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범은 동생들을 데리고 하예진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예진 씨, 저는 이씨 가문의 맏이, 정일범이라고 합니다. 촌수로 따지면 제가 큰외삼촌이 된다고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그리고 여기는 둘째, 셋째 동생들이에요. 윤정아, 너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일 거야.”정일범은 자기 동생들을 한 명씩 소개해 줬다.하지만 하예진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 그를 큰외삼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이은화와 만났을 때도 제대로 예의를 갖춰 부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여태껏 단 한 번도 이경혜와 하예진의 어머니가 그녀의 조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또한 지난번에 이은화가 성씨 가문에 가서 이경혜를 만났을 때도 너무 티가 나게 불쾌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애가 생길 리 있나.지금 그들 사이에는 오직 원한만 남아있다. 이때, 이윤정이 더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어른을 보고도 인사 한마디 안 하다니. 이래서 가정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티 나는가 봅니다.”그녀의 말에 하예진이 되물었다.“무슨 근거로 그쪽이 어른이에요? 이모도 제 앞에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는데 당신이 뭐라고 제가 예의를 갖춰야 하죠? 더구나 진짜 이씨 가문의 사람도 아닌 주제에 왜 끼어들어요?”몇 마디의 독설로 단번에 이윤정의 입을 닫게 했다.하예진에게 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으나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다. “예진 씨, 이만 들어가서 이야기 나눕시다. 엄마가 아까부터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이윤미는 그런 이윤정을 못 본 척하더니 하예진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이씨 가문 저택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하게 안내했다.정일범과 같이 온 동생들은 그들을 곧바로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그러다가 두 사람이 어느새 멀어진 걸 확인한 뒤에야 이윤정은 불같이 화를 내며 정일범에게 말했다.“오빠, 언니는 날이 지날수록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그리고 저 하예진, 저 계집애는 고아에 이혼까지 당한 주
하여 하예진이 이 가주 자리를 탐내든 말든, 그들의 차례는 멀었다고 볼 수 있다.반드시 이씨 가문에 여자 씨가 말랐다고 해야만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윤미가 하예진 씨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던데? 마치 친자매처럼 말이야.”비록 두 사람 사이에 촌수가 많이 차이 나지만 이윤미는 마치 친자매처럼 그녀를 살갑게 대해줬다.하예진도 이윤미의 체면을 고려해 똑같이 친절하게 맞이했다. 이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있던 이윤정은 또다시 이윤미에 대한 질투심이 마구 피어올랐다. 지금 그녀가 누리고 있는 권력, 지위, 신분 모든 게 원래 자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윤미만 아니었다면 아마 이윤정이 이씨 가문에서 이은화 다음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지금처럼 밖에서 무시당하는 게 아닌, 모두가 그녀를 우러러보고 깍듯이 대해줬을 텐데.예전에 친했던 친구들도 그녀의 신분 변화로 인해 점점 연락이 뜸해지면서 그제야 그 사람들도 전부 자신의 신분적 지위를 노리고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이은화의 양딸이 된 후, 아무리 이씨 성으로 바뀌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굴러들어 온 가짜 딸로 보였다.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괜찮은 가문의 딸들이었기에 이윤정이 수준도 안 맞고 지위도 다르다고 생각해 그녀와 거리를 점점 두게 되었다.또한 그녀를 그리워하던 2세 조상도 이제는 이윤미한테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솔직히 외모는 이윤정이 더욱 뛰어났지만 이 사회는 아주 냉정했다.“윤미는 예전부터 연기력이 뛰어나 우리도 자주 속았잖아. 그만 들어가자. 엄마 말대로 일찍부터 손님을 맞이했고 이제 도착했으니 우리도 들어가야지. 우리가 자리에 없다고 엄마 앞에서 우리에 대해 함부로 말할지 누가 알아?”“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네. 이따 설득하러 가야겠다.”정일범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어차피 요즘 다 몸을 사려야 하니 더 이상 실수하면 안 돼. 아니면 엄마가 우리를 바로 집에서 쫓아낼 거야.”정일군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 말에 정일호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들은 사람이 없겠지?”문득 자기 집인데도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정일호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점점 이씨 가문의 규칙들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다른 가문의 후계자라면 보통 다 남자인데 이씨 가문만 여자였다.또한 이씨 가문에서 남자보다 여자의 지위가 더 높았다. 아무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주 자리는 꿈도 못 꾸는 신세였다.“이미 우리랑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마 듣지는 못했을 거야. 근데 오늘 이렇게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건데 아무리 지금 밖에 묶어둔 여자들이 그리워도 혹시나 새언니들한테 들키지 않게 조심해. 아무리 엄마가 오빠들 편을 든다고 해도 새언니네 집에서 찾아오면 혼나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러다가 혹시나 이혼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정일범이 답했다.“그 여자들은 그저 심심풀이로 데리고 노는 거지, 미쳤다고 집까지 데리고 오겠어? 그리고 하나같이 집안 형편이나 신분을 봐도 우리 가문이랑 수준이 안 맞아.”그가 지금 데리고 있는 내연녀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매달 몇십만 원씩 용돈을 줘도 엄청 고마워했다.또한 정일범의 아내는 명문가 딸은 아니었지만 작은 사업을 하는 집안이라 어느 정도 그에게 도움 주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정일범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진작에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돈을 벌려고 했다. 이씨 그룹에서 자신은 그래도 꽤 높은 자리에 있고 거기에 처가의 도움을 빌려 밖에서 공동 사업을 하게 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그 돈은 전부 정일범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하지만 처가 쪽에서 그의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들을 아직 손에 쥐고 있어서 만약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 증거들을 이은화한테 넘겨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일범의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까지
정일군이 다시 재촉했다.네 사람은 이윤미가 혹시나 이은화 앞에서 자기 험담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이윤미가 하예진을 데리고 오는 모습에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리게 되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하예진의 얼굴이 낯익은 것 같았다.이은화는 이미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주위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두 이씨 가문에서는 꽤 높은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예진아, 어서 와.”이은화는 하예진을 반갑게 맞이한 뒤 집사에게 당부했다.“예진이한테 의자 하나만 갖다줘.”이때, 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집사가 서둘러 작은 의자 하나를 갖고 오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이은화에게 말했다.“저를 초대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면 이렇게 가식 떨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멀리서 온 것도 알고 특별히 하루 호텔까지 와서 저를 여기에 데려왔으면서 제가 앉을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았네요. 오늘 이 대표님의 접대 방식에 다시 한번 놀라고 갑니다.”말을 마친 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만 가자!”“예진아.”이은화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이 중에 너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있는지 어디 한번 봐봐. 너한테는 모두 어르신들인데 저 분들더러 자리를 양보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이 자리에 앉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네 체면은 세워준 거야.”순간 모든 사람은 분위기에 얼어버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사실 눈앞에 저 여자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만 듣고도 그녀가 가문의 후계자란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촌수로 따지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하예진한테는 어른뻘이지만 그녀는 전임 가주의 후계자이고 또 이씨 가문의 규칙대로라면 하예진 이야말로 진짜 대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촌수가 높다고 해도 하예진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이은화도 사실 이걸 이용해서 하예진의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의도는 당연히 하예진이 돌아옴으로써 이윤미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다.그녀의 말에
“예진 씨.”이윤미는 하예진한테 다가가 정중히 사과했다.“저희 엄마가 연세가 있어서 노망났나 봅니다. 방금 말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이때 하예진이 답했다.“이건 이 대표님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왕 이 대표님께서 저를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가 가는 게 맞습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자기 경호원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이은화는 자기 친딸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하예진까지 자신을 무시하니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예전에 관성에 가서 이경혜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은화에게 만약 하예진과 이윤미가 신분 자리를 놓고 싸워도 상관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또한 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그게 걸맞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하지만 이은화는 이 부탁을 들어주기 싫었다. 이미 하예진이 자기 큰조카 딸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오늘 특별히 이런 자리에 초대해 어르신들의 기개를 빌려 그녀의 기를 죽이려 했다.하지만 하예진은 그들을 진짜 가족 어르신들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이씨 가문에서 특별히 자신을 초대해서 왔는데 이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이건 분명 손님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자신을 달가워하지도 않는 자리에 굳이 남아 있을 필요가 있을까?하예진은 두말없이 바로 자리를 떴다.오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은화가 사람까지 보내서 초대한 자리였다.“예진아.”하예진이 집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이은화가 그녀를 부르면서 이윤미와 함께 다가왔다.그리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뒤 차분하게 말했다.“예진아, 네 외할머니는 내 친언니야. 나도 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그러면 내가 네 이모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지금 전체 이씨 가문을 관리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내 아랫사람이 맞아.”“또한 이 집안에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네 어르신일거야... 아마 언니가 죽지 않았다면 네가 언니 뒤를 이어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겠지. 우리 이씨 가문에서 후계자의 지
“오늘 밤, 예진 씨가 우리 이씨 가문의 귀한 손님일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예진 씨가 누구인지, 우리 이씨 가문에서 어떤 신분인지를 알려드리기 위함이에요. 오늘부로 여러분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후 가족들에게 앞으로 우연히 예진이를 만나게 되더라도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해야 한다고 꼭 전하세요.”모두가 이은화를 보고 있었다.이은화는 내심 친딸이 제멋대로 결정한다고 불만스러웠지만, 이씨 가문은 조만간 이윤미가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하예진을 추켜세워 가문 후계자의 신분을 주는 것도 이윤미에게 큰 시련이 될 것이다.이윤정은 이윤미와 싸울 자본이 없지만, 하예진에게는 있었다.이은화는 딸 이윤미가 하예진의 지위를 추켜세워주고 하예진과 공평하게 경쟁하기를 원한다면 이윤미의 의사를 존중해 주려고 했다.만약 이 경쟁에서 이윤미가 이겨서 당당하게 이씨 가문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되면 다른 사람의 더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만약 이윤미가 지게 된다면... 이씨 가문의 대표 자리가 다시 이은숙 후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하늘의 뜻일 것이다.물론 이은화도 자신이 빼앗은 모든 것이 다시 이은숙 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이윤미가 능력이 부족해 하예진에게 졌어도 이은화에게는 아들이 셋이나 있기 때문에 이씨 가문의 남자들도 그룹을 계승할 수 있도록 이씨 가문의 규칙을 개정하면 그뿐이다. 혹은 공개적으로 가문의 사람 중에서 능력이 뛰어난 젊은 여성을 선택하고 배양해서 하예진과 계속 싸우는 방법도 있다.이은화가 살아 있는 한 이은숙의 후손들은 쉽게 주인 자리에 앉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반복적으로 깊이 생각한 뒤, 결국 이윤미가 결정한 사항을 반대하지 않았다.“윤미가 한 말이 바로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아까 제가 노망났나 봐요.”이은화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은 하예진에 대한 태도가 더 공손해졌다.하예진은 속으로 비웃었다.이은화
“그럼 내가 앞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꼭 말해. 내가 실력이 막강한 것은 아니지만 인맥이 넓어 너에게 도움은 될 거야. 이번에 사업차 온 거지?”하예진이 대답했다.“그럼요. 아니면 이모할머니 생각에는 제가 무슨 일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세요?”그녀는 이은화에게 되물었다.이은화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네가 여기로 와서 이씨 성을 바꾸러 온 줄 알았어.”“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제 몸에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저는 이씨 가문의 후손인걸요. 제가 이씨 성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전임 가주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어요.”하예진은 마치 두 번째 이경혜처럼 늘 이은화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다.이경혜의 성격과 능력은 이은숙을 무척 닮았다. 하예진은 이은숙의 핏줄을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이윤미와 겨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다.“가주님. 연회를 시작하셔도 됩니다.”이씨 가문의 집사 진숙녀가 때마침 다가와서 이은화에게 공손히 말했다.그러자 이은화가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 그럼 모두들 자리에 앉으세요!”이은화는 몸을 일으키며 하예진에게 말을 건넸다.“예진아, 가자. 우리도 자리에 앉자. 네 경호원은 우리 집사와 함께 밖에 나가서 기다리시라고 해. 어쨌든 우리 가문의 연회이니 우리 가족밖에 참석할 수 있거든. 내 경호원들도 밖에 있는걸.”하예진이 말하기도 전에 이은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네 경호원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내쫓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네 경호원은 너와 함께 여기로 왔기 때문에 갈 때도 너와 함께 떠나게 될 거야.”하예진은 경호원들에게 진숙녀를 따라 나가라고 지시했다.이은화는 하예진과 함께 그녀들의 자리로 향했다.두 사람은 함께 앞에서 걸어갔고 이윤미는 말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이윤미는 이은화가 하예진을 연회에 초대한 이유가 그녀에게 위세를 떨치거나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닐 거라고 여겼다.연회에는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
이은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자식들에게 말했다.“고 대표님께서 오셨어. 나와 함께 마중하러 나가자.”전호영이 오는 것에 대해 이은화는 놀라지 않았다.하예진의 뒤에는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긴 했으나 강성에서 전씨 가문의 세력은 고씨 가문에 미치지 못했기에 이은화는 고씨 가문을 더 중히 여겼다.이은화가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고현이 온 것을 보면 아마도 고현이 하예진의 후원자라는 것을 이은화에게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하예진의 강성 후원자가 바로 고씨 가문이라는 것을 암시해준 것과 다름없다.고현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윤정은 매우 긴장해 하면서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평범한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이윤정은 오늘 밤 하예진만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지금 위층으로 올라가서 드레스로 갈아입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다행히 그녀의 일상 옷차림의 스타일도 참신하고 트렌디하여 단정하고 고급스러움이 돋보였다.게다가 이윤정은 젊고 예쁘며 몸매도 좋았다.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현장의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자신감이 넘친 이윤정은 이윤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일어나 이은화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하면 고현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하예진은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이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니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짝퉁 딸 이윤정이 이윤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의 눈은 반짝거렸다.이윤정이 고현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하예진도 전해 들은 적 있었다.고현은 이윤미에게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이윤정을 무시했다. 이는 이윤정을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고현이 나중에 여성의 신분을 밝히면 이윤정은 아마 입이 떡 벌어질 것이고 가슴도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하예진이 마음속으로 비방했다.이은화가 자식들과 며느리를
하예진이 말을 건넸다.“제 생각에는 사모님 세 분이 꾸민 음모일 가능성이 커요. 어떻게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그냥 우리의 추측일 뿐이에요. 대체 누가 진범인지 우리가 알 필요 없는걸요. 아마 그 진범의 실체를 드러내놓지도 않을걸요.”이은화는 기필코 이 일이 알려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미처 진실을 가릴 겨를이 없었다.나중에 이은화가 정신을 차리게 되면 바로 처리 할 것이다.현장을 본 몇몇 친척들도 빨리 도망가긴 했지만 사실 도망갈 수 없다. 이은화가 조사하기만 하면 누가 위층으로 올라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내일 이은화가 가장 먼저 그녀를 찾아갈 것이라고 여겼다.그녀에게 외부에 소문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할 것이고 누가 꾸민 짓인지도 직접 조사할 것이다.나중에 조윤 일행이 이혼을 당했는지, 집에서 쫓겨났는지 눈여겨보면 바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윤정 씨는 조만간 이씨 가문을 떠나야 할 것 같네요.”고현이 한마디 했다.고현은 이윤정을 매우 싫어했다.이윤정이 그녀를 연모하고 매달리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이윤정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싫어했다.이윤정이 그녀를 사랑하든 말든 상관없었다.“정군호도 좋은 결과는 없을 거예요. 요즘 일어난 일들에 관해 이 대표님이 어찌 용서할 수 있겠어요? 설령 정군호 씨도 계략에 걸렸을지라도 이 대표님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조만간 이씨 가문의 상황도 많이 변할 것 같네요.”펑!갑자기 큰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고현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고현과 하예진은 고개를 돌렸다.고현의 경호원들의 차를 뒤따르던 검은 차가 대형 화물차에 의해 추돌당한 것이었다!화물차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그 검은 차는 경호원들의 차에 부딪혀 반대편 도로로 넘어지면서 네 바퀴가 하늘을 향했다.“차 세워!”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운전기사는 급히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세웠다.모든 차량이 길가에 차를 멈추었다.그 화물차도 멈췄다. 화물차 운전기사는 큰 문제는
“윤정 씨가 올려간 요리에 문제가 생겼는데 누가 꾸몄을까요? 윤정 씨인가요? 아니면 이모할아버지인가요? 누가 손을 쓰든 간에 그 계략은 참으로 악랄하고 지독하네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한참을 생각해보더니 스스로를 비방하며 계속해서 말했다.“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저는 독하지도 악랄하지도 않네요.”만약 가주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이런 수단을 써야 한다면 하예진은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차라리 이은화의 자리를 이윤미에게 양보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현은 깊이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그 두 사람은 아닐 거예요. 이 대표님도 아닐 거고, 우리는 더더욱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연회 기간 내내 이은화의 시선 안에서 움직였어요. 이씨 가문의 친척들은 그럴 용기가 더더욱 없을 거고요. 윤미 씨의 담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윤미 씨에 대해 알고 있는 바로는 그녀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윤정 씨를 상대하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어쨌든 정군호 씨는 윤미 씨의 친아버지인걸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저도 윤미 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윤미 씨와 접촉한 적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만약 윤미 씨가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쓰고 싶었으면 진작에 썼을 것이라고 믿어요. 오늘 밤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잖아요.”“맞아요. 이씨 가문의 몇몇 친척들도 그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뛰쳐나갔지만, 이모할머니께서 분노에 휩싸이는 바람에 그 사람들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분들도 이모할머니께서 자신을 기억하고 보복하는 게 두려워서 뛰쳐나갔을 거예요.”하예진은 그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했다.고현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 대표님의 성격은 모질어요. 집안의 추악함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 그 몇몇 사람들이 똑똑히 보지 못했다면 살길이 있을 텐데. 만약 누군지 똑똑히 보았다면 아마도 목숨이 위
이씨 가문의 집사 진숙녀는 위층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모르는 눈치였다.이은화가 자리에 없기에 진숙녀는 이은화 대신 손님을 문밖까지 배웅하고 있었다.진숙녀는 하예진의 말을 이은화에게 전하겠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하예진은 고현의 차에 탔고 그녀의 경호원들은 고현의 경호원들은 몇 대의 차 안에 비집어 들어가 앉았고 하예진의 차는 이씨 가문의 경호원들을 운전하게 하여 그녀를 뒤따라 가게 했다.지금 이 시각, 전호영도 하예진이 너무 부러웠지만 질투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 이씨 가문 저택을 떠나려고 했다.방금 위층에서 본 장면도 전호영이 제아무리 뻔뻔하고 견식이 넓다고 해도 그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그들이 위층으로 올라갈 때 그 두 사람은 침대에서 여전히 바쁘게 운동하고 있었다.차가 이씨 가문의 저택을 떠난 후, 고현은 비로소 궁금해하면서 하예진에게 물었다.“언니와 호영 씨가 위층으로 올라가서 대체 무엇을 보셨어요? 이 대표님 남편분에게 또 무슨 사고라고 생긴 거예요?”하예진이 대답했다.“네, 사고 났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큰 사고요. 오늘 밤에 이씨 가문으로 올 때도 조용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그토록 자극적인 장면을 볼 줄은 몰랐어요.”그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하예진의 본능적인 반응은 눈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하예진은 지금 생각해보니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정군호는 이은화의 남편으로서 얼마 전에 바람을 피우다가 이은화에게 잡혀 폭행까지 당해 오늘의 연회에도 감히 참석하지 못했다.겨우 며칠 지나지 않아 났는데 정군호가 또 바람을 피웠다.그것도 바람피우는 상대가 이윤정이었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옛날 집사의 딸이다. 그녀와 이윤미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은화 부부는 진실도 모른 채 줄곧 이윤정을 친딸로 여기며 키웠다.정군호가 아무리 파렴치해도 이윤정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 둘은 침대에서 함께 운동했다.하예진은 두 사람이
조윤이 넘어진 모습을 본 정일범은 다가가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조윤은 정일범의 손을 덥석 잡더니 놀라면서 말했다.“여보, 얼른 가서 아버님과 윤정이를 보세요. 두 사람... 두 사람이... 차마 말을 못 꺼내겠어요. 얼른 가서 직접 보세요.”그 말을 들은 정일범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몸을 돌려 위층으로 달려갔다.정일범 형제와 이윤미도 뒤를 따라 올라갔다.결국, 이은화도 올라갔다.원래 떠나려던 하예진 일행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위층을 바라보고 있었다.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조윤을 저렇게 놀라게 했단 말인가!“형수님, 아버님과 윤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김여희와 박수아 조윤을 둘러싸고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조윤의 얼굴이 붉어지며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하다가 급기야 김여희 일행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다.순간 김여희와 박수아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그 좋은 연극을 그녀들은 놓칠 수 없었다.곧 위층에서 이씨 가문 사람들의 고함과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순간, 이씨 가문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예진 일행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가 올라가 볼게요. 혹시 도울 일이라도 있는지.”전호영은 뻔뻔스럽게 도와주러 간다는 핑계로 이씨 가문의 몇몇 사람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하예진도 이씨 가문의 일원으로서 위층으로 올라가 그녀의 관심을 표현하고자 전호영의 뒤를 따라갔다.5분도 채 안 되어 전호영이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그와 함께 올라갔던 가문의 사람들도 함께 당황한 표정으로 내려왔다.전호영은 고현을 끌고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예진 누나, 우리 얼른 가요.”하예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더니 곧장 집 밖으로 나가면서 대답했다.“가요. 빨리 가요. 못 보겠네요.”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고 어떤 사람은 친절하게 모두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다.“모두 집으로 돌아가세요. 얼른요.”이 피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모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고현과 전호영이 하예진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다.그들은 하예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하예진의 뒤에 서 있는 몇몇 대가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그리고 하예진의 친동생은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었기에 하예진에게 투자해 줄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하예진이 용기와 안목이 훌륭하기만 하면 자금이 부족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이은화에게 눌렸던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점점 그들만의 꿍꿍이를 꾸미기 시작했다.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뭐든지 관심이 있어요. 고 대표님, 내일 혹시 시간 되시는지요? 제가 한번 찾아뵙겠습니다.”고현이 말을 이었다.“오세요. 저야 언제든지 편하죠.”전호영은 곁에서 질투하며 말했다.“고현 씨가 우리 누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니 제가 질투 나네요. 제가 갈 때마다 고현 씨는 너무 바쁘다고 저와 말할 겨를도 없다고 하더니, 누나가 찾아간다고 하니 언제든지 편하다고 말하는 거예요?”고현은 곁눈질하며 대답했다.“저와 예진 씨가 마음이 잘 맞아서 그래요.”이윤미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저도 예진 씨랑 잘 맞는 것 같은데, 고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윤미 씨가 오신다면 제가 시간이 없어도 짜내야죠. 다른 사람이라면 저는 그럴 시간이 없을걸요.”이씨 가문에서 고현은 이윤미의 체면만 세워주고 싶었다.고현은 줄곧 이윤미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윤미와 고빈을 맺어주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고빈은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둘러댔다.사실 그는 이윤미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감정이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설레는 느낌을 받아야 행복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오랜 시간 끝에 사랑이 키워진다고들 하지만 누구나 다 성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이윤미가 웃으면서 말했다.“제 손에도 프로젝트가 있는데 저는 지금 엄청 좋게 보고 있어요
“네 엄마는 연세가 많으신데 여전히 사업에 많은 정력을 쏟아붓고 있지. 윤미한테 돈을 들여 후계자로 배양하고 계시지만 나한테만 돈을 아끼셔. 아빠도 지금 연세가 있지만 내 건강은 여전히 좋아. 하지만 그래도 나도 돈이 필요한걸. 아내로서 해야 할 책임도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고 하셔.”정군호는 술을 마셔서 그런지, 이윤정과 두 사람만 있어서 그런지 이은화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이윤정은 정군호의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표정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자리에 앉아 정군호와 함께 술 한잔했다.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전히 정군호를 동정했다.아래층 연회는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정군호는 데릴사위라는 신분으로 수많은 남자가 범할법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위층에 숨어서 사람을 만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아래층의 모든 사람은 여전히 연회에서 식사하고 있었지만 편하게 먹지 못했다.주로 귀한 손님이 세 명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그들도 이은화가 왜 가족 연회를 벌이려는지 알 수 없었기에 현장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예진아, 그럼 무슨 사업에 투자할 거야?”이은화가 관심 있게 물었다.그러나 마음속으로 하예진의 투자 사업에 걸림돌을 던져 하예진의 사업이 싹트지 못하게 처음부터 막으려 했다.하예진이 강성에서 자리를 잡게 하면 안 되니까... 그녀가 강성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가문의 친척들도 하예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은화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하예진을 이용해 이은화와 싸우게 하거나 혹은 진심으로 하예진을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직은 모르지만 일단 지켜봐야죠. 요즘은 사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잘 살피고 결정해야 해요.”하예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은화가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맞아. 요즘 장사가 너무 어려워. 우리 이씨 그룹도 갈수록 장사가 안되고 있거든. 우리뿐만 아니라 고씨 그룹도 아마 업적이 조금 떨어졌을걸.”이은화가 말하며 고현 쳐다보았다
이윤정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은화가 입을 열었고 고현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정군호에게 위층으로 음식을 가져다 드시지 않는다면 불효녀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강성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가족들이 이윤미보다 이윤정을 더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이은화가 부부가 짝퉁 딸인 이윤정을 좋아하고 친딸 이윤미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만약 이때 이윤정이 효도하지 않는다면 체면이 완전히 구겨질 것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이라는 배경으로 부잣집으로 시집가려고 했다.그녀는 할 수 없이 이은화의 지시대로 정군호에게 음식과 술을 챙겨 직접 위층으로 가져갔다.이윤정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조윤은 동서들과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하예진은 조윤 일행이 서로 눈빛을 마주치는 장면을 보더니 그녀들이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이윤정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분석해보더니 아마 자신에게 덤터기를 씌우지는 않을 것으로 여겼다.하예진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윤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리고 가끔 고현과 몇 마디 나누곤 했다.고현은 외부인 앞에서 말도 별로 없이 점잖게 음식을 먹었다. 하예진은 그녀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일종의 즐거움으로 여겼다.전씨 할머니께서 선택하신 손자며느리들 전부 최고인 것으로 보면 어르신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셨다.전호영은 자주 고현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자상하게 배려해주었다.이윤정은 음식과 술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부모님의 방문 앞에 이르렀고 손을 내어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그녀는 다시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아빠, 문 열어요. 저예요. 제가 음식 좀 챙겨왔어요. 아빠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으셔서 엄마가 음식 좀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가족 중에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을 초대해서 모두 지금 식사하고 계세요.”방안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이윤정이가 방문을 한참을 두드려서야 방문이 열렸다.정군호는
이은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자식들에게 말했다.“고 대표님께서 오셨어. 나와 함께 마중하러 나가자.”전호영이 오는 것에 대해 이은화는 놀라지 않았다.하예진의 뒤에는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긴 했으나 강성에서 전씨 가문의 세력은 고씨 가문에 미치지 못했기에 이은화는 고씨 가문을 더 중히 여겼다.이은화가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고현이 온 것을 보면 아마도 고현이 하예진의 후원자라는 것을 이은화에게 알려주기 위함일 것이다.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하예진의 강성 후원자가 바로 고씨 가문이라는 것을 암시해준 것과 다름없다.고현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윤정은 매우 긴장해 하면서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평범한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이윤정은 오늘 밤 하예진만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지금 위층으로 올라가서 드레스로 갈아입는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다행히 그녀의 일상 옷차림의 스타일도 참신하고 트렌디하여 단정하고 고급스러움이 돋보였다.게다가 이윤정은 젊고 예쁘며 몸매도 좋았다.예쁜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현장의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었다.자신감이 넘친 이윤정은 이윤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일어나 이은화의 곁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하면 고현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하예진은 따라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이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니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짝퉁 딸 이윤정이 이윤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의 눈은 반짝거렸다.이윤정이 고현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하예진도 전해 들은 적 있었다.고현은 이윤미에게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이윤정을 무시했다. 이는 이윤정을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고현이 나중에 여성의 신분을 밝히면 이윤정은 아마 입이 떡 벌어질 것이고 가슴도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하예진이 마음속으로 비방했다.이은화가 자식들과 며느리를
“그럼 내가 앞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나에게 꼭 말해. 내가 실력이 막강한 것은 아니지만 인맥이 넓어 너에게 도움은 될 거야. 이번에 사업차 온 거지?”하예진이 대답했다.“그럼요. 아니면 이모할머니 생각에는 제가 무슨 일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하세요?”그녀는 이은화에게 되물었다.이은화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네가 여기로 와서 이씨 성을 바꾸러 온 줄 알았어.”“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제 몸에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한 저는 이씨 가문의 후손인걸요. 제가 이씨 성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전임 가주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어요.”하예진은 마치 두 번째 이경혜처럼 늘 이은화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다.이경혜의 성격과 능력은 이은숙을 무척 닮았다. 하예진은 이은숙의 핏줄을 이어받은 후손으로서 이윤미와 겨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다.“가주님. 연회를 시작하셔도 됩니다.”이씨 가문의 집사 진숙녀가 때마침 다가와서 이은화에게 공손히 말했다.그러자 이은화가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자, 그럼 모두들 자리에 앉으세요!”이은화는 몸을 일으키며 하예진에게 말을 건넸다.“예진아, 가자. 우리도 자리에 앉자. 네 경호원은 우리 집사와 함께 밖에 나가서 기다리시라고 해. 어쨌든 우리 가문의 연회이니 우리 가족밖에 참석할 수 있거든. 내 경호원들도 밖에 있는걸.”하예진이 말하기도 전에 이은화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네 경호원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내쫓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네 경호원은 너와 함께 여기로 왔기 때문에 갈 때도 너와 함께 떠나게 될 거야.”하예진은 경호원들에게 진숙녀를 따라 나가라고 지시했다.이은화는 하예진과 함께 그녀들의 자리로 향했다.두 사람은 함께 앞에서 걸어갔고 이윤미는 말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이윤미는 이은화가 하예진을 연회에 초대한 이유가 그녀에게 위세를 떨치거나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닐 거라고 여겼다.연회에는 수많은 눈이 지켜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