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이 있는 상황에서 예준하는 관성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성소현이 장연준의 여자친구가 돼 있을까 봐서 말이다.“집안 어른들 얼굴도 봬야죠.”성소현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했다.“소현 씨, 나랑 같이 가고 싶은 생각 있어?”예준하가 물었다.그는 성소현과 함께 돌아가 집안 어른들을 뵙고 싶었다.어른들은 관성에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성소현의 사진도 보았으나 실물은 보지 못했다.성소현은 무신경한 성격임에도 예준하의 말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우리 아직 정식으로 만나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을 뵙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냐? 우리 엄마... 엄마만 괜찮다면 난 언제든 소현 씨랑 부모님 뵈러 갈 수 있어.”예준하의 눈동자에서 실망이 보였지만 그는 이내 투지를 불태우면서 부드럽게 웃었다.“그날이 너무 늦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꼭 아주머니께서 날 흡족하게 여기게 할 거야.”노력해도 성소현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못한다면 부모님과 형수님에게 나서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이때 직원이 꽃다발을 안고 안으로 들어왔다.예준하는 종업원이 들어오자 일어나서 꽃다발을 받았다.그러고는 성소현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봄바람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현 씨, 이건 내가 미리 주문한 거야. 조금 전에 소현 씨 데리러 소현 씨 집에 갔을 때는 쑥스러워서 못 챙겨 갔어.”성소현은 웃는 얼굴로 꽃다발을 받았다.“나 매일 준하 씨에게서 꽃을 받네.”예준하의 꽃 공세는 맹렬했다.그는 매일 몇 송이씩 선물로 줬다.그리고 꽃 외에도 여러 가지 선물을 줬다. 성소현의 환심을 사려고 말이다.성소현은 사랑받는 기분을, 소중히 여겨지는 기분을 느꼈다.달콤하고 행복하고 취할 것만 같았다.“소현 씨 마음에 든다면, 소현 씨가 즐겁다면 난 좋아.”“마음에 들어. 그리고 기뻐. 매일 준하 씨처럼 멋진 남자가 꽃을 선물로 주니까 매일 기분 좋아.”예준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
이경혜는 웃으며 말했다.“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네. 진짜 희소식이야.”“소씨 집안사람들 다 기뻐했어요. 소 이사님은 긴장해서 효진 씨를 보물처럼 대하더라니까요.”이경혜는 웃었다.“그건 당연하지. 정남이는 처음 결혼한 거잖니? 효진이 배 속의 아이는 소씨 집안의 핏줄이고. 그러니까 소씨 집안사람들 다 중요시할 거야.”첫 번째 아이니 기대가 크고 그만큼 중요했다.“예정이는 어때?”이경혜는 예정이가 아직도 임신하지 않은 걸 떠올렸다. 심효진은 허니문 때 임신했으니 하예정이 낙심할까 봐 걱정됐다.성소현은 하예정의 반응을 떠올린 뒤 말했다.“정상이던데요? 엄마, 예정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예정이 이제 많이 내려놨어요. 순리에 따를 생각이라 조급한 건 아녜요. 그리고 우리도 워낙 바쁘니 아이 일은 신경 쓸 여력이 없을걸요.”예전에 하예정은 그녀와 심효진의 서점만 관리했다 보니 한가해서 임신에 관한 일을 자꾸만 생각했다.집에 한가히 있으면 괜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좋았다. 주의력도 분산시킬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그리고 여자가 결혼한 뒤에 돈을 벌 수 있다면 시댁에 가서도 허리를 꼿꼿이 펼 수 있었다.하예진의 결혼을 통해 성소현도 깨닫는 바가 있었다.남자가 돈을 얼마나 벌든 여자는 경제적으로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는 남자의 말은 믿을 바가 못 된다. 한동안 먹여 살리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남자에게 돈 달라고 손을 내민다면 처음에는 흔쾌히 주다가 불평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눈을 흘기면서 욕을 할 수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주지 않으려 할 수도 있었다.물론 모든 남자가 주형인 같은 건 아니다.이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았다.“너 대부분 매일 예정이랑 같이 있으니까 혹시라도 예정이가 고민이 있는 것 같으면 네가 옆에서 잘 설득해.”“엄마,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정이는 내 동생인걸요. 전 예정이가 잘 되길 누구보다도 바라요. 전 예
“엄마, 저 지금 우리 호텔 303호에 있어요.”성소현은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지금 호텔에 있다고 얘기해야 했다.이경혜는 잠깐 침묵한 뒤 물었다.“너 예준하 씨랑 같이 밥 먹는 거니?”“네.”성소현은 솔직히 인정했다.집안사람들은 그녀와 예준하가 만나는 걸 반대했지만 그녀는 가족 말에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예준하와 있으면 즐거웠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즐거움이었다.예준하와 있으면 즐거운데 왜 예준하를 만나면 안 된단 말인가?“저희 막 도착해서 아직 밥은 먹지 않았어요. 저 준하 씨랑 같이 가서 엄마랑 장연준 씨랑 같이 식사할까요?”이경혜는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엄마가 너 찾으러 갈게.”말을 마친 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성소현은 휴대전화를 든 채로 예준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가 장연준 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데 우리도 같이 갔으면 해. 잠시 뒤에 우리 엄마 올 테니까 일단 주문하지 말자.”그녀 집안에서 운영하는 호텔이었기에 어떤 음식이 잘 나가는지 성소현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예준하는 웃었다.“좋아.”그는 이경혜가 그를 마뜩지 않아 한다는 걸 알았다.장연준은 이경혜가 예준하를 상대하기 위해 찾은 연적이었다. 비록 장씨 집안은 줄곧 겸손했지만 거긴 장소민의 친정이었다. 장연준과 전태윤이 사촌지간이고 장씨 집안과 성씨 집안은 수준이 비슷했다.장연준은 이경혜가 고른 사람이고, 장연준과 성소현이 아는 사이가 되도록 이경혜가 직접 나선 걸 보면 장연준이 아주 우수한 남자라는 건 분명했다.성소현은 예준하가 흔쾌히 동의하자 말을 하려다 말았다.“소현 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예준하가 다정하게 말했다.“우리 엄마가 저러는 걸 보면 아마 나랑 장연준 씨를 이어주려는 것 같아. 난 처음엔 몰랐어. 엄마가 자꾸만 내 앞에서 장연준 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계속 말하더라고. 그리고 조금 전에야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깨달았어.”예준하는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알아. 장연준 씨를 처음 봤을 때, 또 아
성소현은 그에게 마음이 있었다.성소현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그와 사귀는 것에 아직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사람의 애정을 받는, 사랑을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다.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장연준 씨가 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우리 엄마가 쓸데없이 그러는 거고 나도 협조할 생각이 없으니 엄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 내가 누굴 사랑할지는 내가 정하는 거니까.”장연준은 전태윤의 사촌 동생이었다. 비록 그녀와 장연준은 별다른 접점이 없지만 그녀가 전태윤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는 건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비록 지금은 전태윤을 향한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장연준이 그걸 과연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엄마가 그러는 건 헛수고였다. 그리고 그녀도 협조할 생각이 없었고 장연준 또한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성소현의 말에 예준하는 마음을 놓았다.그는 자신이 일찍 성소현을 마음에 두고 일부러 그녀에게 접근한 것,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여 그녀와 감정을 키운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지금 움직였다면 장연준을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이경혜가 곧 도착했다.“아주머니.”예준하는 이경하가 들어오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이경혜는 예전에 그가 예의 바르고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매번 만날 때마다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예준하의 미소를 보면 교활할 여우 같았고 웃는 얼굴도 여우 같았다.이경혜는 그가 점잖고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예준성의 눈에 들어 중책을 맡으며 혼자 관성에 있는 예진 그룹의 지사를 관리하며 회사 경영 범위를 확대했다. 본사는 끊임없이 지사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그것은 예준하의 능력이 좋다는 걸 의미했다.물론 예준하가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그가 사람들의 생각처럼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비즈니스를 하면서 이 업계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건 그만큼 무자비하다는 걸 의미했다.“그래요.”이경혜는 지금 비록 예준하를 보고
“전 소현 씨가 이기적이고 난폭하고 성질머리가 고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누구나 화를 내기는 마련이죠. 소현 씨가 정말로 아주머니가 말한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전 성격이 좋거든요. 이해심도 많고요. 소현 씨 같은 성격과 아주 잘 어울리죠.”이경혜는 예준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예준하는 확실히 성격이 좋은 편이고 이해심도 많았다.“아주머니, 제가 관성 사람이 아닌 것 외에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또 있으신가요? 제가 고치겠습니다.”이경혜가 대놓고 말했으니 예준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예준하 씨는 다 좋아요. 아주 훌륭해요. 예준하 씨가 내 딸을 좋아하기 전까지는 나도 예준하 씨를 좋게 봤어요. 그리고 내가 그런 얘기도 했었죠. 나한테는 딸이 한 명뿐이라 멀리 시집 보내고 싶지 않다고요. 예준하 씨는 우리 딸과 이제 막 만나기 시작했을 테니 정을 떼는 게 쉬울 거예요. 서로에게 그렇게 큰 상처가 되지 않을 거예요.”“전 장기간 관성에서 일했고 관성에서 지냅니다. 친구들도 거의 다 관성에 있어요. 새로 산 집은 아주머니 집과 아주 가까워요. 아주머니, 전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관성이 아닌 것뿐, 관성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현 씨를 위해서라면 제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관성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이경혜는 침묵했다.성소현이 고집스럽게 전태윤을 짝사랑한 것도 사실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면을 닮아서였다.이경혜는 가끔가다 어떤 일에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설득해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 한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예준하가 아무리 많은 것을 해도, 약속을 해도, 그녀는 절대 예준하와 딸의 결혼식을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띠링.예준하는 새 메시지를 받았다.휴대전화를 꺼내 카톡을 확인해 봤는데 성소현이 보낸 메시지였다. 엄마가 난처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자기 얼굴을 봐서라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예준하의 눈동자에는 애정이 가득했다.그는 이경혜를 이미 장모님으로 여기고 있었
누군가를 마음에 들면 단점조차 장점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누군가를 혐오하면 장점조차 단점으로 보인다.“성소현 씨, 안녕하세요.”장연준은 웃는 얼굴로 성소현에게 인사를 건넸다.성소현의 뒤를 쳐다보았지만 이경혜는 없었다.이경혜가 밥을 사준다고 한 것이라 이경혜도 있을 줄 알았다.이경혜는 너무 예의를 차렸다. 그는 그저 길을 가다가 이경혜가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걸 보고 차를 세우고 왜 그러느냐고 묻고 가던 길에 집까지 바래다줬을 뿐이다. 그에게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그러나 이경혜는 그가 생명의 은인이라도 되는 듯 과도하게 열정적으로 굴고 감격해했다. 그래서 장연준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이경혜는 여러 차례 그에게 연락해서 보답으로 밥을 사주겠다고 했고, 장연준은 모두 거절했다.그동안 이경혜가 몇 번이나 초대한 탓에 장연준은 끝내 어쩔 수 없이 승낙하여 오늘 밥 한 끼 같이 먹으려고 했다. 이경혜가 보답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더는 그를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엄마는 룸 안에서 장연준 씨를 기다리고 계세요.”성소현의 설명에 장연준은 안도했다.성소현과 단둘이 밥을 먹는 것만 아니면 괜찮았다.비록 장연준은 성소현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성소현과 단둘이 밥 먹을 생각은 없었다. 기자들에게 사진이라도 찍혔다가는 루머로 실검에 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의 신분은 관성에서 많이 민감했다.전씨 가문 사모님의 친정 조카, 전태윤의 사촌 동생이 구설에 오른다면 실검에 오르기가 쉬웠다.장씨 가문 사람들은 조용히 지내는 걸 원했고 장연준은 장씨 일가에서 첫 번째로 실검에 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장연준 씨, 가시죠.”성소현이 장연준을 호텔 안으로 안내했다.장연준은 정중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와 함께 호텔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곧 이경혜가 있는 룸에 도착했고 성소현은 문을 열어 장연준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안으로 들어가자 이경혜와 예준하가 보였다. 장연준은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아주머니, 예준하
장연준은 성소현을 힐끗 본 뒤 웃으며 말했다.“성소현 씨가 끓인 국은 분명 맛있을 거예요. 다만 전 국을 좋아하지 않아서요.”성소현이 그의 사촌 형을 짝사랑할 때 도시락을 많이 만들었다는 걸 장연준도 알고 있었다.이경혜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소현이가 끓인 국을 못 마셔봐서 그러는 거예요. 한 번 마셔보면 좋아하게 될 거예요. 약속할게요. 다음에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밥 먹어요.”장연준은 웃으며 말했다.“시간 있으면 꼭 갈게요.”이경혜는 그제야 만족스러워했다.그녀는 성소현더러 음식을 시키게 했다.성소현은 직원에게 메뉴판을 가져다 달라고 한 뒤 장연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장연준 씨, 주문하세요.”장연준은 웃으며 말했다.“여긴 성소현 씨 집안의 호텔이니까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성소현 씨가 잘 알고 있겠죠. 그러니 성소현 씨가 주문하시죠. 전 국 외에 다른 것들은 다 괜찮아요.”사실 그는 국을 좋아했다. 관성 사람들이라면 다들 국을 좋아했고 어떤 사람들은 국이 없으면 밥도 먹지 못했다.장연준은 조금 전에 국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경혜가 정말로 성소현에게 국을 끓이라고 시킬지도 모르니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그러면 아무거나 시킬게요.”성소현은 잘 나가는 음식을 몇 개 시켰고 국도 하나 시켰다.식사할 때 이경혜는 장연준에게 열정적이었고 계속해 그에게 이것저것 먹으라고 했다. 반대로 장연준 곁에 있는 예준하에게는 그런 소리 한 번 한 적 없어서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예준하는 성격이 좋고 참을성도 있었다. 그는 이경혜가 그를 포기시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는 걸 알았다.힘들게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가 알아서 물러난다는 건 불가능했다.그리고 장연준은 성소현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사 장연준이 정말로 성소현을 좋아하게 되더라도, 예준하는 장연준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성소현이 그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불편한 식사 자리였다.식후 장연준은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떠나
그의 차가 사라진 뒤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이경혜가 호텔에서 나왔다.“아주머니.”예준하가 그녀를 불렀다.이경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꾸한 뒤 성소현에게 말했다.“소현아, 엄마랑 같이 야시장 갔다 오자. 엄마 야시장 안 간지 너무 오래됐어.”성소현은 예준하를 바라보았고 예준하는 눈치 빠르게 말했다.“아주머니, 소현 씨, 전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성소현은 미안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준하 씨, 우리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마.”예준하는 안심하라는 듯 그녀에게 눈빛을 보냈다.그는 아주 너그러웠고 장모가 아무리 난처하게 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이경혜는 자신의 차로 걸어갔고 성소현은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따라갔다.두 모녀는 같은 차에 앉았고 성소현의 차는 호텔 주차장에 남겨졌다.차에 앉은 뒤 이경혜는 성소현의 이마를 쿡 찌르며 말했다.“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지. 예준하 씨랑 거리를 두라고. 예준하 씨는 아주 교활한 여우야. 그에게 당해도 넌 눈치채지 못할 거야. 그 남자가 널 팔아치우려고 하면 넌 아마 그를 위해 돈까지 셀 거야. 너랑 그 남자는 어울리지 않아.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얼른 정리해.”성소현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엄마, 저 지금까지 좋아한 남자는 딱 두 명이에요.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절 응원해 준 적이 없어요. 예전에 전태윤 씨를 좋아할 때는 전태윤 씨랑 저랑 안 어울린다고 했죠. 전시 집안이랑 우리 성씨 집안은 원수 사이라서 안 된다고, 제가 전태윤 씨를 짝사랑하는 건 스스로 고생을 찾아서 하는 거라고요.”“전태윤 씨가 예정이랑 결혼해서 전 마음을 접었어요. 그리고 어렵게 예준하 씨랑 잘 지내게 되었어요. 예준하 씨랑 있으면 전 마음이 가벼워요. 예준하 씨가 교활하든 교활하지 않든 저한테만 진심이면 돼요. 엄마가 계속 반대하면 예준하 씨 고백을 받아들여서 예준하 씨 여자 친구가 될 거예요. 공개적으로 연애할 거라고요!”성소현은 정말로 억울했다.그녀는 자신의 안목이 높다고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