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주가 뭐가 좋은지 동생을 그년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그년 때문에 친아들이 사고 날 뻔했을 뿐만 아니라 전처도 다쳤는데 말이다.주서인은 지금 동생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미안하기도 하고.만약 동생이 하예진과 이혼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비록 예전엔 잘못한 결정을 했지만 지금은 동생이 다시 하예진과 재혼할 수 있도록,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한테 할 말 있으면 해요, 돌려서 말할 필요 없으니까요. 나는 다른 사람이랑 얘기할 때 상대방의 생각을 추측하는 게 너무 싫어요.”하예정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 주서인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다소 짐작할 수 있었다.주씨 일가는 주형인과 언니를 재혼시키고 싶을 뿐이다.정말 웃기는 노릇이었다.언니를 뭐로 보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하고 재혼하고 싶으면 재혼하자는 거야?!만약 주형인이 잘나가고 있다면, 주씨 일가는 절대 이혼한 걸 후회하지 않았을 테니까!“예정 씨, 통쾌한데요? 좋아요, 그러면 바로 말할게요. 요즘 노 대표가 언니한테 구애하고 있죠? 언니가 다친 그날 밤, 여기 왔다가 노 대표가 중환자실 밖을 지키는 것을 봤거든요. 밤새 밖에서 지키다니... 내가 애를 세 명이나 낳은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노 대표는 분명 당신 언니한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좋아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기회를 찾아 고백하고 싶은 거예요. 내 말 틀리지 않았죠? 그러니까 우빈이에게도 그렇게 잘해준 거예요. 다 의도가 있어서라니까요.”“...”“우빈의 의붓아버지가 되고 싶은 거예요. 정말 웃기죠? 우빈에게 친아버지가 버젓이 있는데, 남의 애 아빠 노릇을 하려 하다니! 내 생각은 말인데요, 아무래도 우리 집 형인이가 예진이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십수 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서로 얼마나 잘 알고 있겠어요, 비록 불쾌한 일이 있었다지만, 이제 형인이도 잘못을 알았으니, 다 고칠 거예요. 그리고 우리도 무조건 당신 언니 편이에요, 다시는 예전 같은 일 없어요.”“..
“아직도 서현주를 대신해서 사정하려고 하다니... 분명 서현주를 좋아하고 있어요. 뭐 마음속으로 조금 후회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형인은 절대로 우리 언니와 이혼한 것을 후회하는 건 아닐 거예요. 우리 언니도 이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니 다시는 이런 일 때문에 언니나 나를 찾지 마세요.”하예정은 주서인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녀를 제쳐두고 병실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전태윤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다가갔다.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던 전태윤은, 아내가 무섭게 어두워진 얼굴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의 대화가 불편했음을 알 수 있었다.“여보, 내가 대신 쫓아내 줄까?”“아니, 됐어요.”그녀는 바로 경호원들에게 분부했다.“앞으로 주씨 일가가 찾아오면 모두 쫓아내요. 언니가 퇴원하기 전에 다시는 언니나 우빈의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요.”언니는 상처가 회복한 후 계속 가게를 열어야 한다. 주씨 일가가 가게를 찾아오면 쫓아내기 어렵다. 그들 가족은 뻔뻔하여 매일 가게를 찾아와 소란을 피울지도 모른다. 그러면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주씨 일가는 처음에는 전태윤을 두려워했지만, 그가 차갑지만 막무가내는 아니란 것을 안 후로부터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전태윤은 주형인더러 직장을 잃게 한 것 외에는 그들 가족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기껏해야 전태윤을 피해 하예진에게 매달리고 있다.주씨네 일가가 지금 가장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우빈이의 양육권을 하예진에게 준 것이다.그들이 아무리 뻔뻔하게 나온다고 해도 우빈이의 친가족인 건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니, 우빈이의 체면을 봐서라도 하예정 쪽에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손쓸 수 없다.“알겠습니다, 사모님.”사실, 매번 주씨 일가가 찾아올 때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병실 밖에 가로막고 있다. 하예진이 전남편을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 한 매일 찾아와도 절대 병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아내가 경호원에게 분부를 내린 후 전태윤은 아내의 허리를 껴안고 그곳
병원에서 나와 차에 올라탄 후 하예정은 휴대폰을 꺼내 하씨 영감의 휴대폰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서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고향 집 문제를 해결한 후 고향 사람들과 왕래가 뜸해졌다.예전에 늘 하예정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생각만 하던 그들도 그녀의 수단을 맛본 후에는 마음을 접었다.하예정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돈과 권세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 인수로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게다가 하씨네 영감과 할멈은 노후 문제에서 자식들과 손자들의 태도에 상처를 입은 뒤로부터 더는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그들은 예전에 하예정 자매로부터 무자비하게 많은 배상금을 나누어 가졌고, 그 배상금은 모두 다른 자녀들에게 보태주었다. 덕분에 자녀들은 지금 좋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손주들도 관성에서는 살아가기 어렵다고 해도, 고향에 돌아오면 괜찮은 일을 찾아 지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또한 그들 모두 적지 않은 예금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하씨네 할멈이 병이 났을 때, 인색한 자식들은 병원비를 내기가 아까워서 싸웠다.하씨네 영감과 할멈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줬다고 할 수 있다. 자식들은 그걸 당연하다는 듯 누리면서, 부모님에게 효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손자들마저도 할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만 키웠지 자기를 키우지는 않았으니, 노후에 관한 문제는 자기와 상관없다고 말한다.하지만 만약 할아버지에게 남겨둔 재산이 있으면, 손자로서 한몫을 나눠 가지겠다고 한다.하씨 영감은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더 이상 자손들의 말을 듣고 하예정 자매에게 맞서고 싶지 않다.이제 저세상으로 떠나가면, 자기 제사를 도맡아 줄 사람이 하예정 자매밖에 없을까 봐 걱정되었다.하예정의 전화를 받은 하씨 영감은 의외로 은근히 기뻤다.하예정의 몸에 하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이상, 그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예정이냐?”하씨 영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이 할아버지한테 전화할 생각을 한 거냐? 집에 돌아오려고? 제삿날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예정의 말을 들은 하씨 영감은 매우 기뻤다. 손녀가 자기에게 기꺼이 도움을 청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언니가 사고로 다쳤어요.”“사고라니?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데? 다친 건 좀 어떠냐? 혹시 일주일 전 일이냐? 며칠 전 지명이와 지문이가 자주 나한테 연락하여 물어보더구나. 너한테서 연락이 왔냐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을 안 하더라고.”하씨 영감은 인터넷에 관심이 없어 하예진이 다친 것도 모르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 일을 알지만 아무도 두 늙은이에게 말하지 않았다.마을 사람들은 하예정 자매와 두 늙은이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만약 두 늙은이가 하예진이 다친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네, 일주일 전에 사고로 다쳤는데 지금은 회복이 잘 되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언니의 전 시댁에서 자꾸만 언니와 주형인을 재혼시키려고 찾아와 매달리고 있어요. 이번에 언니가 다친 것도 주형인의 아내 서현주가 한 짓이에요. 나나 언니나 더 이상 주씨 일가와 왕래하고 싶지 않아요.”하예정은 대략 이야기했다.하씨 영감은 말을 듣고 나서 주씨 일가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그는 원래부터 김은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에 김은희가 준 돈을 받은 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는데, 그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이미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어떻게 돌려주겠냐며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둘이 원한을 맺게 되었다.“네 언니가 아침 식사 가게를 열었다고 하던데, 장사가 잘되고 있다고 들었다. 너도 부잣집에 시집갔고, 돈 많은 이모도 생겼겠다... 그걸 본 주씨 일가가 가만히 있겠느냐? 당연히 예진이와 재혼할 생각을 하고 있겠지. 염치없기도, 그 집안은 모두 염치없어! 예정아, 어디 한번 말해보거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뭘 도와주면 되냐?”“할아버지, 요즘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그들이 생활비를 좀 주던가요?”하씨네 할멈은 큰 수술을 받았다. 아들딸들이 생활비와 용돈
할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친 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하예정은 남편에게 말했다.“당신의 말대로 할아버지한테 주씨 일가가 다시는 언니를 찾아가지 않게 상대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일이 잘 풀릴진 모르겠지만.”“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겠지만 내 생각엔 분명 우리 생각대로 잘 풀릴 거야.”전태윤은 자신의 제안에 대해 자신만만했다.“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당신이 오늘 밤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어떤 보석을 착용하느냐 하는 거야.”그녀는 남편을 힐끔 쳐다보았다.“왜요?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오려고요?”전태윤은 자기도취 되어 말했다.“난 뺏을 필요 없어. 내가 있는 자리는 항상 중심이거든. 모든 이의 눈길을 끌고 있지. 정남이는 비교도 안 돼.”“...”소정남이 비교가 되든 안 되든 상관없지만, 그녀는 친구의 약혼식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내 드레스는 당신이 사준 게 아니면 이모가 사준 게 대부분이에요. 내가 직접 산 건 몇 번밖에 못 입어봤는데... 당신이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 나절로 산 드레스는 못 입게 하잖아요.”그녀는 고집쟁이 남편을 한번 흘겨보더니 계속하여 말했다.“아무튼, 날씨도 점점 더워지고 있는데, 너무 보수적인 드레스를 입으라고 하지 말아요.”남편이 선물한 드레스는 한 곳도 드러난 데가 없다.이런 보수적인 드레스들은 겨울과 봄에 입기에 적합하다. 이제는 4월에 접어들었는데, 관성의 4월은 매우 덥다. 만약 겨울에 적합한 드레스를 입으면 덥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전태윤은 헤헤 웃기만 하였다.“오늘 밤은 당신 마음대로 골라.”그녀의 말대로 그가 사준 드레스는 하나같이 보수적이니 그녀가 어떤 드레스를 골라 입든 그가 사준 거라면 상관없었다.“아직 이르니 이제 집에 돌아가면 좀 자, 저녁때 내가 당신을 깨울게.”그는 아내의 눈 밑의 다크서클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하예정은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하품했다.“우리 같이 자요. 당신은 나보다 더 피곤할 거 아니에요.낮에는 출근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고
언니가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한 후 그녀는 며칠 동안 계속 잠을 설쳤고 매일 한밤중에 깨어나 조용히 언니의 침대 앞에 가 손을 뻗어 숨을 쉬고 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해야만 안심했다.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어 가족을 잃은 아픔을 맛본 하예정은 하나뿐인 언니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자, 옷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가자.”전씨 집안과 소씨 가문은 친했기에 소정남이 약혼식에 장소민도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 게다가 장소민의 친정과 소씨 가문 사이에도 친분이 있어 그녀의 친정 가족들도 오늘 밤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하예정은 순순히 일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얼마 후, 하예정은 드레스를 갈아입고, 연한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미리 준비한 심효진에게 줄 약혼 선물을 들고 시어머니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전태윤 부자는 식당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고 부자는 각자의 사랑하는 아내를 맞이했다.전태윤은 말했다.“여보, 먼저 뭐라도 좀 먹고 가.”점심때 하예정은 많이 먹지 않았다.소씨 집에 가서 먹기만 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가 배가 고플까 봐 걱정했다.하예정은 일찍이 배가 고팠지만 말하기 거북해 말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 남편이 챙겨주자, 배를 곯지 않게 되었다.네 사람은 이미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전이진은 아직도 여운초에게 소씨 집에 같이 가자고 조르고 있다.“운초야, 나 여태 널 많이 도와줬었잖아, 지금 딱 한 번 나 도와달라고 하는데 거절하는 거야? 의리가 없는데?”전이진은 마치 껌딱지처럼 여운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그녀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전이진의 불평을 듣던 그녀는 동작을 멈추고 그를 향해 돌아서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여러모로 많이 도와준 건 고마워. 하지만 너도 매번 나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밥을 사달라고 했잖아? 이제 우리 사이엔 빚지지 않은 거야. 게다가 연회에 참석하는 일은 너의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해야 할 일이야.”전이진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네
“이진아, 미안.”여운초는 여전히 완곡히 거절했다.전이진은 그녀의 손에서 호스를 뺏은 후 그녀를 카운터 앞으로 끌고 가 앉히고는 말했다.“일단 앉아봐, 할 말이 있어.”“무슨 말?”전이진은 두 명의 점원이 모두 손님에게 꽃을 배달하러 가고 나서 없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은 전이진이 전화를 걸어 다른 사람들에게 두 개의 꽃다발을 주문하라고 분부하여 점원들을 나가게 한 것이다.꽃필무렵의 장사는 여씨 집안의 두 고모의 소동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내가 왜 너에게 계속 도움을 주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여운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매우 알고 싶었다. 전에는 어떻게 물어도 알려주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그가 그녀의 꽃가게에 처음 나타났을 때가 둘이 처음 만난 것이라고 단언컨대 장담할 수 있다.“연후 할머니가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어. 한 장은 나에게, 한 장은 셋째에게. 나에게 준 그 사진은 너의 사진이었어.”여운초는 그 말에 놀랐다.‘전씨네 할머니가 언제 내 사진을...?’그녀의 사진을 전이진에게 주기까지 하다니, 무슨 뜻일까?여운초는 애써 과거를 회상했지만 언제 전씨네 할머니를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녀는 여씨 집안의 투명 인간일 뿐이었고 전씨네 할머니는 전씨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분일 뿐만 아니라 관성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매우 인기 있는 분이셨다.여운초와 할머니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다.전이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는 잠시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진아, 할머니는 어디서 내 사진을 구한 거야? 내 사진을 너에게 준 건 또 무슨 뜻이고?”그는 한마디씩 알려주면서 그녀의 호기심을 끌어올렸다.이 남자가 그녀에게 잘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때로는 아주 못됐다.“맞춰봐.”“못 맞추겠어.”여운초는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알려줬으면 해.”전이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선글라스를 벗기며 말했다.“작은 얼굴에 이렇게 큰 선글라스를 쓰니 얼굴을 가리잖아. 봐
“할머니는 사진 속 여자아이가 자신이 직접 골라준 아내감이라며 1년 안에 사진 속 여자아이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셨어. 안 그러면 집에서 쫓아내겠다고.”“...”‘어떻게 이런 답이 나올 수 있지?’전씨 집안 어르신이 어떻게 자신을 전이진의 아내감으로 찍을 수 있지?그녀는 장님인데.“지금 4월이니까 나에겐 아직 몇 달의 시간이 남았어. 그 시간 동안 너에게 구애할 거고 그다음 순서대로 연애, 약혼, 결혼까지 하면 마무리. 아, 아니지, 할머니한테 쫓겨날까 봐 걱정 안 해도 되... 아니, 잠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자신이 한 말이 여운초로 하여금 그가 단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고 느끼게 할 것 같았다.전이진은 자신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녀에게 접근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그녀가 점점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되었다. 그에게 속아 넘어갔을 때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어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추미자가 체포되고 여 대표가 조사받은 후, 여씨 집안의 외부 사업은 여운초가 휴대폰을 통해 적절하게 안배하고 있었다.전이진이 그녀가 전화하는 것을 직접 듣지 않았더라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장님 아가씨는 이미 묵묵히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전이진은 자기가 아직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그녀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운초야, 난 널 처음 찾아갔을 때부터 널 내 와이프라고 생각하고 있었어.”“...”“놀랐다거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도 좋아. 우리 할머니가 하는 일은 워낙 말도 안 되는 일뿐이니까. 어쨌든 나는 이미 널 와이프로 생각하고 있고 너에게 구애할 거야. 이제 네가 날 사랑하게 되면 약혼, 그리고 결혼식을 할 거야. 아직 8개월이 지나야 설을 쇠게 되니까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해.”만약 가능하다면 그는 1년 안에 아이까지 가질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의 인생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뒤의 말은 여운초에게 쫓겨날까 봐 감히 말하지는 못했다.그녀는 화를 낼 때면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
윤미라는 노동명이 우빈의 계부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적어도 노동명의 가정에는 아이가 있다.어쩌면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하예진이 또 아이를 낳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빈은 늘 여동생을 원했다.하예정의 배 속에 있는 아기도 다들 아들이라고 여겼다.우빈이가 여동생을 갖고 싶어 하면 아마도 하예진에게 여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를 것이고 노동명에게도 친자식이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그 자식이 딸일지라도 노동명의 핏줄이기만 하면 윤미라는 엄청나게 기뻐할 것이다.물론, 윤미라는 이런 생각들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노동명의 교통사고는 윤미라 부부의 전통관념을 약화시켰던 것이다.“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나면 또 올게요. 우빈이는 아마 자주 오게 될걸요.”하예정이 여전히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하자 윤미라도 어쩔 수 없이 영양제를 억지로 하예정에게 쑤셔 넣어주었다.“아주머니, 저의 허리를 보세요. 더 몸보신했다가 허리가 더 굵어질 것 같아요.”하예정이 지금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보양식이다.그녀의 집에는 보양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윤미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예정 씨가 뚱뚱한 게 아니라 임신하니까 허리둘레가 변한 거예요. 정상인걸요. 임신 말기로 되면 배가 뽈처럼 통통해져 허리가 더 굵어질 거예요. 아기가 나오면 서서히 살이 빠질 테니까 얼른 가져가세요. 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보양식 외, 우빈이가 좋아하는 간식도 들어있어요. 예정 씨와 우빈을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라고 하고 싶은데 급히 떠나려고 하시길래 이렇게 포장해 드렸어요.”윤미라는 또 돈 봉투 두 개를 꺼내 용정과 우빈에게 건네주었다.두 아이 모두 그 봉투를 받을 엄두를 못 냈다.윤미라는 웃으며 용정에게 돈 봉투를 쥐여주면서 말을 건넸다.“용정아, 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돈 봉투를 주는 거야. 얼른 받아.”용정이가 하예정을 바라보자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받으라고 했다. 용정은 그제야 감히 받아들이며 윤미라에게 고맙다고 인
우빈은 무척 실망했다.우빈은 용정이가 벌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용정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책을 베껴 쓸 줄 알아? 힘들지 않아?”용정과 우빈은 나이가 비슷했다. 우빈은 지금도 간단한 숫자 몇 개와 시 몇 수밖에 외우지 못했다.하예진 자매는 우빈이가 어릴 적엔 주로 잘 먹고 잘 놀아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빈에게 너무 많은 학업적인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하여 우빈은 유치원에 가는 것이 너무 쉽고 너무 즐거웠다.우빈도 한동안 유치원에 가기 싫어 맨날 입만 삐죽삐죽 내밀면서 유치원 생활이 너무 재미없다고 느꼈다.“이해하지는 못해요. 사부님께서 의학책을 외우라고 가르쳐 주셔서 외우고는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베끼지 못해도 베껴야 하거든요. 아니면 사부님께서 맛있는 음식도 주지 않으세요. 그리고 저에게 책을 베끼어 쓰라고 벌할 때면 저는 한 페이지를 아주 오랫동안 베껴야 겨우 완성할 수 있어요.”비록 용정은 총명하고 아는 글자가 우빈보다 훨씬 많으며 쓸 줄도 알지만 어쨌든 겨우 서너 살 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수많은 글씨가 박힌 책 한 페이지를 베끼라고 하니, 용정에게는 아주 무거운 임무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한 번 벌을 받아 본 용정은 겁에 질렸다.사부님은 용정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의학책을 베끼어 쓰게 하겠다는 말을 꺼내곤 했다. 그러면 용정은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하예정은 용정의 머리를 가여운 표정으로 쓰다듬으며 위로했다.“수고했어.”우빈은 아직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용정은 지옥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다행히 신의 일행은 “도”를 잘 장악하고 있어서 용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그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게 되면 용정에게 며칠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그를 A시로 돌려보내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묵게 하면서 긴장을 풀게 했다.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면 역효과를 볼 것이다.윤미라는 용정을 처음 보았다. 용정의 말을 듣던 윤미라는 하예정에게
“이번 주 금요일에 네가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아저씨가 널 데리고 강성으로 올게.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갈 거야, 알았지?”노동명은 우빈에게 약속했다.이렇게 되면 금요일에 노동명은 우빈과 함께 떳떳하게 강성으로 올 이유가 생기게 된 셈이다.“정말? 아저씨, 거짓말 아니죠?”“난 어린이를 속이지 않거든. 아저씨가 성실하다는 생각 안 들어?”우빈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노동명이 정말 성실하다고 느꼈고 이내 대답했다.“그럼 아저씨 믿을게요. 우리가 엄마를 찾아가는 것을 엄마가 허락하셨어요? 우리가 가면 엄마의 일을 방해하지 않을까요?”하예정은 우빈에게 하예진이 요즘 바쁘다고 말했다.우빈은 하예진이 이렇게 바쁜 이유가 바로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을 잘살게 하고 싶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우빈은 자신의 현재 생활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녀석은 자신의 엄마가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런데 하예진이 직장을 다니면서 돈 벌어야 한다고 했기에 철이 든 우빈은 늘 하예진을 지지했다.“괜찮아. 주말에 오면 네 엄마도 쉴 거야. 마침 우리가 네 엄마를 모시고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도 해줄 수 있잖아. 그러면 다음 주에 출근할 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우빈은 여전히 걱정하며 말했다.“아저씨, 어머니께서 정말 동의하시는지 잘 물어봐 주세요.”노동명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하예진에게 돌려주었다. 그렇게 하예진 모자가 전화로 의논하다가 결국 하예진은 아들 우빈의 고집에 못 이겨 그가 금요일에 찾아오는 것에 동의했다.사실 하예진도 우빈이가 보고 싶었다.그녀는 노동명이 곁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하예진의 허락을 받은 우빈은 무척 즐거워하며 얼마 안 가서 통화를 끝냈다.우빈은 핸드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물었다.“이제 괜찮아졌지? 서럽지 않지?”우빈은 기뻐하며 대답했다.“금요일에 엄마를 찾아갈 수 있어요. 이모,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월요일이야.”우빈은 또 물었다.“월요일부터 금
노동명은 하예진이 가슴 아파할까 봐, 또 격려의 말들을 늘어놓을까 봐 자신이 폐인이라는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하예진은 호텔에 비치된 주전자를 씻고 주전자로 물을 끓였다. 그리고 컵을 씻어 녹차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녹차 한 잔을 타서 가져다주었다.하예진은 찻잔을 침대 머리맡 카운터에 놓고 노동명에게 말했다.“지금은 물이 뜨거워서 좀 이따가 마셔요.”따르릉...하예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더니 노동명에게 말했다.“예정이에요.”그녀는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서둘러 받았다.“예정아, 뭔 일 있어?”“엄마.”전화기 건너편에서 앳된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빈아, 우빈이가 드디어 엄마가 생각났나 보네. 엄마한테 전화할 줄 다 알고.”하예진은 웃으며 우빈을 조롱했다.우빈이 입을 삐죽 내밀며 억울하다는 듯 다시 엄마를 불렀다.아들의 억울한 어조를 알아챈 하예진이 물어보았다.“왜? 기분이 안 좋아? 친구랑 싸웠어?”“아니요. 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빠요. 저 몰래 아무 말도 없이 엄마 보러 갔어요. 제가 제 친구를 아저씨한테 소개해 주려고 이모한테 부탁해 아저씨 찾으러 왔는데 글쎄 노 할머니께서 아저씨가 엄마 찾으러 가셨다고 한 거 있죠?”우빈 녀석은 너무 서러서 계속해서 말했다.“아저씨는 말도 없이... 제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저하고 말 좀 하시지. 그럼 저도 아저씨 따라서 엄마한테 갔을 텐데. 아저씨는 약속을 어기는 나쁜 사람이에요.”하예진이 출장을 간 후 노동명은 분명히 우빈에게 나중에 하예진이 보고 싶으면 노동명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하예진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다.우빈은 그 당시 노동명이 그의 친아버지보다도 더 잘해준다고 생각했다.주형인은 매번 우빈을 볼 때마다 잘 대해주지만,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빈은 주형인이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여겼다.노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주형인과 주경진 부부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