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굳이 하예진과 싸울 필요도 없었다. 이윤미가 직접 이씨 그룹을 큰이모의 후손에게 돌려주고, 어지러워진 가문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었다.그렇게 되면, 이윤미는 이씨 가문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 생각했다.이은화는 이윤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딸의 말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태도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눈빛은 날카롭게 돌변하며 이윤미를 노려보았다.하지만, 이윤미는 담담하게 이은화의 시선을 마주했다.“......”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은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을 뻗어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넌 참 주관이 뚜렷한 아이야.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고작 2~3년이니, 엄마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이은화는 잠시 하려던 말을 멈추고 이윤미에게 물었다.“아까, 방윤림이 널 데려다줬던데?”“맞아요.”“너희 둘, 매일 같이 지내다시피 하는데 혹시 너, 방윤림한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거 아니지?”이윤미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엄마, 제가 방윤림 한테 감정을 품고 있다니요? 엄마도 아시잖아요. 방윤림은 그저 저에게 평생 충성하는 특별 비서일 뿐이에요.”“비서니까 하루 종일 제 옆에 붙어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이은화는 가볍게 웃었다.“방윤림은 사랑을 할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지. 오직 너에게만 충성해야 하니까. 그런데, 만약 그가 너의 남자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이윤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방윤림도 보통 남자들처럼 가정을 꾸릴 수도 있겠지. 자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효 중 가장 큰 불효가 자손을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여겨왔어. 방윤림이 아무리 고아라 해도, 자기 핏줄을 남기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야.”이은화는 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방윤림이 너를 바라보는 눈빛... 그거 단순한 충성이 아니야
이은화의 곁에 있었던 비서는 그녀에게 존경과 충성을 바쳤지만 사랑은 없었다.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신의 비서와는 어디까지나 주인과 비서의 관계일 뿐 비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만약, 그때 그녀가 비서한테 마음이 생겼더라면, 어쩌면 더 훌륭한 자녀를 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딸이 뒤바뀌는 끔찍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엄마, 저 지금 사랑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연애할 시간도 없고요. 전에 말했듯이, 후계자가 필요하면 아이 아빠 없이 그냥 딸만 낳겠어요.”이윤미는 잠시 머뭇거렸다.“저는 엄마처럼... 아빠한테 배신당하고 싶지 않거든요.”“......”이은화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엄마로서 자신의 딸이 평생 혼자 살도록 놔둘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방윤림이 이윤미를 사랑하고 있고, 그리고 자신도 결코 둘의 관계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어떻게든 딸과 방윤림을 이어주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방윤림은 고아였고,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다. 그리고, 설령 방윤림이 이씨 가문에 입적하지 않더라도 그는 평생 이윤미에게 충성할 것이었다.그러나, 정작 그녀의 딸이 남자를 믿지 못하고 오직 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이은화가 과거에 어떤 잔인하고 냉혹한 일을 했는지를 떠나서, 결국 그녀도 딸을 둔 한 명의 평범한 엄마였다. 그녀는 딸의 혼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 순간, 더 이상 사랑 이야기를 해봤자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딸을 설득할 수도 없었고, 그녀 역시 딸의 생각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둘 중 누구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더 이상 이런 대화는 무의미했다. 이은화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네 아빠가 퇴원하면, 엄마는 잠시 어디 좀 다녀올 거야. 그동안 회사와 집안일 모두 너에게 맡길게.”이윤미는 놀란 듯했다.
“엄마, 오래전 인연이라는 그 사람, 누구예요?”이윤미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이은화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그저 엄마의 오래전 인연일 뿐이야. 네가 굳이 알 필요는 없어.”“엄마가 없는 동안, 회사와 집안의 일 모두 잘 처리해야 한다. 혹시 네 지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잘 기억해 둬. 엄마가 돌아와서 직접 처리할 테니.”이은화는 단호하게 말했다.“물론, 네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단다. 점점 내려놓아 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 그러니 너도 언제까지나 엄마에게만 의지할 생각은 하지 마.”이윤미는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번 엄마가 2주 넘게 관성에 다녀오셨을 때도 저 혼자서 잘 해낸 거, 아시잖아요?”사실, 이은화가 집에 없으면 이윤미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누군가 그녀의 엄마를 이용해 그녀를 억누르는 일도 없고,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이은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 엄마도 널 믿는다. 이제 늦었으니 이만 올라가서 쉬거라. 난 TV 좀 보다가 자야겠어.”이은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잘 자요, 엄마.”그렇게 그녀는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딸이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후, 이은화는 조용히 목에 걸려있는 오래된 목걸이를 꺼냈다. 그 목걸이에는 작은 펜던트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펜던트 안에는 아주 작은 사진 한 장이 숨겨져 있었다. 그 사진 속 인물은 바로 전임 가주였던 큰언니에 충성하던 ‘그 사람’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아주 오래전, 이은화는 몰래 그를 찍어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작게 잘라 펜던트 안에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은화 자신만의 비밀이었다.사람들은 흔히 첫사랑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하지만, 그와 이은화는 애초에 첫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사이였다. 그는 한 번도 이은화를 사랑
큰 저택에는 가정부와 경호원을 제외하면 이윤미 혼자뿐이었다.어머니와 오빠 내외는 외출 중이었고 어디로 갔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두꺼운 외투를 걸친 이윤미는 방을 나섰다.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계단을 내려가며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다.“하예진 씨, 시간 되세요? 점심 같이 드시죠.”이윤미는 시원하게 웃으며 상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덧붙였다.“노 대표님이 우빈이 데리고 예진 씨 만나러 왔다면서요? 저도 우빈이 너무 보고 싶어요. 제가 세 사람한테 밥 살 테니까 나오세요. 거절은 안 됩니다. 방 비서님한테 이미 하루 호텔로 예약해달라고 했어요. 점심 때 뵙죠.”“이게 무슨 의논이에요? 통보잖아요.”“설마 거절하실 건가요? 제가 그래도 연장자인데, 어른이 점심 먹자고 하면 동생이 따라야죠. 안 그래요?”“거절한다고 한 적 없어요. 원래 호텔에서 점심 먹으려 했는데, 이윤미 씨가 사주신다니 사양 안 할게요.”“오전엔 뭐 하셨어요?”“어젯밤 늦게 들어와서 이제야 일어났어요. 우빈이랑 놀 틈도 없었고요. 점심 먹고 나서 한참 놀아줘야 해요. 그나저나 이 두 부자는 언제 관성으로 돌아가요?”하예진이 자연스럽게 이윤미의 말을 정정했다.“저랑 노동명 씨 아직 결혼 안 했어요.”“그건 시간문제 아닌가요? 설마 마음 바뀌어서 노동명 씨랑 결혼 안 하실 건 아니죠?”“노동명 씨가 우빈이를 친자식처럼 챙긴다는 건 저도 알아요. 두 사람 벌써 부자지간 같더라고요.”“남자 친구도 없으면서 남의 연애사에 관심은 많으시네요. 그러지 말고 얼른 좋은 분 찾아서 형부 만들어 주세요.”이윤미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마 평생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저는 결혼 안 할 거거든요. 그냥 적당한 남자랑 상의해서 아이만 가질 생각이에요. 후계자만 있으면 되니까요.”하예진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어머니께서 아시면 기절하시겠어요.”“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니랑 아버지도
“그러게요, 정말 부러워요. 저도 예전부터 여행 가고 싶었는데.”하예진은 주형인과 결혼한 이후로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평소 출장으로 바쁘게 오가느라 제대로 된 휴식은커녕, 짧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고현 도련님은 호영 도련님을 만나더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요.”이윤미가 감탄하며 말했다.“사랑에 빠진 고현 씨는 조금 더 여성스러워진 것 같아요.”고현에게는 쌍둥이 남동생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를 비워도 고빈이 남아 있었기에 비교적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하지만 이윤미는 달랐다. 아직도 이씨 가문의 암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사려야 했고 출장을 가더라도 멀리 떠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길어야 오늘 떠나 내일 돌아오는 정도였다.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간 힘겹게 쌓아 올린 위엄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이윤정이 없더라도 세 명의 오빠는 여전히 그녀를 견제하고 있었고 회사에는 아직도 꺾지 못한 가시 같은 존재들이 몇 명 남아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의 진짜 딸이었고 그들 역시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그녀의 노력을 인정했다.그들은 오랫동안 이씨 그룹을 위해 일해왔고 그 공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지만 결국 이씨 그룹은 이씨 가문의 것이었다.현명한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법이다.이윤미가 회사를 물려받게 되고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지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윤미 씨는 언제쯤 사랑에 빠져서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실 건가요?”이윤미는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저보다 어른이면서 이런 농담 함부로 하시네요. 자세히 보세요. 제가 얼마나 여성스러운데요. 이제 운전해야 하니 장난은 그만할게요.”“네. 난폭운전은 하지 마세요.”“알겠어요.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네요. 밖에서 운전 좀 하셨다고 어린애한테 잔소리를 듣다니요.”“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우리 아직 승부를 보지 않았잖아요.”이윤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형식적인 거죠. 저는 싸우고 싶지 않거든요.”“오늘은 그
이윤미는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린 뒤, 방윤림에게 물었다.“우빈이와 노동명 씨 선물은 준비되었나요?”방윤림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하는 일인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께서는 직접 운전해서 가실 건가요?”“문제라도 있나요?”방윤림은 조용히 말했다.“아가씨께서 술이라도 드시면 운전을 못 하시잖아요. 제가 모시고 가면 어떨까요? 그러면 마음껏 드실 수도 있고요.”“술은 마시지 않을 거예요. 어젯밤에 충분히 마셨고 하예진 씨도 술을 마시지 않을 겁니다. 우빈이는 아직 어리고 노동명 씨는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하예진 씨가 술을 못 마시게 할 거예요.”이윤미의 말에 방윤림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윤미가 차를 몰고 먼저 출발한 뒤, 방윤림은 그녀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차에 올라 그녀를 따라갔다.30분 후, 하루 호텔에 도착했고 하예진은 우빈이를 데리고 이미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노동명은 몸이 불편해 내려오지 못한 모양이었다.이윤미는 하예진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르고 차를 세운 후, 방윤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다가 조수석 뒤쪽 문을 열어 방윤림이 준비한 선물들을 챙기고 있었다.노동명을 위한 좋은 담배와 술, 그리고 몇 가지 영양제가 있었고 우빈이를 위한 장난감과 새 옷, 금팔찌와 장수 목걸이가 있었다.새 옷은 아마 한두 치수 크게 산 듯했다.우빈이의 정확한 사이즈를 몰랐기에 방윤림은 옷 가게 직원에게 ‘3~4살 남자아이’라고 설명하고 직원이 추천한 옷들로 구매했다.크게 사면 나중에 입혀도 되고 오래 입을 수 있지만 반면 작으면 다시 반품해야 하니 그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사실 방윤림은 처음으로 아이 옷을 사 보는 것이었기에 그런 경험이 없는 만큼 일일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노동명도 우빈이를 처음 돌볼 때는 많이 서툴렀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빈이에게 바람개비만 계속 사다 주었었다.우빈이가 바람개비를 좋아하긴 했지만 너무 많이 받
“자, 이모할머니가 안아줄게. 우빈이를 위해 장난감도 사고 새 옷도 사고 금팔찌도 준비했어.”이윤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고 하예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빈이 장난감은 이미 넘쳐나서 둘 곳도 없어요. 안 사주셔도 되는데. 옷도 너무 많아서 다 못 입어요. 애들은 금방 자라니까 옷도 금방 작아지고요.”“그 많은 장난감은 제가 산 게 아니잖아요. 처음으로 이모할머니가 되었는데 당연히 우빈이에게 선물해야죠.”그러자 하예진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빈이 옷이 많아서 아직 못 입은 것도 많을 텐데, 입기도 전에 작아졌다면 두 분 빨리 결혼하셔서 둘째 낳으시면 되겠네요. 둘째가 물려 입으면 되잖아요.”이윤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첫째는 새 옷, 둘째는 첫째가 입던 옷, 셋째와 넷째도 계속 둘째가 입던 옷으로 때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우빈이 옷은 아직 새 옷이니까 둘째가 입어도 괜찮을 거예요.”하예진은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이 말을 들은 노동명은 아주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그도 사실 하예진과 아이를 더 낳고 싶었다.하지만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었고 그에게는 이미 우빈이가 있기도 했다.어릴 때부터 친아들처럼 키워오면 바르게 잘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노동명 씨, 이건 노동명 씨 선물이에요.”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눈짓하자 그는 준비한 선물을 노동명에게 건넸다.노동명은 살짝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다.“제 나이에 선물이라니요.”이윤미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촌수로는 제가 어른이니까 선물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방 비서님이 좋은 담배와 술, 그리고 영양제를 준비했어요. 빨리 다리 나으셔서 하예진 씨와 결혼하셔야죠. 빨리 두 분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요.”그러자 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저희는 급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윤미 씨는 올해 스물아홉인데 남자 친구부터 만나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좋은 남성분 몇 분 소개해 드릴까요?”이윤미는 손
하예진은 아들에게 음식을 덜어주고 곧이어 노동명에게도 음식을 내밀었다.노동명의 눈빛에는 은근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그 옆에 앉은 방윤림은 자연스럽게 공용 젓가락을 들어 이윤미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었다.그의 손길은 세심했다. 생선을 덜어줄 때는 가시를 하나하나 발라내어 담아주었고 뼈가 있는 고기도 먼저 손질한 후 내놓았다. 해산물 역시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해 주었다.이윤미는 하예진과 우빈이와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팔려 그런 세세한 배려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저 자기 접시에 좋아하는 음식이 담겨 있고 따로 뼈를 발라내거나 가시를 걱정할 필요 없이 한입 베어 물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이윤미가 국을 다 마시면 어느새 그릇에 국이 다시 채워져 있었다.오랜 경험에서 오는 직감으로 하예진은 이씨 가문 가주의 모습처럼 이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이윤미에게 방윤림은 그야말로 ‘만능 비서’였기에 그의 세심한 손길도 그녀는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다. 이윤미의 삶에서 방윤림은 일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을 챙겨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식사를 마친 후, 노동명과 방윤림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하예진은 아들과 이윤미를 데리고 자리를 옮겨 여자들끼리의 대화를 이어갔다.우빈이는 이윤미가 선물한 새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하예진은 다정하게 이윤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둘 사이에는 친밀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예진은 이윤미를 향해 장난스럽게 속삭였다.“윤미 씨, 전에 남자는 필요 없고 결혼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요. 그냥 딸 하나만 낳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가 좋은 제안 하나 해드릴까요?”이윤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되물었다.“뭔데요?”“딸이 똑똑했으면 좋겠죠? 윤미 씨도 능력 있는 사람이지만 방윤림 씨는 더 뛰어난 사람이잖아요. 만약 윤미 씨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면 방윤림 씨의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어떨까요? 두 분의 유전자가 합쳐지면 엄
“알고 있어, 회사에 돌아오자마자 경비원이 알려줬어.”서지혜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영 씨는 만만치 않아 보여요, 무슨 연고로 찾아왔는지 몰라요. 성 대표님이 어느 회사냐고 물었지만 말하지 않았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도 말하지 않았어요.”“성 대표님은 하 대표님의 연적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하예정은 실소를 지었다.“젊은 여성이 찾아온다고 다 나의 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 만약 나의 연적이었다면 언니가 아영 씨를 들여보내지 않았겠지.”서지혜가 말했다.“그건 성 대표님이 몰랐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그렇게 의심하고 있어요. 어쨌든 하 대표님 조심하세요.”전태윤 같은 우수한 남자는 수시로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그래서 하예진에게는 수시로 연적이 나타났다.“알았어, 조심할게. 내가 조심해도 소용없어, 그들이 나와 태윤 씨를 빼앗는다면 내가 태윤 씨를 집에 가두어도 연적이 나를 찾아올 거야.”모든 일에 마음을 넓게 먹었던 하예정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더 많은 여자가 전태윤을 좋아할수록 그녀는 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이 그녀를 일편단심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복 받았다고 생각했다.서지혜는 하예정을 따라 VIP룸에 들어갔다.서지혜가 VIP룸 문을 열자 젊고 예쁜 기품이 고상한 여인이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앉은 자세를 본 하예정은 그녀가 어느 명문가의 딸일 것으로 추측했다.하예정은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예전보다 고귀하고 우아해졌지만 이 여성과 비교하면 자신의 내공이 부족하게 느껴졌다.그들의 말처럼 집안이 부유하지 않으면 명문가의 자녀일 것이다. 그녀의 기질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도아영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하예정을 본 그녀는 일어섰고 하예정이 다가오자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하 대표님, 안녕하세요.”“아영 씨, 안녕하세요.”하예정은 상대방의 이름이 도아영이라는것은 알지만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물론 노동명도 건드리면 화를 낸다.그들은 머리가 문에 끼인 것이 아닌 이상 노동명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노동명이 온 것을 본 모든 사람은 그에게 인사했다.식당 직원은 이미 노동명의 점심 식사를 준비해서 한 테이블에 차려놓았다.노동명은 몇몇 고위층 관리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했다.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대표로서의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퇴근 후 그들은 일 얘기를 하지 않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허풍을 떨었다.노동명은 퇴근 후에는 신경이 너무 긴장되지 않도록 스스로 긴장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노동명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회사 사람들과 함께 식사했고 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와 관성 호텔에서 식사했다.식사 후 그들 부부는 옥상의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에서 낮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했다.낮잠을 자고 일어나 각자 자기 회사로 돌아가 일을 했다.하예정의 차가 회사에 들어서자 당직 경비원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했다.“아영 씨라는 분이 하 대표님을 찾으세요. 성 대표님이 아영 씨를 모시고 들어갔어요.”도아영?차를 세운 후 차에서 내린 하예정은 경비원에게 물었다.“어느 회사에서 오셨다고 말했나요?”그녀가 아는 여성 지인분 중 도아영이라는 사람은 없었다.하예정은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경비원이 대답했다.“어느 회사에서 오셨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다만 하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셨어요. 제가 원래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때마침 성 대표님이 돌아오셨어요. 성 대표님이 아영 씨가 하 대표님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들여보내셨어요.”경비원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영 씨는 하 대표님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고 매우 아름다웠고 품격이 있어 보였어요. 평소에 하 대표님이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들고 왔는데 내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요.”“하 대표님, 젊은 여성이 찾아왔으니 조심하세요.”그 뜻은 하예정의 연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하예정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하예정의 남편인 전태윤은 관성에서 전
비서가 대답했다.“저도 그냥 노 대표님에게 말했을 뿐이에요. 평소에 직업 정장을 입으시던 분이 갑자기 예쁜 일상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건 누군가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일 거예요.”“아마 열애 중일 수도 있어요.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예쁘게 꾸민다고 했어요.”고개를 돌려 비서를 본 노동명은 웃으면서 말했다.“여자를 잘 아는가 봐.”“노 대표님, 저 두 아이 아빠예요. 가정이 있는 남자라 여자 마음을 당연히 잘 알죠.노 대표님도 예진 씨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 저에게 물어보셔도 돼요.”“애초에 너에게 물었으면 지금쯤 예진이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겠지.”노동명은 농담하며 말했다.“나는 여자의 마음을 잘 몰라, 하지만 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알아.”“진심으로 대한다면 예진이도 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거야.”“명품을 선물하는 것보다 예진이가 내가 필요하면 제일 먼저 나서서 도와줄 수 있고 위험에 처하면 제일 먼저 곁으로 갈 수 있는 것이 명품을 선물하는 것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고 생각해.”하예진은 그가 선물한 명품을 받은 적이 없었다.기껏해야 그가 선물한 꽃다발을 받았다.하예진은 물질을 중요시하지 않는 여자였기에 그는 오직 옆에 함께 있어 줄 수밖에 없었다.옆에서 함께 하며 묵묵히 지켜주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다.비서는 노동명과 몇 해 동안 일하며 그와 하예진의 사랑을 지켜봐 온 산증인이다. 노동명은 처음에 하예진에게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전태윤의 처형이고 하예정의 언니였기 때문에 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다.그때 그는 하예진을 뚱뚱하다며 매일 일찍 회사에 출근해 달리기해서 살을 빼라고 했다.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노동명은 하예진을 사랑하게 되었다.한 명은 돈을 노리지 않고 한 명은 외모를 신경 쓰지 않는다.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노 대표가 하예진을 좋아하게 됐을 때 그녀는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했다.다만 그때 노동
노동명이 하예진을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점차 그녀에게 끌려서 사랑하게 된 것이다.그는 상대방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정이 생기는 편이다.그녀는 기회만 준다면 자신이 하예진보다 더 우수하기에 노동명에게 자신의 좋은 점을 보여준다면 마음을 바꿔 그녀를 선택하리라고 생각했다.사업 이야기를 마쳤을 때 식사 시간이었다.장월은 노동명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노동명은 장월의 초대를 완곡하게 거절하며 말했다.“지금은 거동이 불편해 친구들과 회식하지 않는 한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어요.”“그럼 좋아요, 노 대표님이 완쾌되시면 다시 제가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너무 의도적으로 행동하면 노동명의 반감을 살까 봐 걱정되어 그녀는 무리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면 그녀와 선을 그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노동명은 미혼여성과 접촉하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노씨 그룹과 협력하는 대표 중 여성이 있더라도 그녀와 같은 중년층이며 대부분은 할머니급이었다.그녀가 남편을 대신해 시댁의 가문을 지탱하고 또 아들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노동명은 그녀 회사와의 협력관계를 직접 책임지지 않았을 것이다.노동명의 눈에 그녀는 시댁이 있는 결혼한 여자로 보였다. 남편이 죽더라도 그녀는 다른 곳에 시집을 가지 않고 시댁을 떠나지 않는 한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시댁이 있는 여자로 보일 뿐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었다.노동명이 그에게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할 수가 없었다.“비서에게 장 대표님을 배웅해 드리라고 할게요.”노동명은 장월을 배웅하기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했던 그는 누가 오더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를 이해해 주었다.장월은 웃으면서 노동명과 악수하며 말했다.“노 대표님, 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노동명은 비서에게 장월과 그녀의 비서를 배웅하라고 했다.일 층까지 장월과 그의 비서를 배웅한 노동명의 비서는 두 사람이
남편이 살아있을 때 장월은 커피를 여유롭고 편안하게 마셨으며 그녀에게는 일종의 즐거움이었다.지금 그녀는 기운을 북돋아 일을 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신다. 예전과 같은 여유로움은 이미 사라졌다.노동명은 비서더러 장월에게 커피 한잔을 가져다드리라고 했다.그리고 그는 말했다.“나는 따뜻한 물 한 잔 줘, 태윤이 회사에서 커피를 마셨어.”그는 보통 오전에만 커피 한잔을 마시고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에 오후에는 거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노 대표님, 전씨 그룹에 다녀오셨어요?”장월은 미소를 지으며 노동명에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했다.“네, 급한 일이 있어서 전씨 그룹에 가서 태윤이를 만나서 얘기 좀 나눴어요.”노동명이 깊게 말하려고 하지 않자 장월도 눈치껏 더 이상 묻지 않았다.노동명과 소정남 그리고 전태윤까지 세 사람은 형제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관성의 상류층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이 3대 가문은 개인적인 친분도 매우 두텁다.전태윤이 하예정과 초고속으로 결혼한 후 노동명이 하예진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가 천천히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노동명과 전태윤의 우정은 더 돈독해졌다.만약 노동명이 순조롭게 하예진과 결혼한다면 그와 전태윤은 동서지간이 될 것이다.소정남의 아내와 하예정 또한 절친이다.장월은 갑자기 하예정은 복이 많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왕성하게 한다고 느꼈다.그녀는 운이 좋게 전씨 가문에 시집가서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되었고 그녀의 절친과 이혼한 언니까지 잇따라 부잣집에 시집갈 수 있었다.하예정과 친한 사람들은 모두 잘 되었다.성씨 가문의 딸 성소현은 예전에 명성이 악랄했다. 모두 그녀가 교활하고 제멋대로이며 독단적인 데다 안하무인이라고 말했다.하예정이 이경혜와 관계를 확인한 후 그녀와 성소현은 사촌이자 좋은 친구가 되었다.그 뒤로 성소현의 명성은 점점 좋아졌고 두 사람은 협력해 회사를 설립해 모닝 프레시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업도 잘되고 있다.많은 황무지
장월은 자연스럽게 비서 자리를 이어받아 노동명을 대표 사무실로 밀고 들어갔다.두 명의 비서는 묵묵히 두 대표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장 대표님, 제가 할게요. 밀지 않으셔도 되세요.”노동명은 장월이 그를 밀어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동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휠체어를 쉽게 조종할 수 있다고 말했다.장월이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힘을 별로 쓰지 않았어요. 노 대표님이 스스로 조종해서 나갔어요.”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화려한 장신구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던 그녀는 오늘 여성 정장을 입지 않고 평상복을 입었으며 평소에 묶었던 머리를 풀어 늘어뜨렸다.오늘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착용했던 눈부신 장신구를 꺼내 착용했다. 정교한 화장을 한 그녀는 마치 20대 소녀처럼 보였다.그녀가 서른이 넘고 아홉 살 아들을 둔 사람이라는 것을 보아낼 수 없었다.아침에 외출할 때 아들은 그녀가 오늘 예쁘다고 칭찬했다.이렇게 차려입은 그녀를 본 시부모님은 말을 잇지 못했다.장월은 시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어젯밤 시부모가 한 말을 그녀는 모두 마음에 새겨들었다.그녀가 몰래 오랜 시간을 관찰했지만 오직 노동명만이 그녀의 조건에 맞았다.그녀는 공공연히 노동명과 하예진사이의 내연녀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숨기고 그의 반응을 확인하려고 했다.노동명이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그녀는 내연녀라고 욕을 먹더라도 하예진과 공평하게 경쟁할 것이다.만약 노동명이 단순히 그녀를 사업 협력 파트너로 여겨 좋아하는 거라면 그녀는 단념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끼어드는 내연녀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노동명을 포기하면 그녀는 앞으로 재혼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회사를 잘 운영하고 아들을 키우며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살 것이다. 그 후 아들이 자라서 후계자가 되면 그녀는 은퇴해서 친구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려고 했다.가끔 마음이 복잡해지면 견우 가게 가서 소비하면 된다.연애도 결혼도 감정도 없다.장월이 말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신경 쓰지 마, 너희는 단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고난을 겪었을 뿐이야. 폭풍우가 지나가면 무지개를 볼 수 있어. 처형이 지금 너무 바빠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걸 너도 알잖아.”“결혼 전 처형은 직장에서 잘나갔지만 결혼하고 전업주부로 살면서 사회와 몇 년이나 단절됐어. 이혼하고 스스로 창업한 시간도 길지 않아. 현재 이씨 그룹을 경쟁 상대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경험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거야. 이씨 그룹의 책임자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그들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어. 우리 처형은 회사 운영에 전념하려고 서둘러서 혼인신고를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일 거야.”친구의 말을 듣고 노동명이 말했다.“너의 말이 맞아. 예진이는 지금 스트레스가 많을 거야.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어. 예진이 뒤에서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제일 먼저 뛰어갈 거야.”“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묵묵히 그들 모자를 지켜주며 예진이가 조금씩 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볼 거야.”그는 하예진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노동명과 함께 있어도 하예진에게는 압박이 컸다.사람들은 그녀가 동생 때문에 노동명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으며 또 그녀가 무슨 수를 써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모른다고 했다.그가 그녀를 도와 각종 구설을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밀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녀의 귀에도 전해졌다.그녀가 이렇게 노력하는 것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이다.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그러니 네가 너무 예민했어. 너랑 처형이 잘 지내야만 누군가 처형에게 고백할 때 너는 연적을 물리칠 수 있고, 누가 처형에게서 너를 빼앗으려 할 때 처형이 나설 필요도 없이 네가 먼저 그 여성과 거리를 둘 거야.”스무 살 넘어서도 노동명의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이제 곧 마흔이 된 그는 한층 더 성숙하고 진중해져서 각종 미녀를 만나도 쉽게 유혹되지 않을 것이다. 노동명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그는 커피를 마신 후 전태윤에
만약 노동명이 시간이 없다면 그의 세 형들은 시간을 내서 그를 도와 회사 일을 처리해 줬다. 그가 마음 편히 재활 운동을 하고 아내를 쫓을 수 있도록 말이다.“알았어요, 저녁에 다시 얘기해요.”하예진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비서가 노크하고 하예진에게 고객이 오셨다고 말했다.그녀는 직접 그 고객을 접대하러 가야 했다. 만약 거래가 성사된다면 내년 상반기에는 할 일이 없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하예진과 통화를 마친 노동명은 핸드폰을 귓가에서 떼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손에 꽉 잡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전태윤은 자신의 커피잔을 들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시선을 친구에게 돌렸다.정신을 차린 노동명은 친구와 눈길이 마주쳤다.“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데?”핸드폰을 내려놓고 노동명은 웃으면서 전태윤에게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전태윤은 노동명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레 그에게 질문했다.“넋이 나가 있어.”“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예진이를 쫓아다니면서 내가 아무리 진심을 표현해도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고 또다시 결혼하고 싶지 않다며 모두 거절했어.”“교통사고가 난후 나는 예진이에게 짐이 되기 싫어 왕래를 끊으려고 했어. 그러나 우리 엄마는 오히려 예진이에게 나를 돌봐달라고 부탁했어...예진이가 나를 돌봐주어서 다시 희망을 품게 됐어. 태윤아, 나랑 예진이는 오늘날까지 힘들게 걸어왔어.”“다리를 잃고 나서야 우리 엄마는 예진이를 받아들이셨어. 나와 예진이를 더 이상 반대하시지도 않아.”“한동안 예진이는 내가 청혼하기만 한다면 나와 결혼할 거라고 말했어. 나는 그때 예진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언제 완쾌할지도 모르고 예진이도 바쁘니 완쾌된 후 다시 보려고 했어.”“지금은 혼인신고를 한 후 결혼하고 싶은데 예진이가 허락하지 않아. 태윤아, 나랑 예진이는 항상 동기화되지 않고 의견 차이가 있는 같아.”전태윤은 그들의 인연이 아직 깊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노동명에게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이렇게 김새는 말을 할 수 없
“혼인신고 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 그냥 당신이 시간 내서 돌아오면 돼.”노동명은 먼저 혼인신고를 하자고 고집했다.합법적인 부부가 되면 하예진도 마음이 놓일 것이다.노동명도 임자가 생기면 그를 좋아하고 있는 여자들도 그에게서 멀리 떨어질 것이다.“동명 씨, 이일은 제가 시간 나면 다시 말해요. 그동안 다시 잘 생각해 봐요.”“결혼은 일생의 중대한 문제예요. 충동적으로 결정하면 안 돼요. 저는 또 한 번 이혼한 여자라 두 번째 결혼은 신중해야 해요.”노동명은 하예진이 자신과 혼인신고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바빠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 꿈 때문에 걱정되어서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다.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는 지난번 실패한 결혼이 그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현실에는 연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가 하예진에게 충분히 잘해주지 못했기에 그녀는 꿈만으로도 그가 결혼을 배신할까 봐 걱정되어 혼인신고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그래, 당신이 시간 나면 우리 다시 얘기해. 우빈이가 곧 겨울방학이야, 방학하면 우빈이 데리고 당신에게 갈게.”그러자 전태윤이 끼어들며 말했다.“어제 우빈이가 겨울방학 되면 이모와 함께 예진 리조트에서 가서 용정이랑 놀겠다고 말했어, 이모가 우빈에게 강성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우빈이가 강성이 춥다고 했어.”“우리 처형이 설전에 반드시 돌아온다고 꼬마는 안 간다고 했어, 집에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했어.”노동명이 말했다.“...우빈이가 나한테는 말한 적이 없어.”전태윤은 웃으면서 말했다.“너와 함께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너에게 말해 뭐해?”전태윤은 주우빈의 이모부이다. 주우빈의 감정 저울은 아직 그에게 기울어있었다. 노동명은 지금 주우빈에게 아저씨일 뿐 아직 계부가 아니었다.노동명은 말문이 막혔다.하예진은 전화로 말했다.“연말에 회사마다 바쁠 거예요. 동명 씨도 올 필요 없어요. 먼저 회사 일을 잘 처리해야만 연말을 잘 보낼 수 있어요.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