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씨, 이 꽃다발... 제 말은 윤하 씨가 이 꽃다발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소지훈은 용기를 내어 정윤하에게 물었다.정윤하는 닭 날개를 다 먹고 또 오징어구이를 먹으며 대답했다.“무슨 생각이요?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누가 키운 꽃인지 정말 아름답고 좋네요. 저 보고 꽃을 키우라고 하면 이 꽃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정윤하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꽃다발을 받고 보니 장미꽃 떡이 생각났어요. 갑자기 꽃 떡을 떠올리니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바로 주문해서 먹어야겠어요.”정윤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터넷으로 꽃 떡을 사려고 했다.“제가 사드릴게요. 지금 여행 중인 친구가 있는데 꽃 떡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요. 훨씬 맛있을 거예요.”정윤하가 말을 건넸다.“그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서 팔지 않는 한 산 것과 인터넷에서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현장에서 만든 것이 맛있다고 들어는 봤는데. 내년에 시간이 나면 저도 여행 가서 현장에서 구운 꽃 떡을 먹어봐야겠어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즉시 청주성으로 날아가서 꽃 떡을 만드는 것을 배워 정윤하에게 신선한 꽃 떡을 맛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단, 정윤하가 여행을 가지 않고도 신선한 꽃 떡을 먹을 수 있도록 반드시 청주성의 맛과 똑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적어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보다 맛있을 테니까.정윤하는 토픽 X 이라는 앱을 즐겨 사용하는 데 정말 싸다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에게 그 앱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소지훈이 역시 부자답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일반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고 그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었다.“정말 주문하셨어요?”정윤하는 소지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네. 주문해드렸으니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돼요.”그는 먼저 정윤하에게 인터넷으로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결국, 정윤하는 설탕 생강차가 담긴 잔을 들고 방안의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윤하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윤미연은 정윤하의 뒤를 따라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관심 있게 물었다.“아니요.”정윤하는 윤미연에게 들킬까 봐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생강차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너무 매워서 혀를 내둘렀다.“엄마, 집에 있는 생강을 다 넣었어요? 너무 매워요. 아! 너무 맵네요. 맛도 없고 마시고 싶지 않아요.”“네 생리통 주기가 이상해서 그래. 생강차 좀 마시고 추위를 좀 쫓아내.”정윤하는 그제야 사실대로 말했다.“엄마, 사실 제가 거짓말한 거에요. 저는 지금 생리 기간이 아녜요.”“거짓말이라고? 이 계집애! 건강 문제로 어떻게 엄마를 속일 수 있어? 엄마는 너에게 몸조리 좀 시키려고 한약까지 지어줘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어린 나이에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생리 주기가 이상하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몸조리를 잘해야 앞으로 배 속에 아기가 잘 들어서지. 여자들은 생리 주기를 잘 유의해야 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바로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니까.”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내가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으로 보여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일찍 돌아오면 엄마가 제가 게으르다고 혼낼까 봐, 아빠한테 제 월급을 깎으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거짓말로 엄마를 속인 거예요.”다행히 윤미연의 행동이 빠르지 않았다.만약 정말로 정윤하에게 이것저것 사주면서 몸조리를 시키고 심지어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야 아까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 윤미연은 아마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도 있었다.윤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네가 뻔뻔한 사람이 아니지. 부끄러움 탈 애가 아니야. 그럼 뭔데?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봐. 괜찮아. 참, 오늘 지훈 씨는 아직 안 왔지? 평소 이 시간이면 집에 도착했을 텐데.”정윤하는 입을 오므리다가 말을 꺼냈다.“엄마, 아저씨는 회사 대표라서 바빠. 저녁에 약속 잡혔을지도 몰라. 자꾸 걱
“지훈 씨가 회사 대표는 맞지만 신분이 단순하지 않을 거야. 분명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우리에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걸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거요.”정윤하가 소지훈의 편을 들어주었다.윤미연은 또 말을 꺼냈다.“잘 생각해 봐. 네가 지훈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싸울 줄 모르는 것처럼 하지 않았어? 네가 도와준 뒤로 은인이라고 떠들면서 너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무척 잘해줬잖아. 엄마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지훈 씨가 처음부터 너를 겨냥하고 너에게 접근한 것 같아. 작전을 세워서 너를 지훈 씨의 은인으로 만들면 당당하게 너에게 접근하면서 잘해줘도 네가 의심하지 않잖아. 어쩌면 네가 지훈 씨를 구해주던 날의 일도 지훈 씨가 꾸민 일일지도 몰라. 지금 관성의 환경이 얼마나 안전한데 건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거든. 관성의 경찰들이 그들을 나와서 행패 부리게 내버려둘 리가 있겠어?”정윤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엄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셔서 생각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할 게 있다고. 우리 집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저도 우리 도장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일 뿐인데. 저의 전 재산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저씨가 하루에 버는 돈보다도 적을 텐데. 저를 겨냥한 건 아닐 거예요. 게다가 아저씨를 도와준 그날 밤은 확실히 제가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맞아요. 서로 초면인데 이유 없이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하게요? 아저씨는 아주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남의 미움을 사서 복수 당할 수도 있죠. 누군가가 건달들을 시켜 아저씨를 해치려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정윤하는 소지훈이 그녀를 위해 이런 일들을 꾸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만약 정윤하의 집이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소지훈이 무언가 꾸며도 믿을 법도 하다.그러나 그녀는 겨우 200만 정도의 월급쟁이에 집에 재산이 많다고 해
정윤하의 얼굴은 노을처럼 빨개졌다.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아저씨가 도장으로 바비큐를 가져왔거든요. 엄마, 제가 먹자고 한 것이 아니라 저희 학생들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저씨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바비큐를 사다 준 거예요. 제가 바비큐를 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친구 사이가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서 저를 사랑한다고 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거 있죠. 참, 그리고 저에게 꽃다발도 선물해줬어요. 그 꽃을 받으니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길래 꽃 떡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어요.”윤미연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부릅뜨고 딸을 노려보았다.그 모습을 본 정윤하는 점점 작은 소리로 무고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아저씨가 저에게 장미꽃을 선물했길래 그렇게 많은 장미꽃 앞에서는 장미꽃 떡만 생각났다니까요. 무슨 심정이냐며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한 것뿐이에요.”윤미연은 정윤하의 이마를 쿡쿡 찌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왜 이렇게 멍청해? 종일 먹을 생각만 하다니. 네가 바비큐를 좋아하니까 지훈 씨가 그렇게 많은 바비큐를 포장해 간 거 아니야? 날씨가 춥다고 바비큐를 먹으면 소화가 잘될 줄 알았어? 내가 이따가 차 한 잔 끓여 줄게.”“엄마, 괜찮아요. 아저씨가 모두에게 보이차도 사줬어요. 보이차도 소화가 잘되는걸요. 학생들도 바비큐를 먹는 데 익숙해져서 소화도 잘될걸요.”윤미연은 그제야 시름 놓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보이차를 사줄 줄도 알고 역시 자상하구나.”윤미연은 말을 마친 후 정윤하를 노려보더니 한참 뒤에야 정윤하에게 물었다.“지훈 씨가 갑자기 고백하는 바람에 이렇게 일찍 집으로 달려온 거야?”정윤하는 덤벙대며 줄곧 소지훈을 형제로 대했는데 갑자기 고백을 받고 놀란 것도 당연한 일이다..“거절한 건 아니지?”윤미연은 긴장하며 물었다.“당분간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바로 거절하지는 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해. 너도 이제 스물네다섯 살이나 되었는데, 너를
선우민아는 전창빈에 관한 서류를 들고 진지하게 읽어 내려갔다.전창빈의 이력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위로 형제가 한 명 있었고 부모님은 이미 은퇴하셨으며 형은 이미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전창빈은 스스로 창업하여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이제는 사장이 되었지만 어릴 적부터 좋아한 요리를 여전히 좋아한다고 적혀 있었다.하지만 이 서류에는 전창빈이 전씨 가문의 여섯 번째 도련님이라는 사실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것은 비서가 그 정보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태윤이 미리 관성에서 손을 써서 선우민아 측에서는 기본적인 정보만 확인할 수 있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사실 전태윤은 선우민아가 전창빈의 신분을 알고 부담을 느끼며 동생을 채용하지 않게 될 것을 우려하고 일부러 전창빈의 출신을 숨겼다.하지만 그는 전창빈이 창업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았다. 그것은 전태윤이 선우민아가 혹여 전창빈이 너무 가난하다고 생각되어 무시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또한 모든 재벌가가 전씨 가문처럼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으니 선우민아의 집안 어른들이 전창빈을 무능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비록 전씨 할머니는 사람의 됨됨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고른 손자들의 며느릿감은 하나같이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들 모두 전씨 가문에 걸맞은 배우자라고 할 수 있었다.“어때요? 전창빈 씨 사람은 괜찮죠?”선우정아는 호기심에 가득 차 조바심이 났다.하지만 선우민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서류를 동생에게 건넸다.선우정아는 서류를 훑어본 뒤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자기 사업도 있고 가게도 여러 개 오픈했고 게다가 장사도 잘 되고 있네요. 그런 사람이 왜 우리 집안 셰프로 지원했을까요? 우리 집 급여가 높다곤 하지만 지금 전창빈 씨 수입보다는 적을 텐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선우민아가 입을 뗐다.“아마도 내가 입맛이 까다롭다고 해서 도전을 해보려고 온 것일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부모로서 더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선우정아의 아빠는 정말로 자식에 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늘 엄마만 자식을 챙겼었고, 덕분에 자식들도 엄마와의 정이 더 깊었다.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쓸데없는 소문 좀 그만 듣고 다녀. 응?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야.”“우리 같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 없어. 모든 게 다 받쳐주잖아.”그리고 그녀는 한 마디 덧붙였다.“우린 일단 스스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명문가라 큰 배경도 있어.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상한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절대 불행할 일은 없어.”선우정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선우민아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그런데 언니는 언제 남자 친구를 사귈 거예요? 나도 형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선우민아는 발끈하며 똑같이 장난스럽게 선우정아를 나무랐다.“어디 동생이 건방지게. 언니가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어? 게다가 주위에 능력 있는 남자들은 이미 결혼했고, 나머지는 눈에 차지도 않아. 그러니 네가 조급해할 필요 없어.”“난 운명을 믿어. 인연이 있다면 천 리 밖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고, 인연이 없으면 바로 눈앞에 있어도 몰라볼 거야.”“자, 이제 가서 할 일이나 해. 다섯 시에 같이 퇴근해서 저녁 먹자.”규정대로라면, 회사 퇴근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반이었다. 하지만 선우민아는 워낙 워커홀릭이라 손님 접대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모든 직원이 퇴근한 후에도 여전히 사무실에 남아 일을 했고, 보통 저녁 일곱 시쯤 되어야 회사에서 나왔다.그런 그녀가 오늘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겠다고 한 건,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찌 되었든 새로운 셰프의 최종 면접이니, 그녀가 직접 눈으로 보며 전창빈이라는 사람을 평가해야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창빈이 한 요리가 그녀의 입맛에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동생이 서둘러 퇴근하고 싶어 할 정도이니, 그
선우정아는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먹을 만한 거면 아주 훌륭하지 않아요? 눈 뜨고 온 A시를 둘러봐도 언니가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디저트를 만들어 낼 파티시에가 몇이나 되겠어요?”선우민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녀는 선우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정아야, 솔직히 말해 봐. 너 혹시 전창빈 씨에게 첫눈에 반한 거 아니야? 유독 전창빈 씨한테 관심을 보이네. 전창빈 씨가 우리 집 셰프가 될 수 있을지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만약 그렇다면, 너희 집 셰프로 고용하면 되잖아. 그러면 매일 전창빈 씨가 한 음식도 먹고, 자연스럽게 연애도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런데 전창빈 씨는 어디까지나 셰프일 뿐이야. 현실적으로 너랑 차이가 꽤 커. 과연 이모랑 이모부가 셰프를 사위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우리 부모님이라면, 분명 반대하실 거야.”선우씨 가문은 A시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가업도 탄탄했고, 사위에 대한 기준 역시 무척 높았다.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그녀 역시 같은 수준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 차이가 크지 않고, 지식적인 것은 물론 시야가 비슷해 함께 나눌 대화거리도 많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웃으며 대답했다.“언니, 난 그저 단순히 셰프로 존경하는 거예요. 전창빈 씨의 요리 실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나이도 어리고, 내가 본 최연소 셰프라고 과언이 아니에요.”“전창빈 씨는 셰프이긴 하지만, 다른 셰프들과는 다르게 품격이 있고, 우아한 기품이 흐른다고 해야 하나. 난 전창빈 씨가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입을 삐죽이더니 말을 덧붙였다.“우리 부모님은 눈이 너무 높아요. 이 세상에 자기 딸이랑 어울리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실걸요? 내가 진짜 공주도 아니고, 자기 딸은 외모도 출중하고 능력도 있으니, 왕자와 결혼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또 가끔은 그러세요. 우리나라에 왕자가 없다는 게 안
전태윤도 하예정의 말의 동의했다. 그도 곁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 없이 당사자끼리 직접 만나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이혁이도 알겠다고 했으니, 저녁에 올 거야.”“당신이 하는 일이라면 걱정 안 해요. 그럼, 마저 일 봐요. 나도 해야 할 일이 남았어요.”“그래, 너무 무리하지 마.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고, 가끔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게 좋을 거야.”하예정은 아직 임신 초기라 몸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알았어요. 내가 당신보다 우리 아기를 더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그 둘은 서로 몇 마디 더 주고받더니, 하예정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원림성 A시.전창빈이 혼자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사는 오늘 아침 일찍 그가 부탁한 식재료들을 제일 신선한 것들로 준비해 놓았다. 집사는 전창빈이 어떤 요리를 만들지 몰랐기에, 그저 식재료만 준비해주고 따로 도와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창빈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어차피 한 상을 거하게 차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선우민아를 위해 몇 가지 음식만 준비하는 것뿐이었으니, 그에게는 오후 반나절의 시간만 주어져도 충분했다.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그녀의 식사만 준비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선우민아는 선우씨 가문을 다스리는 대단한 인물이었고, 오늘 저녁은 가족들도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할 것이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은 오늘 전창빈이 최종 면접을 넘을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참석할 것이었다. 그러니 전창빈은 비록 메뉴는 적었지만, 양만큼은 가문 사람들이 전부 먹어도 될 만큼 넉넉하게 준비했다.하지만, 선우민아는 그저 새로운 셰프 면접을 위해 비서에게 저녁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루라고 지시하고, 집에서 식사하겠다고 했을 뿐. 셰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음식을 준비하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정확히 말하면, 셰프 면접이 아니라 지원자 면접이었
전태윤은 동생이 무엇을 걱정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할 일을 다 했고, 전이혁도 이미 약속에 승낙했다. 설령 전이혁이 뭔가 눈치를 챘다고 해도 약속을 번복할 용기는 없었을 것이었다. 전이혁이 아직 전태윤을 형으로 인정하는 이상, 약속을 어길 생각은 못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전태윤은 전화를 끊은 뒤, 곧장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어 미션 성공을 보고했다. 그러면서 하예정이 갑자기 전이혁을 초대한 이유를 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이혁 도련님의 신부가 될 사람이 직접 찾아왔어요. 할머니께서 도련님에게 정해준 사람이래요.”“...”전태윤은 잠시 놀라 말문이 막혔다.“뭐? 이혁이의 미래 신부가 직접 찾아왔다고? 근데 왜 당신을 찾아갔대? 이혁이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그는 당황스럽다가도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아영 씨가 그러는데, 도련님이 가끔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답장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도련님이 어디 사는지도 몰라서 나한테 물어보러 왔대요.”“내가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다들 어떤 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혹시 당신이 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그 여자가 날 찾아와서 이혼이라도 하라고 하는 줄 알았대요.”전태윤은 순간 발끈했다.“그럴 리가 있나. 우리가 부부로 지낸 게 얼마인데, 내가 당신을 향한 마음은 해와 달도 알 정도야. 그러니까 나 믿어. 난 평생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만약 누군가 찾아온다면, 그건 그쪽이 나한테 들이댄 거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야.”전태윤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자들이 단순히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의 신분과 지위를 탐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설령 전태윤이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해도 그가 전씨 가문의 후계자인 이상, 그런 여자들은 끊이지 않고 나타날 것이었다.무엇보다, 그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은 더욱 없을 것이었다. 하예정은 가끔 그를
“이혁아, 너 지금 관성에 있지?”“응. 돌아왔어.”전이혁은 멋쩍은 듯 설명했다.“형, 돌아오자마자 너무 바빠서 아직 집에 못 갔어. 할머니도 뵙지 못했고... 혹시 할머니가 나 보고 싶어 하셔? 이번 주말에 가서 할머니랑 놀아야 하겠네.”할머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늘 손자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손자들은 시간이 될 때마다 기꺼이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물론, 할머니한테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했었다.“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오늘 저녁 시간 괜찮지? 네 형수가 너랑 관성 호텔에서 저녁 먹자고 하더라. 우리가 사는 거니 시간 맞춰서 도착하면 돼.”전이혁은 순간 멍해졌다.“형수님이 저녁을?”‘형수님은 갑자기 왜 저녁을 먹자고 하는 거지?’그는 또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형수가 갑자기 저녁을 사겠다니, 뭔가 좋은 예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아마 이 일 때문에 오후 내내 불안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래. 네 형수가 너 저녁 사준대. 다섯 시 반에 출발해서 호텔로 와. 나랑 네 형수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혹시 네가 먼저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미리 주문해도 되고.”그들은 어차피 자기 가문의 호텔이니, 뭐든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알겠어. 그 시간에 출발하면 형이랑 비슷하게 호텔에 도착할 것 같아.”전이혁은 일단 먼저 대답했다. 큰형과 형수가 직접 초대한 자리인데 어찌 되었든 거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전이혁은 일단 대답은 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전태윤을 떠보았다.“형, 그런데... 형수님이 갑자기 왜 저녁을 먹자고 하는 거야? 특별한 날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좀 불안하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수님한테 실수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형, 혹시 이유를 알고 있다면 미리 말 좀 해줘,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식사 때 직접 형수님한테 사과드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언니처럼 칼같이 맺고 끊을 순 없어요. 감정 문제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하예정 역시 감정을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전태윤에게 철저히 속았다는 걸 알고 홧김에 이혼을 요구하긴 했지만, 사실 마음은 복잡하고 고통스러웠다.하지만 성소현은 달랐다. 그녀도 비록 마음이 아프긴 했었지만, 한번 결심하면 미련 없이 칼같이 잘라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고, 많은 여자가 생각만 했지,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성소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야 그렇지. 난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 바로 포기하고, 미련 없이 정리해 버리거든. 내가 결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남자 한 명 때문에 다른 사람이랑 다툴 필요가 있겠어? 세상에 좋은 남자는 차고 넘쳐. 그중에 한 명은 내 짝이 있겠지.”“넌 어서 네 남편한테 전화해서 전이혁 씨의 소식 좀 알아봐. 나도 전씨 가문 넷째 도련님의 연애사가 궁금하네.”그녀는 하예정, 심효진과 어울리면서 그녀들한테 영향을 받은 탓인지, 요즘 들어 부쩍 남의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심효진은 남의 가십거리에 대해 누구보다 빠르게 입수했고, 자신이 다 즐기고 나면 친구들에게 공유하는 편이었다.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걸었다.“응. 예정아.”핸드폰 너머로 전태윤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곁에서 듣고 있던 성소현은 전태윤이 아내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는 하예정에게 속삭였다.“예전에 태윤 씨는 나한테 늘 무뚝뚝하고, 무표정이었어. 모르는 사람인 양 말도 제대로 안 섞으려고 하더라.”“난 그때 태윤 씨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어. 태윤 씨의 다정함은 오직 너한테만 해당하는 거더라.”하예정도 미소를 지으며 똑같이 속삭였다.“언니도 알잖아요? 예씨 가문 다섯째 도련님의 다정함도 언니만 가질 수 있는 거.”예준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겉으론 누구에게나 친절해 보여도, 그것은
성소현은 눈이 동그래서 물었다.“전이혁? 전씨 가문 넷째 도련님?”성소현은 전씨 가문 아홉 도련님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건 셋째 도련님까지였고, 넷째부터는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직접 만나야 기억이 되살아날 정도로 인상이 희미했다.하예정은 사무실 안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맞아요. 도련님이 아영 씨한테 애매모호하게 하면서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있어요. 결국, 아영 씨가 먼저 답을 얻으러 찾아온 거예요.”“그 녀석도 문제예요. 좋아하면 고백해서 연애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건드리지 말든가...”하예정은 한숨을 내쉬며 전이혁에 대해 한마디 했다.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뛰어났고, 그들이 마음먹고 유혹하면 웬만한 여자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전씨 가문의 가십거리에 성소현의 눈은 반짝거렸다.“혹시 넷째 도련님이 일부러 밀당하는 거 아니야?”“...”하예정은 순간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완벽히 성공했네요. 보아하니 도아영 씨는 이미 도련님에게 빠진 것 같던데요.”성소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전씨 가문 남자들이 마음먹으면, 뿌리칠 여자가 몇이나 되겠어?”하예정도 성소현과 같은 생각이었다.그러다 성소현이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전씨 할머니가 넷째한테 정해준 사람이 도아영 씨야?”성소현은 하예정과 친척이자 절친한 친구였기에 전씨 가문의 손자며느리는 모두 전씨 할머니가 직접 정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아쉬운 듯이 농담하기도 했다. 전씨 할머니가 자신을 꽤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손자며느리를 고를 때는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성소현도 지금 충분히 행복했다. 그녀가 곧 결혼할 남편이 집안 역시 전씨 가문처럼 좋은 가풍을 가진 집안이기 때문이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 전이혁의 여자 문제를 모두 털어놓았다.“아마도요. 넷째 도련님은 늘 같은 꿈을 꾼다고 했어요. 그리고 꿈속에서 매일 어떤 여자와 얽힌다고 했었는데 그 여자는 할머니가 정해
도아영은 하예정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하 대표님, 제 명함이에요. 만약 전이혁 씨에 대한 소식을 알게 되면 여기 제 연락처로 전화 주세요. 전 일주일 정도 관성에 머물 예정이에요.”하예정은 명함을 받으며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아영 씨, 지금 어디 머물고 있어요?”“관성 호텔이요. 전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곳이더라고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관성 호텔은 관성에서 손꼽히는 호텔이죠. 거기에 머물면 보안도 철저하고, 안심하고 지낼 수 있을 거예요.”“아영 씨가 호텔에 머무는 동안 모든 비용은 제가 부담하죠. 잠시 후 제가 호텔에 연락해 놓을게요.”도아영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하 대표님, 정말 감사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제 숙박비 정도는 저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요.”도아영 역시 명문가 출신이었고, 그녀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것이 돈이었다.“물론 아영 씨가 돈이 부족할까 봐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먼 길까지 찾아왔는데, 제가 주인으로서 손님을 대접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혹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요. 시간이 되면 제가 아영 씨랑 같이 다닐 수 있어요.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리죠.”“만약 제가 바쁘면, 다른 분한테 부탁해서 아영 씨를 관성의 여러 맛집으로 안내하도록 할게요.”“관성에는 관광지가 별로 없어요. 있다고 해도 거의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곳이죠. 하지만 음식만큼은 장담할 수 있어요. 눈에 띄지 않는 오래된 가게들이지만, 그 어떤 곳보다 가장 정통적인 맛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하예정이 말한 맛집들은 관성의 젊은이들도 모르는 가게들이었다. 그녀는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 미식가로 전태윤과 결혼하기 전, 친구 심효진과 함께 관성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맛집을 탐방했었다. 그러기에 관성의 맛집 정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예정의 배려에 도아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사양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제 호텔 비용은 하 대표님께 부담드릴 수 없어요. 안 그러면 제가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