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윤도훈과 설만추, 율이 세 사람은 홍지명이 마련한 5성급 호텔에 묵었다.스위트룸의 호화스러움에 설만추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다음날 아침, 홍지명은 2천억을 현금화한 후, 직접 윤도훈에게 수천 억에 달하는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내왔다.이에 대해 윤도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은행 카드에 돈이 하도 많아서 윤도훈은 이런 고급차에 대한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다.“윤 선생님, 차가 있으면 서동시에서 움직이시기 편리할 거예요. 보잘것없는 성의지만 받아 주십시오!”“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젯밤에 얼마나 불평등한 계약을 했을지 모릅니다. 전 분명히 큰 손해를 봤을 겁니다.”이윽고 홍지명은 바로 어세를 바꾸면서 말했다.“근데 그 여섯 가문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비록 어제 손해를 보았지만, 잘못하면 복수할 수도 있고요. 어휴...”“그리고 그들 뒤에는 강력한 가문이 버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윤 선생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홍지명의 귀띔에 윤도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오늘 서동시를 떠날 예정이었으나 홍지명의 말에 오히려 며칠 더 머물기로 했다.홍지명이 연루된 이상 대가도 받았으니 깨끗이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어차피 설만추의 아버지는 백혈병 초기라 그리 급한 것은 아니었다.이렇게 결정되었으니 윤도훈은 아예 율이를 서동시에 있는 유명 놀이동산으로 데리고갈 생각이었다.설만추는 말할 것도 없고 당연히 동행했다.율이는 놀이동산에 가자는 윤도훈의 말에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사실 하산할 때부터 율이는 벌써 놀이동산에 놀러 가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윤도훈은 어제 내내 천운시에서 바빴었다.오늘 어렵게 시간을 냈으니 당연히 율이의 소원을 들어줘야한다고 생각했다....서씨 가문 장원.서씨 가문 어르신은 어두운 얼굴로 서재에 앉아 있었다.그의 옆에는 바로 어젯밤 그 자리에 있던 다섯 사람이었다.하나같이 얼굴에 분노와 달갑지 않은 빛을 띠고 있었다.“어르신, 저 이대로
윤도훈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방금 전 마주했던 두 명의 건장한 남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은, 윤도훈의 주의를 끌기 위한 미끼였다.“젠장!”“율이와 방금 물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를 에워쌌더니,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정신을 차렸을 땐 율이가 이미 없었어요! 도훈 오빠, 어쩌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설만추는 자신이 잠깐 방심한 탓에 윤시율을 빼앗긴 것이라며 자책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기를 사용해서라도 율이를 지켰을 것이다. 설만추는 모르고 있었다. 사실 윤시율을 납치한 사람은 하씨 가문에서 보낸 결단을 마친 고수였다. 특히나 숨는 기술과 기습에 능한 자였다.한편, 설만추의 말에 윤도훈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온몸에서는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먼저 호텔로 돌아가 있어요. 율이 일은 나에게 맡기고요!”윤도훈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는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졌다. 방금 있었던 소란은 붐비는 워터파크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직 설만추만이 망연히 앉아 자책으로 가득 찬 얼굴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다른 한편.윤도훈의 몸놀림은 매우 빨랐다. 놀이공원 밖으로 나가니, 차량 한 대가 이미 출발해 멀어져 가고 있었다. “젠장.”떠나가는 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윤도훈은 달려가기 시작했다.도심에서, 윤도훈의 속도는 기동차의 속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차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상대방은 분명 준비가 되어 있는듯 보였고 이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그러나 윤도훈은 그 차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들이 과연 도망갈 수 있을 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십 분 후.퍽-윤도훈은 차 앞을 가로막고 서서, 차의 범퍼를 한 발로 걷어차 멈춰 세웠다. 이윽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는 멈춰 섰고, 범퍼는 찌그러졌다. 물론 윤도훈은 윤시율 차 안에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힘을 조
그곳을 떠난 윤도훈은 다시 놀이공원으로 미친 듯이 뛰어가며, 그 무리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윤도훈!]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도훈의 얼굴이 급격히 차가워졌다. 상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말하는 듯했다.“서불암! 내 딸 털끝이라도 건드린다면 맹세하건대, 네 가족은 전부 몰살될 거야.”윤도훈의 목소리는 윤시율을 건드린 것에 대한 경고와 함께 섬뜩하게 울렸다.그러나 위협에도 불구하고 서불암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윤도훈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윤도훈에게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흥, 윤도훈! 네가 지금 나에게 협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한 시간 내로 이곳으로 와. 만약 그때 내가 너를 보지 못한다면, 네 딸의 운명은 아주 비참해질 거야.]서불암은 주소를 알려준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윽고 차량에 탑승한 윤도훈의 주위에 얼음 같은 차가운 기운이 휩싸였다. 어떻게 서불암이 윤시율에게 손을 댈 수 있었는지 윤도훈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목숨을 건 도발을 하고 있었다.반 시간 후.검은 택시가 멈췄고, 이윽고 윤도훈이 차에서 내렸다. 윤도훈의 눈앞에는 커다란 별장이 자리하고 있었다.“서불암!”윤도훈은 낮게 분노를 터트리며 중얼거렸다.잠시 후, 윤도훈은 곧장 별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넓은 별장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대문도 열려 있었다. 그러나 윤도훈이 별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살기 어린 기운이 느껴졌다.짝짝짝-“좋아, 난 네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보아하니 그 꼬마가 꽤 중요했나 보네.”이때, 힘차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천천히 나타나며 말을 걸었다.“율이 어디 있어!”윤도훈이 냉정하게 물었다.그러자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비웃으며 천천히 말했다.“누가 알겠어,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너무 걱정 하지마, 곧 너도 함께 갈 테니.”말을 마친 남자의 두 팔이 불길하게
2층 방에는 붉은 배나무 꽃문양 테이블로 만든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 노인이 천천히 찻잔을 들고 음미하고 있었는데, 바로 서불암이었다.“결단 경지의 고수와 마주했으니, 윤도훈은 이제 죽은 목숨이죠. 흥! 윤도훈이 죽으면, 그놈 홍지명이 무슨 수로 우리와 맞설 수 있겠어요?”“홍지명이 제 주제를 모르고 기대어 본다는 게 고작 그 정도라니, 그 기대마저 무너지는 꼴을 보게 되겠네요, 하하.”서불암의 말에 주변은 소리 내어 웃으며 공감했다. 그들에게 있어 싸움이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진정한 수련 세계의 고수들 앞에서는 그저 미약한 개미와 같을 뿐이었다.“불암 어르신, 정말로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이때, 한씨 가문의 가주가 질문을 던졌다.“안심하십시오. 상대는 결단 경지의 고수입니다.”서불암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원래 세속의 싸움꾼 하나 처리하는 데 하씨 가문이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씨 가문은 그들이 기대는 강력한 힘이다. 왜냐하면 다섯 가문이 경영하는 사업의 거의 절반의 수익이 하씨 가문으로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지명이 그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곧 하씨 가문의 이익에 손을 대는 것과 다름없었다.“뭐, 뭐야!”사람들이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 분위기는 삽시에 조용해졌고, 미간은 자연스레 찌푸러졌다. 그리고 모두들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래뜰을 응시했다.“윤시율은 어디에 있어! 윤시율은 어디에 있냐고!”분노에 찬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지금, 윤도훈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윤도훈의 두 팔은 마치 굵은 뱀처럼 근육이 솟아올라 얽혀 있었고, 파랗게 부풀어 오르며, 주먹마다 무게가 만 근에 달했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공격에 상대방은 전혀 반격할 틈이 없었고, 비명만을 내지르고 있었다.“이럴 리가 없어! 나는 결단 경지의 고수인데!”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참혹한 모습이었지만, 통증마저 잊어버린 채 붉어진 두 눈으로 윤도훈을 경악에 찬 눈빛으로 뚫
방 안에는 서불암의 절규가 메아리쳤다.“아!”“너.”이때, 서불암의 오른쪽 다리는 기괴하게 휘어져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이렇게 손상된 다리는 이후에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앴다. 사람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불암의 다리를 쳐다보며 마치 자신이 부서진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현장에 있던 모두가 윤도훈이 정말로 손을 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내가. 내가 데려가 줄게.”몇 분 후, 서불암은 절규를 멈추고 이마에 가득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그 아이는 무사해. 하씨 가문으로 보냈어. 내가 너를 데려다 줄테니 나를 죽이지만 마.”‘하씨 가문!’하씨 가문이라는 소리에 윤도훈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윽고 윤도훈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내 딸만 무사하다면 네 목숨을 살려주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희 여섯 가문을 피바다로 만들어 주마!”윤도훈의 경고에 모두는 숨을 들이마시며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살았다.’지금은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이니 다행이었다. 게다가 이제 하씨 가문에 도착하면, 윤도훈은 분명 죽게 될 테니까 정말 다행이었다.‘하씨 가문에 가게 되면 널 산산히 찢어주마. 천 배, 만 배로 되갚아 줄 거다.’다리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서불암은 분노와 증오로 마음속에서 으르렁댔다.두 시간 후.윤도훈이 차에서 내리자, 다섯 명의 다른 인물들이 부축하며 서불암을 따라 내렸다.[여름 별장]네 글자의 황금빛 현판이 윤도훈의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그러나 윤도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불암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서불암도 윤도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윤시율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윽고 다섯 사람은 서불암을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고, 윤도훈은 그들을 뒤따랐다.“불암 어르신, 이게 무슨 일입니까?”별장에 발을 들이자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빠르게 다가왔다.“수고스럽겠지만, 서불암이 왔다고 전해주게.”그 말을 들은 양복 차림의
“윤도훈, 넌 지금 네 자신도 지키기 힘든 처지인데 딸 걱정할 여유가 있나? 안심해. 조금 있으면 널 죽일 것이고, 그 꼬마도 널 따라가게 해줄 테니까.”서불암이 말했다.“그리고 이곳은 하씨 가문이야. 네가 마음대로 날뛰어도 되는 곳이 아니야!”“승해 가주님, 이 녀석의 힘을 과소평가해선 안됩니다. 결단 경지의 고수조차 윤도훈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다른 가문 가주들 또한 빠르게 맞장구를 쳤다. 그들 입장에서는 하씨 가문에 도착한 이상 윤도훈이 반드시 죽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렇겠지. 어린 나이에 결단 경지 고수를 이겼으니.”하승해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네 힘이 열 명의 결단 경지 고수를 상대할 만큼 강한지 한번 볼까.”하승해의 말이 끝나자, 윤도훈을 둘러싼 열 명의 남자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이윽고 결단 경지의 기운이 윤도훈을 전면으로 압박해 왔다.그럼에도 윤도훈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열 명의 결단 경지 고수들, 윤도훈의 힘만으로 상대한다고 했을 때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하승해의 힘은 금단 후기에 달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상고의 세력에 속하지 않으므로 싸움에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윤도훈은 윤시율을 구출하기 위해, 비록 진기를 사용해 수선자들에게 감시당할 위험이 있다 해도 반드시 구해낼 것이라 마음을 굳혔다. 게다가 상대가 먼저 공격하는 한, 윤도훈이 반격하는 것은 수선자의 금지 사항에 저촉되지도 않는다.“어머나!”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려 보니, 연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윤도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모완아, 이 사람을 아는 거냐?”하승해가 물었다.“아빠,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 사람은 도월사에서 제 목숨을 구해준 분이에요.”말하는 하모완의 눈에는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모완은 윤도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도훈 오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 집에 오셨어요? 어떻게, 인사도 없이 오
“아빠, 나 구하러 온 거예요?”“어디 다친 데는 없어?”“괜찮아요, 아빠.”윤시율은 막대사탕을 한 번 핥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곳에 온 윤시율은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몇몇 경호원이 율이를 시터에게 맡겼으니까. 당시 윤시율은 계속 윤도훈을 찾으며 울고 있었고, 시터는 막대사탕을 꺼내어 달래주었다.“며칠 전부터 보고 싶었네. 모완이가 그렇게 칭찬하던 혼자서 악인을 처치한 그분이라니. 이렇게 만나다니, 참 놀랍군.”하승해가 말했다.하승해는 윤도훈을 향해 감탄의 눈빛을 보냈지만, 약간의 당혹스러움도 감추지 못했다.“오늘은 내가 꼭 저녁 대접을 하고 싶네. 하씨 가문을 대표해 감사를 표하고 싶어.”하승해의 반응에, 서불암과 다른 다섯 가문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승해가 윤도훈에게 이렇게까지 정중히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때, 줄곧 침묵하던 서불암은 결국 참을 수 없었는지 오른쪽 다리의 극심한 통증을 억누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승해 가주님, 이 녀석은.”“닥쳐. 윤도훈은 모완의 은인이자 우리 하씨 가문의 귀한 손님이시다. 네가 뭔데 끼어들어?”서불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승해는 단호하게 말했고, 그 냉정한 목소리에 서불암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하씨 가문의 보호를 잃은 서불암은 오늘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다른 다섯 가문 사람들도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승해 가주님, 저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일은 서불암이 계획한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윤도훈의 딸을 납치한 것도 서불암이 직접 사람을 보내 한 일입니다. 저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이들의 말을 들은 하승해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고, 상황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이 배신자들! 고마움을 모르는 쓰레기 같은 놈들!”서불암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분노에 차서 외쳤다. 서불암은 이들이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배신할 줄은 전
윤도훈은 평온한 얼굴로 하승해를 보며 그의 노련함을 감탄했다. 서불암을 비롯한 여섯 가문은 결국 하승해가 키운 개들에 불과했다. 개도 키우다 보면 정이 드는 법, 서불암을 처형하는 것은 윤도훈에게 상당한 배려를 보여준 것이었다. 만약 윤도훈이 이 이상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지나친 요구가 될 터였다.물론 윤도훈도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나머지 다섯 가문 사람들을 죽여도, 하승해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었지만, 하씨 가문의 체면만큼은 상당히 손상될 것이다.“율이 납치 사건에 너희가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다.”윤도훈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하승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도훈의 결정에 만족한 듯 보였다.“도훈 씨가 이미 용서했다. 그런데 아직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어서 나가!”“네, 네! 도훈 도련님, 정말 감사합니다.”“승해 가주님,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곧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현장에는 하승해와 몇 사람만 남았다.“도훈 도련님에게 웃음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도 그놈들이 감히 이토록 무법천지로 아이까지 납치할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하승해는 윤도훈에게 자리를 권하며 직접 차를 따라주고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승해 가주님, 이미 지난 일입니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됩니다.”“하하하! 시원시원하니 정말 좋네요. 그리고 이 차는 정말 귀한 차에요. 천운시에서 돈만으로는 구할 수 없는 맛이지요.”윤도훈은 거절하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윽고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아빠.”이때, 하모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승해는 마치 환한 전등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하모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모완의 표정에서 무언가 깨달은 듯 빠르게 말을 꺼냈다.“하하, 참 깜박했군. 나도 중요한 일이 있어 도훈 도련님을 더 이상 모시기 어렵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모완아, 네가 대신 도훈 도련님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 도훈
따라서 이 계획이 잘 성사된다면, 윤도훈과 이진희 부부를 완전히 몰락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알겠습니다.”나현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수술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시선을 그쪽으로 집중시켰다.“나왔네요?”“실패하고 도망치듯 나온 거에요?”“창문으로 도망칠 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나오네요!”사람들은 일제히 비웃음을 쏟아내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다.다니엘 박사는 문을 주시하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염하 출신의 젊은이가 과연 할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는데.”그러나 다니엘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마치 누군가 다니엘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갑자기 멈춰버린 것이다.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도 순식간에 멎었다. 수술실에서 나오는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도훈의 뒤에는 다름 아닌 성시아가 서 있었다.성시아는 건강한 상태로, 미소를 감추지 못한채 서 있었다. 또한, 성시아의 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빛이 감돌았고, 마치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되찾은 사람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시아의 오른팔이 멀쩡히 붙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병원복을 입은 성시아의 오른팔 소매는 텅 비어 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움직였다.원래는 전혀 희망을 가지지 않았던 성조현도 순간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적을 목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심지어 조금 전까지 불안해하던 이진희마저도 눈을 깜빡이며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진희도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였다.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장면이 믿기지 않았다.‘도훈 씨가 정말로 해냈단 말인가?’한순간 이진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이진희는 떳떳했지만, 성시아가 팔을 잃은 것에 대해 마음 한편에는 죄책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성시아는 완전히 안도
윤도훈이 용기혼원대법으로 성시아의 상처를 치료하자, 성시아의 오른팔 절단 부위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새로운 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광경은 말 그대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만약 이 장면이 외부로 알려지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절단 부위가 재생되는 일이 수련자들에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그러나 그건 수련자가 일정 경지에 도달하여 자신의 신체를 재생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절단 부위를 재생시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진희야, 어서 도망가!”“날 신경 쓰지 마.”“흑흑흑. 난 끝장이야, 넌 가.”윤도훈이 용기혼원대법으로 성시아의 체내에 있는 선천적인 원기와 생명을 자극하자, 성시아는 서서히 깨어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성시아의 의식은 아직도 혼수 상태에서 봤던 두려운 장면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입에서 불안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웃으며,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비록 성조현의 행동이 불쾌했지만, 성시아는 여전히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윤도훈은 원래 이진희와의 관계 때문에 성시아를 돕기로 한 것이고, 약간의 불만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시아 본인이 신뢰할 만한 사람임을 느끼고 있었다.“시아 아가씨?”“시아 아가씨, 이제 안전해요.”윤도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성시아를 달래며, 불안감을 진정시켜 치료가 잘 이루어지도록 했다.잠시 후, 성시아의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성시아는 오른팔에 찌릿찌릿한 감각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이 기분은 고통을 대신해 알 수 없는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음흠.”잠시 후, 성시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인 것은 각진 얼굴에 약간은 멋진 표정을 짓고 있는 윤도훈의 얼굴이었다. 진지한 표정의 이 얼굴은 어딘가 익숙해 보였다.“당신은? 윤도훈? 진희의 남편. 지금 이게...”깨어난 성시아는 체내의 원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른하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에 빠져들었다.
윤도훈이 발산한 압도적인 기운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푸억-, 푸억- 푸억.윤도훈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 땅에 주저앉아 피를 토해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강제로 밀려난 듯했다. 주위 사람들 또한 그 강력한 기운에 압도되어 뒤로 물러났다.그러나 윤도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힘없이 당당한 걸음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아무도 윤도훈을 막을 수 없었다.‘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성시아의 치료를 하겠다는데 굳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격이나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필요하지 않다. 결과를 그들에게 보여주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을 막지 못한다. 그들이 치료를 허락하지 않는다? 흥, 그러면 치료를 강행하면 된다. 자신이 협상하는 것도 아니고 이치에 맞춰 설명할 필요도 없다.“너!”“이 미친놈! 감히 사람을 다치게 해?”“너무 거만하군!”“경찰 불러!”“잡아들여!”뒤에서 울려 퍼지는 수많은 비난과 협박 소리를 뒤로 한 채, 윤도훈은 그대로 수술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윤도훈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진기를 방어막으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다.성조현은 그 자리에 서서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얼굴로 윤도훈을 바라보았다.놀람, 분노, 의심.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성조현의 경호원들이 전혀 윤도훈을 막지 못했다. 윤도훈이 그렇게 강제로 수술실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윤도훈이 정말 내 딸의 팔을 접합할 수 있을까?’P시의 최고 부자인 성조현도 한편으론 화가 나면서도, 은밀히 기대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제길! 말도 안 돼요!”“제가 못 하는 수술을 누가 할 수 있겠어요!”다니엘 박사는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여긴 병원이야. 어디서 함부로 날뛰고 있는 건가! 당장 끌어내, 환자에게 2차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고!”병원 측의 담당자도 분개하며 외쳤다.그러나 성조현의 경호원들이나 병원 보안 요원들은 수술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도훈 씨 왔어요? 정말로 시아의 팔을 접합할 수 있는 거에요?”이진희는 복잡한 눈빛으로 윤도훈을 바라보았다. 기대와 동시에 불안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윤도훈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봐야 알겠지만, 문제는 없을 거야.”윤도훈의 말을 들은 다니엘 박사는 옆에서 코웃음을 치며 윤도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참 어이가 없군! 우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과 장비를 갖추고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는데, 당신은 그걸 여기서 할 수 있다고 떠들고 있어? 무슨 능력으로 그 팔을 붙인다는 거지? 한의학으로?”다니엘 박사는 한의학에 대해 원래부터 비웃는 태도였고, 더군다나 젊은 윤도훈을 보며 더욱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했다. 성조현도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젊은이, 책임질 말을 해! 내 딸의 팔이 접합되지 않아서 의수 장착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널 가만두지 않겠어!”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윤도훈을 향해 비웃고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그들은 윤도훈을 쫓아내야 한다며 소리쳤다.“저자가 그 팔을 붙일 수 있다고요? 어떻게요?”“전문가도 말했잖아요, 그 팔은 이미 괴사됐다고요.”“마치 자기가 생명을 살리고 뼈를 이어 붙일 수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네요.”“당장 나가세요! 여기서 망신당하지 말고요!”“아내 앞에서 허세나 부리는 거 아니에요?”사람들의 비난과 의심 속에서 윤도훈의 얼굴에는 일체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잠시 후, 윤도훈은 이진희를 감싸 안으며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여기서 율이랑 기다려줘.”그리고는 차분히 수술실 쪽으로 발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 모습을 본 성조현은 신호를 보냈고, 성조현의 경호원들이 곧바로 윤도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 소리쳤다.“젊은이, 뭐 하려고?”성조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따님을 치료하려는 겁니다. 제지하지 마십시오.”윤도훈이 진지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너 사기꾼이잖아. 그리고 다니엘 박사가 말했듯이 접합은 불가능하니, 여기서 괜히 관심을 끌려 하지 마! 내 딸
다니엘 박사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졌다. 다니엘은 이 분야의 국제적인 권위자로 팔을 접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누군가 이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불쾌한 눈빛으로 이진희를 쳐다보며 말했다.“제가 아니라 제 남편이요! 제 남편은 9할의 확률로 성시아의 팔을 살릴 수 있어요!”이진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성조현은 오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이진희 씨 남편이요? 이진희 씨 남편도 의사인가요? 게다가 이 분야의 전문가란 말인가요?”“흥!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해낼 수 없는 일을 세상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그 팔은 괴사됐으니, 접합은 불가능합니다.”다니엘 박사는 이 말을 들으며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그래서 그쪽 남편이 누구입니까? 도대체 무슨 방식으로 수술을 한다는 겁니까?”“제 남편 이름은 윤도훈이에요. 도훈 씨는 수술이 아닌 한의학을 통해서.”이진희는 주저하며 대답했다.다니엘 박사는 이 말을 듣고는 세상에서 가장 큰 농담이라도 들은 듯 냉소를 터뜨렸다.“한의학? 하하하, 이거 참 웃기는군요! 한의학이라고요? 어떤 약을 몇 가지 달여서 마시게 하거나, 은침 몇 번 찌르는 것만으로도 팔을 접합할 수 있단 말인가요? 그리고 성시아 씨의 경우는 서양 의학으로도 불가능한데, 한의학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의학은 그저 사람을 속이는 잔재주에 불과해요!”다니엘의 얼굴엔 서양 의학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고, 한의학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였다. 성조현도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분노에 찬 시선으로 이진희를 쏘아보았다.“이진희 씨,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농담이라도 하려는 거에요? 당신 남편이 한의학으로 시아의 팔을 접합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네요!”전우현은 더 큰 소리로 이진희를 조롱했다.“이진희 씨,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그쪽 남편이요? 그 윤도훈이라는 놈이 한의학으로 시아 아가씨의 팔을 살릴 수 있다고요? 하하하, 정말 웃기네요! 이진희는 시아
다니엘 박사의 말을 듣고 성조현은 눈을 크게 뜨고 충격을 받았다.주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요? 성시아의 절단된 팔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괴사되었다고요?”‘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이진희의 표정도 복잡해졌다. 이진희의 머릿속에는 그때 나타났던 범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피부와 얼굴이 푸르스름하고, 눈은 하얗게 흐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성시아의 팔을 절단한 것은 바로 그 트럭 운전사였다.‘설마, 그들이.’“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진희 씨,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 딸의 팔이 범인에게 절단 당했다고 했잖습니까? 대체 어떤 범인이었습니까?”성조현은 분노를 담아 이진희에게 소리쳤다.“그 범인들은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이진희는 입술을 깨물며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하하, 이상하긴 이상했겠죠. 설마 이진희 씨가 불러온 놈들 아닙니까?”전우현이 옆에서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그러자 이진희는 전우현의 말에 격분하여 외쳤다.“전우현 씨, 또 헛소리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어요!”그때, 성조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진희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진희 씨, 제 딸의 팔을 정말로 붙일 수 없다면, 당신과의 협력도 끝입니다. 제 딸도 당신과 더 이상 협력할 마음이 없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이진희는 얼굴이 어두워졌고, 분노와 비웃음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한편, 전우현은 만족스러운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 전우현은 이진희를 차지하지 못하니 이진희가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은 단지 이진희와 성시아 회사의 협력을 방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조현의 태도를 보니 전우현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듯 보였다.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곧 있을 진짜 큰 사건을 통해 이진희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작정이었다.‘내가 너를 얻지 못한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침묵을 선택했다.그 사람은 다름아닌 나현철, P시에서 반테러 작전을 담당하는 경찰이었다.사고 당시의 CCTV 영상을 이미 보았기에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나현철의 입장상 이진희를 두둔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잠시 후 전우현과 함께 이진희를 몰아세우게 될지도 모른다.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우현은 나씨 가문 주인과 나 부인의 양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수술실 문이 열렸다. 몇 명의 의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걸어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일그러졌다. 이윽고 성조현이 급히 앞으로 다가가며 긴장과 기대가 서린 얼굴로 물었다.“다니엘 박사님, 제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 팔은 붙일 수 있는 겁니까?”이진희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의사들을 바라보았다.성시아의 팔은 방금 전에 절단되었고, 바로 이진희가 그 팔을 주워 병원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곳 병원은 P시에서도 최고의 의료 시설을 갖춘 곳이었기에, 혹시나 팔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의사들 중 선두에 선 금발의 외국인 전문의가 있었다. 다니엘 박사는 인체 절단 부위 접합 분야의 권위자로, MZ에서 초빙된 P시 병원의 최고 의료진이었다. 따라서 다니엘이 수술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사람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그러나 다니엘 박사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한 채 고개를 저었다. 다니엘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으며, 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한 듯했다.“따님 팔을 붙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빠르게 의수를 장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다니엘의 말에 성조현은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이진희도 눈살을 찌푸리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붙일 수 없다고?’“왜? 왜 붙일 수 없는 겁니까? 당신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 아닌가요? 제 딸 팔은 방금 전에 절단됐잖습니까? 정말 최선을 다한 겁니까?”성조현은 다니엘 박사의 어깨를 잡고는 다급하게 말했다.“돈이 얼마든 상관없어요. 제발 제 딸의 팔을 붙여주십시오. 얼마든지 드리겠습니
전우현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진희에게로 쏠렸다.성조현, P시의 최고 부자이자 성시아의 아버지는 이진희를 한 번 냉정하게 훑어보더니, 차갑게 코웃음 치고는 아무 말 없이 외면했다.성조현은 자신의 딸이 그린 제약회사의 미모의 대표인 이진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여 방금까지 사람들의 질문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성씨 가문과 관계가 좋다고 자부하는 P시의 상업계 인사들은 이진희에게 연신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이진희와 함께 있었던 게 맞다고요?”“이보세요,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래요? 시아 아가씨가 그런 사고를 당하게 된 이유가 대체 뭔가요?”“이 일이 이진희 씨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어떻게 이진희 씨는 무사할 수 있었죠?”“그러게요, 시아 아가씨는 팔을 다쳤는데 왜 이진희 씨는 멀쩡한 겁니까!”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이진희를 추궁했다. 마치 성시아가 다쳤는데도 이진희는 무사한 것이 잘못이라는 듯이 이진희를 몰아세웠다. 이렇게 그들의 비난을 들으며, 이진희는 굳은 얼굴로 전우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그래요, 당시 저는 시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시아를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시아가 팔을 다친 건 저에게도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타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아무리 강인한 성격을 가진 이진희라도 견디기 힘든 억울함을 느꼈다. 마치 혼자서 모든 이들의 비난을 견디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비록 양유나 등 이진희의 직원들이 이진희를 변호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여론을 잠재울 순 없었다. 이 상황을 보며 전우현은 조소를 지으며 이진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이진희 씨, 시아 아가씨와 협력하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어떻게 이리도 우연히 너와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걸까?’“협력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고를 조작해 시아 아가씨를 해치려 했던 거 아닙니까?”전
전우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젠장, 저 주석훈이라는 자 완전히 미친 모양이네. 이 일에 날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군! 비록 나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있지만, 성씨 가문도 쉽게 당할 상대가 아니니까.”전우현은 비열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꼬여가니, 살짝 조작만 하면 이진희와 성시아의 협력은 무산될지도 몰라.”전우현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병원, 수술실 앞.P시의 최고 부자이자 성씨 그룹의 수장이며 성시아의 아버지인 성조현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무겁고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주변에는 P시 상업계의 유력 인사들과 성조현의 사업 파트너, 그리고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몰려들었다.“조현 회장님, 시아는 어때요?”“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죠?”“사고 책임자와 범인은 잡았습니까?”“시아는 그때 누구와 함께 있었죠?”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관심을 표했다. 그러나 성조현은 이들에게 일일이 답할 기분이 아니었고,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한편, 이진희는 한쪽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서 계속 전화를 걸었다. 곁에는 양유나를 비롯한 그린 제약회사의 직원들이 함께 병원에 도착하여 이진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전화가 몇 번이나 연결이 되지 않던 끝에,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 무슨 일이야? 이거 참, 우린 참 잘 통하네. 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가 오다니. 하하.]전화기 너머 윤도훈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러자 이진희도 쓴웃음을 지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잘 통하다니, 내가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그러나 이상하게도 윤도훈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진희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도훈 씨, 큰일이 났어요!”이진희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여보, 괜찮아?]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급히 물으며 몹시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윤도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니, 이진희는 내심 안도감과 감동을 느꼈다.“난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