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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2화

Penulis: 십일
재운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아니요... 못 받았어요...”

진일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황하지 말고 기숙사에서 기다려. 내가 직접 확인하고 올게.”

말을 마치고는 곧장 기숙사를 나와 송지혜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진일은 멈칫했다.

송지혜가 말했다.

“이번에 꽤 잘했어. 첫 도전인데도 최우수상을 받아왔잖아.”

이 성과는 학과에 명예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도 긍지를 안겨주었다.

몇 달간 쌓였던 울분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지혜는 만족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 모든 게 다 소정은 덕분이에요. 이모, 그 애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Science나 네이처 학술지 같은 곳에 논문을 쉽게 낼 수 있고, 이런 대학생 경진대회에서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연구 과제를 내놓다니...”

그녀의 말투에는 질투가 묻어 있었다.

지예는 비록 정은의 연구 결과를 가로채긴 했지만, 상대의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송지혜는 차를 홀짝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 정도가 대단한 거야? 흥, 소정은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도 할 수 있어. 그 애는 운이 좋아서 앞서 나간 것뿐이야. 언젠가 너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지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소정은을 따라잡는다고? 허, 그런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한때 ‘천재 소녀'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살았던 지예는 자신이 정말 천재라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그녀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고, 자신은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었다.

예전의 거만함과 자만은 결국 우물 속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어리석음에 불과했다.

소정은은 정말 강했고, 지예는 한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어떤 방법을 썼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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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운은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사실 그는 자신이 지예 그들과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줄곧 알고 있었다.그들도 재운을 배척하는 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는데, 아주 티를 냈다.재운은 어설프게나마 그들과 어울리려 애를 썼고, 결국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이런 환경에서 뭉칠 수 있다면, 혼자 남는 일은 없었다.이익을 쫓고 손해를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재운도 예외는 아니었다.하지만 재운은 곧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볼 뿐,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호의를 베푼 적이 없다는 것을.그제야 재운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세상에는 아무리 애써도 호감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결코 녹아들 수 없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그래서 그는 더는 애쓰지 않기로 했다.그냥 혼자 유유히 지내기로.경진대회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누구의 팀에 끼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과제를 할지, 누구와 함께할지 먼저 고민했다.어차피 지예가 자신을 초대할 리 없으니, 재운은 처음부터 단념하고 있었다.기대하지 않으면, 배척도 고립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런데 뜻밖이었다.지예가 먼저 찾아와 손을 내밀 줄이야.재운은 당황해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보고, 지예는 그가 얼떨결에 기뻐하는 줄 착각하더니, 코웃음을 치고는 돌아섰다.재운은 이틀을 고민했다.결국 용기를 내어 거절하기로 했다.하지만 거절하기도 전에, 자신의 이름이 이미 팀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뭐야, 그 표정은? 널 받아준 건 네 능력을 인정해서야. 싫다고 거절하지 마.”진호도 거들었다.“그러니까! 원래 넌 안 끼워주려고 했는데, 같은 반이라고 봐줘서 넣어준 거야. 감사히 생각하라고!”거절할 기회조차 없이, 재운은 지예의 팀원이 되어버렸다.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어차피 이렇게 된 일이라면, 제대로 하는 게 맞다고. 그래서 재운은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논문 자료를 모아 오라는 말에 이틀 밤을 꼬박 새웠고, 간신히 자료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0화

    “이번 대회를 말하자면, 요즘 학생들이 예전과 달라진 건지, 아니면 전체적인 교육 환경이 변해버린 건지 모르겠어.”“제출된 과제 중 50%는 허황된 내용이고, 나머지 40%는 앞뒤가 안 맞아 말도 안 되더군. 겨우 10%도 안 되는 과제만이 그나마 볼 만했지.”장학경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씁쓸하게 말했다.“정말 세대가 갈수록 퇴보하는 걸까? 전의 세 번의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학생들은 하나같이 Science나 네이처 잡지에 논문을 발표한 유력한 인재들이었는데, 지금은... 하아.”더 이상의 말은 없었고, 그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올해는 그래도 뜻밖에 괜찮은 과제가 하나 있긴 했어. 바로 너희 학교의 학생들이 낸 과제였는데, 제목이... , 조장 이름은 아마도... 서지예라고 한 것 같은데?”“그 과제는 최우수상을 받았지. 연구 주제 선정부터 실험 방식, 그리고 최종 완성도까지 기대 이상이었어. 심사위원들도 만장일치로 학술지 Science에 투고해도 무난히 통과할 수준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으니까!”“심사 끝난 후, 몇몇 교수님들이 서지예 학생에 대해 알아보더군. 들리는 말로는 대학원 입학하자마자 이미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고 하던데, 너희 생명과학대학에서도 꽤 유명한 천재 소녀라더라. 저 나이에 대단하긴 하지...”정은은 장학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정확히 말하면, 그가 지예와 이라는 것을 언급한 순간부터, 정은은 머릿속이 하얘졌다.왜냐하면 그 과제는 분명 그들 팀의 연구 과제였으니까.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지예의 것으로 바뀌어 버린 것일까?머릿속은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해졌지만, 짧은 충격이 지나가자마자, 정은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진일은 금방 밖에서 돌아왔다. 피곤에 찌든 허리와 어깨는 뻐근했고, 이마 한가운데엔 지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과로와 지나친 집중으로 인한 피로감이었다.올해 겨울방학, 송지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9화

    정은은 의혹을 느꼈다.“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직접 만나보면 알게 될 거야.”10분 후, 커다란 그림자가 두 사람의 맞은편에 나타났다.“안녕, 재석아.”정은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마주하니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이건... 믿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눈앞의 노은, 아니, 그의 옷차림만 보면 도저히 ‘노인'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GAP 맨투맨에 Levi’s 청바지, 그리고 Moncler 패딩까지 걸치고 있었다.거기에 챙이 푹 눌린 캡모자로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린 데다가, 깊게 팬 주름을 가린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었다.‘이건... 나이를 어떻게 짐작하라는 거야?’그러니 재석이 장학경을 마음이 젊고, 젊은이들 못지 않게 트렌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건 그냥 트랜드를 넘어섰잖아!’“장 교수님, 또 뵙네요.”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그와 악수를 나눈 뒤, 옆에 앉아 있는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섰다.“소개할게요. 제 친구 소정은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바로 장학경 교수님이셔.”“안녕하세요, 장 교수님.”“안녕, 아가씨! 자, 어서 앉아.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난 엄숙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커피 마시고 이야기하면 돼. 굳이 나를 선배 대하듯 깍듯이 모실 필요 없어. 난 그런 거 안 좋아하거든.”이야기를 나누던 중 정은은 장학경이 M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키가 그렇게 큰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사실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얼마 전, 두 명의 친구와 함께 팀을 꾸려 대학생 대회에 참가했었어요. 그런데 어제 발표 결과에서 저희 팀은 수상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제라도 저희의 과제 보고서를 받고 싶은데, 학교 측과 대회 주최 측 모두 별다른 답을 주지 않더라고요.”“교수님은 심사위원 경험이 많으시잖아요. 대회 참가자가 사후에 자신의 과제 보고서를 받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8화

    “여전히 똑같아, 아무도 받지 않아.”“좋아! 책임을 미루는 학교 측, 죽은 척하는 주최 측. 이 안에 문제가 없다고? 절대 믿을 수 없어!”정은은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떠올랐다.“이런 전국적인 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이 보통 해당 분야의 대학교수들로 구성돼. 내가 알기로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했을 텐데. 우리 학교 교수님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보자.”민지는 곧바로 노트북을 켜고 빠르게 검색한 뒤 외쳤다.“찾았다!”하지만 정은이 직접 확인한 결과, 심사위원 명단 어디에서도 서비대학교 교수님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서준이 설명했다.“서비대랑 연성대는 매년 강력한 경쟁 학교로 꼽혀, 수상자 절반이 이 두 학교에서 나오니까요. 그래서 공정성을 위해 주최 측은 원칙적으로 두 학교 교수님들을 심사위원으로 위탁하지 않았던 거예요.”즉, 문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민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다른 학교 교수님들은 아예 아는 분이 없잖아. 어떻게 연락하지?”설령 연락한다고 해도 그들이 응답해 줄지는 미지수였다.정은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우리는 몰라도, 교수님들끼리는 알고 지낼 수도 있어.”“그게 무슨 뜻이에요, 정은 언니?”“오 교수님께 여쭤보면, 명단에 있는 교수님 중 아는 분이 계실지도 몰라.”하지만 오미선은 지금 해외 학술 세미나 참석 중이었다. 시차 때문에 전화 통화가 어려웠기에, 정은은 메일을 보내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그날 밤, 오미선이 답장을 보냈다.그녀는 정은의 결정을 지지하며 반드시 연구 보고서를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또한, 앞으로 24시간 동안 핸드폰을 켜두겠으니 필요할 때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가 바로,명단에 오미선이 아는 교수가 있었던 것이다.다만 안면이 있는 정도였고, 개인 연락처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 교수는 재석과 친분이 있었다.그래서 그날 밤, 함께 러닝을 하던 중 정은이 재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대략 이런 상황이에요. 지금 주최 측과 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7화

    교수님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컴퓨터 화면부터 확인했다.‘분명 최소화해서 숨겨 놨는데, 어떻게...’동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니, 괜히 그 아이를 건드려서 뭐 하려고 그래? 논리력, 사고력, 말솜씨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그런데 저 여학생, 말투가 참 매섭네. 대체 정체가 뭐야? 너 아는 사람이야?”“생명과학대학에서 소정은 학생을 모르면 간첩이지. 혼자서 두 명의 동창을 데리고 스마트 실험실을 설립했고, 그것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잖아. Science 학술지에 논문도 냈고, 네이처 잡지에도 논문을 실었어. 우리 학과 내년 연구 실적의 절반은 다 그 학생한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런데도 몰라?”“아...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렇게 생긴 줄은 몰랐어...”‘이거 참!’“그래도 뭐 별거 아니잖아? 그렇게 대단한 논문을 썼다면서 정작 대학생 대회 같은 소규모 대회에서조차 상 하나 못 탔다니? 본인이 직접 그러던데?”동료는 그녀를 흘긋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왜 우리 사무실을 찾았겠어?”“그야... 보고서를 돌려받으려는 거겠지?”“맞아. 그런데 왜 돌려받으려는지 생각해 봤어? 보고서가 조작됐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는 거야.”“하, 웃기네. 누가 그럴 시간이나 있대? 자기들이 못 해서 떨어진 걸 괜히 트집 잡는 거지!”“그럴 수도 있지만, 더 큰 가능성이 하나 있어.”“뭔데?”“보고서가 제출 과정에서 변조됐을 가능성. 제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조사를 하려는 거야.”“쳇, 누가 심심해서 그 보고서에 손을 대겠어? 정말 웃겨.”“그래, 누가 그랬겠어. 하지만 만약 제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게 밝혀지면, 학교 사무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거야. 보고서를 거친 사람들 모두 조사 대상이 되겠지. 내가 너라면 지금 웃음이 나오지 않을 거야.”보고서를 거친 사람들 중, 마침 이 사무실에 있는 그 교수님이 있었다.그러니 그녀는 계속 웃을 여유가 있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6화

    민지는 멍해졌다.“이럴 수가?”서준도 몇 번이고 명단을 훑었지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조급해하지 말고 1, 2, 3등 수상자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알겠어.”10분 후.민지는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말했다.“명단을 다섯 번이나 확인했는데, 우리의 이름이 없어.”즉, 최우수상은커녕 그들은 1, 2, 3등상 중 그 어떤 것도 받지 못했다.서준은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미간은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그때, 민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말도 안 돼!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서준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했다.“경쟁에서는 운이 중요하기도 해. 누구도 자신이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하지만...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최우수상을 못 받더라도, 최소한 장려상을 하나쯤 받을 법한데. 어떻게 명단에 아예 이름조차 없을 수 있지?’“정은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요?”두 사람은 동시에 정은을 바라보았다.민지가 명단을 클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이상해.”민지는 손바닥을 쳤다.“봐! 정은 언니까지 이렇게 말하잖아!”“그렇다고 해도... 이미 명단이 발표됐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주최 측을 찾아가서 ‘이 결과 인정 못 하겠어요'라고 따질 순 없잖아?”그녀는 그냥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모든 팀이 자기들이 상을 못 탔다고 항의하기 시작하면, 대회가 아수라장이 될 게 뻔했다.정은이 말했다.“일단 학교 측을 찾아가서 확인해 볼게. 가능하면 우리가 제출했던 연구 보고서를 돌려받아서 체크를 해봐야겠어. 데이터 오류나 연구 방향 같은 원칙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해.”대회 규정에 따르면, 특정한 문제가 있을 경우 자동으로 0점 처리될 수도 있었다.만약 0점이라면, 당연히 수상할 리가 없었다....방학 기간이었지만, 학교 행정 사무실에는 당직자가 남아 있었다.정은의 말을 들은 담당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5화

    재석은 시계를 힐끗 바라보다가, 뒤늦게야 이 시간이 정말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귀까지 새빨개졌지만,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밤은 안 되니까... 그럼 내일 밤은 어때?”“좋아요.” 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실험실에 가야 하지 않아?”“맞아요.”“몇 시에 나가는데?”“8시쯤에요. 왜요, 선배님?”“같이 가자. 아침 사 줄게. 학교 앞에 호떡이랑 두유 파는 집 있잖아. 네가 맛있다고 했던 거.”“정말요? 고마워요, 선배님!” 정은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늦었으니까 난 이제 갈게.”“네.”정은은 재석을 문앞까지 배웅했다.재석은 정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잘 자.”“선배님도요.”문이 닫히자, 정은은 왠지 모르게 재석이 문을 닫는 동작마저도 들뜬 것 같다고 느꼈다.재석을 보낸 정은은 침대에 누웠고,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반면, 옆집의 재석은 정반대였다.집으로 돌아온 후 이상하게 들뜬 기분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사촌 오빠? 정말 사촌 오빠라니?’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재석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억누를 수가 없었다.새벽 1시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눈이 말똥말똥했다. 결국 눕는 걸 포기하고 재석은 책상에 앉았다.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논문을 계속 보았다.새벽 3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잠들었지만, 6시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눈을 떴다.7시 30분, 재석은 아침을 사러 나갔다.8시 정각에 그는 정은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좋은 아침이에요.”“응. 뜨거울 때 먹어.” 재석은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건넸다.“고마워요!” 정은은 반갑게 받았다. “선배님도 지금 나가는 길이에요?”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같이 갈까요?”“그래.”...9시, 진욱은 학교에 도착해 실험복으로 갈아입으며 어제 재석의 행동을 떠올렸다.‘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조언을 좀 해 줘야 하나?’실험실에 들어서자마자, 진욱은 예상대로 실험대 앞에 서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재석을 보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4화

    재석은 눈을 드리우며 빈 맥주 캔을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마치 그 위에 꽃이라도 피어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오늘 이씨 가문 두 어르신들과 즐겁게 놀았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할머니가 점심에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려주셨고, 오후에는 디저트랑 간식도 잔뜩 해주셨어요.”“밥 먹고는 두 분이랑 낚시도 가고, 과수원에서 과일까지 땄고요. 원래는 저녁에 그림 전시회까지 보러 가려고 했는데...”재석은 덤덤하게 물었다.“심 대표님도 같이 있었어?”“네.” 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어느새 테이블 밑에 있는 손을 꽉 쥐었다.한참 후, 그는 약간 쉬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그래서... 넌 심 대표님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정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예전에는 별로 좋은 인상을 못 받았는데, 지금은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요.”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두 노인을 챙기는 세심함과 배려가 딸인 이미숙보다도 더 나았던 것이다.그 말을 들은 재석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묵직한 통증이 심장을 강타하며 숨이 턱 막혔다.그가 붉어진 눈으로 ‘이제 그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라고 물으려던 찰나, 정은이 덧붙였다.“그리고 꽤 좋은 오빠기도 하고요.”“오, 오빠?”재석은 순간 얼어붙었다.정은이 자연스럽게 말했다.“네, 심 대표님은 내 사촌 오빠예요! 어? 내가 선배한테 말 안 했었나?”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아, 그러고 보니 요즘 대회 준비로 바빠서 이 좋은 소식을 아직 못 전했네요...”그녀는 이미숙이 이씨 가문의 잃어버린 딸이란 것을 간단히 설명했다.“그래서 결국 내 사촌 오빠가 됐어요.”재석은 필사적으로 이 사실을 소화하려 했지만, 여전히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그 사람이 네 사촌 오빠라고?”“맞아요.” 정은이 피식 웃었다.“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재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문제가 있는 건 정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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