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선은 객실 문을 확 열고 막 소리를 치려다 문 앞에 서 있는 시후를 보고는 순식간에 화난 얼굴이 밝게 변하며 흥분한 듯 말했다. "아이구, 우리 은 서방! 언제 돌아온 거야? 왜 미리 연락도 안 주고?"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것 같아서 미리 연락 드리지 않았습니다."윤우선은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 알지! 분명 유나에게 깜짝 선물 주려고 그런 거지?!"객실 안에 있던 유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문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엄마, 시후 씨가 돌아왔어요?"윤우선은 얼른 고개를 돌려 안쪽으로 외쳤다. "딸, 은 서방이 돌아왔어! 빨리 와!" 그러면서 시후 뒤에 따라오고 있는 호텔 직원과 그가 밀고 있는 수레에 실린 세 개의 큰 캐리어를 보자마자 흥분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은 서방, 떠날 때는 짐이 거의 없었는데,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왔어? 설마 내 선물 사온 거 아니야?"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은 지인들이 준 특산품이에요. 그래도 장모님을 위한 작은 선물도 준비했습니다."윤우선은 선물이 있다는 말에 흥분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윤우선은 요즘 시후가 풍수를 봐주고 돈을 쉽게 번다는 것을 알기에, 속으로는 ‘은 서방이 선물한다고 하면 최소 1천만 원 정도의 물건은 되겠지?’하고 내심 기대했다.시후는 직원에게 짐을 내려놓도록 하고 100달러를 팁으로 건넸다. 직원은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났다.그때 유나가 다가와 시후를 보며 기쁘게 말했다. "여보, 돌아올 거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요? 공항에 마중 나갔을 텐데!"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했으면 이착륙 때까지 계속 걱정했을 거잖아요. 그래서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했죠."유나는 시후가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뻤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난 서프라이보다 공항에 직접 마중 나가는 게 더 좋아요. 다음엔 꼭 미리 말해줘요, 알았죠?"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다음엔 꼭 말하는 걸로 할게
말을 마친 후, 윤우선은 잊지 않고 웃으며 시후에게 말했다. “은 서방, 자네가 이런 마음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이미 너무나 만족해. 그래도 제발 함부로 막 물건을 사지는 말아!”시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모님. 명심하겠습니다.”윤우선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센스 있게 반클리프 아펠 이야기는 넘기고 재빨리 손에 든 보석함에 집중했다. 그녀는 보석함을 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 전에 불가리에서 에메랄드 목걸이를 샀는데, 은 서방이 이번에 또 불가리 제품을 사주다니... 과연 어떤 제품이려나? 만약 같은 컬렉션의 팔찌라면 내 목걸이와 세트가 될 텐데, 그럼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 이렇게 기대하면서, 환한 표정으로 보석함을 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윤우선은 얼어붙고 말았다. “이... 이건......” 윤우선은 보석함 안에 고요히 놓여 있는, 낯익은 목걸이를 보며 당황한 듯 말했다. “이... 이거 에메랄드 펜던트 목걸이잖아?” 이 목걸이를 본 순간, 윤우선은 크게 실망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미국에 오기 전 같은 목걸이를 하나 구매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우선은 허영이 가득한 인물이며, 이 목걸이는 아주 비싸고 우아하지만 똑같은 제품을 두 개 가지고 있어봤자 별로 의미가 없었다. 하나를 오늘 착용하고, 다른 하나를 내일 착용해도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목걸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걸이를 한 번에 여러 개를 착용할 수도 없는 법이기에 윤우선의 입장에서는 시후가 사준 목걸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과 다름없었다. 시후는 윤우선의 눈빛 속에 숨겨진 실망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물었다. “장모님, 이쪽 방면의 제품들을 어쩜 그렇게 잘 아시는 겁니까? 저는 이 이름을 외우려고 해도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윤우선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 그냥 대충 알아본 것뿐이야!” 그리고는 진지하게 덧붙였다. “아휴, 너희들도 모르겠지만,
“집에 가고 싶으시다고요?!” 유나는 윤우선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아빠는 해외에 계시고, 저랑 시후 씨는 미국에 있는데, 왜 집에 가고 싶다는 거예요?”윤우선은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한국이 그리워졌어. 외국에서 생활하는 게 영 적응이 안 되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이 최고야... 그러니까 시간 날 때 항공권 좀 알아봐 줄래. 엄마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비행기 표 하나 끊어 줘.”유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머니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가 보고 싶어서 잠도 못 자겠다고 했고, 혼자 그렇게 큰 저택에 있는 게 외롭고 견딜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미국까지 오신 거 아니에요? 근데 이제 겨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신 거예요? 한국에 가면 다시 혼자가 되시는 거잖아요? 다시 혼자 살아야 하시는 건데, 조금 있다가 또 외롭다고 미국에 오실 거예요?”윤우선은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아이고, 엄마가 너희가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잔 건 사실이지. 그래서 이렇게 미국으로 왔잖아. 그래도 너희들 얼굴을 봤으니 이제 마음이 놓여서 자연스레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하지만 윤우선은 절대 자신의 딸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미국까지 찾아온 진짜 이유는 외로워서도, 가족이 그리워서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윤우선은 그저 단순히 한국에서 쓸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미국으로 온 것이었다. 돈이 거의 다 떨어지자, 별장의 대저택에 혼자 있어도 비싸고 좋은 것을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차고에 있는 롤스로이스 컬리넌이 아무리 멋지고 웅장해도, 기름 넣을 돈조차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지만,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시후가 그녀에게 또다시 똑같은 에메랄드 목걸이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이제 그녀는 선물 받은 목걸이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그 중 하나를 팔아버릴
사실 시후 입장에서는 윤우선이 계속 여기에 머물면서 자신과 아내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처음에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윤우선을 미국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바로 시후 자신이 홍콩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걱정되었고,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윤우선을 속여 불러들인 뒤 자신이 홍콩에 있는 동안 아내와 함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미국으로 돌아왔으니, 윤우선이 여기 머물러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지금 유나는 윤우선의 실제 재정 상황을 모르고 있지만, 시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윤우선의 주머니는 텅 비어 있을 것이었고 만약 돈이 없다면, 그녀는 절대 미국을 떠나지 않고 유나가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칠 때까지 버틸 것이 뻔했다. 그러니 가능한 한 빨리 윤우선을 미국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지금 시후에게 가장 최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시후는 의도적으로 중고 시장에서 목걸이의 가치를 슬쩍 언급한 것이었다. 결국 시후의 이 말은 윤우선에게 ‘같은 목걸이를 두 개나 가질 필요가 없다’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고, 어차피 같은 목걸이는 한 개만 있으면 되니, 남은 하나를 몰래 팔아버려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는 사실까지 상기시켜 주었다. 어쨌든 윤우선은 한 개의 목걸이를 팔고도 결국 여전히 같은 목걸이를 하나 가지고 있는 셈이 될 테니까 말이다.시후의 말 한마디가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기에, 윤우선은 즉시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줌바 댄스도, 운동 모임도, 그런 것들은 모두 안중에도 없었다. 윤우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그런데, 유나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놀란 표정을 짓자, 윤우선은 참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 “유나야, 엄마가 조금 전에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엄마가 너희들이 보고 싶어서 온 건 맞지만, 이제 두 사람을 다 만나 보았으니 더 이상 그리움이 생기기 않게 됐어.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집이 그리워지기 시
유나는 윤우선의 태도가 단호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조금 난감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한 후 어머니가 미국에 남아 있는 것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편하고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주 5일간 수업을 들어야 해서 어머니와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그렇다면 결국 시후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입을 열어 말했다. “엄마, 그럼 금요일에 수업이 끝나고 나면 우리 뉴욕으로 가요. 일요일 비행기표를 예약해 드릴게요.”“그래 좋다!” 윤우선은 한순간에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럼 어서 표를 끊어 줘, 늦어서 매진되면 안 되니까.”옆에 있던 시후가 이때 말했다. “장모님, 그럼 제가 예매해 드릴게요.”윤우선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고마워, 우리 은 서방!”시후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휴대폰을 꺼내 뉴욕발 한국행 일요일 항공편을 찾아 바로 표를 예매했다.윤우선은 곧 항공사에서 보낸 발권 정보 메시지를 받았고, 예약이 확정된 것을 보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윤우선의 반응은 마치 오랜 시간 떠돌던 나그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은 것 같았다.그 후, 윤우선은 조심스럽게 시후가 선물한 목걸이를 챙긴 후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 나 오늘 운동 모임 가기로 했는데, 곧 늦겠네. 그럼 두 사람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도록 하렴. 난 먼저 나갈게!” 그렇게 말하고는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운동화를 갈아 신고 방을 나섰다.윤우선이 떠난 후, 유나는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시후에게 말했다. “여보, 엄마 상태가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이상해?” 시후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장모님이 어디가 이상해 보여요? 난 그냥 장모님이 빨리 집에 가고 싶으신 것뿐인 것 같은데.”유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귀국 문제 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이 엄마한테 준 그 목걸이가 뭔가 이상하단 말이죠.”“목걸이요?” 시후는 더욱
시후는 유나가 윤우선의 행동을 이렇게 정확하게 예측할 줄은 몰랐고 웃으며 말했다. “아휴,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장모님에게 내가 선물한 거니까, 어떻게 처분하든 장모님의 자유죠. 우리가 간섭할 권리는 없잖아요. 그리고 난 장모님께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못 믿겠으면 우리가 귀국할 때 확인해 보면 되잖아요. 그때도 목걸이가 있으면 아무 문제없는 거 아니겠어요.”유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무력하게 말했다. “나도 엄마 일에 간섭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엄마는 가끔 너무 실망스러운 행동을 할 때가 있단 말이죠. 이 목걸이는 당신이 직접 선물한 건데, 엄마가 단순히 돈만 보고 팔아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요.”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요. 우리가 돌아가도 목걸이는 여전히 장모님한테 있을 거예요.”유나는 시후가 왜 이렇게 확신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문제를 깊이 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길 바라야죠....”....그 시각. 뉴욕, 페이셔스 그룹.배유현과 시후가 탄 비행기가 홍콩에서 출발한 이후로, 배원중은 하루 종일 집에서 초조하게 손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원중은 시후가 준 반 알의 거풍환 덕분에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그는 이미 죽음에 가까운 상태였고, 약효의 대부분이 목숨을 살리는 데 쓰였기 때문에 생명을 연장하는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시후가 바로 반 알의 약이 자신을 1년, 길어야 2년 더 살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인 것이다. 이 때문에 배원중은 이미 스스로 죽음까지 남은 날을 카운트다운하고 있었고, 그의 대부분의 희망을 내년 회춘단 경매에 걸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자신이 페이셔스 그룹의 회장이었을 때도 회춘단을 낙찰 받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리에서도 물러난 상황이었기에, 내년 경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그는
배원중은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페이셔스 그룹의 대저택 정문으로 나섰고, 마침 그 때 배유현이 탄 차량 행렬도 도착했다. 페이셔스 그룹의 다른 가족들도 모두 함께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차에서 내린 배유현은 할아버지가 직접 마중을 나온 모습을 보자마자, 속으로 할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주머니 속에 시후가 준 거풍환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불안함과 긴장감을 느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회춘단과 거풍환에 얼마나 간절한 기대를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손녀로서, 시후에게서 받은 이 약을 망설임 없이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곧 시후의 당부가 떠올랐고, 결국 그녀는 충동을 억누르기로 했다. 그녀는 곧바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왜 굳이 직접 마중까지 나오셨어요.”배원중은 간절한 눈빛을 띄면서도,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이제 우리 페이셔스 그룹의 회장이고, 또 그렇게 먼 곳에서 돌아왔으니 내가 직접 나와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네가 수고가 많았다.” 이어서 그는 재빨리 물었다. “이번 일은 무사히 잘 해결된 거지? 뉴스에서 관련 보도를 봤는데, 그 유가휘라는 양반이 이중열이라는 양반과 화해를 한 것 같더구나?”배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은 선생님께서 함께 계셨기에, 유가휘 씨도 감히 이중열 선생님께 함부로 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이번에 은 선생님이 그에게 충분히 체면을 세워주셨기에, 그 역시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했고요.”“그렇다면 잘된 일이구나.” 배원중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 선생님께서는 우리 페이셔스 그룹에 너무나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 우리가 그분을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었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가문의 영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이번에 시후가 보답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질 수는 없었기
배원중은 배유현의 놀란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현아, 이제 너는 우리 그룹의 회장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그러자 배유현은 서둘러 대답했다. "할아버지, 여기는 할아버지의 서재이고 이 책상도 할아버지의 것이잖아요. 제가 비록 회장이 되기는 했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할아버지의 손녀일 뿐이에요. 회사에서라면 물론 회장이니까 회장실에 앉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집에서는 감히 할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어요..."그러나 배원중은 손을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룹이 곧 가문이야. 가정과 기업은 하나인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지. 너는 페이셔스 그룹의 회장이고, 더 나아가 이 집안을 이끌어갈 사람이다. 나 또한 이제는 너의 의견에 따라야 하고, 네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겠지." 이렇게 말한 뒤 배원중은 더 이상 배유현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바깥쪽의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 배유현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유현아, 자리에 앉아라."배유현은 순간적으로 부담을 느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배원중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고, 이를 본 배원중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이번에 홍콩에서 있었던 일들을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 보렴."배유현은 특별히 숨길 것 없이,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의 모든 일을 하나하나 상세히 이야기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시후가 유미경에게 거풍환을 선물한 일만큼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생존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혹시라도 유미경이 가진 거풍환을 노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의도치 않게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할아버지가 그 약을 사려고 시도하는 것도, 시후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시후는 분명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 부분을 아예
시후 은 웃으며 말했다. “형님,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괜찮습니다...” 나훈구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은혜를 알면 반드시 갚아야지. 만약 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내와 자식들은 제가 실종된 줄 알고 평생 불안에 떨며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헤맸을 겁니다. 결국 제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경찰로부터 자세한 내막까지 듣게 될 테고, 그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비통해 했겠죠...” 이 말을 하며, 나훈구는 시후를 바라보다가 목이 메어 말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건 물론이고, 제 아내와 자식들이 그런 극도의 슬픔을 겪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도 구하신 겁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최선의 결과가 될 테니까요. 생활고야 어찌 되든, 저는 가족들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조금 힘들게 살 뿐이죠.”시후는 나훈구의 단단한 표정과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는, 마음속 깊이 감동을 느꼈다.잠시 후, 그는 성도민을 불러 곁으로 오게 하더니 말했다. “성도민 씨, 이 분은 IT 분야의 전문가, 나훈구 씨입니다. 나는 블랙 드래곤에 반드시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를 데리고 중동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성도민은 기쁘게 말했다. “그거 정말 잘 됐습니다! 지금 블랙 드래곤에서는 IT 분야 하드웨어 구축을 강화하려는 참이었는데, 바로 이런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IT 인프라와 미래 로드맵을 같이 설계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거든요!”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블랙 드래곤은 IT 기업들과 협력해서 자체 위성을 제작하고, 상업 위성 발사 기업을 통해 발사하여 자체 위성 통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블랙 드래곤 내부의 통신은 보안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 통신망이나 서비스 업체에 의존하면 100% 보안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시후의 질문을 들은 나훈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 간신히 은 선생님의 은혜로 살아남았으니, 일단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죠...”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미 멕시코까지 와서 선원 일을 하려 하셨던 걸 보면, 미국으로 돌아가도 마땅한 일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요?”시후의 이 말을 들은 나훈구의 표정엔 다소 민망함과 무력감이 함께 떠올랐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괜찮은 일을 못 찾으면, 그냥 허드렛일이라도 해야지 뭐... 우리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하셨는데, 저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님, 제 생각엔 차라리 이렇게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제 밖으로 나오셨으니 굳이 그렇게 서둘러 돌아가실 필요는 없잖아요? 형님은 IT 쪽 일을 하셨다면서요. 그렇다면 이후엔 블랙 드래곤에서 일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블랙 드래곤은 현재 중동을 거점으로 해서 해상과 항공 양쪽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IT 분야의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고, 수준도 높아질 겁니다. 형님 같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해요.”시후가 이 말을 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만약 나훈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최상의 결과일 것이었다. 그는 성도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중동으로 데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훈구가 거절한다면, 여기서 벌어진 비밀들을 알고 있는 그를 미국으로 그냥 돌려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구출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일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야 할 것이다.다만 시후는 가능하면 그 두 번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고, 이렇게 큰 사건을 겪은 이상 그에 걸맞은 기회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워버리면, 그에겐 이 피비린
때로는, 평생을 바쳐도 이성 무인에서 삼성 무인으로의 도약조차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성 무인이란, 사실 대부분의 무인들이 평생 머무는 한계점과도 같았다. 하물며, 삼성에서 사성, 사성에서 오성, 오성에서 육성으로의 도약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이번에 시후가 건넨 이 한 잔의 술이, 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단숨에 수련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는 건, 그들에겐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블랙 드래곤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성도민은 자신과 함께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수련 능력이 상승한 것을 발견하고는, 성도민은 가슴 속 깊은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시후를 다시 바라보며, 감격과 동시에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뒤 공손히 말했다. “저 성도민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다른 블랙 드래곤의 구성원들도 즉시 정신을 차리고, 성도민을 따라 시후 앞에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소리 높여 외쳤다. “저희들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 역시도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들을 하겠습니다!”시후는 눈앞에 있는 100여 명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시후는 그들의 눈에 맺힌 눈물과 결연한 표정을 보고는 이들이 자신의 확고한 동료가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만족스러운 마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은시후는, 앞으로 결코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블랙 드래곤이든 여러분 각자든, 앞으로 반드시 날개를 펼쳐, 저 넓은 하늘을 훨훨 날게 될 겁니다!”이 말을 들은 대원들은 곧바로 가슴이 뜨거워지며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이때, 지하 수술실을 불태우고 있던 화염은 이미 지상까지 뜨겁게 달궈 놓았고, 불꽃은 땅 위의 건물까지 번지고 있었다. 이에 시후는 성도민에게 말했다. “성도민 씨,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다. 모두 질서 있게 철수하도
시후의 구호가 떨어지자, 그와 함께 모든 대원들이 술잔을 들어 잔 속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시후에게 있어 이 술에 담긴 영기는 이미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이 느끼는 기운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애초에 이 술에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원들이 술을 한 번에 들이켰을 때 온몸에 강렬한 온기가 복부에서 시작해 단전으로 몰려들었고, 곧이어 기운은 마치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쪼개는 듯한 맹렬한 기세로 팔맥을 향해 폭발적으로 밀려들었다!무술가들에게 있어 자신의 실력 향상은 두 가지 핵심 요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첫 번째는, 기경팔맥 중 몇 개의 경맥이 열려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술가들의 경지와 실력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다. 경맥을 많이 열수록, 무술가의 등급과 전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미 열린 경맥이 얼마나 잘 순환되고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무술가들은 몇 개의 경맥 만을 겨우 열 수 있을 뿐, 모든 경맥을 완전히 순환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코에 있는 양쪽 콧구멍과도 같아서, 누가 더 뚫려 있느냐에 따라 들숨의 양이 달라지듯 경맥도 얼마나 원활히 순환되느냐에 따라, 에너지 흡수량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이 소주 안에 담긴 영기는 그들에게 단순히 경맥을 몇 개 더 열게 해준 것이 아니라, 기존에 뚫려 있던 경맥까지 더 넓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즉,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무술가들의 실력을 향상시킨 것이다.그래서 이 순간 블랙 드래곤 대원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 엄청난 기운이 자신이 오랫동안 뚫지 못했던 다음 단계의 경맥까지 열도록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잠시 후 누군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 네 번째 경맥을 뚫었어! 진짜야! 네 번째 경맥이 열렸어!!”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외쳤다. “나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후는 지하 수술실에 있었고,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과 함께 들어오긴 했지만, 지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시후는 이제서야 소이연도 멕시코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이 순간, 소이연은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은 선생님... 리더가 선생님께서 업무가 있다고 삼성 이상 무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딱 맞는 위치라... 바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시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물었다. “이번엔 본래 신분을 사용하진 않았겠죠?”“아니에요.”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에게 등을 돌린 채, 시후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말했다. “이번엔 완전히 새 신분으로 왔어요~”“좋습니다.” 시후는 미소 지으며 손에 든 소주를 그녀에게 건넸고, 조금 전 다른 대원들에게 했던 것처럼 공손히 말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소이연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은 선생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건, 제게는 큰 영광이에요!”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됐어, 자리에 돌아가요.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 더 하는 걸로 하고. 오늘 밤엔 나랑 같이 미국으로 돌아가죠.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서요.”소이연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은 선생님, 탐정... 아직도 절 추적하고 있잖아요. 제가 미국에 가면 혹시 폐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요...?”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감회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제이크 한은 이제 이연 씨를 추적하지 못해요. 얼마 전 그 친구한테 사고가 있었거든. 그 이후로 그가 맡았던 사건들도 대부분 흐지부지 종결됐죠. 게다가 이연 씨는 이미 새로운 신분으로 바꿨잖아. 문제없을 겁니다.”“그럼 정말 다행이에요! 은 선생님께 폐만 안 된다면 저는 뭐든지 다 좋아요! 은 선생님 말씀만 따를게요!”그제야 소이연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시후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경계심과 신중함 또한 한껏 갖추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전체 전력은 분명 강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알려진 세상 안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였다. 세상 어딘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더 강대한 존재들은 어쩌면 블랙 드래곤보다 훨씬 더 막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시후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자신 개인의 실력 향상은 물론, 블랙 드래곤 전체의 실력도 체계적으로,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고... 만일 훗날, 그 미지의 강적들과 정면으로 맞설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적어도, 승산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성도민은 시후의 성격을 잘 알기에, 즉시 몸을 낮춰 공손하게 다짐했다. “은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절대 개인적인 실력이나, 블랙 드래곤의 전력이 강해졌다고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로 인해 방심하거나 적을 얕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시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나도 블랙 드래곤의 미래에 대해, 한층 더 기대하게 되는군.” 말을 마치고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자, 대원들이 줄을 서서 술을 받도록 하죠!”“예!” 성도민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 마당에 모인 100여 명의 정예 부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대원들! 은 선생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술이 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원들을 위해, 축하와 보상의 의미로 준비하신 것이다! 자 이 술은 천금의 가치가 있고, 너희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다!” 그러면서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전원 주목! 첫 번째 줄부터,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줄지어 입장해 술을 받아라! 단, 절대로 술을 흘리거나 쏟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평생 후회할 거다!”하지만 듣고 있던 대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술이길래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건지,
시후가 막 첫 잔을 따르려던 순간, 지하실 쪽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엄청난 충격과 함께, 땅 전체가 흔들렸다! 지하 수술실 입구가 숨겨진 방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는데, 폭발의 위력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시후는 알고 있었다. 김미희를 포함한 악마들이 이 불꽃 속에서 재로 변해, 그 죄악의 생을 완전히 끝냈음을.그리고 그 순간, 시후는 손에 쥐고 있던 동작을 멈췄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방금 막 따른 술잔을 들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한 잔의 술을 그분들께 바칩니다. 부디 구천에서도 이 원한이 풀렸음을 알아주시길...”그 말과 함께, 그는 두 손으로 잔을 들어, 그 안의 술을 천천히 땅에 부었다. 이 한 잔의 술을 만약 정말 필요한 이에게 팔았다면, 아마 수천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에게 있어, 이 술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한 경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 술을 땅에 쏟는 이유였고, 결코 낭비라 할 수 없는 행위였다.이후, 시후는 한숨을 내쉬고, 다른 잔들에도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곧, 100여 개의 술잔이 모두 채워졌고, 두 병의 소주도 정확히 사람 수에 맞춰 딱 떨어졌다.그때, 10분이 흘러 성도민이 공손히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은 선생님, 모두 마당에 모였습니다.”시후는 가볍게 답하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예.” 성도민은 대답한 후 문을 열고 들어왔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강렬한 술 향기를 느꼈다. 소주는 본래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코를 찌르는 이 향은 평소에 느끼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도민은 놀랍게도 술 향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선선한 가을날, 아무 걱정 없이 꿀잠을 자고 난 후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해지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그
몇 분 전.지하 수술실에서 악행으로 가득한 살인범들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을 때, 시후는 구출된 피해자들을 진정시킨 후, 성도민에게 물었다. “성도민 씨, 내가 미리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들, 준비해 놨습니까?”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은 선생님, 말씀하신 물건들은 모두 제 차량 트렁크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필요하시면 바로 옮기겠습니다.”“좋아요.” 시후가 말했다. “그럼 가져와요.” 그러고는 가까운 빈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으로 옮겨 놓도록 하죠.”“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성도민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곧이어 차 트렁크에서 커다란 종이박스 하나를 꺼내 안고 돌아왔다. 성도민은 두 손으로 종이박스를 안고 오면서, 한 손엔 묵직한 쇼핑백도 들고 있었다.박스에는 소주의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고, 이는 시후가 특별히 부탁해 미리 준비하게 한 축하주였다.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1.8리터짜리 소주가 두 병 들어 있었고, 또 다른 쇼핑백에는 소주잔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성도민이 시후에게 말했다. “은 선생님, 요청하신 물건이 여기 있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0분 후에 모두 마당에 집합시켜요. 다 함께 축하주를 나눌 거니까.”성도민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은 선생님, 축하주를 마신다 하셨는데, 술이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백 명이 넘는데, 고작 이 소주를 나눠 마시면 1인당 양이 얼마 안 될 텐데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우리 블랙 드래곤은 주량도 셉니다. 이 정도 술은 그냥 목만 축이는 정도 아닐까요...”시후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모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과음은 좋지 않죠. 이 술은 형식일 뿐이고, 진짜로 실컷 마시고 싶다면 미국에 돌아가서 마음껏 마시면 되지 않겠어요.”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시후는 말했다. “좋아요. 성도민 씨, 그럼 이젠 가서 할 일 보고, 10분 후에 나를 찾아오도록
김미희는 뒤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부하들이 다 죽었는데, 누가 널 구하러 온다는 거야?”후아레스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내 여자친구! 내가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나를 찾으러 올 거야! 그녀가 올 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구출될 수 있어!”김미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 그런 머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보스를 해먹었는지.” 그러고는 위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잊지 마. 밖에는 블랙 드래곤의 대원 백 명이 넘게 포진해 있어.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그 자들은 절대 떠나지 않아. 네 여자친구가 오면, 그저 죽으러 오는 거라고!”후아레스는 한순간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불만 붙이지 않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하루만 더 버텨도 살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 기적은 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거잖아? 어쩌면 은시후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멕시코 경찰이 여길 찾아낼 수도 있고, 혹시 그 은시후에게 다른 원수가 있어서, 그 원수가 찾아와 그들을 처치해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흥분해서, 모두를 설득하려 들었다. “원래 백만 분의 일 확률이라 해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슈퍼 로또처럼 말이야. 백만 분의 일이어도 당첨자는 반드시 나오잖아? 그게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어. 단 조건은 뭐다? 일단 로또를 사야 되는 거지! 살아 있어야 그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그의 말에 김미희를 비롯한 이들이 조금씩 설득되는 듯했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회가 희박해도, 아예 끝내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김미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기다려 보자고.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옆에 있던 민영건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리자! 나도 기다릴게!