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기를 안고 출근하는 전태윤의 모습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하예정과 이야기를 나누던 몇몇 임원들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전 대표님께서 오셨으니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괜히 커플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임원진들이 간 뒤 웃으며 함께 있는 아이와 남자에게 다가갔다.“태윤 씨, 애 잘 잡고 있어요.”아이를 높이 들어 올리거나 허공에서 빙빙 돌릴 때 제대로 안지 않아 떨어뜨리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전태윤은 우빈이를 높이 들고 빙글빙글 돌리는 것을 멈춘 다음 아이를 내려놓으며 웃었다.“걱정 마, 내가 우빈이 떨어지지 않게 꼭 안고 있을 테니까. 우빈아, 이모부 좋아?”우빈이 대답했다.“좋아요, 이모부 너무 좋아요.”그들 사이에 꼽사리 낀 꼬맹이라고 부르는 것만 그만두면 더 좋을 것 같았다.우빈은 말하며 두 팔로 전태윤의 목을 감싸고, 전태윤의 얼굴에 뽀뽀하더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전태윤은 꼬마 녀석의 입맞춤에 빙그레 웃으며 하예정에게 말했다.“동명이가 왜 우빈이를 유난히 좋아하는지 알겠어. 애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하예정이 웃으며 맞장구쳤다.“당연하죠, 누가 키웠는데. 내가 키운 아기니까 당연히 귀엽지.”전태윤은 아내를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봐요? 우빈이 내가 키운 거 맞잖아요.”“그래, 맞아. 그냥 나랑 만나고 나서 당신이 얼마나 능글맞아졌는지 보는 거야.”“당신이나 능글맞다는 거 인정해요.”하예정이 전태윤의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은 함께 걸어 나갔다.전태윤은 웃으며 말했다.“인정해, 당신 앞에서 난 무척 뻔뻔하게 행동하지. 할머니는 그래서 나한테 자꾸 뭐라고 하시잖아, 가끔은 내가 친손자가 아닌지 의심할 정도야.”늘 전태윤에게 한 소리 하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하예정은 큰 소리로 웃고 싶었지만, 대표 사모님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기에 참았다.“친손자니까 그러는 거죠. 원래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싫은 소리 하고,
“그래, 아직 이르긴 하지만 우리도 준비해야지.”전태윤은 말하며 빠르게 덧붙였다.“네가 걱정할 건 없어, 디자이너가 오면 잘 협조하면 돼. 네 체형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드레스를 만들어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 거야.”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굳이 맞춤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신부예요.”그녀는 나름 자기 외모에 자신 있었다.전태윤은 웃으며 맞장구쳤다.“그래, 넌 언제나 내 가장 아름다운 신부였지. 그냥 내가 너한테 최고인 것만 해주고 싶어서 그래.”하예정을 위한 예물도 준비해야 했던 전태윤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과 가족들이 그에게 물려준 것 전부를 그녀에게 주기로 했다.두 사람은 사옥을 나와 함께 전태윤의 롤스로이스를 향해 걸어갔다.“따라오지 않아도 돼요.”전태윤이 경호원들에게 말하자 경호원들은 정중하게 대답했다.전태윤의 차가 시동을 걸고 전씨 그룹을 빠져나가자, 경호원들도 뒤따라 회사를 떠났다.소정남은 관성 호텔에서 가까운 지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이 자리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들과 전이진, 예준하와 소지훈을 제외하고는 초대받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소씨 가문에서는 소정남에게 특별히 소지훈을 부르라고 지시했다.소정남이 애정을 과시하면서 소지훈을 자극해 결혼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소정남은 소지훈이 감정에 대해선 무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지라 대신 마음이 조급했다.삼촌의 부름에 소지훈은 흔쾌히 승낙했다.심효진은 하예정과 성소현만 초대했는데 성소현은 갑자기 일이 생겨 오지 못했다. 관성 호텔에 온 김에 소정남은 전호영에게 연락해 그에게도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했다.모두 도착했을 때, 아내가 있었던 소정남과 전태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싱글이었다.“소 이사님, 효진아, 두 사람 축하드려요.”하예정은 이제 막 부부가 된 사랑스러운 커플을 보자마자 진심 어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그녀는 허리를 굽혀 우빈이를 안아 들
소정남과 심효진의 결혼식이 이달 말로 정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저마다 소정남을 한마디씩 놀렸다.소정남은 모두의 놀림과 축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여기서 전태윤 빼고 다 똑같아.”소정남은 스스로 잔을 가득 채우더니 모두를 향해 웃으며 건배했다.“자, 똑같은 분들, 오늘부로 전 그쪽들 모임에서 빠집니다. 앞으로는 솔로 모임에 절 부르지 마세요. 건배!”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아주 부럽네요, 소 이사님.”반면 노동명은 이렇게 말했다.“오늘부터 소정남도 전태윤처럼 아내 바보가 되겠네.”전태윤이 낮은 목소리로 받아쳤다.“괜찮아, 넌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 아내 바보.”“전태윤, 너 되게 상처받게 말한다. 예정 씨, 태윤이 제대로 단속 안 해요?”하예정은 조카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있었다. 이미 저녁을 먹은 우빈이는 더 먹기 싫어 좋아하는 음식만 몇 입 먹고 있었다.“태윤 씨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 단속할 필요가 없잖아요.”“들었지, 부부는 한통속이야.”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친구들 중에 두 사람이 제일 부러워.”전호영이 거들었다.“형, 부러우면 얼른 여자 친구 찾아요, 우리도 형 부러워하게. 지난번 공씨 집안 파티에서 손정 그룹 부회장님하고 얘기 잘하지 않았어요? 두 사람 춤추는 걸 봤는데 정말 잘 어울렸어요.”노동명은 하예진에게 말할까 봐 재빨리 하예정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하예정 역시 그날 밤 파티에 있었고, 이미 다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려줄 거라면 진작 말했을 것이다.그러자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건 우리 엄마 마음에 드는 신붓감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야. 난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 그 사람 마음 얻어서 운 좋게 결혼까지 하게 되면 꼭 소정남처럼 성대한 만찬을 대접할게.”두 커플을 제외한 나머지 싱글들은 노동명이 좋아하는 사람이 하예진이라는 사실을 몰랐다.예준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노 대표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
소정남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형이 왜 정상이 아니야?”소지훈은 입술을 꾹 다물다가 말을 꺼냈다.“여기 다 아는 사람들이고, 두 제수씨도 예전부터 가까운 사람이라 그냥 얘기할게. 난 여자한테 아무 감정을 못 느껴.”“...”하예정과 심효진은 친구 아니랄까 봐 동시에 집었던 새우를 그릇에 떨어뜨렸다.“형, 그냥 핑계지?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로 나를 겁줄 필요는 없잖아.”소정남은 큰아버지의 눈빛과 큰어머니의 기대에 찬 표정을 떠올리며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형이 어떻게 이런 말을, 깜짝 놀랐다.“소지훈 씨 혹시 남자를…”예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지훈 옆에 앉아있던 그는 이미 조용히 엉덩이를 들면서, 소지훈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언제든 자리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다.소지훈이 어떤 사람인데, 준하의 이런 작은 행동까지 그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가 장난스럽게 예준하의 팔을 잡아당겼고, 예준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예준하 씨, 겁먹을 필요 없어요. 전 남자한테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병이죠. 정신과도 가봤고, 남성 질환 전문으로 유명한 의사도 만나봤는데, 다들 이건 치료 방법이 아니라 운명에 달렸다고 하더라고요.”“형, 놀라게 하지 마.”“소정남, 내가 거짓말할 사람이야?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난 내 몸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아.”소지훈의 표정이 진지했다.하예정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지훈 씨, 그게 혹시 감정이 없는 병인가요?”소지훈은 하예정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런 병도 있습니까?”“전에 잡지에서 봤는데, 그런 병은 치료법도 없고 전적으로 운명에 달렸대요. 소지훈 씨를 구원해 줄 여자를 만나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말 평생 혼자 살아야 해요.”“...”소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소정남, 돌아가서 큰아버지한테 말해. 나만 보면서 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이 많은 사람
형을 위해 선발 대회라도 열 수는 없지 않겠나?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릇 가득 새우를 깐 후 일회용 장갑을 벗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그런 병 들어봤어요.”“소지훈 씨, 순리대로 따라요. 아니면 우리 할머니가 가장 신뢰하는 점쟁이를 소개해 줄 테니, 점쟁이의 도움을 받는 게 어때요? 혼자 살 운명인지, 아니면 대대로 이어갈 운명인지 점쳐 보시죠.”“전씨 할머니께서 믿는 점쟁이요? 어르신이 믿는 점쟁이라면 진짜가 틀림없겠네요.”전씨 할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이 컸던 소지훈은 할머니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었다.“형, 그럼 할머니가 아시는 점쟁이에게 가서 누가 구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지 그래?”소정남은 불안한 마음에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아, 이따가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우리 형한테 점쟁이를 소개해 달라고 말씀드려.”하예정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전태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돌아가서 할머니한테 전화할게.”소지훈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전태윤을 바라봤고, 전태윤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이모, 나 물 마시고 싶어요.”“그래.”하예정이 우빈에게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주려던 찰나, 전태윤은 이미 우빈에게 물을 따라주러 간 뒤였다.곧 전태윤이 우빈이를 위해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이모부 고마워요.”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소지훈은 우빈을 바라보며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정 씨 조카 맞죠? 정말 귀엽고 예의 바르네요.”하예정은 손을 뻗어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제 조카 맞아요. 이름이 우빈이에요.”“삼촌도 귀여워요.”우빈이 덩달아 소지훈을 칭찬했다.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소지훈도 웃으며 말했다.“꼬마야, 삼촌은 어른이라 귀엽다고 하면 안 돼.”“삼촌 잘생겼어요, 우리 이모부만큼.”우빈이 말을 바꿨다.소지훈은 일부러 아이를 놀렸다.“그럼 삼촌이 잘생겼어, 이모부가 잘생겼어?”우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당연히 이모부가 더 잘생겼죠.”사람들은 다시
전태윤이 동생을 바라보자, 전이진은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듯 젓가락을 들어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그의 정신은 음식이 아닌 다른 데 가 있었다.원래는 여씨 가문 저택으로 바로 가고 싶었지만, 소정남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에 그의 체면을 봐서 자신의 호텔로 먼저 온 것이다.하예정은 전이진의 반응을 보자 단번에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기울여 전태윤을 바라보았다.전태윤이 다정하게 물었다.“여보, 다 먹었어?”그녀가 짧게 대꾸했다. 그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 이미 배불리 먹은 상태였다.“계속 도련님 노려보지 마요.”하예정은 낮게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여운초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기계적인 대답만 들릴 뿐이었다.“고객님의 휴대전화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여운초의 휴대폰은 정말 꺼져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카톡도 없고, 휴대폰도 꺼져 있어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휴대폰 꺼져 있으니 이따 집에 한번 가 봐요. 내일 아침에 언니 가게에서 꽃 사면서 얘기 잘해볼게요.”전이진은 이제 하예정을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하예정은 그를 도와 줄 수밖에 없었다.“고마워요 형수님.”전이진은 서둘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그는 여씨 가문 저택으로 갈 생각이었다.그러나 여운초는 사실 집에 있지 않았다. 전이진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한 후 점원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꽃필 무렵을 떠났다.이후 그녀는 곧바로 한동호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길가에서 기다릴 테니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한동호가 데리러 오자 여운초는 관성에 바다가 보이는 별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여운초는 바닷가 별장을 갖고 있었는데, 그녀가 아니라 한동호의 명의로 해놓았다. 그래야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으니까.여운초는 바닷가를 좋아했다. 아직 앞이 보이던 시절, 집에서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면 혼자 택시를 타고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 앉아 조용히 바닷바람을 느끼며 파도를
여운초는 당시 경찰이 큰아버지가 아버지를 해쳤다는 증거를 그렇게 빨리 찾아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 사건으로 인해 큰아버지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증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소지훈이 찾아낸 증거는 표면적으로 많은 부분이 추미자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여태웅은 아내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지만, 소지훈이 어떤 사람인가. 그 이후에 새로운 증거를 속속 내놓으며 여태웅은 자유를 잃게 되었다.추미자 사건은 관성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언론 보도 이후 이제는 관성 사람들뿐만 아니라 뉴스를 보는 다른 도시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여씨 그룹 사람들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알았다.그들은 여태웅 부부가 모두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경영을 맡게 될지 추측하고 있었다. 여씨 그룹을 누가 물려받을까?여태웅의 외아들?하지만 그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여태웅이 단단히 감추며 보호했기에 그들조차 만난 적이 없는 도련님이었다.여운초가 경영진들과 미팅을 할 때만 해도, 그녀는 평소 한동호를 통해 여씨 그룹의 상황을 전해 들었고,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 데다 젊은 여자라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어떻게 여씨 그룹을 임시로 관리할지 의문이었다.그런데 회의가 끝난 후 한 번의 만남으로 임원들의 의구심은 풀렸고, 그녀는 여씨 그룹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한동호 부사장이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여태웅이 늘 믿고 의지하던 그가 여운초를 지지하는데 고작 밑에서 일하는 부하직원들 주제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여씨 그룹은 결국 여씨 가문 사람의 것이었다.여씨 가문 사람이 이어받아 그들에게 월급만 제때 준다면, 누가 위에 오르던 별 영향이 없었다.이 순간에도 여운초는 여전히 바닷가 별장에 있었다.그녀에게 연락이 닿지 못한 전이진이 하예정에게 다시 가서 부탁하는 것도 모른 채.여운초는 하예정도 모르는 사이 번호를 바꾼 상태였다.하예정에게 알려주면 전이진도 알게 될까 봐 알려줄지 말지 망설였다.마당에는 여운초가 누워있는 긴 의자 옆으로
“전이진 피해서 며칠 더 여기 머물고 싶으면, 여자 친구한테 얘기해서 내일 비행기 타고 오라고 할게.”남자인 그가 여운초를 돌보기는 다소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평생 여운초의 오빠가 되어주기로 했으니, 회사 일을 제외하고도 앞을 못 보는 여운초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도와줘야 했다.오후에 미팅할 때도 그가 옆에서 도와줬다.“나와 전이진 씨는 아무 사이 아니에요.”여운초는 다급하게 해명하자 한동호는 그녀에게 음식을 건네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운초야, 난 널 중학교 입학할 때부터 알았어. 벌써 14년이나 지났는데,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잘 알아.”“오후에 미팅할 때도 바쁘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었잖아. 가만히 있을 때면 멍때리기 일쑤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 전이진 씨 분명 질투하고 있었어. 아마 우리 둘 사이를 오해했겠지. 그래서 너한테 물어봤고, 넌 아무 말도 안 했으니 둘이 갈등이 생긴 거지?”밥을 먹던 여운초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윽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갔다.“동호 오빠, 전이진이랑 나랑은 갈등이 생길 것도 없어. 우린 단순히 친구 사인데 무슨 설명이 필요해. 됐어, 오빠. 난 괜찮아. 그나저나 곧 동생이 돌아오는데 모든 걸 알면 날 미워하진 않을까?”여씨 가문에서 여운초는 계부와 이복동생의 생사는 말할 것도 없고 친어머니의 죽음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남동생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남동생이 그녀를 걱정할 때마다 겉으론 차갑게 굴어도 사실 이미 마음이 풀려서 그를 가족으로 생각한 지 오래였다.남동생은 여운별과는 달리 진심으로 그녀를 누나처럼 대했고, 무조건 그녀의 편을 들었다.그랬기에 여운별은 엄마한테 말해 남동생을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학교에 보내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게 한 것이었다.이제 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한 달에 하루만 집에 돌아왔다. 수능이 곧 다가오는데 여운초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동생에게
하예정은 웃으면서 해명했다.“동서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물어본 거 아니에요. 단지 할머니께서 어떤 며느릿감을 고르실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그녀는 이런 가십거리를 매우 좋아했다.동서끼리 사이가 안 좋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씨 할머니의 안목은 무척 좋기 때문에 전씨 할머니께서 고르신 아내감은 분명 인성 좋은 사람일 것이다.설령 인성이 나쁘더라도 하예정과 마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그들은 모두 서원 리조트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별장에 살고 있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마음이 맞으면 서로 좀 더 잘 만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만 잘 유지하면 그뿐이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나도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아마 비주얼은 좋을 것 같아. 어쨌든 우리 사촌 동생들은 전부 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도 못생긴 여자는 고르시지 않을 거야. 이혁이도 오랫동안 날 찾아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전태윤은 심지어 전이혁의 미래 아내의 성씨도 몰랐다. 그의 여자도 아니었기에 너무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언젠가 동생들도 그들의 여자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올 것이다.“그런데 할머니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못생기지 않게 생겼지만, 우리 집안은 부유하지도 않고 전씨 가문의 재력과는 너무 차이 나는 데다 태윤 씨는 전씨 가문의 장남이잖아요, 왜 태윤 씨와 저를 맞세우려고 하셨는지, 또 왜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고 하셨는지... 태윤 씨도 무척 난처했겠네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우리는 아마도 그 점쟁이가 점을 쳐 주신 덕분일 거야.”전씨 할머니는 그 점쟁이를 가장 신임하셨다. 점쟁이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 인연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하예정을 놓치게 되면 평생 홀아비로 살 것이라고 귀띔해주셨다.전씨 할머니는 장남 전태윤을 가장 아끼시는데 어떻게 그가 홀아비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하여 전씨 할머니는 몰래 하예정의 인성을 관찰하다가 인품이
사람들에게 하예정의 친정집의 실력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하예진은 이경혜의 지시에 따라 강성에 와서 이은숙 가족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 외에도,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되찾아 하예정의 친정집에도 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강성 이씨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지만, 어쨌든 재벌 가문이기 때문에 지금의 하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하씨 집안에도 가족들이 많지만, 고향의 그 “일품” 친척들은 하예정의 발목만 잡는 사람들이라 연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통화를 끝내자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전태윤은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생각해?”하예정은 빙그레 웃으며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당신 그래요? 운명이란 게 참 이상해요. 저는 지금 같은 날은 꿈도 꾸지 못했거든요. 우리 엄마가 원래 부잣집 딸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제가 태윤 씨와 결혼하게 되다니, 사람 사이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요. 내일 일어나게 될 일을 누구도 모르잖아요.”전태윤은 하예정의 얼굴에 뽀뽀하고 난 뒤 말을 건넸다.“처형이랑 일상적인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왜 이렇게 감회가 새로워졌어? 먼저 회사로 갈 거야? 아니면 서점으로 가려고? 내가 너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갈게.”“일단 회사로 돌아가야죠. 지금 이 시간이면 학생들도 다 수업하고 있을텐데 가게도 별일 없을 거예요. 서점으로 간다 해도 한가해서 파리만 잡을 텐데.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파리도 없겠네요.”“그래.”“참, 저의 언니가 말씀하시는데 어제 고 대표님이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셨다면서요? 호영 도련님께서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네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호영이가 어젯밤에 기뻐하며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더라고. 이진이와 호영이가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 이혁이와 전우만 남았네.”지난번에 어떤 여자가 전씨 그룹에 가서 전이혁을 찾으러 갔었다. 전이진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훔친 거 아니냐면서 캐물었
하예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조차도 아침에 이불 속에서 겨우 일어났어. 언니, 강성은 더 춥지? 인스타에서 보니 사람들이 눈 내리는 영상을 찍어 올렸던데. 우리 관성은 눈은 오지 않지만, 강성 쪽에 눈이 오면 우리 여기도 따라서 추워져.”관성 기온은 낮에는 10도가 넘지만, 밤에는 가장 낮아서 8~9도까지 떨어지곤 한다.이런 기온은 강성 사람들에게는 춥지 않지만, 더위에 길들여진 관성 사람들에게는 매우 추운 날씨다.“옷 좀 더 입혀줘. 유치원에서 나누어준 겨울옷은 너무 두껍지 않으니까.”우빈은 겨우 세 살 남짓 된 어린이였기에 하예진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입혔어. 그런 걱정하지 마. 언니도 강성에서 감기 조심하고. 많이 입고 다녀.”“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넌 오늘 회사로 출근했어? 요즘 관성도 추울 텐데, 먼저 집에서 쉬는 건 어때? 제부가 돈 잘 벌잖아. 네가 회사로 뛰어다니면서 돈 벌 필요 없어.”하예진은 너무 바빠서 땅에 발을 내디딜 틈이 없으면서도 여동생에게는 집에서 배 속의 아기를 잘 돌보라고 설득했다.“괜찮아. 우리 회사에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와 본 거야. 좀 이따가 서점에 들러야 해. 정남 씨가 이틀을 휴가 내서 나도 효진에게 쉬라고 했어. 두 사람이 함께 편히 쉬라고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소정남은 늘 전태윤에게 그의 아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다.하예진도 그냥 잔소리 한 번 해봤을 뿐 하예정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더는 말을 설득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과거 임신하여 집에서 쉬면서 사회와 단절되었고 출산한 뒤로도 모든 정력을 우빈에게만 쏟아부어 자기 관리에 소홀해 몸매가 많이 무너졌었다.그러나 전태윤은 주형인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예진의 실패한 결혼은 하예정에게 경적을 울릴 것이고 하예정도 최대한 친언니의 과거 생활을 피해 가려
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당연히 습관 되지 않을 거예요. 현이 씨는 평소 너무 엄숙해요. 너무 부끄러우면 방에 혼자 있을 때 연습해도 되는데. 누구도 듣지 못하면 누가 현이 씨를 비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고현은 전호영이 계속 말하는 모습을 보더니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 포크로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따르릉...전호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예정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호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예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없어요. 그냥 호텔 문 앞에 기자들이 많다고 알려주려고요. 혹시 고현 씨가 혹시 외부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인정하셨어요?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아마도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아요. 하루 호텔에 와서 모여있는 거로 보면 아마 맞은편의 고성 호텔에서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아까 일구 씨가 가봤는데 확실히 기자들이 몰려들어 있대요. 오늘 호텔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호영 씨, 어제 호영 씨와 고현 씨가 무슨 일을 벌인 거 맞죠?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왔는데 저도 벌써 그 소문을 듣게 됐다니까요.”전호영은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마치 저와 현이 씨가 어젯밤에 바람을 피우다가 잡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어젯밤에 저와 현이 씨가 송씨 가문 연회에 참석하러 갔거든요. 현이 씨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을 뿐이에요. 다른 건 아무 일도 없었어요.”하예진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렇군요. 축하드려요. 고현 씨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다니, 그녀가 드디어 호영 씨를 사랑하게 됐네요. 저는 두 사람의 결혼 축하주를 마시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요.”고현은 전호영에 대한 감정이 매우 더딘 편이었다.전호영이 고현을 쫓아다닌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이제야 사람들이 전호영을 오해하는 것이 가슴 아팠고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하여 고현은 자발적으로 치마를 입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가 원래 여자이고 전호영
고현과 전호영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큰 도련님,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집사는 계단 입구에 서서 고현에게 공손히 말했다.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호영과 함께 식사하러 갔다.집사는 따라가지 않았다.고현이 식사할 때,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종종 스스로 가지러 가곤 했다.집사는 고현과 같은 도련님을 모시는 것이 너무 수월하다고 생각했다.“집사님은 아직 현이 씨가 여자인 줄 모르세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되물었다.“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선언할 필요는 없잖아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필요 없죠.”“얼른 아침 식사나 해요. 이따 출근해야 하니까.”“네.”전호영은 그녀를 도와 식탁 의자를 당겨주며 말했다.“제가 오늘 더 일찍 오지 못해서 아쉽네요. 좀 더 일찍 왔더라면 현이 씨에게 직접 요리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저의 별장 실내 장식이 끝나고 나서 들어가 살게 되면 매일 현이 씨에게 요리해 줄 수 있어요.”별장 한 채를 장식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다.그 별장은 전호영이 강성에 생활할 때 거주하는 별장이기에 그의 높은 요구 사항 때문에 장식하는 진도가 좀 느렸다.설전에 실내 장식을 마치기만 해도 빠른 편일이다.고현은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호영 씨 때문에 제 입맛이 까다로워지면 어떡하죠?”전호영의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그녀도 그의 요리 솜씨를 인정한다.전호영이 만든 음식을 먹고 나서 고현은 호텔이나 자기 집에서 밥을 먹을 때 항상 맛이 부족하다고 느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앞으로 부부 될 사이인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한 가족으로 되면 매일 같이 살 텐데 현이 씨의 하루 세끼를 제가 모두 책임지면 되잖아요.”이때 고현이 갑자기 엄숙하게 그에게 물었다.“만약, 만약 제가 우리가 결혼 후에도 강성에 남아 여전히 고씨의 그룹을 운영하고 싶어 한다면 호영 씨 동의할
“기자들이 모여있든 말든 저는 상관없어요. 저의 경호원들과 회사 경비실 직원들이 제가 회사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보장할 거예요. 하지만 저한테서 답을 얻지 못하면 호영 씨에게 매달릴지도 모르니 호영 씨도 조심하세요.”고현이 연예기자를 처음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긴장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의 남자 친구이다.연예 기자들도 전호영의 곁을 맴돌며 혹시 그도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구애하지 않았냐며 그에게 매달릴 것이다.전호영은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무서울 것 하나도 없어요. 저에게 그런 물음을 물어본다면 제가 바지를 벗겨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면 기자들이 더는 물어보지 못할 거에요.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할 텐데 제가 그런 말을 하면 기자들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이미 저를 게이로 보고 있기도 하고 고현 씨가 여자인 걸 알았다고 해도 뭐 어쩔건데요? 저도 어제 금방 알았다고 말하면 기자들도 믿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고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하긴, 전호영은 말재주가 좋아 연예 기자들은 몇 번이나 그의 손에 놀아났는지 모른다.전호영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기자들이 제아무리 애써봤자 그의 입에서 실오라기 하나도 건질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전호영은 화제를 돌려 연예 기자들의 주의력을 딴 곳으로 끌어가면서 기자들을 되돌려 보낼 것이다. 그러다가 기자들은 떠난 뒤에야 또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예전에 고현과 전호영의 일에 관해 연예 기자들에게 쫓겨 다녔을 때 연예 기자들은 모두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녀의 주위를 맴돌지언정 친근해 보이고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 전호영의 주위를 맴돌지 않았다.연예 기자들은 왠지 전호영이 그들을 원숭이 놀리듯 조롱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전호영을 찾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현은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서 늠름하고 멋진 예전의 모습으로 나왔다.전호영은 사랑하는 여인을 보며 휘파람을 불며 농담했다.“
전호영은 정돈을 마친 후 노크했다.“현이야, 나야, 호영이”방금 잠에서 깨나 침대에 아직 누워 있던 고현은 노크 소리를 들고 마지못해 일어나 문을 열었다.“좋은 아침!”전호영은 꽃다발을 내밀면서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꽃처럼 매일 환하게 웃을 일이 가득하길 바랄게.”고현은 호영과 꽃다발을 번갈아 보다가 꽃을 건네받으면서 물었다.“고작 이 꽃 선물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거야?”“아침 같이 먹으려고 왔지, 꽃은 덤으로 선물하는 거고. 내가 선물 한 꽃이 향도 좋고 예쁘다고 했잖아. 매일 선물 해줄게. 매일 싱싱하고 이쁜 꽃다발을 받는 게 좋지 않아?”고현은 꽃다발을 든 채 뒤돌아서서 말했다.“내가 싫다고 해도 매일 보낼 거잖아.”전호영은 구애하는 데 있어서 고현의 말을 들은 적이 없이 줄곧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왔고 고현은 그런 전호영이 귀찮다 못해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였다.맨 처음 호영은 고현의 부모님을 공략해 자신의 편을 들어주게끔 만들더니 나중에는 고씨 그룹도 자유롭게 출입하곤 했다.“네가 없이도 난 아침밥 잘만 먹었어.”고현은 입으로는 전호영이 너무 강압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꽃 선물을 한다고 나무랐지만 어느새 꽃을 꽃병에 꽂아 넣고 한 발짝 멀리서 구경했다.방으로 들어온 전호영은 아직 잠옷 차림인 고현을 보더니 옷방에서 옷을 꺼내 건네 주며 말했다.“요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 아침에는 특히 더 추워, 얼른 옷 갈아입어,그러다 감기 걸리겠다.”고현은 별다른 얘기 없이 옷을 건네받고는 말했다.“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어, 옷 갈아 입고 올게.”“그래.”어젯밤 일이 생각 난 호영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네가 여자 옷을 입은 일이 강성에 다 퍼졌어, 오늘 아마 인기 검색어가 돼 있을 거야, 너희 회사랑 고성 호텔에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을걸. 오늘 회사 나가지 말고 하루 쉬는 건 어때?”회사랑 고성 호텔은 고현이 매일 가는 두 곳이었다.연예기자들은 고현이 여자가 맞는지를
병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밤은 깊어져 가고 북적이던 도시도 점점 고요해져갔다.다음 날, 마이바흐 한 대가 고현의 별장 앞에 세워져 있었다.손에 꽃다발과 예쁜 쇼핑백을 든 전호영이 차에서 내려 벨을 눌렀다.한참이 지나서야 문을 연 집사는 문 앞에 서 있는 전호영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좋은 아침이에요, 전 대표님, 저희 대표님께서 아직 주무시고 계셔요.”고현은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왔다. 사실 일도 바쁘고 접대도 많아서 매일 집에 늦게 돌아오곤 했다.고현은 어젯밤 파티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았었다.그녀는 친분이 있는 몇몇분의 대표님들과 인사를 건넨 뒤 비즈니스를 나누고는 전호영과 같이 파티장을 떠났다.고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남장으로 바꿔 입었다. 대신 가짜 복근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워낙 살쪄 보이지 않는 데다가 날씨도 추워서 옷 한 벌 더 입고 겉에 양복을 걸치면 남들 눈에는 여전히 멋진 고씨 집안 도련님이었다.그 후 고현은 여의 팰리스로 돌아와 잠을 잤다.전호영은 웃으며 집사와 얘기했다.“괜찮아요, 안 깨울 거예요. 제가 일찍 도착한 거예요. 늦게 오면 아침을 같이 못 먹을까 봐서요.”집사는 전호영의 차를 보고는 물었다.“대표님, 안쪽에 주차해 드릴까요?”“괜찮아요, 밖에 세워둬도 아무 일 없어요.”그곳에 주차하면 기자들이거나 고씨네 친척들이 별장 문 앞에 모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오히려 방지할 수 있었다.집사는 별장 문을 닫았다.“이모님, 무슨 얘기 못 들으셨어요?”전호영은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집사는 전호영이 자신과 고현의 연애에 관해서 물어보는 줄 알고 대답했다.“얘기 많이 들었어요. 전 대표님과 저희 도련님 두 분께서 좋으시면 되죠, 남들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어요.”전호영과 만나기 시작한 후로 고현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전호영은 웃으며 답했다.“하긴 그렇죠. 내 갈 길 가는데 남들이 뭐라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집사는 아직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고
“윤미의 결혼을 생각하면 나도 걱정이 태산이야. 걔는 보통 사람들이랑은 달라.”윤미는 혼자 아이를 낳아 후계자로 둘 생각이었다. 남편 없이 아이만 원하는 윤미의 생각에 이 가주도 머리가 아주 복잡했다.비록 이 가주와 정화의 오랜 결혼생활에도 결국 금이 생겼지만 수십 년간 부부생활을 해온 만큼 사랑까지는 아니라도 정은 남아있었다.노년이 됐을 때 동반자가 있으면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나이가 들면 다들 가정을 차리게 되고 또 일과 육아 때문에 부모는 뒷전일 게 분명했다.결국 곁에 남는 것은 동반자일 뿐.정화와 윤정의 해프닝이 있고 난 뒤에도 결국에는 윤정이만 내쳐지고 정화는 수술하는 것에 그치고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이 가주는 정화가 나중에 해코지할 걱정도 없었다. 그녀는 이씨 집안의 실세이고 윤미가 후계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윤미는 이 가주랑 더 친하고 정화랑은 아무 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정화가 이 가주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것을 고려하면 이 가주가 나이가 들어 걷지 못할 때가 온다고 해도 어쩌면 그땐 정화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이 가주는 윤미가 그냥 아무 남자나 만나 후계자가 될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남편이랑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보내기를 바랐다.정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친딸이랑 친하지도 않았고 또 그녀의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도 아니었다.얼마 전에도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하자 좋아하기는커녕 상대가 돈만 많고 능력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나무랐다.이씨 집안은 데릴사위를 찾는 상황인데 데릴사위가 되기를 원하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이씨 가문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면 정화도 애당초 데릴사위가 될 일은 없었다.정화는 자신과 이 가주의 친딸이 나중에 이씨 가문의 주인이 되면 젊었을 때 체면이 구겨졌더라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아이가 뒤바뀌었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졌을 때에는 이미 부녀지간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