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초는 쑥쓰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전이진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한껏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네 지팡이 한쪽 끝을 내게 건네줘. 내가 앞에서 길을 터줄 테니까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없을 거야.”피로연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앞을 볼 수 없는 여운초는 다른 사람과 부딪치기 쉬웠다.“도련님...”“날 좀 이진이라고 불러!”여운초는 뜸을 들이다가 입을 뗐다.“네가 길을 알려주면 내가 알아서 갈게.”“셋 센다. 지팡이를 내게 건네지 않으면, 너를 안고 갈 거야!”“...”전이진의 심기를 더 건드리지 않기 위해 여운초는 지팡이 한쪽 끝을 그에게 건넸다.전이진의 손은 지팡이 가운데로 미끄러져 어느새 여운초와의 거리를 좁혔다.“날 따라와.”전이진은 나지막이 말했다.그는 여운초를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30분 뒤에도 안 나오면 쳐들어갈 거야.”“너는 창피하지도 않아?”“너도 창피해 하지 않는데 내가 왜 창피하겠어. 나 얼굴 꽤 두꺼워.”여운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로 들어간 여운초는 세수하며 정신을 다잡았다.그녀는 자신이 전이진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설사 전씨 할머니께서 그녀를 눈여겨 보셨어도 전이진은 훨씬 더 좋은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여운초가 앞을 볼수 있었다면 전이진을 탐냈을 것이다.그녀가 화장실에서 심신을 안정시키는 동안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화장실 입구에 서있는 저 남자가 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시지? 근데 왜 저기에 서 계시지?”“아마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시겠지.”“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다 모이시니 정말 멋졌어.”“이사님의 들러리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멋있던데.”여운초는 낯선 여자들이 호들갑 떠는 것을 다 들었다.전이진은 정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여운초는 한숨을 쉬며 다시 손을 씻고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방금까지 떠들
“내가 셋 세는 동안에도 결정을 못 내리면 그냥 널 안고 갈 거야.”전이진은 여운초가 타협을 거부하자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하나, 둘...”전이진은 진짜로 셋을 세기 시작했다.여운초는 그가 정말 자신을 기절시킬까 무서웠다. 그가 둘을 셀 때, 여운초는 서둘러 입을 뗐다.“그럼 미안하지만 날 집까지 데려다줘. 근데 너 술 마셨으니까 운전은 하지 마.”전이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너를 집에 바래다 줄려고 일부러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어.”전이진은 가장 무책임한 들러리였다.다른 들러리들은 소정남의 흙장미가 되어서라도 술을 막아줬는데, 전이진만 얍삽하게 술을 피했다.여운초도 더 이상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뜨겁고 두툼한 손이 여운초의 손을 붙잡았다.여운초는 바로 그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호텔은 사람이 많아 지팡이로 사람을 찌를 수 있어. 차라리 이렇게 손을 잡는 게 나아.”전이진은 손을 뿌리칠 틈도 주지 않고 지팡이를 뺏고는 여운초를 끌고 갔다.여운초는 강압적인 전이진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그녀는 무표정으로 전이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이진은 드디어 멈춰 섰다.여운초는 차 앞까지 도착했다고 추측했다.이어 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전이진은 여운초를 부축해 조수석에 태운 후,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사실 전이진은 가끔 강압적이고 평소에는 매우 자상한 편이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신사적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단점을 떠올렸다. 그녀는 전이진의 바람대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여운초는 마냥 피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전이진은 잊지 않고 운전석으로 돌아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내가 운초를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소정남 씨한테 대신 전해줘.”전이진은 피로연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응.”전태윤은 대답한 후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전화를 끊기 바쁘게 하예정은 무슨 일인지 물었다.“왜 그래?”“이진이가 여운초씨를 먼저 집에 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했다.별장 내부는 엄청 밝았고 입구와 마당에는 여러 대의 승용차와 화물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화물차에서 끊임없이 물건을 꺼내 집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차를 세운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물었다.“너 이사 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물건을 옮겨오는 거야?”“뭐?”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은 여운초는 차 문이 모두 굳게 닫혀있어 밖에서 나는 인기척을 들을 수 없었다. 여운초는 전이진의 물음에 잠시 멍해졌다.그녀의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전이진은 자연스레 상황 파악이 되었다.“너희 집 문 앞에 차 몇 대와 화물차 한 대가 있는데 사람들이 집으로 물건을 옮기고 있어. 보아하니 누가 이사 온 것 같은데? 혹시 누가 너희 집으로 이사 오는 것을 허락한 적 있어?”“아니.”여운초는 안전벨트를 풀고 지팡이를 건네받고 차에서 내렸다.“내 추측이 맞다면, 두 고모가 이사오려고 하는 거야.”여운초의 작은고모만 빼고 남은 두 고모는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시집가셨다.여운초가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보호에서 벗어나자, 두 고모는 이때다 싶어 여씨 그룹을 손에 넣고 별장을 독차지하려 했다.“내가 보기에 그들이 너한테서 집과 회사를 뺏으려는 수작인 것 같은데.”전이진은 최근 여운초을 뒷조사했었다. 그러다 여운초가 두 고모와 재산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고모는 겉으로는 여천우를 대신해 가업을 잘 지키겠다며 듣기 좋은 말로 포장을 했다.사실 여천우는 두 고모보다 친누나인 여운초를 더 많이 신뢰했다.하지만 여천우는 이 사태를 모르고 있다.그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 들렀다. 여천우가 최근에 집에 왔었을 때, 여운초는 미리 도우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여 여천우는 부모님이 여운별과 여행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다.여천우가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부모님은 여운별의 권유로 그를 기숙학교에 전학시켰다. 그래서 여천우는
“여운초, 감히 우리 물건을 던지려고 해?”“왜, 제가 못 할 것 같으세요? 여긴 제 집이에요. 저는 두 분이 여기서 지내는 게 싫어요. 절대 이 집을 내어주지 않을 거예요. 뭐 불만 있으세요?”“여기는 우리 친정집이야!”여운초는 그들을 차갑게 비웃었다.“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명의로 된 집이야말로 두 분의 친정집이죠. 비록 제가 두 분의 조카딸이지만 그렇다고 두 분을 보살필 의무는 없어요. 그러니 이 집에서 지내실 생각은 집어치우세요!”두 고모는 큰아버지와 한통속이었다. 그들은 여운초한테 친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속였다. 그들은 여운초를 도와주기는커녕, 앞을 보지 못한다고 욕하며 그녀가 빨리 죽기를 기도했다.두 고모가 모질게 구는데 여운초도 선의적으로 그들을 대할 필요는 없다.“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내가 이 집에 들어와 산다고 해도 나를 밖으로 내쫓지 못했을 거야. 근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건데. 내가 네 아버지를 대신해서라도 너를 혼줄을 내줘야겠어.”불같은 성격을 지닌 큰고모는 말싸움 하기도 귀찮아서 바로 폭력을 썼다.하지만 전이진은 여운초가 맞도록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그건 곧 전이진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이었다.“누구야? 이건 우리 집안일이니 쓸데없이 참견하지 마!”큰고모는 마구 발버둥 쳤다.전이진은 그녀의 손을 밀치며 엄숙하게 말했다.“남의 집안일은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운초가 내 약혼녀이면 얘의 집안일은 곧 제 일이에요. 눈에 뵈는 게 없으신가 봐요? 감히 제가 보는 앞에서 여운초한테 손을 대려고 하시다니.”‘약혼녀?’두 고모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들은 여운초를 싫어했기에 그녀의 혼사를 신경 쓴 적도 없고 약혼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여씨 가문에서 투명 인간처럼 지낸 여운초를 일반 가정에서는 득이 될 게 없다며 그녀를 결혼 상대로 원하지 않았다.두 고모는 여운초에게 남자 친구조차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부잣집에서는 당연히 여운초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일반 가정에서는 앞을 볼 수
두 고모의 말은 여운초의 심장을 마구 찔러댔다. 그녀는 원래도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은 전이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 고모의 말을 듣고 그녀는 점점 전이진과 거리를 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두 사람의 말대로 여운초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항상 여운초의 콤플렉스였다.전이진은 얼굴을 붉히며 두 사람에게 경고했다.“두 분이 운초의 친고모니까 두 분과 더 언성을 높이지 않겠어요! 그 더러운 입 인제 그만 닫으세요. 함부로 운초를 판단하지 마세요. 뭐라 하든 저는 운초를 좋아해요. 당신들의 딸은 제게 당치도 않아요!”여운초가 전이진과 결혼하기로 약속하면, 그녀는 전씨 집안의 둘째 사모님이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두 고모의 딸은 여운초의 시중을 들 자격조차 없다!“거기 서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이 쓰레기를 치워버려. 하나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치워!”전이진이 목청을 높였다.경호원들은 눈치 빠르게 여운초를 따르기로 했다. 두 고모가 아무리 욕설을 퍼붓고 밀치더라도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경호원과 도우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두 고모가 끌고 온 물건들을 모두 별장 입구에 내다 놓았다.두 고모는 그 와중에도 떠나지 않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여운초는 냉정하게 말했다.“집사님, 두 분이 이토록 가기 싫어하시니 칼로 타이어에 구멍을 내세요. 어차피 차를 몰고 싶지 않아 하는데 타이어가 왜 필요하겠어요.”“여운초!”여운초는 천천히 소파에 가서 앉았다.두 고모의 욕설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고, 더 이상 그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여운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고모가 집에 들어오는 것만큼은 싫은 게 없었다.만약 허락한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든 물건을 몰래 버려도 알 길이 없다. 두 고모의 꿍꿍이를 여운초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둘이 이 틈을 타 이익을 얻으려는 수작을 여운초는 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두 고모는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씩씩거리며 별장을 떠났다.하지만 그들의 빠른 걸음걸이와는 달리 차는 느리게 달렸
두 고모는 아직 머리에 피가 마르지도 않은 유일한 조카인 여천우를 안중에도 두지않았다.두 고모는 변호사를 통해 형수 부부가 중형을 선고받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형수인 추미자는 십수 년 혹은 이십 년 되는 형을, 여태웅은 사람을 죽인 죄로 경찰 조사를 통해 중형을 선고받을 것이다.이대로라면 여태웅과 추미자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게다가 여씨 가문의 사업도 날로 승승장구 하여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여운초만 좋은 꼴을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었다. 두 고모가 여운초에게서 재산을 빼앗고 반씩 나누면 인당 천억은 가질 수 있다.“언니, 오빠의 재판이 열릴 때 법정에서 꼭 증언해야 해?”작은고모는 문뜩 여태웅의 일이 생각나서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녀들은 추미자가 동생을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분명 동생의 죽음이 그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증거는 이미 추미자가 훼손했을 거다.다만 두 고모는 줄곧 여태웅 부부와 사이가 더 좋았고, 작은고모는 작은오빠와 사이가 더 가까웠다. 작은오빠가 죽은 후, 작은고모는 여태웅과 크게 싸웠다. 그 후, 작은고모는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서 친정에 잘 가지 않았다.여운초가 거의 죽을 뻔해서야 작은고모는 자주 집에 드나들었다.“먼저 상황을 지켜보자. 여운초가 큰오빠를 해결해 준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만약 여운초가 처리하지 못한다 해도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어. 이번에 큰오빠를 감옥에 넣지 못하면 앞으로 다시 감옥에 넣기는 힘들 거야.”만약 여태웅의 존재가 두 고모를 시댁에서 콧대를 높여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여전히여태웅의 편이다.여태웅의 존재가 두 고모를 시댁에서 콧대를 높일 수만 있다면 그들은 여태웅의 편이었다.만약 여운초가 추미자 부부를 모두 처리해 준다면 두 고모는 여운초만 상대하면 된다.하지만, 애초에 여운초가 그만한 힘을 가졌다면 두 고모도 그녀와 재산을 다투기 어려웠을 거다.평소에 쓸모없어 보이던 여운초가 이렇게 능력이 좋은 줄은 몰랐다.여태웅 사건
전이진은 따뜻한 물을 들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전이진.”여운초는 그를 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나는 네 약혼녀가 아니야!”“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 약혼녀, 내 아내가 될 거야.”전이진은 포악하게 대답했다.“운초야, 난 너 점 찍었어. 너 아니면 안 돼. 도망쳐도 좋고 받아들여도 좋아. 아무튼 내 아내는 너야.”“...”“지난번에 너한테 심하게 한 것 때문에 화난 것 이해해.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난 너 좋아하니까 키스하고 싶었고 네가 이 전이진의 여자라는 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여운초는 전이진의 포악한 태도에 화가 나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을게 뻔했다.“운초야, 이제 나 피하지 마.”전이진은 가까이 앉으며 그녀의 가방을 들었다.“전이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여운초는 가방을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전이진이 한 손으로 그녀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가방을 높이 들어 가방이 보이지 않아서 가져올 수 없었다.“걱정 하지 마. 난 네 전화번호만 있으면 돼.”전이진은 일어나서 그녀의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내더니 자기 번호로 전화했다. 이렇게 그는 그녀의 새 전화번호를 손에 넣었다.“너 만약 또다시 전화번호를 바꾸면, 그때는 네 가게에 가서 살 거야. 또 도망칠 수 있나 보자고.”그의 협박이 효과가 있는 것 같자, 전이진은 또다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막무가내로 협박했다.여운초는 그를 쫓아내고 싶었다.“내일 경호원 두 명을 너한테 붙일 거야. 나 전이진의 약혼녀는 내가 지켜!”전이진이 말했다.“우리 전씨 집안의 경호원들은 다들 실력이 좋아. 그 사람들이 네 옆을 지키면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어.”그리고 그녀의 행적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난 네 보호 필요 없어.”“계집애, 자존심 부리지 마. 너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거 인정할게. 어떤 일들은 네가 깊게 숨기고 있다는 거 알아. 근데 네가 앞이 안 보이는 것, 이거 하나면 이미 약하단 걸 말해.
“내일부터 매일 너한테 꽃을 보낼 거야. 정식으로 내 약혼녀를 쫓아다닐 거야. 여운초는 이제부터 나 전이진이 보호할 거라는 걸 관성 사람들한테 알려줄 거야.”“...”“다시 한번 말할게. 만약 네가 또 날 피해 다니면 난 네 꽃집에 가서 살거나 네 집에 가서 살 거야. 꽃집 문을 닫거나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이상 나한테서 벗어날 생각 하지마.”“...”여운초가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은 모습을 본 전이진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여운초 때문에 전이진은 보름 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전이진은 그대로 돌려받으려는 것이었다.“늦었어. 얼른 들어가서 쉬어. 내일 아침에 같이 아침 먹고 꽃집에 데려다줄게. 기다려. 만약 안 기다리면...”그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콕 찍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의 입술을 덮치고 싶었다.“책임져야 할 거야!”여운초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전이진 너 지금 꼭 깡패 같아!”“그래. 나 깡패 맞아. 내가 선비처럼 행동할 때 넌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뱀 피하듯 피했잖아. 그럼 난 깡패가 될 수밖에 없지. 깡패만이 네 버릇을 고칠 수 있으니까.”“...”“일찍 쉬어. 난 갈게. 잘 자.”여운초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전이진은 기분 좋게 흥얼거리면 여씨 가문 별장을 떠났다.소씨 가문.신랑 소정남이 잔뜩 취해있었다. 비록 신랑 친구들이 대신 술을 마셔줬지만, 술을 권하는 사람도 많다 보니 취할 수밖에 없었다.걸음걸이도 휘청거리다 보니 소지훈이 그를 부축해서 신혼 방으로 돌아갔다.심효진이 뒤를 따랐다.그녀도 술을 많이 마셨고 붉어진 얼굴 때문에 더 아름다워 보였다.소지훈은 소정남을 눕힌 뒤 심효진에게 말했다.“제수씨, 정남이 잘 부탁드립니다.”“부축해 줘서 고마워요.”심효진이 소지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많은 친척, 친구들이 뒤따라와서 장난을 치려 했으나 신랑이 취해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자 장난칠 마음도 사라졌다.“정남이가 많이 취했으니까 다들 장난치지 말고 신랑신부 일찍 쉬게 돌아가시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
전호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고현도 일부러 그에게 명백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내일 저녁에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강성 전체 사람들도 분명 충격받을 것이다.고현은 이미 전호영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변이 없다면 2년 안에 전호영에게 시집갈 것이다.그녀는 전호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는 그가 동성애라자라는 누명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호영은 게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남자였다.고현이 모든 사람을 속인 것이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여자로 되고 싶어 했다.그 또한 기뻐할 것이다.고현의 형상이 너무 남자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여성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라는 점을 고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전호영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여자로 분장한 적 있다.당시 고씨 그룹 직원들은 여자 분장을 한 전호영이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의 자매인 줄 알았지만 전씨 가문에는 딸이 없고 전호영에게도 자매가 없었다는 것을 반응한 사람들은 그제야 전호영이 분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날 그 사실은 고씨 그룹에서 아주 큰 가십거리로 소문이 자자했다.전호영과 통화를 마친 고현은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미리가 전화를 받았지만 고현은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현아, 왜 그래?”고현이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진미리는 놀라워하며 고현에게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고현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엄마, 시간 있어요? ”“있지. 난 언제나 시간 있지. 왜? 내가 뭐 도울 거라도 있어? 말해봐. 내가 다 해줄게.”고현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분명 큰일일 것이다.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낸 진미리는 관심 있게 물었다.“생리 왔어? 배 아파?”고현은 때때로 생리통을 앓곤 한다.진미리는 한동안 몰래 고현에게 한약을 지어주면서 그녀를 돌보았다.“아니요. 엄마. 저 내일 저녁 연회
“호영 씨.”고현이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휴대폰 너머에 있던 전호영도 덩달아 신이 나서 웃었다.“현이 씨, 뭐 좋은 일이 있나요? 제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웃음기가 묻어나네요. 현이 씨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고현이 전호영에게 감정이 있다고는 하나 성격이 워낙 무뚝뚝하다 보니 전호영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차가웠다.“제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어요?”“그럴 리가요. 당연히 현이 씨가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면 좋죠. 그렇지만 현이 씨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보니 하루 종일 웃지도 않잖아요. 시시덕거리는 고빈을 볼 때마다 테이프로 그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고씨 그룹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고빈은 틈만 나면 여자들을 만나느라 바빴다.그렇다고 해서 고빈이 결혼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현이 웃으며 말했다.“얼른 가서 그 입 틀어막지 않고 뭐 해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부럽기는 해요.”자신이 맏이기 때문에 동생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혀있었다.줄곧 남장하고 있었지만, 여자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나타난 후부터 고현은 점차 동생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물론 동생에게 말했던 것처럼 고씨 그룹이 언젠가는 동생의 손에 넘어갈 것을 생각하고 가끔 동생에게 일을 맡기곤 했었지만.평생을 이렇게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기대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전호영이 딱 그런 존재였다.“나중 가면 현이 씨 동생이 현이 씨를 부러워할 것이니 동생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현이 씨가 회사 일을 조금씩 그에게 맡긴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저처럼 호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이윤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에게 말했다.“먼저 회사에 가 있어요. 요즘 가주가 시간 없다고 하니 제가 집안일 처리하러 집에 가야겠어요.”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이씨 가문에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녀의 비서 외에 회사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었다.이윤미만 회사에 나오고 가주와 그녀의 오빠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회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이 대표가 비록 능력이 부족한 이 부대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해도 어찌 됐든 자기 친딸이니 무슨 일을 저지른다 해도 이 대표가 뒷수습을 다 할 것으로 회사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이윤미가 이 대표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온갖 망발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헐뜯기에 바빴다.그렇지만 이윤미는 가만있지 않았다.중요한 직위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녀는 직접 해고하여 이씨 그룹에서 쫓아냈다.그리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강등시키거나 급여를 깎았다.게다가 해고된 사람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올린 탓에 그들은 복지와 소득 면에서 이씨 그룹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작은 회사만 전전해야 했다.조금의 손해를 볼지언정 이윤미는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이씨 그룹에서 쫓겨난 직원들을 보며 다른 직원들은 공포감을 느꼈다.모두가 부를 추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다.누가 대표직에 오르든지 간에 모두 이씨 가문의 출신일 것이니 승급을 못 할 바에는 이씨 가문의 암투에 직원들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대우는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그렇게 한다면 해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사에게 더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알았어요.”택시비를 보상해 주겠다며 말한 뒤 이윤미는 비서를 택시에 앉혀 보내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