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그저 한번 말해봤을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여보, 밸런타인데이에 나한테 준 차도 숙희 이모에게 함께 가져오라고 해요. 차가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요.”“알았어.”전태윤은 빙그레 웃으며 응낙했다.저번 밸런타인데이에 아내에게 주려 한 선물이 드디어 쓸모 있게 됐다.“예정아, 잘한다. 남자가 돈을 버는 것은 다 여자를 위해 쓰기 위한 거니, 네가 많이 쓸수록 남자는 더 즐거워하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네가 쓰지 않으면 그 돈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해,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전혀 성취감이 없을 거다.”“할머니,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전태윤은 평소 생각만 나면 생활용 카드에 돈을 넣는다.그녀는 자신의 예금은 이것저것에 거의 다 써버렸지만, 그가 준 돈은 아무리 써도 다 쓸 수 없었다.게다가 그녀도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현재 그녀의 모든 옷과 신발, 그리고 이제는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도 모두 전태윤이 도맡았다.그 때문에 현재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녀는 매번 쇼핑하러 가면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른다.“할머니, 제가 전 재산을 다 주려 했는데 예정이가 거절했어요.”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며 하예정이 멍청하다고 말했다. 전태윤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기만 하면 관성의 여자 갑부가 될 수 있을 텐데. 서점을 차리니, 프로젝트에 투자하니 할 것도 없이 전태윤의 돈을 착취하기만 하면 아주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역시 내 친할머니야!’아침 식사 후, 전태윤 부부는 먼저 하예진의 가게에 우빈이를 데려다 주러 갔고, 그 후 전태윤은 아내를 서점까지 바래다 준 후 비로소 출근했다.그와 동시에, 여씨 별장에서는.여씨 사모님이 한창 여운초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여운초는 엄마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수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씻었다.그녀는 매일 흰죽이나 빵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했다.여씨 일가에도 요리사가 있지만, 요리사가 준비한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는
“여보, 우리 빨리 운별이 구해내요. 우리 아가가 언제 이런 고생을 해봤겠어요?”여씨 사모님의 눈에는 막내딸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도 이처럼은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현재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은 딸보다 훨씬 더 철이 들어 여씨 사모님은 매달 아들의 교내 식사 카드에 돈을 넣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들이 여운초를 너무 챙긴다는 것이다.아들이 집에 있을 땐 여씨 사모님은 아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온화한 태도로 여운초를 대하곤 한다.“운별이는 보름만 버티면 돼, 보름만 지나면 바로 나오니까 우리가 현재 걱정해야 할 것은 전씨 사모님이 고소하느냐 마냐야. 또 사과하러 가야 하게 생겼어.”소중한 딸이 사고를 치자 여 대표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지만, 딸을 건져내려는 생각뿐인 아내와는 달리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우리가 사과하지 않은 게 아니잖아요, 운초에게 그쪽 가게에 가서 대신 사정하라고 했는데, 다 소용없었어요. 그년, 우리 운별을 가둬두려고 마음먹은 거예요. 지금 15일 구금되는 것도 마음이 아파 죽겠는데, 만약 또 고소당하기라도 한다면...”여씨 사모님은 말하면서 눈이 빨개졌다.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여 대표가 말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운별에게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 가벼운 판결을 받아내는 수밖에. 이번 일은 운별이가 잘못했어, 자칫하단 무거운 판결을 받을지도 몰라. 당신도 요즘 좀 조심해, 아무 짓도 하지 마. 어제 관성동물원에서 전씨 사모님의 외조카가 하마터면 유괴당할 뻔했다던데, 이 일 당신이 지시한건 아니겠지?”아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 대표는 거듭 당부했다.“당신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 운별이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잘 봐봐. 여기는 관성이야. 관성은 전씨, 성씨와 소씨, 그리고 노씨 가문의 천하지. 그들 4대 가문이 손을 잡으면 우린 바로 끝장이야.”여씨 사모
그녀는 차 쪽을 향해 쳐다보며 차를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보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고, 약간의 실루엣이 보이긴 하였지만, 그걸로 누구인지 분별하는 건 불가능했다.조금만 애쓰면 보일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해도 보이지 않으니...“매일 걸어서 가게에 가나요?”이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목소리였다.전이진은 하예정에게 불려 여운초를 꽃가게로 바래다준 후, 여운초가 감사를 표하고 이름을 묻자, 형님처럼 신분을 숨기지 않고 바로 자기가 전씨 가문의 둘째인 전이진이라고 알려줬다.“이진 씨.”그녀는 얼굴에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혹시 집에 운전기사가 따로 없는 거예요?”“여씨 가문이야 당연히 운전기사가 있죠. 다만 저에게 없을 뿐이에요.”전이진은 마음이 착잡했다. 할머니가 골라주신 아내는 장님인 데다가 가엾게도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있었다.“타요, 가게까지 바래다줄게요.”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서서 그에게 물었다.“이진 씨는 왜 여기 계신 거죠?”“내가 이곳에도 별장을 하나 사놓은 게 최근에야 생각이 나서 잠시 와 머물고 있거든요.”“이진 씨는 정말 많은 집을 소유하고 계시네요.”여씨 일가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관성에서도 유명한데 주로 부자들이 이곳에 집을 사놓고 산다.“적지는 않죠. 어떤 집은 산 뒤 별로 살아본 적이 없어 생각나면 며칠 와서 묵고,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놔뒀다가 집값이 오를 때 팔아버리곤 해요. 자, 타세요. 비가 와서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요.”전이진은 여운초를 차에 태웠다.“마침 가게에 가서 꽃 살 생각이었거든요.”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차에 탔다.그와는 겨우 두세 번밖에 만난 적이 없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모두 잘생겼다고 하니 틀림없이 잘생긴 남자일 것이다.여운초는 앞을 더듬으며 차에 다가가 차 문을 연 다음, 자리에 앉은 후 우산을 모아 발 옆에 세워뒀다.“안전벨트 해요.”곁에서
전이진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여운초 씨는 보이지 않으니, 버스가 지나가도 모르겠는데요.”“마음씨 착한 경비원 아저씨들이 매일 버스를 세워서 제가 오르도록 도와주고 계세요.”그는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전이진은 원래 이렇게 빨리 행동할 생각이 없었는데, 형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나서 형과 형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하지만 할머니께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만 주셨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서로 잘 모르면 화제가 없는 법이다.그는 묵묵히 차를 몰았고, 그녀는 말없이 차 안의 음악을 듣기만 하였다.좀 지나 차가 꽃가게 앞에 도착했다.“운초 씨 가게에 도착했어요.”전이진의 말이 끝나자, 여운초는 안전벨트를 풀고 허리를 굽혀 자신의 우산을 집어 든 다음, 손으로 더듬으면서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다.하지만 남의 차를 타고 온 탓에 그녀는 자신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 몰라서 우산을 쓴 채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시각장애인의 생활방식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데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패턴이 바뀌면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평소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여운초는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면 어느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야 하는지 잘 기억하고 있는데 보통 오차가 없었다.오늘은 전이진이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 수 없어 차에서 내린 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좀 지나 마음을 진정시킨 여운초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다가 한 사람과 부딪혔다.“죄송해요, 죄송해요.”그녀는 서둘러 사과했다.“오른쪽으로 돌아서 앞으로 가시면 가게 앞이에요.”전이진이 친절하게 여운초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방금 부딪힌 사람은 다름 아닌 차를 에돌아서 그녀와 함께 가게로 들어가려던 전이진이였다.방향을 잘못 짚은 여운초는 곧장 앞으로 가다가 전이진과 부딪쳤던 거다. 만약 그녀가 그와 부딪히지 않고 계속 앞
“이런 일을 막힘없이 하는 걸 보면 운초 씨가 보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여운초는 나무막대를 제자리에 놓고 담담하게 말했다.“손에 익으면 자연히 능숙해져요. 꽃가게를 연 지도 몇 년 됐고,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감각만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문을 연 후 그녀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화분을 능숙하게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이진 씨는 오늘 무슨 꽃을 사시게요? 천천히 둘러보세요.”전이진도 더 이상 구경만 하지 않고 그녀를 도와 화분들을 꽃가게 문 앞으로 모두 옮겼다.화분마다 꽃 이름이 새겨진 작은 나무 패쪽이 붙어있었다. 여운초는 손으로 나무 패쪽에 새겨진 글씨를 만져보면 손님이 어떤 꽃을 골랐는지 알 수 있다.“보이지 않아서, 장사하기 불편하시겠어요.”“불편해도 해야죠.”여운초의 어조는 항상 담담하고 부드럽다.전이진은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큼직한 선글라스 때문에 손바닥만 한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분명히 재벌 집 딸인데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가게를 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여씨 일가에서 설마 생활비마저도 안 주는 건가?“여씨 사모님이 친엄마가 맞아요?”전이진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잠자코 있던 여운초가 대답했다.“오히려 친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엄마가 맞아요.”“친엄마인데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여씨 가문의 큰따님은 총애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인보다도 못한 투명 인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인근 별장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전이진이 사람을 시켜 일부러 알아보지 않아도, 여운초가 박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전기 주전자와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 여운초는 전기 주전자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운초 씨, 차를 안 끓여도 괜찮아요, 저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여운초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전이진이 한마디 했다.그녀는 손동작을
남동생이 여운초에게 잘해주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여운별은 엄마더러 남동생을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 학교에 보내게 하여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그래도 남동생은 여전히 큰누나에게 잘해준다.여운초보다 9살 연하인 남동생은 당시 기숙사에 있었던 탓에 큰누나가 아픈 걸 몰랐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큰누나를 병원에 보내도록 부모님을 독촉하였다면 큰누나가 실명하지 않았을 거라며 자책하고 있다.그 집에서 여운초는 남동생에게서만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그녀가 담담한 말투로 가슴 아픈 말을 내뱉자 전이진의 마음도 저도 모르게 아파 났다.아마 그는 처음부터 할머니가 골라준 짝인 그녀를 자기 여자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생 끝에 낙이 올 거예요.”전이진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자 여운초가 그를 향해 웃었다.“이진 씨, 저를 불쌍하게 여기실 필요 없어요. 여태 저를 어떻게 대하였든지 어쨌거나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잖아요.”비록 그들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사고 싶은 꽃은 고르셨나요?”여운초가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익숙하지도 않은 전이진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내가 운초 씨를 가게에 모셔 왔으니, 운초 씨가 나한테 꽃다발을 선물로 주는 건 어때요?”“...”진이진이 꽃다발을 선물로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이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없는 여운초는 잠깐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만들려고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붉은 장미꽃과 안개꽃을 섞어 꽃다발을 만들어주세요.”“이진 씨, 제가 선물로 드리는 꽃다발에 장미꽃은 어울리지 않아요.”“형수님이 장미꽃다발을 사서 형에게 드렸는데, 형이 내 앞에서 어찌나 자랑하던지.”“이진 씨도 나한테서 장미꽃다발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시려고요?”“왜, 안 돼요?”그녀는 그의 와이프 후보이고, 앞으로 십중팔구 그와 결혼할 것이다.와이프 될 사람이 남편에게 장미꽃다발을 선물하면 라이벌을 물리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을 연모하는 아가씨들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도 큰형
지금 그와 여운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전이진은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녀가 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이 꽃다발도 예쁘네요. 선물 감사해요.”전이진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한참 감상하다가 작별을 고했다.“그럼, 먼저 출근할게요.”꽃가게를 나온 전이진은 꽃다발을 차 조수석 위에 놓고 다시 한번 여운초를 돌아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문어구에서 밖의 인기척을 엿듣고 있던 여운초는 차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처음 보아서 흥미를 느낀 건가?그녀는 그가 시각장애인인 자신에게 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여운초가 준 꽃다발을 안고 전씨 그룹으로 돌아온 전이진은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전씨 그룹 사람들 모두가 의아해했다.부 대표님 몸에 꽃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 웬 꽃다발을 안고 꽃보다 더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보니.전이진은 일부러 그의 큰형 사무실에 들렀다.동생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본 전태윤은 눈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놀림조로 물었다. “너 작전 개시한 거야? 할머니 말씀 죽어도 안 따른다며? 호영이랑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간다고 하지 않았어?”할머니가 자기에게 남자 같은 여자를 결혼 상대로 골라주었다며, 셋째 전호영의 저항이 가장 심했다.전호영은 적잖은 돈을 들여 소정남에게 고현의 신상을 확실히 알아보라고 부탁한 후, 둘째 형과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가 할머니를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떠들다가 할머니가 다음날 출국하는 비행기표와 여권을 보내오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전호영도 그저 입으로 떠들어댈 뿐이었다. 아프리카로 가서 햇볕에 피부가 그을려서 검둥이가 되면 오히려 더 후회할 것이다.그 후부터 전호영은 감히 앞에서 떠들지는 못하고 전이진과 둘이 있을 때만 불만을 늘어놓았다.“난 죽어도 안 따른다고 말한 적 없어.
“전설의 신의? 눈도 치료할 수 있대?”“신의는 당연히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지. 그냥 신의라고 불렸겠냐?”“신의는 어디에 있는데? 내가 사람을 시켜서 모셔올게.”“한때 A시의 예진 리조트에 나타났었는데, 요즘은 거기를 떠났다더라. 신의의 제자가 예씨 가문 셋째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지만 넷째와는 모순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예준하 씨에게 물어봐.”“신의의 제자는 성이 정씨인 아주 대단한 여자인데 만성 남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과 손잡고 만성의 가장 강한 라이벌을 해결했대. 어쨌든 무예도 의술만큼 훌륭하다고 하더라. 아 참, 그리고 독도 잘 쓰고.”물론 정겨울 씨는 의사이니 사람을 구하는 것이 위주이다. 설령 그녀가 독을 잘 쓴다고 해도 독으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청하기 어려울 텐데.”“한 번 청해 안 되면 두 번, 세 번, 될 때까지 하면 되지. 하지만 신의는 이제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모두 정겨울 씨가 나서서 치료하고 있다더라. 여운초 씨 눈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면, 일단은 병 때문에 실명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일부러 독을 타서 중독되었는지 알아내야 해. 지금 여운초 씨 생활 환경은 어때? 안전해?”“형수님 말로는 병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고...”전태윤은 자기 동생을 바라보며 그가 여운초에게 아직 진정으로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만 호기심과 신선감이다. 만약 정말로 여운초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녀의 마음속 비밀을 파헤치려고 할 것이다.전태윤은 결국 그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둘째의 일이니 스스로 천천히 깨닫게 놔둘 생각이었다.자기도 수많은 거절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과 같은 행복한 삶을 얻었으니까.“다음에 여 대표를 만나면 내가 알아보지 뭐. 형, 나 먼저 일하러 갈게.”형한테 꽃다발을 자랑하고 난 전이진은 형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고 꽃다발을 안은 채 사무실로 돌아갔다.한편, 관성중학교 앞 서점 안.하예정은 성소현과 심효진이 제출한 의견에 따라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