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그가 짐작했던 대로 심은하는 처음부터 곽서연을 노리고 있었다.그녀는 사진으로 곽서연한테 상처를 줬을 뿐만 아니라 임혜나의 손을 빌려 곽서연을 구설수에 오르게 했고 심지어 그와 약혼해서 곽서연의 숙모가 되려고 했다.그 여자가 겉으로는 온화하고 고결해 보이는 데 마음이 그렇게 독할 줄은 몰랐다.박서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찾아낸 증거 나한테 보내.”그는 곽서연이 무고하게 상처를 받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그녀한테 모든 걸 설명하기로 했다.전화를 끊은 후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
곽서연은 점점 더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그의 말에 화가 나 얼굴이 새빨개졌다.포도알같이 반짝이던 눈은 어느새 박서준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그 입 다물어요! 누가 삼촌 애를 낳아준댔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요. 삼촌을 좋아했던 건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다시는 그럴 일 없어요.”말을 마친 곽서연이 자리를 뜨려고 몸을 일으킨 찰나에 의사가 들어와 박서준에게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검사를 마친 의사는 곽서연에게 말했다.“비록 마취하고 수술을 진행했지만 환자분께서 고통이 극심한 나머지 땀을 상당히
박서준의 “서연아” 한마디에 곽서연은 소름이 돋아 손이 떨렸다.곽서연은 포도알같이 까만 눈동자로 못 믿겠다는 듯 박서준을 노려보았다.곽서연의 기억 속 박서준은 늘 점잖고 신사다운 모습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느끼해진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치골이라니.자칫하면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도 남을 부위였다.곽서연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박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박서준, 조용히 해. 간호고 뭐고 당장 다 때려치우는 수가 있어.”박서준은 잔뜩 부끄러워하면서도 꿋꿋이 화를 내는 곽서연의 모습을 보고 결국
“그래서 가족분들의 많은 협조가 필요합니다. 환자분께서 좋은 기분으로 재활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만약 환자분께서 재활을 포기하시기라도 한다면 이 다리는 다시는 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의사의 그 말은 단순히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닌 박서준이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다만 곽서연은 박서준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박서준의 심정은 고려하지 못했다. 게다가 시시한 말들로 그를 자극한 걸 생각하니 알게 모르게 죄책감마저 들었다.의사가 자리를 떠난 후에도 곽서연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
그 말을 들은 심은하는 눈을 반짝이고는 얼른 눈물을 닦고 대답했다.“알겠어, 지금 당장 갈게.”반 시간 후 병실에 도착한 심은하는 곽서연이 박서준에게 밥을 먹여주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심은하는 화가 나 이를 세게 깨물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서연아, 삼촌 먹여주는 건 내가 할게”심은하가 침대 옆으로 다가가 곽서연의 손에서 접시를 빼앗으려 했지만 곽서연이 그런 심은하의 손길을 피해버렸다.심은하는 참지 못하고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서연아, 이 남자가 네 삼촌이라는 사실을 잊은 건 아니지?
“심은하, 넌 너의 심씨 가문이 하룻밤 사이에 망하는 건 두렵지 않은가 봐?”그 말을 들은 심은하는 이미 정신이 나간 듯 하하 웃었다.“심씨 가문이 망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지? 난 그저 입양된 딸에 불과해. 그 사람들이 날 보육원에서 주워왔을 때부터 난 그들에게 그저 훌륭한 사위를 낚기 위한 먹이로 키워졌을 뿐이야. 넌 내가 그런 사람들한테 좋은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왜 그 사람들의 생사를 신경 써야 하지?”심은하의 위협에 박서준이 겁이 났다.왜냐하면 이 내기에는 다름 아닌 곽서연의 앞길이 달려있기 때문이
박서준의 그 한마디는 곽명원에게 있어서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곽명원은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되어 멍하니 박서준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믿기 힘들다는 듯 다시 물었다.“누구라고?”박서준은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는 다시 한번 말했다.“저 서연이 좋아해요. 작은 삼촌한테 가족들한테 잘 말해달라고 부탁도 했어요.”확인을 받은 곽명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박서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곽명원의 어린 조카인 곽서연이었다.곽서연은 열아홉 살이었고 박서준은 스물아홉 살이다.그뿐만 아니라 둘은 촌수 차
박서준의 말을 듣기 전까지 곽명원은 단지 박서준 혼자만의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곽서연이 먼저 박서준에게 마음이 있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게다가 기를 쓰고 M국에 가서 학교에 다니려던 것도 모두 박서준 때문이었다.곽명원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곽명원은 이미 이 일이 자신이 손 쓸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곽서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곽서연은 일단 본인이 확신이 선 일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없었다.곽명원은 너무 분한 나머지 소주
“건강하고 멋진 남편으로 네 앞에 서겠다고 했잖아. 서연아, 지난번 청혼은 너무 성급했어. 오늘 양가 부모님 앞에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청혼할게.”말을 마친 뒤 박서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안에서 청록색 팔찌를 꺼내 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서연아, 이건 외할아버지께서 장가갈 때 아내에게 주라고 남긴 팔찌야. 이걸 착용하면 너는 이제 박씨 집안 며느리가 되는 거고 박서준의 아내뿐만 아니라 육 씨 집안 둘째 며느리가 되는 거야. 이 모든 신분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됐어?”정상적으로 걷고 있는 박서준 때문에 놀란 마
곽서연은 근간에 계속 여러 곳을 다니며 무대를 돌았던 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서준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얼마나 잤는지 누군가 귀를 깨물었고 곧이어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잠꾸러기야, 집에 도착했어.”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곽서연은 뜨거워진 얼굴을 박서준의 어깨에 몇 번 문지르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삼촌, 서프라이즈는요?”박서준은 웃으며 곽서연의 이마에 뽀뽀했다.“눈 감아. 같이 어디 가자.”말을 마친 박서준이 넥타이를 풀어 곽서연의 눈을 가리자 그녀의 궁금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박서준을 밀어낸 곽서연의 눈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욕망으로 일렁였다.“제가 나가서 해장국을 가져다줄게요. 삼촌이 방금 취한 척 했다는 걸 눈치 못 채게 하세요. 안 그러면 정말 오늘 어떻게 될지 몰라요.”박서준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여보 말 들을게.”박서준은 ‘여보’라는 호칭을 전혀 어색함 없이 불렀지만, 곽서연은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그의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함부로 부르지 말아요. 저 아직 아니거든요.”“조만간 될 거잖아. 하루빨리 박서준의 아내로 살면 누릴 수 있는 것도 많
입안에 들어온 물건을 알아차린 곽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곽서연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입안의 물건을 내뱉자 핑크빛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곽서연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삼촌, 이거 나한테 주는 거예요?”박서준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당연한 거 아니야? 너 말고 또 누구 줄 사람 있어?”“하지만 우리 이제 겨우 시작한 건데, 이런 선물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내 모든 재산을 전부 너한테 넘겼는데, 설마 나랑 그만둘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아내를 내가 아껴줘야지 그럼 누가 아껴줘?”“내 아내를 내가 안 보면 누가 봐요?”말을 마친 천우는 조수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30분 후, 두 사람은 산부인과 병원에 도착했다. 한지혜는 이미 분만실로 옮겨졌고 허연후도 동행했다.두꺼운 문 너머로 한지혜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수아는 의아한 듯 물었다.“무통 주사를 안 맞은 거예요? 왜 저렇게 아파해요?”옆에 서 있던 윤다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무통 주사가 애한테 나쁘다고 우겨서 끝내는 안 맞고 들어갔어. 누가 지혜를 이기겠니.”“고작 그런 거로 애들 영
곽서연은 놀라서 순간적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집안 사람들이 전부 다 있는데 테이블 밑에서 몰래 입을 맞추다니.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곽서연은 가슴이 움찔했다. 그녀는 놀라서 즉시 박서준을 밀어내고 눈에 화를 가득 담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그러나 박서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가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박주영은 곽서연의 안색을 보고 즉시 물었다.“서연아, 몸이 안 좋아?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곽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좀 더워서 그래요. 저 잠깐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그래도 네가 양심은 있구나.”박서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 칭찬 고맙습니다. 그리고 서연이를 저한테 기꺼이 내주신 것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손녀사위로서 차 한잔 올릴게요. 할아버지, 한잔하시죠.”박서준의 말에 표정이 조금 풀어진 곽훈은 자연스럽게 차를 받아들고 한잔 마시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리고 찻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이놈이 지금 번지르르한 말로 날 얼리는 것이냐? 네가 왜 내 손녀사위야?”박서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할아버지,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에요. 방금
박서준은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고 문 앞에 선 채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곽훈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할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박서준의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곽훈은 마시고 있던 차를 뿜을 뻔했다. 그는 박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겨우 3일을 갇혀있었다고 너를 허락할 거 같아서 온 거냐? 귀한 내 공주님을 너같이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시킬 수는 없어. 좋게 말할 때 돌아가거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곽훈은 박서준한테 들어오라는 인사도 건네지 않고 냉정하게 거절했지만, 박서준은 그런 체면 따위 상
말을 마친 박서준은 곽서연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곽서연의 귀를 타고 온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파도처럼 거친 키스가 그녀를 향해 다시 휘몰아쳤다. 박서준은 아까처럼 그렇게 자제하지 않았고 서로의 존재를 탐내듯 키스는 점점 더 깊어졌다.박서준은 드디어 자기도 아내가 생겼다고 조상들 앞에서 선언하고 싶었다.다른 한편.담벼락에 오르기도 전에 누군가의 호통 소리에 놀란 곽명원은 곽서연을 향해 신신당부했다.“여기는 삼촌한테 맡기고 빨리 뛰어내려.”말을 마친 곽명원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육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