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느 집안의 여자가 도련님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어르신이 물었다.“예정이는 알고 있어요? 예정이가 돌아오면 연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겠어요.”전 씨 할머니도 젊었을 때 연적이 많았다.전태윤은 그의 할아버지를 닮은 것이다.“도씨 집안의 딸이에요. 연성인가 하는 곳에서 사모님을 찾아간 적 있었어요.사모님은 그 여자와 맞설 준비까지 다 마쳤는데 그녀가 갑자기 전날 밤에 관성을 떠났다는 소식을 받았죠.”“도 씨네 딸이? 도 씨 그룹의 외동딸 도차연일거예요. 도차연이 태윤에게 반할 만도 해요. 도차연은 능력도 있고 게다가 외동딸이라서 이변이 없다면 도 씨 그룹을 맡게 될 거예요.”“도 씨네 아가씨 성격이 오만하니 당연히 도차연 자신의 조건으로는 태윤 같은 남자만이 자기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할 거예요.”“다만 도 대표는 똑똑한 사리가 밝은 분이라 자신의 딸이 다른 사람의 결혼에 끼어들어 제삼자가 되는 것을 반드시 막을 겁니다.”박 씨 아저씨는 말을 하지 못했다.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랐다.박집사는 단지 아까 말한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몰랐다.“도 씨네 아가씨가 여기로 왔었다고요? 문 앞까지 찾아오다니 간이 정말 부었네요. 태윤이가 도차연을 내쫓지 않던가요?”“여기 별장의 보안 수준이 매우 높아서 그녀가 들어오지 못할 텐데. 누가 나가서 도차연을 데리고 들어온 거예요?”박 씨 아저씨는 황급히 대답했다.“저희가 도차연을 데리고 들어온 게 아니라 마음씨 고운 188호 집주인이 데리고 들오셨더라고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태윤 부부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으니 어르신께서 상관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전 씨 할머니는 이미 결혼 적령기의 손주들에게 짝을 지어 주었고 언제 가정을 이룰지는 관여하지 않고 결과만 보았다.나머지 몇 명의 손자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급해 하지 않으셨다.여섯째 도련님 이하의 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홉째 도련님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께
박 씨 아저씨는 경험이 많은 분이었다.예정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다른 사람의 계략에 빠졌다는 것을 눈치챘다.그와 동시에 박 씨 아저씨의 얼굴도 이내 진지해졌다.전씨 가문의 사모님에게 수를 쓸 생각을 하다니 정말 담도 큰 사람이다.더군다나 사모님은 도련님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으니 그 사람은 도련님의 코앞에서 사모님에게 손을 댄 셈이다.도련님의 안색이 무척 어두워 질 수밖에 없었다.전태윤을 안고 바삐 들어오는 것을 본 어르신도 깜짝 놀랐다.“태윤아, 예정이한테 무슨 일 있었던거야?”“할머니, 이따가 말씀드릴게요.”할머니가 자기 집에 계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놀라워하지 않은 눈빛이었다.어르신은 지금 매우 한가하셔서 종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기에 그들 형제는 할머니의 자상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전태윤은 어르신과 말하면서 예정이를 안고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어르신은 계단 입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박 씨 아저씨는 어르신 곁으로 다가가서 소리 낮춰 말했다.“어르신, 사모님께서 다른 사람의 계략에 빠진 것 같아요. 아까 제가 사모님의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혼미해 진 것을 보았거든요.”할머니는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다시 물었다.“계략에 놀아났다고요? 예정이가 태윤을 따라 연회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태윤의 코앞에서 예정이한테 손을 댄 거예요?”“제가 보기에는 사모님께서 다른 사람의 계략에 놀아난 것 같아요. 대체 어찌 된 일인지는 도련님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지금 강일구에게로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게요.”박 씨 아저씨는 말을 마치고 바로 강일구 등 사람에게 물어보러 나갔다.박 씨 아저씨는 금방 들어왔다.“뭐래요?”어르신이 물었다.어르신은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정이에게 수를 써서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는지 몹시 궁금했다.“일구가 말하기를 연회에서 김씨 가문 도련님을 만났대요. 김씨 가문의 도련님은 사모님과 인사를 나누고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도련님
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박 집사 통해 일구네한테 물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알았어. 너희 부부 운이 참 좋아.”할머니는 웃으시며 전태윤에게 물었다.“이 할미가 보양식으로 국 끓여줄까?”전태윤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날씨가 더워요. 저 코피 흘리기 싫어요 할머니.”“김진우 만났어?”전태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김씨 집안에서 저랑 예정이가 감정이 안정되고 김진우도 체념한 걸 보고 지사에서 전근시켜 다시 김씨 그룹으로 돌아오게 했어요. 현재는 김 대표님 비서로 일하면서 종일 대표님을 따라다니고 있어요. 회장님이 직접 이끌고 가르치는 중이에요.”김씨 그룹은 앞으로 김진우에게 넘겨줄 것이다.김씨 집안의 방계 친척들은 넘볼 생각을 말아야 한다.김진우는 심미란의 아들이자 심효진의 사촌 동생이다. 심효진이 소씨 일가에 시집간 이후로 김씨 집안의 방계 친척들은 아예 마음을 접고 감히 더는 김씨 그룹을 넘보지 못했다.소정남이라는 사촌 매형이 있는 한 누가 감히 김진우와 김씨 그룹을 다툴 수 있을까? 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 차라리 얌전히 있으면 제 밥그릇은 챙길 수 있다.김진우가 오너 자리에 오른 후 여씨 그룹의 큰따님처럼 반대자를 제거하게 되면 방계 친척들은 득보다 실이 많은 꼴이 된다.“김 대표에겐 아들 한 명, 딸 한 명뿐이야. 아들이 실력 좋고 회사를 이어받을 능력이 되는데 뭣 하러 조카들을 육성하겠어? 김진우 그 아이는 원래 괜찮은 아이인데 예정이를 좋아하는 바람에 너한테 제압을 당했을 뿐이야.”전태윤이 변명을 둘러댔다.“할머니, 저는 김진우 제압한 적 없어요. 걔네 부모님이 지사로 보낸 거라고요.”할머니는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전태윤은 확실히 김진우를 제압한 적이 없다. 그 대신 김씨 그룹을 제압했었다. 김종헌 부부는 하예정의 남편이 전태윤인 걸 알았고 또한 제 아들이 하예정을 짝사랑하는 걸 알게 되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매정하게 아들을 가장 외딴 지사로 보내버렸다.아들의 심성을 단련하는 동시에 하예정과
전태윤은 할머니 손에서 빨간 종이를 건네받았다.“고를 거 없어요. 제일 가까운 날로 하면 돼요.”그는 이미 하예정에게 줄 예물을 다 준비했는데 집안 어르신들이 자꾸 더 보태다 보니 여태껏 그녀에게 정식으로 못 주고 있다.전태윤은 결국 할머니가 골라주신 몇몇 날짜를 다 본 후 제일 가까운 날로 정했다.예물을 주면 결혼식도 슬슬 준비해야 한다.그는 하예정에게 가장 성대한, 관성 전체를 떠들썩하게 할, 소정남과 심효진의 결혼식을 뛰어넘는 그런 웨딩을 선사해주고 싶었다.하예정이 그의 아내라는 걸 모든 이에게 알리고 싶었고 전태윤은 이젠 임자 있는 몸이니 다른 여자들은 더 이상 들러붙지 말라고 전하고 싶었다. 그는 밖에서 자신에게 대시하는 여자들이 썩 반갑지 않았다.“예정이랑 요즘 잘 지내?”할머니는 무심한 척 질문을 건넸다.“네, 저희 아주 잘 지내요. 예정이가 그냥 좀 바빠서 저를 자꾸 소홀히 하네요. 제가 하루가 멀다 하게 예정의 앞에서 알짱대지 않으면 아마 남편이 있다는 사실도 새까맣게 잊을걸요.”“할머니는 몰라요. 예정이는 출장 가면 진짜 몇 날 며칠을 전화도 안 하고 문자도 없어요. 아예 일에만 푹 빠져 산다니까요. 예전의 저보다 더 일 중독이에요.”“예정이가 출장만 가면 할머니 손자는 외롭게 독수공방해야 해요. 긴 밤, 잠도 안 오고 하루가 다 지나도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 없으니 입맛도 안 난다고요.”전태윤은 말을 하면 할수록 저 자신이 가여웠다.할머니는 피식 웃으시며 그가 전에 했던 말로 비꼬았다.“아이고, 예전에 누가 아내 따위 필요 없다고 했었나. 그 말 한 사람 지금쯤 껌딱지처럼 아내한테 달라붙고 싶어 하는데, 꼴이 참 우습지 그래.”전태윤이 말했다.“할머니... 언제적 얘기를 아직도 하시는 거예요. 저 그만 놀려요.”“이 할미는 놀릴 수 있을 때까지 놀릴 거다, 하하. 네가 전에 했던 말과 상반되게 나오는 게 난 제일 웃겨.”전태윤은 속절없이 할머니를 쳐다봤다.이 세상에 감히 그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할머니
“너 그 밖에 있는 여자들...”“할머니, 저 여자 없어요. 안이나 밖이나 저한테는 오직 예정이 하나뿐이에요. 밖에 여자들이 아무리 젊고 예뻐도 제 눈엔 오직 예정이라고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나를 믿어. 내가 직접 키워온 손자이니 매정하고 정의가 없는 인간은 아닐 거야. 물론 예정이도 믿지. 그 아이가 너를 사랑하니 한사코 너를 잘 지키고 밖에 있는 라이벌들을 상대하는 거란다.”“만약 너를 다툴 마음도 없고 신경 쓰고 지켜줄 마음도 없다면 아예 단념한 걸 거야.”전태윤은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이란 걸 알고 있다.하예정은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단연코 아니다. 무릇 전태윤이 바람을 피울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그녀는 단호하게 연을 끊을 것이다. 전태윤이 어쩔 새도 없이 그녀가 먼저 제삼자에게 자리를 내주며 번거로운 쟁탈을 피할 것이다.하예정은 남에게 뺏기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사랑도 아닌데 그녀가 왜 굳이 남겨둘까? 몸뚱어리를 붙잡고 있다고 마음마저 잡힐까? 차라리 깔끔하게 끝내는 게 상책이다. 더 험상궂게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할머니, 저는 도차연 씨한테 진짜 아무 느낌 없어요. 제대로 마주 본 적도 없다고요. 그 여자가 먼저 들러붙은 거고 예정이도 기어코 혼자 나서겠다고 한 거예요. 그래도 저는 항상 예정의 뒤에 있었어요. 도차연 씨가 감히 손만 대면 평생 후회하게 해줄 거라고요.”전태윤은 결국 할머니께 도차연에 관한 일을 해명했다.그가 돌아오기 전에 할머니는 일찌감치 박 집사를 통해 그 사건을 전해 듣게 되었을 것이다.도차연의 일방적인 사랑은 전태윤에게 있어서 불의의 재난과도 같았다.할머니가 웃으며 답했다.“도차연 그 계집애가 감히 우리 예정이한테 손을 대면 네가 나설 새도 없이 아마 예정이가 먼저 죽도록 패버릴 거다. 걔 이젠 주먹을 휘두른 지가 꽤 돼서 마침 몸이 근질근질할 거야.”전태윤도 웃었다.그의 아내는 정말 할머니가 말씀하신 그대로니까.“너희
할머니는 썩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뭘 신경 써? 걔는 이미 초조해하고 있어. 나 여기 오기 전부터 호영의 전화 받고 다 도와줬어. 배추를 찾아줬으면 됐지 잘근잘근 썰어서 너희들한테 먹여주기까지 해야 해?”전태윤은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할머니는 늘 배추를 언급하며 이 손자들을 돼지에 비유하고 있다.이렇게 잘생긴 돼지가 또 있을까?할머니는 왜 항상 그들을 돼지 취급하는 걸까?할머니는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졸려. 가서 잘래. 너도 일찍 자.”“네, 주무세요 할머니.”어르신은 쉬시려고 위층에 올라가다가 대뜸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물었다.“동명이 퇴원 후에도 예진이가 가서 챙겨줘야 해? 그 녀석도 꽉 막힌 녀석이야. 분명 죽을 만큼 사랑하면서 왜 또 일부러 내려놓은 척하는 건데?”“그 자식 계속 아닌 척 시치미 떼면 제가 아예 처형한테 남자 소개해줄 거예요. 확 안달 나게 해야겠어요!”전태윤은 재빨리 친구를 구해줬다. 안 그러면 할머니가 잠시 여유가 생겨 노동명한테 신경이 쏠릴 테니까.“동명이 금방 퇴원해서 집에 갔어요. 걔 챙겨줄 가족들이 많을 테니 처형이 노씨 일가로 가서 챙겨줄 필요는 없을 거예요.”“동명이는 처형이 힘들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사실 걔가 제일 힘들어요. 처형은 이제 막 호텔을 경영하느라 사업 때문에 바쁠 테고 동명이도 처형이 힘들까 봐 마음 쓰는 거예요. 개는 아무리 힘들어도 당분간은 쭉 참을걸요.”만약 오랜 시간 재활 치료를 받았는데 전혀 진전이 없다면 노동명도 분명 또 화를 낼 것이다. 그때 가서 하예진이 계속 그를 자극하면 된다.“우빈의 아빠도 사고 났어요. 그 인간 현 와이프한테 칼로 수차례 찔려서 지금도 응급실에 누워있어요. 고비를 넘길지 모르겠네요. 처형도 가끔 우빈이 데리고 병원에 가봐야 해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예진이는 정말 의리를 다했어. 우빈이 위해서 단 한 번도 애 앞에서 전남편 험담하지 않았잖아.”할머니는 하예진을 매우 아끼신다. 만약 노동명 그 녀석이 하예진을 아끼
하예정은 이제 막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참인데 마침 휴대폰이 진동했고 화면을 보니 ‘라이벌 1호 도차연’이라는 문구가 떴다.도차연이 제 발로 찾아와 그녀의 연락처까지 요구했었다. 하예정도 라이벌과 맞설 준비를 다 하고 전혀 기죽지 않으며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도차연은 그 당시 가짜 번호일까 봐 하예정의 앞에서 전화까지 걸었다.하예정은 도차연의 번호를 저장할 때 나중에 더 많은 라이벌이 나타날 걸 고려하여 일부러 그녀를 ‘1호’라고 메모했다.라이벌 번호표가 과연 몇 번까지 이어질지 하예정은 내심 궁금했다.그녀는 도차연의 전화를 받았다.“예정 씨.”“네, 차연 씨. 저랑 함께 커피 마시려고요?”하예정이 먼저 그녀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도차연은 침을 꼴깍 삼킨 후 웃으며 답했다.“걱정 마세요. 예정 씨한테 빚진 커피는 나중에 꼭 시간 내서 사드릴 겁니다.”“네, 그럼 기다릴게요.”“금방 깨나셨나 보네요 예정 씨?”하예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담담하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바로 하시죠.”“별일은 아니고 예정 씨한테 해명하려고요. 저 실은 어젯밤에 급한 일이 생겨 집에 돌아가는 바람에 약속 어겼어요.”하예정이 알겠다며 답했다.두 사람은 라이벌 관계라 서로 다투지 않으면 진짜 딱히 할 말이 없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도차연이 먼저 정적을 깨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예정 씨, 저 태윤 씨 좋아해요. 첫눈에 반했거든요.”“지금 이건 태윤 씨한테 고백하는 건가요? 그럼 태윤 씨 찾아가서 말해야죠.”도차연은 감히 전태윤을 찾아가 고백할 엄두가 안 났다. 적어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두 가문의 회사가 협력을 마치거든, 더 이상 아빠가 내민 조건에 구속받지 않거든, 그때 가서 마음껏 전태윤에게 대시할 것이다.다른 여자에게 한눈팔지 않는 남자는 없다.전태윤은 하예정과 결혼한 지도 1년이 됐으니 어쩌면 진작 하예정에게 질렸을지 모른다.두 사람은 결혼식도 안 올렸고 하예정도 줄곧 임신하지 않았으니 많은 사람들이 사석에서 그
하예정은 차갑게 웃었다.“어쩌죠? 저도 태윤 씨를 딴 여자랑 공유하기 싫거든요. 차연 씨, 제가 자리 비켜주길 원하는 거라면 태윤 씨한테 가서 말하세요. 태윤 씨가 나가라고 하면 바로 전씨 일가 사모님 자리를 넘겨드릴게요.”도차연이 말했다.“예정 씨는 태윤 씨한테 안 어울려요...”“태윤 씨랑 결혼한 사람도 저고, 태윤 씨 합법적인 아내도 저예요.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우리 부부가 판단할 일이지 차연 씨 같은 외부인들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작정하고 내연녀가 되어 누군가의 결혼생활에 끼어들겠다는 것은 도덕과 윤리를 다 버리고 파렴치함의 끝을 달리겠다는 뜻이다.“차연 씨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랑 태윤 씨가 어울리냐 마냐 판단하는 거죠? 차연 씨랑 태윤 씨가 무슨 사이인데요? 주제 파악 좀 해줄래요? 태윤 씨 할머니, 태윤 씨 부모님, 그 아무도 나랑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차연 씨가 뭐라고 그딴 말을 내뱉는 거냐고요?”“...”도차연은 하예정의 반박에 할 말을 잃고 전화를 꺼버렸다.하예정은 통화가 끊긴 후 욕설을 퍼부었다.“집안도 좋겠다, 여러모로 참 괜찮은데 머리가 이상하단 말이지.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왜 내연녀가 되겠다는 건데?”도차연과 비교하니 하예정은 사촌 언니 성소현이야말로 진정한 명문가의 딸이고 완벽한 조건에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란 걸 느꼈다.“내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내연녀는 서현주야. 물론 지금은 감방에서 허우적대고 있지.”하예정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 대체 그런 여자들은 왜 내연녀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떳떳하게 살면 얼마나 좋아?기어코 남 보이기 부끄러운 짓을 하고 평생 내연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뿐더러 본인들이 낳은 아이가 내연녀의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에게 차별대우를 받게 될 텐데.하예정은 뻐근한 허리를 문지르며 가서 세안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가 늦게 일어나다 보니 할머니는 어느덧 식사를 마치고 1층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계셨다.발걸음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