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85화

Penulis: 십일
“자.”

정은은 목을 움직이더니 또 고개를 저었다.

‘어, 정말 안 떨어지네. 꽤 단단하게 묶었나 봐.’

“어머! 아가씨 남자친구는 정말 빨리 배웠네요. 나보다 더 잘 하는 것 같아요!”

사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재석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은은 설명하려 했다.

“제 남자친구 아닌...”

그러나 사장님은 그녀에게 말을 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예전에는 시집간 여자들이 머리를 걷어올렸어요. 시집간 후, 금슬이 좋다면 남편이 직접 부인을 위해 머리를 묶어주었고요. 이게 다 의미가 있는 거예요. 우리 고향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빗겨주며 백년해로하고 영원히 한마음을 맺는다는 뜻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지금 이 남자들은 머리를 묶어주긴커녕 빗으로 간단하게 빗겨주는 것도 귀찮다고 하니 정말 게으름뱅이와 다름이 없다니깐요. 하지만 아가씨 남자친구는 정말 대단해요.”

사장님은 재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배울 뿐만 아니라 인내심이 있어서 직접 아가씨를 위해 머리를 말아올렸잖아요.”

“이 사람은 제 남자...”

“아가씨, 이 총각 꼭 소중히 여겨야 돼요. 요즘은 좋은 남자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정은은 속이 답답해졌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순 없는 거야?’

두 사람은 노점을 떠나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재석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제 할 줄 아는 거야?”

“뭘요?”

“머리카락을 걷어올리는 거.”

정은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난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배우라는 거야?!’

재석이 말했다.

“내가 다시 한번 가르쳐줄까?”

“아니요!”

정은은 얼른 손을 흔들었다.

‘굳이 안 걷어올려도 되니까 그냥 마음대로 묶으면 되지.’

“날 못 믿겠어?”

정은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 자신을 믿지 않아서 그래요.”

재석은 말문이 막혔다.

어차피 봐도 제대로 배울 수 없으니 차라리 포기하는 게 더 나았다.

두 사람은 걷다가 멈추었고, 거리를 나갈 때에야 이미숙, 소진헌과 합류했다.

“엄마...”

“어? 이 집게핀은...”

이미숙은 바로 정은의 걷어올린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kunci

Bab terkait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86화

    “정말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재석은 잠시 멈칫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뭐?!” 소진헌은 갑자기 흥분해졌다.“정말이야? 고백은 했어? 왜 아직도 사귀지 않은 거야?”잇단 질문에 재석은 말문이 막혔다.‘이럴 줄 알았으면 대답하지 말걸 그랬어.’네 사람은 집 앞에서 헤어졌다.재석은 왼쪽으로 향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고, 정은네 일가족은 명이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이미숙은 웃으며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오늘 덕분에 잘 먹었어.”“에이,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는 오늘 아주머니의 사인을 받았잖아요.”이 말 한마디에 이미숙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정은은 샤워하러 갔다.평소처럼 머리를 묶고 머리가 젖지 않도록 샤워모자를 썼다.그러나 손을 뒤로 뻗은 순간, 딱딱한 집게핀을 만진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머리가 이미 묶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정은은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음, 정말 대단한 수법이야. 그런데 왜 나만 못하는 거지? 말도 안돼,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짜증나!’이미숙과 소진헌은 씻은 다음 이미 방으로 돌아가 누워있었다. 부부는 불을 켜고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나석천이 이때 문자를 보내왔다.[이 작가님, 축하드립니다!][『7일담』은 오늘 판매량이 또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미 몇 개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이 책의 영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받고 싶다고 했어요.][30분 전에 출판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첫 번째로 인쇄한 책은 이미 품절되었고, 공장은 밤새 인쇄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가님의 다른 배당금도 이미 도착했고요. 잠시 후에 계좌로 넣어드릴게요.][원래 전화로 말하고 싶었지만, 이 시간에 이미 주무셨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이렇게 문자를 보냈어요. 내일 전화로 말할 수도 있지만, 정말 너무 흥분해서요.]이미숙은 문자를 보고 나서 자신의 남편을 꽉 껴안았다.소진헌은 갑작스런 포옹에 흠칫 놀랐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87화

    이미숙은 이렇게 말했다.“뭘 먹을지 모르겠으면 제일 비싼 레스토랑으로 정해. 가격은 모든 것을 대표할 순 없지만 적어도 성의를 표시할 수 있으니까.’그래서 동건은 레스토랑의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또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이미숙은 감사 인사를 해야 했으니 틀림없이 식사 자리를 비싼 곳으로 정할 것이다.금요일, 저녁.동건은 10분 앞당겨 도착했는데, 정은네 일가는 그보다 더 일찍 도착할 줄이야. 그들은 이미 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원래 정은은 수민까지 불렀지만, 그녀는 너무 바빠서 이미 연속 이틀동안 야근을 했기에 정말 시간이 없었다.“정말 안 올 거야? 고동건 씨도 있는데.”수민은 눈을 부라리더니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래서? 그 남자가 있으면 내가 가야 하는 건가?]“두 사람 지금 사귀고 있잖아. 다 먹으면 동건 씨는 또 네 기사가 되어 널 집에 데려다줄 수 있고.”[쳇, 누가 데려다 달라고 했어? 나한테 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는 가짜 커플이잖아. 넌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닌데, 지금 자꾸 비아냥거릴 거야...]룸 안에서.동건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두 분도 참, 저도 간단하게 도와드렸을 뿐인데, 이렇게 특별히 밥을 사주시다니!”“당연히 그래야지.”소진헌은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네가 나석천 편집장님을 정은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지금의 『7일담』이 있게 된 거야.”이미숙도 옆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부부는 동건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소진헌은 훤칠하지만 우아한 기질을 선보이고 있었다. 옷이든 하는 말이든 모두 지식인만이 가지고 있는 기질을 내뿜었다.이미숙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파란 원피스에 긴 머리를 걷어올린 채로 소진헌의 곁에 서 있으니 침착하면서도 도도했다.그녀가 서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곧 음식이 올라왔다.소진헌은 좋은 술 한 병을 가지고 왔다. 가득 따른 후, 그는 먼저 마시며 동건을 바라보았다.“작은 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88화

    동건은 얼마 전에 도겸의 회사에 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서연희의 어머니와 양아치 같은 남동생을 떠올렸다.“아이가 없어졌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서영숙은 아마 울다 기절할지도 모른다동건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곧 그가 부른 대리도 도착했다.“저기요! 대표님! 잠시만요!”동건이 뒷좌석 차 문을 열고 앉으려 할 때, 레스토랑 지배인이 그를 불렀다.“무슨 일이에요?”“방금 저희가 룸을 청소할 때 이 숄을 발견했습니다. 그 위에 브로치가 하나 있는데, 아마도 여성분이 빠뜨린 것 같습니다...”정은네 일가는 이미 떠났기에, 지배인은 그들과 함께 밥을 먹은 동건을 보자마자 즉시 그를 불렀다.“이리 줘요, 내가 돌려주면 되니까.’“네, 감사합니다.”동근은 숄을 뒷좌석에 놓고는 내일 사람 시켜 정은에게 돌려주려 했다.“가요, 선생님.”“네.”도중에 선우에게 전화가 왔다.[형! 왜 아직도 안 온 거예요? 지금이 몇 시인데. 우리 지금 형 하나만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요 며칠 너무 신나게 놀다가 몸이 약해진 거예요?]선우가 있는 곳은 좀 시끄러웠는데, 클럽이 아니면 술집이었다.“꺼져, 이 미친 자식아! 말도 참 더럽게 하네! 딱 기다려, 곧 도착할 테니까!”동건은 주소를 물어본 다음 직접 대리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슬라이드 바에서.선우가 나와서 동건과 어깨동무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왜 이렇게 급하게 달려온 거예요? 어느 여자의 품에 있다 온 건 아니겠죠?”“꺼져, 정상적인 식사를 했을 뿐이니 함부로 말하지 마.”선우는 입을 삐죽거렸다.“내가 믿을 것 같아요?”“난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니 이상한 루머 좀 퍼뜨리지 마세요.”“가짜 여자친구잖아요?” 선우는 히죽거리며 말했다.동건은 멈칫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누가 그래?”“수민 누나가요.”“언제?”선우는 잠시 생각했다.“지난 주말이었을 걸요? 테니스를 치러 갔는데, 한 남자와 아주 다정하게 옆방에서 공을 치고 있더라고요...”남자는 수민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89화

    밖에 나오자, 세 사람은 모두 술을 마셨기에 각자의 전화로 대리운전을 불렀다.기다리는 사이에 선우는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그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 했지만 라이터를 찾지 못했다.동건에게 달라고 할 때, 그는 자신의 차를 가리켰다.“뒷좌석에 있으니까 혼자 가지러 가.”선우는 차 문을 열고 라이터를 찾았다.“아, 여깄었네...”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라이터를 동건에게 돌려주었다.방금 뒷좌석에서 본 숄을 떠올리며 선우는 입가를 실룩거렸다.“형 이제 차에서 그런 짓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동건은 영문을 몰랐다.“그런 짓? 무슨 말을 하는 거야?”“모르는 척할 거예요? 뒤에 숄이 있잖아요? 그건 여자만 입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노란색. 솔직히 말해요, 어느 여자가 남긴 거예요?”동건은 어이가 없었다.“헛소리 하지 마.”“어머, 인정 안 하는 거 좀 봐요, 이건 형 답지가 않은데.”“인정하긴 개뿔! 그거 정은 씨 어머니의 숄이야. 내일 돌려주려고 했다고. 그런데 무슨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너 야동 좀 그만 봐!”선우는 깜짝 놀랐다.“정은 누나 어머니요? 그 분의 물건이 왜 형의 차에 있는 거죠?”한쪽에 있던 도겸은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동건은 방금 입을 열려고 했는데, 선우와 도겸이 모두 궁금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 헤헤 웃으며 갑자기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글쎄, 그건 당연히 이유가 있겠지...”선우는 계속 추궁했다.“무슨 이유인데요?”“아니, 왜 질문이 이렇게 많아?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당연히 상관이 있죠! 난 이미 오랫동안 정은 누나의 소식을 듣지 못했거든요. 지난번에 다리가 부러져 이주 넘게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정은 누나가 병문안 하러 왔었거든요. 날 그렇게 걱정하고 있으니 나도 당연히 누나를 관심해야 하지 않겠어요?”“뭐? 정은 씨가 병문안을 갔었다고?” 동건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하며 곁눈질로 줄곧 도겸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는 몸을 살짝 기울이더니, 눈썹을 치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90화

    “뭐가요?” 선우는 영문을 몰랐다.“그때 정은과 헤어진 거 말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형...”도겸을 바라보는 선우의 눈빛은 많이 복잡했다.“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예요?”도겸은 말을 하지 않았다.“정은 누나가 얼마나 좋은 여자인데! 나 같으면 어디 다칠까 봐 평생 아껴줄 거예요...”말실수 했다는 것을 깨달은 선우는 즉시 말을 바꾸었다.“물론 난 누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만약 형이었다면, 정은 누나를 꽉 붙잡았을 거예요.”좋은 여자는 흔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손을 놓은 순간,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 것이다.“그때 내 생일날 말이에요, 정은 누나는 기분 좋게 와서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는데, 형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헤어지자고 말했잖아요. 나 그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동건이 형도 그래요! 그날 후에 조용히 나에게 말했는데, 형이 조만간 후회를 할 거라고.”다만 그런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두 사람도 꽤 오랫동안 사귀었으니, 6년이 지난 지금,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다시 화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 정은이 정말 떠났을 줄이야.“도겸이 형, 지금 심정을 잘 알겠는데, 지금 정은 누나는...”“난 이미 잘못을 깨달았고, 또 잘못을 인정했어.”도겸은 눈을 드리우며 손에 든 담배를 꽉 쥐었다.“그러나 정은은 여전히 날 용서하려 하지 않잖아... 선우야,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만회할 수 있을까?”이 질문에 선우도 골치가 아팠다.‘정은 누나는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하지만 그는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슬퍼해하는 도겸을 보며 선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형, 사실 좋은 여자는 엄청 많아요. 이제 앞을 보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또 다른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도겸은 가볍게 웃었다. 담배는 이미 구겨졌고, 부스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그래, 좋은 여자는 많지만 정은은 하나밖에 없잖아.”선우는 어안이 벙벙했다.‘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91화

    정은은 다시 한번 자세히 훑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이미숙은 걸어가서 자신의 딸과 함께 전시판 앞에 섰다.“전쟁이 끝난 후, 이원은 이씨 가문의 후손들에게 돌려주었다고 적혔는데, 돌려준 이상 이 정원은 개인 정원인 거잖아?”‘개인의 것이니 왜 모든 관광객들이 참관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티켓을 살 필요도 없고. 마치 자선하는 것처럼 말이야. 정말 이상해!’그러나 이미숙도 깊이 연구하지 않고, 일가족은 계속 동쪽으로 걸어갔다.이 정원은 정말 컸는데, 10여 분을 걸어서야 다음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건물 옆에는 작은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대나무 숲 밖에는 청석판이 깔려 있었고, 대나무 숲 깊은 곳까지 뻗어 있었다.구불구불한 길은 신비한 느낌을 더해주었다.바람이 불자, 대나무 잎도 따라서 소리를 냈다. 바람도 대나무의 맑은 향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일가족은 안내판을 따라 앞으로 걸었고, 소진헌은 사진을 찍으면서 감탄했다.“정말 너무 예쁘네!”세 식구가 작은 정원을 지나, 좁은 문을 나가자, 눈앞이 탁 트였다. 평지의 끝에는 기품 있는 집이 하나 있었다.웅장하면서도 화려했다.한가운데에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위에는 ‘본관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안에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그들은 바깥에서 참관할 수밖에 없었다.이미숙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노란색 선 밖에 멈춰 섰다. 이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도저히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그녀는 망연히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그 익숙한 느낌이 갈수록 강렬해졌다.나... 여기에 온 적이 있는 것 같은데?’정은은 여전히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이미숙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심지어 곤혹을 드러내고 있었다.“엄마?” 그녀가 소리쳤다. “왜 그래요?”소진헌도 고개를 돌렸다.“햇볕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좀 쉴까?”이미숙은 웃으며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괜찮아요, 그냥... 여기가 너무 예뻐서 그래요. 만약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92화

    이미숙은 길치였다.이렇게 큰 정원은 말할 것도 없고, 가본 적이 없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도 늘 길을 잃곤 했다.“엄마, 어떻게 길을 찾으신 거예요?”이미숙은 단번에 말문이 막혔다.“나도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가면 된다는 직감을 받아서? 그런데 바로 나올 줄은 몰랐어...”소진헌도 감탄을 했다.“역시 아내를 믿어야 되는 거야!”부녀는 모두 이미숙이 운 좋게 맞혔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미숙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정교한 정원, 은폐된 작은 문, 이 모든 것은 전부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곳에 숨겨 있었던 장면이었다....같은 시간, 같은 정원에서.현빈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예전에 살던 정원에 왔다.십여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노인은 본관의 인테리어가 여전히 예전과 똑같다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그리움을 드러냈다.당시 이 정원을 상납할 때, 그들은 요구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본관의 물건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미숙이가 돌아와서 이 낯선 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워할까?’봉수진은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그들 가족이 십여 년 동안 살았던 이 곳을 똑똑히 보려고 했고, 머릿속에는 이미숙이 어렸을 때 정원에서 놀던 장면이 가득했다.“미숙아, 물고 좀 봐. 대나무 잎을 따서 누구에게 주려고?”“아빠한테 줄 거예요, 헤헤!”딸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맴돌았고, 그때의 기억도 마치 어제 금방 일어난 일인 것만 같았다.“당신,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난 자꾸만 미숙이가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아요...”봉수진은 복도 기둥을 만지며 말했다.“봐요, 미숙이가 그린 그림이 아직 남아 있잖아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가능하다면 봉수진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봉수진은 딸을 지키며 딸에게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미숙이 우리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잘 보호할 거야! 미숙아, 넌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동안 잘 지내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93화

    더군다나 이미숙이 실종되었을 때, 이미 스물두 살이었다. 당시 어려서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만약 정말 살아있다면 무슨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자신의 부모님에게 연락할 것이다.그런데 전화 한 통도, 문자 한 통도 없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남은 인생을 편하게 향수해야 나이에 두 사람은 이국 타향에서 분주히 뛰어다녔다.현빈은 마음이 약해졌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원에 한 번 가보세요.”“그래! 미숙이는 정원에 있는 그네랑 자등나무를 제일 좋아했지...”현빈이 봉수진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갈 때,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발신 번호를 확인한 후, 내색하지 않고 봉수진이 보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번호를 가렸다.“할머니, 저 전화 좀 받으러 나갈게요.”“그래.”본관을 나서자, 현빈은 그제야 수신 버튼을 눌렀다.“어머니, 무슨 일이시죠?”[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맞은편의 이미윤은 기분이 좀 좋지 않았는데, 기다리다 짜증이 났던 것이다.[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현빈은 그녀의 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일 때문에 좀 바빴어요. 지금 밖에 있고요.”[뭐가 바쁜데? 너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머니, 전 범인이 아니니까 저를 그렇게 심문하실 필요 없어요.”[범인?! 허--]이미윤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지금 누굴 말하는 거야? 범인은 나 아니니? 그래서 너희들 다 날 속이고 있는 거잖아? 지금 날 뭘로 보고?!]“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그럼 넌 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귀국하셨는데, 왜 나에게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니?]현빈은 말문이 막혔다.[그럴 줄 알았어!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어머니...” 현빈은 씁쓸하게 웃었다.[너 지금 네 외할아버지 그들과 함께 있는 거지? 맞지? 나 방금 이미 본가에 갔었는데, 집사가 그러더라, 네가 두 분을 데리

Bab terbaru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2화

    처음엔 진영매도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아이고... 또 오타네... 이걸 또 지우고 다시... 에구구...’속도도 느리고, 자꾸 엉뚱한 단어가 입력돼서 정말 진땀을 뺐다.하지만 어느 날, 자판 옆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눌러봤고, ‘음성 입력'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머, 말만 하면 글자가 나오네? 이거 진짜 신기하네...’그 뒤로 점점 익숙해지면서 진영매는 ‘두부 단톡방’을 직접 관리하게 되었고, 주문 확인도 척척 해냈다.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서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는 이웃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언니도 공동구매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요즘 동네 맘카페나 톡방에서 다 그걸로 부수입을 벌어요.”“공동구매요?”“네, 단톡방에 링크만 올리면 되는데, 그 링크로 누가 주문하면 언니한테 수수료가 떨어져요. 요즘 그런 플랫폼이 많아요.”그 말에 진영매는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은 물건 몇 개부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링크만 던져놓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직접 샀다. 직접 써봤다. 직접 먹어봤다.그리고 진심 담긴 후기를 함께 적어 올렸다.[이건 제가 직접 삶아봤는데, 식감도 쫄깃하고 가격도 괜찮아요. 혹시 필요하신 분만 구매하시고, 안 맞을 것 같으면 굳이 안 사셔도 돼요.]‘괜히 민폐 되기 싫으니까... 무조건 좋다고는 못 하지.’그런데 이렇게 정성껏 올린 글이 톡방 안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처음엔 몇 개, 그러다 열 개, 스무 개... 요즘은 많을 땐 하루에 백 개 넘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하루 수익만 몇만 원 되는 날이 생기자, 남봉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진짜? 당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그렇게 번 거야?”그는 아침마다 두유를 끓이고, 비지 짜고, 순두부 포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단지 세 군데씩 배달을 돌곤 했다.‘점심엔 다시 나가 광장에 작은 천막을 치고 두부 요리 판매, 해 질 무렵에야 집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1화

    어느새 정은이 실험실에서 지낸 지 거의 2주가 되었다. 이번 집중 실험은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틀 정도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불꽃 열정 모드로 돌입했다.“정은 언니! 우리 이참에 2차 실험안도 다 밀어붙여요! 타이밍 완벽하잖아요! 이왕 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자고요!”진일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어차피 난 어제도 오늘도 실험실에서 잘 운명인데... 집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거기서 거기지 뭐.’서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민지 편. 민지가 하자고 하면, 그냥 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뭐.정은은 그런 셋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 그렇게, 예정보다 이틀 더 실험실에 갇혀 살며 2차 실험안까지 초안 작업을 마무리했다.민지의 슬로건은 이랬다.“오세요! 같이 말아봐요! 끝없는 연구의 늪!”그리고 마침내 모든 걸 정리한 날.“정은 언니! 헤헤. 저요... 연차 쓸게요! 푹 쉬어야겠어요!”‘뭐야, 이 모든 열정의 뿌리는 결국... 편하게 놀기 위한 전주곡이었어?’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승인.”오후엔 서준이 조용히 다가왔다.“누나...”“혹시 너도 연차 쓰려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둘이 같이...? 이건 무슨 흐름이지?’그렇다면 정은은 결단을 내렸다.“그냥 모두 이틀씩 쉬자. 다들 수고했으니까.”‘일도 일이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지. 그래야 오래 가지.’특히, 실험복을 벗지도 않고 앉아 있는 진일을 보며 정은은 단호히 말했다.“진일 선배는 특히 금지! 쉬는 날에 실험실 들어오면, 바로 벌금이에요!”진일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벌금...? 아니, 요즘은 연차 쓰라고 협박하는... 그런 시대인가...?”정은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그럼... 집에 좀 다녀올게. 이맘때쯤이면 우리 집은 옥수수 수확 시즌이라... 도와야 하거든, 헤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0화

    정은은 순간 멈칫했다.“조 교수님? 그분이 여길 다녀가셨어?”“네, 두 시쯤 오셨던 것 같아요. 한참이나 언니를 기다리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한 시간 넘게 앉아 계시다가 10분 전에 그냥 가셨어요.”‘10분 전...?’정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돌아오기 직전...’“언니, 조 교수님...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으신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다른 실험실에 새로운 과제라도 시작한 걸까요? 지난번 과제 마무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시작이라니... 진짜 무서워요, 그 열정...”정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런 생각이 들어?”“그게... 오늘 조 교수님 상태가 좀 이상했어요. 뭐랄까... 눈 밑 다크서클이 거의 좀비 수준...? 적어도 이틀은 연달아 밤을 새우신 것 같았어요.” “게다가 표정도 되게 딱딱하고... 그냥 누가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그런... 음... 미간 주름으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그랬구나.’정은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뭐, 늘 바쁘시잖아.”정은은 애써 담담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복잡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민지는 입을 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근데 진짜... 이상하게 느껴졌단 말이지...’‘그냥 피곤해 보인 게 아니라, 뭔가... 속이 무너진 느낌?’...한편, 재석은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몰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리고 차를 멈춰 세우자,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정은이는 오늘 차를 가져갔었네.’‘그럼... 차를 가져갔으면서, 왜 장은혁 차를 타고 왔지?’입술이 아주 얇게 다물어졌다.표정 하나 없이, 그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건 사람은 진욱이었다.[나, 어제 분명히 퇴근 전에 분석 리포트를 너한테 넘겼었잖아? 그런데 지금 보니 없어졌어. 어디 간 거지?] 재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기본적인 실수는 애초에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9화

    은혁은 뭔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 ‘이런 게 설렘인가...?’“은혁 씨, 고마워요.”멀리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 정은은 조용히 걸어가며 귀걸이를 착용했다. “정... 정은 씨!”그 순간, 정은이 멈춰 서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네? 무슨 일 있어요?”은혁은 당황해서 말이 꼬였다.“저, 그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식사 한번...” “아니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되실 때... 제가 꼭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정은은 순간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식사요...? 왜요?”“그게...”은혁은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잽싸게 핑계를 떠올렸다.“아! 제 사촌 여동생이요, 예전에 정은 씨가 보내준 시험 대비 정리자료를 되게 잘 봤다고...”“꼭 밥 한번 사드리라고... 신신당부해서요! 감사 인사 겸해서요!”정은은 시선을 실험실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죄송해요. 오늘은 당장 들어가서 실험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은 계속 이 안에서 지내느라, 언제 시간이 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은혁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정은은 살짝 웃으며 말을 끊었다.“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말이 끝나자마자, 정은은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해 실험실로 들어갔다.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혁. 문 옆에 붙어 있는 간판을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무한 실험실?”차로 돌아온 은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무한 실험실... 설립, 소정은, 연구 성과...]‘정은 씨... 서비대 대학원을 나왔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였다고?’논문 게재 수, 영향력 지수, 직접 설립한 실험실, 정부 과제 주도...은혁은 화면을 스크롤 하며, 점점 입꼬리가 올라갔다.‘이 정도면... 그냥 똑똑한 수준이 아니네. 완전 대단하잖아...’그렇게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던 찰나, 갑작스러운 경적이 들렸다. 빵!까맣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8화

    명주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들켰네요... 좋아요, 그럼 제가 0.1% 더 양보할게요. 이게 정말 마지막 양보입니다.”정은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0.3이요. 저도 그게 최선이에요.”명주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정은은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 알맞게 비워진 컵.“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정말로 가려는 발걸음이었다.명주는 예상치 못한 정은의 단호한 태도에 급히 따라 일어났다. “아, 잠깐만요! 가격이라는 게... 원래 대화하면서 맞춰가는 거잖아요!”정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저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잡담은 별로 안 좋아해요. 0.3이 괜찮으시다면 바로 계약서 쓰시고, 아니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요.”‘이 분위기, 진짜다... 장난 아니네, 이 사람...’명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은이 진짜 나갈 기세라는 걸 느끼자,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정은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계약 성사네요.”서류는 빠르게 정리됐다.두 사람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장비 납품 일정과 설치 세부 사항까지 깔끔하게 조율했다.완벽한 비즈니스 매듭이었다.서류를 챙겨 일어서려던 정은은 명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은 씨!”“혹시...사람들한테 ‘심리 꿰뚫는 거 잘한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명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사실, 장비를 오늘 꼭 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은 씨는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태도로 딱 버티시더라고요.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계약이 끝나고 난 다음이었어요. 하하...” 정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아뇨,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어요.”“거짓말.”정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대신,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뭔데요?”정은은 돌아서며 미소를 흘렸다. “먼저 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7화

    ‘아니지. 정은 언니 원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으앙, 괜히 비교돼!’“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정은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사람이야, 쇳덩이는 아니란 뜻이지. 급하지도 않은 일정인데 밤새우는 게 뭐 그렇게 재밌겠어.” “맞아요! 근데 언니는...”“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민지는 안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조금’이... 얼마나 조금인데요?”“음...”정은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두 시간.”민지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네.’ 바로 그때, 건너편 검사용 실험실 문이 열리며 서준이 샘플 봉투와 리포트를 들고나왔다.“서, 서준아... 언제 일어났어...?”민지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서준은 솔직하게 답했다.“6시. 왜?”민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나만 8시까지 잤네. 이럴 거면 알람은 왜 맞췄냐고... 으악...!!!’그렇게 오전 내내, 민지는 그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집중력도 세 배로 끌어 올렸다.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민지는 실험대에서 털썩 내려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같이 집중 근무에 들어간 팀원이 많으니, 정은은 미리 모두의 하루 세 끼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다. 밥 짓고 반찬 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가득한 냉장고를 털어 요리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민지는 반찬을 한 입 먹고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헐, 이거 SAMES 거다... 가격 꽤 나가는데...”남진일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와, 밥 진짜 맛있다. 이거 쌀도 좀 다르지 않아? 완전 길고 쫀쫀한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일은 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실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민지.‘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 쉴 땐 좀 쉬라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6화

    장마가 시작되자, 날씨는 마치 기분이라도 있는 듯 변덕을 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살 좋던 하늘은 오늘 아침부터 부슬비로 젖어 있었다.재석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기에, 그대로 샤워실로 향했다.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며칠 전, 침구를 몽땅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새로운 걸 깔지 않은 채로 며칠 밤을 그냥 잤다.그는 말없이 장롱에서 깨끗한 시트를 꺼내어, 이불까지 정돈했다.‘그날 정은이가 그랬지... 아버님이 장조림이랑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었는데...’그때, 재석은 머리를 말렸고, 내복을 갈아입은 후 맞은편 정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은아, 안에 있어?”“정은아...?”대답은 없었다.재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평소 같으면 실험실에서 돌아왔을 시간인데...’그 후로 두 시간. 재석은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신경은 늘 현관 쪽에 쏠려 있었다.작은 인기척만 나도 바로 고개를 들어 도어락을 확인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현관문 앞에 섰다.하지만 그 누구도, 정은은 아니었다.새벽 1시. 정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오늘도 실험실에서 자려나...’재석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향했다.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뭐랄까... 괜히 허전하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실험실로 출근했다.그날 저녁. 재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야간 러닝을 나섰다.8시부터 10시까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그 사이, 정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재석은 또다시 시간을 더 보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는 동안, 몇몇 이웃들과 마주쳤다.“조 교수님, 오늘도 러닝하세요?”“운동을 정말 꾸준히 하시네요. 올해에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5화

    정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배님, 아빠가 장조림을 잔뜩 가져왔어요. 선배님 것도 있는데, 언제 집에 계세요? 가져다드릴게요.]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반찬 봉투, 가지런히 담긴 장조림, 그리고 열무김치 세 통.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근데 요즘은 계속 실험실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휴... 병원 간 건 아니구나.’정은은 마음을 놓고는, 바로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공기 샘플 분석 결과 나왔어요.]그리고 곧바로 분석 리포트 파일도 함께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엔 곧장 답장이 오지 않았다.정은은 씻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10분 전 도착한 메시지.정은은 손에 수건을 쥔 채 그대로 메시지를 열었다.[경찰 측 보고서랑 거의 일치해. 환각이나 각성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어.]‘그래... 그래서 미제 처리된 거구나.’M시 경찰은 결국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재석이 수아를 바로 해고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린 건, 바로 이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정식 수사가 들어갔다면, 이수아가 마주할 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겠지.’정은은 머리를 닦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은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전화를 받았다.“그 약, 기존에 유통되던 제품이 아닌 것 같아요. 성분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기에서도 검출이 안 될 정도라면...”“제작한 사람도, 유통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인맥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선배님, 조심하셔야 해요.”[응. 알겠어.]말이 끝난 후, 찰나의 정적. 전화 속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선배님...”정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요즘... 아예 집에 안 들어가세요?”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응...]‘그냥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4화

    5월 말, 이미숙은 원작 소설 영화 제작 발표회 참석차 J시에 왔다. 주말 일정이라 남편 소진헌도 함께였고, 겸사겸사 정은에게 나눠 줄 장조림 한가득과 직접 담근 김치 여섯 통도 챙겨왔다.“완전 유기농! 방부제 제로! 아, 조 교수 것도 좀 나눠줘. 혼자 다 먹지 말고.”말을 끝내기 무섭게, 소진헌은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바빴고, 떠날 땐 미련도 없었다.이번 일정은 주최 측에서 식사며 숙소까지 전부 제공했는데, 행사 장소가 이춘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탓에 소진헌 부부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오후 한나절을 이춘재, 봉수진 부부와 보내며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 한 끼는 함께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딸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사위는... 뭐, 그냥 딸을 따라다니느라 바쁜 걸로 치부하고 이해해 줬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두 노인도 L시로 내려갈 텐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당에 굳이 소진헌 부부를 집에 머물라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정은은 아버지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밑에 놓인 장조림 봉투를 내려다봤다.‘이걸 내가 다 먹을 순 없지.’정은은 장조림 반 정도를 덜어, 다른 봉투에 담았고, 김치도 세 통 넣었다. ‘재석 선배님 오면 같이 주자.’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이미 논문 세 편을 다 읽을 때까지도 맞은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은은 혹시나 놓쳤나 싶어 직접 문 앞으로 가서 노크했다.“선배님, 집에 계세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또 실험실에서 밤샘 중이겠지.’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요즘 정은도 실험실에서 자는 날이 부쩍 늘었고, 남진일은 아예 실험실을 제 집처럼 쓰고 있었다.민지는 심지어 진지하게 조언까지 했다.“진일 선배, 옷장 두 개 더 넣고, 정은 언니가 냄비랑 밥그릇만 좀 들고 오면 그냥 자기 집 완성인 거 알죠?”‘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울 정도라니까.’며칠 지나지 않아, 진일은 정말로 중고 옷장을 하나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