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훈의 생각이 맞았다. 남자와 주인은 한편으로서 이런 식으로 소비를 자극하고 있었다.특히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남자를 보게 보면 더욱 격렬하게 상대방을 자극하곤 한다.어느 한 남자는 하룻밤에 자그마치 20만 원을 태웠었다.“아빠...”이때 율이는 윤도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도훈 씨, 한 번 해봐요. 그게 뭐 대수라고.”이진희도 이를 악물며 윤도훈이 두 사람을 위해 체면을 찾아왔으면 했다.“그래!”윤도훈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있던 물건을 잠시 내려놓았다.이윽고 그는 남자를 향해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그냥 하는 건 재미없고 뭐 좀 걸고 하실래요?”남자는 의아해하며 위아래로 윤도훈을 몇 번 훑어보고 입을 삐죽거리며 물었다.“뭘 걸겠다는 거죠?”“똑같이 던져서 누가 더 좋고 많은 물건을 따낼 수 있는지 한 번 해 봐요. 만약 내가 이기면 당신 아들이 들고 있는 트랜스포머를 내 딸에게 주고 아들 대신 나에게 사과도 해야 할 거예요. 만약 그쪽이 이기면 10만 원 줄게요. 어때요?”윤도훈은 자신의 요구를 제기했다.이 말을 듣고 남자는 눈이 밝아지자 바로 승낙했다. 얼굴에 탐욕스러운 빛까지 번쩍이면서.바람잡이가 되기 위해 그는 전문적으로 연습한 적이 있는데 정확도는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윤도훈을 이길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이거 잘 하면 공돈 생기겠는데.’“좋아요! 사장님, 2천원으로 주세요.”윤도훈은 웃으며 노점상에게 말했다.이 말을 듣고 현장에서는 갑자기 야유가 터져 나왔다.노점상의 말투는 냉담했다.“2000원에 동그라미 세 개밖에 안 되는 데 뭘 따낼 수나 있겠어요?”적인 남자도 따라서 비아냥거렸다.“하기 싫다는 거 아니에요? 이왕 내기할 거면 좀 잘하죠? 우리 둘 다 아무것도 따내지 못하면 그때 비겼다고 우기려고 그러는 거죠?”“네 아빠 진짜 지질해! 퉤퉤퉤...”뚱뚱한 녀석이 또 율이에게 도발했다.윤도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여는데.“먼
윤도훈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남자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가장 비싼 거로 한다고요? 가장 뒷줄에 있고 가장 힘든 건데 설마 모르세요?”“당연히 알죠!”윤도훈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이 말을 듣고, 노점상은 허허 웃으며 마지막 줄의 물건을 가리켰다.“비싼 건 여기에 있어요. 얼마든지 던져도 좋고 그중 하나라도 따내면 본전은 되찾을 거예요. 어디 한 번 힘내 봐요.”그는 당연히 윤도훈이 ‘주제’ 넘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줄을 던지기를 원했다.그렇다면 이 녀석은 틀림없이 걸려들 수 없을 것이고 같은 편이 이기게 될 것이다.이때 뚱뚱한 녀석이 또 율이를 향해 소리쳤다.“네 아빠 실력도 없으면서 허풍까지 치고 있어.”율이는 콧방귀를 뀌었다.“기다려 봐, 우리 아빠가 최고야!”율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숭배를 가지고 있다.이때 윤도훈은 마지막 줄을 보고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마지막 줄의 물건은 값어치가 꽤 있고 큰 인형과 옥석 장식품이 있다.비록 무슨 극품 옥석은 아니지만 크기가 있기에 몇십 만원은 할 것이다.그 외에도 구리 조롱박, 전기 항공모함, 원격 조종 비행기 등이 뒤에 있다.“허허, 잘 봐!”윤도훈이 손에 동그라미를 쥐고 조준도 하지 않은 듯 내팽개쳤다.그의 수법을 보고서 노점상과 남자, 그리고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고 하찮은 기색을 드러냈다.‘조준도 안 하고 던져? 허세 덩어리잖아!’‘걸려드는 게 이상해!’하지만 율이와 이진희는 기대한 표정으로 공중에서 회전하는 동그라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찰칵-모든 사람들이 아연실색한 가운데 동그라미는 공교롭게도 큰 곰 인형의 귀에 걸렸다.노점상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얼굴이 부자연스러웠다.남자 역시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멍해졌다.“아싸! 아빠 짱!’“아빠, 저 저 큰 인형 갖고 싶어요. 저녁에 안고 잘 거예요.”이때 율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손바닥을 치며 좋아서 방방 뛰었다.“사장님, 우리 딸이 말
“이게...”놀라움에 노점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바람을 잡던 남자 역시 귀신이라도 본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주위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함성을 자아내기도 했다.“대박! 또 걸렸어!”“형님, 저도 하나만 해주면 안 돼요?”“고수였어!”본전도 찾지 못한 노점상은 마지못해 곰 인형을 윤도훈에게 건네주었다.윤도훈은 그대로 받고서 바로 이진희에게 주었다.“자.”마다하지 않고 이진희는 활짝 웃으며 건네받았다.마지막 동그라미를 쥐고서 윤도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한 번 보았다.“저기요, 이 게임에서 지고 나면 지금 당신 아들이 쥐고 있는 트랜스포머도 줘야 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남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자기가 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는지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그의 아들은 그 말을 듣고서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트랜스포머를 더욱 꼭 안았다.“아빠, 꼭 이기셔야 해요! 이건 제 것이란 말이에요.”어이가 없다는 듯 윤도훈은 허허 웃더니 바로 들고 잇던 동그라미를 내던졌다.달그락-순간 절망으로 달리고 있던 노점상은 마침내 절망해 버리고 말았다.동그라미는 아주 안정적으로 값비깐 골동품에 정확히 걸리고 만다.“와! 대박!”“저게 어떻게 가능하지?”“이건 꿈일 거야!”주위 사람들은 또다시 감탄을 금치 못하며 경배하는 눈빛으로 윤도훈을 바라보았다.마음대로 던진 것이 아니라 본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서.“거봐요! 우리 아빠 대단하다고 했잖아요!”신이 난 율이는 방방 뛰며 말했다.“이제 그쪽 차례예요.”윤도훈은 남자를 향해 말했다.이마에 땀이 흥건해진 남자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동그라미를 내던졌으나 과도한 압력으로 단 한 개도 맞추지 못했다.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승부가 갈라진 경기에서 남자는 생각한 대로 비참하게 졌다.“흥! 봤지? 우리 아빠가 훨씬 더 대단하거든!”이때 율이가 기세 당당한 모습으로 뚱뚱한 남자아이에게 말했다.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남자아이는 실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기 아빠를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남자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윤도훈을 바라보는 두 눈에도 원망과 달갑지 않음이 가득했다.“율이야, 저 트랜스포머는 율이꺼야.”이때 이진희가 콧방귀를 뀌며 율이에게 말했다.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진희는 오늘 있었던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열이 타올랐다.상대가 먼저 율이에게 도발을 했고 어린아이가 심지어 윤도훈에게 침까지 뱉었으니 말이다.무엇보다도 이 모든 걸 직접 보고서도 자식 교육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불난 집에 부채질한 남자의 태도 때문이다.심지어 내기에서 지고 나서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아이를 내세우며 약속한 트랜스포머를 주지 않으려 했다.사회가 어찌 지금 이 모습으로 변했는지, 아이를 내세우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어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어른이라 아이랑 어찌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하여 이진희가 생각해 낸 방법은 아이인 율이를 내세워 남자의 아들과 맞서게 하는 것이었다.하물며 율이는 상대 남자아이보다 어리기까지 하다.이진희의 말을 듣고서 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곰 인형을 이진희에게 건네주었다.“진희 엄마, 이거 좀 부탁할게요.”그러고는 바로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남자아이를 향해 달려갔다.“게임에서 졌으면 약속했던 물건 줘야 하는 거야!”“트랜스포머 이리 내! 좋은 말로 할 때 주는 게 좋을 거야! 나 보통 여자애들이랑 달라!”율이는 다가가자마자 씩씩거리며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제법 그럴듯한 모습으로.“싫어! 꺼져! 너야말로 때리기 전에 꺼져!”남자아이는 자기보다 키가 작은 율이를 보고서 기고만장하게 욕을 퍼부었다.그 모습에 율이는 콧방귀를 뀌더니 바로 손을 내밀어 살짝 툭 밀쳤다.들인 힘에 비해 너무 비참하게 넘어진 남자아이.율이는 바로 다가가 트랜스포머를 빼앗아 왔다.“보잘것없는 플라스틱이잖아! 그냥 준다고 해도 싫어!”입을 삐죽거리며 율이는 바로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주었다.“자, 선물이야.”선물을 받은 남자아이와 그의 부모님은 순간 기뻐
노점상은 안색이 변하더니 바로 단호하게 말했다.“죄송합니다만 그 쪽한테 더 이상 팔고 싶지 않습니다.”순간 야유하는 소리가 주위를 가득 채웠다.율이와 이진희는 곧장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윤도훈이 막아 버렸다.노점상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윤도훈은 옆에 있는 청년을 보았다.아직 동그라미를 손에 쥐고 있는 청년을 보고서 입을 여는데.“제가 대신해줄까요? 걸려드는 대로 선물로 드릴게요.”조금 전 그들의 내기를 구경하느라 미처 게임을 하지 못한 청년.갑작스러운 윤도훈의 제안은 청년은 이게 웬 떡인가 하며 바로 들고 있던 동그라미를윤도훈에게 건네주었다.“물론이죠! 마음대로 던지세요. 걸려들지 않아도 괜찮아요.”이야기 흐름이 달라지기가 노점상은 순간 또다시 안색이 달라졌다.“안 돼요! 안 됩니다!”“왜 안 된다는 거죠? 내가 내 돈으로 게임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죠?”“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장사해도 되는 겁니까?”청년이 노기 등등하게 말하자, 그의 옆에 있던 여자도 덧붙였다.앞서 윤도훈이 보여줬던 기막힌 실력을 직접 보고 느낀 두 사람이다.윤도훈이 직접 나서서 선물을 따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주위 사람들은 또다시 비난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그러게 말이에요! 왜 안 된다는 거죠?”“친구들끼리 나눠서 할 수도 있잖아요.”“돈만 받고 상품은 단 하나도 주기 싫다 그런 마인드인가요?”“어머, 그러다가 부자 되겠어요.”“저기 있는 상품 다 따버릴까요?”모든 이들의 화를 자아낸 것을 느낀 노점상은 순간 땀이 흥건해져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윤도훈이 나서서 던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옥으로 된 장식품까지 따내고 말았다.“하하하! 저거 엄청 비싸!”청년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여자 친구로 보이는 여자 역시 기뻐해 마지 못했다.“이리 주시죠!”한껏 상기된 얼굴로 노점상은 또다시 창고로 들어가 주먹만 하고 돌로 된 장식품을 청년에게 건네주었다.탁-젊어서 그런지 몸에 화가 많아 보이는 청년은 바로 땅으로 던져
주위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밀어 넣은 동그라미를 윤도훈은 일일이 내던지기 시작했다.거의 백발백중이라고 보면 된다.사람들은 그가 던진 것이 자기의 동그라미가 맞든 아니든 물건을 빼앗느라 정신이 없었다.“내 것이야!”“하하하. 이것도 내 것이야!”“여기도 걸려 있는데, 그냥 가져가자!”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광경에 노점상은 목청이 터지라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심지어 무서운 인파가 밀려온 바람에 넘어지기까지 했다.“그만 가자.”윤도훈은 이진희와 율이가 사들인 물건을 도로 쥐고서 두 사람을 데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아빠 최고!”율이는 곰 인형을 안고 반달눈이 되어 버렸다.실은 처음부터 노점상과 바람잡이 남자 사이의 약속을 꿰뚫고 있었다.본때만 살짝 보여주려고 했을 뿐 그리 심각하게 할 생각도 없었다.바람잡이를 찾아 이처럼 포악무도한 행위로 소비를 자극하는 건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다.윤도훈은 자기 돈으로 사들인 동그라미 세 개만 던지고 그만두려고 했었다. 비싼 상품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하지만 예상한 바와 달리 노점상이 그토록 후안무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만한 사이즈의 상품을 따냈으면 그걸 그대로 줘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비유가지 하면서 어떻게든 상품을 바꿔치기하려고 했으니.고객을 바보로 여기면서 말이다.물건을 차로 옮기고서 윤도훈은 율이와 이진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계속 돌기로 했다.무척이나 쉬고 싶었으나 두 사람은 여전히 흥이 넘쳤으니, 별수가 없었다.그렇게 30분 동안 걷다 보니 야간 시장의 동쪽 끝에 이르게 되었다.이때 윤도훈은 수공품을 팔고 있는 한 여인에게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람루하기 그지없는 옷차람에 배가 볼록 튀어나온 것이 임신한 몸으로 보였다.여인의 옆에는 어린 여자아이 두 명도 함께 있었는데 한 명은 율이와 또래로 보였고 다른 한 명은 기껏해야 2, 3살로 보였다.그녀들을 보자마자 윤도훈은 바로 눈살이 찌푸려졌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아빠, 저거 사
윤도훈 옆에 있던 이진희도 그 말을 듣고서 의아하기 그지없었다.‘남정은이 실종되었다고?’이진희는 남정은을 알고 있다.원래 윤도훈이 운영하고 있던 공장 문 앞에서 그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윤도훈의 ‘친구’였다는 것을 알았다.윤도훈과 결혼식을 올리던 그날 눈에 가시처럼 보였던 사진들을 ‘선물’한 사람도 바로 남정은이다.잊으려고 해도 절대 잊힐 리가 없는 그런 사람이다. 이진희에게 있어서.“정은이가 실종되었다고요? 어떻게 된 거예요?”무거운 소리로 윤도훈이 물었다.여수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그날 저녁 돈 받으러 간다고 하고 나갔어요. 누구 대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잔금 받고 온다면서 그랬어요. 하지만 그렇게 나간 뒤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니면 처자식 다 버리고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렸는지... 저 혼자서 두 딸 데리고 임신한 몸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흑흑흑.”기댈 곳 하나 없어진 여수정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삶에 대해 더 이상의 기대도 없는 모습으로 보였다.흔적 하나 없이 사라진 남정은, 힘든 몸으로 아이들까지 챙기고 있으니 그 고단함이 감히 상상이 되었다.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윤도훈은 한참을 서 있다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형수님, 그만 우세요. 괜찮으시면 계좌 번호 알려주세요. 제가 돈을 좀 보내드릴게요. 아이들 데리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네요. 이건 제 전화번호에요. 앞으로 힘든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하시고요.”“네?”“그... 그럴 필요 없어요. 고마워요.”여수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윤도훈의 말을 듣고서 의아함도 얼굴에 가득했다.그가 자기를 도와주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한바탕 인사치레를 하고 나서 여수정은 끝끝내 자기 계좌 번호를 윤도훈에게 알려주었다.힘든 상황인 만큼 아이를 위해서라도 뻔뻔하게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여수정에게 2천만 원을 보내고 나서 윤도훈은 이진희와 율이를
“나랑 연관되어 있다고?”윤도훈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조수석으로 온 이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고개를 돌려 윤도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그거 알아요? 우리 결혼식 올리던 그날에 남정은 씨가 찾아와서 나한테 사진을 선물해 주었어요. 한 장도 아니고 여러 장이나.”그 말을 듣고서 윤도훈은 멈칫거렸다.“뭐? 무슨 사진인데?”이진희는 내심 한바탕 갈등하더니 끝내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워낙 도도한 성격이라 윤도훈이 묻지 않는 한 절대 먼저 나서서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내심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무척이나 얻고 싶긴 했다.마침, 얘기가 나오고 남정은이 ‘실종’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질질 끌고 있을 수 없었다.윤도훈을 흘겨보더니 차가운 미소와 더불어 천천히 운을 떼기 시작하는데.“무슨 사진이냐고요? 도훈 씨가 쓰레기라는 걸 증명하는 사진이라고 하죠. 여러 여자분이랑 찍힌 아주 다정한 사진들이었어요.”“뭐?”윤도훈은 멍하기만 했으나 이진희의 두 눈을 보고서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그런 거였구나!’‘어쩐지 그날 이상하다 했어. 갑자기 사람이 차가워지고 말이야.’‘남정은이 한 짓이었어?’“어쩌면 남정은 씨도 지시를 받고 그런 거 같아요. 우리 사이 갈라놓으려고. 그래서 이쯤에서 하는 말인데 어쩌면 실종된 것이 아니라...”이진희의 말을 들으면서 윤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내 생각에 맞다면 아마 허승재 밑에 있는 윤병우가 그랬을 거야.”가타부타하게 웃으며 이진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윤도훈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누가 지시했는지가 아니다.대놓고 말한 이상 윤도훈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가 가장 궁금했다.“뭐라고 좀 해명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쓰레기가 아니라고.”이진희는 이를 악물고 물었다.그 말에 윤도훈은 심장이 살짝 덜컹거렸으나 스스로 비웃으며 대답했다.“좋은 남자라고 한 적도 없어.”그 말에 이진희는 두 눈에 초점을 잃어버렸다. 아주 순
한연란의 반문을 들은 윤도훈은 순간 멍해졌다. ‘이곳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있을 텐데, 한연란은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설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이득이라도 있단 말입니까?”윤도훈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한연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막 들어오셔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직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 회장님을 만나 뵌 후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한연란의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들을 도운 윤도훈조차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그들은 지하 통로를 따라 약 1리 정도를 이동한 후, 마침내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가 이곳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만든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수도원 같은 건물처럼 보였으나, 분명히 과거 흡혈귀 일족이 거주했던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수도원은 아니었다.건물의 벽에는 각종 사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흡혈귀의 섬뜩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기괴했다.한연란은 윤도훈을 데리고 건물 안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르신 한 명과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어르신은 일흔을 넘긴 듯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년 남자는 차분한 기운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윤도훈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윤도훈은 그들을 몇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이상하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이윽고 윤도훈은 두 사람 모두 금단 후기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두 사람의 진기와 단전 안에는 흡혈귀 일족 고수들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 즉 기혈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분명 금단
윤도훈은 이찬혁과 노차빈 등 봉화경비 소속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안관천술의 기운 추적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그러나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서는 기운 추적법조차 무용지물이었다.“이런, 어쩔 수 없군. 일단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찬혁과 노차빈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윤도훈은 눈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시체의 공격을 막아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앞장선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고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고대 시체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윤도훈을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동양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냉병기였다. 또한, 움직임은 염하의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이런, 염하에서 온 모험가들이나 자유 수련자들인가?’윤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험가나 무파나 가문의 지원 없이 활동하는 자유 수련자들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떠돌며 기회를 찾아 나서곤 했고, 어떤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모두 진기를 운용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 진기에는 희미하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그 붉은 빛은 흡혈귀 일족의 기운과 비슷해 보였고, 윤도훈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국외에 나와 이런 익숙한 동양인 얼굴들을 보자, 윤도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윤도훈은 빠르게 달려가며 그들을 공격하는 고대 시체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 무리에 있던 파란 옷의 여인과 다른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윤도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윤도훈의 등장에 놀란 듯, 몇몇 사람들은 고대 시체와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윤도훈을 휘감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섰다.눈앞의 풍경은 한순간에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사방이 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중세 MZ의 도시와도 같았다. 고풍스러운 성채와 중세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멀리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시계탑의 커다란 시계추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치 피로 물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바람이 휙 지나가며 희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이곳이 바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인가?’윤도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환경 변화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확인을 마친 윤도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평소라면 윤도훈은 백 미터 내외의 모든 상황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의 감각은 마치 억눌린 듯 작동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변 10여 미터 정도의 상황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동시에 윤도훈은 자신의 피가 이상하게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며,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살육적인 충동이 점점 커져갔다.윤도훈은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해 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용조의 검혼을 정련하며 정신력을 크게 단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제어에 유리했다.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는 윤도훈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이 모든 것은 윤도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힘은 윤도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인 충동도 불러일으켰다. 이 힘은 그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힘과 유사했지만,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윤도훈조차 강제로 몰아낼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대해 윤도훈은 속으로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현재 윤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적인 상고 윤씨 가문과,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단맥종과 같은 위협을 생각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피의 조상의 심장을 얻으면 흡혈귀의 시조인 카인 마왕의 일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윤도훈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흡혈귀 황제 마리의 말 앞부분에는 아직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가 봉화경비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윤도훈의 표정이 확연히 변했다.“봉화경비? 봉화경비가 왜?”윤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전에 윤도훈은 이미 이찬혁과 노차빈이 고액의 임무를 수락하고 해외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봉화경비를 언급하다니, 혹시 이게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역시나, 잠시 후 히드 공작이 말을 이었다.“봉화경비의 몇몇 인원이 저희 히드 조직이 의뢰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 탐험 임무를 수락했습니다.”“다른 용병들과 함께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윤도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는 냉혹한 눈빛으로 히드 공작을 바라보았고,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이 순간, 히드 공작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얼음동굴에 갇힌 것처럼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인정합니다. 히드 조직은 과거 선생님께 복수하기 위해 윤도훈 씨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조사했습니다.”“그래서 봉화경비의 배후가 바로 윤도훈 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임무는 저희가 봉화경비를 유인한 것이 아닙니다.”“흥!”윤도훈은 크게 코웃음을 치며 공기를 흔들 정도의 낮은 음성을 냈다. 그 소리에 히드 공작은 귀가 아플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내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히드 조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고, 흡혈귀
“내가 하늘을 걸고 맹세하건대, 절대로 윤돈훈 씨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흡혈귀 일족이 현재 가진 자원 중에는 정말로 당신의 눈에 들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흡혈귀 일족 영토로 가보세요.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열어드릴 테니, 마음껏 찾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제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윤도훈 씨를 경외하며 우리의 원한을 완전히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피의 조상의 심장에 대해 말씀드린 거고요.” “만약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다른 자원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우리 흡혈귀 일족에서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입니다. 원하십니까?”마리는 약간의 체념과 억울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윤도훈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여자들은 본래 배우라는 말이 있듯, 흡혈귀 황제 같은 흡혈귀도 이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이렇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지금의 마리는 전혀 죄가 없는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리도 숨을 깊이 들이쉬며 윤도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가 더 이상 좋은 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믿어보지. 네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먼저 내놔. 그리고 피의 조상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른 듯, 그 자리에서 표정이 굳었다.‘뭐지? 이 녀석, 정말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원한단 말인가? 단순히 허세로 한 말인데, 이 자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다니?’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백 명의 대공 흡혈귀의 척추뼈와 피의 인내를 담은 강철이라는 특수 금속을 섞어 제작한, 매우 희귀한 성스러
이틀 후.서지현이 하이오스 그룹의 냉동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온 후, 윤도훈과 이진희는 이번엔 또 다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켰다. 서지현이 해동된 후에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그날, 윤도훈과 이진희는 앨리스의 소개로 그녀와 성시아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 유전학의 권위자, 스타인 박사였다.두 사람은 윤시율을 데리고 이 학계의 거물을 만났다. 아이의 몸에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였다.윤도훈은 생각했다. 상고 윤씨 가문의 이 저주는 몇 세대 간 무작위로 나타나며 마치 유전적 성질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가문의 손을 빌리지 않고,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스타인 같은 세계 최정상급 인간 유전학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만큼, 윤도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운 좋게도 앨리스는 스타인 박사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고, 그녀의 소개 덕분에 박사는 앨리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스타인 박사는 윤시율의 상태를 듣고 나서, 그 저주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이윽고 하이오스 그룹에 있는 앨리스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윤시율과 함께 스타인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노인이었으며, 외모로만 봐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거의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잠시 후, 스타인 박사는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윤시율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윤시율의 혈액과 골수를 채취해 분석과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스타인 박사는 이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 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윤도훈과 이진희도 이 상황을 죽은 말을 살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스타인이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스타인 박사가 윤시율을 검사실로 데리고 가 여러 검사
흡혈귀 황제 마리는 흡혈귀 일족의 여왕으로서 윤도훈에게 충분한 경고와 함께 수백 구의 흡혈귀 일족 강자들의 시체를 남겨주었다. 그 후 윤도훈은 그렇게 흡혈귀 일족의 영역을 떠났다.흡혈귀 일족의 영토 전체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원래 흡혈귀 일족들에게 이런 냄새는 매우 황홀한 향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흡혈귀 일족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사냥감의 피비린내와 자신의 동족이 죽은 뒤 퍼지는 피비린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한편, 흡혈귀 황제 마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악을 넘어 깊은 슬픔과 증오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의 대공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공작과 백작 등의 흡혈귀 일족 중추 세력도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흡혈귀 일족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모든 것은 염하에서 온 윤도훈을 건드린 결과였다.조금 전, 윤도훈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던 마리는 자신의 증오심을 잘 숨겼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원한을 그녀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윤도훈이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흡혈귀 일족의 영토 안에 위치한 한 밀실.흡혈귀 황제 마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묻은 피와 무력함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요염하고 위엄 있는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한, 마리 앞에는 한 잘생긴 뱀파이어 공작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츠에 입맞추고 있었다.“히드 공작,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마리는 자신의 발을 거두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리 여왕님, 제가 은밀망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배포한 임무를 이미 많은 전 세계 용병과 모험가들이 수락했습니다. 지금 고대 지역으로 몰려든 인간들의 수가 이미 천 명에 달했습니다.”“그중에는 세계정화 교단과 늑대인간 무리 같은 멍청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제 생각에 두 달도 채 안 돼, 피의 조상 고대 시체에게 바칠 제물의 수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이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윤도훈 씨, 도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거예요? 당신 장모님은 무사하시잖아요. 설마 지금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예요? 원한에는 원인이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죠. 오거스라는 사건의 주범은 이미 죽었어요.”흡혈귀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의 2미터가 넘는 키마저 분노로 인해 약간 떨리고 있었다.“네 흡혈귀 일족들이 외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암흑 조직을 지원하고, 내 장모를 납치하고, 내 아내를 끌어들이려 했지. 방금도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주범 하나 죽이는 것으로 끝내겠다도?”“내가 윤도훈이라 너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모든 원한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너희 흡혈귀 일족이 나에게 배상을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윤도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강하게 마리를 압박했다. 이것은 국제 관례였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도대체 어떤 배상을 원한단 말인가요?”흡혈귀 황제 마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어조로 물었다.“너희 흡혈귀 일족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보자고. 내가 눈여겨볼 만한 걸 내놓아라.”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흡혈귀 황제 마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흡혈귀 일족의 가장 큰 보물이라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제가 윤도훈 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겠어요?”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를 상대하면서, 마리는 윤도훈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흠 하며 잠시 멈칫하더니, 흡혈귀 황제 마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2미터가 넘는 키에도 전혀 투박하거나 둔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1미터 이상의 다리, 매혹적인 허리와 골반의 곡선, 그리고 빠져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진희는 사실 흡혈귀 일족의 영토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거스는 단지 윤도훈을 이곳으로 유인해 흡혈귀 일족의 더 강력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을 뿐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윤도훈의 강함은 흡혈귀 일족 전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하이오스 그룹으로 돌려보내라니?”윤도훈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도훈 씨, 하이오스 그룹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어쨌든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냉동 상태에 있으시니까요. 안심하세요. 하이오스 그룹과 히드 조직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단지 로이가 히드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오거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약 30분가량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흡혈귀 일족 대전당 전체는 무거운 긴장감 속에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온몸이 피로 뒤덮이고 살기를 내뿜는 윤도훈이 그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었다.잠시 후, 오거스가 부하들에게서 회신을 받은 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하이오스 그룹의 인체 냉동 기지에 가서 서지현이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도훈 씨, 장모님은 이미 무사히 복귀하셨고, 도훈 씨도 아무련 부상을 입지 않으셨으니, 이제 그만 떠나주실 수 있겠습니까?”그 순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윤도훈은 마리의 능력조차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염하인이다. 따라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윤도훈을 죽일 능력은 없는데, 상대는 흡혈귀 일족을 멸망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는 윤도훈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이 재앙과도 같은 존재를 빨리 보내고 싶어 했다.“떠나라고? 내 장모를 함부로 납치하고, 내 아내를 잡으려 들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