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이에 응하며 이어서 말했다.“점심 배달시키지 마. 도시락 가져다줄 테니까 같이 먹자.”하예정은 서점에 혼자 있었다. 전태윤은 아내가 배달 음식을 먹는 것이 마음이 아파 진작에 관성 호텔에 전화해서 음식을 주문해 경호원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점심에 음식을 가지고 서점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알았어요, 배달 안 시킬게요. 먼저 일하고 있어요, 학생들 수업이 끝나서 저도 바빠질 거예요.”하예정은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보며 투덜거렸다.“안녕이라고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네.”하예정은 바빠지기 시작했고 전태윤도 하던 일을 끝내고 사무실을 떠났다.경호원은 방금 호텔에 가서 도시락을 가져오는 길이었다. 전태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마중 나갔다.몇 분 후, 전태윤의 차는 전씨 그룹에서 떠났다.10분 일찍 떠나 아직 길이 막히지 않아 곧 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전태윤이 서점에 도착했을 때 하예정의 서점에는 여전히 물건을 사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웬 학생이 하예정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예정 언니, 며칠 동안 효진 언니가 안 보이는데 어디 갔나요?”학교 주변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 중 젊은 사장은 하예정과 심효진뿐이라 학생들은 대부분 그녀들을 친절하게 언니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얼굴도 이쁘고 매우 친절해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면 하예정네 서점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효진 언니는 오늘 중요한 일을 보러 가야 해서 시간이 없어. 아마 두세 달 동안은 내가 혼자서 가게를 지키게 될 거야. 왜, 효진 언니가 보고 싶어?”그녀는 돈을 계산하면서 학생들을 놀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할인을 해주었다.“그렇게나 오래요? 그러면 다음 학기에나 효진 언니를 만날 수 있겠네요. 당연히 보고 싶죠. 요 며칠 문을 안 열어서 엄청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그리워한 것을 봐서 좀 싸게 해줘요.”“정말 우리를 보고 싶어 한 줄 알았잖아, 할인해달라는 거였네. 걱정 마,
하예정은 테이블을 깨끗이 닦았다.전태윤이 가져온 음식들을 보고 그녀의 마음은 꿀을 먹은 듯 달콤해 났다. 남편은 언제나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준비해 오곤 했다.“이진이가 와서 뭐라고 했어? 무슨 사고를 쳤길래?”전태윤은 아내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호기심에 물었다.“운초 씨에게 엉뚱한 짓을 해버려서 제가 가서 사과하라고 했어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줬어요.”하예정은 무슨 일인지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다. 이 일은 전이진과 여운초의 개인적인 일인 데다가 전이진이 그녀를 믿기에 알려준 것이라 더 이상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전태윤에게조차도 말하지 않으려 했다. 이후에 여운초가 시집오게 되면 전태윤을 보기 부끄러워할까 봐 걱정되었다.아내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전태윤도 예전에 아내에게 강제 키스를 한 적이 있었기에 곧 짐작이 갔다.하지만 아내의 생각을 눈치채고 더 이상 이 일에 관해 묻지 않았다.전태윤 부부가 점심을 먹고 있는 시간에 노동명은 퇴근 시간을 이용해 병원에 갔지만 하예진의 병실 앞에 한참을 서성이면서 들어가지 않았다.전씨 가문의 경호원이 물었다.“노 대표님, 들어가시겠습니까?”“아뇨, 예진이는 어때요? 좀 좋아졌어요?”“회복이 잘 돼서 이제는 침대에서 내려와 조금씩 움직이는 데 무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퇴원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하예진 모자의 하루 세 끼 식사는 박 아저씨가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했다. 모두 영양사가 짠 식단에 따라 준비한 것이라 하예진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됐다.이경혜도 자주 보신 수프를 가져다주곤 했다.김은희도 자주 보내왔지만 매번 도로 가져가게 했다.오늘은 왠지 주씨 일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러면 됐어요. 모르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잘 지켜줘요.”노동명은 경호원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돌아섰다.전씨 일가의 경호원들은 노동명의 거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특별히 찾아와서는 병실에 들어가지도 않고, 하예진에게도 자신이 온 걸 알리지 않았다
윤미라는 고민 끝에 먼저 하예진을 보고 다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그렇게 생각한 윤미라는 하예진의 병실로 향했다.전씨 가문의 경호원은 윤미라가 오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먼저 병실에 들어가 하예진에게 보고했다윤미라가 가까이 왔을 때, 경호원은 그녀를 막지 않고 그녀를 도와 문을 두드린 후, 병실 문까지 열어주었다.“사모님.”숙희 아주머니와 다른 하인은 작은 홀에서 식사하고 있다가 윤미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도시락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공손히 인사했다.“식사하고 있었어요? 괜찮아요. 나 예진 씨 보러왔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드세요.”윤미라는 식사를 하고 외출했다.숙희 아주머니는 그래도 윤미라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하예진은 이미 식사를 마쳤고, 천천히 먹고 있는 우빈에게 밥을 먹여주면서 말했다.“우빈아, 앞으로 밥을 이렇게 천천히 먹으면 안 돼. 유치원에 가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단 말이야.”“엄마, 알겠어요.”윤미라가 들어오는 것을 본 하예진은 아들에게 그릇을 주고 혼자 먹으라고 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아직 상처가 회복하지 않았으니 앉아요. 어서 앉아요.”윤미라는 급히 다가가서 그녀를 누르며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사실 그녀는 하예진을 며느릿감으로 맘에 들지 않았다. 하예진의 출신이 노씨 가문에 어울리지 않았고, 게다가 이혼녀에 세 살배기 아이까지 있었다.하지만 자기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다는 사실에 윤미라는 크게 감동했다.“사모님, 이미 많이 좋아져서 가볍게 움직일 수 있어요. 상처 부위만 조심하면 돼요.”처음 2, 3일 동안은 상처 부위가 아파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하지만 요 며칠 동안 많이 회복되었다.“사모님, 식사는 하셨어요?”“먹었어요. 내 친구가 1층에 입원해서 온 김에 예진 씨 보러 온 거예요.”윤미라는 하예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녀의 얼굴에 시선이 멈추었다.“안색이 좋은 걸 보니 회복이 잘 되고 있나 보네요. 의사는 언제 퇴원할 수 있다고 해요?”“일주일만
윤미라는 병실에 신선한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가 없는 것을 보고 하예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이 자식 예진이 보러 온 게 아니었다고? 근데 나한테는 예진이 보러 왔다고 했는데?’하예진도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하니 가능성은 오직 하나였다. 노동명이 병원에 왔지만 하예진의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래서 하예진은 그를 보지 못했고, 문제는 결국 노동명에게 있었다.“여기까지 와 놓고 왜 예진 씨를 보러 오지 않았죠?”윤미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마디 던졌다.하예진은 그저 웃을 뿐 말을 잇지 못했다.두 사람은 대부분 노동명이 그녀의 가게에 가서 아침을 먹으면서 만나곤 했다.노동명이 하예진을 많이 도와줬지만, 그건 전부 제부 전태윤을 생각해서 많이 도와준 것이다.윤미라는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우빈을 보며 말했다.“난 방해하지 않을 테니 얼른 우빈이 밥 먹여 줘요. 나도 내 친구 보러 가야겠네요.”“네.”하예진은 기어코 침대에서 내려와 윤미라를 배웅했다.윤미라는 그녀가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을 보고 사양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함께 병실을 나섰다.“살펴 가세요.”하예진은 병실 입구에서 윤미라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윤미라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노 대표님이 오셨어요?”하예진이 경호원에게 묻자, 경호원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20분 정도 계셨지만 들어가지 않으셨고 예진 씨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입구에서 20분 동안 서 계시다가 가셨습니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진짜 나 보러 병원에 왔을까?’윤미라의 의미심장한 말을 생각한 하예진은 불안했다.‘사모님이 나랑 노 대표님 사이를 오해하시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거네!’하예진은 병실로 돌아가 우빈이가 이미 다 먹은 것을 보고 수저를 치우려고 하자 숙희 아주머니가 얼른 들어와서 치웠다.하예진은 아들에게 좀 걸으라고 한 뒤 침대에 앉았다. 침대맡 서랍에서 휴대폰을 꺼내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예정아, 점심시간이야?
하예정은 언니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답장했다.[언니, 노 대표님이 언니에게 잘해주는 것이 진짜 태윤 씨 때문이라고 생각해?][그게 아니면 뭔데? 태윤 씨 때문에 나 도와주는 거 맞아. 내가 대표님 회사에 채용된 것도 태윤 씨 덕분이었어. 그때 태윤 씨에게 전화하는 거 내가 들었어.][언니가 퇴원하면 이 얘기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사모님이 언니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다니 내가 다 억울하네.]하예정은 이 메시지를 보낸 후 전화 통화로 바꿨다.하예진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예정아, 내가 모르는 일이 있다고? 사모님은 왜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언니가 다쳐서 밤새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동명 씨가 중환자실 밖에서 밤새 언니를 지켰어. 그러다 언니가 눈물 흘리는 걸 보고 바로 의사를 불렀고. 그날 밤 동명 씨는 한숨도 못 잤어. 언니가 깨어난 후에는 너무 허약해서 그걸 알아채지 못했고.”“뭐? 대표님이 밤새 나를 지켰다고? 이건...”“언니, 동명 씨는 언니를 좋아해. 언니가 다친 후에야 자기 마음을 안 거야. 전에는 항상 우빈이를 좋아하고 언니한테는 별다른 감정이 없다고 했지만, 언니가 다친 후에야 언니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거지.”하예진은 놀라서 하마터면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예정아, 나 놀리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모님은 이미 대표님 혼처까지 골라주셨어. 은경 씨가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 게다가 두 사람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것 같던데?”노동명이 그녀를 좋아한다?하예진은 절대 믿을 수 없었다.노동명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200근의 뚱뚱한 여자였고 아주 못생겼었다.그리고 그의 차를 들이박았고 차 수리비까지 물어주었다.노동명이 아무리 얼굴이 망가졌어도 명색에 몸값이 2조 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 오너였다.얼굴의 칼자국만 없앤다면 준수한 미모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나이는 좀 들었지만 잘생기고 돈까지 많으니 그에게 시집가고 싶은 여자가 적지 않을 것이
“예정아!”하예진은 엄숙하게 말했다.“난 그럴 마음 없어. 노 대표님을 절대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사모님은 이미 며느릿감까지 골라주셨어. 은경 씨 아주 좋은 사람이야. 내가 재혼한다고 해도 그 상대가 노 대표님은 아니지. 서로 너무 차이 나잖아. 내가 사모님 눈에 들기나 하겠어? 내가 만약 그분과 결혼한다면 앞으로 또 고부 갈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할 거야. 예정아. 나 주씨 가문 불구덩이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왔어. 그런데 또다시 다른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는 없잖아?”“내 전 시어머니는 아주 까다롭지만 그래도 사람을 해치는 분은 아니셔. 재벌가 사모님들 만만치 않아. 세상 모든 시어머니가 다 네 시어머니 같은 줄 알아? 재벌가 며느리 자리는 절대 쉽지 않아. 나랑 노 대표님 조건이 워낙 차이가 나는데 사모님도 날 싫어하셔. 그런 분의 며느리가 된다면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잖아?”하예진은 아주 이성적이었다. 재벌남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지 않았다.그녀는 자신과 노동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시어머니의 천대를 받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아들을 데리고 집안 사람들을 돌볼 필요 없이 가게만 잘 운영하는 생활에 아주 만족했다.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언니, 동명 씨 꽤 고집 있는 사람 같았어. 자기 마음을 알았으니 이제 곧 행동에 옮길 거야. 곧 언니를...”하예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동생에게 물었다.“예정아, 나 가게 이사할까? 노 대표님의 가게를 임대하지 않고 멀리 피해 버리는 거야. 계속 거절당하다 보면 알아서 포기하겠지.”노동명은 자존심이 강한 대표로서 여자에게 거절당하면 단념할 것이다.“언니, 그분 태윤 씨랑 절친이라 둘이 자주 만나. 태윤 씨는 또 언니 매제이니 앞으로 마주치지 않을 수가 없어.”“그러네. 내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이야. 앞으로 우리 가게에 오면 직원한테 접대하라고 하고 난 얘기하지 않을 거야.”도피가 방법이 아
“언니, 미안해.”하예정은 그동안 언니를 속인 것이 미안했다.언니의 말대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니, 세상 누구를 속이더라도 언니를 속이면 안 되었다. 그것이 언니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하지만 많은 사람이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속이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지 물어보기는 했을까?“네가 나 걱정하는 거 알아. 네 탓 하는 거 아니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언니한테 숨기지 마. 이건 언니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어.”“응, 나 언니 믿어. 화이팅!”“그래, 고마워. 너 일 봐. 나 우빈이 데리고 한 잠 자야겠어.”“오후에 학생들 수업 끝나고 바쁠 때 지나고 나면 언니 보러 갈게.”“그래.”하예진은 전화를 끊고 아들을 바라보았다.우빈이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우빈아, 자야지.”하예진은 휴대폰을 다시 서랍에 넣고, 아들을 안아주려 했지만 우빈이가 거절했다.“엄마, 저 혼자 올라갈 수 있어요. 이모가 엄마 아직 안 낳았으니까 우빈이 안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빈이는 혼자 침대에 올라왔다.하예진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혼할 때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아들의 양육권을 쟁취한 것이다.하예진은 오후에 링거를 맞을 필요가 없었고, 우빈이도 점심시간에 엄마의 침대에서 쉬었다.녀석의 생활 패턴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엄마 옆에 누워 한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만지다가 엄마의 팔을 껴안고 비로소 편안하게 잠들었다.하예진은 아들을 부드럽게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으로 노동명이 자신을 좋아하는 일이 생각났다.그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예진은 동생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동명이 만약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중환자실 입구에서 밤새워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예진은 재혼할 수 없었다. 재혼에 실패할까 봐 두렵기도 했고, 우빈이가 괴롭힘과 학대를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전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 문제를 해결한 후, 하예진은 고향 가족들의 소식이 끊긴 지 오래였다.가끔 고향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녀와 여동생이 말하는 것은 모두 채소 농장 진행 상황에 관한 것이었다.하예정은 그들의 채소 농장이 6월 초에 심기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먼저 공심채, 배추, 청경채와 가지, 고추 등을 심을 계획이었다.어떤 채소를 심을지 하예정은 성소현과 심효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의 역할은 확실했다. 하예정은 어떤 채소를 심고 어떻게 관리할지를 책임졌고, 성소현과 심효진은 마케팅에 열중했다.“들어오라고 하세요.”하예진은 고향 사람들과 더 이상 왕래하고 싶지 않았지만, 기왕 이렇게 찾아왔고, 또 웃어른이었으니 경호원더러 두 노인을 들여보내라고 했다.하지철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왔다.두 노인이 앞에서 걸었고, 하지철은 과일 한 봉지를 들고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우빈이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하예진은 작은 홀에 가서 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불렀다.“예진 누나.”하지철은 과일 봉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하예진을 불렀다.하예진은 간단히 응답하고 세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예진아, 괜찮은 거야?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도 우리한테 말 한마디 안 했어?”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예진의 안부를 물었다.할머니도 걱정스러운 말을 몇 마디 하려고 입을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다.그녀는 하예진 자매와 정말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었다.그때 그 소란을 피우고, 지금은 일이 해결되어 두 노인이 셋째네 집에서 얌전히 살고 있지만, 하예진 자매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할머니는 여전히 두 손녀가 불효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하예정은 재벌가에 시집가서 친정 식구들을 보살펴주지는 않고 자기 행복만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아니라 다른 손녀가 재벌가에 시집갔다면 자신은 아마 귀부인으로 추앙받고 부귀영화를 누릴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
고빈은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돌려 이윤미를 쳐다보았다.한동안 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윤미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조금 전에 멈칫했던 것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애초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누나가 내게 소개해 줬을 때 거절하지 않았을 텐데.”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물론 그녀에게 대시한다 해도 너무 늦지는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엮이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씨 가문에 이윤미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강인한 성격을 만들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상대를 방심하게 하여 허를 찌르는 데 능숙했다.고빈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이윤미처럼 가식이 많고 거짓말을 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순수한 여자였다.‘이윤미 같은 여자는 형에게 적합해. 둘이 함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형이 이윤미를 높게 평가한 것을 감안할 때 둘이 충분히 한 쌍의 커플로 발전할 수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놀아나겠지. 아니구나. 난 형이 없잖아! 강성의 사람들은 내게 형이 없고 누나만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해.’자신과 인사하는 것만으로 고빈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줄을 이윤미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이윤미가 비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윤미 씨, 뭐 드실래요? 비서에게 준비하라고 말할게요.”“따뜻한 물 한 잔이면 됩니다. 밤에 잠 못 잘까 봐 커피는 감히 마시지 못하겠네요.”고현은 두 사람을 소파에 앉으라고 말한 뒤 따뜻한 물을 따라주라고 자기 비서에게 지시했다.자리에 도로 앉은 고현이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저는 아침과 오후에 한 잔씩 마셔요. 습관 돼서 그런지 밤에 잠을 자는 데 별 지장은 없어요.”그녀는 보통 카페인이 효력이 사라진 자정이 되어서야 자는지라 걱정거리가 없는 한 수면에 큰 영향
“그러면 지금 바로 할머니께 전화할게. 퇴근 후 집에서 샤부샤부 먹겠으니, 집사에게 말하라고 말이야. 사람 좀 있어야 분위기도 나니까 이진 부부도 부를게. ”그러자 하예정이 말했다.“제가 할머니께 전화할 테니 당신은 가서 일 보세요. 아니면 오늘 밤 관성에 있는 사람 중 시간 있는 사람들을 와서 밥 먹으라고 가족 단톡방에 말 보낼게요. 하긴 사람이 많으면 시끌벅적하고 좋긴 하죠.”전태윤이 웃었다.“다들 바쁘니까 오지 못할 거야. 이진 부부만 불러.”“당신 말한 대로 할 테니 얼른 가서 일 보라니까요. 수중의 일부터 빨리 처리해야 나중에 그나마 수월해질 건데.”오랜만에 회사로 출근한 전태윤은 야근하지 않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려 했다.아내의 거듭된 재촉에 전태윤은 마지못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하예정은 할머니에게 전화하여 저녁에 전이진 부부를 불러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말하자, 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당연히 기뻐하며 바로 승낙했다.강성, 이윤미가 타고 있던 차량이 고씨 그룹으로 향하고 있었다.차가 멈추자, 먼저 차에서 내린 이윤미의 비서는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이윤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이윤미는 자신의 비서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수십 층에 불과한 이씨 그룹의 청사와 달리 중심상업지역에 자리 잡은 고씨 그룹의 청사는 강성의 모든 대기업 중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이미 오기 전에 고현에게 전화하여 프로젝트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있는지 물어본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를 데리고 찾아온 것이었다.고현이 자신의 계획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윤미는 그래도 이씨 가문 딸의 신분으로 협력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다.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을 때 다시 사적으로 회사 대표의 신분으로 얘기해 볼 속셈이었다.고현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그녀와 척을 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윤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뻔했다.이윤미가 여러
전태윤의 뒷부분 말을 들은 소정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말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지 넌 모를걸. 약속 지켜. 네가 회사로 돌아오면 날 며칠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네가 잊을 수 있으니 내가 계속 일깨워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내년에 우리 효진이가 아이를 낳을 때 나에게 출산 휴가를 두 달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잊지 마.”전태윤은 그를 꾸지람했다.“네가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출산 휴가는 한 달이면 돼. 네 아내의 산후조리만 잘 돌보다가 바로 출근해. 게다가 너의 집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산후조리가 끝나면 굳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될걸. 내가 두 개월 휴가를 주는 것도 너무 길다고 생각하는데 적게 줬다고 생각하다니.”소정남은 바로 반박했다.“예정 씨가 아기를 낳을 때 네가 매일 회사에 돌아와서 평소처럼 일할 수 있고 예정 씨의 산후조리를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출산 휴가를 한 달만 낼게. 내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난 남편으로서 효진이가 날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상황을 보면서 회사가 바쁘지 않으면 내가 3개월 휴가 줄게, 됐지?”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전태윤도 하예정이 출산하면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산후조리 때 특별히 잘 보살펴야 한다.소정남은 재빨리 말했다.“예정 씨, 들으셨죠? 태윤이가 저에게 출산 휴가 3개월을 주겠다고 약속했어요.”하예정은 웃으며 대답했다.“들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증인으로 되어드릴게요. 태윤 씨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심효진의 임신 기간이 하예정보다 길었기에 내년 5월쯤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소정남도 그의 상사와 내년 출산 휴가를 미리 상의하고 있었다.소정남은 그제야 시름을 놓으며 일어나 전태윤에게 말했다.“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일할게. 오늘 업무를 전부 처리해 놓아야 내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을 테니까.”이틀간의 휴가를 얻은 소정남은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