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수위가 빠르게 올라갔지만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어 나는 차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도 배터리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이태주는 전화를 끊고는 바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절망한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거기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나는 머리 위로 보이는 CCTV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관제실 사람의 눈길을 끌고 싶었지만 나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고 안으로 밀려든 물이 곧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곧 숨이 멎을 것처럼 폐가 아파져 끼고 있던 목걸이를 힘껏 당겼지만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떠보니 나는 주차장 천정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거기 누구 있어요? 내 목소리 들려요?”“김희주 씨.”관리원이 사람들을 데리고 물과 오물을 가르며 가까워지는 게 들어오려다 화들짝 놀랐다.“이거 누가 잠근 거예요?”“몰라요. 계속 열려 있었는데? 게다가 우리가 쓰는 자물쇠도 아니에요.”나는 천정에 둥둥 뜬 채로 관리원의 안색이 점점 하얘지는 걸 보고는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누군가 내가 죽기를 바랐던 거야.’“빨리 찾아요.”“김희주 씨.”“김희주 씨.”내가 지하 주차장에 갇혀 있다는 걸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유체 이탈한 나는 너무 궁금해 그 뒤를 따라갔다.분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집이라 관리원들은 그래도 책임감이 있었다. 폭우가 오면 주차장에 물이 차기에 차를 옮기라고 친절하게 귀띔해 주기도 했다.작년에 주차장에 물이 차면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올해 차를 새로 뽑은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아래로 달려왔지만 결국 들어오자마자 물이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원래는 차를 운전해 바로 나가고 싶었지만 주차장에 갑자기 물이 대량으로 밀려 들어왔고 나는 이를 보자마자 왔던 길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바람에 의해 닫혀 아무리 열려고 해도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다.나는 그제
“꾸물거리지 말고 3팀 전원 다 투입한다. 실종자는 여성, 24세, 위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진우석의 명령에 모든 구급대원이 장비를 챙기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때 서유리가 이태주를 말렸다.“오빠, 안에 위험하니까 오빠는 들어가지 말고 여기 있어. 저 사람들 들어갔으면 됐지.”“내가 팀장인데 어떻게 그래. 착하지. 밖에서 기다려.”이태주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우석이 서유리를 옆으로 끌어냈다.“구조 현장에는 그 어떤 민간인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펜스 뒤로 물러서세요.”진우석을 어쩔 방법은 없었던 서유리가 발을 동동 구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이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서유리, 이태주가 바보니까 너의 그 얕은수에 넘어가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너는 진작 끝났어.’나는 이태주의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진흙은 이미 허벅지까지 올라온 상태라 남자도 걷기 힘든데 나는 오죽했을까. 아쉽게도 그들은 내가 어디 있는지 잘 몰랐다. 나도 그제야 지하 주차장 CCTV가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리원은 내가 카톡으로 보낸 문자를 보고 내려왔다고 했다.내 차가 세워진 곳은 D 구역이라 주차장 제일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태주 옆에 서 있던 대원이 진흙에 빠진 다리를 뽑아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팀장님, 여자 친구가 이 동네에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설마…”“아니야. 희주 걔는 아는 게 신경전이라 이런 거 신경 쓸 사람이 아니야.”“근데 아까 전화해서 갇혔다고 하지 않았어요?”이태주가 입을 앙다물더니 말했다.“아니야. 내가 유리랑 같이 있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런 소리 한 거야. 성가시게 하려고.”이에 대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옆에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성가시다고? 크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건 또 처음이네. 하긴 서유리처럼 애교가 많지 않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사니까.’처음 도움을 청했는데 거절당한 뒤로 다시는 뭔가를 부탁한
안타깝게도 이태주는 보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서유리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태주에게로 달려갔다.“오빠, 수고했어.”“수고는 무슨.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야.”서유리가 이렇게 말했다.“무슨 생각으로 이때 지하 주차에 내려온 걸까?”“말을 안 듣는 건 답도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다 자업자득…”지나가던 진우석이 이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닥쳐. 이태주. 말로 화를 입는다는 거 몰라? 구조대원으로서 망자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말이 돼? 이런 도리까지 설명해 줘야 하는 거냐고.”“그리고 이번 일은 무조건 문제 삼을 거야. 돌아가서 보고서 써.”“왜 오빠가 징계를 받아야 하는데요?”서유리가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오빠는 나 도와주려다 늦은 거예요.”“사람 생명이 걸린 일이야. 이태주. 돌아가서 얘기하자고.”진우석이 서유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서유리 씨, 구조대는 서유리 씨가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닙니다. 고양이를 잊어버렸다면 잘 간수하지 못한 주인 탓이겠죠. 고양이를 잃어버린 걸로 모든 사람이 다 당신을 둘러싸고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요.”진우석은 서유리에게 좋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남자 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게 못마땅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진우석은 이태주를 따끔히 혼냈다. 다만 진우석은 이태주의 가족이 아닌 그저 대장일 뿐이었기에 몇 번 얘기해도 들어먹지를 않자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진우석도 더는 참기 힘들었다.진우석에게 한 소리 들은 서유리가 발끈했다.“오빠, 저 사람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러는 거야?”“됐어. 유리야. 저 사람 우리 대장이야. 더 말해봤자 소용없어. 나도 복귀해야 하니까 너도 얼른 돌아가.”이태주가 서유리를 다독였지만 서유리가 이태주를 잡았다.“우리 집으로 가. 저녁에 사골국 진하게 끓여서 몸보신 좀 하게. 우리 동그라미 구해준 보답이라고나 할까?”동그라미는 서유리가 키우는 렉돌이었다. 이태주가
내 시신은 깔끔히 정리된 상태로 장례식장에 영안실로 옮겨졌다. 이태주가 비틀거리며 그쪽으로 달려가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내 시신이 냉동실에서 꺼내진 순간 이태주는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흘렸다.“희주야.”이태주는 손을 내밀어 나를 만지려다 용기가 나지 않는지 다시 손을 축 늘어트렸다. 옆에 있던 직원이 작은 박스 하나를 가져다줬다.“망자의 유물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이태주는 박스에 담긴 목걸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뒤따라온 진우석이 이태주의 어깨를 다독였다.“이태주. 이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따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전에 전화로 갇혔다고 그랬다면서. 그때 어디 있었던 거야?”이태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통곡했다. 이를 본 진우석이 한숨을 내쉬었다.“희주 씨가 전화했을 때 내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 바로 너 혼내줬을 텐데.”진우석이 이태주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태주, 너는 구조대원으로 있을 자격이 없어. 오늘부로 정직이야. 철저히 조사받으면서 희주 씨 뒷일이나 잘 처리해. 그러고 다시 얘기하자고.”직원이 내 가족에 관해 물었고 진우석이 고개를 저었다.“희주 씨는 고아라 가족이 없어요. 이게 내 번호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진우석이 전화번호를 남기자 직원이 그를 힐끔 쳐다봤다.“저는 여기 조금만 더 있을게요.”하지만 규정상 차가운 시신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직원이 다시 나를 냉동창고에 넣었다. 이태주가 달려들어 말리려 했지만 진우석이 이태주를 꽉 잡고 있었다.“미쳤어? 진정해. 눈은 제대로 감게 해야 할 거 아니야. 희주 씨는 이미 죽었어. 죽었다고. 진정해.”“아니요. 희주는 죽지 않았어요. 그냥 조금 엄살이 많을 뿐이지 죽긴 왜 죽어요. 대장님, 이거 놔요. 희주랑 얘기 좀 해보게 좀 놔달라고요. 왜 그러는지는 물어봐야 할 거 아니에요.”“묻긴 뭘 물어?”진우석이 이태주의 뺨을 후려갈겼다.“구조 요청 보냈을 때는 뭐하고 이제 와서 쇼야?”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지금 깨달으면 뭐 해? 난 이미 죽었는데. 이런다고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됐어. 하지만 내 뒷일은 좀 맡길게. 예쁘게 잘 좀 부탁해… 아니다. 네가 하는 건 아무래도 그러네. 가족이 없어서 해줄 사람이 없긴 하지만 네가 나를 건드리는 건 싫거든.’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 이태주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맞다. 핸드폰. 핸드폰.”이태주가 얼른 진우석에게 연락했다.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잠겼다는 걸 안 이태주가 어떻게든 나를 위해 나서려 했지만 물을 잔뜩 먹은 핸드폰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진우석은 관리원을 통해 핸드폰을 돌려받고는 바로 핸드폰 전문점으로 향했다. 핸드폰이 물을 먹었다는 걸 알고 직원이 전부 복구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태주가 한숨을 내쉬며 돈을 한 다발 내밀었다.“복구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 상관없어요.”직원이 이태주의 행보에 깜짝 놀랐다.“왜 이렇게…”“여자 친구가 죽었어요. 그것도 익사로요. 핸드폰에 저장한 사진과 기록을 보고 싶어서 그래요. 이 핸드폰 제게는 정말 중요한 거거든요. 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이를 들은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한번 해볼게요.”전문점에 앉아 있던 이태주는 핸드폰 복구에 3일은 걸린다는 말을 듣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월세방으로 돌아가 보니 서유리가 도시락을 든 채 문 앞에 서 있었다.“오빠. 계속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무슨 일 있을까 봐 이렇게 찾아왔어.”‘이태주, 이제 좋겠다. 이렇게 예쁜 여사친과 늘 함께할 수 있어서. 내가 잔소리할 일도 없잖아.’나는 서유리와 가깝게 지내는 이태주가 못마땅했기에 이태주가 매번 늦게 들어올 때면 날카롭게 캐묻곤 했다. 이태주 몸에서 나는 서유리의 향수 냄새만 맡으면 나는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이태주, 오늘 사귄 지 2주년 되는 날이야. 같이 보내기로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또 서유
서유리가 얼른 앞으로 다가와 이태주의 손을 잡았지만 이태주가 서유리를 밀어냈다.“유리야, 나 지금 마음이 너무 복잡해.”“오빠, 왜 그래요?”“희주가 죽었어. 그날 지하 주차장에 갇힌 사람이 바로 희주였다고.”이에 서유리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다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조심하지. 지하 주차장에 물이 가득 찬 걸 알면서 왜 들어간 거래?”이태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여러 번 말했고 인스타에도 나오지 말라는 게시글을 올렸거든. 그런데 왜 내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온 걸까? 희주는 정말 바보야.”서유리가 얼른 다독였다.“괜찮아. 우리 희주 언니 뒷일 잘 처리해 주자. 희주 언니 잘 보내줘야지.”“그래. 역시 믿을 건 너밖에 없다. 고마워. 아직도 희주 생각해서 가는 길 잘 보내주겠다고 하고. 전에 희주가 너를 그렇게 대한 것만 생각하면…”“오빠,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냥…”이때 이태주의 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진우석이었다.“이태주, 지하 주차장 CCTV 이미 복구했어. 보냈으니까 잘 봐봐. 경찰도 아직 수사 중이야.”“지하 주차장 비상계단 문을 누군가 일부러 잠가서 희주 씨가 죽은 거야. 상부에서도 이 사건을 눈여겨 보고 있어.”이 말에 이태주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지금 바로 갈게요.”“오빠, 어디가?”“사건에 새로운 진척이 있대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누군가 희주를 일부러 해친 것 같아.”서유리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뭐, 뭐라고요? 해, 해쳤다고요?”이태주가 황급히 아래로 내려가며 화를 냈다.“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내가 아주 토막을 내버릴 테니까.”이 말에 서유리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서유리의 그런 표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도대체 뭐가 무서운 거지? 설마 내 죽음과 연관되어 있나?’영상을 받은 이태주는 한참 동안 바라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녀석은 헬멧을 쓴 채 온몸을 꽁꽁 싸매고 카고 바지와 외투를 입고 있어 누군지
“내가 증거 찾아낼 테니까 기다려요.”이태주가 이를 악물고 말하자 관리원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태주는 구조대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직 처분을 당했지만 내 억울함을 풀어주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보육원에서 자란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죽어서도 이태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이제 와서 후회하는 이태주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3일 뒤 핸드폰을 받은 이태주는 관리원이 나에게 연락한 문자를 보고 뚜껑이 열려 바로 관리실로 찾아가 관리원의 멱살을 잡더니 한방 세게 날렸다.“당신들이 희주 죽였어. 당신들이 희주 죽였다고.”제대로 한 방 맞은 관리원은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겨우 두 사람을 뜯어내자 관리원이 노발대발했다.“저 당신 고소할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미친 거예요?”관리원이 볼을 감싸고는 이렇게 말했다.“남자 친구가 돼서 여자 친구가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를 캐묻는 거예요? 내려오라고 한 적 없다니까요. 당신이 나 고소해도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 인정하지 않아요.”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이태주가 폭주하려는데 누군가 이태주를 말렸다. 경찰과 진우석이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진우석은 이태주가 막무가내로 덤비자 마음이 착잡했다.“이태주, 도대체 뭐 하는 거야?”“대장님,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연락해서 희주더러 내려오라고 한 거예요. 이거 좀 봐봐요.”이태주가 핸드폰을 보여주자 관리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거 관리실 계정이 아닌데요? 이준아, 이거 네 계정이야?”이준은 옆에서 싸움을 말리던 또 다른 관리원이었다. 그는 전화를 힐끔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때 저는 배선 점검하고 있었어요. 18동에 사는 할머니가 집에 전기가 나갔다고 해서 1시간 넘게 봐 드렸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게다가 저는 수도나 전기에 관한 업무지 지하 창고는 제 소관이 아니라고요.”이준이 이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준의 계
이태주는 바로 서유리네 집으로 향했다. 서유리는 달려온 이태주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서유리,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나는 온 힘을 다해 그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영혼 상태라 너무 허약해 사람을 해치는 건 불가능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영혼이 사람을 해치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이태주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옷장에서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이에 서유리가 다급하게 물었다.“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헬멧, 외투, 카고 바지 찾지.”서유리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런 옷이 없어.”“없다고? 언제까지 속일 거야? 엘리베이터, 그리고 비상계단 뒷문까지 CCTV가 있었어. 네가 희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 알아. 도대체 왜 그런 거야?”서유리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변명하려 했다.“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왜 희주 언니를 죽여? 오빠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언니가 죽고 많이 힘든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억울한 누명을 씌우면 안 되지. 오빠 너무 실망이다.”서유리가 울음을 터트리자 이태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이 상황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내가 잘못해서, 내가 죽을죄를 지어서 죽었다는 건가?’“오빠, 오빠가 얼마나 희주 언니 사랑하는지 알아. 그래서 오빠가 이렇게 나와도 미워할 생각 없어. 희주 언니는 이미 죽었으니까 보내주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어? 걱정하지 마. 내가 오빠 곁을 지켜줄게.”이태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유리의 모습이 웃기는지 이태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너무 바보 같았네. 처음부터 눈치채야 하는 건데. 진짜인지 아닌지는 지문 대조하면 나오겠지. 희주 가는 길 외롭지 않게 네가 친구 해줘.”이태주가 이렇게 말하더니 서유리의 목을 꽉 졸랐다.“서유리. 죽어.”“이태주. 이거 놔.”이성을 잃은 이태주를 보고 나서야 서유리
이를 들은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태주가 서유리 앞에서 나를 이렇게 말했을 줄은 몰랐다. 서유리와 마주칠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사건 당일 서유리는 관리실 직원 이준으로 위장해 내게 문자를 보낸 다음 내가 내려온 걸 확인하고 비상계단을 잠가버렸다. 하지만 그냥 혼내주려고 했을 뿐 물이 이렇게 빨리 차올라 내가 익사할 줄은 몰랐다. 너무 무섭기도 하고 이태주가 어떻게 선택하는지 보려고 일부러 고양이를 나무 위로 올려보내고는 이태주를 불렀다. 그렇게 고양이 때문에 30분이나 지체하는 바람에 이태주가 구조대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숨이 끊어졌다.이태주는 서유리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서유리가 오히려 웃었다.“사실 희주 언니가 죽은 건 오빠 잘못도 있어요.”“아니, 오빠야말로 진짜 범인이에요. 희주 언니는 오빠가 죽인 거예요. 조금만 일찍 갔어도 무사했을 텐데 오빠가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라고요.”“내가 희주 언니였다면 평생 오빠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이태주가 그대로 무너졌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희주 언니가 전화해서 살려달라고 했는데 전화를 끊은 건 오빠예요. 그러니 이 일의 책임은 오빠에게 있어요.”서유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미친 것처럼 웃기 시작했다. 서유리는 과실 치사로 무기징역을 받았다.이태주는 비틀거리며 재판정에서 나왔다. 나는 밖에서 그런 이태주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유리가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이태주였다. 두 여자를 놓고 저울질만 하지 않았어도 서유리가 앙심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처음 서유리를 본 날 이태주는 돌아오자마자 내게 서유리 칭찬을 늘어놓으며 예쁘장한데 성격까지 좋은 여자가 혼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많이 챙겨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태주는 몰랐다. 고아인 내가 지금까지 혼자 씩씩하게 버텨낸 게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다.이태주가 정직 처분을 받은 후 이 일은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지고 말았다. 관리원이 인터넷에 터
이태주는 바로 서유리네 집으로 향했다. 서유리는 달려온 이태주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서유리,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나는 온 힘을 다해 그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영혼 상태라 너무 허약해 사람을 해치는 건 불가능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영혼이 사람을 해치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이태주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옷장에서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이에 서유리가 다급하게 물었다.“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헬멧, 외투, 카고 바지 찾지.”서유리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런 옷이 없어.”“없다고? 언제까지 속일 거야? 엘리베이터, 그리고 비상계단 뒷문까지 CCTV가 있었어. 네가 희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 알아. 도대체 왜 그런 거야?”서유리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변명하려 했다.“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왜 희주 언니를 죽여? 오빠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언니가 죽고 많이 힘든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억울한 누명을 씌우면 안 되지. 오빠 너무 실망이다.”서유리가 울음을 터트리자 이태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이 상황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내가 잘못해서, 내가 죽을죄를 지어서 죽었다는 건가?’“오빠, 오빠가 얼마나 희주 언니 사랑하는지 알아. 그래서 오빠가 이렇게 나와도 미워할 생각 없어. 희주 언니는 이미 죽었으니까 보내주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어? 걱정하지 마. 내가 오빠 곁을 지켜줄게.”이태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유리의 모습이 웃기는지 이태주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너무 바보 같았네. 처음부터 눈치채야 하는 건데. 진짜인지 아닌지는 지문 대조하면 나오겠지. 희주 가는 길 외롭지 않게 네가 친구 해줘.”이태주가 이렇게 말하더니 서유리의 목을 꽉 졸랐다.“서유리. 죽어.”“이태주. 이거 놔.”이성을 잃은 이태주를 보고 나서야 서유리
“내가 증거 찾아낼 테니까 기다려요.”이태주가 이를 악물고 말하자 관리원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태주는 구조대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직 처분을 당했지만 내 억울함을 풀어주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 보육원에서 자란 나는 친구가 없었기에 죽어서도 이태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이제 와서 후회하는 이태주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3일 뒤 핸드폰을 받은 이태주는 관리원이 나에게 연락한 문자를 보고 뚜껑이 열려 바로 관리실로 찾아가 관리원의 멱살을 잡더니 한방 세게 날렸다.“당신들이 희주 죽였어. 당신들이 희주 죽였다고.”제대로 한 방 맞은 관리원은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겨우 두 사람을 뜯어내자 관리원이 노발대발했다.“저 당신 고소할 거예요. 그럴 리가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미친 거예요?”관리원이 볼을 감싸고는 이렇게 말했다.“남자 친구가 돼서 여자 친구가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를 캐묻는 거예요? 내려오라고 한 적 없다니까요. 당신이 나 고소해도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 인정하지 않아요.”화가 잔뜩 치밀어오른 이태주가 폭주하려는데 누군가 이태주를 말렸다. 경찰과 진우석이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진우석은 이태주가 막무가내로 덤비자 마음이 착잡했다.“이태주, 도대체 뭐 하는 거야?”“대장님,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이 연락해서 희주더러 내려오라고 한 거예요. 이거 좀 봐봐요.”이태주가 핸드폰을 보여주자 관리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이거 관리실 계정이 아닌데요? 이준아, 이거 네 계정이야?”이준은 옆에서 싸움을 말리던 또 다른 관리원이었다. 그는 전화를 힐끔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때 저는 배선 점검하고 있었어요. 18동에 사는 할머니가 집에 전기가 나갔다고 해서 1시간 넘게 봐 드렸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게다가 저는 수도나 전기에 관한 업무지 지하 창고는 제 소관이 아니라고요.”이준이 이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준의 계
서유리가 얼른 앞으로 다가와 이태주의 손을 잡았지만 이태주가 서유리를 밀어냈다.“유리야, 나 지금 마음이 너무 복잡해.”“오빠, 왜 그래요?”“희주가 죽었어. 그날 지하 주차장에 갇힌 사람이 바로 희주였다고.”이에 서유리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다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조심하지. 지하 주차장에 물이 가득 찬 걸 알면서 왜 들어간 거래?”이태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여러 번 말했고 인스타에도 나오지 말라는 게시글을 올렸거든. 그런데 왜 내 말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온 걸까? 희주는 정말 바보야.”서유리가 얼른 다독였다.“괜찮아. 우리 희주 언니 뒷일 잘 처리해 주자. 희주 언니 잘 보내줘야지.”“그래. 역시 믿을 건 너밖에 없다. 고마워. 아직도 희주 생각해서 가는 길 잘 보내주겠다고 하고. 전에 희주가 너를 그렇게 대한 것만 생각하면…”“오빠,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냥…”이때 이태주의 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진우석이었다.“이태주, 지하 주차장 CCTV 이미 복구했어. 보냈으니까 잘 봐봐. 경찰도 아직 수사 중이야.”“지하 주차장 비상계단 문을 누군가 일부러 잠가서 희주 씨가 죽은 거야. 상부에서도 이 사건을 눈여겨 보고 있어.”이 말에 이태주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지금 바로 갈게요.”“오빠, 어디가?”“사건에 새로운 진척이 있대서 가봐야 할 것 같아. 누군가 희주를 일부러 해친 것 같아.”서유리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뭐, 뭐라고요? 해, 해쳤다고요?”이태주가 황급히 아래로 내려가며 화를 냈다.“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내가 아주 토막을 내버릴 테니까.”이 말에 서유리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서유리의 그런 표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도대체 뭐가 무서운 거지? 설마 내 죽음과 연관되어 있나?’영상을 받은 이태주는 한참 동안 바라봤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녀석은 헬멧을 쓴 채 온몸을 꽁꽁 싸매고 카고 바지와 외투를 입고 있어 누군지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지금 깨달으면 뭐 해? 난 이미 죽었는데. 이런다고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됐어. 하지만 내 뒷일은 좀 맡길게. 예쁘게 잘 좀 부탁해… 아니다. 네가 하는 건 아무래도 그러네. 가족이 없어서 해줄 사람이 없긴 하지만 네가 나를 건드리는 건 싫거든.’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 이태주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맞다. 핸드폰. 핸드폰.”이태주가 얼른 진우석에게 연락했다.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잠겼다는 걸 안 이태주가 어떻게든 나를 위해 나서려 했지만 물을 잔뜩 먹은 핸드폰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진우석은 관리원을 통해 핸드폰을 돌려받고는 바로 핸드폰 전문점으로 향했다. 핸드폰이 물을 먹었다는 걸 알고 직원이 전부 복구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태주가 한숨을 내쉬며 돈을 한 다발 내밀었다.“복구만 할 수 있다면 얼마든 상관없어요.”직원이 이태주의 행보에 깜짝 놀랐다.“왜 이렇게…”“여자 친구가 죽었어요. 그것도 익사로요. 핸드폰에 저장한 사진과 기록을 보고 싶어서 그래요. 이 핸드폰 제게는 정말 중요한 거거든요. 제발 부탁 좀 드릴게요.”이를 들은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한번 해볼게요.”전문점에 앉아 있던 이태주는 핸드폰 복구에 3일은 걸린다는 말을 듣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월세방으로 돌아가 보니 서유리가 도시락을 든 채 문 앞에 서 있었다.“오빠. 계속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무슨 일 있을까 봐 이렇게 찾아왔어.”‘이태주, 이제 좋겠다. 이렇게 예쁜 여사친과 늘 함께할 수 있어서. 내가 잔소리할 일도 없잖아.’나는 서유리와 가깝게 지내는 이태주가 못마땅했기에 이태주가 매번 늦게 들어올 때면 날카롭게 캐묻곤 했다. 이태주 몸에서 나는 서유리의 향수 냄새만 맡으면 나는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이태주, 오늘 사귄 지 2주년 되는 날이야. 같이 보내기로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또 서유
내 시신은 깔끔히 정리된 상태로 장례식장에 영안실로 옮겨졌다. 이태주가 비틀거리며 그쪽으로 달려가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내 시신이 냉동실에서 꺼내진 순간 이태주는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흘렸다.“희주야.”이태주는 손을 내밀어 나를 만지려다 용기가 나지 않는지 다시 손을 축 늘어트렸다. 옆에 있던 직원이 작은 박스 하나를 가져다줬다.“망자의 유물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이태주는 박스에 담긴 목걸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뒤따라온 진우석이 이태주의 어깨를 다독였다.“이태주. 이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따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전에 전화로 갇혔다고 그랬다면서. 그때 어디 있었던 거야?”이태주는 더는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통곡했다. 이를 본 진우석이 한숨을 내쉬었다.“희주 씨가 전화했을 때 내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 바로 너 혼내줬을 텐데.”진우석이 이태주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태주, 너는 구조대원으로 있을 자격이 없어. 오늘부로 정직이야. 철저히 조사받으면서 희주 씨 뒷일이나 잘 처리해. 그러고 다시 얘기하자고.”직원이 내 가족에 관해 물었고 진우석이 고개를 저었다.“희주 씨는 고아라 가족이 없어요. 이게 내 번호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진우석이 전화번호를 남기자 직원이 그를 힐끔 쳐다봤다.“저는 여기 조금만 더 있을게요.”하지만 규정상 차가운 시신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직원이 다시 나를 냉동창고에 넣었다. 이태주가 달려들어 말리려 했지만 진우석이 이태주를 꽉 잡고 있었다.“미쳤어? 진정해. 눈은 제대로 감게 해야 할 거 아니야. 희주 씨는 이미 죽었어. 죽었다고. 진정해.”“아니요. 희주는 죽지 않았어요. 그냥 조금 엄살이 많을 뿐이지 죽긴 왜 죽어요. 대장님, 이거 놔요. 희주랑 얘기 좀 해보게 좀 놔달라고요. 왜 그러는지는 물어봐야 할 거 아니에요.”“묻긴 뭘 물어?”진우석이 이태주의 뺨을 후려갈겼다.“구조 요청 보냈을 때는 뭐하고 이제 와서 쇼야?”
안타깝게도 이태주는 보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서유리가 몸을 파르르 떨더니 이태주에게로 달려갔다.“오빠, 수고했어.”“수고는 무슨.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야.”서유리가 이렇게 말했다.“무슨 생각으로 이때 지하 주차에 내려온 걸까?”“말을 안 듣는 건 답도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다 자업자득…”지나가던 진우석이 이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닥쳐. 이태주. 말로 화를 입는다는 거 몰라? 구조대원으로서 망자 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말이 돼? 이런 도리까지 설명해 줘야 하는 거냐고.”“그리고 이번 일은 무조건 문제 삼을 거야. 돌아가서 보고서 써.”“왜 오빠가 징계를 받아야 하는데요?”서유리가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오빠는 나 도와주려다 늦은 거예요.”“사람 생명이 걸린 일이야. 이태주. 돌아가서 얘기하자고.”진우석이 서유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서유리 씨, 구조대는 서유리 씨가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닙니다. 고양이를 잊어버렸다면 잘 간수하지 못한 주인 탓이겠죠. 고양이를 잃어버린 걸로 모든 사람이 다 당신을 둘러싸고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요.”진우석은 서유리에게 좋은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남자 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는 게 못마땅하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진우석은 이태주를 따끔히 혼냈다. 다만 진우석은 이태주의 가족이 아닌 그저 대장일 뿐이었기에 몇 번 얘기해도 들어먹지를 않자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진우석도 더는 참기 힘들었다.진우석에게 한 소리 들은 서유리가 발끈했다.“오빠, 저 사람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러는 거야?”“됐어. 유리야. 저 사람 우리 대장이야. 더 말해봤자 소용없어. 나도 복귀해야 하니까 너도 얼른 돌아가.”이태주가 서유리를 다독였지만 서유리가 이태주를 잡았다.“우리 집으로 가. 저녁에 사골국 진하게 끓여서 몸보신 좀 하게. 우리 동그라미 구해준 보답이라고나 할까?”동그라미는 서유리가 키우는 렉돌이었다. 이태주가
“꾸물거리지 말고 3팀 전원 다 투입한다. 실종자는 여성, 24세, 위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진우석의 명령에 모든 구급대원이 장비를 챙기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때 서유리가 이태주를 말렸다.“오빠, 안에 위험하니까 오빠는 들어가지 말고 여기 있어. 저 사람들 들어갔으면 됐지.”“내가 팀장인데 어떻게 그래. 착하지. 밖에서 기다려.”이태주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우석이 서유리를 옆으로 끌어냈다.“구조 현장에는 그 어떤 민간인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펜스 뒤로 물러서세요.”진우석을 어쩔 방법은 없었던 서유리가 발을 동동 구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물러섰다. 이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서유리, 이태주가 바보니까 너의 그 얕은수에 넘어가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너는 진작 끝났어.’나는 이태주의 뒤를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진흙은 이미 허벅지까지 올라온 상태라 남자도 걷기 힘든데 나는 오죽했을까. 아쉽게도 그들은 내가 어디 있는지 잘 몰랐다. 나도 그제야 지하 주차장 CCTV가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리원은 내가 카톡으로 보낸 문자를 보고 내려왔다고 했다.내 차가 세워진 곳은 D 구역이라 주차장 제일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태주 옆에 서 있던 대원이 진흙에 빠진 다리를 뽑아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팀장님, 여자 친구가 이 동네에 산다고 하지 않았어요? 설마…”“아니야. 희주 걔는 아는 게 신경전이라 이런 거 신경 쓸 사람이 아니야.”“근데 아까 전화해서 갇혔다고 하지 않았어요?”이태주가 입을 앙다물더니 말했다.“아니야. 내가 유리랑 같이 있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런 소리 한 거야. 성가시게 하려고.”이에 대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옆에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성가시다고? 크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건 또 처음이네. 하긴 서유리처럼 애교가 많지 않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사니까.’처음 도움을 청했는데 거절당한 뒤로 다시는 뭔가를 부탁한
주차장에 수위가 빠르게 올라갔지만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잠겨 있어 나는 차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도 배터리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이태주는 전화를 끊고는 바로 핸드폰을 꺼버렸다. 절망한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거기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나는 머리 위로 보이는 CCTV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관제실 사람의 눈길을 끌고 싶었지만 나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고 안으로 밀려든 물이 곧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곧 숨이 멎을 것처럼 폐가 아파져 끼고 있던 목걸이를 힘껏 당겼지만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떠보니 나는 주차장 천정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거기 누구 있어요? 내 목소리 들려요?”“김희주 씨.”관리원이 사람들을 데리고 물과 오물을 가르며 가까워지는 게 들어오려다 화들짝 놀랐다.“이거 누가 잠근 거예요?”“몰라요. 계속 열려 있었는데? 게다가 우리가 쓰는 자물쇠도 아니에요.”나는 천정에 둥둥 뜬 채로 관리원의 안색이 점점 하얘지는 걸 보고는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누군가 내가 죽기를 바랐던 거야.’“빨리 찾아요.”“김희주 씨.”“김희주 씨.”내가 지하 주차장에 갇혀 있다는 걸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유체 이탈한 나는 너무 궁금해 그 뒤를 따라갔다.분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집이라 관리원들은 그래도 책임감이 있었다. 폭우가 오면 주차장에 물이 차기에 차를 옮기라고 친절하게 귀띔해 주기도 했다.작년에 주차장에 물이 차면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올해 차를 새로 뽑은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아래로 달려왔지만 결국 들어오자마자 물이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원래는 차를 운전해 바로 나가고 싶었지만 주차장에 갑자기 물이 대량으로 밀려 들어왔고 나는 이를 보자마자 왔던 길로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바람에 의해 닫혀 아무리 열려고 해도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다.나는 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