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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소사
심가은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고성우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전화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장 소장님, 네, 네. 고성우입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심가은이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성우 어디 있어?”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심가은이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나는 발로 그녀의 복부를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오수영, 너 미쳤어?”

“그래. 미쳤다. 네 아들이 내 아들 머리를 내리쳤을 때부터 이미 미쳤어.”

심가은은 나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억울한 척 하소연했다.

“도겸이는 네 아들 때린 적이 없어. 오히려 네 아들이 우리 도겸이 팔을 그었다고. 이 일 아직 너한테 따지지도 않았어.”

살다 살다 이렇게까지 뻔뻔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따지고 싶어? 그럼 신고해. 일단 경찰이랑 남의 집 함부로 쳐들어온 것부터 얘기하면 되겠어.”

내가 싸늘하게 웃었다.

“네 아들이 감옥 가면 아는 사람이 필요할 텐데. 네가 가서 옆에 있어 줘.”

그러자 심가은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여운 척 엉엉 울었다. 고성우가 곧바로 나의 뒤에서 나타나더니 심가은을 부축하여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다쳤어?”

심가은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고성우의 셔츠를 잡고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말했다.

“성우야, 도겸이 아직 애야. 절대 그런 일 할 리가 없어. 도겸이는 나쁜 애한테 모함을 당한 거야.”

“알아, 알아. 다 아니까 진정해...”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소롭기만 했다.

이젠 집안을 기웃거리는 이웃마저 있어 더욱 짜증이 밀려왔다.

“연기하겠으면 저리 썩 꺼져서 해. 우리 집 앞에서 역겨운 짓 그만하고.”

심가은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오 선생,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날 내쫓는 건 괜찮아도 성우는 이 집 주인이야. 주인을 내쫓으면 안 되지.”

“안 된다고?”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너랑 몇 년이나 바람피우면서 네 아들 아빠 노릇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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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가은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고성우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전화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장 소장님, 네, 네. 고성우입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심가은이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성우 어디 있어?”내가 아무 말이 없자 심가은이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나는 발로 그녀의 복부를 걷어차서 넘어뜨렸다.“오수영, 너 미쳤어?”“그래. 미쳤다. 네 아들이 내 아들 머리를 내리쳤을 때부터 이미 미쳤어.”심가은은 나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억울한 척 하소연했다.“도겸이는 네 아들 때린 적이 없어. 오히려 네 아들이 우리 도겸이 팔을 그었다고. 이 일 아직 너한테 따지지도 않았어.”살다 살다 이렇게까지 뻔뻔한 여자는 처음이었다.“따지고 싶어? 그럼 신고해. 일단 경찰이랑 남의 집 함부로 쳐들어온 것부터 얘기하면 되겠어.”내가 싸늘하게 웃었다.“네 아들이 감옥 가면 아는 사람이 필요할 텐데. 네가 가서 옆에 있어 줘.”그러자 심가은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가여운 척 엉엉 울었다. 고성우가 곧바로 나의 뒤에서 나타나더니 심가은을 부축하여 걱정스럽게 물었다.“괜찮아? 다쳤어?”심가은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고성우의 셔츠를 잡고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말했다.“성우야, 도겸이 아직 애야. 절대 그런 일 할 리가 없어. 도겸이는 나쁜 애한테 모함을 당한 거야.”“알아, 알아. 다 아니까 진정해...”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소롭기만 했다.이젠 집안을 기웃거리는 이웃마저 있어 더욱 짜증이 밀려왔다.“연기하겠으면 저리 썩 꺼져서 해. 우리 집 앞에서 역겨운 짓 그만하고.”심가은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오 선생,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날 내쫓는 건 괜찮아도 성우는 이 집 주인이야. 주인을 내쫓으면 안 되지.”“안 된다고?”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너랑 몇 년이나 바람피우면서 네 아들 아빠 노릇 했어

  • 내 아들이 죽었다   제5화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밤이었다.거실의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나는 고민재의 영정사진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안방으로 걸어갔다.“여보...”발걸음을 멈춘 나는 마음속에 놀라움과 서글픔이 스쳤다.고성우는 몇 년 만에 나를 ‘여보’라고 불렀다. 심가은네 모자가 나타난 후로 나를 부르는 호칭은 ‘오 선생’ 아니면 ‘야’였다.전자는 일할 때의 존칭이었고 후자는 집에 있을 때의 무시였다.나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고성우가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고개를 돌렸는데 고성우의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고작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눈빛이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고 아래턱에 수염도 덥수룩했으며 아까 때린 손바닥 자국도 얼굴에 남아있었다.눈에 띄게 무너진 모습이었지만 나는 가소롭기만 했다.“여보, 민재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거 정말 몰랐어...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줄 거지, 응?”“용서?”나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고민재의 영정사진을 가리켰다.“내 아들 다시 살려낼 수 있어? 모든 걸 다시 제자리로 돌릴 수 있냐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용서해 줄게.”고성우는 초조한 기색으로 사과했다.“그때 민재가 거기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어. 도겸이가 그랬어. 민재가 자기를 때리고 바로 도망쳤다고. 근데 민재가 이렇게 심하게 다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도겸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야. 그동안 민재가 계속 괴롭혀서 도겸이도 반항하려고...”짝.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고성우의 뺨을 후려갈겼다.“도겸이, 도겸이. 너한테는 그 파렴치한 모자밖에 없지? 고성우,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안 믿어? 네 아들이야말로 피해자야.”고성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그럴 리가 없어... 도겸이가 왜... 가은이가 분명...”나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어이가 없어서 원. 아들이 죽었는데도 그 모자

  • 내 아들이 죽었다   제4화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도겸이 얼마나 착한 애인데 내 아들을 왕따시켰다는 게 말이 돼?”고성우는 본능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항상 첫사랑의 아들이 우선이었고 어릴 적부터 예뻐한 ‘착한 아들’이 다른 친구를 따돌린다는 걸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나를 쳐다보는 고성우의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네가 이 사람한테 얘기했어? 어떻게 도겸이를 모함할 수 있어? 매번 얻어맞아서 병원에 입원한 건 도겸이었어. 그런데 그 불효자식의 말을 믿는 거야? 이게 다 내가 예전에 네 아들을 너무 오냐오냐한 탓이야. 그래서 어린 나이에 못된 것만 배워서 도겸이를 괴롭힌 거고. 민재 어디에 숨겼어? 큰 사고 친 줄 알고 숨은 거 맞지? 이번에 아주 제대로 혼내줘야겠어.”나는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고성우를 차분하게 쳐다보기만 했다.도겸이, 네 아들, 이 두 호칭만 들어도 누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심가은 그 여자가 우리 학교에 나타난 순간부터 나는 고성우가 더는 제정신이 아니고 우리 가정도 깨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두 모자는 고성우의 마음을 아주 쉽게 잡았고 그의 기분을 좌지우지했다. 그런데 우리 모자는 눈에 거슬리는 장애물이라 진작 차버리고 싶었을 것이다.나의 표정이 너무 차분한 탓인지 고성우는 한바탕 화를 냈다가 그제야 윤현준이 말한 마지막 한마디를 떠올렸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 아들이 3일 전에 죽었다고?”그러자 윤현준이 대놓고 비아냥거렸다.“이제야 친아들을 걱정해요?”고성우가 분노를 터트렸다.“내 아들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죽었다고 저주를 해선 안 되지. 이 자식아.”고성우가 윤현준에게 주먹을 날리려 했지만 윤현준이 그의 손목을 덥석 잡고 힘껏 뿌리쳤다.그가 더 날뛰려 하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성우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민재 진짜 죽었어. 3일 전에 학교 화장실에서. 그것도 네가 착한 아들이라고 했던 주도겸에게 머리를 맞고. 게다가 넌 내가 부른 구급차에 주도겸을 태우기까지 했어. 민재가 피를 얼마나

  • 내 아들이 죽었다   제3화

    나는 유명한 법률 사무소를 찾아가 변호사에게 학교 폭력에 관해 물었다.고민재의 죽음이 헛되게 할 수는 없었다. 못된 애들이 법망을 피해서 계속 다른 아이를 괴롭히게 해서는 안 되었다.법률 사무소를 나오기 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오수영?”윤현준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기억 속에 남았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밝고 멋있었다.나는 대학교 때 나에게 대시했던 그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실례지만 법률 사무소엔 어쩐 일로 왔어?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윤현준이 나에게 물 한잔을 떠다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머뭇거리는 걸 알아채고 또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다른 사람이랑 함께 차린 법률 사무소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도 돼.”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윤현준은 여전히 환하게 웃었고 한결같았다.우리는 자리에서 두 시간이나 얘기를 나눴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윤현준은 나에게 그 어떤 동정의 태도도 보여주지 않았다.나는 되레 마음이 편했고 전문적이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변호사와 얘기하는 것처럼 시름이 놓였다.그때 나의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고성우가 보낸 카톡 문자였다.[몇 시인데 아직도 집에 안 와?]문자를 확인한 나는 처음으로 답장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버렸다.윤현준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할 뿐 뭐라 묻진 않았다.그와 내가 카페를 나갈 때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윤현준은 우산을 펼치면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나는 완곡하게 거절한 후 혼자 빗속으로 뛰어들었다.“오수영, 내가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지 알아? 근데 휴대폰도 꺼놓고 잠적해?”고성우는 노발대발하다가 시선이 잘생긴 윤현준에게 머무른 순간 코웃음을 쳤다.“기생오라비랑 데이트 중이었구나. 그러니까 아들도 내팽개쳤지.”“아들? 무슨 낯짝으로 아들 얘기를 꺼내?”아들이라는 단어는 나의 고통 버튼이었다. 고민재가 죽기 전 절망적이던 모습이 다시 한번 내 눈앞에 나타났다.고성우는 성을 내면서 나를 꾸짖었다.“엄마라는 사람이

  • 내 아들이 죽었다   제2화

    고민재의 장례식을 마친 후 나는 곧장 병원으로 갔다.VIP 병실, 심가은의 아들이 팔에 붕대를 감은 채 덩실거리면서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그때 고성우가 나를 발견하고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더니 재빨리 걸어 나왔다.“누가 병원에 오라고 했어? 도겸이 상태가 이제 조금 안정됐는데 널 보고 또 나빠지면 어쩌려고 그래?”“고성우, 네 아들이 죽었어. 그런데 지금 남의 아들을 걱정해?”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병실에 있던 모자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고성우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나를 멀리 끌어내고 경고했다.“오수영, 적당히 해. 심 선생이 혼자서 아이 키우는 게 힘들어 보여서 교장인 내가 좀 도와주는데 뭐가 잘못됐어? 그리고 지금까지 도겸이를 괴롭힌 건 늘 민재였어. 이번에는 도겸이 팔까지 다치게 했고. 근데 무슨 낯짝으로 병원에 와?”이런 인간쓰레기나 할 법한 말들을 하도 들어서 이젠 다 외울 지경이었다.심가은이 남편과 이혼한 후 고성우는 심가은을 지나치게 챙겨줬다. 고성우는 나와 이혼하지 않았는데도 남의 와이프를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챙겼다.주도겸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그 대신 고성우의 사랑을 얻었다. 우리 아들의 아버지는 살아있었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집의 창문이 고장 나서 한겨울에도 찬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고성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가은의 모자에게 새로 배운 요리를 해줬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창문을 수리할 줄 모르니까 수리하는 기사를 부르라고 했고 또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기대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수업을 이어갔지만 그는 심가은과 함께 다른 곳으로 출장을 떠났다. 출장 간 김에 학교 돈으로 여행도 가고. 그러면서도 나에게 괜한 질투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했다.심지어 직급 평가마저도 신가은의 뒤였다. 그런데 고성우는 공평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면서 절대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그는 매번 출장 갔다가 돌아올 때면 주도겸의 장난감을 선물로 사다 줬다. 주도

  • 내 아들이 죽었다   제1화

    “민재야, 무서워하지 마. 엄마 구급차 불렀어. 곧 구하러 올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버텨, 응?”바닥에 빨간 핏자국이 화장실까지 이어졌고 내 눈도 빨갛게 물들었다.이 핏자국은 고민재가 화장실로 도망쳐 오면서 흘린 핏자국이었다.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민재 이마의 상처를 꾹 눌렀다. 그런데 피가 멈출 기미 없이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흘러나왔다.그때 창밖에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민재야, 구급차 왔어. 드디어 살았어.”그런데 고성우가 한 남자애를 안고 창가 앞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니 곧장 구급차로 달려가는 것이었다.“도겸아, 무서워하지 마. 아저씨가 절대 아무 일 없게 할게.”구급차는 빠르게 왔다가 또 빠르게 가버렸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가지 마. 그건 내가 부른 구급차라고. 고성우, 민재 거의 못 버텨. 빨리 돌아와. 고성우, 제발...”진짜 피해자는 숨이 거의 넘어간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나는 다급하게 고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내가 세 번째로 전화를 걸었을 때 고민재가 피 묻은 손으로 나의 손목을 잡았다.“엄마, 전화하지 말아요... 아빠 돌아오지 않아요.”그 순간 나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아빠한테 하지 않고 구급차 다시 부를게. 조금 있으면 구급차 또 올 거야.”“엄마, 나 숨 못 쉬겠어요...”고민재의 손이 어찌나 차가운지 얼음장 같은 바닥보다도 더 차가웠다.“엄마, 미안해요. 앞으로는 내가 엄마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아요... 다음 생에도 내 엄마가 되어줄 수 있어요? 근데 아빠는 싫어요...”고민재는 말도 채 하지 못하고 손을 툭 떨구었다.그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고 몇 초가 지나서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나는 피가 흘러내리는 것도 신경 쓸 새 없이 고민재를 업고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피가 내 목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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