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그저 한번 말해봤을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여보, 밸런타인데이에 나한테 준 차도 숙희 이모에게 함께 가져오라고 해요. 차가 없어서 너무 불편하네요.”“알았어.”전태윤은 빙그레 웃으며 응낙했다.저번 밸런타인데이에 아내에게 주려 한 선물이 드디어 쓸모 있게 됐다.“예정아, 잘한다. 남자가 돈을 버는 것은 다 여자를 위해 쓰기 위한 거니, 네가 많이 쓸수록 남자는 더 즐거워하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네가 쓰지 않으면 그 돈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해,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전혀 성취감이 없을 거다.”“할머니,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아요.”전태윤은 평소 생각만 나면 생활용 카드에 돈을 넣는다.그녀는 자신의 예금은 이것저것에 거의 다 써버렸지만, 그가 준 돈은 아무리 써도 다 쓸 수 없었다.게다가 그녀도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현재 그녀의 모든 옷과 신발, 그리고 이제는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도 모두 전태윤이 도맡았다.그 때문에 현재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그녀는 매번 쇼핑하러 가면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른다.“할머니, 제가 전 재산을 다 주려 했는데 예정이가 거절했어요.”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며 하예정이 멍청하다고 말했다. 전태윤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기만 하면 관성의 여자 갑부가 될 수 있을 텐데. 서점을 차리니, 프로젝트에 투자하니 할 것도 없이 전태윤의 돈을 착취하기만 하면 아주 편히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역시 내 친할머니야!’아침 식사 후, 전태윤 부부는 먼저 하예진의 가게에 우빈이를 데려다 주러 갔고, 그 후 전태윤은 아내를 서점까지 바래다 준 후 비로소 출근했다.그와 동시에, 여씨 별장에서는.여씨 사모님이 한창 여운초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여운초는 엄마의 욕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수저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씻었다.그녀는 매일 흰죽이나 빵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했다.여씨 일가에도 요리사가 있지만, 요리사가 준비한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는
“여보, 우리 빨리 운별이 구해내요. 우리 아가가 언제 이런 고생을 해봤겠어요?”여씨 사모님의 눈에는 막내딸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도 이처럼은 걱정하지 않는 듯 했다.현재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들은 딸보다 훨씬 더 철이 들어 여씨 사모님은 매달 아들의 교내 식사 카드에 돈을 넣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들이 여운초를 너무 챙긴다는 것이다.아들이 집에 있을 땐 여씨 사모님은 아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온화한 태도로 여운초를 대하곤 한다.“운별이는 보름만 버티면 돼, 보름만 지나면 바로 나오니까 우리가 현재 걱정해야 할 것은 전씨 사모님이 고소하느냐 마냐야. 또 사과하러 가야 하게 생겼어.”소중한 딸이 사고를 치자 여 대표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지만, 딸을 건져내려는 생각뿐인 아내와는 달리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우리가 사과하지 않은 게 아니잖아요, 운초에게 그쪽 가게에 가서 대신 사정하라고 했는데, 다 소용없었어요. 그년, 우리 운별을 가둬두려고 마음먹은 거예요. 지금 15일 구금되는 것도 마음이 아파 죽겠는데, 만약 또 고소당하기라도 한다면...”여씨 사모님은 말하면서 눈이 빨개졌다.그러자 잠자코 듣고 있던 여 대표가 말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운별에게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해 가벼운 판결을 받아내는 수밖에. 이번 일은 운별이가 잘못했어, 자칫하단 무거운 판결을 받을지도 몰라. 당신도 요즘 좀 조심해, 아무 짓도 하지 마. 어제 관성동물원에서 전씨 사모님의 외조카가 하마터면 유괴당할 뻔했다던데, 이 일 당신이 지시한건 아니겠지?”아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여 대표는 거듭 당부했다.“당신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 운별이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잘 봐봐. 여기는 관성이야. 관성은 전씨, 성씨와 소씨, 그리고 노씨 가문의 천하지. 그들 4대 가문이 손을 잡으면 우린 바로 끝장이야.”여씨 사모
그녀는 차 쪽을 향해 쳐다보며 차를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 보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눈앞은 여전히 캄캄했고, 약간의 실루엣이 보이긴 하였지만, 그걸로 누구인지 분별하는 건 불가능했다.조금만 애쓰면 보일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해도 보이지 않으니...“매일 걸어서 가게에 가나요?”이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목소리였다.전이진은 하예정에게 불려 여운초를 꽃가게로 바래다준 후, 여운초가 감사를 표하고 이름을 묻자, 형님처럼 신분을 숨기지 않고 바로 자기가 전씨 가문의 둘째인 전이진이라고 알려줬다.“이진 씨.”그녀는 얼굴에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혹시 집에 운전기사가 따로 없는 거예요?”“여씨 가문이야 당연히 운전기사가 있죠. 다만 저에게 없을 뿐이에요.”전이진은 마음이 착잡했다. 할머니가 골라주신 아내는 장님인 데다가 가엾게도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있었다.“타요, 가게까지 바래다줄게요.”하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서서 그에게 물었다.“이진 씨는 왜 여기 계신 거죠?”“내가 이곳에도 별장을 하나 사놓은 게 최근에야 생각이 나서 잠시 와 머물고 있거든요.”“이진 씨는 정말 많은 집을 소유하고 계시네요.”여씨 일가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관성에서도 유명한데 주로 부자들이 이곳에 집을 사놓고 산다.“적지는 않죠. 어떤 집은 산 뒤 별로 살아본 적이 없어 생각나면 며칠 와서 묵고,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놔뒀다가 집값이 오를 때 팔아버리곤 해요. 자, 타세요. 비가 와서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요.”전이진은 여운초를 차에 태웠다.“마침 가게에 가서 꽃 살 생각이었거든요.”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결국 그의 차에 탔다.그와는 겨우 두세 번밖에 만난 적이 없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이 모두 잘생겼다고 하니 틀림없이 잘생긴 남자일 것이다.여운초는 앞을 더듬으며 차에 다가가 차 문을 연 다음, 자리에 앉은 후 우산을 모아 발 옆에 세워뒀다.“안전벨트 해요.”곁에서
전이진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여운초 씨는 보이지 않으니, 버스가 지나가도 모르겠는데요.”“마음씨 착한 경비원 아저씨들이 매일 버스를 세워서 제가 오르도록 도와주고 계세요.”그는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은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전이진은 원래 이렇게 빨리 행동할 생각이 없었는데, 형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나서 형과 형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하지만 할머니께서 가장 기본적인 자료만 주셨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서로 잘 모르면 화제가 없는 법이다.그는 묵묵히 차를 몰았고, 그녀는 말없이 차 안의 음악을 듣기만 하였다.좀 지나 차가 꽃가게 앞에 도착했다.“운초 씨 가게에 도착했어요.”전이진의 말이 끝나자, 여운초는 안전벨트를 풀고 허리를 굽혀 자신의 우산을 집어 든 다음, 손으로 더듬으면서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다.하지만 남의 차를 타고 온 탓에 그녀는 자신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지 몰라서 우산을 쓴 채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시각장애인의 생활방식은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데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패턴이 바뀌면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평소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여운초는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면 어느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야 하는지 잘 기억하고 있는데 보통 오차가 없었다.오늘은 전이진이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알 수 없어 차에서 내린 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좀 지나 마음을 진정시킨 여운초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다가 한 사람과 부딪혔다.“죄송해요, 죄송해요.”그녀는 서둘러 사과했다.“오른쪽으로 돌아서 앞으로 가시면 가게 앞이에요.”전이진이 친절하게 여운초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방금 부딪힌 사람은 다름 아닌 차를 에돌아서 그녀와 함께 가게로 들어가려던 전이진이였다.방향을 잘못 짚은 여운초는 곧장 앞으로 가다가 전이진과 부딪쳤던 거다. 만약 그녀가 그와 부딪히지 않고 계속 앞
“이런 일을 막힘없이 하는 걸 보면 운초 씨가 보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여운초는 나무막대를 제자리에 놓고 담담하게 말했다.“손에 익으면 자연히 능숙해져요. 꽃가게를 연 지도 몇 년 됐고, 매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감각만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문을 연 후 그녀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화분을 능숙하게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이진 씨는 오늘 무슨 꽃을 사시게요? 천천히 둘러보세요.”전이진도 더 이상 구경만 하지 않고 그녀를 도와 화분들을 꽃가게 문 앞으로 모두 옮겼다.화분마다 꽃 이름이 새겨진 작은 나무 패쪽이 붙어있었다. 여운초는 손으로 나무 패쪽에 새겨진 글씨를 만져보면 손님이 어떤 꽃을 골랐는지 알 수 있다.“보이지 않아서, 장사하기 불편하시겠어요.”“불편해도 해야죠.”여운초의 어조는 항상 담담하고 부드럽다.전이진은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정교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큼직한 선글라스 때문에 손바닥만 한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분명히 재벌 집 딸인데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그녀는 가게를 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여씨 일가에서 설마 생활비마저도 안 주는 건가?“여씨 사모님이 친엄마가 맞아요?”전이진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잠자코 있던 여운초가 대답했다.“오히려 친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엄마가 맞아요.”“친엄마인데 그렇게 못되게 굴어요?”여씨 가문의 큰따님은 총애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인보다도 못한 투명 인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인근 별장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전이진이 사람을 시켜 일부러 알아보지 않아도, 여운초가 박대를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전기 주전자와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 여운초는 전기 주전자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했다.“운초 씨, 차를 안 끓여도 괜찮아요, 저는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여운초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전이진이 한마디 했다.그녀는 손동작을
남동생이 여운초에게 잘해주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여운별은 엄마더러 남동생을 초등학교 때부터 기숙 학교에 보내게 하여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다.그래도 남동생은 여전히 큰누나에게 잘해준다.여운초보다 9살 연하인 남동생은 당시 기숙사에 있었던 탓에 큰누나가 아픈 걸 몰랐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큰누나를 병원에 보내도록 부모님을 독촉하였다면 큰누나가 실명하지 않았을 거라며 자책하고 있다.그 집에서 여운초는 남동생에게서만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그녀가 담담한 말투로 가슴 아픈 말을 내뱉자 전이진의 마음도 저도 모르게 아파 났다.아마 그는 처음부터 할머니가 골라준 짝인 그녀를 자기 여자로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생 끝에 낙이 올 거예요.”전이진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자 여운초가 그를 향해 웃었다.“이진 씨, 저를 불쌍하게 여기실 필요 없어요. 여태 저를 어떻게 대하였든지 어쨌거나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잖아요.”비록 그들한테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사고 싶은 꽃은 고르셨나요?”여운초가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익숙하지도 않은 전이진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내가 운초 씨를 가게에 모셔 왔으니, 운초 씨가 나한테 꽃다발을 선물로 주는 건 어때요?”“...”진이진이 꽃다발을 선물로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이성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없는 여운초는 잠깐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만들려고 꽃을 고르기 시작했다.“붉은 장미꽃과 안개꽃을 섞어 꽃다발을 만들어주세요.”“이진 씨, 제가 선물로 드리는 꽃다발에 장미꽃은 어울리지 않아요.”“형수님이 장미꽃다발을 사서 형에게 드렸는데, 형이 내 앞에서 어찌나 자랑하던지.”“이진 씨도 나한테서 장미꽃다발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하시려고요?”“왜, 안 돼요?”그녀는 그의 와이프 후보이고, 앞으로 십중팔구 그와 결혼할 것이다.와이프 될 사람이 남편에게 장미꽃다발을 선물하면 라이벌을 물리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을 연모하는 아가씨들도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도 큰형
지금 그와 여운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전이진은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눈치채지 못한 그녀가 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이 꽃다발도 예쁘네요. 선물 감사해요.”전이진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한참 감상하다가 작별을 고했다.“그럼, 먼저 출근할게요.”꽃가게를 나온 전이진은 꽃다발을 차 조수석 위에 놓고 다시 한번 여운초를 돌아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문어구에서 밖의 인기척을 엿듣고 있던 여운초는 차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처음 보아서 흥미를 느낀 건가?그녀는 그가 시각장애인인 자신에게 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여운초가 준 꽃다발을 안고 전씨 그룹으로 돌아온 전이진은 사무실 건물로 들어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전씨 그룹 사람들 모두가 의아해했다.부 대표님 몸에 꽃 귀신이라도 붙은 건가? 웬 꽃다발을 안고 꽃보다 더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보니.전이진은 일부러 그의 큰형 사무실에 들렀다.동생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본 전태윤은 눈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놀림조로 물었다. “너 작전 개시한 거야? 할머니 말씀 죽어도 안 따른다며? 호영이랑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간다고 하지 않았어?”할머니가 자기에게 남자 같은 여자를 결혼 상대로 골라주었다며, 셋째 전호영의 저항이 가장 심했다.전호영은 적잖은 돈을 들여 소정남에게 고현의 신상을 확실히 알아보라고 부탁한 후, 둘째 형과 함께 아프리카로 도망가 할머니를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떠들다가 할머니가 다음날 출국하는 비행기표와 여권을 보내오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전호영도 그저 입으로 떠들어댈 뿐이었다. 아프리카로 가서 햇볕에 피부가 그을려서 검둥이가 되면 오히려 더 후회할 것이다.그 후부터 전호영은 감히 앞에서 떠들지는 못하고 전이진과 둘이 있을 때만 불만을 늘어놓았다.“난 죽어도 안 따른다고 말한 적 없어.
“전설의 신의? 눈도 치료할 수 있대?”“신의는 당연히 무엇이든 치료할 수 있지. 그냥 신의라고 불렸겠냐?”“신의는 어디에 있는데? 내가 사람을 시켜서 모셔올게.”“한때 A시의 예진 리조트에 나타났었는데, 요즘은 거기를 떠났다더라. 신의의 제자가 예씨 가문 셋째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지만 넷째와는 모순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예준하 씨에게 물어봐.”“신의의 제자는 성이 정씨인 아주 대단한 여자인데 만성 남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과 손잡고 만성의 가장 강한 라이벌을 해결했대. 어쨌든 무예도 의술만큼 훌륭하다고 하더라. 아 참, 그리고 독도 잘 쓰고.”물론 정겨울 씨는 의사이니 사람을 구하는 것이 위주이다. 설령 그녀가 독을 잘 쓴다고 해도 독으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청하기 어려울 텐데.”“한 번 청해 안 되면 두 번, 세 번, 될 때까지 하면 되지. 하지만 신의는 이제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모두 정겨울 씨가 나서서 치료하고 있다더라. 여운초 씨 눈을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면, 일단은 병 때문에 실명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일부러 독을 타서 중독되었는지 알아내야 해. 지금 여운초 씨 생활 환경은 어때? 안전해?”“형수님 말로는 병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고...”전태윤은 자기 동생을 바라보며 그가 여운초에게 아직 진정으로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만 호기심과 신선감이다. 만약 정말로 여운초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그녀의 마음속 비밀을 파헤치려고 할 것이다.전태윤은 결국 그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둘째의 일이니 스스로 천천히 깨닫게 놔둘 생각이었다.자기도 수많은 거절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과 같은 행복한 삶을 얻었으니까.“다음에 여 대표를 만나면 내가 알아보지 뭐. 형, 나 먼저 일하러 갈게.”형한테 꽃다발을 자랑하고 난 전이진은 형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고 꽃다발을 안은 채 사무실로 돌아갔다.한편, 관성중학교 앞 서점 안.하예정은 성소현과 심효진이 제출한 의견에 따라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
모연정네 다섯 식구는 저녁에 전용기를 타고 A시로 돌아갈 계획이었다.예준성도 거대한 예진 그룹을 관리하느라 매우 바빴다.“언니가 어젯밤에 늦게 잠들어서 아직도 엄청나게 졸려. 언니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 조금만 더 잘게.”하예진은 정신이 몽롱했고 머리도 약간 아팠다. 그녀는 동생한테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계속 잠을 청하기로 했다.“언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 알았지?”“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넌 집에서 몸조리 잘하고 맘 편히 일하면서 우리 우빈이를 잘 돌봐주면 돼. 언니 걱정은 하지 마. 얼른 일 봐.”하예정은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언니, 나랑 우빈이는 언니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이모가 맡기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너희 보러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조카가 태어나면 꼭 보러 돌아갈 거야.”그녀의 유일한 여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그녀는 반드시 돌아가 지킬 것이다.그녀는 동생의 가족이니까.“내년에야 출산할 수 있을 거야. 아직 배도 안 나왔어.”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2개월이 지나면 배가 나오기 시작할 거야. 다시 출근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중요한 일이 없으면 집에서 태교하면서 쉬어. 어차피 세 사람이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니까 소현이가 주요하게 관리할 거고 너랑 효진 씨는 태교에 집중하면 돼.”“나 아직 움직일 수 없는 단계는 아니야. 뭔가 하긴 해야 해. 매일 집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짜증만 나서 태교에 더 안 좋아.”전태윤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태교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임신 후기에 집에서 태교해도 너무 늦지 않았고 임신 8개월까지 회사에 나가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알았어. 네가 좋을 대로 해. 아무튼 몸조심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 무리하면 언니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나 임산부인데 자꾸 뭐라고 할 거야?”“당연히 해야지. 넌 분명히 나 때와 달리 집에서 편안하게 태교할 수 있단 말
“오빠, 난 이제 빈털터리인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일범은 그래도 이윤정을 많이 아꼈다. 그는 지갑을 꺼내서 연 후 안에 있는 모든 현금을 꺼내 이윤정의 손에 쥐여주고 또 카드 한 장을 꺼내 이윤정에게 쥐여주면서 말했다.“오빠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비밀번호는 내 생일이야. 비록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할 거야.”“일단 호텔을 찾아서 머물고 몸조리를 해. 며칠 후에 엄마 화가 풀리면 내가 네 상황을 엄마한테 설명해 볼게.”이윤정은 현금과 카드를 받고 울면서 말했다.“오빠 정말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어.”정일범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얼른 가봐. 그 사람들이 내가 너한테 돈을 준 걸 알면 다시 뺏어올 거야. 그때 가서 넌 진짜 빈털터리 되는 거야.”이윤정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세 형수로부터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할 거란 걸 알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하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과 이윤미의 고고한 자태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찌르기에는 충분했다.“정일범!”큰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곧바로 이윤정한테 달려들어 현금과 카드를 뺏어갔다.정일범이 아내를 끌어당기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돌아서서 그의 뺨을 내리쳤다.“정일범, 나랑 애들이 집에서 쫓겨나게 하고 싶어? 어젯밤에 어머님이 이 년을 쫓아내라고 할 때 뭐라고 했는지 당신도 들었잖아! 근데 감히 어머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년한테 돈과 카드를 주다니! 죽고 싶은 거면 당신 혼자 죽어. 나랑 애들을 끌어내리지 마!”아내한테 화를 내려고 했던 정일범은 욕을 얻어먹은 후 찍소리 못했다.큰 사모님은 남편이 더 이상 이윤정을 돕지 못하도록 끌고 갔다.오늘과 같은 결과는 그녀가 열심히 판을 짜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얻은 속 시원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대로 남편이 이윤정을 도와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꺼져. 당장 안 꺼지면 사람 불러서 쫓아낼 거야!”큰 사모님은 남편을 끌고
정일범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이윤정은 그의 품에 안겨 펑펑 울기 시작했다.자신도 피해자인데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정일범은 그녀를 안아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저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저 사람들이 너에 대한 불만이 가득해서 기회만 잡으면 널 계속해서 괴롭히려고 할 거야.”이윤정은 오빠들의 편에 섰단 이유로 그의 아내의 미움을 샀다.그녀가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들의 여동생으로서 그녀는 당연히 오빠들 편이었다. 시누이로서 형수 편에 서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이윤미가 세 형수의 편에 선 것은 그녀의 정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오빠들에 대한 정이 없어서였다.“오빠, 나 안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 설명해 드릴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난 정말 모르겠어. 난 피해자고 누군가 날 해치려고 하는 게 분명해. 어젯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일까?”“누군가가 나를 망가뜨리려고 꾸민 짓인 게 틀림없어.”그녀를 해친 사람은 그녀보다 훨씬 더 악랄했다.어젯밤에 일어난 일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게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분석해 보면 누가 그랬는지 짐작이 가긴 했다. 하지만 정일범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이윤정이 마신 반병의 술은 그가 자신의 방에서 다 마시지 못하고 술장에 넣어뒀던 거였다.그날 아버지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에게 술 한 병을 달라고 하셨다.그는 아버지가 취하실까 봐 걱정되어 한 병 통째로 드리지 않고 그가 마셨던 걸로 드렸다.그 술에 누군가가 약을 타서 아버지와 이윤정을 해치려고 한 거였다.누구일까?그가 아니라면 그의 아내일 것이다.그의 아내가 왜 약을 탔을까?그날 밤 정일범은 술 한 병을 따서 잔을 채우고 두 모금 마신 후 소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갔다. 그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가 섹시한 잠옷을 입고 바에 앉아
“처음부터 네 것 아니었잖아. 20 년 넘게 남의 인생 훔치고 부유하게 살아온 넌 이제부터 짐승보다 못한 가난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시골로 꺼져.”“감히 네가 우리 윤미를 촌년이라고 불러? 진짜 촌년은 너잖아! 아퉤!”모든 것을 잃게 된 이윤정에 대한 사모님들의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그들은 온갖 비꼬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이윤정은 앉으면서 말했다.“절대 못 나가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는 거라고 엄마한테 다 설명할 거예요. 누가 나를 해치려고 했는지 알아내면 그 사람 가만히 안 둘 거예요! ”그녀가 갑자기 세 사모님을 노려보며 물었다.“날 해치려고 한 사람이 설마 당신들이에요?”이씨 집안 큰 사모님은 이윤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너 같은 짝퉁이 내 손을 더럽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싸구려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남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갖춘 거니? 이년아, 잘 들어. 네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어머님 머릿속에 새겨져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 넌 이제 끝났어.”이씨 집안 셋째 사모님은 몸을 돌려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나왔다.그녀는 모든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윤정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었다.“악!”이윤정은 비명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가뜩이나 날씨가 추운데 찬물까지 끼얹었으니, 이윤정은 너무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흠뻑 젖었고 심지어 바닥에 있는 옷들도 꽤 많이 젖어버렸다.“셋째 동서, 가서 물 한 바가지 더 가져와요. 저년이 덮을 수 있는 옷들을 싹 다 적셔버리고 얼어 죽게 내버려둬요. 언제까지 버티는지 한번 보자고요.”큰 사모님은 셋째 사모님에게 물 한 바가지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나도 같이 가요.”둘째 사모님도 뒤를 따랐다.곧 두 사모님은 각각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눈이 높아 그 누구도 좋아해 본 적 없었다.참, 남자를 좋아했었지!이제 고현과 전호영은 짝을 지어 다녔다.전호영이 있는 장소에서 종종 고현을 볼 수 있었다. 고현이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전호영도 따라서 나타났다.젊고 예쁜 아가씨들은 한 남자에게 졌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왜 이렇게 됐지?”이윤정이가 중얼중얼 혼잣말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이윤정은 여전히 이씨 가문의 둘째 딸이었다.그러나 오늘 그녀는 이미 이씨 가문의 쓰레기로 되었다.이은화는 이윤정을 내던졌다.이윤정도 그녀의 양부모님을 대할 면목이 없다.그녀가 친부에게 찾아가려고 해도 그녀의 친아버지는 아직 감옥에 계시고 친어머니는...이윤정은 그녀의 친가족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더니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이윤정의 친엄마 김현미가 이윤정을 매우 사랑하더라도 이윤정은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김현미 부부가 이윤정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심지어 이윤정에게서 이득만 얻어내려고 할 뿐이다.하지만 김현미 부부에게 쫓겨나게 되면 이윤정은 또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지금 이윤정은 가진 게 하나도 없다.또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이윤정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 다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이 바로 그녀의 세 형수님이었다.이윤정은 희망 섞인 눈빛을 거두어들였다.예전 같았으면 조윤 일행이 그녀의 편 들었을 텐데, 지금은...“형수님.”이윤정은 조윤 일행을 향해 인사했다.“어머, 윤정이 아니야? 너야? 머리를 풀어헤치니 너무 초췌해 보여. 난 거지가 온 줄 알고 동서들이랑 널 내쫓으려고 했는데 너구나. 응? 날 형수님이라고 불렀어? 하지 마. 난 네 형수님이 아니야. 난 거지 시누이가 없어. 윤미가 내 친시누이거든. 너처럼 짝퉁 시누이는 자기 처지도 모르고...”이때 이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 김여희가 말을 이었다.“내 말이. 짝퉁은 여전히 짝퉁일
이윤미는 너그럽게 대답했다.“우리 엄마 앞에서 조심하세요. 엄마가 지금 여전히 화내고 계시거든요.”이윤미는 집 밖으로 나갔다.집사는 그녀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큰아가씨, 실례지만 어젯밤에 어르신과 둘째 아가씨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가주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둘째 아가씨를 내쫓으셨고 또 정 어르신께서도 병원에 실려 갔잖아요. 둘째 아가씨께서 어르신을 해친 거예요?”진숙녀는 예전의 집사가 아니지만, 그녀가 이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이은화가 가주 자리에 오른 뒤 진숙녀가 이씨 가문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일했다. 그리고 정군호 부부의 일을 알고 있었기에 이윤정이 정군호를 다치게 했어도 진숙녀는 이은화가 이토록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아줌마, 저희 엄마가 아줌마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묻지 않으시는 게 나을 거에요 너무 많이 아시게 되면 다치실 거에요. 저도 아줌마를 위해서 하는 소리예요”집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얼른 아침 운동 하세요. 저는 이만 주방에 가서 아침 식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볼게요. 아가씨가 아침에 건강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을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겠습니다.”진숙녀는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이윤미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집안으로 돌아갔다.이윤미는 먼저 정원에서 몸을 풀고 두 바퀴를 뛰다가 별장 대문으로 향했다.대문이 아직 잠겨 있었지만 이윤미는 열쇠를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열쇠로 문을 열었다.문 여는 소리에 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이윤정이 깨어나게 되었다.이윤정은 고개를 들어 별장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더니 재빨리시 일어나 앉았다. 피곤한지, 옷을 너무 많이 입은 탓인지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그녀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더니 비틀거리다가 결국 땅에 넘어졌다.이윤정은 마침 이윤미의 발밑으로 엎어지게 되는 바람에 이윤미에게 큰절하게 된 셈이다.이윤미는 멈춰 서서 이윤정을 내려다보았다.이윤정은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형수님 혼자 보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둘째 형수님이랑 셋째 형수님과 함께 봐야 재미있죠. 우리 엄마가 돌아오셔서 형수님들을 보시게 된다고 해도 엄마는 형수님들을 나무라지 않으실 거예요. 엄마가 홧김에 윤정이를 쫓아내서 이씨 성을 따르지 못한다고 하셔도 윤정이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뿐이에요. 윤정이는 절대로 성씨를 바꾸지 않을걸요. 윤정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엄청나게 싫어하거든요. 저번에 윤정이 친어머니가 윤정을 찾아왔는데 거지 취급하며 친어머니를 쫓아냈거든요.”지난번에 이윤정의 친어머니 김현미가 이윤정을 찾으러 왔는데 때 이윤정이 김현미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이윤미는 잘 알고 있다.김현미가 이윤미를 그토록 못되게 굴더니, 이윤정의 미움을 사는 것도 김현미의 업보였다.“저는 저의 엄마가 화가 풀리게 되고 윤정이가 울고불고 사정하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걱정이에요.”조윤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이 정도로 배반했는데도 어머님께서 또 윤정이를 데려온다고요?”“제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이은화가 이윤정을 끔찍이 사랑하는 모습을 떠올린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가능성도 있어. 내가 네 둘째 형수님과 셋째 형수님에게 메시지를 보내 이윤정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싶은지 물어볼게.”어젯밤에 그녀들은 감히 밖에 나가 보지도 못했다.이윤정이 조윤 일행에게 끌려가 저택 문 앞에 던져진 뒤로 그녀들은 더는 그곳에 머물지 못하고 집안으로 바로 돌아갔다.이은화의 노여움이 이씨 집안 전체를 불태우려고 했으니, 그녀들은 얌전히 있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형수님, 그럼 저는 운동을 하러 나가볼게요.”“추운 날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다니, 난 네 끈기에 감복할 수밖에 없어. 난 아침 일찍 달리기를 못 하겠어. 내 배를 봐. 점점 더 커지고 있어.”조윤은 자신의 뱃살을 만지며 말했다.“형수님 몸매가 잘 유지되고 있는 편이에요. 중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여자가 살이 찌고 옆으로 퍼지는지 아세요? 형수님은 조금만 조절을 하
전태윤은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우빈이 녀석은 놀음을 잘 탐내는 아이지. 평소 우빈이는 친구가 없어 늘 혼자 놀고 있었어. 우리가 함께 놀아준다고 해도 늘 외로워했지. 애들은 역시 또래 아이들과 놀아야 재미있게 놀 수 있나 봐.”그는 하혜정의 배를 만지며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이 꼬마는 내년에나 만날 수 있겠지? 이 꼬마가 우빈이만큼 크면 우빈은 아마도 이 꼬마랑 놀아주지도 않겠지?”“우빈이는 우리 아기를 예뻐할 거에요. 큰오빠처럼 잘 대해줄걸요.”“그럼. 얼른 자. 안 자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하혜정이 말을 이었다.“잘게요. 저는 이미 잠들었어요.”하혜정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전태윤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잠들어 있는데도 말하고 있네.”“잠꼬대하는 거예요.”전태윤은 웃으며 하혜정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다시 그녀를 껴안고 꿈나라로 들어갔다.두 사람은 하룻밤을 푹 잤다.다음 날 아침, 강성 이씨 가문.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이윤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상쾌한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부러 살금살금 걸어갔다.어젯밤 일은 아주 늦게까지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정군호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이씨 가문의 저택은 조용해 졌다.이윤미는 정군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어젯밤 이은화가 이윤미와 정일범 형제를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위층에서 아버지의 비명이 들렸고 그 뒤로 구급차가 도착하여 구급대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떠났다. 병원에 따라간 사람은 이은화와 그녀의 경호원들뿐이었고 다른 사람은 병원에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정군호가 비명을 지른 이유를 묻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이윤미는 정군호가 살아계신 것만 알면 되었다. 이은화도 네 남매를 생각해서라도 정군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계단 입구로 가기도 전에 다른 방의 문 여는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발소리가 들려 앞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형수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