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받아?"전태윤은 물건을 차에 두고 휴대폰을 멍하니 보고 있는 하예정에게 물었다."나의 만만치 않은 친척일 수 있어요.""받아보면 누군지 알 수 있잖아, 누구든 두려워할 필요 없어, 내가 있잖아!"그가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받아 줄 것이다."내가 있잖아"이 한마디에, 하예정은 순간 마음속이 따뜻했다. 전태윤은 단점이 많지만,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 그들이 초고속 결혼인데도 그가 이 정도로 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것이다.그는 마음속으로 전태윤에 대한 평점을 좀 올려주었다. 그리고 낯선 전화를 받았다."예정아, 나다. 할아버지."조금은 낯선 목소리는 아직 쩌렁쩌렁했다. 하예정은 오랫동안 고향 사람과 연락하지 않았지만 단번에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냈다.하예정은 응하고 대답하고는 말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너희 오빠가 오전에 할머니가 아파서 관성 병원에 입원한다고 전화했지? 병원에 예약을 좀 하라고 해도 안 하고 그 멀리서 왔는데 확진돼야 입원할 수 있다면서 입원도 못 하게 하고 말이야.""너랑 너희 언니는 지금 어디에 사니? 전에 살던데 갔는데 사람도 없고, 이사했으면 우리에게 말을 해야지. 너희는 어른이고 친척이고 안중에도 없지?""우리 사람들 꽤 많이 왔는데 잘 곳도 없어, 얼른 집 주소 보내. 한 이틀 좀 지내게. 그리고 우리 아직 밥도 안 먹었으니, 저녁도 준비하고.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다 싶으면 호텔 잡게 돈을 주든가."하예정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화가 차올랐다.그녀는 화를 억지로 누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 어떻게 왔어요? 버스 아니면 자동차?""너 오빠랑 동생이 운전해서 우리 데려왔어. 네 오빠 동생들 차 기름값도 까먹지 말고 결제해 줘, 오는데 꽤 비싸더라.""당신과 할머니의 그 잘난 손자들이 요즘 가난해서 밥도 못 먹고 다니나 봐요?""하예정, 너 지금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희 자매들이 자리 잡고 생활이 좋아지니 자기 형제들을 못 살라고 저주하는 거니? 참 실망하게 해서
하예정은 고향의 진상들이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매의 거처도 모르거니와 이 큰 도시에서 그녀들을 찾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예정은 하예진의 집에 식사하러 가는 기분을 망칠까 봐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전태윤은 그들의 대화를 귀담아듣고 마음에 새겼다.이미 소정남에게 하씨 집안의 모든 정보를 캐오라고 시켰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하예진의 집 아래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온 하예진과 마주쳤다.“언니.”하예정은 하예진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 한달음에 달려갔다.“예정이 왔네.”하예진은 동생 부부를 보니 쌓였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전태윤이 차에서 크고 작은 쇼핑백을 꺼내는 모습을 본 하예진은 두 사람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가족끼리 밥 먹으러 오는데 뭘 이렇게 많이 사 들고 왔어요?”“처형, 그저 과일 좀 샀어요.”전태윤은 다정하게 하예진을 부르며 말했다. 하예진은 전태윤을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들었다. 전태윤은 비록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사람이 성실하고 하예정에게 다정했다.만약 하예정이 하예진의 생각을 읽었다면 아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이다.“형부는 아직이야?”하예정은 다정하게 하예진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우빈이는?”“네 형부 오고 있어. 아마 곧 도착할 거야. 우빈이는 위에 있지. 우리 시부모님이랑 형님 일가가 우빈이 봐주고 있어. 아니면 나 쓰레기 버리러 내려오기 힘들어.”하예진의 시댁 식구들도 다 왔다는 소리에 하예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언니랑 둘이 해야 할 얘기도 있으니 태윤 씨가 없을 때 하는 게 좋겠어.’주씨 집안 사람들도 하예정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서인은 하예진을 보자마자 자기의 세 자녀를 관성의 학교에 입학시키겠으니 하예진에게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했다. 어차피 하예진은 전업주부라 아이 하나를 돌보든 셋을 돌보든 다 똑같다면서 말이다.사실 주서인은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주형인의 집에는 빈방이
임유환이 쪼르르 달려와 울며 말했다.“나 우빈이 비행기 갖고 싶어.”주우빈은 이내 장난감 비행기를 숨기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임유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엄마 안아줘, 엄마 나 안아줘.”하예진은 주우빈을 안아 올렸다.“예진아, 우빈이더러 유환이에게 양보하라고 해. 유환이는 손님이잖아. 우빈이가 양보해야지.”주서인은 임유환의 눈물을 닦아주더니 몸을 일으켜 임유빈의 장난감 비행기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주우빈이 쉽게 손에서 놓지 않으니 주서인은 억지로 장난감을 빼앗다가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들어 온 하예정 부부와 눈을 마주쳤다.주서인은 바로 손을 움츠리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예정 씨, 오랜만이에요. 이쪽은 남편이죠? 너무 잘생겼네요. 훤칠하네.”잘생긴 얼굴에 특유의 분위기와 젠틀한 모습은 주형인보다도 몇 배는 더 근사했다.주서인은 하예정에게 질투를 느꼈다.“오랜만에 뵙네요. 제 남편 전태윤이에요.”주서인은 서둘러 전태윤과 인사를 나누었다.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전태윤은 어딘가 모르게 시크해 보였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주서인이 주우빈의 장난감을 빼앗아 임유환에게 주려는 모습을 보고 전태윤은 주서인에게 비호감을 느꼈다. 장난감도 주우빈 것인 데다가 주우빈이 동생인데 양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전태윤은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이다 보니 자기 집 아이를 서운하게 만들어 남의 집 아이를 만족시키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게다가 전태윤은 주우빈을 아주 아꼈다. 그러니 주우빈이 손해 보는 모습을 더더욱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하예진은 서둘러 동생 부부를 집에 들였다. 집에서 왕자님 대우를 받고 자란 임유환은 계속하여 주우빈의 장난감을 달라며 울고불고하며 떼쓰고 있었다. 주서인은 임유환을 안아 들었다.주형인의 부모님은 하예정 부부의 두 손 가득 들린 쇼핑백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들은 하예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해서 집을 나간 데다가 결혼한 남자가 발렌시아 아파트에 대출도 없이 집을 구매했다는 소문과 그 남자가 큰
결벽증이 있는 전태윤은 임유환이 더러운 손으로 장난감을 더럽혔으니 미련 없이 장난감 세트를 임유환에게 주었다.아이들이 싸우지 않으니 어른들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씨 집안 사람들은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전태윤에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음을 느꼈다.김은희는 하예정을 워낙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대단한 남자와 결혼까지 했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게다가 두 자매는 사이가 좋고 자기 아들은 그 모양 그 꼴이니 김은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김은희는 기회를 찾아 주형인에게 적당히 하라고 귀띔해 주기로 했다. 비록 전업주부인 하예진은 수입은 없지만 주씨 집안에 장손을 낳아주었고 고생도 많이 했으니 체면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형인이 돌아왔다.주형인이 집에 돌아오니 하예진은 모두에게 식사하라고 했다.하예진을 도우려 주방에 들어 온 하예정은 다양한 해산물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우리가 남도 아니고 왜 해산물 이렇게 많이 샀어.”“네 형부가 많이 준비하라고 했어. 너도 알다시피 우리 형님 일가족이 해산물을 좋아하잖아. 집에서 먹기는 돈 아까우니까 맨날 여기만 오면 해산물 타령이야. 그것도 다 비싼 거로. 우리 시어머니는 또 한우가 드시고 싶으시대. 내 돈 주고 산 걸 저 사람들에게만 차려줄 수 없잖아? 그래서 점심에는 냉장고에 넣고 꺼내지 않았어. 너랑 제부 오면 같이 먹으려고.”하예진은 점심에 가정식 반찬을 두 가지만 준비해 시댁 식구들에게 대접했다. 시댁 식구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하예진은 모르는 척 무시했다.이날 저녁, 다들 즐겁게 식사했다.식사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태윤은 집에 가려고 했다. 하예정은 어쩔 수 없이 전태윤과 함께 나섰다.두 사람이 떠난 뒤, 하예진은 본인과 동생 부부의 수저를 씻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주형인은 부모님과 주서인에게 수박을 대접하려고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다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식탁을 보더니 하
“예진아, 형인이는 출근도 해야 하고 업무도 바쁜 데다가 너와 우빈이 먹여 살려야 하잖아. 넌 형인이 와이프니 형인이 잘 보살펴야지. 어떻게 집안일을 시킬 수 있어? 형인이가 더치페이를 원하는 것도 네가 돈을 함부로 쓰는 거 방지하기 위한 거잖아. 부부 사이에 그렇게 다 따지면 어떻게 살겠어? 빨리 설거지 해놔. 형인이 화나게 하지 말고. 밖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네가 이해해.”주서인은 김은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러니까,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애만 보면서 형인이 월급 받아쓰는 주제에 형인이 일까지 시켜?”하예진은 주방에서 나와 장난감 바이크 앞에서 주우빈을 안아 올리며 무덤덤하게 말했다.“출근도 안 해 수입도 없이 전업주부로 우빈이를 키우는데, 분명 형인 씨 월급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거 다 알면서 더치페이하려는 건 무슨 의도죠? 그래요. 더치페이하죠. 돈이든 집안일이든 다 더치페이예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쉽다고 하셨죠? 나 아무 일도 안 한다고 하셨죠? 그럼 안 하죠, 뭐. 이 집안이 스스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 때진 옷도, 더러운 양말도 스스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형인씨도 알아야죠.”하예진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동생 부부가 가져온 선물을 들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저 버르장머리 없는 것!”주형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과일칼을 테이블에 던져버리고 소매를 걷으며 방으로 들어가 따지려 들었다.김은희는 또다시 주형인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너 뭐 하려고? 우빈이도 안에 있는데 우빈이 놀라게 하지 마. 따지려거든 우빈이 잠들면 다시 해. 손대려거든 절대 보이는 곳은 안 돼. 하예정이 알면 와서 따질 게 뻔하니까. 하예정 남편 만만한 사람 아니야.”주형인은 전태윤이 큰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회사인지는 자매가 말한 적이 없었다. 주형인도 처음에는 전태윤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나중에는 전태윤이 계속 쌀쌀맞게 대하니 한 회사의 사장으로서
주서인은 계속 말했다.“학교와 그리 멀지도 않으니 학군지에 속하기도 하고. 동서가 애들 돌보면서 빨래와 밥만 해주면 돼. 생활비는...”“누나, 조카 돌보는데 생활비는 무슨. 전학하는데 필요한 절차 다 밟아놓을 테니 그렇게 해. 픽업은 예진이가 하면 돼.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뭐.”주서인은 주형인이 통쾌하게 대답하자 기분이 좋아졌다.이때 김은희가 말했다.“형인아, 그래도 예진이와 상의하는 게 좋겠어. 어쨌든 가족이잖아.”그러고 주서인에게 말했다.“내가 듣기로는 여기서 초등학교 다녀도 호적을 옮겨야 중학교 입학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게다가 너희 집 너무 시골도 아니잖아. 주위에 좋은 학교도 많고. 너희 두 사람 그런 학교 다녔어도 다 좋은 대학 붙었잖아.”김은희는 공부라는 건 아이한테 달렸지 학교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맞다, 엄마 말하니까 나 생각났어. 형인아. 나 애들 호적 너한테로 옮기는 건 어때. 아니면 너 집문서 내 앞으로 돌려놔. 애들 졸업하면 다 원래대로 돌려놓을게.”임수찬은 아이를 안고 수박을 먹느라 이 일에 대해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주형인은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응낙하며 말했다.“이따가 예진이한테 말해 놓을게. 집안일은 내가 결정하지만, 엄마 말도 맞아. 어쨌든 가족이니 말은 해야지. 게다가 애들 픽업이며 밥 차리는 일은 예진이가 할 건데 의견은 물어보는 척이라도 하지 뭐. 예진이랑 상의하고 전화할게. 걱정하지 마, 우리 조카들 꼭 학교 다니게 해줄 테니까.”이들 남매도 사이가 좋았다. 주형인은 누나인 주서인을 조건 없이 믿었고 뭐든지 도우려 했다. 게다가 상대는 남이 아닌 친조카들이니 말이다.주서인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이내 화제를 돌려 주형인을 다독였다.“이따 동서한테 뭐라 하지 마. 부부 사이에 트러블 생기는 건 당연한 거지. 두 사람 학교 다닐 때 동창이기도 하고 감정도 깊으니 우빈이 봐서라도 가만히 있어.”주서인은 두 사람이 다투기라도 하면 하예진이 홧김에 두 아이의 픽업을 거부하고 밥
그들 가족은 사이좋게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각자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그들은 여기서 며칠 묵을 생각이다.어쨌든 하예정이 집에서 나갔으니 방도 비었고 그들이 있기에 딱이었다.하지만 지금은 하예정의 도움 없이 하예진이 혼자 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차리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집안은 예전처럼 깔끔하지 못했다.방에 들어가기 전, 주서인은 주형인을 세워놓고 말했다.“하예정 부부가 뭐 가득 사서 왔던데 동서가 홧김에 다 가지고 들어갔어. 나 봤는데 다 좋은 물건이더라고. 비싼 술과 담배가 보이던데 너 형부한테 줘. 동서 술 담배 안 하잖아. 그거 뒀다 어디다 쓴다고. 너 형부 비싼 담배 돈 아깝다고 안 사. 아빠도 좋은 술 못 마셔 봤으니 술은 아빠 드리고.”주형인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까짓 거 다 가져가도 돼. 빨리 유환이 씻기고 들어가서 일찍 자. 나 내일 별일 없으니 드라이브나 가자.”“그래.”주서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환히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주형인이 방에 들어갔을 때, 주우빈은 이미 잠에 들었고 하예진은 마침 욕실에서 씻고 나왔다. 하예진은 주형인을 보는 척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우려 했다.“예진아, 얘기 좀 해.”주형인은 살찐 하예진의 몸매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서현주를 떠올리더니 하예진과 멀리 떨어진 침대 변두리에 앉았다.주형인은 자상한 표정으로 주우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래도 아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나 보다.“무슨 일인데?”하예진은 쌀쌀하게 물었다.“누나가 큰애 둘을 관성의 초등학교로 전학시키겠다네. 중학교도 여기서 보내고. 그래서 말인데. 너 애들 픽업 다니고 밥이나 해줘. 어차피 맨날 밥은 해야 하니까 그냥 수저 더 올려놓는 것뿐이야. 생활비는 애들이 뭐 많이 먹지도 않을 텐데 내가 월 20만 원 더 줄게. 20만 원이면 충분할 거야. 우리 집도 학군지에 들어. 관성 제2중학교도 가까이에 있으니 조카들 호적 우리 아래로 옮기거나 아니면 집문서 누나 이름으로 돌리든가 해서 애들 졸업
하예진은 쌀쌀맞게 말했다.“주형인, 나 집에서 애만 본다고 네가 날 그저 먹을 줄만 알고 돈 쓸 줄만 아는 무용지물로 생각해도 내가 낳았으니, 내 아이를 위해 참았어. 하지만 네 누나의 두 아이는 나랑 상관없어. 내 책임이 아니니 내가 돌봐 줄 의무가 없다고! 호적을 옮긴다고? 그럼 누구한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생각 안 해 봤어? 그건 우리 우빈이 학교 갈 기회를 빼앗는 거야. 집문서 네 누나 앞으로 돌린다고? 그 집문서에 내 이름은 없으니 네가 어떻게 하든, 설사 집을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네 문제야. 하지만 집문서 돌리기 전에 이 집 인테리어 비용부터 돌려줘. 만약 당신 누나의 집이 되어버리면 내가 쓴 인테리어 비용 한 푼도 돌려받기 힘들어.”주형인은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생활비 더 준다고 했잖아. 그걸로 부족해? 너 원래 집에서 애 보고 밥하고 그랬잖아. 하나 돌보는 거랑 둘 돌보는 거랑 뭐가 다른데. 더군다나 애들 다 커서 이젠 말도 잘 들어. 공부하는 거 좀 도와주면 돼. 20만 원이 적으면 10만 원 더해서 30만 원 줄게. 그럼 되지? 그리고 호적 옮기는데 우빈이 학교 다니는 거랑 뭔 상관이야? 우빈이 학교 가려면 아직 멀었어. 내 친누나니까 나 누나 믿어. 집 무조건 돌려줄 건데 뭔 인테리어 비용이야. 이 집은 내가 샀어. 너도 이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인테리어 비용쯤이야 당연히 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뻔뻔스럽게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달라고, 없어!”하예진은 주형인을 노려보았다.이 순간, 하예진은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결혼 전 두 사람은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을 키워왔고 주형인은 하예진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결혼해서 첫 2년도 주형인은 그나마 하예진에게 잘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하예진은 주형인에게 점점 더 실망하고 있다.주형인은 늘 자기의 부모와 주서인의 편만 들었다.그녀 생각은 물론, 주우빈의 생각도 하지 않았다.주서인이 입만 열면 모든 걸 다 들어주었다.‘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집 문제로 원수가 되는데.’“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