 보러 갔어요. 그러다가 본 거예요. 선배의 사건이 엄청 어려운가 봐요. 무죄판결이 나기 어려울 정도래요.”“유희진 씨는 뭐라고 하셨어?”“아직 조사 중이래요.”담현아는 말을 마친 후 나한테 또 물었다.“수아 언니, 처음은 피가 나요?”“갑자기 그건 왜?”“어젯밤에... 그런데 피가 안 났어요.”“피가 안 날 수도 있어.”아니, 잠깐만담현아와 고정재가...?나는 속으로 기뻐했다.“그럼 다행이네요. 어제 피가 안 나서 아저씨가 저를 엄청 위로해줬거든요. 이것 때문에 기분도 안 좋았어요.”나는 고정재가 이런 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주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마치 모든 사람들이 나한테 사랑을 속삭이는 석지훈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남자는 참 신기한 동물이다. 평소에는 차갑고 도도해 보여도 운명적인 그 상대를 만나면 입안의 사탕처럼 달달하게 구니까 말이다.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좋네.”담현아가 의아해하면서 물었다.“뭐가요?”“우리 모두 사랑받고 있잖아.”전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던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적어도 지금은 사랑받고 있으니까 말이다.그리고 건강하고 귀여운 아들과 딸도 있고.“나는 인생이 그냥 다 쉬웠어요.”담현아가 만족한 듯 얘기했다.“사업도 문제없었고 모든 일에 걸림돌이 없었어요. 만난 남자도... 너무 좋은 사람이고요. 태어나서부터 유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부럽네.”“하하, 자랑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이런 삶에 감사하다는 거지. 이제 경찰서로 갈까요?”“지금 경찰서로 가면 내 어머니랑 마주치는 거 아니야?”“그러면 먼저 어머님께 연락해봐요.”내가 어머니한테 연락하려는데 조민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서오가 죄를 지어서 경찰서에 있다고 말이다. “까다로운 일이야.”난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물어본 거예요. 거기 외전에 썼잖아요. 날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오빠의 의견이 궁금했어요.”나는 석지훈의 반응이 궁금했다.석지훈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워서 얘기했다.“이제 좀 졸리네. 너도 얼른 자. 내일 다시 얘기하자.”“...”석지훈이 새벽에 먼저 일어났다. 나는 멍한 상태로 겨우 눈을 떴다. 눈앞에서는 두 의사가 석지훈을 치료해주고 있었다.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석지훈의 상처를 확인했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치료를 받은 후 석지훈은 나더러 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송이연이 아래층에 있었기에 석지훈은 아래층에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하긴 익숙하지 않으니 그럴 법도 하다.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 한 잔을 따랐다. 이때 마침 원태웅이 전화 와서 억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내 트위터 계정, 결국 사라졌어!”난 의아해하면서 물었다.“해결한 거 아니었어요?”“형이 아침에 트위터를 다운 받았나봐. 그리고 내 계정이 있는 걸 보고 또 윤승민한테 전화를 걸었다. 윤승민도 놀라서 얼른 처리하겠다고 했지. 그래서 결국... 심지어 윤승민은 근무 태도 불량으로 월급까지 깎였다. 하지만 공식계정은 아직 남아있어!”“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그러게. 내 트위터 계정을 삭제할 생각은 했지만 공식계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나 봐.”석지훈은 그저 원태웅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나?나는 윤승민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다. 그러자 윤승민이 대답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아직 공식계정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대감 트위터만 먼저 삭제했습니다.]윤승민이 일부러 공식계정을 지우지 않은 것이었다.[고마워요, 윤 비서님.]그리고 생각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깎인 월급은 함승윤 씨한테 얘기해서 더 얹어드리라고 할게요. 그리고 3개월 치 보너스도 드릴게요.]나는 기쁜 마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가 석지훈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그리고 물을 마시는 석지훈의 모습을 물끄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