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알아요, 당신들 모두 날 원망하고 있잖아요. 우리 부모님, 그리고 당신! 당신들 모두 그때 나와 이미숙이 같이 나갔는데, 이미숙은 납치되어서 돌아오지 못하고, 혼자 돌아온 내가 원망스러운 거잖아요? 안 그래요? 당신들은 나도 이미숙과 함께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잖아요!”“그 입 닥쳐!” 심정훈은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눈빛도 갑자기 매서워졌다.“누가 죽었단 거야?!”“하하... 28년이 넘었는데, 설마 아직도 이미숙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두 분은 당연히 포기하려 하지 않겠죠. 이미숙은 바로 두 분의 보배였으니까.”“나이도 드신 이상, 희망을 품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시겠어요? 하지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요. 심정훈, 당신조차 이미숙을 잊지 못했다니!”“우리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우리의 아들도 가정을 이룰 나이가 다 됐는데, 당신은 아직도 이미숙을 그리워하고 있다니? 하하하, 웃기지도 않나 봐요?! 당신은 그런 자신이 징그럽지도 않냐고요?!”찰싹!심정훈은 손을 들어 따귀를 날렸다.동작이 너무 빨라서 이미윤에게 피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남자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고, 온몸에 찬 기운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미윤을 바라보는 눈빛은 더욱 무정했다.“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말을 할 줄 모르면 그냥 입 다물어.”말이 끝나자 심정훈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성큼성큼 떠났다.이미윤은 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심정훈, 당신은 양심도 없는 거예요?”“왜? 왜 아직도 실종된 지 20여 년이나 넘은 이미숙을 그리워하는 거냐고요? 부모님도 그렇고, 심정훈 당신도 그렇고. 설마 이미숙은 두 분의 친자식이고, 난 그냥 입양된 자식이라서?!”...다른 한편, 현빈은 두 노인을 따라 정원을 지나 작은 문으로 나갔다.그런데 놀랍게도 거리로 나왔다.현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전에 여러 번 왔는데, 여기에 문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이춘재는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네 작은 이모는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는 것
이 가게를 지나갈 때, 이미숙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빈대떡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정은은 좌우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것은 아주 낡은 가게였고, 장식도 옛날식이었는데, 주위에는 아무런 포스터도 붙이지 않았다. 가장 안쪽에 가야 팻말에 열거된 떡이름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런데 정말 빈대떡이 있을 줄이야.‘그럼 엄마는 어떻게 지나가다가 이 가게에 빈대떡이 있다는 걸 아셨을까? 게다가 빈대떡은 이 가게의 간판 메뉴이기도 했다.’이미숙이 말했다.“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안에 빈대떡 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아주 맛있을 것 같았어.”소진헌이 말을 이어받았다.“네 엄마는 코가 엄청 예민한 거 몰라? 맛있는지 안 맛있는지 냄새만 맡으면 바로 알 수 있다니깐.”“그렇군요...”정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코야.’현빈이 말했다.“이런 인연이, 나도 빈대떡 사러 왔는데.”“혼자 먹으려고요?”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우리 할머니께 사 드리려고.”“할머니도 오셨어요?” 정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왜 안 보이는 거죠?”“구경하다가 지치셨는데, 옆의 찻집에서 쉬고 계셔. 이따가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소개해드려야지. 지난번에 서점에 있을 때, 할머니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보려고 하셨지만,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거든.”“좋아요.” 정은도 웃으며 말했다.모두 빈대떡을 사는 이상, 앞에 있던 정은은 아예 2인분을 달라고 했고, 현빈에게 나눠주었다.“얼마야? 돈 줄게.”“아니에요, 이건 내가 할머니께 사 드리는 거예요. 게다가 비싼 것도 아니에요. 지난번에 당신도 물을 사줬는데, 나도 돈을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현빈은 웃음을 터뜨렸다.“가요.” 정은은 고개를 돌려 현빈을 바라보았다.‘이 사람은 왜 갑자기 바보같이 웃는 거지?’찻집에 들어서자, 정은은 바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두 노인을 보았다.정은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봉수진은 여기서 정은을 만날 줄은
정은은 또 물었다.“먼저 빈대떡 좀 드실래요? 제가 한 조각 드릴까요?”봉수진이 말을 하려고 할 때, 현빈의 핸드폰이 울렸다.맞은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그의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졌다.“알았어, 일단 사람부터 붙잡아. 난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갈 테니까...”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그는 미안해하며 정은을 바라보았다.“미안.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바로 가야 할 것 같아.”말이 끝나자 현빈은 또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할아버지, 할머니, 제가 먼저 두 분을 집에 데려다 드릴게요.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구경하러 나오시는 건 어때요?”“그래. 하지만 정은이 부모님을 보지 못했구나...” 정은은 즉시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급한 일이 있으신 이상, 먼저 가세요. 앞으로 또 볼 기회가 있을 거예요.”“그래.”이미숙과 소진헌이 다가올 때, 현빈은 이미 두 노인을 데리고 찻집을 나와 차를 몰고 떠났다.이미숙은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그 두 노인은 누구야?”“심 대표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예요. 사인회 그날 마침 만났는데, 오늘 또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어요.”이미숙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정말 인연이군. 구경하느라 지쳤지? 집에 가지 않을래?”“조금만 더 놀아요. 이 거리를 다 구경하지 못했잖아요.” 정은은 이미숙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계속 구경하자.”...차 안에서.현빈은 핸들을 잡으면서 비서와 통화를 했다.“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사람을 붙잡고 있어. 남은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이춘재가 물었다.“많이 급한 거야? 만약 시간이 없다면 우리를 내려놓아도 되는데. 나와 네 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 되니까.”“아니에요, 내 부하들이 이미 처리하고 있어요.”“그럼 됐어.”현빈은 재삼 고민하다가 물었다.“할아버지, 이번에 귀국하시면서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얼마나 머물 예정이시죠? 저도 괜찮은 의사들을 좀 알고 있어서 할머
정원을 둘러보고 또 빈대떡을 먹었으니, 이미숙은 매우 만족했다.다음 날, 부부는 L시에 돌아갔다.정은은 그들을 역으로 데려다 주었다.나석천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작가님, 이것은 출판사에 보낸 팬들이 편지입니다. 팬들이 작가님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요.”이미숙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처음으로 팬레터를 받았던 것이다.그것도 적지 않았는데, 가방이 꽉 찼다....집에 돌아온 정은은 햇빛이 좋은 것 같아 두 방의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빨았다.10월 말, 한여름의 무더위가 점차 가시면서, 가을 기운이 서늘함을 안고 조용히 다가왔다.그녀는 또 옷장을 한 번 정리했다. 입지 않는 옷과 치마는 자주 쓰지 않는 옷장에 넣었고, 또 가을에 입을 옷을 편리하고 꺼내기 쉬운 곳으로 옮겼다.바쁘게 돌아친 후, 시간은 이미 오후 2시가 되었는데, 정은은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냉장고에는 토마토 두 개만 남았다.정은은 한숨을 쉬며 신발을 갈아신고 외출을 했다. ‘결국 마트에 가야 하다니.’“지금 나가려고?” 1층에서 내리자마자 정은은 위로 올라가고 있는 재석을 마주쳤다.“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채소가 없어서, 마트에 가서 좀 사려고요.”“그럼 잘됐네, 같이 가자.”재석은 즉시 방향을 바꾸어 그녀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선배님은 뭘 사려고요?”재석은 이 문제에 대답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어느 마트에 가려는 거야?”이 근처에 세 마트가 있었는데, 모두 그리 멀지 않았다.정은은 한 마트 이름을 말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괜찮죠?”방금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넘어갔다.“난 오케이.”몇 분 후, 두 사람은 마트에 들어섰다.이것이 바로 도심에서 지내는 좋은 점이었다. 어디를 가든지 매우 편리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졌다.단지 동네 환경이 좀 좋지 않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 외에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다.정은은 앞에서 걸었고, 재석은 쇼핑 카트를 밀고
생활품 코너를 지나자, 재석은 바로 멈추었다.“뭐 살 것 있어?”정은은 집에 있는 바디워시와 세제가 다 떨어진 것을 생각했다.“네.”그녀가 바디워시를 고를 때, 재석도 카트에 뭔가를 넣었다.정은이 힐끗 훑어보았다. 수건, 슬리퍼, 갈고리.꽤 많았기에 카트도 곧 꽉 찼다.계산할 때, 재석은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고, 정은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저 영수증을 잘 남겨둬서 이따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은에게 카운트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좋아요.” 정은은 밖으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도 계산을 마치고 큰 봉지 3개를 들고 나왔다.정은은 받아서 그와 좀 분담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뒤로 피했다.“아니야, 내가 하면 돼.”“그런데 너무 많잖아요...”한 봉지에 고기와 채소가 있었고, 다른 두 봉지는 각각 그들이 구입한 생활용품이 있었다.아주 분명하고 엄밀하게 나뉘었다.“정말 내가 들 필요가 없는 거예요?”정은이 다시 물었다.“응.”남자의 체력은 확실히 여자보다 훨씬 좋았다. 재석은 봉지를 들고 단숨에 7층을 올라갔는데,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정은은 자신의 봉지 두 개를 받은 다음 문 옆에 놓고는 재석에게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에헴...” 남자는 가볍게 기침을 했다. “얼마 안 들었으니까 줄 필요 없어.”“그건 아니죠? 영수증은 봉지에 있는 거예요? 나한텐 없는 것 같은데, 선배님 봉지 좀 볼게요...”재석은 마치 감전된 것처럼 재빨리 뒤로 피하더니 정은이 자신의 봉지를 보지 못하게 했다.정은은 영문을 몰랐다.“안에 없어. 이, 이따가 계산하면 얼마 들었는지 톡으로 보낼 테니까, 그때 주면 돼.”“그래도 돼요.”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재석은 방금 왜 피한 것일까?‘내가 자신의 봉지를 보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야? 그 안에 나에게 보여줄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건가?’의혹이 스쳐 지나갔지만, 정은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고, 봉지를 들고 방에 들어
많은지 적은지는 정은도 몰랐다.재석이 답장을 씹었기 때문이다.만두를 전부 다 찐 후, 정은은 10개를 골라 비닐봉지에 넣은 다음, 재석에게 가져다주려고 했다.그런데 문을 한참이나 두드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정은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선배님, 지금 집에 있어요?]이번에 재석은 아주 빨리 답장을 했다.[실험실에 왔어.][내가 만두를 좀 쪘는데, 선배님에게 10개 줄게요. 저녁에 돌아올 때 가져 갈래요?]재석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자아이가 직접 만든 음식을 특별히 자신에게 보내주려고 하는데, 이렇게 차갑게 거절하는 건 좀 그랬다.‘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내가 찔린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그래.]정은은 핸드폰을 거두며 집으로 돌아갔다.주방을 정리하고 앉자마자, 물을 마시기도 전에 수민의 전화가 걸려왔다.[정은아! 내 만두는, 다 됐어?!]“응, 다 됐어. 오늘 수십 개 만들었으니 네가 먹기엔 충분하다고. 이 게걸스러운 계집애야!”수민은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은 채 당장이라도 정은의 집으로 날아가고 싶었다.일주일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오늘 드디어 일을 끝냈던 것이다.그녀는 1초도 회사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네가 더 게걸스럽겠지! 딱 기다려, 곧 도착할 거야.] 수민은 일부러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고, 입가에 선명한 미소를 지었다.통화를 마치고 수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고동건?”남자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표정은 무척 어두워서 마치 누가 빚이라도 진 것 같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 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동건의 앞으로 걸어갔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짧아지면서, 수민은 동건의 안색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왜? 내가 여기에 나타나서 널 방해라도 한 거야?” 동건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딱 기다려!”수민은 어이가 없었다.“너 뭐 잘못 먹었니?”“내가 뭘 먹어.
동건은 바로 입을 열었다.“내가 밥 사줄게!”“필요 없어. 오늘 나 약속 있으니까 다음에 네가 사.”말을 마치자, 수민은 자리를 떠나려 했다.동건은 얼른 쫓아갔다.“그럼 데려다 줄까?”수민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진심이야?”“응!”“그래, 그럼 빨리 운전해.”출퇴근길에 눈을 잠깐 붙이기 위해 수민은 이번 주에 운전을 하지 않았다.동건은 기분이 좋아서 얼른 조수석의 문을 열었는데, 아쉽게도 수민은 그를 무시하며 뒤로 걸어갔다.“난 뒤에 앉을래, 눕고 싶어.”“그래.”차에서, 동건은 운전을 하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이 세상에 나보다 더 좋은 남자친구가 또 있을까? 한 시간 넘게 회사 아래에서 퇴근한 여자친구 기다리지, 또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러 데려다 주지. 하지만 만약 내가 데려다주지 않는다면 수민은 벌써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을 거야.’물론 동건도 무척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남자이길래 수민이 야근을 끝내자마자 바로 만나러 달려가는 건데!’수민은 뒷좌석에 누웠다.“왜 갑자기 한숨을 쉬는 거야?”“내가 언제?”“방금.”“일주일 동안 야근했다고?”“어.” 수민은 옆에 있던 쿠션에 기댔다.‘야, 훨씬 편해졌네.’“이렇게 바쁜 사람이 테니스를 칠 시간은 있고?” 동건은 또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수민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선우가 말한 거야?”“흥!”“너도 정말 웃기네. 너희들 말이야, 정말 어디 좀 이상한 거 아니니? 전선우, 강도겸 그리고 너!”“뭐??”“내가 코치 하나 청해서 서브 동작을 배우고 있는데, 전선우는 갑자기 달려와서 코치에게 주먹을 날린 거야. 내 코치는 하마터면 코가 꺾어질 뻔했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400만 원이나 배상했단 말이야. 그 자식도 너처럼 정신이 나간 거지?”“코치?”수민이 되물었다. “그렇지 않으면?”“헤헤... 아무것도 아니야. 헤헤...”수민은 영문을 몰랐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숨을 쉬다가 왜 또 바보같이 웃기 시작한 거야? 역시, 머리가
“나, 나 피곤해서 좀 쉬고 가려고 했어. 그런데 잠이 들 줄이야...”수민은 직접 다른 쪽으로 걸어가 조수석 문을 열더니 자리에 앉았다.“그럼 딱이네. 나 집에 데려다줘.”동건은 바로 똑바로 앉으며 말했다.“정말 뻔뻔한 여자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가에 미소는 점점 짙어졌다.“그래, 그럼 내가 오늘 널 끝까지 도와줄게. 안전 벨트 꽉 잡아.”그리고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야! 좀 천천히 운전해, 나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내 말 안 들려?”“그럼 더 좋지 않아? 죽으면 같은 곳에 묻힐 수 있잖아, 헤헤...”수민은 눈을 부라렸다.지금 두 사람의 관계로 볼 때, 죽어도 각자의 장례를 치를 것이다.20분 후.“요 앞에 세워줘. 걸어 들어가면 되니까.”“안돼! 집 앞까지 데려다줄 거야!”동건은 핸들을 돌리며 바로 지하 차고로 들어갔다.“고마워.” 차가 멈추자, 수민은 문을 밀고 내렸다.“어? 그냥 갈 거야?”수민은 발걸음을 멈추었다.“택시비를 내야 돼?”“헤헤, 그건 아니야.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안 그래?”“중점을 말해.”“나 저녁을 안 먹어서 지금 배고파.”“그래서?”“그래서 먹을 것 좀 해줘.”수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미안, 나 밥 할 줄 몰라.”그러나 동건은 이미 변명을 생각해냈다.“네가 손 쓸 필요 없어. 지난번에 주방에 라면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혼자 끓이면 되니까.”“그래.” 수민은 몸을 돌리며 그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동건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 차를 잠근 다음, 고분고분 수민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그냥 배달을 시키거나 아무 레스토랑에 가서 먹는 게 더 낫지 않아? 왜 혼자 라면을 끓이고 싶은 건데?”“라면이 좋아서 그래, 왜?”수민은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참 너다운 대답이야.”동건은 말문이 막혔다.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동건은 옆에서 훔쳐보았다.‘168... 그 다음엔 뭐지? 젠장! 다 못봤어!’문이 열리자,
이때 정은은 다른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에 매료되어, 두 남자가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재석은 계산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정은이 한 케이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5층으로 된 케이크에 한층마다 정교한 피규어를 놓았다.“예뻐?”“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정교하게 잘 만들었어요.”그리고 2층을 가리키며 말했다.“선배님, 이 안경 쓰고 눈살을 찌푸리는 피규어 말이에요, 선배님과 닮지 않았나요?”재석은 한동안 자세히 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아니. 내가 언제 자주 눈살을 찌푸렸지?”“눈살을 찌푸렸지만, 선배 자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지금이요.”재석은 멍하니 있다가 문득 장난치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궁핍하고 마음이 찔렸다.“하하...”정은은 웃음을 터뜨렸다.“선배님 정말 귀엽네요.”세 사람이 케이크 가게를 막 나서자, 재석의 핸드폰이 울렸다.“네, 어머니.”[재석아, 집에 한번 돌아와.]강서원의 목소리는 심각하고 엄숙했다.“무슨 일이세요?”[돌아와서 얘기하자.]“네.”통화를 마치자, 재석은 집에 무슨 일 생겼을까 봐 걱정했다.“미안,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갈게.”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고, 마침 현빈도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자, 현빈은 재석을 바라보았다.“공교롭게도 저희 집에도 일이 좀 생겼네요. 하지만 그전에 전 먼저 정은을 집에 데려다줄 테니, 교수님은 얼른 일 보러 가세요.”정은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 두 분 다 얼른 가서 일 봐요!”재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정은은 재빨리 말했다.“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텐데, 아무도 데려다줄 필요가 없단 말이에요.”말이 끝나자 정은은 다시 고개를 돌려 현빈을 보았다.“심 대표님도 빨리 가요. 중요한 일 그르치면 안 되잖아요.”현빈과 재석은 눈을 마주치며 누구도 지려 하지 않았다.결국 정은의 재촉으로
다 먹은 뒤, 이미윤은 계산하러 갔다.두 사람 모두 얼마 먹지 않아서 음식은 아직 많이 남았다.이쪽의 두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했지만, 그쪽의 현빈과 재석은 각기 수확을 얻었다.하나는 양복을, 하나는 구두를 샀기에 모두 기분이 좋았다.현빈이 말했다.“앞에 밀크티 가게 있는데, 뭐 마실래?”재석도 같은 시간에 입을 열었다.“그 케이크 가게가 엄청 유명한데...”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고, 서로를 힐끗 보더니 적의를 드러냈다.“정은아, 우리 같이 밀크티 사러 갈래?”“들어가서 한번 볼래?”두 남자는 모두 그녀를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뭐야, 왜 또 이래!’“그냥 각자 사러 가세요. 난 화장실에 가고 싶으니까요.”현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리고 재석을 바라보며 물었다.“교수님은 밀크티를 마시고 싶지 않으시겠죠?”“만약 심 대표님이 사는 거라면 한 잔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그래요.” 현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은근히 이를 갈고 있었다.“그리고 보답으로 내가 심 대표님에게 케이크를 사줄게요.”이 말을 듣자, 현빈은 더욱 화가 났다.두 사람은 각자 줄을 섰다.정은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현빈은 양손에 밀크티 한 잔씩 들고 있었고, 탁자 위에 한 잔 남아 혼자 들 수 없었다.그는 종업원에게 포장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다.정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들게요.”두 사람은 말하면서 케이크 가게로 갔다.“서원아? 서원아?!”“응? 뭐라고?”“뭘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야?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다니.” 이미윤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는데 케이크 가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강서원은 손을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그 여자아이, 뜻밖에도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니. 심지어 웃고 떠들며 함께 밀크티까지 마시면서 쇼핑을 하고 있어! 그건 커플끼리 하는 일 아니야?!’비록 그 남자의 뒷모습만 밖에 보지 못했지만, 옷차림과 기질만 보아도 조건이 나쁘지 않다
고개를 들어 정은을 본 순간,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에 순식간에 웃음기가 감돌았다.어르신에게 신발을 사야 하니 디자인만 보아서는 안 되며 편안함도 고려해야 한다.그렇다고 편안함만 따지고 디자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정은은 서점에서 이춘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양복 조끼를 입고 있었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마치 신사와 같은 기질을 내비쳤다.옷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썼으니 신발도 잘 골라야 했기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흔한 구두 재질은 그 몇 가지밖에 없었기에 정은은 가장 편한 두 가지 재질을 선택했고, 이어서 점원에게 이 두 가지 재질로 만든 신발을 모두 골라내라고 했다.그사이 재석은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곧 정은은 두 켤레를 골랐다.“이 두 켤레가 다 괜찮은 것 같아요. 심 대표님이 하나 골라요.”현빈은 직접 카드를 꺼냈다.“뭘 골라? 두 켤레 다 포장하면 되지. 네가 골랐으니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엄청 좋아하실 거야.”정은은 믿지 않았다.“에이, 설마요.”“나중에 시간 나면 우리 할아버지 뵈러 가지 않을래? 그럼 두 분이 널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를 알 수 있을 거야.”“나도 그러고 싶어요. 두 분 다 아주 친절해 보이시거든요...”현빈의 눈빛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점원이 포장할 때, 현빈은 정은에게 차 한잔 따라줬다. 물이 좀 식은 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점원에게 물을 끓이라고 했다.그리고 나서야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차 좀 마셔, 따끈따끈해.”“고마워요.” 정은은 잔을 받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진열대에 떨어졌다.그녀는 소진헌에게 한 켤레 골라주고 싶었다.현빈은 정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더 마실래?”정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고마워요.”그는 일어나더니 정은의 손에 있는 빈 잔을 가져왔다.그리고 이 장면은 마침 안으로 들어온 이미윤에게 발각되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그리 놀라지 않았다.이미윤은 현빈이 바람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분수가 있어, 여자를 갖고
재석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회색이 괜찮은 것 같아.”정은은 눈에서 빛이 났다.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아!’재석은 점원에게 말했다.“그럼 이걸로 할게요. 카드로 계산해줘요.”재석은 다시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때 정은은 그의 옷깃을 가리켰다.“여기 접혔어요.”그는 정리를 했지만 옷깃은 여전히 접혔다.그래서 정은은 직접 재석을 도와주었다.남자는 키가 커서 정은은 까치발을 해야 했고, 두 사람은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여자아이에게서 나는 독특한 향기를 맡자, 재석은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는 정은의 가녀린 손가락이 옷깃을 가볍게 뒤집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손끝이 무심하게 목을 스치자, 마치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으며 짜릿한 느낌은 온몸에 퍼졌다....강서원은 오늘 다른 귀부인과 식사 약속이 있었다. 시간이 아직 일러서 먼저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갔다.자신의 물건을 사고 기사에게 차에 실으라고 한 다음, 또 빈손으로 5층에 올라가서 소기봉과 세 아들에게 사주려고 했다.‘어쩔 수 없지 뭐, 하나는 내 남편이고, 세 아들은 또 모두 솔로잖아.’여러 가게를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것을 보지 못하자, 강서원은 서서히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심심하게 안에서 걷고 있었다.이때, 강서원은 쇼윈도에 있는 양복에 시선을 빼앗겼다.멈춰 서서 자세히 보려고 할 때, 쇼윈도 유리를 통해 가게 안의 1남 1녀를 보았다.‘어머, 저 사람 우리 재석이 아니야?! 그것도 한 여자와 같이 있다니!’강서원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 정도면 충분히 큰 서프라이즈인 줄 알았는데, 뒤에 더 놀라운 일이 있었다.그 여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자, 손도 남자의 옷깃에서 거두어들였다. 그렇게 예쁘고 익숙한 얼굴이 예고도 없이 강서원의 눈에 들어왔다.‘그 여자아이잖아! 동서와 사이가 아주 가까운 그 다례사!’강서원은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지만, 콧대가
항이는 신이 났다.그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비싼 쇼핑백에 담아서 건네줬다.“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항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히죽히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까불었다.“이거 좀 봐, 내가 인형을 잘 빚을 수 있다니깐. 그 손님 엄청 좋아하잖아!”[에헴! 정신 차려! 그 오빠가 좋아하는 건 그 예쁜 언니지, 네가 빚은 인형이 아니라고!][그래서, 그 오빠 혼자 몰래 달려와서 인형을 사간 거야?][아직 고백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어머, 형사님이세요? 눈치도 참 빠르시네요!]...정은은 물을 사고 돌아온 재석이 손에 쇼핑백 하나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뭐예요?”“그냥 뭐 좀 샀어.”그래서 그녀도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 보행로를 따라 앞으로 가면 도심이었다.정은은 손목 시계를 보았는데, 이미 오후 4시였다.‘이제 돌아가야 하나?’그런 생각을 하기도 무섭게 재석이 입을 열었다.“며칠 후에 난 세미나를 참가하러 K시에 가야 돼. 그곳의 날씨가 많이 따뜻해서 겨울의 양복을 입을 수 없거든. 마침 요앞이 백화점이니 날 도와 옷 한 벌 골라 주면 안 될까?”“좋아요.”지나친 요구가 아니었기에 정은은 동의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남성복은 5층에 있었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정은은 소리를 내어 불렀다.“심 대표님?”현빈이 고개를 돌렸다.정은을 본 순간, 현빈은 놀라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쪽에 있는 재석을 발견하자, 그의 눈빛은 어두워졌다.“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정은아.” 말하면서 현빈은 웃으며 재석을 바라보았다.“또 만났네요, 조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죠?”정은이 대답했다.“선배님을 위해 얇은 양복 한 벌 골라주려고요. 대표님도 쇼핑하러 왔어요?”“응. 우리 할아버지에게 구두 사드리려고...”이때 현빈은 자연스럽게 난처함을 드러냈다.“하지만 어떤 걸
“미안해요!”“미안.”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며 뒤로 물러났다.눈을 마주치자, 어색함 외에 이상한 감정이 돋아나고 있었다.“선배...”“난...”“아니면 선배님부터 말할래요?”재석은 눈을 반쯤 드리웠는데, 마치 사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고개를 드는 순간,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았다.“정은아, 사실 나...”“봐요, 다 빚었잖아요?” 항이의 건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은은 뻘쭘해서 귀와 얼굴이 빨개졌다. 이 말을 듣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벌써요?”“그래요, 난 원래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였어요.”말하면서 손에 든 인형을 정은의 앞으로 내밀었다.정은은 힐끗 보더니 입가를 실룩거렸다.역시 조금의 기대도 가져서는 안 됐다.전에 본 그 몇 개의 인형은 비록 이목구비가 모호했지만 적어도 이목구비가 있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인형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그저 두 머리를 맞댄 것밖에 알아볼 수 없었다.‘잠깐!’정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건...’“이, 이게 저희라고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그럴 리가요? 이게 딱 보이잖아요! 내가 두 사람이 뽀뽀하는 그 장면을 보고 그대로 빚은 건데! 이건 머리, 이건 목, 이건 서로 닿은 두 입술...”“앗!”정은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재석은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전술적으로 가볍게 기침을 했다.“아직도 못 알아보겠어요? 그럼 내가 다시 알려줄게요. 이건 머리...”“아니요!”“네?”정은은 정중하게 말했다.“이제 알겠어요.”“진짜요? 거짓말 아니죠?”“네.”“와! 나한테 인형을 만드는 재능이 있을 줄 알았어. 그동안 아무도 날 믿지 않았지!”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렸다.[저 아가씨 엄청 어색해하던데.][항이 씨, 제발 그 아가씨 내버려둬요. 곧 울 것 같은데.][나도,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그 분 아마도 항이가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재석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형이라고 하지만 사실 윤곽밖에 닮지 않았고, 심지어 그 윤곽도 좀 이상했다.이목구비, 표정, 동작과 같은 디테일도 없었다.재석은 사실대로 말했다.“너무 대충 만든 것 같아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어.”다시 주위를 바라보니, 노점의 다른 진흙 인형도 모두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너무 못생겼다.이 노점도 정말 이상했는데, 주인이 없고 삼각대 하나밖에 없었다. 위에는 핸드폰 한 대가 놓여 있었고,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고 있었다.정은은 잠시 침묵했다.“그렇긴 해요. 하지만 이 각도에서 보면... 사랑의 신 큐피드와 닮은 것 같은데요?”말이 끝나자마자 노점 뒤에서 갑자기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정말 말 그대로 튀어나왔는데, 마치 스프링을 장착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했다.“아가씨, 내가 만든 인형을 알아보았다니?!” 젊은 남자는 두 눈에서 빛이 났다.‘하늘이시어, 드디어 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정은은 의아해했다.“정말 큐피드였어요?”“맞아요!”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작품을 알아본 사람은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엉엉... 정말 감동이네요!”‘이건 좀...’정은이 말했다.“비록 빚은 인형들의 모양과 이목구비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윤곽을 통해 나름 알아볼 수 있어요. 혹시 피카소가 롤모델인가요?”감격에 겨웠던 남자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날 비웃은 건가요?”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고 재석이 입을 열었다.“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 인형들은 확실히 특이하게 생겼는데.”‘아니, 어떻게 내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래도 난 2백만 팔로워를 가진 진흙 조각 블로거인데. 동물이나 다른 물건은 참 생동하게 잘 빚었지만, 사람만 빚으면 실패했지.’정은은 남자를 응원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때, 라이브의 시청자들은 이미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정말 예쁘게 생기셨는데? 너무 일리가 있는 말
재석이 물었다.“점심 먹었어?”“아직이요. 선배님은요?”“잘됐네, 나도 안 먹었는데.”눈을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은 호흡이나 맞춘 듯 미소를 지었다.20분 후, 재석과 정은은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기름이 지글지글거리는 고급 삼겹살, 남자는 삼겹살 표면이 약간 탈 때까지 뒤집다가 신선한 상추에 싸서 여자 앞에 건넸다.정은은 고개를 숙인 채 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재석을 보며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선배님, 나 혼자 할게요...”그러나 재석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정은에게 입을 벌리라고 했다.정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남자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답장하고 있잖아? 정말 손으로 받을 거야?”정은은 즉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받으려 했다.“답장 다 했으니까 나 혼자 먹을게요.”재석은 쌈을 접시에 담았다.“먼저 손부터 닦아.”정은은 방금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앗, 깜박했어.’후에 정은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고, 재석은 고기 굽는 것을 책임졌다. 고기를 다 구운 후에 직접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선배님, 나한테 주지만 말고 선배님도 얼른 먹어요!”“좋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은의 접시는 줄곧 고기로 가득 찼다.소고기를 입에 넣자, 즙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부드러웠다. 정은은 데여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혀끝이 따갑고 아팠다.재석은 아이스 코코넛 우유 한 병을 건네주었다.“천천히 마셔.”얼른 두 모금 마시자, 정은은 그제야 좀 나아졌다.재석은 모처럼 덤벙대는 그녀의 모습을 봐서 속으로 기분이 엄청 좋았다.“어때, 좀 괜찮아졌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혀가 아직도 좀 얼얼하네요.”“입 벌려, 내가 한번 볼게.”남자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정은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십여 초가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룸의 온도가 너무 높았는지, 아니면 불판이 너무 뜨거웠는지 볼에 홍조가 나타났다.정은은 얼른 똑바로 앉았다.재석은 시선을 거두었
정은은 농담으로 말했다.“오빠, 고작 2천만 원으로 우리 실험실의 모든 프로젝트에 투자하려고? 에이, 그럼 너무 적은데.”인훈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겠어? 하나만 투자할게!”말을 이렇게까지 한 이상, 정은도 그저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인훈은 자신이 아무 핑계나 대고 준 2천만 원이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다 줄지 전혀 몰랐다....새 실험실로 이사했으니 이제 이웃대학의 임시 실험실에 갈 필요도 없었다.당초에 마정일은 호의로 실험실을 그들에게 빌려주었는데, 비록 재석의 체면을 봐주기 위해서였지만 정은은 여전히 감격했다.토요일에 그녀는 꽃과 과일을 사서 마정일을 찾아갔는데, 실험실 열쇠를 돌려주는 김에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다.마정일의 사무실은 행정동 3층에 있었고, 정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미 길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문을 두드렸다. “마 교수님, 계세요?”안에서 곧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정은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마정일의 사무실은 그란 사람처럼 간단하고 넓으며 질서정연했다.책상과 탁자 하나 외에 소파와 책꽂이었다.나무 다탁 위에는 다기 한 세트가 놓여 있었는데, 금방 끓여내서 방 안에 차 향기가 넘쳤다.뜻밖에도 안에 재석이 있었다.‘선배님을 위해 끓인 것 같군.’“정은이구나.”“조 교수님, 마 교수님, 안녕하세요! 두 분 점심 드셨어요?” 정은은 꽃을 잘 놓은 다음 과일을 옆의 탁자에 놓았다.“당연히 먹었지. 너도 참, 뭘 또 이렇게 사서 오는 거야?”“꽃과 과일일 뿐, 귀중한 물건이 아니에요. 실험실을 저희에게 공짜로 빌려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뭘 좀 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하하...” 마정일은 크게 웃었다.“넌 말재간도 참 좋구나. 무슨 말을 해도 다 일리가 있어. 나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그럼 그냥 받으세요.” 정은은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아, 이 아이 좀 봐.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도 겸손하지 않잖아!”재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